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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16:43:12

장원준/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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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아마추어 시절3. 롯데 자이언츠
3.1. 2004 시즌3.2. 2005 시즌3.3. 2006 시즌3.4. 2007 시즌3.5. 2008 시즌3.6. 2009 시즌3.7. 2010 시즌3.8. 2011 시즌
3.8.1. 포스트 시즌
3.9. 경찰 야구단
3.9.1. 2012 시즌3.9.2. 2013 시즌
3.10. 2014 시즌3.11. FA
4. 두산 베어스5. 국가대표 경력6.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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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 소속 좌완 투수 장원준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7세에 부산광역시로 이주했다. 수영초등학교를 거쳐 대동중학교에 입학해 정우람과 함께 뛰었다. 대동중학교를 졸업하면 경남고등학교 야구부로 많이 가나 부산고등학교 야구부의 저인망식 스카우트[1]로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로 진학한다.[2]

1학년 때인 2001년부터 전국대회에 출전해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기록했다. 부산고에 걸출한 투수들[3]이 워낙 많아 장원준의 어깨에는 부담이 덜 갔지만 워낙 투수교체를 자주 했던 조성옥 감독의 특성상 모든 투수들이 과부하가 걸리기도 했다.

좋은 전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4대 메이저 전국대회(대통령배, 황금사자기, 청룡기, 봉황대기) 우승에는 실패했다.

3. 롯데 자이언츠

3.1. 200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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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

신인인 2004년부터 불펜투수 및 가끔 선발투수로 중용됐다. 신인답지 않은 기량이어서 기용된 것이 아니라 팀 리빌딩의 일환으로 당시 양상문 감독이 밀어주기를 했던 것. 그 때는 체구도 지금 모습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70kg도 되지 않는 깡마른 체격이었고, 나왔다 하면 볼질에 안타를 맞아 시즌 초 반짝 잘나갔던 롯데 추락의 원인제공자 중 하나로 취급되어 많이 까였다. 다만 시즌 초 잠실 LG와의 원정경기에서 구원등판했다가 끝내기 안타를 맞고 패전투수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고스란히 중계카메라에 잡혀 의외로 근성있는 녀석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주로 구원으로 기용되었지만 이따금 선발로 등판해서 깜짝 승리를 따내는 등 나름 가능성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3.2. 2005 시즌

2005년부터는 체중을 늘리고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기 시작. 기복이 심했지만 소위 긁히는 날은 굉장한 호투를 해 주었고 심지어 노히트노런 달성 직전까지 간 경기도 있었다. 7월 26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말 1사 상황에서 이종범의 1-2루간 깊숙한 타구를 1루수 라이온이 잡았지만, 장원준의 1루 베이스 커버가 늦어지면서 내야 안타를 허용해 안타깝게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지 못하였다. 만일 노히트 노런을 했었다면 역대 최연소 노히트노런 기록이었다.

롯데 자이언츠 입단 후 감독이었던 양상문은 기본적인 투구 폼조차 제대로 장착시키지 못해 몇 번이나 투구 폼을 수정하며 헤매고 다녔고[4] 강병철 감독이 재임한 후에야 박동수 코치에 의해 하체를 이용하는 법을 배워 제대로 된 투구 폼을 장착하고 무한한 기회를 부여받으며 에이스 수업을 쌓게 된다.

3.3. 2006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179이닝)을 소화하며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를 받았다.

3.4. 2007 시즌

완전히 포맷되면서 강병철호 몰락의 일익을 담당했다.

3.5. 2008 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한 후 장원준을 지도한 페르난도 아로요 투수코치는 스트라이드를 좁히고 상체 위주의 피칭을 하게끔 장원준의 폼을 뜯어고쳤다. 이런 상체 위주 투구폼은 유연성과 내구성이 좋은 서양 선수들이 잘 구사하는 폼으로 상대적으로 내구성이 떨어지는 동양인 선수들에겐 좋지 않은 폼이다.

입단 후 스스로 혹은 감독의 지도 하에 천천히 다듬어 장착시킨 투구 폼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스스로의 스윙에 맞게 타점과 릴리즈 포인트를 정착시킨 류현진, 김광현과 달리 장원준의 폼은 양상문과 아로요 때문에 5~6번은 흔들렸고 이로 인해 아직까지 바깥쪽 패스트볼 제구조차 제대로 다듬어지지 못했다. 신발을 발에 맞추지 않고 발을 신발에 맞게 잡아당기기 일쑤인 현행 국내리그 투수코치들로부터 가장 큰 피해를 본 케이스.[5]

여기에 아로요 코치는 다소 불안한 장원준의 커브를 봉인하고(장원준은 본래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질을 구사했던 투수였다.) 체인지업을 실전용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서 장원준은 패스트볼-슬라이더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투 피치 투수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게 한동안 슬라이더가 안 긁히는 날에는 무조건 털리는 일이 빈번했으나 아로요가 떠나고 가득염, 주형광 라인이 자리잡으면서 훨씬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9년 동안 전경기 선발투수로 출전한 상태이다.

3.6.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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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과 함께 롯데 자이언츠의 좌우 원투 펀치를 이루었다.

2009 시즌은 13승 8패 평균자책점 4.15, WHIP 1.58을 기록. 4년 연속 150이닝, 100탈삼진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평균자책점이 높은 건 초반 몇 경기를 크게 말아먹은 탓. 2009년까지 그의 기록을 잘 살펴보면 시즌을 통틀어 거대한 롤러코스터를 형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봄에 부진하다가 4, 5월 들어 날이 따뜻해지면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 여름에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가을에는 5이닝도 채 못 버티는 투수가 된다.[6]

3.7.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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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선발로 등판해서 홈런 3개를 맞은 것을 포함해 5이닝 8피안타 4실점 했고, 승리투수 요건은 갖추었다. 다만 롯데는 승리투수는 만들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경기를 졌다... 피홈런 10개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즌 초였고 당시 타자보다 홈런이 많았다.

그리고 육성 과정에서 양상문화가 이루어졌다. 쉽게 말해 오버핸드 스로였던 선수를 쓰리쿼터로 뜯어 고쳤다. 스트라이드를 더 좁혀서 이전보다 더 상체 위주의 피칭을 하게 만들어 속구 구위는 조금 끌어올렸지만 릴리즈 포인트와 탄착점을 못 잡아서 변화구는 좀 더 퇴보했다.[7] 그나마 제구력이 잡혀서 볼넷 남발은 확실히 줄었다. 그리고 여름부터는 양상문이 손대기 이전으로 스트라이드가 다시 벌어졌고 성적이 좋아지고 있다.

4월 15일 넥센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시즌 첫 완봉승.

팀 내에서는 다른 투수들이 모두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역시 확고한 2선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성적이 몇 년 간 꽤 꾸준하게 나오고 있긴 하지만 높은 방어율과 롤러코스터성 피칭 때문에 팀이 경기를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 등 리그에서 손꼽히는 좌완들이 버티고 있고 미필자 중에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대표로 발탁될 지의 여부는 미지수. 그나마 미필 좌완 중 삼성전에만 강했던 이현승이 완전히 무너졌고 시즌 초 양현종이 작년만 못해서 시즌 전보단 전망이 밝았으나 양현종이 10연승을 달리며 아시안 게임이 멀어지고 있다. 게다가 아직 긁히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가 극명하게 심하다. 긁히는 날에는 완봉도 하지만 안 되는 날에는 그 경기 방어율 5점대 이상 찍는 건 일도 아니다.[8] 실제로 3연승에 이은 4연승에 도전하던 6월 29일 삼성전에서 2이닝 6실점으로 패전투수, 7월 4일 LG전에서는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는 등 여전히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그 튼튼한 장원준이 7월 15일 넥센전에서 허리 통증으로 1타자만 상대하고 교체되어 롯데 팬들이 걱정하고 있다. 병원에서 정밀 진단 결과 스트레스성 근육통. 일단 2군으로 내려간 상태이며, 올스타 휴식기가 끝난 후 등판 예정이다.

올스타전 이후 첫 등판인 8월 8일 한화전에서는 2⅓이닝 동안 3안타 3볼넷, 3 몸에 맞는 볼을 남발하며 3자책점으로 자멸했다.

그러다가 열애 관련 기사가 나온 후인 8월 14일 KIA전에서는 6⅔이닝 동안 2자책점으로 승리를 거머쥐며 송승준에 이어 팀 내에서 2번째로 10승을 달성했다.

8월 20일 두산전에서는 5⅓이닝 동안 7피안타 3피홈런 5자책점으로 화끈하게 털렸으나 타선이 폭발한 덕분에 패는 면했다.

8월 27일 두산전에서 3⅔이닝 동안 6피안타 1피홈런 3볼넷 4실점(2자책)으로 또다시 화끈하게 털렸으나 이번에도 타선의 도움으로 패는 면했다. 그리고 두 날 모두 팀은 승리.

9월 3일 KIA전에서 3이닝 동안 4피안타, 1피홈런, 4볼넷으로 3실점(3자책)으로 또 화끈하게 털렸지만 연달아서 또 폭발한 타선 덕에 패는 면했다.

9월 9일 LG전에서 1회부터 볼넷 2개를 주고 흔들려 만루상황을 연출하나 싶었는데 7이닝 동안 7삼진을 잡고 2피안타 밖에 내주지 않아 강우콜드로 2번째 완봉승을 거뒀다.

9월 18일 한화전에서는 8이닝 1실점 호투와 타선의 지원으로 12승을 따냈다.

2010시즌 정규시즌 기록은 26경기 144⅓이닝 12승 6패 평균자책점 4.43, WHIP 1.43. 득점지원 7.51(1위) 피홈런 24개.

2008년, 2009년의 준플레이오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2010년에는 이재곤, 김수완에 밀릴 정도였지만 결국 2010년 페넌트레이스에서 10승을 이루었고 근래 좋은 모습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팀 선발진 중 유일한 좌완이기 때문에 준플레이오프 선발진에 합류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4⅔이닝 7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2K 2실점 2자책점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고, 팀은 이날 스코어 11:4로 대패했다.

10월 3일 경기가 장원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첫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였고, 팀은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3.8.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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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경기에서는 주로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했다. 변화구 각이 예리하고 제구도 제법 잘 잡혔다. 다만 그러다 보니 직구를 많이 던지지 않았는데, 직구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구위가 떨어져서 그렇다기보단 시범경기기 때문에 시즌 대비 차 변화구의 비율을 많이 늘린 듯. 시범경기에서도 0.93의 방어율로 상당히 호투했다.

4월 5일 대구 삼성전에서는 제구가 그다지 좋지는 못했지만 슬라이더의 각이 예리함을 믿고 5이닝 6피안타 1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나름대로 호투하였다. 예상보다 좀 빨리 내려갔는데 투구수도 좀 많았던데다[9] 물집이 있어서 였다고 한다. #

6월 10일 한화전에서는 7이닝 6피안타 1볼넷 5탈심진 2실점으로 호투하며 류현진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승리했다.

정말 그 동안의 롤코끼를 없앤 것인지 비록 시즌 초반이긴 해도 크게 기복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월 16일 SK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하여, 6월 18일 기준으로 박현준과 다승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다승 단독 선두를 노리며 등판했던 6월 23일 두산전에서 시작부터 불안한 상태로 출발하더니 결국 뒤에 올라온 고원준이 역전타를 맞으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여태껏 정상급 좌완이었던 류현진, 김광현의 부진과 반대로 눈부신 호투를 펼치면서 KBS의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도 했다. # ##

7월 들어서는 선발 당겨쓰기의 악영향인지 조금씩 피안타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8월 들어 9승을 찍고 10승에 도전했으나 몇 번씩 실패하다 8월 18일 KIA전에서 7⅔이닝동안 1실점하며 10승 달성에 성공했다. 또한 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4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 달성[10]과 함께 6년 연속 세자릿수 탈삼진 기록(역대 3번째)을 작성하게 되었다. 또 통산 70승 달성은 덤.

9월 30일 두산과의 홈 경기에서는 원래 선발인 라이언 사도스키가 2이닝을 채우지 못하고 강판, 그 뒤를 이어 2회 2아웃 상황에서 등판하였는데 급하게 올라와서 우려를 샀으나 마지막 9회초까지 7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15승을 달성하였다. 구원승이지만 거의 선발승이나 다름없었던 내용. 특히 이날 경기는 최동원의 추모 경기였기에 여러모로 뜻깊은 승리였다.

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180⅔이닝(3위) 15승(3위) 6패 129탈삼진(5위) 평균자책점 3.14(4위)로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3.8.1. 포스트 시즌

10월 16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왔는데, 초반 팀의 리드를 지켜내지 못하고 5이닝 96개 투구수 9피안타 1피홈런 2볼넷 3탈삼진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승패는 기록하지 못했고 팀은 이날 연장 10회 접전끝에 7:6으로 패하였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2패로 지던 10월 20일 인천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4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 크리스 부첵의 뒤를 이어 구원 등판하였다. 박정권을 공 하나로 병살타로 잡은 후 4회말을 마쳤다. 그리고 장원준은 이날 4이닝 5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였고 팀이 스코어 2:0으로 이겨서 이날의 승리투수와 MVP가 되었다.

10월 23일 사직 야구장에서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2:1로 지던 5회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송승준에 이어 2번째 투수로 등판했으나, 첫 타자이자 9번타자 임훈에게 안타, 1번타자 정근우에게 내야안타, 다음 타자 박재상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고 강판되고 말았다.
장원준의 다음 투수로 등판한 부첵이 폭투로 3루주자 정근우마저 홈으로 불러들인 후 박재상을 견제사로 아웃시키고 이닝을 종료하여 장원준은 이날 0이닝 3피안타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그리고 팀은 이날 스코어 8:4로 패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9이닝 13피안타 1피홈런 3볼넷 8탈삼진 6실점 6자책점 평균자책점 6.00, 1승을 기록하였다.

2011 시즌 종료 이후 경찰 야구단에 같은 팀 포수 장성우와 함께 입대했다. 작년에 이 정도로 던졌으면 2010 아시안 게임에 뽑혀서 병역특례를 받을 수도 있었기에 본인으로서나 팀으로서나 너무나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3.9. 경찰 야구단

3.9.1. 2012 시즌

2012 시즌은 경찰 야구단 입대로 자연히 퓨처스 리그에서 시작하였다. 2012 시즌 퓨처스리그 최종 성적은 37경기 출전 평균자책점 2.46 6승 4패 15세이브 4홀드 97탈삼진을 달성하며 같이 경찰 야구단에 입단한 장성우, 윤지웅과 함께 2군 무대를 평정했다. 평균자책점 타이틀은 덤.

한편 시즌 중에 홈런치고 세레머니를 했다던 나성범한테 빈볼을 던지기도 했는데, NC 팬들은 열불내는 모습을 보였지만 2군이라 알려진 게 거의 없었고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다.[11] 게다가 "세리모니가 과해서 1군에서는 그러면 안된다는 걸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랬다" 는 어이를 상실한 인터뷰를 해서 비난을 받았으며, 일부 팬들은 쉴드를 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과연 이 정도의 세리모니가 1군에서 이러면 안되는 정도인지는 영상을 보고 판단해주시길 바란다.

3.9.2. 2013 시즌

2013 시즌에 들어가자 경찰청 부동의 선발 노예로 굴렀다. 8월 10일 기준으로 경기당 7이닝 가까이 던지며 퓨처스리그 전체 다승, 이닝, 탈삼진, 평균자책점 모두 1위를 달렸다.

아무리 2군이라 100%로 던지지 않는다지만 롯데 팬들은 관리해줄 듯이 언플하더니 노예로 굴리는 유승안 경찰 야구단 감독을 미칠 듯이 깠다. 올해도 2군 무대가 좁다는 듯 스탯만큼은 화려하다.

2013년 9월 28일 제대하였다.

3.10.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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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FA

2014 시즌 후, FA로 나왔다. 이대호 일본프로야구 시절 소속팀 오릭스 버팔로즈가 장원준에게 관심을 보이며 해외진출설도 잠깐 나왔다. #

그리고 두산 베어스4년 총액 84억 원에 계약을 했다.[12] 베어스(OB/두산) 구단 역사상 홍성흔에 이은 2번째 외부 FA 영입인데, 두산에 몸 담은 적이 없는 순수한 외부 선수로는 장원준이 처음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최초의 외부 FA 영입이라고 할 수 있다.

장원준이 FA 시장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두산 김태형 감독이 프런트에 '장원준 나왔습니다.'라는 한 줄의 문자를 보내고 프런트가 답장한 내용을 보면, 두산의 장원준 영입이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13] 그리고 롯데에서 함께 뛴 적이 있었던 홍성흔을 필두로 하여 대표팀, 경찰청 등지에서 친분을 쌓은 두산 선수들이 사적으로 러브콜을 했다고 한다. 장원준 FA 비화 관련 기사[14]

계약 시 최소한으로 내세운 조건이 4년 80억이었다는 말이 있었으나, 장원준 본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고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 하지만 이런 말이 나올 법도 한 게, 롯데가 공표한 금액만 우선 총액 88억이고 이 중 최소 보장액이 80억이다. 게다가 윤성환이 노 옵션 기본 80억에 계약했기 때문에 그보다 4살이나 어린 데다[15] 좌완 투수 프리미엄까지 있는 장원준 입장에서도 80억을 기준으로 삼을만한 타당한 명분이 있긴 했다.[16] 그리고 이적이 유력시되었던 LG 트윈스에서는 장원준 영입을 위해 최대 80억 정도를 준비했다는 루머도 있었다. 박동희의 관련 기사

두산 팬들은 대부분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단 "프런트가 외부 FA에 돈을 썼다는 자체"에 굉장히 놀랐으며 무엇보다 그 동안 팀에 좌완이 부족했던 점[17]을 제대로 메워주는 영입이었기 때문이다. 영입 후 선발 로테이션을 채우는 것 만으로도 괜찮다는 입장. "시즌 10승 정도만 해 줘도 만족한다"는 김태형 감독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고, 그 중 다수는 큰 불만을 표출했다. 그리고 꼴리건들은 6년 106억인 이면 계약 아니냐며 추하게도 찌라시를 퍼트린다. 사실 장원준은 롯데 시절 구단에게나 팬들에게나 유례없는 특별 대우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구단은 부산고 시절부터 용돈을 줘가며 애지중지 키웠다고 하며, 팬들은 그에게 성골, 황태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18] 특히 장원준과 동기지만 국가대표 주전으로 활약하던 강민호[19]보다도 꾸준히 높은 연봉을 받아온 것을 보면 그 대접이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다. KBO 역대급 포수 계보에 들어가는 강민호에 비한다면 장원준은 국가대표에도 거의 선발된 적이 없는 선수였다.[20]

이렇게 타팀에서 볼 때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장원준에게 유독 특별 대우를 해주는 것이 롯데 팀 내의 다른 선수들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을 정도인데, 실제로 강민호는 대외적으로 장원준과 연봉 비교를 한 적이 있다.[21] 게다가 강민호가 조금이라도 부진에 빠지면 팬들의 비난과 원성이 쇄도했었지만 그렇게 롤코를 타던 장원준에게 팬들은 유독 관대했고, 같은 투수이자 같이 롤코를 타던 송승준[22]이 신나게 까이던 것과 달리 장원준은 그렇게 큰 욕을 먹지는 않았다. 즉, 장원준은 프랜차이즈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얻어맞으면서 키운다', '육성을 위해 당연히 내야 할 세금'이라 생각하는 면이 강했다. 그런 장원준이 더 많은 액수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롯데를 디스까지 해가며 떠나버리자 롯데 팬들은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제가 이 액수에 사인 안하고 다른 구단과 더 적은 액수에 계약하려면 어쩌시렵니까?"
FA 우선 협상에서 롯데 프런트가 88억을 제시하면서 '이 금액을 거절하면 언론에 액수를 알릴 수밖에 없다.'라고 하자 기사
토종 프랜차이즈를 잃은 롯데 팬들의 상처는 변함이 없어서, 이제는 아예 장원준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꺼내기 싫어하는 편이다. 은퇴한 현재도 마찬가지.

한편, 84억이란 금액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FA 거품이 한창 심해지고 있었기에 혼자만 욕 먹는것은 아니지만, 활약에 따라 2014 시즌의 강민호처럼 먹튀 소리 듣기 좋은 금액이기도 했다. FA 직전 해 성적도 아슬아슬한 두 자릿수 승수(10승)에 4점대 중반 평균자책점으로 좋다고 말하기는 힘든 성적이다. 타신투병 시즌임을 감안해도 84억은 상당히 거품이 낀 금액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FA는 직전 단일 시즌 성적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누적된 커리어가 중요하기 때문에 2014년도의 성적만 가지고 까는 것은 문제가 있다. 참고로 당시 장원준은 7시즌 연속 규정 이닝[23], 탈삼진 100개 이상을 달성했으며, 5시즌 연속 10승을 올린 투수였다. 다만 이는 내구성에 대한 검증이지, 실력에 대한 검증은 아니니 오버페이라는 평가는 마찬가지일듯.[24]

보상 선수로는 불펜투수 정재훈이 지명되었다.[25] 롯데는 마지막 순간까지 외야 유망주 박건우 vs 투수로 저울질을 했다고 한다. #

4. 두산 베어스

파일:두산 장원준.jp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선수시절

잠실 구장과 두산 수비진의 버프를 받아 커리어 하이를 찍는 활약을 했고 우승에도 기여를 하면서 장잘샀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4.1.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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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9일 잠실 NC전, 이적 후 두산 베어스에서 첫 선발 등판 경기에서 역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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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이 84억에 산 것, 장원준 아닌 우승도전권이다 #

4.2. 2016 시즌

파일:FB_IMG_1477878059963.jpg
2016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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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여전한 마운드에서의 안정감을 보여주며 통산 100승을 달성하였다.

시즌 종료 후, 최동원 상을 수상하였다.

4.3. 2017 시즌

파일:DEiJvytUMAAOIRT.jpg 파일:DHbqRpQUIAAwD_-.jpg
파일:DH6Qqn1VwAAtM18.jpg 파일:DKVEWxzVoAA5xP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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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역시 좋은 투구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토종 선발 투수 중 가장 좋은 ERA[26]를 기록했다. 또한 10승을 기록한 마지막 시즌.

4.4. 2018 시즌

파일:18장원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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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 로우 시즌.

4.5. 2019 시즌

4년간 성적
<rowcolor=#fff> 경기 선발등판 이닝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ERA WHIP
110 102 589⅔ 44 34 0 2 616 51 228 48[27] 436 303 281 4.29 1.44

4년간의 FA계약이 종료되었고, 재신청을 포기하고 FA 재수를 택하면서 구단과 연봉계약을 맺어야 하는 상황. 별다른 잡음은 없었고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나온 기사에서도 야수진에서 협상이 길어지는 선수는 있어도 투수진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것을 보면, 장원준은 일찌감치 연봉계약을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019년 1월 30일 구단 보도자료를 통해 연봉 변동 현황이 공개되었으며, 장원준의 2019년 연봉은 FA 기간동안 받은 10억에서 4억 삭감된 6억원으로 확인되었다. 지난 시즌을 완전히 말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그 이전 3시즌간 좋은 활약을 해 준 점을 고려해 삭감 규모를 적당히 조정한 듯 하다.

그래도 장원준은 두산과의 계약기간 4년 중 3년간 건실한 선발 투수로 활약하며 두산의 2차례의 우승과 1차례의 통합우승, 3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8 시즌, 혹사의 여파 탓에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며 상술된 4년간의 성적에도 상당한 손해가 갔다. 실제로 저 기록에서 2018 시즌의 것을 제외하면 평균자책점만 해도 4.29에서 3.34로 낮아진다. [28]

이에 대해 김태형 감독은 올시즌 그를 불펜으로 확정시켰고 3선발 ~ 5선발중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3선발은 이용찬, 지난 시즌 깜짝 선발로 호투를 보여준 이영하가 4선발로, 5선발은 유희관으로 확정되었다. 지난 시즌 부진과 더불어 이닝 조절겸 본다면. 돌이켜보면 2017년 선발이었던 함덕주가 2018년 마무리로, 2017년 마무리었던 이용찬이 선발로 이렇게 성공한 만큼 올해 승리 불펜조로 성공한다면 2019 시즌 어떻게 될지 좀더 지켜봐야 될듯 싶다.

하지만 3월 17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펼쳐진 키움 히어로즈전에서 세번째 투수로 나와 3이닝 13타자 41투구수 13타수 5피안타 1개 4사구를 기록, 승리 투수가 되었지만 김태형 감독은 다시 보직을 바꿀 예정이라고 한다. 5피안타가 지난 한국시리즈 전을 본 느낌이라고. 즉 2군에서 완벽하게 선발로서 몸을 만들라는 의미다.

사실상 퓨쳐스리그에서 리그를 시작하였고 3월 29일 개막전인 이천 베어스 파크에서 펼쳐진 SK 와이번스 전에 선발로 나와 5이닝 73투구수 (48S 25B) 4피안타 4개 삼진을 기록하였다.

이후 2019년 4월 2일 첫 1군에 등록되어 홈경기 kt wiz전에 출전하였다. 지난 시즌 이영하가 대체 선발로 성공을 거두었고 올해 5선발로 낙점되었다만 2년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하에 롱릴리프로 현재로썬 불펜으로 활용하면서 만약 이영하가 계속 흔들리면 다시 선발로 바꿀 것이라고 한다.

4월 3일 잠실 kt wiz전 세번째 투수로 나와 ⅓이닝 11투구수 (6S 5B) 1사구로 마무리지었다.

4월 4일 잠실 kt wiz전에서 8회 2사 이형범에 이은 3번째 투수로 등판했다.( kt wiz 1-4 두산 베어스 상황) 김민혁에게 안타를 허용했지만 유한준을 2루수 땅볼 아웃으로 처리하면서 8회 남은 아웃카운트 1개를 채웠다. 9회 강백호 로하스에게 각각 내야안타와 2루타를 허용하며 무사 2,3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갔다.(다음투수인 함덕주 박경수에게 안타를 맞으며 장원준의 책임주자인 강백호가 득점. 뒤이어 장성우가 유격수[29] 실책으로 출루하며 로하스가 득점해 2자책점을 기록했다.) (⅓이닝 3피안타 2자책점 투구수 12개)

1군에서 6경기 2이닝만 소화한 뒤 말소되었고 이후 2군에서 3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김태형 감독은 복귀하더라도 선발로는 쓰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이후 2군에만 머물렀고, 결국 왼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결국 6경기 등판해서 승패없이 ERA 9.00로 지난해보다 더한 커리어로우를 기록하며 초라한 시즌을 보냈다. 연봉 삭감은 고사하고 앞으로의 선수생활마저 불투명해졌다. 그동안의 이닝 누적에 따른 피로로 인해 급 노쇠화가 오면서 내년 시즌 부활 여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는데 시즌 성적이 이러니 예상대로 신청을 하지 않았다.

4.6. 2020 시즌

파일:20장원준.jpg

지난해 무릎 수술로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1군 스프링 캠프에 합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으나 예상보다 컨디션이 빠르게 올라오며 수술 부위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몸 상태가 크게 무리 없다는 판단에 1군 스프링 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시즌이 개막하고도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도 장원준에 관련된 소식은 전혀 없었었고 심지어 이용찬이 부상을 당해 대체 선발이 필요한데도 장원준은 언급되지도 않고 있었다. 아마 올해도 전력 외로 분류되는 걸로 보였지만 6월 5일 기사에 따르면 6일 라이브피칭이 가능하다고 말했으며 복귀 시점은 퓨처스리그에서 3경기 이상을 지켜본 후에 결정한다고 김태형 감독이 밝혔다. 현재로써는 20시즌 말이나 21시즌 초에나 잠실 마운드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예측되고 기대하는 상황. 그러나 플렉센까지 부상을 당하자 6월 9일 인터뷰에서 선발 투수로 장원준을 2군에서 준비시키고 있다고 한다.

6월 12일 금요일, 2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지만 1이닝을 삼진 2개를 곁들여서 무실점으로 막아낸 후 바로 내려갔다.[30] 참고로 최고 구속은 137Km/h가 나왔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곧 복귀전을 볼수 있을것 같았다.

6월 18일 목요일, 2군 두번째 선발 기회를 잡았다. 2회까지는 노히트로 잘 막았지만 3회 노아웃에서 연속 3안타 허용 후 1아웃을 잡고 책임주자를 남긴 채 2⅓이닝 3피안타 2실점을 기록하면서 물음표를 다시 남겼다. 그리고 복귀는 퓨처스에서 투구 수를 80구 정도로 늘려갈 것 이라고 하며 6월 복귀는 힘들다고 김태형 감독이 밝혔다 #

이용찬 토미 존 수술로 인한 이탈, 이영하의 부진으로 두산의 국내 선발진이 초토화되자, 장원준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부상 이후 퓨처스 등판에서 최고구속이 140km/h도 나오지 않는 모습에 팬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동안의 피로 누적이 심했던 것으로 보여지며 올 시즌 복귀 또한 먹구름이 짙게 끼어있다.

7월 8일 2군에서 다섯번째 등판을 했는데 56구를 던지며 4이닝 3실점을 했다. 평균 구속 136km/h, 최고 구속 140km/h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7/8일 장원준 피칭영상 링크.

7월 25일 2군 경기에서 투심 구속이 120km/h까지 떨어졌다. 슬슬 팬들도 희망을 버리는 중.

8월 19일 2군에서 3이닝 동안 6실점을 한화에게 내주었다. 당장 은퇴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수준. 19일 피칭을 보면 전보단 좋은 몸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제구력이 조금 떨어지는 모습이고 구속도 136~140 사이에서 형성되면서 1군에서 모습을 보려면 최소 3km는 더 늘어야 한다. 김태형 감독은 3이닝 이상 소화, 평균구속 140km를 넘기면 콜업계획이 있다고 밝힌적이 있다.
장원준 퓨쳐스 선발등판 피칭모음 , 하이라이트

8월 26일 고양 히어로즈(2군)를 상대로 한 2군 경기에서도 4⅔이닝 5실점을 기록했다. 여전히 많은 피안타(9피안타-1피홈런)에 사사구 3개까지 내줘 올해도 2군에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9월 8일 고양 히어로즈(2군)를 상대로 5이닝 무실점 6k 최고구속 140km/h를 기록했다. 지난 첫번째 등판이후 첫 무실점 피칭이며 1군콜업에 더 가까워졌다 링크

9월 18일 LG 트윈스 2군을 상대로 5이닝 4실점(3자책)을 기록했다.

9월 24일 한화 이글스 2군을 상대로 6이닝 무실점 탈삼진 5개를 기록해서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30일 1군 한화전에 선발 등판하면서 718일만에 1군 선발등판했다. 팀이 어려운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등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군에서도 시원찮은 장원준을 올린 것에 대해 시즌을 포기한 거냐면서 팬들 사이에 우려와 논란이 야기되었다. 3회까지 매 이닝 주자가 출루했음에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4회에 선두 타자를 잡은 이후 연속 안타를 맞고 1사 1,3루에 최진행의 안타로 1실점, 이후 노태형은 볼넷 출루 후 1사 만루에서 박정현에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허용하며 결국 4이닝 4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되었다. 팀이 0:10으로 대패하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번 시즌 1군에서 더이상 보기 어려워질 듯 하다. 하지만 다음날인 10월 1일 유희관이 한화전에서 3이닝 4실점(3자책)하고 말소되어 2군으로 내려가면서 앞으로 장원준에게 기회가 더 돌아올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되고 있다.

10월 7일 SK에 다시 선발 등판했다. 1회부터 볼넷과 안타를 계속 허용하며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으나 병살타가 나오며 1실점으로 싸게 막아냈으나 2회에도 스트라이크를 거의 던지지 못하고 볼만 주구장창 던져대며 주자들을 적립하더니 결국 오태곤에게 쓰리런 홈런을 허용하고 무너지면서 1.2이닝 4실점을 기록하고 강판되었다. 팀은 4:5로 패했지만 패전 투수는 면했다. 원래 강속구 투수는 아니었다지만 최고 구속이 139에 머물렀고 포심과 투심 모두 130대 중반에 머무는데 변화구마저 안먹히며 제구력까지 망한 모습이었다. 팬들도 대부분 포기한 모습을 보이며 은퇴하라는 여론이 늘어난 상황이다.

결국 2군으로 내려갔고 그렇게 시즌을 마무리했다.

두산 베어스가 반 게임 차이로 시즌 3위로 마무리하게 되면서 장원준을 등판시키며 시즌 최하위 팀들과의 두 경기를 날려버린 것이 결과론적으로 더욱 아쉽게 되었고 이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팬들 사이에 뒷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 2군에서도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굳이 1군에 올린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있었고, 방출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선발로서의 수명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고, 잘 쳐주면 권혁의 말년처럼 원포인트 릴리프나 1이닝 땜빵 불펜 정도로 사용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권혁은 그 혹사에도 140km 중반대의 구속과 구위가 살아있어서 1년이나마 더 활용할 수 있었던 거라 구위와 제구력 모두 잃어버린 장원준이 더 기회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올해도 FA 신청을 포기했다. 보류선수명단에는 포함되었고, 2021년 연봉이 8,000만원으로 삭감됐다. 삭감률은 73.3%로 지난 2년간 삭감폭보다 적긴 했지만 2007년 연봉인 8,500만원 이후로 무려 14년만에 억대 연봉을 못 받게 됐다는 점이 크다. 팬들도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이 이상 큰 탈없이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길 바라고 있다.[31]

4.7. 2021 시즌

파일:2021두산장원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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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2022 시즌

파일:22장원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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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2023 시즌

파일:23에코.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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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출 위기까지 몰렸지만 KBO 역대 11번째 개인 통산 130승, KBO 역대 9번째이자 좌완 4번째 통산 2000이닝의 다양한 대기록을 달성한 시즌이 되었다. 장원준의 현역 마지막 시즌이 되었으며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32]

5. 국가대표 경력

총 3번의 국제대회 참가, 4경기 19⅓이닝 17K, 1승 0패, ERA 2.79

5.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13WBC장원준.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구 삼진 상세
1 1 3⅔ 4.91 0 0 0 0 6 2 2 1 2
경찰 야구단 소속으로 군복무중이던 장원준은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선발된다. 당시 국대 좌완 트리오 류현진, 김광현, 봉중근이 모두 대회에 불참하게 되면서 궁여지책으로 2군리그에서 활약하던 장원준을 선발한 것이다.

장원준은 1라운드 3차전 대만과의 경기에 선발등판했다. 이 날 3⅔이닝을 소화하면서 무려 6피안타/1볼넷, 2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진 장원준은 4회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강판됐다. 다행히 대표팀은 강정호의 8회 투런포를 앞세워 3:2 역전승을 거둬 2승 1패를 기록했지만 TBQ에서 네덜란드, 대만에 밀려 2라운드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WBC 사상 첫 1라운드 탈락이었다. 이렇게 장원준의 커리어 첫 A대표팀 참가는 부진한 성적으로 마무리되었다.

5.2. 2015 WBSC 프리미어 12

파일:프12장원준.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구 삼진 상세
2 2 11⅔ 2.31 1 0 0 0 8 3 3 3 10 ##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윤성환 대신 2015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장원준과 허경민[33]이 마지막에 국가대표로 합류하면서 두산 선수들만 무려 8명이 차출되는 두산 입장에서 상당히 골 때리는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두산 팬들은 정규시즌 144경기에 준플-플옵-코시까지 포스트시즌에서 14경기나 더 뛴 선수들의 몸 상태가 걱정되기에 그냥 광탈하고 오길 바라는 마음과, 국제대회에서 못하면 죽어라 까일 텐데 잘 하고 오길 바라는 마음이 섞여 혼돈이였다. 게다가 장원준은 2013년 WBC에서의 안 좋은 기억이 있었고, 두산 선수들 중에서도 구단 측에서 제일 몸 상태를 걱정하는 선수였기 때문에 국가대표에 차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팬들의 심장은 긴장했으나 포스트시즌에 등판해서 보여줬던 크레이지 모드 그대로 국제전을 이끌어갔다.

프리미어 12 대회를 앞두고 진행된 평가전이었던 쿠바와의 2015 서울 슈퍼시리즈에서는 2차전(11월 5일)에 선발 등판한 우규민이 1회 말 손등에 타구를 맞는 불의의 부상을 당하면서 마운드에 올라오게 되었고, 희생플라이로 점수를 내주긴 했지만[34] 이후로는 2⅓이닝간 한 점도 내주지 않으면서 꽤 좋은 활약을 펼쳤다. 팀은 후에 이현승이 한 점을 더 내주면서 3-1로 패배.

11월 11일 도미니카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는 무려 1회 장원준 모드까지 박살내면서 7이닝 4피안타 7탈삼진 1볼넷 1실점을 기록, 가히 눈물나는 득점지원에도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고, 실책이 터지는 와중에 본인이 직접 호수비까지 보여주면서 역전의 발판을 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7회까지 등판했는데도 투구수는 단 82개. [핫클립] 오늘의 히어로! 장원준의 호투 도미니카 대표팀의 테하다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전체적으로 다 훌륭하고 잘했다. 그 중에서 선발투수(장원준)가 가장 인상 깊었다. 장원준은 메이저리그 선수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템포를 잘 잡아 실수없이 던졌다. 한국팀이 부럽다"
라며 아주 극찬을 했다. 국대팬티 7K 탈삼진쇼

11월 16일 다시 만난 쿠바와의 8강전에서도 선발등판해서 엄청난 체력적 부담[35]에도 불구하고 4⅔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고 내려갔다. 참고로 이 날에도 1회 장원준이 사라졌다.
파일:PmcB7s3.gif
△ 그 날의 체인지업

이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일본, 미국[36]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장원준 역시 A 국제대회 우승 커리어를 추가했다.

5.3.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17WBC장원준.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자책점 4구 삼진 상세
1 1 4 2.25 0 0 0 0 4 0 1 5 3

이번 WBC 역시 류현진, 김광현 좌완 원투펀치가 모두 부상으로 대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장원준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투수로서 합류했다. 참고로 이번 WBC는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개최되었다.

장원준은 A조 1라운드, 이스라엘과의 개막전에 선발등판했다. 이스라엘이 야구 볼모지의 이미지가 강해 저평가 받았었지만 실상은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다수 포진된 실속있는 라인업이었다. 이 팀을 상대로 장원준은 4이닝 5K 1실점 안정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 날 10이닝 동안 단 1점을 뽑은 팀 타선의 빈공으로 인해 팀은 1:2로 패하면서 그의 호투가 빛이 바랬다.

이후 대한민국 네덜란드, 대만을 상대로 1승 1패를 거뒀다. 결국 최종 1승 2패, 조 3위를 기록하여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수모를 맛봐야만 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장원준의 역대 KBO 투수 기록
<rowcolor=#0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04 롯데 33 84⅔ 3 8 0 1 0.272 5.63 84 8 62 36 55 53 1.67 0.35
2005 28 107⅓ 5 6 0 1 0.455 5.11 105 9 58 79 65 61 1.47 1.28
2006 29 179⅓ 7 12 0 0 0.368 3.61 152 14 84 130 85 72 1.26 2.25
2007 32 156 8 12 0 0 0.400 4.67 171 14 78 103 87 81 1.54 1.82
2008 26 155⅔ 12
(4위)
10 0 0 0.545 3.53 162 12 58 102 75 61 1.39 2.94
2009 28 162⅔ 13
(4위)
8 0 0 0.619 4.15 175 16 88 108 83 75 1.58 3.48
2010 28 144⅓ 12 6 0 0 0.667 4.43 158 24 56 113 77 71 1.43 2.35
2011 29 180⅔
(3위)
15
(3위)
6 0 0 0.714
(3위)
3.14
(4위)
195 7 71 129
(5위)
72 63 1.42 5.23
(3위)
2012 군 복무( 경찰 야구단)
2013
2014 27 155 10 9 0 0 0.526 4.59 160 15 70 107 87 79 1.47 3.55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15 두산 30 169⅔ 12 12 0 0 0.500 4.08 182 13 82 128 86 77 1.47 2.89
2016 27 168 15
(3위)
6 0 0 0.714 3.32
(2위)
161 14 85 137 66 62 1.41 5.67
(5위)
2017 29 180⅓ 14
(4위)
9 0 0 0.609 3.14
(2위)
172 12 65 125 70 63 1.24
(5위)
5.41
(2위)
2018 24 71⅔ 3 7 0 2 0.300 9.92 101 12 44 46 81 79 1.87 -2.19
2019 6 2 0 0 0 0 0.000 9.00 5 0 4 1 2 2 4.00 -0.08
2020 2 5⅔ 0 1 0 0 0.000 12.71 9 1 6 2 8 8 2.65 -0.38
2021 32 18⅔ 0 1 1 4 0.000 6.75 20 1 20 8 15 14 2.04 -0.25
2022 27 17 0 1 0 6 0.000 3.71 23 0 8 7 8 7 1.77 0.32
2023 11 41 3 5 0 0 0.375 5.27 53 4 13 24 27 24 1.56 -0.17
KBO 통산
(17시즌)
446 2000 132 119 1 14 0.526 4.28 2088 176 952 1385 1049
(5위)
952
(4위)
1.46 34.45
완투, 완봉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4 1완투
(5위)
0완봉
2005 1완투
(5위)
0완봉
2006 1완투 0완봉
2008 4완투
(1위)
1완봉
(2위)
2009 1완투 1완봉
(4위)
2010 3완투
(2위)
2완봉
(2위)
연도 완투 완봉
2015 1완투 0완봉
2017 1완투 1완봉
통산 13완투 5완봉

[1] 좌완투수(장원준, 박정태(박근홍)), 우완투수(이원희, 최대성), 우완 언더스로-사이드암(정종국,김수형) 등 당시 부산지역 중3 투수들을 싹쓸이했다. 이에 빡친 경남고등학교는 이듬해 부산중학교 에이스 서동환을 개성중학교로 전학시킨 후 경남고등학교 유니폼을 입혔고 경남고는 부산중, 부산고는 경남중 선수를 스카우트하지 않는 양교의 묵약이 깨졌다. [2] 중학교 3년 선배인 채태인은 부산상업고등학교로 갔고 정우람은 부산상업고등학교로 진학했다가 경남상업고등학교로 전학했다. [3] 1년 선배 전병두, 노환수, 동기생들 투수, 1년 후배로 이왕기가 있었다. [4] 그나마 혹사는 안 시켰다. 하도 해매서 혹사를 시킬래야 시키기도 힘들었겠지만.. [5] 현재 국내 프로야구 투수코치들 가운데는 코칭실력보다 선수 시절의 명성으로 코치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현상이 심하다. 일례로 롯데 김시진 감독은 특유의 상체 위주의 투구폼을 체질, 내구성 따위는 싹 무시하고 천편일률적으로 적용시켜 투수들의 생명을 짧아지게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고 양상문 김시진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다. LG에서 투수코치를 하던 시절엔 봉중근, 이범준, 정찬헌의 폼을 모두 똑같이 뜯어고쳤고 롯데 2군 감독 하면서 유망주 여럿을 망쳤다. [6] 이건 송승준도 마찬가지인데 여러 정황을 살펴봤을 때 송승준은 체력적인 문제, 장원준은 새가슴과 한정된 구질이 원인이다. [7] 선발로 등판한 지가 몇 년 째인데 제대로 던질 줄 아는 변화구가 슬라이더 뿐이다. 롯데에 입단할 때 슬라이더와 커브를 동시에 던질 줄 안다는 걸로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걸 고려하면 그 긴 세월 동안 롯데 코치진이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8] 선발 출장한 24경기 가운데 해당 경기 평균자책점이 5점 이상인 경기가 11번. 심지어 27점 찍은 날도 있다! [9] 5이닝동안 93개의 투구수 [10] 역대 17번째 및 좌완으로서는 송진우, 류현진에 이어서 3번째 [11] 장원준의 원 소속팀이 롯데인것를 보면 롯데와 NC의 라이벌 의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12] 장원준은 서울에서 태어나 7살 때 부산으로 이사했다. 고향팀으로 돌아간 것이다. [13] 두산 관계자가 말하길 시즌 초부터 FA 대상자들 중 4명( 윤성환, 안지만, 김강민, 장원준)을 면밀히 관찰해왔다고 한다. 이 네 명 중 시장에 풀린 건 장원준 한 명이었다. [14] 참고로 노경은도 “두산의 팀 분위기에 대해 물어보기에 ‘선후배 관계나 프런트, 코칭 스태프 등 두산만큼 야구하기 좋은 팀은 없다. 꼭 와서 함께 하자’고 설득했다”라고 말했는데, 이후 노경은은 그 두산 때문에 은퇴 이야기까지 나오다가 이적을 하고 공교롭게도 장원준이 환경 나쁘다고 뛰쳐나온 그 롯데로 간다. [15] 4년이면 FA 재계약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연차다. [16] 여담으로 윤성환은 장원준과의 금액 차이인 4억을 도박으로 쓰다가 시즌 후 불미스러운 일로 화제에 오르게 되었다. [17] 어느 정도냐면 1988년 윤석환이 구원승으로 13승을 기록한 이후 2013년 유희관이 10승을 기록할 때까지 25년 동안 토종 좌완 투수의 10승 시즌이 없었다. 괜히 OB/두산이 유지현 대신 류택현을 지명했거나 이혜천한테 11억을 주고 이현승을 30억 + 금민철에 트레이드해 온 것이 아니다. 그냥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좌완 잔혹사를 쓰고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2015년에 장원준과 유희관을 필두로 이현승이 부활했고, 진야곱, 함덕주, 허준혁, 이현호 등이 기량을 발휘하며 좌완 왕국을 형성하는 팀이 된다. 정말 2015년에는 국내 우완 투수 중 선발투수 출장한 기록이 있는 선수가 노경은 김수완밖에 없을 정도였다. [18] 같은 부산 토종 프랜차이즈 출신인 이대호 손아섭도 당시에는 성골로 불리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19] 강민호는 제주도 출생에 삼성 연고인 경북의 포철공고를 졸업했다. [20] 데뷔부터 FA 전까지의 장원준은 누적 WAR로 보았을 때 소위 말하는 류윤김의 바로 다음 자리에서 양현종, 윤성환 등과 자웅을 겨루는 수준의 투수였고, 류현진이 완전히 메이저로 떠나 버리고 윤석민이 노포크 타이즈에서 (피)홈런왕이 되며 처절히 몰락한 직후였음을 생각해 봤을 때에 당시 장원준은 평범한 3~5선발이 아니라 리그 전체에서 꼽아봐도 토종 3~5선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수준의 투수다. [21] 물론 당시는 귀여운 투정처럼. 그런데 결국 강민호도... [22] 송승준은 부산 토박이이긴 하지만 미국에서 프로 데뷔를 해서 오랜 경험을 쌓고 돌아온 해외파 출신이다. [23] 100이닝 이상을 기준으로 잡을 시 8시즌 연속. [24] 그러나, 잔인하게도 프로는 안 아픈 것도 실력이다. 계산이 선다는 건 한 시즌을 운영할 때 어마어마한 메리트다. 특히 선발진에 상수 하나가 있다는 건 팀에 엄청난 힘이 되기 때문에 단순히 이런 말로 폄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25] 당시에 두산 팬들은 정재훈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고 프런트를 비판했고, 롯데 팬들은 유망주를 데려와도 모자랄 판에 즉전감이라고 노장을 데려오냐고 반발했다. 필승조가 필요했던 롯데의 선택이었지만 정재훈이 롯데에 가서 퍼지는 바람에 최악의 선택이 되었고. 1년 만에 두산으로 리턴하여 은퇴식도 가졌다. 박건우는 2016년의 경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고 팀이 7번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후에 장원준이 박건우의 매형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묘한 인연이다. [26] 전체 선발 투수 중엔 2위. 1위는 라이언 피어밴드. [27] 고의사구는 3개다. [28] 사실 장원준은 2015, 2016, 2017 시즌 모두 160이닝 이상을 던졌으며, 2017 시즌에는 무려 180이닝을 던졌다. 똑같이 2018 시즌의 기록을 공제한다 쳐도 저 3년간 던진 이닝만으로도 500이닝을 넘긴다. 실제로 두산 내에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장원준보다 더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저 기간동안 매 시즌 180이닝 이상씩 던진 유희관 뿐이다! [29] 실책 후 유격수는 바로 교체되었다.( 류지혁 김재호) [30]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컨디션 차원에서 선발로 올렸다 내린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31] 애초에 15년, 16년도에 장원준은 두산 우승에 큰 보탬을 해줬고 17년에도 준수한 성적을 냈기에 제 몫은 다 했다는 평이 대다수. [32]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힌 것은 본인의 마지막 등판인 10월 17일 하루 전날인 10월 16일에 밝혔다고 한다. 그래서 와일드카드 엔트리에도 들지 않았던 것이고, 이승엽 감독도 또한 장원준이 마지막 경기에서 부진(4.1이닝 5실점)했지만 통산 2000이닝까진 채울 수 있도록 기록 달성 후 교체하여 배려해준 것이다. [33] 박석민의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대체선수로 합류. [34] 우규민의 책임주자였기 때문에 자책점은 아니다. [35] 이미 200이닝을 넘게 소화한 상태였다. 게다가 4일 휴식 후 등판.. 본인도 5회가 되니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36] 메이저리거가 전원 제외된 마이너리그 트리플A 올스타급의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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