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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7:38:28

모사드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38B8,#2c69f5> 정보특수작전국
המוסד למודיעין ולתפקידים מיוחדים
המוסד | the “Mossad”
<nopad> 파일:모사드 깃발.svg 파일:모사드 로고.svg
<rowcolor=#0038B8,#2c69f5> 깃발 엠블럼
창설일 1949년 12월 13일 ([dday(1949-12-13)]일, [age(1949-12-13)]주년)
국가
[[이스라엘|]][[틀:국기|]][[틀:국기|]]
소속 이스라엘 내각부
직원 수 약 7,000명
원훈 בְּאֵין תַּחְבֻּלוֹת, יִפָּל-עָם; וּתְשׁוּעָה, בְּרֹב יוֹעֵץ.
지휘자 없는 군대는 패하고 좋은 참모가 많으면 승리한다.[1]
국장 데이빗 바네아
위치 이스라엘 텔아비브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직제3. 역사4. 알려진 주요 행적
4.1. 암살
4.1.1. 2010년 암살
4.2. 납치4.3. 첩보 수집 및 분석
5. 조직 문화6. 대한민국과의 관계7. 중국과의 관계8.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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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스라엘의 대외 정보기관. 이스라엘 정부의 적대 세력을 감시하고 파괴 및 암살 등 필요한 공작을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모사드에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내무정보기관으로는 신 베트가 있다.

'모사드'는 히브리어로 '기관', '국(局)', '청(廳)'이라는 뜻의 일반명사이며, 영어의 'institute', 'agency'에 대응된다. 이스라엘 국내에서 모사드를 지칭할 때는 정관사를 사용하여 '하모사드(המוסד)'라고 읽는데, 이는 '그 기관(the Institute)'이라는 암시적 의미로, 정식 명칭인 '정보특수작전국(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pecial Operations, המוסד למודיעין ולתפקידים מיוחדים; 하모사드 레모디인 우레타프키딤 메유하딤)'의 이름조차 직접 드러내지 않던 관행에 따라 '거기', '그 쪽' 하고 부르던 것이 통칭으로 정착한 것이다.[2] 한국어 번역명으로는 '정보특수공작국', '정보 및 특수 작전국', '정보특수공작기관' 등이 쓰인다.

모사드의 대표적인 표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하마스,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 팔레스타인 이슬람 투쟁 운동, 레바논 헤즈볼라, 이란 정부 관계자, 구 바트주의 이라크, 구 시리아의 핵 개발 관계자 등 중동 아랍 세력들이 있으며 이들과 군사적 교류가 잦은 북한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공작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3] 나치 전범에 대한 추적 및 보복도 모사드의 지속적인 목표 중 하나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과지상주의적 일처리와 불도저식 공작 능력, 놀라운 정보수집 능력으로 유명하다.

2. 직제

모사드의 직제 현황은 기밀로, 민간에 공개되어 있지 않다. 가장 최근 알려진 것은 CIA가 1977년에 작성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대한 보고서에 수록된 것으로, 1979년 이란 혁명으로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이 점거되었을 때 외부로 유출되어 알려졌다. 이 자료에 의하면 모사드는 8개 부서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작과, 대외연락과, 기술과, 훈련과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장투입 및 암살팀인 '키돈'과 통신감청 전문기술팀 '야호로민', 해당 공작 지역에서 모사드를 도와주는 유대인들인 '캇차'와 '사얀/사야님', 그리고 도처에서 운용하고 있는 각국 국적의 모사드 정보원 등을 갖고 있다.

모사드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거대한 규모인데 메이르 아미트(3대 국장, 1963~1968 재직) 시절에는 1,200명 정도의 조직원을 가지고 있었다.[4] 예산도 많이 들어갔을 것이 분명하다. 전직 안기부 제2차장에 따르면 2010년 즈음에는 1,500명 정도의 조직이었다고 한다.

3. 역사

제2차 세계 대전 나치의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이주시키기 위해서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되었다. 1948년 6월 초대 국장을 레우벤 실로아흐(ראובן שילוח)로 하여 외무부 산하 정치국으로 출범하고 1949년 12월 13일에 정치국을 확대개편하여 정보조정연구소(the Institute for Coordination)로 재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1년에는 총리 직속기구로 재편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모사드의 창설연도를 1951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1953년에 취임한 2대 의장 이세르 하렐(Isser Harel)은 모사드를 전문가 조직으로 발전시켰으며 외국에서의 첩보활동·정보수집·비밀정치공작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중동전쟁에서 큰 공을 쌓은 이스라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형 모리스 코헨도 모사드 요원이었지만 아우가 시리아에서 교수형당하는 걸 그저 TV화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모사드는 1979년 이전까지는 베일에 싸여 있던 기관이었으며 일반인들은 모사드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했지만 정체가 1979년에 드러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좀 골때린다. 1979년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대사관 직원들은 인질로 잡히기 전 기밀 문서를 파쇄기에 넣고 모두 파기했지만, 대사관 내의 사람들을 인질로 잡은 뒤에 할 일이 없던 인질범들이 파쇄기에 갈아댄 문서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복원한 과정에서 모사드의 존재가 밝혀졌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중반은 모사드에게 암울한 기간이었는데 벌여 놓은 각종 작전이 실패해 언론에 알려져 망신을 당해 국장이 여러차례 교체되기도 했다. 수뇌부들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정보기관을 휘두르면 망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다가 2002년 메이어 다간이 국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는데 취임사는 '적의 뇌를 삼켜라'다.
나는 레바논에 참전했을 때 가문끼리의 싸움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 족장의 머리가 깨져서 뇌가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족장의 부인과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한 아이가 족장의 뇌수를 한 움큼 쥐더니 집어삼켰다.
이것이 레바논 사람들이 가문끼리의 싸움에서 하는 행동이다.
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나는 여러분의 뇌가 다른 자들에게 먹히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뇌를 먹는 사람은 여러분이어야 한다.
모사드 10대 국장 메이어 다간의 취임사

모사드는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이스라엘 내 첩보를 주로 맡는 신 베트(Shin bet)는 미국에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사람들도 잘 모르는 첩보기관이다. 어느 나라든 그렇지만 모사드와 신 베트는 은근히 사이가 나쁘다고 한다. 그렇긴 해도 같은 이스라엘 첩보기관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땐 돕긴 하지만. 2012년에 만들어진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영화 게이트키퍼즈에 나온 전직 신 베트 국장들의 증언을 봐도 모사드가 마치 자신들이 우위인 양 설쳐댄다고 마구 화를 내며 털어놓는 게 나와서 이를 본 모사드 출신 국장들도 불쾌하게 반론하던 적이 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에는 정보기관이 꽤 많은 편이다.

모사드와 협력적인 국가/적대적인 국가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외교 문서 참조 바람.

4. 알려진 주요 행적

주요 공작으로는 다음이 알려져 있다.

4.1. 암살

모사드는 암살에 대해 가능한 한 긍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는다. 모사드 창설 후 정적들을 납치 혹은 총격으로 주로 암살했지만 21세기 들어 정적들의 철저한 경호를 갖춘 이후로 총격보단 공습 혹은 원격으로 암살을 주로 하는 편이다.

4.1.1. 2010년 암살

2010년 1월 20일에 두바이에서 일어난 하마스의 지도자 '마무드 마부'(50) 암살 사건의 배후로 추궁당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면 본 기사 기사 참조.

파일:external/news.bbc.co.uk/slide01.gif

6번, 8번, 10번 아담 마커스 , 15번 게일 폴리어드[A], 16번[A] 21번[A] 위 22명 외에도 바니 가브리엘라[A], 니콜 산드라 등 4명의 범인이 더 있었다. 이 암살팀 중의 1명이 아래에 나오는 호주 이중간첩 '죄수 X'였다.

26명의 범인이 5개 국적의 위조여권을 이용해 4곳의 공항에서 입국해서 19시간만에 암살을 저지른 뒤 7곳의 공항으로 탈출했다. 서로간의 연계점이 없게 보이기 위해 택시도 모두 따로 타고 호텔도 각각 다른 곳에 투숙했으며 신분 추적이 안 되게 하려고 위조여권, 선불제 휴대폰 7개, 다른 사람의 명의로 발급받은 신용카드 17개를 사용했다. 암살 용의자 중 8명은 1년 전부터 4차례 이상 두바이를 들락거렸다.

공항 대기조, 호텔 정찰조 여러 팀, 암살 실행조 등 여러 팀으로 나누어 임무를 수행했다. 테니스복 차림에 테니스 라켓을 든 남성 2명이 알 마부를 미행해 객실 번호를 알아냈다. 이후 남녀 2인(아래의 '게일 폴리어드' 포함)이 객실 내에 실제로 그가 있는지 알아냈다. 이후 게일 폴리어드와 함께 건장한 체구의 남성 4명이 방으로 들어가 20분만에 알 마부를 암살하였다.[19] 방법은 전기쇼크로 일단 기절시킨 뒤 썩시닐콜린[20]를 투여해 깨어나도 저항하지 못하게 조치한 다음 베개로 질식시킨 것이다. 현장 요원들이 몇몇 멍청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감전에 의한 쇼크사로 오인될 뻔 했다.

호텔 CCTV에 수차례 인물들이 드나드는 장면이 포착되었는데 CCTV에 사진이 찍힐 때마다 용모와 복장을 지속적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전혀 수상해 보이지 않았다. 밝은 미소를 띄면서 사회성 좋게 호텔 직원들과 이야기했던지라 전혀 음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암살단은 범행이 이뤄진 호텔 외에 알마브후흐가 두바이에서 머물 때 자주 이용했던 호텔에도 여러 명의 요원을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상황에 따라 제2, 제3의 작전 시나리오까지 준비했음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마부 역시 암살에 대비해 이런저런 조치를 취했는데 독극물을 두려워해 확실한 음식 외에는 절대 음식을 먹지 않았고 자신이 어느 나라에 가는지 최대한 알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모사드의 행동은 그의 대비보다 훨씬 치밀했다.

여권위조를 비롯한 여러 국제법 위반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묶인 사건이라서 이러한 이스라엘의 '초법적 처형'이 많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영국 중대조직범죄청(SOCA)이 이스라엘에 수사관을 보내 위조 여권 사용경위를 조사하여 밝혀진 위조 수법은 이스라엘에 영국인들이 입국할 때 이스라엘 공항 직원들이 영국인의 여권을 체크한다면서 가져갔다가 복사하여 개인정보를 빼낸 뒤 20분 후 돌려주는 방식이었다. 2010년 3월 영국이 국내 주재 중이던 모사드 관련 이스라엘 외교관을 추방하였는데 영국에 입국할 때 모사드 암살요원들이 소지한 영국 위조여권이 모사드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일 폴리어드(가명)는 이 암살의 주요 실행범 중 하나다. 게일은 복도에서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하면서 목표물이 방에 들어가는지, 다른 투숙객이 지나가지는 않는지 감시했으며 호텔 직원을 가장해 목표물이 거부감 없이 방문을 열도록 유도했다. 살해 후에는 빠져나가면서 방문에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표식을 걸어놓기도 했다.

파일:external/gfx.dagbladet.no/503x.jpg
마치 외국인 관광객을 방불케 하는 평범한 옷차림.

마부가 암살당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08-2009년 가자 전쟁에서 하마스는 이란제 다연장로켓을 사용했는데 이스라엘 군부는 이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이란에서 무기를 반입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추적한 결과 알 마부인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마스 지도부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그의 활동을 알고 있었다. 2010년 초 알 마부는 가자 지구에 있는 친척에게 휴대폰으로[21] '두바이에 간다'고 무심결에 얘기했으며 인터넷으로 자신이 숙박할 호텔을 예약하기도 했다. 모사드는 사실 확인을 위해 팔레스타인에서 하마스의 앙숙인 파타의 협력자들로부터 추가정보까지 입수했다.

이만큼 자세하게 사건의 경위가 알려지고 현장에 전혀 출입하지 않은 요원들의 위조여권까지 발각된 것은 암살임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게일 폴리어드(가명)가 CCTV를 보고 윙크를 했고 암살 직후 요원들이 우르르 몰려서 호텔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었다. 그러자 두바이 경찰이 엄청난 양의 CCTV 데이터를 분석해서 모든 상황을 추적하였다.

4.2. 납치

나치 잔당을 색출해 납치하여 자국에서 재판했으며 이미 사망했을 경우 사망 사실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치 독일 SS 중령이었던 오토 스코르체니를 포섭하여 나치 잔당 사냥을 함께 하기도 했다.[22]

4.3. 첩보 수집 및 분석

5. 조직 문화

모사드는 다른 나라의 해외 정보기관과 마찬가지로 매우 위험한 일들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운 임무를 성공시키기 때문에 굉장히 주목받고 있다.

다음을 성공 요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6. 대한민국과의 관계

중동에 수출된 북한 무기는 모사드가 직접 한국으로 보내 주기도 했으며, 굳이 북한제가 아니더라도 중동 전쟁 동안에 T-72 등 소련제 전차들을 입수한 이스라엘은 이걸 군용기에 실어서 한국에 보내주기까지 했는데, 이를 이용한 시험 데이터는 북한군의 전차 성능 연구와 차세대 한국산 전차 개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2014년 1월에는 선진 정보기관에 대해 배우기 위해 7명의 한국 국회의원이 모사드를 방문했다. 다만 이 때 해당 국회의원들이 한국 언론에 방문 일정을 예고하는 바람에 모사드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에도 해외 요원이 돌아다니고 있을 수 있다. 국정감사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북한 이외의 국가에 현지 협력자로 활동하던 한국인 30여명이 처벌받았다고 하는데, 이 중엔 우방국 정보기관의 비밀공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2020년 초 전세계적인 판데믹을 불러온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해서도 모사드의 개입이 있었다. 예루살렘포스트의 보도에 의하면, 3월 19일 코로나 진단키트 10만개를 모사드를 통해 이스라엘로 공수했는데 # , 보도 당시에는 진단키트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진단키트 제조기업 씨젠 방문 영상에서 씨젠 대표의 발언을 통해 이스라엘이 사용한 진단키트가 한국산임이 밝혀졌다.

2020년 3월 26일 이스라엘 신문 The Times of Israel 에서는 모사드가 비밀리에 40만 개의 키트를 공개되지 않는 외국에서 추가로 가져왔다고 말하였다. # 역시 한국산 키트로 추정된다.[38]

2020년 4월 24일 코로나 사태로 고립된 이스라엘 거주 한국인 55명과, 외국인 15명 등 총 70명을 태운 대한항공 임시운항 특별기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돌아가는 비행기에 한국산 키트를 대량으로 수송한 것이 알려졌다. 이 키트 수송은 모사드와 국정원이 협력해서 이뤄진 것으로 발표됐다. #

국정원은 모사드처럼 암살 등의 불법적인 행위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묵인받지도 못하고 있고[39] 모사드보다 지원받는 예산도 더 적다. 이는 독재정권 시절에 대국민 탄압에 동원되었던 과거 행적 때문도 있지만, 모사드가 타국과 비교해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묵인 아래 이례적으로 막나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모사드에 대해 요원이 약 7,000명, 연간 예산이 27억 3,000만 달러(약 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 참고로 국정원은 인원 약 6000여명에 대략 1조원 정도의 예산을 쓰는 것으로 추정된다. #[40]

7. 중국과의 관계

모사드는 중국 국가안전부 MSS와 매우 독특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지난 50년 동안 모사드는 MSS와 함께 공작활동을 벌여왔는데, 사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중국과 함께 공작활동을 벌인 것이 아니었다. 1964년 MSS가 아프리카로 요원들을 보내서 아랍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며 이스라엘을 공격하라고 부추겨 시비를 걸었는데, 이에 분노한 모사드는 케냐, 가나, 콩고, 잠비아 등 곳곳에서 차량 폭파, 총기 암살, 약물주사 후 사자와 악어 먹이로 던지는 식으로 MSS 요원들을 마구잡이로 암살했다. 당시 MSS는 수십 만 명의 인력과 소련의 KGB에 맞먹는 예산을 갖고 있었지만, 악명 높기로 유명한 모사드에게 승리는 거두지 못하였다. 심지어 아프리카로 갔던 MSS 요원들이 속속 죽어나갔으며 시신도 못 찾을 정도였다. 물론 피해는 모사드 측도 만만찮게 심했다.

당연히 이스라엘 중국과 전쟁할 생각이 없어서 대놓고 적대하지는 않았으며, 중국도 빡쳐도 이스라엘의 태도와 전쟁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모사드한테 엿먹을 때마다 간접적인 보복만 했다. 모사드는 그렇게 MSS와 치고박고 하다가 KGB가 멀티를 시도하자, 모부투 자이르 대통령을 앞세워 휴전을 제의하고 함께 KGB를 막자는 제안을 했다.[41] 중국-소련 국경분쟁 이후 소련과 갈라진 중국으로써는 또다른 적이 출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것은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던 터라 여기서 이해관계가 일치한 양국은 결국 휴전에 동의했다.

이후 중국 이스라엘과 급속히 친해졌고, 나중에는 서로 함께 미국의 주요 연구소를 털기도 했다. 2005년 5월 5일 중국 MSS, 인민해방군 정보국과 함께 미국의 핵무기 연구소인 로스 앨러모스에서 가짜 화재를 일으킨 뒤 중요한 핵무기 정보가 든 하드 드라이브를 해킹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로스 앨러모스의 이 하드 드라이브를 분실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한 달 뒤 구석에 숨겨져 있던 하드 드라이브를 발견하여 난리가 났다. 특히 FBI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고 한다.[42] 결국 나중에 이스라엘의 사죄로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미국-이스라엘 관계상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했던 희대의 외교적 곡예라고 해야 할까.

8. 대중매체


[1] 구약 성서 잠언 11장 14절의 일부다. 과거 원훈은 "작전이 서야 싸울 수 있고, 좋은 참모가 많아야 이길 수 있다."였는데 마찬가지로 잠언 24장 6절의 일부다. # [2] 비슷한 사례로, 한국에서도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남산' 혹은 '회사'로 소속을 에둘러 표현하던 관행이 있다. [3] 북한에게 있어 중동은 최대의 무기 수출시장으로 핵과 미사일 개발 기술도 공유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4] 1968년 이스라엘 인구가 280만명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인원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5] 머리에 총상을 두 번이나 입고도 살아 있었으며 끝까지 몸부림치다가 더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23일경에 살해되어 시체는 3월 6일에 트렁크에서 발견되었는데 총상이 온 몸에 산재했고 두개골이 박살나 있었다고 한다. [6] 잠깐 풀려나 있을 때인 2001년경 KBS 단독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7] 인구 27,000여명의 소도시. 1994년 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36년간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8] 이 양반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직접 뽑혀서 국장으로 취임했는데 이때의 작전 실패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의 비난 대상이 되어야만 했는데 네타냐후 총리는 나몰라라 했다. 결국 다니 야톰 국장은 얼마 안 돼서 스위스에서의 공작 활동 실패로 인해 자신이 책임을 떠맡고 사퇴했다. [9] 당시 공산 독재국가 폴란드 인민공화국에 총기를 밀반입해서 암살을 시도한 것이니 평범한 암살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10] 하마스가 협상 준비할 때 이스라엘이 빈 틈을 노린 셈이다. [11] 지도자는 되었지만 강경파 신와르를 반대하는 정치국장 하니예 포함 하마스 대원들에게 견제를 받아야만 했다. [12] 네타냐후 타도보단 가자 지구 국경지대 공백이 컸다. [13] 이스라엘이 UN기구에 무자비하게 폭격한 것도 하마스가 UN을 이용해 먹었기 때문이다. [14] 다에시 포함 다른 무장단체들은 사진을 대놓고 찍히거나 예방 접종을 받은 반면 데이프는 그 이상으로 치밀한 편이다. [A] 사진 삭제됨 [A] 사진 삭제됨 [A] 사진 삭제됨 [A] 사진 삭제됨 [19] 사실 여성 1명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완벽하게 제압해서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해서인 듯 하다. [20] 근육마비제. 시간이 지나면 인체에서 자연 분해되어 증거가 남지 않는다. [21] 무아마르 카다피가 왜 제거되었는지 봐야 한다. 위성전화로 연락했다가 표적이 돼서 무인기에 처참하게 비극을 맞이했다. 이런 이유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는 선전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스마트폰을 절대 쓰지 않으며 요원을 모집할 때 스마트폰을 무조건 압수했고 선전에서도 무조건 트위터와 같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계정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추적당해 궤멸당했다. [22] 스코르체니는 SS답지 않게 나치의 전쟁범죄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며 오히려 포로나 민간인에게 따뜻하게 대해 준 전적이 있다. 전후 재판에서도 당당하게 무죄를 받아냈기에 정상을 참작해 처벌 대신 모사드의 정보원으로 썼을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포섭 당시 스코르체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사드 요원을 알아채고 권총으로 겨누는 등 꽤나 날카로운 눈썰미와 깡을 보여주었다. [23] 아이히만의 납치가 공개된 후 즉시 아르헨티나는 아이히만의 송환을 요구했으며 UN 안전보장이사회도 이스라엘의 아르헨티나 주권 침해를 인정하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에게 사과, 배상함으로써 아이히만을 돌려보내지 않고 사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4] 그러나 아이히만은 멋대로 하는 성격이라 서먹서먹한 사이였다고 한다. [25] 납치 과정에 대해서는 미인계 문서의 모사드 문단 참조. [26] 같은 유대인이라서 팔레스타인인들에 비하면 약하게 해 준 거다. [27] 기밀 유출에 대가를 받지 않았고 유출된 기밀이 인류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핵 개발 등이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간첩은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부도 대놓고 죽이지 못하고 굳이 납치하는 수고를 벌였다. [28] 한국으로 치면 무기형을 선고한 다음 경북북부제2교도소 독방에서 10여년 동안 감금했다고 보면 된다. 냉전 시기에 대놓고 간첩질을 크게 하거나 대남 테러를 실행하다가 걸려 사형당하지 않고 남파간첩 혹은 간첩 협조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이런 처우가 행해졌다고 한다. [29] 이는 서방세계에서의 가장 긴 독방 수감기간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됐다고 한다. [30] 부모와는 기독교로 개종한 일로 관계가 나빴던 데다 이 사건으로 의절한 상태여서 직계가족이 형 메이르 바누누와 아내와 자식들뿐이었다. [31] 즉, 북한도 미군이 직접 들어가서 상당한 기간동안 주둔하며 북한 전역을 샅샅이 헤집고 핵무기를 다 찾아서 미국으로 가져가서 폐기하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협정도 해 줄 수 없다는 의미라는 설에 힘이 실리고 있다. [32]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들의 뛰어난 구급조치와 인명구조능력 때문에 생존자 구출을 위해 투입되었다고 한다. [33] 이팔전쟁 이전에 하마스 내부에서는 야히야를 좋게 보이지 않았었다. 따라서 신와르는 하니예와 갈등을 겪었는데 하니예가 암살당하자 신와르는 기회삼아 지도부로 선출된 것이다. [34] 대표적인 인물이 타리크 아지즈다. [35] 대개의 선진국 정보기관은 강대국에서 불법적인 정보활동을 하는 것을 꺼리는데, 들통날 경우 외교적으로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동맹국이나 우방국은 물론, 하다못해 협력국이라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36] 일례로 한국의 국정원장은 임기가 평균 1년 정도이고, 대통령이 자신의 뜻에 맞는 고위 인사를 지정하며, 그 고위 인사는 군인, 행정공무원, 검사, 인권변호사 등 다양한 커리어패스를 거친 사람이 뽑힌다. [37] 하산 나스랄라가 스마트폰을 절대 안쓴다고 공언하자마자 대원들은 무선호출기로 바꿨지만.... 모사드는 이미 2022년도에 미리 적국으로 위장한 유령회사를 차리고 무선호출기에 폭탄을 설치해서 판매했던 것이다. 공작이 드러나자마자 사이트를 닫아버린 것은 덤이다. [38] 다만 나중에 와서 볼 때 이렇게 노력해서 확진자가 하루에 몇 명씩 나오는 수준으로 줄면서 봉쇄를 해체했는데 이후 하루 확진자가 폭증하는 바람에 그 노력을 무위로 되돌리고 말았다. 그나마 사망률이 낮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다. [39] 아돌프 아이히만이 대표적이다. 이스라엘은 모사드의 불법 행위를 허락하고 아르헨티나의 주권을 침해해 가면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불법으로 납치했고 재판을 통해 처형해 버리고 아르헨티나와의 갈등을 감내하는 걸 택했다. [40] GDP대비 예산규모로 보면 차이가 명확하다. 2021년 기준 한국의 GDP는 1806 B$(세계 10위)이고 이스라엘의 GDP는 446 B$(세계 29위)로 한국이 4배 이상 많다. GDP대비 예산을 보면 모사드가 12배 정도 많다. [41] 모사드와 MSS가 치고받고 하는 동안 KGB가 은근슬쩍 엉덩이를 들이밀며 아프리카를 요리하려고 했다고 한다. [42]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43] 이 드라마의 방영이 시작된 시점인 2013년에 장관 후보자의 국적과 외국 정보기관 관련 이력이 문제가 되었고 100% 이 문제 때문만은 아니지만 결국 낙마한 사례를 생각하면 더 미묘하다. 뉴스 링크의 인물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