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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1:48:01

장원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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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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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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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형운 (1) (2)
(14명)
김석일
김성호
김종근
김호근
박영태
박정후
배경환
양상문 (1)
우경하
유두열
장상철 (1)
최동원
한문연
(12명)
김민호
김재열
김진근
김한조
배종문
안창완
윤학길 (1)
이문한
이석규
정인교
조성옥
조용철
(8명)
박동수
박희찬
양상문
이동완
이재성
이충우
장상철 (1)
한영준
(8명)
강수경 (1)
김성현
박동희
오명록
윤학길
이창원
임경택
최계영
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김용권
김종석
정국헌
구명근
김형섭
이승훈
김청수
서호진
김선일
김도형
공필성
박정태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강성우 김경환 강상수 문동환 차명주
(고졸)
손균환
이재섭
이정훈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손민한
(고졸)
신명철
이승훈
정인석
임경완
(고졸)
김정열
김진수
이승학 (1)
정원욱
(고졸)
송승준
강민영 추신수 (1)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이정민 박정준 장원준 이왕기 손용석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이상화
이재곤
장성우 오병일 홍재영 (2) 김명성 (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김원중 (2) 송주은 (2) 김유영 강동관 박종무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윤성빈 한동희 서준원 최준용 손성빈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이민석 김민석 (2) 전미르 (2) 김태현 (2) (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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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준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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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4.svg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5 2016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반지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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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KIA

두산

두산

KIA

두산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두산

두산

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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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025년 2026년 2027년 2028년

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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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12, 2013 KBO 퓨처스 북부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투수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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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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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1983~1992)
1987년 / 124승
최동원
(1983~1990)
1990년 / 103승
선동열
(1985~1995)
1990년 / 146승
장호연
(1983~1995)
1993년 / 109승
윤학길
(1986~1997)
1994년 / 117승
정삼흠
(1985~1996)
1996년 / 106승
이강철
(1989~2005)
1996년 / 152승
조계현
(1989~2001)
1996년 / 126승
송진우
(1989~2009)
1997년 / 210승
김용수
(1985~2000)
1998년 / 126승
정민철
(1992~2009)
1999년 / 161승
김상진
(1989~2003)
1999년 / 122승
이상군
(1986~2001)
2000년 / 100승
한용덕
(1987~2004)
2000년 / 120승
정민태
(1992~2008)
2000년 / 124승
김원형
(1991~2011)
2005년 / 134승
임창용
(1995~2018)
2007년 / 130승
김수경
(1998~2012)
2007년 / 112승
이상목
(1990~2009)
2008년 / 100승
손민한
(1997~2015)
2009년 / 123승
이대진
(1993~2012)
2009년 / 100승
박명환
(1996~2015)
2010년 / 103승
배영수
(2000~2019)
2012년 / 138승
장원삼
(2006~2020)
2015년 / 121승
윤성환
(2004~2020)
2016년 / 135승
김광현
(2007~)
2016년 / 170승
장원준
(2004~2023)
2016년 / 132승
양현종
(2007~)
2017년 / 179승
송승준
(2007~2021)
2017년 / 109승
니퍼트
(2011~2018)
2018년 / 102승
차우찬
(2006~2023)
2019년 / 112승
유희관
(2009~2021)
2021년 / 101승
류현진
(2006~)
2024년 / 108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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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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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
(2005~)
2021년 / 400세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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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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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1989~2009)
2008년 / 2048탈삼진
양현종
(2007~)
2024년 / 2076탈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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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KBO 리그 타자 마일스톤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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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10년 연속 100탈삼진 2006년~2017년[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3번
매기
(2002~2002.7.20.)
<colbgcolor=#000><colcolor=#fff> 장원준
(2004)
조인신
(200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1번
김휘곤
(2003~2004)
장원준
(2005~2006)
조정훈
(200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8번
주형광
(1994~2006)
장원준
(2007~2011)
김원중
(2012~2013)
김원중
(2012~2013)
장원준
(2014)
김유영
(2015)
두산 베어스 등번호 28번
김명성
(2013~2014)
장원준
(2015~2023)
최승용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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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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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333>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류중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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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333><colcolor=#09539D,#ddd> 투수 1 손승락 · 11 박희수 · 17 유원상 · 18 노경은
21 오승환 · 23 차우찬 · 26 서재응 · 28 윤석민
38 정대현 · 48 장원삼 · 57 장원준 · 66 윤희상
포수 20 진갑용 · 47 강민호
내야수 7 김상수 · 8 정근우 · 13 손시헌 · 25 이대호
14 최정 · 16 강정호 · 36 이승엽 · 52 김태균
외야수 9 전준우 · 15 이용규 · 31 손아섭
35 이진영 · 50 김현수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5''' 류중일
수석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9 양상문
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7 한용덕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8 박정태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6 김한수
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0 김동수
수비·주루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6 류지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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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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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333><colcolor=#09539D,#ddd> 투수 11 이대은 · 19 이태양 · 22 우규민 · 23 차우찬
28 장원준 · 29 김광현 · 38 정대현
42 조상우 · 45 임창민 · 48 이현승
55 심창민 · 57 정우람 · 67 조무근
포수 25 양의지 · 47 강민호
내야수 3 박병호 · 7 김상수 · 8 정근우 · 10 이대호
14 허경민 · 16 황재균 · 24 오재원 · 52 김재호
외야수 15 이용규 · 17 나성범 · 31 손아섭
49 민병헌 · 50 김현수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7''' 김인식
투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배터리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6 김동수
타격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8 이순철
작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7 김광수
수비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1 김평호
불펜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4 송진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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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fff,#333>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김인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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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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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333><colcolor=#09539D,#ddd> 투수 1 우규민 · 11 이대은 · 12 임창용 · 19 심창민
21 박희수 · 23 차우찬 · 26 오승환
28 장원준 · 29 장시환 · 45 임창민
46 원종현 · 48 이현승 · 54 양현종
포수 25 양의지 · 42 김태군
내야수 3 김재호 · 7 김하성 · 10 이대호 · 13 허경민
14 서건창 · 18 박석민 · 24 오재원 · 52 김태균
외야수 15 이용규 · 31 손아섭 · 34 최형우
37 박건우 · 49 민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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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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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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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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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장원준2023.png
장원준
張元準|Chang Won-jun
출생 1985년 7월 31일 ([age(1985-07-31)]세)
서울특별시[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수영초 - 대동중 - 부산고 - ( 영남사이버대)
신체 184cm|85kg| O형
포지션 선발 투수[3]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4년 1차 지명 (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2004~2014)
두산 베어스 (2015~2023)
병역 경찰 야구단
(2011년 12월 29일 ~ 2013년 9월 28일)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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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모님
배우자(1987년생, 2017년 결혼 ~ 현재)
장녀 장하음(2018년 4월 22일생)
차녀 장하랑(2019년 7월 27일생)
처남 박건우
등장곡 {{{-2 {{{#!folding [ 롯데 자이언츠 시절 등장곡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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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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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여담
4.1. 별명4.2. 연애사4.3. 소속 팀 관련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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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하여 2014년까지 롯데의 대표 좌완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이후 FA 자격을 취득한 뒤 두산 베어스로 이적하여 2015, 2016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끌었으며 KBO 리그에서 좌완 투수 최초로 8시즌 연속 10승을 기록하기도 했다.[4]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장원준/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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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수상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svg

장원준의 KBO 수상 경력
2006 동군 올스타(감독추천)
2011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4 이스턴 올스타(감독추천)
2015 한국시리즈 우승
2016 한국시리즈 우승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장원준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수상 경력
2015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
장원준의 기타 수상 경력
2016 최동원 상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 투수상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최고의 투수상
2017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 투수상

2.2. 통산 승리 일지

파일:장원준 개인 통산 130승.jpg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장원준/통산 승리 일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

파일:장원준 직구.gif
장원준의 패스트볼
파일:장원준 떨공.gif
장원준의 슬라이더

140km/h 초중반대의 빠르면서도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5]과 날카로운 슬라이더가 주무기다. 그밖에 커브, 체인지업도 장착은 하고 있다.[6] 2009 시즌 이후 느린 커브의 제구를 잡아가면서 변화구 제구가 되지 않을 땐 이것만 던져 스트라이크를 잡기도 했고 2011 시즌부턴 아주 능숙하게 커브를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2011시즌부터는 그토록 갈망하던 서클 체인지업도 꽤 위협적으로 익히면서 리그 정상급 좌완으로 성장했다. 2010 시즌 조정훈의 포크볼에 감명을 받았는지 포크볼 장착을 시도했으나 손가락 길이 때문에 포기했다고 한다.

다만 기복이 심하다.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타자들을 단체 선풍기로 만들어버리지만, 컨디션이 저조한 날에는 난타를 당하면서 일찍 강판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소위 '긁히는 날'에는 류현진, 김광현, 양현종이 안 부럽지만 잘 안 긁히는 날이 더 많다는 게 문제.

2011 시즌부터는 수비수들과의 호흡이나 마운드에서의 안정감이 크게 나아지며 롯데의 에이스 자리로 올라섰다. 그동안의 삽질로 경험치가 쌓였는지 제구가 되는 구질과 코스의 선택이 매우 좋아졌다. 슬라이더의 경우(이하 우타자 기준) 제구가 잘 되지 않는 바깥쪽은 과감히 버리고 철저히 안쪽으로 구사했으며, 그동안 잘 안 먹히던 패스트볼의 바깥쪽 제구가 일취월장하면서 원래 잘 던지던 크로스파이어에 더해 패스트볼 로케이션이 다양화되었다. 커브는 반대로 인코스는 완전히 버리고 타이밍을 뺏는 정가운데 아니면 바깥쪽으로, 체인지업 역시 주로 바깥쪽 코스로 가되 정중앙 스트라이크존보다 아래쪽로 떨어지도록 제구하는 데 성공했다.

장원준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몸이 튼튼하다는 것이다. '장롤코' 라는 별명은 N이닝 N실점, 평균자책점 같은 성적에 대한 기복을 말하는 거지, 내구성에 있어서는 누구도 토를 달수 없을만큼 완벽하다. 100구 이상 던져도 크게 구위가 떨어지지 않고, 덕분에 이닝 소화 능력이 매우 좋다. FA 전까지 9년간 1,326(85승), 연 평균 147이닝[7]이나 던졌지만 여태까지 큰 부상 한번 없었고, 로테이션도 거의 거른 적이 없다.[8][9] 이 내구성 덕에 각각의 시즌들만 놓고 봤을 땐 2011년 시즌을 제외하면 최상급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누적스탯 부문에서는 따라갈 자가 거의 없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쌓아놓았다. 두산 이적 후에는 내구성은 그대로에 성적도 좋아지면서 '장꾸준'으로 거듭났다.
파일:장원준_2004~2017.png

누적 스탯만 보면 류현진 다음 가는 이닝이터이며[10] 군입대 전까지 4시즌 연속 10승, 6시즌 연속 100탈삼진을 기록했다. 군입대만 아니었으면 류현진과 함께 2012년 시즌에 역대 5번째 7년 연속 100탈삼진 기록을 놓고 경쟁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아쉬운 부분. 적어도 이닝에 한해서는 꾸준함이 S급이고 선수로서의 가치를 꽤나 높인다.

다만 몸이 늦게 풀리는 스타일이라 2회 이전에 크게 털리는 점이 단점. 역시 선발 투수가 제격인 선수. 보통 3회에 가서 그날 컨디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3회를 무사히 넘기고 투구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오히려 안정감이 더 생긴다. 이를 두고 장원준이 선발등판한 날 두산 팬들의 반응을 정리한 말이 있는데 바로
1~2회: X발...
3~4회: X나...
5회 이후: 잘 던지네...
이보다 더 잘 정리할 순 없다. 출처 이건 장원준이 롯데에 있었을 때 롯데 팬들의 반응과 동일하다. 그러나 못 넘기는 경우가 더 많아서 마의 3회라 불린다. 이 마의 3회는 2009년 준PO에서도 예외가 없어서 2차전에 선발 출장하여 3회에만 4실점을 하는 기염을 토하며 패배에 일조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쫄았다"라고 발언.[11] # 선수 본인 또한 1회에 투구수가 많아지면 "맨날 있는 일", "내가 그렇지 뭐" 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득점지원이 신기할 정도로 높다. 2006 시즌에 5.46으로 4위, 08시즌에 5.60으로 2위, 09시즌에 6.20, 10시즌에는 7.51점을 기록하고 있으며 11시즌에도 6.00으로 여전히 높은 득점지원을 받고 있다. 이쯤되면 득점의 신의 가호를 받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준.[12][13] 이닝이팅과 득점지원이 어우러진 특이한 기록으로 통산 강우콜드 완투, 완봉 부문에서 독보적인 역대 1위를 달리고 있다.

주자 견제능력은 좋은 편. 서로 다른 두 개의 슬라이드 스텝을 이용하여 주자를 혼란시키고 타이밍을 뺏는다. 그리하여 주자들에게 도루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

수비력도 상당히 좋다. 투구폼이 깔끔해서 그런지 후동작이 좋고, 순발력도 좋아서 호수비도 꽤 많이 한다. 특히 투수 정면으로 총알같이 날아오는 타구를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낚아챌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오히려 팬들이 더 놀란다. 롤코를 타다가 본인이 직접 수비하면서 위기를 탈출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투수 정면 1-6-3 더블플레이[14] 같이 배터리를 이루는 포수 양의지 또한 "원준이 형은 국내에서 수비 제일 잘 하는 투수 같다" 라고 치켜세웠다. # 투수는 제5의 내야수라는 말을 표현하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 또한 꾸준히 보여준다.

나이에 비해 승수를 쌓는 페이스도 괜찮거니와 병역 문제 해결 등의 이유로 해외 진출 시기를 놓치기도 했기 때문에[15] 윤학길 롯데 자이언츠 최다승 기록(117승)은 무난히 경신할 것이라는 게 많은 롯데 팬들의 생각이었으나 두산으로 이적했다.

롯데에서는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투수였으나 두산으로 이적한 이후로는 플라이볼 피쳐로 변했다는 분석이 있다.

여타 국가대표급 좌완 투수들에 비해 와일드하지 않고 아주 교과서적인 투구폼을 갖고 있다. 송승준[16]과 더불어 초보자들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 하다.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으며 다칠래야 다칠 수가 없는, 볼을 찍어누르는 유형의 오버핸드 투구폼 중에서는 가장 쉬운 폼을 가지고 있어 사회인 야구인들이 모티브로 삼으면 좋은 투구폼이기도 하다.[17]

또 다른 장점은 예측가능함에 있다. 2017년 기준으로 8시즌 연속 두자리수 승수, 10시즌 연속 세자리수 탈삼진, 11시즌 연속 100이닝 소화[18]가 말해주듯 아무리 경기 중에 롤코를 탄다 어쩐다 해도 팀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시즌 전체의 계획을 짤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다. 소위 계산이 서는 투수라는 것. 두산 이적이 발표된 후 자료를 찾아본 두산 팬들의 대체적인 반응이 바로 "생각보다 훨씬 더 좋은 투수네?" 였다. 아무래도 롤코 이미지가 있고, 장원준이 두산을 상대로 약했기 때문에[19] 두산 팬들은 처음엔 "좌완 선발 데려와서 좋긴 한데 진짜 84억에 데려올 만한 거 맞냐?" 하다가, 젊은 나이와 함께[20] 기록을 찾아보고 납득했다는 것.

특이하게 군 입대 전에는 내용, 결과 모두 LG 상대로 나쁘지 않았는데 특이하게 제대 후에는 (롯데, 두산 소속 모두)LG전에서 잘 던져도 팀이 지거나[21] 심할 경우엔 본인이 패전투수가 된다.[22]그래서 좌투수에 약한 LG임에도 장원준만 나오면 팬들이 좋아했다는 듯.

한편 더스틴 니퍼트가 경상도 팀들(특히 삼성)에게, 유희관이 한화에게 극강이듯[23] 장원준은 SK와 NC, KIA를 상대로 인간상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5시즌 SK를 상대로 5경기를 등판했는데 개인 4승 0패에 나머지 1경기도 팀이 이겼으며, 2016년 5월 SK전 패전을 기록하기까지 2011년부터 무려 5년간 9연승으로 무패행진 중이었다.[24] NC 같은 경우에는 2017년 7월 기준 통산 상대 ERA가 2.72로, 통산 79.1이닝이나 상대를 했음에도 피홈런이 0이다. 심지어 14~17시즌은 에릭 테임즈가 뛴 시기와 정확히 겹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7년 4월 22일엔 최정에게 쓰리런-적시타를 맞으며 SK를 상대로 5⅔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으나 다음 등판때 9이닝 무사사구 완봉승으로 역시 극강임을 다시 증명했다.9월 15일 등판 때는 6 2/3이닝 동안 5실점 5자책으로 부진했다. KIA 상대로는 두산 이적 후 8승 2패로 강하다. 2015년 KIA를 상대로 1승 2패로 승운이 없지만 방어율이 2점대로 나쁘지 않았다. 2016년 4경기 3승 무패 방어율 3.65로 좋았고, 2017년 4전 전승 방어율 2.84로 상당히 강하다. 심지어 2017년은 KIA가 팀 타율 1위라는 것.

그러나 만 33세 시즌인 2018년에 투구수 누적으로 급격한 노쇠화를 겪으며 5-6년간 대체선수보다도 못한 성적을 올리는 등 단기간에 기량이 급격히 하락하였다.[25] 구위와 제구 모두 예전에 비해 심히 떨어진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 구위 하락이야 그렇다 치고 제구까지 안 되는 부분을 다소 의아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 이는 두 가지 가능성으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첫째는 눈에 보이는 근육 염좌나 파열 등의 부상은 없으나, 회전근개에 무리가 가면서 릴리스시 팔의 밸런스가 흔들려 제구가 무너지는, 이른바 데드암이라고 불리는 신체적 요인이 있으며, 두번째는 구위가 하락하면서 상대에게 정타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존 바깥쪽을 주로 공략하다 지나치게 볼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불안감이 커지며 제구가 더 흔들리는 심리적 요인이 있다. 현 시점의 장원준이라면 두 가지 가능성 모두 열어놓고 볼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커리어 마지막 시즌인 2023년까지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다가 은퇴 시즌인 2023년에 간신히 반등에 성공하였다. 포심 구사율을 20%대까지 떨어뜨리고 투심을 장착한 것이 반등 요인으로 꼽히는데, 실제로 2023 시즌 첫 세 경기에서 장원준의 인플레이 타구 가운데 땅볼 비율은 57.1%에 이른다.[26]

4. 여담

4.1. 별명

4.2. 연애사

4.3. 소속 팀 관련

5. 관련 문서


[1] 좌완으로는 최초이며 전체로는 이강철, 양현종과 타이기록. 기간이 12년인 이유는 2012년, 2013년에 경찰 야구단 군복무로 인해 1군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2] 7세 때 부산광역시로 이사를 간 후 FA 이전까지 거주하였다. 두산 베어스 이적 이후 가족들은 부산에 잔류하고, 본인만 서울로 이동했다. 결혼 이전까지는 자취 생활을 한 것으로 추측. [3] 2006~2018년. 신인 시절인 2004~2005년에는 대체 선발 및 중간 계투로, 노쇠화가 심해진 2018년 이후부터는 좌타자 원 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되었다. [4] 2008~2017 시즌. 군 복무 기간인 2012, 2013년은 제외. [5] 평균 142km/h.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130km대 후반이 찍힌다. 롯데 시절에는 최고 구속이 150km/h까지도 나왔지만 두산 이적 이후 최고 구속 147~148km/h 정도로 약간 줄었다. 17 시즌 이후 노쇠화가 오면서 구속은 서서히 감소하고 있다. [6] 롯데의 코치들이 슬라이더 말고는 당최 변화구를 가르치질 못 해서 한동안 봉인하다시피 했다. 입단 초기 모든 구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구사하는 것으로 기대를 받았던 걸 생각하면 롯데 코치진의 무능은 무서울 정도다. [7] 같은기간 1위는 배영수가 기록한 1,377이닝. 물론 류현진이 보다 늦게 데뷔하고 일찍 미국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7년간 1,269이닝, 연평균 181이닝. [8] 본인도 본인의 장점을 잘 알고 있는지,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상당한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5 시즌 5월 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팔꿈치 통증으로 인해 조기강판된 후 선수 보호 차원에서 2군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로테이션을 한 번 거른 적이 있었는데, 이것을 시즌이 끝난 후까지도 하는 인터뷰마다 팀에게 미안하다고 주구장창 말하고 있다. 3월 말부터 10월 말까지 계속된 시즌 도중 그가 로테이션을 걸렀던 적은 이 때 딱 한 번 뿐인데도 2015년의 두산에서 한 시즌 내내 로테를 꾸준히 지켜준 선수는 유희관과 장원준 딱 둘 뿐인데도 그 때도 한 번 거른 게 미안하다고 줄창 사죄하고 있는데, 두산 팬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잘 데려왔다며 찬양하는 동시에 이제 그만 좀 미안해하라며 핀잔을 주고 있다. [9] 이런 꾸준함은 고교시절부터 혹사당하지 않고 잘 관리받았기 때문이다. 롯데 자이언츠 외야수 출신이자 추신수의 은사로도 유명한 조성옥 감독의 공이 컸다. 물론 아마에서 관리받은 선수도 프로에서 더 강하게 더 많이 던지다 보면 탈이 나기 일쑤인데 장원준은 결국 타고난 몸, 부모님께 감사해야 하는 게 가장 크다. [10] 2006~2012년 이닝, 다승 부문에서 류현진의 뒤를 이어 2위이고 2015 시즌까지 포함하면 8시즌 연속 규정이닝을 찍었다. [11] 원래 인터뷰를 보면 거침이 없는 편이다. 짜증을 내며 '그냥 '장롤코라고 쓰세요' 라고 가버린 적도 있다. 위 포스트 시즌 인터뷰에서도 기자들이 달라붙으니까 짜증이 난듯. [12] 그런데 두산에 와서는 퀄리티스타트를 찍고도 패전을 떠안는 경우가 많았다. 0자책 3실점 패전도 있고, 심지어는 완투패도 있다. [13] 그래도 다행히 이적 2년차인 2016년에는 경기당 5.84점으로 나아진 득점지원을 받고 있다. 사실 이 득점지원은 규정이닝 선발 투수 중 10위로, 두산 선발 4명 중에서는 압도적인 최하위인데, 2016년이 타신투병 리그이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 봐도 두산 타선이 워낙에 미친 시즌이였다. 참고로 같은 해 다른 선발들의 득점지원은 더스틴 니퍼트 8.93(리그 1위), 마이클 보우덴 7.40(리그 2위), 유희관 6.97(리그 4위). [14] 공교롭게도 두 장면 모두 앞서 언급된 장원준의 1~2회 약점과 3회 이후의 호투가 잘 드러난다. 앞 장면은 1회 말에 이미 2실점, 두번째 장면은 2회 말에 2실점이 기록되어있는데, 정작 경기 기록을 보면 앞 경기는 1회에만 29개를 던지며 2실점한 이후로 6이닝을 공 80개로 막아내며 7이닝 2실점으로 QS+를 기록하고 승리를 챙겼다. 두 번째 경기는 비록 패전투수가 되기는 했지만 6이닝 3실점(비자책)으로 역시나 QS를 기록했다. [15] 선수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도 있지만 롯데팬들 입장에서는 장원준의 큰 장점 중 하나였다. 팀 팬에게는 이대호의 해외진출 만큼 큰 전력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16] 잡아당겼다 때리는 송승준의 투구폼은 오버핸드 투구폼 중 가장 부상을 입기 힘들고 안정적이다. [17] 장원준의 투구폼을 분석한 영상 자세가 굉장히 깔끔하다. 또한 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던질 때의 투구폼이 똑같다. 바꿔 말하면 소위 말하는 쿠세가 없어 어떤 구종을 던질 지 투구폼만 봐서는 타자가 읽을 수 없다는 뜻. 해설위원 양준혁이 아무리 봐도 똑같다며 감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8] 여기에 10시즌 연속 규정이닝 소화는 덤. [19] 특히 김동주가 거의 자판기에 돈 넣고 치는 것처럼 쳤다. 눈 감고 쳐도 치겠다, 방망이 거꾸로 들어도 상대타율 3할은 나오겠다 등 별의 별 드립이 난무했다. 롯데 시절 가을야구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두산 때문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가을엔 만날 때마다 털렸으니 [20] 고졸 선수가 최대한 빨리 FA를 신청할 수 있는 나이는 세는 나이로 28세(빠른년생은 27세)로, 1년차부터 주전 + 꾸준히 풀타임에 가까운 활약 + 병역 면제 or 특례가 모두 갖춰져야 가능한데, 장원준은 병역은 수행해야 했지만 1년차부터 주전으로 꾸준히 뛰었고, 그로 인해 세는 나이 30세라는 꽤 젊은 나이에 FA 자격을 확득할 수 있었다. 참고로 저 세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하고 FA 자격을 얻은 선수는 극히 드문데, 저 세 조건이 모두 달성하기 어려울뿐더러 저걸 모두 달성하는 수준의 선수라면 KBO에서는 최정상급 선수라는 의미인 만큼 해외팀에서 눈독을 들여 포스팅으로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경우가 많다. 류현진이나 김하성이 대표적. 드문 사례라면 김현수가 세는 나이로 28세에 FA 자격을 획득했는데, 김현수는 빠른년생이라 27세에 취득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1년차에 1군에서 거의 뛰지 못했기에 정작 앞서 언급한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했다. 그나마도 김현수도 그렇게 빠르게 FA자격을 획득하고 바로 미국으로 날아가면서, 국내 구단을 대상으로 행사한 FA는 사실상 30세때 한 것이 처음이다. [21] 개인기록은 6경기 2승 3패 1ND, 경기당 보통 1~2점만 주는 데도 이런다. [22] 2015년에 이런 현상이 심했고 그 뒤로 잘 던진 적이 더 많았는데 17,18년 각각 1승씩밖에 추가못했고 패는 3패. 군 제대 후 2021 시즌 올림픽 휴식기 직전까지 114이닝을 던지고 5승 7패 평균자책점 3.71을 마크하고 있다. 그가 거쳐온 소속팀들의 타격이 항상 리그 최상급이었으며, 롯데 시절이었던 2014년을 제외하면 매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정도로 리그 최강 전력을 유지했던 두산에서 뛰었음을 감안하면 LG의 강한 투수진을 고려해도 대단히 운이 없는 편. [23] 2016년까지 한정. 2017년 이후는 오히려 한화에 털리고 있다. [24] 사실 이 날도 6이닝 4실점 3자책 QS를 기록했다. [25] 물론 130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것은 사람의 팔에 큰 무리가 가는 행동이고 선수 생활을 오랫동안 한 만큼 이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26] 국내 스탯 사이트의 가운데 땅볼/뜬공 비율을 제공하는 사이트에서도 실제 땅볼과 뜬공이 아닌 땅볼아웃/뜬공아웃의 비율을 사용하고 안타나 장타가 된 타구는 포함하지 않는다. 57.1%라는 기록은 안타/장타가 된 타구의 땅볼/뜬공 여부까지 직접 계산해 포함한 결과값이다. [27] 미국 일리노이 주 출신이다. [28] 말리러 나가면서 넘어졌다고 한다. [29] 실제로 내향적인 성격이라고 한다. [30] 1호는 옥스프링(타자/ : 나지완), 2호는 레이예스(타자 : 박석민) [31] 앞서 서술한 옥스프링과 레이예스는 심판의 퇴장명령과 동시에 타자를 쳐다보지도 않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32] 다만 유희관은 본인의 주장으로는 본인이 소극적으로 변한 것이 아닌 이때부터 자가용 차를 타고 출근했기 때문에 팬들을 많이 보지 못해서 싸인해줄 일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33] 22시즌 어린이날 매치가 끝나고 김명신 등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에 끝까지 남아서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 [34] 두산의 FA 선수 영입으로는 장원준 전으로 홍성흔, 후로 양의지가 있으나, 이 둘은 데뷔를 두산에서 하였고, 어떻게 보면 유학생이나 다름없는 반면 장원준은 아예 롯데에서 데뷔를 했고, 두산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적을 하였다. [35] 같은 이유로 고효준고롤코라는 별명이 있다. [36] 대체적으로 여름 즈음. [37] 훗날 이 별명은 4년 88억을 요구한 그의 절친 정우람에게도 정88로 쓰이게 된다. [38] 반페르시와 유사한 점이 꽤 있는데 유망주 시절 애증의 존재였지만 기량이 상승한 이후엔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 이적 과정에서 잡음을 일으키고 이적한 점 그리고 작은 아이 드립과 환경 발언처럼 팬들에게 안좋은 인상을 남긴 코멘트까지 남긴 점. [39] 대대로 내야 돌글러브 속성이 있다. 2017년 현재도 이대호, 최준석 몸무게 브라더스에 문규현이 주전 유격수에 2루수는 외인이다. 그 외인이 오기 전까지는 2루수가 정훈이었다. [40] 원준 잘 샀 [41] 일명 'G컵 가슴녀'. 2012년에 써니데이즈라는 걸그룹의 일원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당연하지만 크리스탈과는 다른 사람. [42] 박건우의 둘째누나가 굉장히 많이 닮았다. [43] 당시 회장에 후보자들의 자리는 2층에 따로 마련해놨기 때문에 떨어져 앉아야 했다. [44] 한때 두산 투수진 중 보우덴을 제외하고 장원준화 됐었다. [45] 이는 장원준이 선발 로테이션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토종 선발과 외인 선발 구별없이 해당되는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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