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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타바리스탄의 이슬람 이란 왕조. 쉬아 이슬람 중에서도 다섯 이맘파 (자이디)의 국가였다.2. 마잔다란 지역의 특수성
타바리스탄 (다일람, 마잔다란 / 길란 지역) 은 카스피 해 남안 지역으로, 이란 본토와 험난한 엘부르즈 산맥으로 분리되어 있어 방어에 유리하였고,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이슬람 제국 (정통 칼리프, aka 라쉬둔 왕조) 에게 멸망당한 이후에도 고대 페르시아 문화와 조로아스터 신앙을 간직한 채로 우마이야 왕조를 지나 무려 아바스 왕조 건국 시까지 독립 지역으로 남아있었다!그런 천혜의 지형 덕분에 이스마일 니자리파 계열의 아사신의 요새가 길란 지역의 알라무트에 있었으며, 몽골 제국의 침략 시에도 무려 3년간 버텨내며
637년의 알 카디시야 전투와 크테시폰 함락, 642년의 니네베 인근의 나하반드 전투로 궁지에 몰린 사산 왕조의 마지막 국왕 야즈데게르드 3세는 타바리스탄의 영토를 길 가브바라 장군에게 넘기라고 아드하르 발라시에게 명했다. 이렇게 길 장군에게 있던 영토에 길란 지방이 더해지면서 타푸리아라는 이름의 지방이 되었다. 길 가브바라는 647년 아몰을 타푸리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정하고 건국했고, 이렇게 창건된 길 왕조는 길란 지방에서 가브바레흐 왕조로, 동타푸리아에서는 다부이 왕조라고 불렀다.
그러나 알 만수르의 집념으로 761년경, 아바스 군대는 마잔다란 지역을 점령하여 카스피 해 남안을 평정했고 길 왕조의 왕 쿠르쉬드는 아바스 조의 봉신이 되었다. 그러나 용감하고 굽힐줄 몰랐던 타바리스탄에 대한 아바스 왕조의 지배력은 미약했고, 조로아스터교는 여전히 주민들의 주요 종교였다.
그래서 838년 경에 카린반드 왕조의 왕인 마지야르가 바박 호람딘과 연합해 조로아스터교도를 규합해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타바리스탄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그는 무슬림에 대한 탄압을 이어나가다 839년에 아바스 군대에게 붙잡혀 처형되었다.
3. 알리 후손들의 유입
알리의 후계자 세력을 학살한 우마이야 조에 대하여 깊은 원한이 있던 알리의 후계자들 ( 샤리프 / 알라비) 은 아바스 조의 건국에 참여했는데, 건국 이후 아바스 조 역시 수니파 중심 방향으로 흘러가며 알리파 ( 시아파 / 이맘) 는 다시 배척받자 그들은 786년, 메카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무참히 진압되었고, 주동자 이드리스와 생존자 대부분은 마그레브로 도피하여 이드리시 왕조를 개창하게 된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따르진 않았고, 일부는 반 아바스 여론이 일던 타바리스탄으로 이주해 왔다.마잔다란의 알리의 후손 (알라비) 들은 주민들의 아바스 조애 대한 (이후에는 아바스 조가 임명한 이란/호라산 총독 타히르 가문에 대한) 분노에 공감했고, 세력을 형성해 나갔다.
이후 세월이 흘러 ( 반세기 후 ) 실질적 지배자는 타히르 왕조로 바뀌었고, 지즈야 (비 무슬림에 대한 인두세) 징수는 더욱 가혹해 져 중앙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반감은 더욱 불타올랐다. (무슬림에 대한 직접 징세는 이슬람 율법에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는대 타히르 조의 영토 내에서 징세가 가능한 이교도들의 거주지는 마잔다란 뿐이었다..)
그 와중에 알라비들은 고통받는 주만들과 빈민들의 구제와 위로에 힘쓰면서 인심을 얻어갔고, 심지어 골수 조로아스터 신자였던 그들을 감화하여 점차 무슬림으로 개종을 시켜나갔다. (그래도 아직 전체적으로는 소수였긴 했지만.. 타바리스탄 지역은 알라비 왕조 성립 이후에야 완전히 이슬람화가 완수된다. 다만 시아파가 수니파 인구를 추월하게 되는 것은 사파비 왕조의 기나긴 지배 이후 이다.)
4. 알라비 조의 성립
마잔다란(타바리스탄)의 시아파 개종이 어느정도 진행되고 타히르 조에 대한 불만도 극에 달하자 주민들은 알리의 후손 (알라비) 들의 수장이었던 하산 이븐 제이드를 중심으로 타히르 조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864년에 이르러 독립하여 알라비 왕조가 건립되기에 이른다.알라비 조는 아바스 조의 쇠퇴기에 난립한 이란 북부의 도적 세력들도 소탕하여 엘부르즈 산맥 너머의 테헤란 (라이 지방) 과 카즈빈, 고르간 까지 통치력을 행사했다.
5. 멸망
하지만 알라비 조는 하산 이븐 제이드 사후 부침을 거듭했고, 10세기 초에는 사만 왕조의 침략을 받으며 1차 멸망했다.그 후 '너세르카비르'라고 불리는 하산 이븐 알리 (914 - 917) 가 권력을 잡으면서 다시금 재건에 성공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공정한 재판을 하고 도움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 왕조는 다시 혼란에 빠지면서 결국 928년경 사만 왕조의 2차 정복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