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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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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66 강성우 · 70 유재신 · 72 김민호 · 73 정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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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임훈 · 86 조세범 · 88 김태형 [[틀:롯데 자이언츠 감독|
]] · 90 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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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임경완 · 80 백용환 · 83 이병규 · 89 문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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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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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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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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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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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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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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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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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 자이언츠 강성우 코치.jpg
<colbgcolor=#041e42><colcolor=#fff> 롯데 자이언츠 No.66
강성우
姜盛友 | Kang Sung-Woo
출생 1970년 1월 5일[1] ([age(1970-01-05)]세)
부산광역시 서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신초 - 대신중 - 경남상고 - 단국대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2년 1차 지명 (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2~2000)
SK 와이번스 (2001~2005)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2006~2009)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0~2011)[2]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1)[3]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2)[4]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2)[5]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2013~2014)[6]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14)[7]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2015~2016)
kt wiz 1군 배터리코치 (2017~2018)
kt wiz 2군 배터리코치 (2019~2020)
KIA 타이거즈 2군 배터리코치 (2022)
롯데 자이언츠 1군 배터리코치 (2024~)[8]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2009)
해설위원 스포카도 야구 해설위원 (2021)
경력 KBO 재능기부위원 (2023~2024)
KBO 전력강화위원 (2024)
가족 배우자 이강희, 딸 2명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프로 경력
3. 지도자 경력4. 해설자 경력5. 기타6. 연도별 주요 성적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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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포수이자 前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現 롯데 자이언츠 1군 배터리 코치.

롯데 자이언츠에서 10년 가까이 활약한 프랜차이즈 포수로, 데뷔 시즌부터 1군에서 활약하며 팀 선배 김선일과 포수 자리를 나눠 맡았고,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1970년 1월 5일 부산광역시 출신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여 대신초등학교에서 야구를 처음 시작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고 야구를 몰래하다 결국 들켜 야구를 관뒀다. 중학교를 운 좋게도 야구부가 있는 부산대신중학교를 배정받았고 마침 야구부에 포수가 부족해 1학년 2학기 때 다시 야구부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경남상업고등학교에는 안병환 감독에 의해 3루수로 전업할 뻔했으나 당시 고등학교를 순회하던 김성근이 포수로서의 가능성을 높게 봐서 다행히 안방을 지킬 수 있었다. 전국대회 4강 3회 그리고 우승 1회를 경험했고 청소년대표에도 선발됐다.

단국대학교(1988학번)에 입학하면서 아시안게임, 대륙간컵,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활약상을 인정받아 1992년 롯데 자이언츠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2.2. 프로 경력

파일:external/dimg.donga.com/42881275.8.jpg
롯데 자이언츠 시절.[9]

입단 첫 해 주전 포수 김선일의 백업 포수로 뛰면서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포수로서 .303의 타율을 기록하고 준수한 수비로 존재감을 뽐냈다. 하지만 첫해가 커리어하이 될지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해 1992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포함되어 비록 경기에 출전은 못했지만 롯데의 두 번째 우승의 순간을 함께 했다.

이듬해인 1993년은 방위복무와 병행하느라 출전 경기수도 대폭 줄었고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전역 후 맞이한 1994년은 김선일과 포수 마스크를 번갈아 쓰며 사실상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1995년은 상무에서 제대하고 전해 롯데에 입단한 동갑내기 포수 임수혁 마해영과 마림포를 결성하고 장타력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강성우 본인은 정규시즌에서 타율 .222에 그치는 등 예년보다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수비에 있어서는 임수혁보다 한 수 위였기에 꾸준히 중용되었으며, 특히 이 해 포스트시즌 LG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정규시즌 20승에 빛나는 당시 최고의 좌완투수 이상훈으로부터 2회초 선제 3점 홈런을 날리고[10] 연장전에서 결승 적시타를 때리는 등 타격에서 5타수 3안타 5타점으로 펄펄 날고, 수비에서도 기가막힌 홈 블로킹으로 득점을 위해 홈으로 달려드는 LG 주자들을 무려 세 차례나 횡사시키는 등의 엄청난 활약으로 팀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강성우 역대 커리어 단일경기 최고의 퍼포먼스로 종종 회자된다. [11]

90년대 후반까지 준수한 수비력으로 인해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롯데의 안방을 지켰고, 1999년에 차명주를 내주고 트레이드로 영입한 최기문이 가세했음에도 수비력을 인정받아 본인의 한 시즌 최다 경기인 112경기를 출전했다. 이 시즌 팀도 한국시리즈 준우승의 성과를 거뒀고 시즌이 종료된 후 차기 시즌 주장으로 선출된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0년은 주장이었음에도 최기문에게 주전 포수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나 출전 경기수가 51경기로 크게 줄어들었다. 타격에서도 .192의 타율에 그치며 크게 부진했다. 결국 2000년 시즌 후 포수 손석만을 상대로 SK 와이번스에 트레이드됐으며 그 이후 한동안 고향 팀이자 친정 팀인 롯데에 돌아오지 못했다.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1081323164421754_900.jpg
말년을 보낸 SK 와이번스 시절.

2001년부터 SK 와이번스에서 뛰기 시작했다. 당시 SK의 선수층이 얇았던 데다, 전년도까지 주전 포수였던 장재중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자 강성우가 SK의 주전 포수가 됐고, 트레이드 첫 해인 2001년 110경기에 출전했지만 KBO 역대 최악의 포수라 불리며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타율도 1할 6푼을 치며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12]

결국 SK는 삼성 라이온즈와 FA 계약이 아직 남아 있던 김동수를 트레이드로 데려와 포수 자원을 메꿨고 덕분에 1년만에 주전에서 다시 밀려났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2002년 시즌 후 조범현 감독이 부임하는 과정에서 현대 유니콘스에서 FA로 풀린 박경완을 영입했고, 심지어 백업 포수마저 유망주였던 정상호와의 경쟁 면에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13][14] 결국 2군을 전전하다가 2005년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지만 FA를 신청하지 않았고, 구단에서 임의탈퇴 공시되면서 쓸쓸하게 은퇴했다.

현역 시절에는 경기의 흐름을 읽는 센스, 투수 리드, 근성, 정확한 견제구 등 나쁘지 않는 수비를 갖췄다. 하지만 타격과 주루능력은 수준 이하였고 몇몇 해를 제외하면 2할 3푼조차 넘긴 해가 없는지라 통산 타격은 최악이다. 선구안도 않좋고 장타능력은 거의 없었으며 심지어 100타석 이상 나와서 1할을 친 시즌만 무려 4번이나 된다. 게다가 1992년과 1994년은 포수치고 준수했으나 1999년은 타고투저라 wRC+가 60도 안 된다. 통산 2000타석 이상 선수 중에서 장타율, OPS, wRC+는 꼴찌고 출루율도 허준에 이어 뒤에서 2위다. war은 뒤에서 3위, 그럼에도 많은 출장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것은 롯데와 SK의 포수진이 열악했던 것도 한 몫 했다.[15] 롯데 팬들 사이에서는 박종윤과 함께 최악의 선수라고 꼽히고 있다.

3. 지도자 경력

3.1. 삼성 라이온즈 1기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4111402742_0.jpg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 시절.
삼성 라이온즈 No.83
강성우(姜盛友)

현역 은퇴를 선언한 후 삼성 라이온즈의 배터리 코치를 맡아 2006년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투수의 쿠세(버릇)을 읽는 능력이 뛰어나다. 선수로서 은퇴한 후, 배터리코치로 삼성에 들어갈 때 SK를 상대로 영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 주던 삼성의 승률을 확 뒤바꿔 놓았을 정도.[16]

특히 강성우 코치의 능력이 더욱 돋보였던 건 2006년 7월 6일 대구 경기. 이 날 SK의 조범현 감독은 지난해와 달리 삼성에 밀리며 삼성전에 8연패를 기록하자, 당시에 무명이었지만 삼성 킬러로 삼팬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좌완투수 고효준을 선발로 기용했다. 여태껏 삼성 타자들은 고효준을 상대로 매번 끌려다니기만 했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원래 제구력이 들쭉날쭉했던 고효준이 자멸하도록 기다려 고효준을 조기 강판시키고 곧이어 구원 등판한 송은범마저 난타하며 2회말에만 선발 전원이 득점을 기록하는 등, 17:1로 대승을 거뒀다.[17]

2009년에는 WBC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대표팀의 배터리코치를 맡았다. 본인에 의하면 대표팀 코치 제안이 들어왔을 때 꿈인 줄 알았다고.

3.2. 한화 이글스

한화 이글스 No.82
강성우(姜盛友)

2009년 시즌 후 한대화 삼성 수석코치가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한화 이글스의 배터리코치로 스카웃되었다.쿠세를 읽는 기술뿐만 아니라 배터리코치로서의 능력도 뛰어나서 한화로 이적할 때 삼성 팬들이 몹시 아쉬워했다.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으로 2군 배터리코치를 맡았으나, 2012시즌 종료 후 김응용 감독이 부임하면서 계약 해지 수순을 밟았다.

3.3. 두산 베어스

두산 베어스 No.72
강성우(姜盛友)

2012년 10월 23일 김민재, 문동환과 함께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었다. 보직은 1군 배터리코치.

잠실에서 열린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정명원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와 작전 지시를 한 후, 파울라인 안으로 들어 와 최재훈에게 작전 지시를 하여 당시 선발이자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강했던 유희관이 조기 강판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파울 라인 안 으로 들어 온 것이 코칭스태프의 마운드 방문으로 인정 되어 한 이닝에 2번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올 경우 투수를 반드시 교체 해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되었기 때문인데, 코치가 야구 룰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선발 강제 강판의 원인을 제공 하였기에 강성우 코치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18]게다가 이것이 나비 효과가 되어 삼성 라이온즈에 1승을 내주었고, 결과는 역스윕. 그리고 김진욱은 이에 책임을 지고 목이 날아갔다!

2014 시즌 들어 투수들이 난타를 당하며 권명철 투수코치와 함께 책임자 신분으로 까이던 중, 6월 24일 자로 김진수 2군 배터리코치와 자리를 맞바꾸게 되었다. 보도자료는 아직까진 없지만 쇄신 차원에서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즌 후 두산 베어스와 재계약에 실패했다.

3.4. 삼성 라이온즈 2기

삼성 라이온즈 No.83
강성우(姜盛友)

2014 시즌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한 세리자와 유지 배터리코치의 후임으로 안현호 단장이 직접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다시 옛 친정 팀으로 돌아온 기분이다"라고 소감을 밝혔지만,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등에서는 선동열 강점기 시절의 배터리코치였다는 이유로 인해 싫어하는 의견이 있다.

일단 2015 시즌은 상당히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지영 이흥련 모두 도루저지율이 리그에서 최상위권을 다툴 정도로 일취월장했고, 그 외 수비 기본기가 역시 많이 좋아져 진갑용이 마음놓고 은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이 진행될수록 볼 배합 문제[19]로 투수들이 흔들리면서 나쁜 쪽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극단적으로는 김태한과 동급 혹은 그 이하로 묶은 사람이 있을 정도.

결국 본인을 다시 삼성으로 부른 안현호 단장의 해임을 시작으로 찬바람이 불던 2016 시즌 후, 삼성이 세리자와 유지 배터리코치를 다시 부르면서 재계약에 실패하고 물러났다. 그 후 김진욱 감독의 부름을 받아 김용국 수비코치와 함께 kt wiz에 합류했다.

3.5. kt wiz

2017~2018시즌까지는 1군 배터리 코치를 맡고, 2019~2020시즌까지는 퓨처스리그 배터리 코치를 맡고 팀을 떠났다.

3.6. KIA 타이거즈

2022 시즌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의 신임 2군 배터리 코치로 임명되었다. 이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으며, 2023년부터 KBO 재능기부 담당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2024년 KBO 전력 강화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3.7. 롯데 자이언츠

2024년 8월 2일 소리소문도 없이 친정팀 롯데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한 것이 확인되었다.[20] 2000년 롯데를 떠난 이후 무려 24년만에 친정팀 복귀. 그리고 당일 롯데의 1군 배터리코치로 콜업되었다. 등번호는 66번이다.[21]

4. 해설자 경력

2021년에는 스포카도에서 퓨처스 리그 해설을 맡았다.

5. 기타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2 롯데 94 201 .303 61 11 1 2 31 25 0 19 .398 .362
1993 62 149 .195 29 4 0 1 18 6 0 9 .242 .236
1994 76 189 .286 54 10 2 0 23 14 2 8 .360 .310
1995 75 158 .222 35 4 1 0 12 13 2 10 .259 .266
1996 43 145 .221 32 5 1 2 21 13 1 18 .310 .305
1997 79 171 .199 34 4 0 0 13 10 2 11 .222 .245
1998 73 133 .158 21 2 2 0 5 9 0 7 .203 .199
1999 112 191 .283 54 6 1 1 17 12 0 7 .340 .305
2000 51 78 .192 15 0 0 0 3 5 0 5 .192 .241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1 SK 110 188 .160 30 7 0 0 13 11 2 16 .197 .226
2002 62 88 .216 19 2 0 0 8 2 0 2 .239 .228
2003 39 53 .264 14 1 0 0 3 5 0 4 .283 .316
2004 30 25 .160 4 1 0 0 0 4 0 2 .200 .222
2005 22 18 .278 5 4 0 0 0 1 0 0 .500 .278
KBO통산
(15시즌)
958 1787 .228 407 61 8 6 167 130 9 118 .281 .273

7. 관련 문서


[1] 음력 1969년 11월 28일 [2] ~5월 5일 [3] 5월 6일~ [4] ~5월 11일 [5] 5월 12일~ [6] ~6월 24일 [7] 6월 25일~ [8] 8월 2일~ [9] 얼굴 찌푸리며 슬라이딩 하는 선수는 정수근 [10] 95시즌 패넌트레이스에서는 홈런이 없다. [11] 그당시에는 포스트시즌 데일리 MVP 수상이 없었는데 있었다면 MVP가 될수 있었다. [12] 장재중도 좋은 포수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최악을 기록했다. [13] 이 과정에서 김동수 양용모가 SK에서 방출당했다. 사실 김동수는 삼성 시절부터 당시 삼성 배터리코치였던 조범현과 갈등이 있었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 조범현이 하필 SK의 감독으로 온 데다 박경완을 영입해달라는 요구가 컸다 보니 방출을 피할 수 없었다. 이후 양용모는 그대로 은퇴했고, 김동수는 현대에 입단해 박경완의 공백을 메우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며 보란 듯이 부활한다. [14] 사실 양용모와 강성우 둘 중 하나를 방출하려 했지만 강성우가 좀 더 어려 간신히 방출을 피할수 있었다. [15] 김선일도 war이 음수일 정도로 최악의 포수 였으며, 임수혁은 타격은 좋으나 수비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롯데는 최기문이 오면서 10년 넘은 포수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 SK는 창단 3년간 포수쪽이 압도적으로 구멍일 정도... [16] 강성우가 박경완과 함께 포수를 보던 2005년까지 삼성은 지난 3년간 SK를 상대로 24승 4무 28패로 열세였지만, 강성우가 배코로 온 2006년에는 13승 5패로 뒤집혔고, 김성근 감독 부임 첫 해이자 SK가 통합 우승을 따낸 2007년에도 8승 2무 8패로 다른 팀들이 탈탈 털리는 와중에서도 유일하게 상대 전적에서 동률을 만들었다. [17] 덧붙이자면 이 날 박살난 고효준이 다시 삼성에게 복수하기까지는 무려 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18] 룰을 숙지했다면 시리즈 향방은 달라졌을것이다. [19]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하이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한다. 첫해로는 쏠쏠히 재미를 봤으나 2016년 현재 타 팀도 이 카운트 승부를 다 알기에 흘러보내어 볼카운트를 불리하게 만들거나 아예 노리고 장타를 만들어낸다. 투수진의 피홈런이 늘어난 이유가 구장의 문제, 투수진의 기량 저하가 가장 크나 볼배합 문제도 크다. 또한 작년 백업포수 역할을 잘 해준 이흥련의 추락도 한몫하나, 이흥련은 미필이고 선수 본연의 문제일 수도 있기에 간간히 언급된다. [20] 구단 공식 오피셜은 다음날인 8월 3일에 보도되었다. # [21] 우연히도 바로 뒷 번호 67번 선수도 동명이인인 강성우이다. [22] 당시 실업단과 금융단으로 나뉘어져 있었을 시절 금융단쪽을 대표하던 포인트가드 였고 팀의 레전드였지만 전형적인 국내용 선수라는 평가가 많았던 선수였다. 확실히 국가대표로는 실적이 없었으며 이강희가 활동하던 시기는 농구붐 시대였는데 이때 포인트 가드 포지션에 엄청난 선수들이 많았던지라...더군다나 힘은 있었지만 발이 느린편에 피지컬이 썩 좋은편도 아니어서 국제무대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 타입이기도 했다. [23] 그랬다고 하지만 이강희 선수도 충분히 리그에서 A급 선수였다. 늘 두자리수 득점이 보장되었던 선수. [24] 스포터라고 불리는 직업이고, 경기 중에 득점이나 리바운드 등의 기록 이벤트가 벌어지면 마이크를 통하여 각 기록원의 귀로 전달해주는 직업이다. 농구는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직업이며, 현재 활동하고 있는 5명 모두 선수 출신 여성이다. [25] 구대성은 대전고와 한양대를 졸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