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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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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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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2D5C><colcolor=#FFFF00> 우크라이나군
Збро́йні си́ли Украї́ни (ЗСУ)
Вооруженные силы Украины (ВСУ)
Armed Forces of Ukraine (AFU)
파일:우크라이나군기.svg 파일:우크라이나군 엠블럼.svg
깃발 휘장
창설일 1991년 12월 6일 ([age(1991-12-06)]주년)
국가
[[우크라이나|]][[틀:국기|]][[틀:국기|]]
소속 우크라이나 국방부
상비군[A] 1,000,000명[2] ( 2024년)
예비군[A] 2,000,000명[4] ( 2023년)
총사령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대장
참전 이라크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육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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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대 전차 78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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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전투차 1,350대+
장갑차 2,78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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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포 776문+
다연장로켓 456대+
수송 차량 3,2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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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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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톤 이상 - 3천 톤 미만 초계함 <colcolor=#000>1척(+1척)
1백 톤 이상 - 1천 톤 미만 미사일 고속정 1척(+8척)
1백 톤 이상 - 1천 톤 미만 고속정 4척(+3척)
10톤 이상 - 100톤 미만 고속정 8척(+36척)
소해함 2척(+1척)
1천 톤 이상 - 2천 톤 미만 LST 1척
110톤 미만 LC 3척(+6척)
전투함 총합 16척(+49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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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 <colcolor=#000>122기
4세대 전투기[6][7] 83기
공격기 45기
수송기 32기
항공기 총합 324기
공군기 총합 1,964기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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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국방비 총합 900억 달러(2024년, 외국 지원 포함)
경례구호 우크라이나에 영광을!
Слава Україні![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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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사
3.1. 기원과 창설3.2. 독립과 재창군, 그리고 동시에 시작된 군축3.3. 유로마이단 혁명,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3.4. 돈바스 전쟁과 군 개혁 및 군사력 증강3.5.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4. 징병제5. 군복6. 수뇌부
6.1. 총참모부6.2. 최고통수본부
7. 구성8. 군사 계급
8.1. 해군 계급
9. 참전10. 문제점11. 여담12. 관련 문서13.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우크라이나의 군대이다.

2. 특징

소련군에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소련식 군편제였으나, 독립 이후에 서방식 개혁을 하고 있다. 특히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소련( 러시아)의 잔재를 청산하고 서방 NATO의 표준에 맞게 군대를 개혁해 나가고 있다. 1992년 우크라이나 독립 당시 소련군 16개 군관구 중 3개를 이어받은 만큼 초창기 우크라이나군의 규모와 전력은 상당하였으나, 이후 지속적인 경제난과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2013년까지 지속적인 감군이 이루어져 왔다.

육군의 규모가 크며 기계화 전력도 수적으로는 상당하나, 장비 대부분이 매우 노후화되어 있다. 해군은 소련 흑해 함대를 러시아와 나누어 물려받은 만큼 초기에는 동유럽 최강의 해군이었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및 강제 합병으로 인해 크림반도에 주둔하고 있던 세바스토폴 해군 본부와 대다수의 해군기지, 전투함이 통째로 러시아에 넘어가며 해군 전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후 전투함으로 3천 톤급 호위함 단 1척만 존재하여 해군이 명맥만 이어가는 수준이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후 러시아의 노획 우려로 그마저 자침시켜 현재 해군 전력이 사실상 와해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안 경비대와 지속적으로 협동하며 A2/AD 전략을 수행 중이다. 해군보병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공으로 인해 독립 군종이 되었다. 공군은 상당한 규모다. 그리고 소련식 편제의 영향으로 공수군, 특수작전군이 별도로 있고, 러시아의 위협 강화로 예비군인 국토방위군이 정식 군 편제로 승격되었다. 소련 국경군의 후신인 국경수비대는 2003년 법령 개편으로 국방부에서 내무부로 이관되어 준군사조직으로 분류되지만 전시에는 국방부로 지휘가 이관되어 정규군 역할을 한다. 국가근위대는 내무부 소속으로 돈바스 전쟁에 참전하였다.

우크라이나가 소련 구성국이었던 만큼 동구권 무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현재는 서방제 무기를 많이 구입하거나 구 소련제 무기를 개량해서 사용하는 중이다.[9] 전차만 해도 구 소련의 주요 설계국이었던 하리코프 모로조프 설계국이 있던 곳이라 T-64 계열차량[10]의 개량형이 많으며 T-80 전차를 기반으로 디젤 엔진을 장착한 자국산 주력전차인 T-84를 수출을 위해 서방 표준인 120 mm 주포와 버슬형 탄약고를 장착한 수출용 전차인 T-84-120 야타간이나 이를 기반으로 한 중장갑차인 BTMP-84를 개발하기도 할 정도이다. 그 외에도 우크라이나가 소련 붕괴 당시의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 있던 구 소련군은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지휘를 받게 되었는데 당시 갓 설립된 국방부는 이러한 큰 규모의 군대를 다시 재편성하는 데만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Tu-22M 등 다양한 무기들을 스리슬쩍 인수하였기 때문에 가진 것은 많은 편이다.

복합 전쟁인 돈바스 전쟁을 통해 지속적인 실전 경험을 쌓고 있는 군대다. 원래 소련식 군편제를 가졌으나 이후 미국과 NATO군의 지원 하에 NATO식 편제로 꾸준히 개편을 해왔고, 부족한 재정 속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반군의 복합전에 대응해야 하다보니 편제의 개편과 통폐합이 매우 빈번히 이루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실전을 통한 빠른 개선과 개혁 과정을 거치며 우크라이나군은 효율성과 유연성이 높고 임기응변에 강한 면모가 나타나고 있다. 육해공 등의 군종이 6개나 되지만 실질적으로 해군을 제외한 5개 군종이 4개 지역 사령부에 혼합군으로 편제되어 유기적인 지휘 체계와 작전 능력을 보유하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발하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온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 있다.

지원받거나 도입한 서방제 무기들을 적재적소에 유용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서방제 무기 재평가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특히나 서방에서 2선급으로 물러난 무기들을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에 어울리게 굉장히 잘 사용하고 있다.

재블린 스팅어의 경우에는 이번 전쟁으로 인기상품이 되어 미국내 생산라인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10년 전에 독일에서 퇴역시킨 NATO군의 구형 무기체계인 게파트 자주대공포 역시 유용하게 쓰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독일의 게파트 재생산을 검토하게 했으며, 고성능 무기에 속하는 HIMARS로 러시아군을 방어하고 있다.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에서 만든 재블린, 스팅어, 하이마스, 하푼, AGM-88 HARM 대함미사일, 대레이더 미사일 등 다양한 체급과 용도의 서방제 미사일들이 우크라이나군에 의해 이 전쟁에서 유용하게 쓰였고, 기어이 ATACMS까지 공여되어 활용되었다.

3. 역사

<colbgcolor=#D72D5C><colcolor=#FFFF00> 파일:6587fbc8bf2f3c69283d9eb5ceec61fc.png
왼쪽에서 현대 우크라이나군을 바라보는 군인들은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 코자크 헤트만국, 우크라이나국의 군인들이다.[11]

3.1. 기원과 창설

<colbgcolor=#D72D5C><colcolor=#FFFF00> 파일:March-18th-1913.-The-commissioning-of-the-first-company-of-Legion-of-Ukrainian-Sich-Riflemen.jpg
1913년 3월 18일, 우크라이나 시치 소총병대 제1중대 창설식 모습
현대 우크라이나군의 역사적 기원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우크라이나 시치 소총병대(Українські cічові стрільц)이다. 시치 소총병대는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제국령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왕국의 우크라이나인 민족운동가들이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결성한 비밀 결사와 보이스카우트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오스트리아 제국의회의 허가를 받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의용군이자 외인부대로 재편되었다. 해당 부대는 우크라이나의 대다수 지역을 점령했던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조국을 독립시키는 것을 목표로 했다. 주 작전 구역은 갈리치아 등 현 우크라이나 공화국 지역이었다.

그러던 1918년 러시아의 볼셰비키가 혁명을 일으켜 제정 러시아를 전복한 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어 유럽 러시아 지역의 대다수 영토를 포기했고, 곧 괴뢰 정권인 우크라이나국을 세워 수탈을 가하던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마저 붕괴했다. 동유럽의 세 제국이 한번에 몰락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은 완전한 독립 국가인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세운 후 우크라이나 인민군을 창군했다.[12]

이때 시치 소총병대도 신생 조국의 군대에 적극 참여하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수호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부에서 대대적으로 쳐들어온 볼셰비키 적군의 침략을 버텨내지 못했으며, 서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과 함께 멸망하고 말았다.

3.2. 독립과 재창군, 그리고 동시에 시작된 군축

<colbgcolor=#D72D5C><colcolor=#FFFF00> 파일:attachment/P1-BP535_UKRMIL_G_20140324170604.jpg
1991년과 2011년의 우크라이나군 군사력 비교
현재는 구소련에서 독립할 당시와 비교하면 군사력이 매우 줄어들었는데, 위는 1991년과 2011년의 군사력을 주요 요소들로 나누어 비교하여 정리한 표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는 독립하였고, 자연스럽게 소련군 16개 군 관할 구역 중 우크라이나 지역에 주둔 중이던 키예프, 오데사, 자카르파티야 3개 군관구 소속 2개 전차군 내 3개 군단 예하 14개 사단의 병력과 장비를 우크라이나 정부가 인수받아 우크라이나군을 (재)창설했다. 당시 병력은 78만 명, 전차 6,500대, 전술기는 1,500대나 되었으니 유럽의 상당한 강군으로 속했으며, 병력으로는 유럽 1위였다. 또 소련 시기에 배치된 핵무기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독립 당시의 핵무기 보유량은 세계 3위였다. 다만 소련의 핵무기를 물려받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은 애시당초 핵무기 기술이 없었기에 핵무기를 운용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시 신생 우크라이나는 독립과 함께 닥쳐온 초인플레이션과 공화국간 산업연계 마비로 인한 경제난으로 인해 그러한 무기들을 제대로 유지할 형편이 못되었고, 그나마 있는 소총같은 무기류도 지하경제가 융성했던 사정상 마피아와 올리가르히들이 매입하거나, 외국에게 밀매되기 일쑤였다. 게다가 90년대 러시아 옐친 정권은 친서방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푸틴에 비하면 온건하고 유화적이었다. 냉전이 종식된 후 세계는 영구적인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고 각국은 앞다투어 군비를 축소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수백 대의 전차를 제외한 나머지 가운데 도저히 못쓸 정도의 무기들은 폐기 혹은 제3세계에 헐값으로 내놓고 나머지도 몽땅 비축하면서 사실상 현역으로 남는 중무기는 10분의 1 수준으로 급격히 축소되었다. 소련제 항공모함 랴오닝급 중국에 팔았다. #[13][14] 물론 이런 무기들을 폐기한 건 아니므로 여차하면 다 개장해서 내보낼 수는 있겠으나, 그 대가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수의 청년들을 강제징집해야 하고 국방비도 몇배로 늘려야 하므로 그렇잖아도 막장이 된 국가경제는 말 그대로 안드로메다로 가게 된다. 그래서 돈바스 내전 중에 중무기 손실이 만만찮은데도 다 개장해서 반군을 밀어버리지 못하고 손실분만 보충하는 식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때 러시아 및 서방과의 합의로 보유하고 있는 핵을 모두 러시아에게 넘기고 비핵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핵을 모두 가져가는 대가로 경제 지원을 약속했지만, 정작 비핵화하자 러시아는 경제 지원을 대폭 축소해 버렸고[15] 러시아와 냉각기에 들어가게 된다.

1995년, 레오니트 쿠치마 대통령이 집권하게 되면서 이후 우크라이나의 극심했던 경제 위기와 혼란도 다소 진정되었고, 쿠치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군의 탈러시아화, 현대화, 서방화 개혁을 추진하며 서방권 국가와 긴밀히 협조하였다. 2003년 케르치 해협의 투즐라 섬을 두고 러시아와 대립하기도 했다. # 쿠치마 정권은 현대적 신무기를 도입하여 군 체질을 개선하고자 했지만 우크라이나의 고질적인 재정난이 군 현대화 개혁의 발목을 잡았다.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우크라이나는 동구권 국가들 중에서는 특이하게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하여 다국적군으로 주둔했다. 쿠치마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공산당과 정치적으로 대립하며 친서방 정책을 추구했으나, 정권 후기에 대규모 정치 스캔들이 터지며 민중들의 반대 시위('쿠치마 없는 우크라이나' 시위)가 발생하자 쿠치마는 친러 세력에 의존하기 시작했다.[16] 쿠치마 정권 후기인 2000년대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여러 사단이 여단급으로 규모가 축소되고 2004년 독립 군종이었던 방공군을 공군에 통합시키는 등 군체제 개편을 명목으로 감군을 했다.

2004년 오렌지 혁명이 일어나며 우크라이나 민중들 사이에서는 반러, 친서방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당시 대선에서 러시아로부터 다이옥신 테러를 받은 친서방 후보 빅토르 유셴코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우크라이나군의 친서방화, 탈러시아화는 가속화되었다. 이후 미국 주도의 MD에 찬성하는 한편 러시아 해군기지 대여를 철회하는 등 러시아와는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유셴코 정권은 우크라니아군의 서방화, 선진화 그리고 탈러시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으나 고질적인 재정난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 위기로 우크라이나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며 군의 개혁이 지체되었다. 게다가 유센코 정권은 NATO 가입을 위해 지속인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2008년 NATO 정상회의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로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이 좌절되었다. NATO는 우크라이나가 기준을 충족시키면 향후 가입할 수 있다고 하여 가입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2008년 하반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초래된 세계 경제 위기가 우크라이나를 강타했고 우크라이나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경제난으로 유셴코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하여 2010년 대선에서 친서방 유셴코 정권이 패배하고 친러파 야누코비치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 우크라이나군도 다시 친러시아로 회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서방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상당했기에 야누코비치 정권은 일단 겉으로는 중립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는 눈속임일 뿐이었고, 실제로 야누코비치는 정권을 잡은 4년 동안 러시아 크렘린궁(대통령궁)의 의중을 충실히 받들어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군을 감군했고 친러시아화, 탈서방화를 진행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난을 이유로 국방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야누코비치 정권 내내 국방 예산 삭감이 지속되었다. 야누코비치는 취임 한달여만인 2010년 4월 러시아 해군기지 대여 취소를 철회하고 2030년까지 연장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을 매우 기쁘게 했다. 또 크림 반도에 같이 주둔해 있는 러시아 해군과 교류를 강화했고, 공군 또한 러시아군과 공동 방어 계획을 구축하는 등 러시아군과 협력을 강화했고, 이 과정에서 군내에 친러파 장교들이 늘어갔다. 또 야누코비치는 국방장관과 정보부 장관에 러시아 이중국적자를 앉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야누코비치 정권은 우크라이나의 재정난을 이유로 군대 규모를 축소하였고, 보유 무기를 외국에 팔았다. 장비 노후화를 이유로 많은 무기를 스크랩 처리했으나 이를 보충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 도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후화를 빌미로 군수 산업을 축소, 파괴하였다.[17] 군사 훈련을 위한 예산도 삭감했다. 그나마 있는 장비도 예산 삭감으로 정비와 유지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러시아군과의 군사 교류를 강화했고, 나토와는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2013년 10월 야누코비치는 군현대화를 핑계로 징병제를 폐지하였고, 5년 후인 2018년까지 육군 병력을 18만 명에서 12만 명으로 감축을 계획했다.[18]

3.3. 유로마이단 혁명,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

야누코비치 정권이 노골적인 친러 정책을 계속하자, 2014년 2월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인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다. 친러 정권은 군중들에게 발포하는 등 강경 진압했지만 결국 친러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고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도주했다.

하지만 이때 2014년 2월 28일 러시아군이 군사 개입을 단행해 결국 크림반도를 병합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해군 전력의 사실상 전부가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않고 러시아군에 그대로 투항해버리는 치욕적인 사태가 벌어졌다. 이로 인해 크림반도 내의 세바스토폴 해군본부 등 6개의 해군 기지가 통째로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우크라이나 해군이 보유한 대다수의 함정들이 러시아군으로 넘어갔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우크라이나 해군은 대다수의 전력을 상실하는 치명적인 전력 손실을 입었고, 사실상 우크라이나 해군 조직 자체가 와해되었다. 이후 전투함으로는 3천 톤급 크리박급 호위함 헤트만 사하이다치니호 1척과 고속정 약 10척만 보유하며 명백만 간신히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헤트만 사하이다치니 호는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에 파병 나가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나포당하거나 투항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헤트만 사하이다치니 호도 러시아에 투항하기 위해 소말리아에서 흑해로 돌아오고 있다는 소문이 외신에 보도될 정도였다.

2014년 크림반도 합병사태는 그간 지속되어 온 군축으로 인해 우크라이나군이 얼마나 형편없이 약해졌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또 야누코비치 정권이 러시아와 군사 교류와 협력을 강화된 후 당시 친러파가 득세해 있던 우크라이나군, 그 중 특히 우크라이나 해군의 상황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세계 각국이 우크라이나군이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고 러시아에 투항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고 러시아조차 우크라이나군이 이렇게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않고 쉽게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크림반도 사태 직후에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에서는 친서방과 친러시아 주민들간에 폭동이 발발했고 곧이어 돈바스 전쟁이 발발했다. 그러나 심각할 정도로 약체화되었던 우크라이나군은 동부의 반군과 위장 개입한 러시아군을 제압하지 못하였다.

이로 인해 동부 도네츠크주와 루한스크주에서는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가 자리잡았다. 하지만 역량이 부족했던 반군 또한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에 건설한 요새 지대를 돌파하지 못하면서 도네츠크, 루한스크 주 전체를 점령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때부터 돈바스 전쟁은 장기화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는 개전 초의 졸전을 반성하고 미국과 나토 회원국 등의 서방의 도움을 받아 지속적이고 철저한 군 개혁과 군사력 증강에 착수하게 된다.

3.4. 돈바스 전쟁과 군 개혁 및 군사력 증강

미국 국방부와 NATO 본부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 지역에 일부 부대의 재배치, 부대훈련의 증가와 추가 병력동원 등을 통한 군사적 억제의 한 형태가 진행되고 있다. 비판적으로 분석하면, 군사적 차원의 성공을 위해서는 키예프나 항구도시 마리우폴 등 전략 및 작전 차원에서 중요한 지역에 대하여 러시아군의 기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반反 접근/공중 거부(A2/AD) 나 통행금지 지대 설치 및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만약 공중엄호와 전자전 방호가 사라지면, 러시아 부대는 식별위험과 신속한 인명피해 발생의 위협을 감수하며 기동해야 할 것이다. 무기 판매나 장비 이전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투 부대에게 기술우위를 제공할 수 있으며, 혹은 전자전 자산이나 대포병 레이더 등을 제공하여 최소한 이들이 러시아 군대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몇몇 학자들의 주장처럼, 푸틴 대통령의 동기를 이해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설령 푸틴을 이해하더라도, 그가 우선적으로 달성하려고 하는 방법적 측면에서 유동적 태도를 취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경우이건, 푸틴은 자신이 추구하는 전략목표를 숨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서양국가의 목적은 각각의 상황에서 푸틴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할 수 있다고 뽐내왔던 것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양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일부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추가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추가 조치를 취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결정은 러시아와의 외교적 우선권을 더욱 강화하는 조치와 동시에 취해야 한다. 이와 같은 강한 압박은 푸틴이 분리주의 세력 군대에 대한 무장지원을 축소하도록 강요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보다 건설적으로는 푸틴이 시리아 문제 해결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억제의 목적은 우크라이나 군대에게 수적 그리고 질적으로 우수한 군사무기를 제공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데, 이를 통해서 우크라이나 군대는 제한된 형태의 반격을 시도할 수 있는 능력과 적에게 더 많은 인명피해를 줄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우크라이나 전투는 예방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고도의 기술력에 의한 전투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보유한 무기의 속도와 사거리가 중요한 요소이다. 우크라이나 군대를 고도의 기술력을 갖춘 군대로 무장시키고, 또한 (제재를 통해서) 러시아의 재정 부담을 복합적으로 강요하여 서양이 구사하는 경제적 압박을 보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재의 목적은 러시아에 대한 처벌과 더불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군사전략은 제시된 목적을 보완하기 위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고도로 발달된 기술 시스템에 대항하느라 더 많은 경제 및 재정 자원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에 이와 같은 비용을 부과하는 전략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회색지대 전쟁 환경에서도 NATO 군사전략가들은 강압과 억제, 그리고 이를 병합한 작전이 이미 진행되고 있거나 혹은 구상하고 있는 외교, 정보, 경제 수단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군사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 미국의 주요 군사전략가이자 '현대의 클라우제비츠'로도 불리는 안툴리오 에체베리아 미 육군대학 교수가 2016년에 발표한 논문 "회색지대 작전: 미 군사전략을 위한 대안적 패러다임"[19]의 일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해 나토가 취해야 하는 방안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에체베리아의 주장대로, 미국을 위시한 나토는 우크라이나군에 대해 FGM-148 재블린이나 대포병 레이더 및 각종 정보자산과 훈련 시스템 등을 제공하였다. 이는 포로셴코 정권이 강력히 추진했던 군사개혁, 그리고 젤렌스키의 강력한 전시 리더십과 우크라이나 민관군의 결사적인 항전 의지와 맞물려, 2022년에 러시아의 침공을 맞아 우크라이나군이 선전하게 되는 바탕을 마련했다.[출처]

2014년에 발발한 크림반도 사태 및 4월 초기 돈바스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매우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정부는 이를 반성하고 지속적이고 철저한 군 개혁과 군사력 증강에 착수하게 된다.

2014년 2월 말, 유로마이단 혁명 이후 들어선 과도 정권에 이어 2014년 5월, 친서방 포로셴코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수습하고 동시에 즉각적인 군사력 보강과 개편에 들어갔다. 야누코비치 정권 시절 반의반토막 수준으로 급감한 국방비를 다시 크게 증액했다. 또 러시아로 도주한 야누코비치의 환수된 재산을 군대 재건에 사용했다. 야누코비치가 폐지한 징병제를 부활시켰고, 예비군인 국토방위군이 창설되었다. 돈바스 내전에서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후 우크라이나군은 NATO군과의 협력을 강화하여 군사 훈련을 강화하고 편제 및 무기체계에서 NATO식으로 지속적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군은 기존 소련군 시절부터 이어오던 군복을 서방식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2015년 7월 말,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새로운 디자인의 군복을 공개했는데, 미군의 OCP를 참고한 서방식 디지털 패턴인 MM-14 패턴과 NATO식 정복으로 전면 교체하여 러시아 스타일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외견상 서방 NATO군과 같은 스타일로 변모했다. 새로운 디자인의 군복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급되었다. 2015년에는 과거 소련군 시절부터 내려오던 각 부대 장식, 심볼, 색상 등을 모두 폐기하고 나토식으로 교체하였다.

또 2014년 가을부터 돈바스 반군과의 전쟁에서 작전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유럽에 주둔한 NATO군, 미군과 꾸준히 군사 훈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일부 최전방 7개 대대에 미군 교육 훈련단이 파견되어 미군식 훈련을 받았다. # 2015년 7월에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 훈련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NATO와의 협력을 꾸준히 강화해 나갔다.

또 2014년부터 군 편제 개편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서방 군대나 과거 공산권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최전선 국가였다가 현재 NATO의 주력 방어선 역할을 하고 있는 이웃 폴란드군의 편제 등을 참고하고 있다. 하지만 맹목적으로 서방 편제를 따라하는 것은 지양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의 현지 사정에 따라서 부분적으로 적절히 취사선택하는 독트린을 채택하고 있다.

2016년 2월, 포로셴코 정부와 우크라이나 의회는 NATO 가입을 공식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군도 NATO와의 공조를 위해 서방식 개편을 가속화하였다.

러시아의 크림 진주 당시 가용 병력이 수천명 선일 정도로 완전히 붕괴되다시피한 우크라이나 육군은 이 시기를 거쳐 어느정도 재건되었다. 2016년 기준으로 복구한 지상군 군사력은 13개 기계화여단, 2개 산악전투여단, 2개 기갑여단, 7개 로켓 및 포병여단으로 구성되었다. 독립 직후 14개 사단에 육박하던 대군은 아니지만 적어도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에 대항할 수 있는 저력은 이때 살려낸 셈.

그러나 미국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와의 관계를 의식해 우크라이나에 방탄복, 전투식량, 통신장비 등 '비살상 물자 지원' 위주로 지원하고,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거부해 왔다. 이후 2017년 미국에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자 포로셴코 대통령은 백악관과 미 의회를 방문하여 돈바스 내전과 러시아의 위협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2018년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FGM-148 재블린 같은 최신형 대전차 미사일 실탄 600발과 PSRL-1 M141 BDM 등을 구입하고 미군으로부터 교관을 모셔와 우크라이나군에 사용법을 훈련시켰다. 링크(영어) 이는 2022년 러시아 침공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구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또한 포로셴코 정부는 열악한 우크라이나군의 전투식량 등 병참과 사병 복지를 개선하였다. 이는 2022년 러시아 침공 전쟁에서 러시아군의 열악한 식량 보급 상태와 비교되며 우크라이나군의 사기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11월 25일, 우크라이나군 함정 3척이 러시아군에 나포된 '케르치 해협 사건'이 발생했다. 케르치 해협은 크림 반도와 러시아 타만 반도 사이에 위치한 해협이다. 이 해협은 2003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조약에 의해 공해로 규정되었지만, 2014년 러시아의 크 반도 합병 이후 러시아는 케르치 해협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해왔다. 사건 당일 오데사 항을 떠나 마리우폴 항구로 가기 위해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 및 예인선 3척이 케르치 해협을 지나가려 하자 러시아군은 영해 침범이라 주장하며 우크라이나군 함정의 통과를 불허하며 해협에서 철수를 요청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군 함정이 2003년 조약을 근거로 이를 거부하자 러시아군 함정이 함포를 발사한 후 우크라이나군 선박 3척을 나포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러시아와 국제사회에 항의하였다. 결국 러시아는 다음날 봉쇄를 풀고 나포한 함정에서 무장과 전등, 온갖 전자장비까지 모두 탈거한 후 돌려주었다. 이 사건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4년 크림반도 사태 당시 전력에 큰 타격을 입은 해군을 본격적으로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에 시동을 걸려고 하였으나, 재정 문제로 진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케르치 해협 사건으로 러시아의 무력 시위가 노골화되자 포르셴코 대통령은 서방 측에 해군 전투함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미국과 중고 함선 도입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구형에다가 유지비도 만만치 않아 난항을 겪다가 2022년 러시아 침공으로 이마저도 잠정 중단된 상황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돈바스 전쟁을 거치며 군 조직 체계를 계속 수정하고 개편했으며, 이런 과정을 거치며 통합적인 조직과 지휘체계가 갖춰졌다. 조직뿐만 아니라 지휘 체계 또한 군종을 혼합하여 전군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공군 소속 방공군 지휘관의 상급자가 육군 지역 사령부 사령관이 되는 식이다. 또 참모보다는 지휘관 중심으로 군 조직 체계를 바뀌었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육해공 등 각 군종의 최고 선임이 참모총장이 아닌 사령관이어서 지휘권, 작전권이 강화되었고, 얼마 전에는 군 최고 선임자로 총사령관직을 신설하여 기존 총참모장을 대체하도록 했다.

또한 돈바스 전쟁에서 능력을 입증한 장교들을 연공 서열에 관계없이 성과에 따라 파격 승진시켜 40대의 젊은 장교들이 군 최고위직까지 승진하는 사례도 여럿 나타났다. 그결과 2020년 무렵에는 능력있는 젊은 장성들로 군수뇌부가 물갈이가 되어 현재 우크라이나군의 군수뇌부는 평균 연령이 40대에 불과한 매우 젊은 군부가 되었다.

그 밖에도 포로셴코는 대함 미사일 개발 및 실전 배치하고, 무인기 바이락타르 TB2를 도입하는 등 군사력 증강 및 현대화를 위해 임기말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포로셴코는 우크라이나의 군사력을 양적, 질적으로 개선하는데 크게 공헌했으나, 이 과정에서 자신의 뒷주머니를 채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결국 포로셴코는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부패와 경제 정책 실패로 재선에 실패했고, 젤렌스키가 새로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어쨌든 포로셴코가 도입했던 무기나 군 개혁 결과들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활약을 보이고 있어 그의 선견지명에 대한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다. 군사력을 증강하더라도 그 방향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포로셴코가 추진했던 군사력 증강 정책들은 매우 적절한 것들이었다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 친서방 젤렌스키 정권이 들어서며 우크라이나군의 개혁, 증강, 서방화는 더욱 탄력을 받았으나, 러시아의 견제와 방해도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2019년에는 미국의 EDA(잉여국방물자) 프로그램에 따라 잉여 AH-64 아파치 공격헬기를 우크라이나 측에서 도입 검토 중이며, 우크라이나 내각으로 전달되었다고 한다. # 미국제 무기로서 상징성이 큰 AH-64를 우크라이나에서 도입을 논의중이라는 보도에 대해 우크라이나군의 본격적인 서구화라며 반기는 반응과 우크라이나의 독자적인 항공우주산업 붕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반응이 엇갈린다.

또 젤렌스키 정권은 군과 정보부 내부에 있는 러시아 스파이와 친러파를 제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략했을 때 당시 우크라이나 해군이 별다른 저항도 없이 순순히 러시아에 투항하였던 치욕적인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결과 소련군 시절 임관한 나이 많은 고위급 장성들이 대거 물갈이 되었고, 돈바스 내전에서 능력을 입증한 유능한 젊은 장교들을 고속 승진시켜 군수뇌부를 채워 나갔다.

2020년 군 계급 체계도 소련식에서 NATO식으로 개편했다. #

2021년 말부터 러시아의 무력 침공이 가시화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증강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예비군인 국토방위군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2022년 1월 1일 의회에서 국토방위군을 우크라이나군의 정식 편제로 승격시키는 법안이 통과되었으며,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3월까지 국토방위군을 13만 명에서 150만 명 이상으로 대폭 증원하겠다고 발표했다.

3.5.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2022년 2월 24일, 예상을 깨고[21] 러시아군이 본격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들어왔다. 하지만 조기에 우크라이나군이 패배할거라는 군사전문가들의 예상을 완벽히 뒤집고, 오랜 기간 미국 등의 서방의 도움으로 절치부심해온 우크라이나군은 견고한 방어전 태세로 러시아군의 진격을 한동안 저지하였다.

키이우 방어전의 성공 이후에도 넉넉하지 않은 병기와 물자들을 아껴가며 자신들이 가진 지형과 정보의 이점을 통해 매우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키이우와 서부 지역은 간헐적인 러시아군의 공격을 제외하면 전쟁 초기에 비하면 안전해졌고, 동부 전선에서는 교착 상황을 만들어냈으며, 남부 헤르손 전선에서는 헤르손 탈환을 목표로 전진하고 있다.

7월 말 기준으로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의 포병 위주의 초토화 전략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 밀리고 있었지만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M142 HIMARS와 M270 MLRS를 이용해서 러시아군을 방어하고 있다.

11월에는 헤르손을 탈환하였다.

하지만 2023년 6월부터 진행된 2023년 우크라이나 대반격에 실패하였고 공세에서 다시 수세로 전환한 상황이다.

2024년 현재 지속된 전쟁으로 병력이 부족한 상황이며 27세 이상부터 징집을 하다보니 일선 부대의 경우 평균 연령이 40세가 넘어가는 등 개선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2023년에는 전쟁 상황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여 GDP의 13%를 국방비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

전쟁 중인 것과 별개로 무기대여법의 수혜를 입어 군사력이 개전 이전보다 매우 강화되어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NATO의 원조가 감소하면서 전선에 가해지는 하중이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은 아직은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계속 공급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 유럽연합의 원조만이라도 계속된다 한들 냉전 이후 투자 감소로 약해진 유럽연합의 군수산업 때문에 충분한 물량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 ##

2024년 2월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드론 관련 문제를 담당할 우크라이나 군대 의 새로운 부서인 무인 시스템 부대를 창설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

2024년 4월 21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안이 다시 하원을 통과했다. #

2024년 중반부터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언급에 따르면 14개 여단은 장비 부족 현상을 겪고있는 등 감소한 NATO의 원조에 군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4. 징병제

2013년 10월,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징병제를 공식 폐지했다. # 로이터 올해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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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남자" 등의 제목으로 한국 인터넷에서 짤방으로 유행하던 사진. 이 불쌍한 청년이 우크라이나 마지막 징집병이 되는 듯 했지만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야누코비치가 실각하여 러시아로 도주하자 우크라이나 임시정부는 곧바로 징병제 부활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이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합병해 투르치노프 임시대통령은 2014년 5월 1일 공식적으로 징병제 폐지를 철회했다.

2019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징병제 폐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2021년 우크라이나 집권 여당 인민의 종의 올렉산드르 코르니옌코 대표가 2023년 이후 징병제를 폐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2022년 2월 1일,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2024년 1월 1일까지 징병제를 폐지하라고 장관들에게 지시하였다. #

하지만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징병제 폐지는 물건너갔다. 심지어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16세에서 65세는 무조건 입대해야 할 정도다.[22] 만약 전쟁이 종료되어도 유사시 러시아의 재침 위협에 대비해 징병제는 유지될 듯 하다. 현재 전쟁중인 상태라서 모병제 문제는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총리 데니스 시미할은 본래 예정되었던 징병제 폐지 검토를 다시 진행하겠다고 하였다. 완전 폐지는 아니고 스위스군, 오스트리아군 민병제[23] 전환을 제시한 것이다. 그는 전 국민이 의무적으로 예비역 등록하여 대략 10년간 예비군으로 편성시키고 해당 기간 동안 주기적으로 훈련을 받게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당연히 민병제를 하더라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양국 간 관계가 안정됐을 때 시행할 수 있다고 조건을 달았다.

2023년 11월 5일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2028년까지 징병제를 폐지하고, 징병 연령대 국민에 대한 "집중적인 군사 훈련"으로 이를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 그런데 발레리 잘루즈니 우크라이나군 최고사령관은 같은 해 11월 1일 우크라이나가 동원 대상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이 자원자가 충분할 경우 폐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으로 물러섰다. #

징병제를 실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입영 기준이 27세부터인 등 타국의 징병제와는 제도가 좀 다르다. 소련 시절부터 극심해진 성인 남성 부족으로 인한 우려 때문에 성인이 된 직후에 징집대상자들에게 영장이 가는게 아니라 몇년간의 유예 기간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2년차를 맞이한 2023년에는 군의 손실 보충을 위해 징집 연령을 25세로 낮추려는 법안이 추진중이다. #

2024년 4월 3일 결국 젤렌스키 대통령의 서명으로 징집 대상 연령을 27세에서 25세로 2년 낮추는 법안이 발효됐다. #

다만 저 징집 대상 연령은 강제로 끌고갈 수 있는 나이 얘기고, 20대 초반의 경우도 자원입대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받아줬다. 이 때문에 2024년 현재 우크라이나에 20대 초반 남성이 그렇게까지 많이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전쟁 초기에만 자원입대가 빗발쳤고, 전쟁의 참사가 어느 정도 알려진 후로는 20대 남성들은 입대를 거부하고 25세가 되기 전에 전쟁이 끝나길 바라는 경향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24]

5. 군복

파일:1437994467-6428-uniforma-vsu.jpg 파일:우크라이나전투모.jpg
위쪽사진의 왼쪽부터 육군 정복, 공군 정복, 특수작전군 정복, MM-14 패턴 동계/춘추 피복, 국가근위대 프레데터 패턴 전투복, VARAN 패턴 전투복/VARAN 패턴 전투복 위에 코르세어 방탄복 풀세트 순이다.

아래사진은 우크라이나의 전투모로 페트롤캡 형태에 자포리제 카자크 전통모자의 v자 장식을 접목하여 만든 디자인이다.[25] 20세기 초반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채택한 마제핀카[26]의 현대적 버전.

해군 장교의 정복은 대대수의 나라들과 동일하게 영국식 더블 코트이며, 하계용과 동계용이 구분된다. 수병 복제도 외국과 동일하게 텔냐시카가 포함된 세일러복이다. 함상복 역시 서방권과 동일하며, 청색 계통 디지털 무늬가 적용된 전투복을 사용하고 있다.

2014년초까지는 구 소련 해체 직전 소련군 제식군복이었던 TTSKO 패턴을 개량한 군복을 착용했었다.

하지만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돈바스 전쟁을 계기로 2014년부터 2016년에 걸쳐 군복을 전면적으로 개혁했다. 기존 소련, 러시아식 스타일에서 폴란드, 영국 등을 참고한 서방권 스타일의 디지털 군복으로 교체했다.

전투복뿐만 아니라 정복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군복 체계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군복뿐만 아니라 계급체계 및 계급장에 이르기까지 이전까지 채용하던 구 소련군 스타일을 완전히 말끔하게 지웠다. 현재는 NATO군과 비슷한 체계로 변경되었다.

현재는 MM-14라는 패턴으로 불리는 OCP의 영향을 받은 신형 디지털 전투복이 전군에 보급되었다.

공수군과 해군 보병대는 디지털 전투복을 채용하기 전 독자적인 패턴을 가진 전투복을 채용하고자 하였으나 비용상의 문제로 현재는 모든 군종병과가 MM-14 전투복을 사용한다.

돈바스 전쟁의 영상이나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상 및 사진 자료를 보면 MM-14 디지털, 우드랜드, 멀티캠 등의 군복이 잡다하게 혼용되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돈바스 전쟁과 러시아의 침공에서 국토방위군을 비롯한 예비군, 민병대와 국내외 의용부대가 대규모로 운용 중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6. 수뇌부

통수권자 국방장관 총사령관 총참모장
파일:Volodymyr_Zelensky_Official_portrait.jpg 파일:Rustem_Umerov.jpg 파일:OleskandrSyrskyiColonelGeneral.jpg 파일:anatoliy_barhylevych.jpg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루스템 우메로우 육군대장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육군중장 아나톨리 바르힐레비치
합동군 사령관 육군 총사령관 해군 총사령관 공군 총사령관
파일:Oleksandr_Pavliuk.jpg 파일:Neizhpapa_new_form_2017.jpg
해군보병소장 안드리 흐나토우 중장 올렉산드르 파블류크 중장 올렉시 네이즈파파 중장 아나톨리 크리보노즈코[27]
해군 보병대 사령관 공수군 사령관 특수작전군 사령관 국토방위군 사령관
파일:ihor_skybiuk.jpg 파일:sergii_lupanchuk.webp 파일:Ihor_Plakhuta.jpg
소장 드미트로 델랴티트스키 준장 이호르 스키뷰크 준장 세르히 루판추크 소장 이호르 플라후타
2022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 수뇌부의 핵심 인물은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육군 총사령관, 그리고 안드리 코발추크 남부작전사령관 3인이라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다.

2022년 가을 대공세 직후에 편제 개편으로 호르티치아 작전전략집단군, 타우리아 작전전략집단군이 신설되어 각각 동부전선과 남부전선을 총괄하게 되었다. 동부전선의 호르티치아 합동작전전략군 사령관은 육군 총사령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상장이 겸직하며, 남부전선의 타프리아 합동작전전략군 사령관은 하르키우 대공세에서 시르스키 상장의 부관으로 활약했던 올렉산드르 타르나우스키 준장이 임명되어 기존 남부 작전사령관 안드리 코발추크 소장이 맡았던 남부전선의 총지휘권을 이양받았다.[28] 2023년 3월 오데사, 피우니치(북부) 작전전략집단군 사령관이 추가 임명되었다. 이후 2023년 현재 이 네 개 작전전략집단군(operational-strategic group of troops) 편제를 중심으로 군이 운용되고 있다.

6.1. 총참모부

Генеральний штаб Збройних Сил України / General Staff of the Ukrainian Armed Forces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우크라이나 국방부 청사에 위치해 있다. 페이스북

6.2. 최고통수본부

Ставка Верховного Головнокомандувача (СВГ) / The Headquarters of the Supreme Commander-in-Chief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구성된 우크라이나 정부 및 우크라이나군의 전시 최고 지휘통제부다. 개전 직후인 2022년 2월 24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발표한 포고령 72호에 따라 구성되었다.[29] 법률에 따라 특별 기간(전시) 동안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최고통수본부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군에 대한 지휘권(군령권) 및 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최고통수본부를 이행한다. 기존 국가안보방위회의는 중단된다.

전시에 수시로 회의가 소집되고 있다. 내각 및 대통령실 각료와 키이우 총참모부에 있는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키이우에서 직접 대면으로 회의에 참석하며, 시르스키 장군 이하 현지 전선에서 지휘 중인 작전, 전략군 사령관들은 현지에서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참석 인원은 조금씩 변동 중이다.

7. 구성

아조우 여단 등이 속한 우크라이나 국가근위대, 국경수비대 등은 공식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내무부 휘하의 준군사조직이므로 본 문서에 서술하지 않는다. 해당 문서 참고.

우크라이나 무인시스템군의 창설을 명령하는 대통령령이 발효됐으나 추후에 밝혀진 정보는 아직까지 없다. #

7.1. 우크라이나 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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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우크라이나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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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우크라이나 해군 보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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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우크라이나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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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우크라이나 공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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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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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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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우크라이나 무인장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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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군사 계급

원래 소련식의 계급 체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2020년 우크라이나 국회에서 NATO식 계급 전환이 의결되었다. 그러나 기존 계급 보유자들의 계급은 일단 유지되기 때문에 현재는 나토식과 소련식 계급이 혼재되어 있으며, 해당 소련식 계급 보유자들이 승진하거나 전역하면서 점차 사라지고 NATO식으로 대체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군 계급 체계 우크라이나군 병과 목록 \

2020년 NATO식 계급으로 전환되면서 과거 최상위 계급인 Генерал армії України (원수, OF-10)은 폐지되었다.
군사 계급
구분 계급명 계급장
OR-1 Солдат 이등병
OR-2 Старший солдат 일등병
OR-3 Молодший сержант 상등병
OR-4 Сержант 병장
OR-5 Старший сержант 하사
OR-6 Головний сержант 중사
OR-7 Штаб-сержант 상사
OR-8 Майстер-сержант 원사
OR-9 Старший майстер-сержант 선임원사
Головний майстер-сержант 주임원사
OF-1 Молодший лейтенант (Molodshyi leitenant, Junior lieutenant) 소위
Лейтенант (Leitenant, Lieutenant) 중위
Старший лейтенант (Starshyi leitenant, Senior lieutenant) 상위
OF-2 Капітан (Kapitan) 대위
OF-3 Майор (Maior, Major) 소령
OF-4 Підполковник (Pidpolkovnyk, Lieutenant colonel) 중령
OF-5 Полковник (Polkovnyk, Colonel) 대령
OF-6 Бригадний генерал (Bryhadnyi heneral, Brigadier General) 준장
OF-7 Генерал-майор (Heneral-maior, Major General) 소장
OF-8 Генерал-лейтенант (Heneral-leitenant, Lieutenant General) 중장
OF-9 Генерал-полковник (Heneral-polkovnyk, Colonel General) 상장[30]
Генерал (Heneral, General) 대장

위의 계급은 해군을 제외한 모든 군종이 공유한다. 해군 항공대와 해군 보병대도 일부 계급[31]을 제외하고 공유한다.

8.1. 해군 계급

다른 나라들과 똑같이 해군은 타 군종들과 다른 계급을 사용한다.
해군 계급
구분 계급명 계급장 수장
OR-1 Матрос 이등병
OR-2 Старший матрос 일등병
OR-3 Старшина 2ої статті 상등병
OR-4 Старшина 1-ої статті 병장
OR-5 Головний старшина 하사
OR-6 Головний корабельний старшина 중사
OR-7 Штаб-старшина 상사
OR-8 Майстер-старшина 원사
OR-9 Старший майстер-старшина 선임원사
Головний майстер-старшина 주임원사
OF-1 Молодший лейтенант 소위
Лейтенант 중위
Старший лейтенант 상위
OF-2 Капітан-лейтенант 대위
OF-3 Капітан III рангу 소령
OF-4 Капітан II рангу 중령
OF-5 Капітан I рангу 대령
OF-6 Контр-адмірал 준장
OF-7 Контр-адмірал 소장
OF-8 Віце-адмірал 중장
OF-9 Адмірал 대장

9. 참전

10. 문제점

우크라이나군의 경우는 러시아군에 비해 많이 묻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같은 소련군 출신인지라 러시아식 데도프시나 문화 때문에 각종 구타나 괴롭힘, 기합 같은 악폐습이 있었다고 한다. 2014년 이후로 많이 개선됐다지만 2021년에도 총기난사가 있었다. #

러시아의 침공 이후 서방이 다양한 무기체계를 지원하면서 뜻하지 않게 다양한 서방과 동구권의 무기체계가 혼란스럽게 운용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러한 장비들이 큰 힘과 전력보강이 되어주는 것은 사실이나 군수나 보급 측면에서 너무 많은 무기체계가 중구난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건 아니다.[32]

가장 큰 문제는 작전조율, 일선부대 지원을 담당할 상급 지휘부가 부족하거나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전쟁 이후 육군 제10군단 등 새로운 상위부대 및 상급지휘부들이 창설되고 있다.

군수뇌부의 평균연령이 40대로 젊지만, 병사들까지 평균연령이 43세 정도인 늙은 군대로 병역자원 부족이 매우 심각하다. 더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2030연령층이 매우 좁기도 하고, 장래, 전후의 인구 구성에 있어 핵심자원인 터라 손실이 매우 뼈아프기 때문에 징병할래야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33]

사실 30대 이상의 인구구조도 역피라미드형으로 그렇게 안정적이지는 않고, 이들이야말로 전후 복구를 담당할 장년층이기 때문에 유일한 해법은 여성까지 징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우크라이나는 여성을 징집하는데 과도한 보수성을 보이고 있다. 전후에 인구를 복구하려고 하면 여자가 많은 것이 유리하다고는 하나, 현대에는 일부일처제 하에서 남자가 없이 여자가 씨만 받아 출산한다는건 상상할 수 없다. 결국 남성이 많이 사망하면 인구회복과 전후 복구도 느릴 수 밖에 없고 언젠간 러시아의 재침공으로 멸망할 가능성도 높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서방에서는 징병제를 부활하거나 군을 재건하면서 여성을 징집하는 쪽으로 개편중이지만, 우크라이나는 현재 전쟁을 치르고 있으면서도 여성은 징집하지 않고 남자만 25~60세까지 모조리 징집중인데 이는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며 전방의 사기에도 매우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똑같이 남성중심주의적인 국가인 러시아조차도 동원령을 최대한 제한하면서 우크라이나보다는 여군 전투원 비율이 높은 것과 대조된다. 이런 문제는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군에서도 분명 차후 염두에 둬야 할 문제점이다.

11. 여담

90년대 말 TV로 방송된 우크라이나군의 모병광고
우크라이나군 모병광고 "우리 각자가 우크라이나군이다."[36]
2023년 전쟁 중 반격을 예고하는 우크라이나군의 모병광고

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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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전쟁이전에는 246,000명 규모였으나 전쟁이후 동원령으로 상비군이 100만명으로 증가했다. 우크라이나군의 전체 병력 [2] # [A] [4] # [5] T-64와 T-72등 1,112대의 전차가 치장물자로 보관중이다 [6] 4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7] 4세대 전투기 분류법(2) [8] 한글로 표현하면 '슬라바 우크라이니!' 2018년 도입된 구호. 답변은 '헤로얌 슬라바' 영웅들에게 영광을!이라 한다. 이 구호 자체는 우크라이나 독립전쟁 당시 널리 쓰였다. [9]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되면 신속하게 서방제 무장 및 무기체계들로 교체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여된 서방제 무장들을 효과적이고 적재적소에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 서방제 무장을 도입해와도 문제가 없다는 인상을 보여줬고, 해군 역시 재건될 경우 서방제 중고 함을 도입하거나 일정기간 동안 나토에 영해보호를 의존할 수도 있다. [10] T-64BV, T-64BM 불라트 등 [11] 원본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만들어진 미국의 선전포스터이다. [12] 비슷한 시기에 동포 국가인 서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도 독립을 선포했다. [13] 우크라이나 국토에서 바다라고는 튀르키예로 틀어막힌 좁아터진 흑해 바다 뿐이기 때문에 항공모함은 지나치게 과도한 무장이고, 우크라이나에게 애물단지였을 뿐이다. [14] 중국과 소련은 전통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기 때문에 소련-러시아는 이런 중요한 전략병기는 아무리 중국이 비싼 값을 부르며 애원해도 팔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전략적인 무기라고 보기는 힘든 Tu-22M조차 팔지 않는다. 독립 직후 돈이 급한 우크라이나였으니까 팔아치운 것이다. 항모에 실을 함재기도 러시아는 핑계를 대고 안 팔려 해서 중국은 결국 함재기도 우크라이나를 통해서 해결했다. [15] 물론 이 당시에 러시아 또한 경제 붕괴로 우크라이나에게 도저히 지원해줄 여력이 안되었기는 했다. 애초에 자국 노인들과 공무원들에게조차 연금과 월급을 제때 못주는 나라에서 (몇년전까지만 하나의 나라였다해도) 외국에 경제지원을 해줄 돈이 어디 있을리는 없다. [16] 다만 그렇다고 해서 쿠치마의 지지율은 10%대를 맴돌정도로 낮았던지라, 우크라이나 공산당이 집권을 위해서 빅토로 유셴코의 우리 우크라이나와 율리아 티모센코 블록과 선거연합을 꾀했고, 공산당과 친서방 자유주의 세력 정당이 서로 연립정권을 구성하는 진풍경이 펼쳐질뻔 했지만, 단일후보 추대 방침에 공산당이 거부감을 보이면서 연합은 무산되었다. 이후 공산당은 쿠치마의 정당인 지역당과 손을 잡고 여러번 연립정당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유로마이단 이후 해산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17] 소련 붕괴 이후 방위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두자릿수를 넘길 정도의 군수산업을 가지고 있던 나라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이후로 내내 많은 군사장비를 외국에 수출하는 거대한 군수산업을 가진 국가였다. 2012년 당시 세계 4위의 무기 수출국으로 기록될 정도. # [18] 다만 군 병력감축은 어쩔수 없는 일이기는 했던것이 1990년대 초중반의 경제난으로 우크라이나의 출산율이 2명대에서 1명대 초반대로 급감했고, 야누코비치의 집권기는 징병인력들의 수가 한창 급감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력감축이 어쩔수없는 일이었다고 쳐도, 남는 예산을 기계화에 투자를 하는 등 대안을 마련했어야 하는데 그걸 도외시했을 뿐만 아니라 국방 예산 자체를 절반 이하로 대폭 줄인 것에서 야누코비치 정권은 비판을 못 피한다. [19] Operating in the gray zone: An alternative paradigm for US military stratagy [출처] 안툴리오 에체베리아,《군사전략 입문》, 나종남 역, 황금알, 2018, 258p-260p [21]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크라이나 시민 중 10-15% 정도는 조만간 전면전이 터질 것을 직감했다곤 하며, 전쟁 직전에 우크라이나를 떠난 자국민들도 아주 없진 않았다. 그리고 친러파 정치인들이 대거 2월 초중순에 해외로 이주한 것을 감안하면 정치인 등 높으신 분들은 전면전을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한국 등 여러 나라에서 2월 중순부터 급하게 교민들과 대사관을 철수시켰는데, 전쟁이 안 날 거라고 생각하면 그랬을 리가 없다. [22] 다만 16세~24세까지는 해외 출국은 막혔지만 당장 입대할 필요는 없다. 그나마도 전쟁 초기에는 27세였으나 병력 부족으로 2024년부터 25세부터 징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23] 징병제의 한 부류로 징병제, 징모혼합제와 달리 국민들이 예비역으로써의 병역만 지게하는 것이 특징이며 쉽게 말하자면 의무 예비군 제도다. [24] 이는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맞이하는 징병 대상자들의 태도 변화와 비슷하다. 전쟁이 없다시피한 세상에서 부모세대도 본인들도 처음 전쟁을 맞이한 1차 대전의 입대자들은 당당하게 입대하고 입대가 매우 자랑스러운 것처럼 전장에 나갔으나, 부모세대는 물론 본인들도 어려서 전쟁을 겪어 본 2차 대전의 입대자들은 전반적으로 입대를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고 입대를 피하려는 움직임도 그 전 세대에 비해서 심했다. [25] V자 장식이 없는 캡형 군모도 동시에 사용된다. [26] Мазепинка(우크라이나어) [27] 우크라이나 공군 F-16 추락 건 때문에 기존 사령관이었던 미콜라 올렉시추크는 해임되었다. [28] 서방 언론에 따르면 키이우 중앙정부는 가을 공세 당시 코발추크 남부 작전사령관이 충분히 빠른 전개를 펼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29] 이후 8월 16일, 11월 16일 등에 개정되었다. [30] 폐지 예정. 2024년 8월 24일자로 유일한 상장 계급인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대장으로 진급하면서 현재 이 계급을 가진 인물은 없다. [31] 이병은 Матрос, 일병은 Старший матрос, 소위는 Хорунжий [32] 다만 주변국의 환경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주변국에 대한 군수지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넓은 경험을 가진 엘리트 기술자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소련 시절에나 볼법한 무기를 아직도 쓰고 있는 나라들이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주변에 널려 있는 판이니. [33] 소련 붕괴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대거 이민가거나, 출산율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34] 다만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구소련 지역 국가들 대부분이 공산주의 붕괴 이후 미녀들이 부국으로 시집가거나 스폰서십 받는 일이 흔해지고 성매매가 엄청 늘다 보니 여성 한정이지만 외모지상주의 성상품화를 당연시하는 편이다. 즉 미녀가 원래 많은 게 아니라 미녀가 되어야 먹고살기가 편해지니까 다들 외모를 가꿔서 미녀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35] 하지만 자동차 기름이 가득 차있는게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그 당시 경제 상황이 힘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이 당시의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미 소련 후기에 자동차가 어느정도 보급되어서 자동차가 딱히 희귀품은 아니었지만, 기름값이 비싸서 마음대로 몰고다니기는 부담스러웠고, 새차는 올리가르히나 여러가지 불법경제활동 등으로 이득보던 계층이 아니면 구하는 것이 부담되는지라 중고차를 타서 타던 수준이었다. 이 당시의 우크라이나는 지하경제가 창궐하고 외환위기로 IMF에게 구제금융을 받았던 시기였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러시아의 절반 이하수준이었다. [36] 해당 모병광고는 "모병광고면서" 반전주의가 연상되어 인상 깊다는 반응이 많다. 많은 나라 군대의 모병광고가 적에 대한 적개심이나 자국군의 웅장함을 중점에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