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서니 베넷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등번호 15번 | ||||
모리스 스페이츠 (2013) |
→ |
앤서니 베넷 (2013~2014) |
→ |
런던 페런츠 (2017~2018) |
|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등번호 24번 | |||||
앤트완 워커 (2007~2008) |
→ |
앤서니 베넷 (2014~2015) |
→ |
안드레 밀러 (2015~2016) |
|
토론토 랩터스 등번호 15번 | |||||
아미르 존슨 (2009~2015) |
→ |
앤서니 베넷 (2015~2016) |
→ |
그렉 먼로 (2018~2019) |
|
브루클린 네츠 등번호 13번 | |||||
호르헤 구티에레즈 (2014) |
→ |
앤서니 베넷 (2016~2017) |
→ |
퀸시 에이시 (2017~2018) |
캐나다의 농구선수
|
||
|
||
<colbgcolor=#eeeeee,#191919> 앤서니 해리스 베넷 Anthony Harris Bennett |
||
출생 | <colbgcolor=#ffffff,#191919> 1993년 3월 14일 ([age(1993-03-14)]세) | |
캐나다 온타리오 주 토론토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네바다 대학교/라스베이거스 캠퍼스 | |
신체 | 키 203cm | 체중 111kg | |
포지션 | 파워 포워드 | |
드래프트 |
2013 NBA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지명 |
|
KBL 입단 | 2023년 외국인 자유계약 ( 고양 소노) | |
소속 |
|
|
SNS | | | |
[clearfix]
1. 개요
캐나다의 전직 농구선수로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였다. 또한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번픽으로 지명된 사상 최초의 캐나다 국적의 선수[2]였으나 콰미 브라운과 그렉 오든과 더불어 대표적인 최악의 1픽 실패 사례로 남게 되었다.
2. 선수 이전
토론토에서 태어났으나 10살 때 가족들과 함께 제인 앤드 핀치로 이사를 가면서 자랐다. 브램턴의 해럴드 M. 브레이스웨이트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16살 때 미국으로 이주해 웨스트버지니아주 베클리의 마운틴 스테이트 아카데미에서 뛰었지만 불과 1년만에 학교가 폐교된 바람에 다시 네바다주 헨더슨의 핀들레이 프렙스쿨에 편입되어 뛰었다. 포지션 랭킹 1위, 전체 포지션 중 랭킹 7위에 들어갔을 정도로 상당했고 수많은 팀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끝에 UNLV로 진학하게 된다.UNLV 시절에는 파워 포워드였지만 3점 슛 능력은 정확했기 때문에 종종 스몰 포워드로 뛰면서 평균 16.1득점, 8.1리바운드를 기록한 뒤 1년만에 NBA 드래프트를 신청했다.[3]
설상가상으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의 마커스 스마트마저 학교에 잔류를 선언했고 뎁스가 상당히 취약했던 2013년 드래프트는[4] 확실한 1번 픽 대세선수가 전무한 상황이었으며 그나마 나머지 선수들도 예전에 비해 상당히 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어떤 때는 인디애나 대학교의 빅터 올라디포( 올랜도 매직), 어떤 날은 메릴랜드 대학교의 알렉스 렌( 피닉스 선즈), 어떤 날은 조지타운 대학교의 오토 포터 주니어( 워싱턴 위저즈), 어떤 날은 캔자스 대학교의 벤 멕클레모어( 새크라멘토 킹스), 어떤 날은 앤서니 베넷 등 순위가 계속 요동쳤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드래프트 날이었던 2013년 6월 27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수많은 논란을 야기한 끝에[8] 베넷을 지명했다.
3. 선수 경력
3.1. NBA
그러나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는지 어쩡쩡한 트위너급으로 불과 1시즌만 활약했다. 심지어는 클리블랜드가 베넷을 NBA의 마이너리그에 해당하는 D-League로 내려보내겠다는 고려하기도 했었는데, 비록 D-League로 내려가지 않았지만 만약 내려갔었더라면 사상 최초로 전체 1픽이 D-League로 내려가는 역사를 쓸 수도 있었다. 그 이후 르브론 제임스를 다시 영입하며 대권 도전을 노린 클리블랜드에게 베넷은 당연히 짐이 되는 카드였고, 써머리그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인 것을 미끼로 하여 결국 케빈 러브를 영입했을 때 그 해 드래프트 1순위 픽이었던 앤드류 위긴스와 더불어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이적했다.
미네소타에서는 클리블랜드 시절 맺었던 루키계약 옵션을 실행하는 등, 베넷이 부활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고, 클리블랜드 시절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아주 약간 나아진 정도였으며 어쩡쩡한 신체와 경기능력으로 인해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베넷의 에이전트와 미네소타는 서로 간의 합의 아래 바이아웃을 진행하여 베넷은 연봉 일부를 포기하고 자유계약시장에 나오면서 NBA 최악의 1번 픽이 되었다.[9][10]
팀에서 방출된지 5일만에 자신의 고향팀 토론토 랩터스와 1년 계약을 맺었지만 여기서도 가비지 멤버로 출장하였으며 자신감과 경기감각이 확 떨어졌는지 특히 슛 성공률 부문에서 처참한 스탯을 기록하였다. 게다가 NBA G리그에서도 1픽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게 2경기동안 평균 15분 출장 6.5득점 3리바운드를 기록한데 이어 야투율이 30%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시즌 도중 골든스테이트에서 웨이버 공시된 제이슨 탐슨을 영입하기 위해 자신의 출신지 팀에서도 쫒겨났다. 그리고 2년 계약으로 브루클린 네츠에 입단했지만 두 자릿수 득점 이외에는 전혀 기회가 없었고 2017년 1월 9일에 방출되었다.
위력적인 수비형 후보 빅맨이었음에도 105경기 남짓 뛰었던 그렉 오든과 10년 이상 준주전급 센터로 뛰었던 콰미 브라운보다 좋았으나 151경기 4.4점 3.1리바운드 0.5어시스트라는 NBA 통산 기록이 눈 뜨고 보기에 처참하게 남겼다는 점에서 실력조차 갖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3.2. 이후
2017년 1월 13일 튀르키예 페네르바흐체와 계약하여 팀을 유로리그 챔피언까지 이끌었고[11] 이후 NBA G 리그에서 여러 팀을 돌아다녔다. G리그 통산 성적은 68경기 13.2득점 5.6리바운드 1.6어시스트로 평범한 성적. 상황이 이렇다보니 NBA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아보였는데...
2019년 7월 13일, 휴스턴 로키츠와 비보장 계약을 체결했으며 비시즌 때 트레이닝 캠프에서 기량을 점검한 뒤 로스터 합류 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휴스턴과의 계약 직전 시전인 18-19시즌 G리그에서 25경기 중 7경기만을 선발로 출전하여 20.9분을 뛰며, 사실상 벤치자원으로 뛰었지만, 야투율 .546 3점슛 .453(경기당 2.1개) 자유투 .831(경기당 2.0개)로 PER 21.8, TS .721을 찍으면서 높은 효율성을 보여주었기에 NBA에서 뛸 수 있는 자원이 될지 기대되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 무릎 부상으로 이탈함과 동시에 방출되었다.
그 후 아무 소식도 없다가 2021년 5월, 이스라엘의 하포엘 예루살렘에 입단해 8경기를 뛰어 평균 6.3득점, 3.3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2022년 1월 2일에 방출되었고, 같은 해 2월 9일에 타이완 P리그의 가오슝 스틸러스에 입단했다. 이후 2022-23 시즌 신주 JKO 라이오너스와 계약해 17경기를 뛰어 평균 22.6득점, 12.2리바운드, 2.9어시스트, 3.3스틸을 기록했다.
3.3. KBL 진출 시도 및 무산
2023-24 시즌을 앞두고서 KBL의 신생팀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와 2옵션 외국인선수로 계약을 체결했다. # 팬들은 지금까지 경력으로 NBA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선수였지만 뛰어난 활약은 커녕 그의 처참한 농구 실력과 플레이로 최악의 1픽이라는 소리를 들었고 다른 리그에서도 딱히 두각을 드러낼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우려를 표했다.물론 명색이 NBA 1라운드 1순위로 지명된 선수였던 만큼 지켜보자는 팬들도 있었지만 차라리 디드릭 로슨과 재계약을 하고 제로드 존스와 함께 외국인을 구성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는 팬들이 많았다.[12]
다만 KBL 자체가 앤서니 베넷처럼 'NBA기준에서 미달하게 애매하게 다재다능한' 선수들이 딱 좋은 환경이란 것이 긍정적인 요소였다. 베넷은 슛거리가 넓고 공격옵션이 다양한 선수이나 언더사이즈인데다가 운동능력도 그렇게 좋진 않았기에 대학에서 프로로 점프한 이후 그 옵션들이 통하지 않은 선수인데, 미국보다 훨씬 피지컬이 덜한 KBL에선 다재다능한 공격수로 활약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NBA급에는 못 미치지만 다재다능한' 다른 선수들과 달리 베넷은 대만 리그에서 직전 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별 활약이 없었다는 점에서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13]
그런데 계약한지 2주가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돌연히 고양 소노 팀에서 퇴출 당했다. 에이전트 측에서는 '개인 사유'라고만 말하였으나, 곧 이어 체중 감량 실패가 원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전지훈련에서 김승기 감독에게 체중 감량을 약속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하자 과감히 방출시킨 것으로, 아직 선수 등록도 하지 않은 시점이니 차라리 빠르게 대체선수를 찾자는 취지이다. 체중뿐만 아닌 전지훈련 훈련랑을 따라오지 못해 병원에 입원하고 천식이 있어 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것 등 전반적 메디컬테스트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았고, 결국 팀을 떠나게 되었다.
4. NBA 역대 최악의 1픽
역대 최악의 1픽으로 콰미 브라운, 그렉 오든과 함께 꼽히는데, 베넷은 이 셋 중에도 최악으로 여겨진다. 콰미는 실력 부족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으로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한 유약한 멘탈로 성장이 크게 정체되어 그저 그런 빅맨으로나마 10년 이상 NBA에서 선수로 뛰었고, 오든의 경우 실력은 확실히 있었으되[14] 부상 때문에 커리어가 망했더라면, 베넷은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멘탈이 크게 약한것도 아니고 유리몸도 아닌데도 그냥 너무 못해서 제대로 뛰지 못했던 걸 보면 진정한 망픽이었다. 조현일 해설위원은 베넷을 가리켜 '언드래프티급 선수가 1픽으로 뽑혔다'고 평가했다.역시 여기서 농구는 피지컬이란 걸 알 수 있는데 수비력만은 확실했던 오든은 제쳐두고 기술만 보면 콰미는 베넷보다 나을게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는 211cm란 좋은 덩치에 훌륭한 운동능력으로 그나마 약팀의 주전급 센터로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베넷은 애초에 포지션 대비 키가 작고 운동능력도 그렇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다재다능함으로 커버하는 케이스였다. 근데 그 기술이란게 NBA 레벨에서 거의 통하지 않았으니 급격히 잉여가 되었다. 차라리 콰미처럼 피지컬이라도 좋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못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90년대까지는 아무리 대형 유망주라도 대학에서 최소한 2년 정도는 보내는게 일반적이어서 20세기 1픽 중에는 의외로 그렇게까지 폭망한 선수가 별로 없다. 마이클 올로워칸디는 그래도 부상으로 몸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까지 6년 정도는 웬만한 주전센터급은 됐으며 퍼비스 엘리슨은 20-10까지 했다. 즉, 그냥 NBA 사상 역대 최악의 1픽이라고 해도 별 문제 없다.
5. 시즌별 성적
역대 성적 |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2013-14 | CLE | 52 |
67/172 (38.95%) |
13/53 (24.53%) |
44/69 (63.77%) |
217 | 155 | 17 | 21 | 8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2014-15 | MIN | 57 |
118/274 (43.07%) |
7/23 (30.43%) |
41/64 (64.06%) |
298 | 216 | 48 | 27 | 16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2015-16 | TOR | 19 |
5/13 (38.46%) |
3/14 (21.43%) |
9/10 (90.00%) |
28 | 23 | 0 | 5 | 0 |
시즌 | 소속팀 | 경기수 | 2점슛 | 3점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슛 |
2016-17 | BKN | 23 |
25/44 (56.82%) |
13/48 (27.08%) |
26/36 (76.22%) |
115 | 78 | 12 | 5 | 3 |
NBA 통산 (4시즌) |
151 |
215/503 (42.74%) |
36/138 (26.09%) |
120/179 (67.03%) |
658 | 472 | 77 | 58 | 27 |
5.1. 국가대표
5.1.1. 2015 토론토 팬아메리칸 게임
캐나다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은메달을 획득했다.5.1.2. 2015 FIBA 아메리카 챔피언십 멕시코
5.1.3. 2020 도쿄 올림픽
뜬금없이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열리는 도쿄 올림픽 예선 캐나다 대표팀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생존 신고했고 최종 명단까지 발탁됐다.하지만 팀이 결선 토너먼트에서 4강에서 체코에 101-103으로 패하고 올림픽 진출권을 획득하지 못한채 최종 탈락하면서 올림픽 참가는 자연스럽게 무산되었다.
6. 여담
- 과거 육상선수와 넷볼 선수로 병행했던 자메이카 출신의 어머니로부터 운동 신경을 물려받았다.
7. 관련 문서
[1]
2주만 동행한 후 저조한 몸상태로 판정받아 소노 구단에서 퇴출당했다.
[2]
바로 다음 해 역시 캐나다인이었던
앤드류 위긴스가 전체 1픽으로 지명되어 유일한 캐나다인 전체 1픽의 기록은 불과 1년만에 깨졌다. 안타깝게도 위긴스와 베넷의 커리어는 후술할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미 하늘과 땅 차이로 격차가 벌어지고 말았다.
[3]
사실 드래프트 전까지 베넷은 분명 최상위 픽으로 거론되는 선수였지만,
NCAA 시즌 시작을 할 당시에는
켄터키 대학교의
널런스 노엘이 부동의 1픽으로 거론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나 여기서 변수! 노엘의 왼쪽 무릎이 손상되는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 그 이후에도 1년을 쉬는 게 확정됐고 루키 시즌을 날리게 되자 순식간에 1픽 후보의 행방은 춘추전국시대가 되었다.
[4]
2000년 드래프트와 2010년 드래프트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프로 데뷔 후
야니스 아데토쿤보,
루디 고베어,
C.J. 맥컬럼,
빅터 올라디포,
스티븐 아담스,
데니스 슈뢰더,
팀 하더웨이 주니어,
오토 포터 주니어,
널런스 노엘 등 많은 선수들이 각 팀의 핵심, 몇몇은 이를 넘어 올스타급으로까지 성장하면서 2020년대 이후에는 완전 최악은 아니었다는 재평가 의견도 많이 생겨날 정도이다.
[5]
실제로 13 드래프트 15픽이었던 쿤보는 기량발전상과 ALL NBA 2nd팀을 수상한 2010년대 후반 즈음에 이미 NBA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스틸픽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2020년 이전까진 NBA 역사상 가장 낮은 순위로 지명된 MVP 수상자였다. 그리고 그 뒤로 15픽인 쿤보와
스티브 내쉬를 따위로 만들 수준의 신화를 쓴
어느 2라운더가 등장한다. 또한 드래프트 27픽이었던 고베어도 올NBA팀 3회와 올디펜시브 퍼스트팀, DPoY를 여러차례 수상한 2010년대 후반 즈음에 이미 NBA 드래프트 역대급 스틸픽 중 하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6]
노엘의 부상은 전방십자인대(ACL) 파열로 무릎 부상 중에서는 가장 큰 부상이라 할 수 있다.(물론 아킬레스 건 파열만큼 나쁜 건 아니며 회복이 잘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런 부상을 입은 선수가 다시 1순위 감으로 고려될 정도로 해당 년도 드래프트 풀이 최악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7]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리그에서의 활약을 기준으로 순위를 다시 매겨본다면 아데토쿤보가 1순위를 차지할 것이며 고베어, 맥컬럼, 올라디포, 아담스 등이 상위권에 있을 것이다. 아데토쿤보는 19, 20시즌 백투백 MVP이자 21시즌 파이널 MVP를 수상한 슈퍼스타로 성장했으며, 고베어는 세 차례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최고의 수비형 센터, 올라디포는 고향팀에서 에이스로 자리잡으면서 그 빡센 가드 포지션에서 올-NBA 서드팀까지 올랐고, 맥컬럼은 올스타급에 버금가는 좋은 득점원이며 아담스는 리그 최고의 블루컬러 빅맨 중 하나이다. 물론 미래를 보는 능력이 없는 한 이건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인게 저 선수들 모두 유망주로 알려져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스타급으로 성장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당시 기준으로 고만고만한 유망주들만 가득한 상황에서 캐브스 역시 당시 기준으론 무난한 선택을 했는데(어차피 놓쳐도 별로 아깝지 않은 선수들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캐브스만 혼자 꽝이 나오고 다른 팀들은 대박이 난 셈.
[8]
대체적인 베넷의 예상 순위는 5 ~ 10픽 정도여서 깜짝 지명이라는 평가까지 받았다.
[9]
콰미 브라운과
그렉 오든은 최소한 NBA팀들이 1라운더 루키를 컨트롤 가능한 기간인 4년동안 버리지 않고 계속 팀에 잔류해서 뛰어왔다. 하지만 베넷은 불과 2시즌만에 팀의 골칫덩어리로 전략하여 팀에서 나오게 되었다.
[10]
다만 베넷이 방출된 게 순전히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미네소타는 돌아온
케빈 가넷, 팀 센터진의 기둥인 니콜라 페코비치,
칼앤서니 타운스, 그 외에 골귀 젱, 에이드리언 페인 등 파워포워드, 센터진이 선수로 넘쳐서 정리가 필요했다. 특히 전체 1순위로 지명된 타운스가 있는 마당에 성장도 더디고 실력도 없는 베넷에게 줄 출장시간 따위는 없었던 것.
[11]
10경기에 6.3분 출장해서 경기당 1.2득점, 야투율 26.3%, 3점슛 성공률 18.2%를 기록(...) 팀 공헌도는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다.
[12]
물론
고양 데이원 점퍼스의 상황을 생각하면 로슨을 잡고 싶어도 잡기 힘들었을 것이다.
[13]
대학시절 명성은 베넷보다 못하고 아예 드래프트되지 못했던
찰스 민렌드의 경우 수준이 꽤 있는 편인 프랑스 1부 리그와 이스라엘 리그에서 최정상급 선수였다.(그래서 민렌드가 처음 KBL에 왔을 때 왜 이런 선수가 트라이아웃에 나왔나라는 반응이 많았다.) 반면 베넷은 이스라엘 리그에서도 별 인상적인 모습을 못 보이고 방출된 만큼 KBL이라고 해서 좋은 활약을 보일 것이란 보장이 없다. 대만 프로농구는
드와이트 하워드가 뛴 T1리그가 2020년에, 베넷이 그나마 활약한 대만의 P리그가 2021년에 생성될 정도라 전체적인 수준도 낮고 선수들 실력 편차도 심한 편이다.
[14]
2009 플레이오프 당시 포틀랜드 빅맨들 중 휴스턴의 스타 센터
야오밍을 가장 괴롭혔던 건 그렉 오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