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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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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충청남도 휘장_White.svg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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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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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 2 3 4 56 7 8 }}}}}}}}}}}}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svg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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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8c8c70,#8f8f72> 제36·37대 충청남도지사
안희정
安熙正 | Ahn Hee-jung
파일:Ahnhj.jpg
출생 1964년 12월 1일[1] ([age(1964-12-01)]세)
충청남도 논산군 연무읍 마산리
(현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마산리)
본관 순흥 안씨[2]
거주지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재임기간 제36·37대 충청남도지사
2010년 7월 1일 ~ 2018년 3월 6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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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폐쇄]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폐쇄]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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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c8c70><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안동근[6], 어머니 국중례[7]
형제자매 안희돈[8], 누나 안향미, 여동생 2명
배우자 민주원(1989 ~ 2021)[9][10]
자녀 장남 안정균[11], 차남 안형균[12]
학력 구자곡국민학교 (졸업 / 45회)
연무중학교 (졸업 / 18회)
남대전고등학교 (제적)
성남고등학교 (중퇴)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 철학 / 학사)
병역 전시근로역[13] (수형)
종교 무종교
신체 175cm[14], A형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경력 통일민주당 김덕룡 국회의원 비서관
민주당 이철 사무총장 비서관
민주당 이수인 국회의원 비서관
노무현 변호사 사무실 비서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사무국장
자치경영연구원 사무국장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원
참여정부평가포럼 상임집행위원장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민주당 최고위원
민주당 논산시·계룡시·금산군 지역위원장
민주당 행복도시원안사수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
제36·37대 충청남도지사 (민선 5· 6기 / 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15]
충남도립대학교 이사장
전국시도지사협의회 감사
더불어민주당 참좋은지방정부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경선후보[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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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약력3. 생애4. 정치인 안희정5. 비판 및 논란6. 여담7. 소속 정당8. 선거 이력9. 저술 활동
9.1. 저서
10. 관련 자료11. 대중매체에서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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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정치인.

2. 약력

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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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김영삼 통일민주당에서 보좌관으로 정계 입문한 이후 노무현 전 의원의 최측근이 되어 '노무현의 왼팔', '노무현의 좌희정 & 우광재' 심지어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라고까지 불리며, 정치인 노무현의 행보 및 정책적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참여정부 성립 일등 공신이었으나, 2002년 대선 직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게 되어 참여정부에서 요직을 맡지 못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서 감옥을 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전히 친노에서 영향력은 여전했다. 충남도지사에 당선되기 전까지 실질적인 정치 경력은 없었지만, 2010년 고향에서 충청남도지사에 당선, 연임에 성공하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자리잡았다. 정치인임에도 영화배우에 비견될 정도로 빼어난 외모, 민주당 정치인 중 온건한 대중적 이미지, 안정적인 도정 활동 등을 바탕으로 문재인의 뒤를 이을 더불어민주당의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선두권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후술할 성범죄 사건으로 인해 제37대(민선 6기) 충청남도지사를 사퇴하고 정치 활동 중단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2018년 3월 6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위원회에서 전원 일치로 제명 및 출당 조치되었다. 소명 기회를 주었으나 안희정이 스스로 소명 기회를 포기했다고 한다.

4. 정치인 안희정

4.1. 친노의 적장자

안희정 씨는 나의 최측근이 맞다. 안희정 씨는 오래 전부터 나의 동업자이자, 동지였다. 나를 위해 일했고 나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있다.
2003년 5월 1일, 대선자금 수사 정국 당시 MBC 100분 토론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시 현직)의 발언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안희정 씨가 나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나는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
2008년 1월 8일, 안희정 출판기념회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시 현직)의 축하메시지
친노 중에서도 노무현이 가장 신뢰했던 인물로서, '노무현의 왼팔'이라고 불렸다. 실제로 이광재와 더불어 '좌희정-우광재'라 불리었는데, 실제 역사에서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높은 것처럼 노무현에게 있어서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보다도 확실히 한 단계를 더 뛰어넘는 긴밀한 관계, 최측근 중에서도 노무현 바로 옆에 있었던 심복이 안희정이었다.
안희정은 '노무현의 정치적 동업자'로 불렸을 정도로 노무현과의 관계가 가까웠다. 이것은 단지 언론에서 붙인 별명이 아니라 노무현 본인이 현직 대통령 시절을 안희정을 자신과 동업자이자 동지였다라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노무현이 계속해서 낙선하던 시절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종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모든 실무와 자금을 담당해 온 것은 안희정이었고, 1993년 8월 설립한 지방자치실무연구소의 실무를 담당하던 것도 안희정이었기 때문에 노무현의 안희정에 대한 신뢰는 다른 친노 인사들에 비해 유달리 남달랐을 사연이 있었다.

위와 같은 사연으로 안희정 또한 노무현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여기 계시는 노무현과 저는 정치적 동업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정도였다. 안희정은 이광재와 함께 노무현이 꼬마 민주당에서 거의 정치 세력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부터 노무현에게 인생을 걸고 같이 했던 몇 안되는 정치적 동반자, 동지였고, 따라서 친노 성골 중에서도 직계 성골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당선 직후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받고 수감되면서 오히려 노무현 정권 내내 요직을 맡지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신 감방에 갔다는 인식이 당시에 퍼졌고, 심지어 노무현 본인도 "안희정이 저를 대신해 희생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통령 특사나 가석방 등의 혜택을 받지 않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였다. 다만 만기출소 후 사면받았다. # 안희정과 노무현의 이러한 행보가 미담으로 미화되기까지 하지만, 불법대선자금을 이용하여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명백한 범법 행위이고 따라서 이러한 행보를 미화하는 것는 지양해야 한다.

노무현이 언더독에서 극적인 역전승으로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이후 그동안 노무현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몰려들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에 앞장섰던 인물들 조차 나중에 친노를 자처했던 정도. 그러니 친노 핵심중의 핵심이었던 안희정의 위치는 서서히 잊힌 감이 있다. 거꾸로, 안희정 본인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스스로 정치적 자립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입혀진 친노의 적장자라는 이미지를 어느정도 희석시키려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친노 중에서도 안희정보다 노무현과 가까웠던 사람은 없었다.

물론 노무현이 '도반'이라고 지칭했던 문재인이 있다. 그러나 문재인은 정치적 동반자라기보다는 인생의 동반자였다. 노무현은 "나는 문재인이를 친구로 두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깜냥이 됩니다. 가장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가장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닙니까?"라고 말한 바 있다. 문재인은 정계 입문 전 법무법인 부산에서 같이 활동한 사이였다.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도 민정수석 이상 맡기지 말아달라 할 정도로 정치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정계에 입문했다. 즉 문재인은 인간 노무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고, 안희정은 정치인 노무현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참여정부 말기, 모두가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릴 때에도 '참여정부 평가표'와 참여정부평가포럼을 만들어 끝까지 노무현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직후엔 유시민, 문재인과 함께 장례식장에서 상주노릇을 자처하며 조문객들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 말 좋지 못한 범여권의 정치적 사정으로 인해 정권을 한나라당에게 내주게 되었고, 이러한 상황을 함축해서 친노 진영을 '폐족'[17]이라고 지칭한 바 있었다. 친노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이 친노 진영을 향해 자조했던 발언이었던 만큼 당시에는 친노 정치세력의 패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로 해석되었다. #

4.2. 충청남도지사

노무현의 심복이었지만 징역살이로 그럴듯한 정치적 커리어도 없었고, 노무현 정권이 10%도 안되는 참담한 지지율로 막을 내리며, 다른 난파선에서 탈출하듯 열린우리당 탈당 러쉬를 이루며 친노 진영이 몰락하게 되면서 안희정도 정치인으로 입신하기에는 글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 사분오열 되는 와중에 민주당을 지켰고 노무현의 사망 이후 지지자들의 결집, 정권 교체 이후 이명박 정부의 지지율 하락 등의 반사효과가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충청남도지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사실 당시 선거에서 보수층 표가 자유선진당 박상돈 후보와 한나라당 박해춘 후보로 분산되면서 어부지리를 누린 부분이 있다. 박상돈 후보와의 격차는 2% 남짓에 불과했기 때문에 보수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선거에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명박이 이때의 선거 패배 때 왜 여권에는 이광재, 안희정 같은 사람이 없냐며 아쉬워 하는 등 확실히 스타성을 입증해 보였다. 아무래도 친노진영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엔 그나마 온건파적 성향인 것도 한 몫한다. 이러한 중도적인 성향을 통해 중도층에게도 비교적 큰 호감을 얻었으며, 거물급 정치인으로 입지를 다져나갔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의 충남지사 재선을 계기로 더이상 '친노'라는 수식어 없이도, 자기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세력화를 얼마든지 추구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일부 민주당 강경 지지자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온건파적인 면모 때문에 약간의 비토 정서를 보이고 하지만 적어도 그 능력은 탁월하다고 인정할 정도이다.

물론 중도라는 것은 안희정 본인 혹은 그의 측근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가깝고, 안희정의 정치적 정체성은 본인 스스로 분명히 했듯 '진보'에 있다. 충남도지사 재선에 성공하고 차기 대권 주자로 거듭나며 자신감을 얻은 안희정은 스스로 김대중- 노무현을 잇는 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 안희정이 말하는 새정치는 새로운 진보와 보수의 틀을 만들자는거지 안철수처럼 그 제3지대를 구축하겠다는게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다.

출중한 행정 능력과 대한민국 정치계의 메인 스트림으로 부활한 친노의 적통이고, 여야 동년배 정치인에 비해 돋보이는 수려한 외모[18], 준수한 화술과 논리력, 인생역정은 연설이나 토론, 방송, 유세 등에서 대중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플러스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19대 대선에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전에는 대중적 인지도를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본인의 말처럼 '지방 사또' 정도의 정치인으로 남아있었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다 할 수는 없었어도 전국적으로 상당히 주목받던 차세대 정치인임은 사실이며, 충청 대망론의 대표주자로 미는 분위기도 있었다. 실제 충남지역에서는 행정가로서 보여준 탁월한 행정능력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인품에 대해 세대를 막론하고 안희정을 대단히 높게 평가하는 여론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충청 민심을 증명하듯 2015년 9월에 충청인이 선호하는 '충청권' 정치인에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던 반기문(2위 - 11.4%)을 제치고 1위 - 26.6%를 기록했다. 도지사로 재임하고 있는 충남지역(39.6%)에선 무려 10명중 4명이나 안희정을 선호했다. 그 외에 대전(23.8%), 세종(34.8%)로 각각 지역에서 1위이다. 한편으로 충북에선 상대적으로 약세였는데 10.8%로 반기문, 이시종에 이어 3위에 올랐다. # 고무적인 것은 민주당의 취약점인 55세 이상의 장년층에서도 22.9%로 1위를 차지했다는 것과, 선거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30~54세의 선호도가 30.3%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19~29세에선 18.4%의 선호도를 보였고 전체적으로 남녀간 지지차이(남성 26.4%, 여성 27.0%)는 미미했다. 이 여론조사를 통해 안희정이 '충청대망론'의 선두주자임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에서 집권 새누리당과 무승부[19]를 기록했고, 아울러 그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김종민 전 정무부지사(충남 논산-계룡-금산), 조승래 전 비서실장(대전 유성 갑), 정재호 전 정책특보(경기 고양 을)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안희정 마케팅'이 더민주 지지층에게 상당한 호소력이 있다는 점까지 입증했다. 이 중에서 김종민 후보는 그 피닉제의 독주를 꺾으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는 그 특유의 안정감으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과 사분오열된 보수 정당으로 길 잃은 중도 ~ 중도 보수 지지층들이 안 지사에게 몰려 중도 - 보수 외연 확장성을 보여주며 대선 후보 선호도 2위까지 치고 올라갔었다.

유력 정치인들의 연령대에 비해서는 상당히 젊은편인 만큼[20] 지금처럼 계속해서 순탄한 행보와 결정적인 성과 몇 가지를 내준다면 충분히 2022년 대권주자로 떠오를 것으로 보다. 게다가 잘생긴 얼굴로 인해 당대의 인기 아이돌 EXO에 비견되어 충남 엑소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신년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여권 지지자들이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로 안희정이 꼭 거론될 정도였다.

그러나 2018년 밝혀진 비서 성폭행 사건으로 그가 바라던 대통령의 꿈과 정치 인생이 한 줌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21]

2019년 2월 1일 이뤄진 2심에서 10개의 혐의 중 9개가 인정되면서 징역 3년 6월을 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9일 상고심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4.3. 성향

오랜기간 민주당계 정당에서 헌신한 정치인이지만, 2018년 3월 기준의 민주당의 주류와 거리가 있는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친문으로 대표되는 민주당 주류는 가능한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고, 의회를 다소 불신하여 의원 내각제와 같은 분권형 정치 체계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으며 대통령 중심의 확고한 체계를 선호한다. 하지만 안희정은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을 자주 강조하며 전문적인 정치인들을 통한 의회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또한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달려있는 것이 문제라고 발언하며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구조를 벗어나 대통령과 의회가 권력을 나누어 갖는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적폐청산이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19대 대선에서 민주당 핵심 지지층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 안희정이 다소 뜨뜻미지근한 평가를 받은 것도, 전당 대회를 통해 선출된 원내대표, 당대표가 있기 때문에 탄핵국면에서 전락지침은 그분들이 나서야하며 대통령 후보는 선출된 공식적인 공직이 아니기 때문에 나서서 발언하는게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철새처럼 정당을 바꾸는 정치인들을 매우 싫어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은 그대로인데 정당 간판만 바꿔서 이미지를 새롭게 하려는 정당들의 자세도 '회사가 물건 잘 안팔린다고 회사 이름 바꾸는 것 보았냐'는 비유를 들며 강하게 비판한다. 즉, 안희정이 보는 바람직한 정치는 정당이 회사와 같이 이른바 '정책 생산자'로서 정책을 구상하면, 국민은 '정책 소비자'로서 마음에 드는 정당을 지지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실현되기 위해서 정당은 신뢰가 가는 회사가 되기 위해 뚜렷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일관된 정책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강조하며 민주당을 향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소신을 보여주고 있다. #

복지정책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안희정 본인의 비유에 따르면 밥을 먹을 때 진수성찬이 없더라도 김치에 국만 한 그릇 있으면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듯이, 복지정책도 이것저것 쓸데없이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 4대보험과 같이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 인간답게, 어느정도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핵심적인 제도만 튼튼하게 가지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대선시즌 당시 이재명의 기본소득제를 비판하고 공방을 벌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 성향을 강력하게 보여주는 이재명 지사와 거의 대척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복지 분야를 두고 여러차례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5. 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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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성폭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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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담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통일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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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 - 1990 정계 입문


[[무소속(정치)|
무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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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탈당[32]


1990 - 1991 창당


1991 - 1995 합당[33]


1995 - 1997 합당[34]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7 탈당[35]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7 - 2000 입당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3 합당[36]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3 탈당[37]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4 창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4 - 2006 제명


[[열린우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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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 2007 복당
정계 복귀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합당[38]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39]


[[민주당(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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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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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 2013 합당[40]


[[민주당(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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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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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 2015 합당[41]

2015 - 2018 당명 변경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8 - 현재 제명[42]
정계 은퇴

8.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367,288 (42.25%) 당선 (1위)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460,691 (52.21%) 재선[43]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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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지선 (충청남도지사) 6회 지선 (충청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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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저술 활동

9.1. 저서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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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금질 : 안희정의 새로운 시작(2008.1.) 247명의 대통령(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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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콜라보레이션 안희정.jpg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안희정의 진심(2013.11.) 『콜라보네이션 : 시민X안희정, 경험한 적 없는 나라(2016.10.)
파일:안희정과 함께 혁명.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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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함께, 혁명(2016.11.) 안희정의 길(2017.2.) }}}}}}}}}

10. 관련 자료

11. 대중매체에서

12.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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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광역시장 권선택 시장직 상실 (2017.11.14.)
* 충청남도지사 안희정 사퇴 (2018.3.6.)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임기: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1960-1961 · 민선 1기 · 민선 2기 · 민선 3기 · 민선 4기 · 민선 5기 · 민선 7기 · 민선 8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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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남도지사 김두관 사퇴 (2012.7.6.)
* 울산광역시장 박맹우 사퇴 (201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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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은 1965년 5월 1일이다. [2] 1파 양공공파. 29세손 희(熙)○ 병(炳)○ 항렬. [폐쇄] 계정 삭제됨. 본인이 성폭력 사건에 책임을 지고 탈퇴했다. [폐쇄] [폐쇄] [6] 2022년 3월 8일 사망. [7] 2020년 7월 4일 사망. [8] 安熙惇. 현 강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저술한 논문으로 <티베리우스 황제 집권 초기 왕조 지배 이념 강조의 정치적 배경>이 있다. [9] 1964년생 [10] 그가 2년차 구속 중이던 2021년 9월 옥중에서 협의 이혼했다. 출처 그러나 이혼 이후 안희정 부친의 장례식에는 참석했다. [11] 1993년 출생. [12] 1996년 출생. [13] 안희정이 판정받았던 1980년대말 당시 명칭은 "제2국민역"이었다. 전시근로역이라는 명칭은 먼 훗날인 2016년에 생겨서 바뀐 것이다. [14] 문재인과 키가 비슷하지만 안희정의 키가 좀 더 크다. 문재인의 키는 172cm이다. 출처. 그와 친한 남경필 지사, 원희룡 지사보다도 큰 키다. 이 두 사람은 167~168cm 전후. 그나마 정병국과 그와 키가 비슷하다. [15] 성폭력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6] 최종 2위. [17] 廢族: 조상이 큰 죄를 지어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는 집안. [18] 특히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무술가인 견자단을 닮았다는 분들이 많다. [19] 대전 새누리 3 : 4 더민주, 충남 새누리 6 : 5 더민주, 합치면 새누리 9 : 9 더민주가 된다(거기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세종의 이해찬을 합치면 1석 앞선다). [20] 호적상 1965년 5월 1일생으로 2018년 3월 기준 만 52세. [21] 성폭행 사건과 별개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루킹이 한 때 안희정을 응원하는 댓글을 작성해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안희정은 정치적 확인사살까지 당해버렸다. [22] 이명박 대통령, 당신이 원하신 결과가 이겁니까! 대한민국 검찰,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조중동! 당신들이 원한 결과가 이겁니까! 한없이 분노합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지켜드리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23] 징역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집행유예가 나와도 그 전까지 구속재판으로 구치소에 있었으면, 그 시간을 더하므로 정확히는 징역이 아니라 그냥 감옥에 살던 시간이다. 안희정도 2번 중 한번은 집행유예였는데 그걸 판결받기 전까지 10개월 정도 감옥에 살았기에 그 기간이 들어갔다. 반대로 예를 들어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이 나와도 구속 기간이 5개월이면, 그냥 수형생활 5개월이다. 판결에서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고 실제 구속기간만 중요하다. [24] 민방위 의무는 있기 때문에 6급 진짜 면제와는 구별된다. 다만 민방위교육은 알려졌다시피 매우 미미한 시간이므로 실질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 일반인들이 민방위의무만 있는 징병검사 5급에게도 면제라 부르는 이유이다. 법적으로는 6급만 공식명칭이 "면제"이다. [25] 반미청년회 사건으로 인한 안희정의 수형생활이 9~10개월 정도였다. 애학투 사건의 경우 그의 검거일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으나, 1986년 10월말에 발생한 사건인데, 1986년 10월 31일부터 경찰이 전국을 뒤져 천 명 이상의 인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검거를 했던 사건이고 안희정 역시 86년에 검거되었다고 하므로 11월 안에 검거되었을 것이고,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시점이 1987년 9월이므로 대략 10개월 정도로 추정된다. 합이 최소 19개월은 된다. [26] 참고로, 수형생활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은 사회복무요원이 된다. [27] 1984년까지 80년대 초반에는 녹화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운동권 학생들을 강제 징집시켰는데 문서에 적혀있는 대로, 그야말로 사람을 죽이려고 군대에 가둬놓는 방식이라 그에 따른 문제가 심각했다. 심지어, 공식으로 확인된 녹화 사업 관련 의문사 피해자만 무려 6명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 녹화 사업의 대표적인 피해자였다. 그 엄혹한 전두환 정권에서도 이 강제 입대와 녹화 사업을 1984년 9월에 폐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안희정은 이 케이스와는 무관하게 기존의 법만으로도 온전히 합법적인 면제이므로, 당시에 녹화사업이 있었어도 군대에 갈 일은 없었으며, 다른 민주화운동 참여자들도 이런 식의 수형생활로 군복무가 면제된 사람이 많다. [28] 그나마 남경필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것은 아니라 정치 생명이 끝난 건 아니나, 안희정은 어떤 확정적 계기가 없다면 아직까지는 정치적 재기가 거의 불투명하다는게 중론. 그도 그럴것이 성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나 최종적으로 무죄가 나왔거나 누명이 벗겨진 사람들만해도 상황이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치인들의 경우 어떤 큰 사건을 계기로 추락할 경우 회복하기가 비 정치인들보다 더 어려운 까닭이다. 게다가 미투로 대변되는 일련의 사례로 볼 때 성범죄에는 더욱 엄중하다. [29] 여담으로, 안희정 지사와 홍석천은 고교 동문이다. [30] 왼쪽에 있는 사람은 최성 당시 고양시장이다. [31] 그런데 이후 성폭행 사건이 불거지면서 지지자 사이에 돌은 찌라시는, 이 둘은 15년 전부터 이미 별거 중이었던 쇼윈도 부부였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치적인 퍼포먼스. 분명한 것은 충남 지사 재직시 자녀들의 중고등학교 진학을 위해서라며 분당에서 별거 중이었던 건 사실이란 점이다. 주말부부였다고는 하지만.. [32] 3당 합당에 대한 반발로 탈당. [33] 신민주연합당과 신설 합당. [34] 개혁신당과 신설 합당. [35]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 신한국당- 통합민주당 합당 반대)
[36]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 [37]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 [38]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 [39] 민주당과 신설 합당. [40]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 [41]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 [42] 성폭력 사건으로 인한 제명. [43] 2018.3.6. 더불어민주당 출당,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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