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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0:41:24

태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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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왕립군
กองทัพไทย
Royal Thai Armed Forces
파일:태국 국방부 휘장.svg
<colbgcolor=#D2CFCA,#6E6B66>상비군 360,850명
예비군 200,000명
태국 육군
전차 542대 ( 2011년)
장갑차(APCs/IFVs) 1,005대 ( 2011년)
견인포 741문 (2011년)
박격포 1,200문 (2011년)
자주포 26대 (2011년)
MLRS 60대 (2011년)
수송 차량 4,600대
태국 공군
헬리콥터 443기 (2011년)
항공기 총합 913기 (2011년)
태국 해군
항공모함 1척 (2011년)
GFP 기준 구축함[1] 0척 (2011년)
GFP 기준 호위함(프리깃)[2] 6척 (2011년)
초계함( 고속정)[3] 109척 (2011년)
잠수함 0척 (2011년)
전투함 총합 164척

1. 개요2. 역사
2.1. 전근대2.2. 근현대2.3. 냉전과 현재
3. 수뇌부4. 징병제5. 구성
5.1. 육군5.2. 해군
5.2.1. 해병대
5.3. 공군
6. 관련 문서7. 구성

[clearfix]

1. 개요

태국 군대.

2. 역사

2.1. 전근대

태국/역사 항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태국은 세계사 기준 중세시대 크메르 제국으로 부터 독립하면서 최초의 '타이족 중심' 국가인 수코타이 왕국을 설립했다.[4] 란나•파야오•수코타이 3국 동맹은 크메르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치열한 전쟁을 겪었고, 결국 수코타이가 크메르의 위세를 꺾고 동맹들을 흡수하게 되면서 최초의 타이족 중심 국가라는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아유타야 왕국의 군대는 수코타이를 비롯한 인근 국가를 침략하고 병합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세를 불려나갔다. 크메르 제국의 몰락 이후 부터는 차기 대륙부 동남아시아 패권국 자리를 놓고 버마와 경쟁하기 시작했고, 이는 현대 태국-미얀마간의 역사 감정이나 경쟁 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 패권 다툼 과정에서 두 국가는 서로 많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서로 이기고 지고를 반복했다.[5]

아유타야 왕국은 해상 교역이 활발한 국가였으며,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 어지간한 당대 유럽 패권국 내지 열강국들 과도 꾸준히 교류 해왔으며, 프랑스 측에도 아유타야의 사절단이 루이 14세 시기에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기록이 존재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양의 화승총(에 속하는 조총)을 수입해 운용하기도 했다. 특이한 점으로는 동북아시아 군대들은 탈것(혹은 충격전술 목적)으로 기병을 주로 운용한 것과 다르게, 태국과 대륙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인도와 남아시아 군대 영향을 적잖이 받았는지 코끼리병을 상당 수 운용했다는 점이 있다.

파일:external/1.bp.blogspot.com/peter+dennis+illustration+for+osprey+book+war+elephants.jpg
아유타야 왕국군의 모습. 두 코끼리병이 창을 맞대고 있는 저 구도가 현대 태국에서도 아유타야 군을 묘사할때 자주 보이는 편이다.

보통 동남아시아 국가의 전근대 군대라고 하면 적게는 구식 전투를 치르는 집단으로 생각하거나, 심하게는 야만족 방식의 전투를 치렀다고 생각하는(편견 가득한) 경우가 있으나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6] 이 지역 국가들은 자체적인 군사적 발전을 이룩해온 것은 물론이고, 중화제국 군대와 인도 군대와의 군사적 교류도 자주 있었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서는 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사 수준에서 놓고 봐도 엄연히 강대한 군사력과 수준높은 장비/교리를 갖춘 국가들이었다. 태국도 아유타야 전성기와 후대 국가 시암 제국 전성기에 대륙부 동남아 최다 영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만큼 그 수준이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아유타야 말기에는 군대와 지휘관들의 역량이 낮아지게 되면서 버마에게 다소 허망하게 나라를 잃게 되었다.[7] 이후 중국계 타이족인 딱신 대왕의 항쟁[8] 과 타이족, 그 외 소수민족 계열 태국인과 외국인 용병들의 결집으로 톤부리 왕조가 설립되면서 타이족 국가의 명맥을 이어나갔으나, 딱신의 부하 짝끄리의 쿠데타로 시암 왕국이 들어서면서 톤부리 왕조는 1대만에 막을 내렸다.

시암 제국은 이전 왕국인 아유타야 왕국의 관습과 제도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고, 서구와의 교역도 재개하게 되면서 아유타야 시절에 버금가는(혹은 그 이상의) 전성기를 누렸고, 오늘날 라오스, 캄보디아 지역을 다시 한번 정벌해 영토를 확장했다.

2.2. 근현대

앞서 말했듯이, 태국은 아유타야 왕국 시기부터 시암 제국에 이르기까지 서구 열강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왔다. 특히 아유타야 말기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며 인도를 잠식해 나가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일찍이 서구 열강(특히 영국)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는 있었다.[9] 또한 아유타야 중/후반기와 시암 제국 초기에는 서양 열강과의 불평등 조약도 감당해야 했다.

파일:Destroying_Chinese_war_junks,_by_E._Duncan_(1843).jpg
1차 아편전쟁 당시 영국 해군에게 격침 당하는 청나라 함선

그러던 와중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청나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서구열강의 군사적 움직임이 본격화 되었고, 시암(태국) 제국 왕실은 서구 열강 군대의 강력함을 보며 위기가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공식화와 버마(미얀마) 침공[10], 아편전쟁, 서구열강 연합군의 태평천국의 난 개입 등등이 일어났고, 특히 이웃 국가이자 숙적 이었던 버마의 멸망은 태국인들에게 있어서 아편전쟁 못지 않은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압도적으로 발전한 서구식 군대의 위력을 목격한 시암 제국은 국가 근대화와 군재개혁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후 1852년에 현대 태국군의 직계 조상인 서구식 군대, 시암 제국군이 창설 되었다. 서구식 군대가 창설 되었다는 것은 곧 근대식 군대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전의 태국군도 총과 포를 운용하고 있긴 했지만, 이는 조총과 구형 화포 기반이었으므로 근대식 군대라고 보기 어렵다.[11]

이렇게 국가 근대화와 그에 걸맞은 군사력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서구열강은 시암을 점령하는 것을 재고하게 되었다. 또한 프랑스에게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내주는 조건으로 프랑스와의 대규모 전면전을 피했고, 프랑스( 인도차이나 연방)와 영국(인도-버마 식민지)의 완충지대로써 태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절묘한 지정학적 특성이 있었다. 이를 활용하는 '대나무 외교'(중립-편승외교)[12]를 고수하며 외국군의 진입을 막은 끝에, 시암은 일본과 더불어 동북-동남아시아에서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은 몇 안되는 국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자력으로 해외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화를 성공적/주도적으로 이룩한 것은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도 일본과 태국 둘 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7년에 그동안의 중립을 깨고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포고하였다. 이 결정은 시암(당시의 태국 국명)의 위상을 한층 높이고 전후 세계에서 발언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암이 말로만 선전포고한 것이 아니라 직접 서부전선에 병력을 파병하기로 결정한 것은 전쟁에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국가로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의료부대 정도를 파견할 것을 프랑스에 제시했지만 프랑스 외교 당국은 한술 더 떠 병력 수송을 위한 수송부대와 비행기 조종사들도 보내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국위선양을 꾀하던 국왕 라마 6세와 시암 정부는 이를 기쁘게 수락하고 유럽 전선 파병 자원병들을 모집하였다. 그리하여 항공부대원 414명 및 수송부대원들과 의료부대 870명이 모였고, 이들은 약 1년간 적응 훈련을 거쳤다. 그동안 파라야 잔리디 소장을 포함한 선발대가 프랑스로 건너가 주둔을 위한 사전 작업을 마쳤다. 그렇게 시암 국내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출발한 시암 원정군은 1918년 7월 30일 프랑스 마르세유에 도착했으며, 곧이어 조종사들은 고고도 적응 훈련을 위해 프랑스 각지의 비행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13] 그리고 8월 1일 일부 시암 수송부대원들이 선발되어 4일부터 2차 마른 전투의 최전선으로 파견되었다. 같은 달 말부터 수송부대는 상파뉴의 최전선으로 프랑스군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임무를 용감히 수행하여 프랑스 정부와 시암 정부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백만 명이 뒤엉켜 싸우는 서부전선에서 1,200명은 한줌도 되지 않았고, 서유럽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미군 병력의 하루치 수송량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제국주의 인종주의가 심심찮았는지 유럽에서 동남아 소국 출신인 태국군 병사들은 동등한 전우보다는, 경멸의 대상까지는 아니라도 잡역부 수준이었다. 이래저래 동맹군의 괄시와 조롱... 속에서 자원병으로 머나먼 타지까지 온 태국군 병사들의 자존심은 무참히 손상되었고, 라마 6세와 태국 외교부에서는 분개하여 임무중단과 철수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프랑스 정부 입장에서도 파병을 스케일 키워서 요청해 놓고서는 동맹의 도움의 손길을 개무시한 꼴이 되었고, 식민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통해 시암과 국경을 접하는 이상 이 문제가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해야 했다. 그렇기에 독일이 항복하자 프랑스는 삐진 시암을 달래기 위해 점령군으로서 독일 영토 일부를 관할해 달라는 파격적인 요청을 하였다. 이에 노기가 가라앉은 시암 정부와 파병군 지도부는 노이슈타트안데어바인슈트라세 시를 중심으로 하여 바이에른 왕국의 팔츠 일부 지역[14]에 병력을 주둔시키고 이듬해인 1919년까지 지역을 관할하였다. 1919년 7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전승기념행사에서 태국군은 연합군의 한 축으로서 거리 행진을 하였고, 곧이어 귀향하였다. 소집된 이래로 총 19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적군의 사격으로 죽은 이는 없었다. 스페인 독감으로 약 절반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는 사고사하였다. 파병 군인 중 최후까지 생존한 이는 2003년에 10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요드 상룽루앙이다.

태평양 전쟁이 개전하기 직전에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 주둔한 비시 프랑스 해군 함대와 코 창 해전을 벌여 참패하였다. 이후에는 일본 제국과 동맹을 맺고 캄보디아와 미얀마의 일부를 할양받았으나 전후 도로 뱉어내게 되었다. 이 경우는 일본 제국의 강압과 친일 군사 독재자인 쁠랙 피분송크람에 의해 강제로 제2차 세계 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전했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서양 국가에 사과를 하여 면죄받기 위하여 미국과 우방 관계를 맺어 냉전 때는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공산주의자들과 싸웠다. 훗날 태국군의 '끄리앙끄라이 아따난' 중령(1913~1972)이 2016년 4월의 6.25 전쟁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2.3. 냉전과 현재

태국군은 세계적 수준의 군사력을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남아시아에서는 강력한 군사조직으로 꼽히고 있다.[15] 과거 냉전 시절에는 아시아 친미 국가들 중에서 일본 자위대 대한민국 국군 다음의 강군으로 꼽혔다.

이웃 라오스군이나 캄보디아군은 넘사벽으로 태국군에게 밀리고 전통적 호적수인 서쪽 미얀마군[16]과 동쪽의 인구대국인 베트남군, 남쪽의 말레이시아군[17] 정도가 태국군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냉전 이후로는 자신들보다 인구도 경제력도 훨씬 열세인 동남아 최빈국 캄보디아와 지금까지도 국경에서 국지적 교전이 벌어지지만 제대로 힘의 우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 대비 압도적인 경제력으로 찍어 누를 수 있기 때문에 무력으로만 나설 필요는 없다.

소형에다 낡았지만 엄연한 항공모함 차크리 나루에벳을 보유하고 있다.[18] 동남아 유일의 정규항모이다.

1990년대에 장성 숫자가 2,600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장군, 제독이 많은 군대이기도 했다. 관련기사 당시 태국군 병력이 26만 명이었으니 장성 1명당 상비군이 100명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이야기다. 오늘날에는 장성 숫자가 좀 줄기는 했지만, 이 때문이 인건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 문제다. 60만 상비군을 두는 한국군의 장성이 400명 수준이고 그 거대하다는 미군도 장성 숫자가 1천 명이 안 된다. 그리고 그 미군은 원래 세계 각지에서 경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성 숫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는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특이한 점은 현재 라마 10세의 왕비 수티다 나아유타야가 현역 육군 대장, 폐위된 후궁 시니낫 웡와치라파크디가 폐위 시까지 육군 소장으로 재직하는 등 왕실 여성들에게도 군 계급이 부여된 점이다. 폐위된 시니낫 후궁의 후궁 재위 시 군복무 모습

2019년 모병제 검토에 들어간다. #

대한민국의 연예계에서 태국 육군 장군의 이 활동했던 적이 있다.

근현대에 걸쳐서 정치에 관여하고 있고, 지속된 쿠데타와 경기침체로 인해서 태국 국민들에게 이미지가 안 좋지만, 상원의원을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라, 순수 군사력보다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군부로서 더 주목을 받는다.

태국군은 1960년대까지 남한 전방지역에 주둔하면서, 같이 지내던 한국군에 무에타이를 가르쳐주었다고 한다. 이때 무에타이를 배운 군인들이 전역 후 1970년대에 무에타이 도장을 차려 1세대 사범이 되었다.

3. 수뇌부

통수권자( 국왕) 국방참모총장
파일:external/www.globalsecurity.org/vajiralongkorn.png 파일:2961542.jpg
마하 와치랄롱꼰 뽄삐빳 벤야스리 육군 대장

4. 징병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징병제/태국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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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태국군은 한국의 군부정권 시절(혹은 그 이상) 수준으로 태국 내에서 위상과 권한이 높으며 청년층은 군대 입대를 희망하는 인원이 매우 많다. 2022년 기준 약 1만 바트의 월급이 보장되고 휴가도 한 달에 9일 정도 나오는 등 장병들의 편의를 많이 봐주며 병사를 포함 모든 군인의 가족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한다.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344107 따라서 유튜브에 떠도는 영상처럼 지원자가 부족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5. 구성

5.1. 육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태국 육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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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해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태국 해군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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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해병대

태국 해군은 휘하에 23,000명 가량의 해병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태국에서 주최하는 국제적 해군•해병대 합동훈련인 코브라 골드에 참가하고 있다.

5.3. 공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태국 공군 문서
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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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6. 관련 문서

7. 구성


[1] GFP는 한국이나 통상적인 기준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기준으로 삼는다. [2] GFP는 프리깃이란 단어를 한국 보다 더 큰 배수량의 배를 부를 때 사용한다. 한국은 이 기준에 들어가지 못하는 1000~2000 톤급의 배도 호위함으로 부른다. [3] 1,500톤 미만인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특수작전부대(특작부대) 제압, 기습전, 해안방어용을 목적으로 제작되었기에 각종 병기의 위력이 낮은 편이라 5,000~10,000톤급 이상의 함정이 여럿 투입되는 대규모 함대전에 쓸 수 있는 유효한 전력이라고 볼 수 없다. 적군 측에 혼란을 주거나 해당국의 최대 함정이 초계함 혹은 고속정이라는 해괴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형 함정들의 함포 및 어뢰에 의해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투입하지 않는다. [4] '타이족 중심'을 강조한 이유는 현대 태국의 직계조상 국가들 중에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이견이나 의문점이 없으며, 확실한 체계를 갖춘 최초의 국가(타이족 국가)가 수코타이 이기 때문이다. [5] 역사적/군사적 관점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다소 소극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태국 역사의 사관에서는 태국이 훨씬 더 많이 이겨왔고 두 번 정도의 전쟁에서 미얀마에게 패배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6] 애초에 어느 나라 역사가 다 그렇듯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상승세일 시기에는 강대국 수준으로 성장했고, 이는 그들의 군대도 마찬가지였다. [7] 이러한 점 때문에 '태국이 정말 역사 내내 한번도 주권을 잃은 적이 없는 국가인가?' 라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며 미얀마 역사와 태국 역사에서는 이를 해석하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경우도 있다. 태국 역사의 관점에서는 '전쟁에서 패배했을 뿐, 민족 주권이 사라지지 않았음' 을 강조하고 있다. [8] 이 항쟁을 기점으로 더 많은 중국계 타이족들이 타이족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확립하게 되었다. 물론 어느 시기에 유입된 중국계인지(혹은 어느 중국계 조상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중국계에 대한 인식은 시대별로 달라졌기에 후대 중국계들은 별개의 동화과정을 세대마다 다시 거치긴 해야 했으나, 이때 딱신과 함께 싸웠던 짝끄리 장군을 비롯해 많은 중국계 혹은 혼혈 태국인들이 신분 상승을 이룩했다. 이는 태국 왕조 혈통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고, 불과 얼마전까지 왕실을 신성시 했던 현대 태국에서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계 태국인과 타이족 태국인간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단, 중국 공산당 시기부터 정착한 중국인들에 대해서는 인식이 좋지 않다.) [9] 대륙부 동남아인들에게 인도라는 문명은 전통/문화/종교적 측면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중화제국과 더불어 대륙부 동남아시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남아시아 패권국 이기도 했다. 태국과 미얀마 등의 전통 신화 중에는 인도의 전통 신화를 각색하거나 모티브해 자국화한 것이 많으며(예: 태국의 라마끼얀), 현재 모든 대륙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주류 종교가 불교라는 점도 인도의 영향이 컸다. [10] 이후 영국령 인도 제국으로 강제 편입 되었다가 1937년 영국령 버마로 자치권을 부여받았다. [11] 만약 이것이 근대식 군대라면 마찬가지로 군의 핵심이 조총병 이었던 구한말 조선군도 근대식 군대가 된다. 신미양요 병인양요의 조선군, 동학농민운동의 농민병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러한 기술 수준과 편제를 가진 군대는 근대식 군대에게 일방적으로 무너졌다. 군사적 의미에서 근대식 군대라고 함은 주로 19세기 전후 유럽식의 완편된 군제 수준 정도를 의미한다. [12] 휘어지되 부러지진 않는다 라는 의미에서 대나무 외교라고 불렀으며 냉전이 끝난 현재에도 이 대나무 외교 교리가 다시 부활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무게를 재는 추세다. [13] 이들이 훈련을 마치기 전에 독일이 항복하여, 시암 조종사들의 참전 기록은 없다. [14]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15] 동남아시아 기준으로도 인도네시아군 같은 동남아 최강국에 묻히는 감이 있어서 그렇지 대륙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에서는 국력에서나 군사력에서나 가장 압도적인 편이다. 베트남이 치고 올라오는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즉, 인도네시아 다음가는 2인자 정도라고 볼 수 있으며, 어느정도 군사력 수준이 받쳐주는 나라들이 다 그렇듯이 강대국과 싸워도 충분히 변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군대다. 주변국에 비해 열세인 점이 있다면 넓은 국토에 비해 인구수가 적다는점 정도. [16] 과거 상호간의 전쟁이 많았고, 심지어 미얀마가 태국을 멸망시킨 적도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호적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지나간 이야기로 현재 미얀마는 동남아시아 최빈국이다. [17]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국경 지역은 두 나라에서 가장 정세가 불안한 지역이다. [18] 한국에선 나룻배라며 비웃음거리가 되며 실제로도 틀린 말이 아닌 낡은 항모이지만 동남아 이웃 국가들의 해군력이 약하다보니 이 항모로도 충분히 위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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