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세기 초 파르티아의 장군
파르티아의 높은 귀족 혹은 왕족의 동상. 이 동상이 수레나스를 묘사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지만, 파르티아 시대에 이처럼 명확한 인물 형상을 다룬 유물은 거의 없다.
생몰년도 : ? ~ B.C. 53
파르티아의 장군. 로마의 크라수스가 파르티아로 쳐들어오자 국왕 오로데스 2세의 명령으로 카르헤 전투에서 로마군과 맞서 싸웠다. 전투에서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그 승리로 인해 왕의 의심과 질투를 사게 되어 처형당했다.
수레나스는 그의 이름이 아니라 가문 이름, 즉 목차 2번 수렌(Sûrên)의 그리스어 혹은 라틴어식 변형이다. 그 자신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왕 바로 다음 가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동할 때마다 1천 명의 중무장한 호위대와 200대의 짐마차 외 수많은 인원이 움직인다는 데서 그 권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사실 파르티아는 중앙 집권적 국가가 아니었고 강력한 귀족들이나 대씨족들, 토착 지배층이 왕에게 느슨하게 종속되어 있는 일종의 봉건제와 비슷한 체제를 가진 국가였으며, 수렌 가문은 특히 강성한 귀족이었기 때문에 수레나스가 거둔 카르헤의 압도적인 승리와 그로 인한 명성은 오로데스 2세와 왕가인 아르사케스 가문에게 크나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로데스 2세는 수레나스 사후 로마령 시리아 공격에 여러 차례 실패함으로써 스스로 수레나스에 비해 모자란 인간이었음이 밝혀진다.
2. 파르티아 시대의 귀족 가문
Sûrên.목차 1번의 장군이 속해 있었던 귀족 가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수렌 가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