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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8 12:59:07

안치용(야구)

안치용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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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면 드래프트 시행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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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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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8_r2_500.png 1996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0

LG 트윈스 등번호 61번
박철홍
(1994~2001)
안치용
(2002~2010.7.27.)
김선규
(2010.7.28.~2015)
SK 와이번스 등번호 35번
이명기
(2009~2010.7.27.)
안치용
(2010.7.28.~2010)
허웅
(2011~2016)
SK 와이번스 등번호 23번
권용관
(2010.7.28.~2010)
안치용
(2011~2014)
브라운
(2015)
}}} ||
}}} ||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50223010023048001501922.jpg
안치용
安致溶 | Ahn Chiyong
출생 1979년 2월 23일 ([age(1979-02-23)]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미성초 - 신일중 - 신일고 - 연세대
신체 183cm, 90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2~2010)
SK 와이번스 (2010~2014)
해설위원 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5~2020)
등장곡 Baltimora - Tarzan Boy
응원가 LG 시절: 김아중 - 마리아[1][2]
동요 - 빙고[3][4]
SK 시절: 쿨 - 또 자 쿨쿨[5][6]
노라조 - 동네 한바퀴[7]
Shaun Cassldy - Da Doo Ron Ron[8][9]
MBTI ISFJ
종교 불교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LG 트윈스 시절
2.2.1. 2008 시즌~2009 시즌
2.3. SK 와이번스 시절
2.3.1. 2010 시즌2.3.2. 2011 시즌2.3.3. 2012 시즌2.3.4. 2013 시즌2.3.5. 2014 시즌
3. 해설자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외야수. 前 KBS N 스포츠 해설위원.

별명은 밑에서 언급되는 난세영웅, 안쳐용, 치드래곤, 치디 등등.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1979년 2월 23일 출생으로[10] 서울미성초, 신일중을 거쳐 고교야구 시절, 강팀 신일고에서 4번을 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었다. 모교인 신일고가 1997년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청룡기 3개대회 동시 석권을 기록할때 중심 타자로서 맹활약했고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97년 LG 트윈스의 고졸우선 지명을 받았다. 그 해 서울팜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타자 3명이 신일고의 안치용, 배명고의 정현택,[11] 그리고 휘문고 박용택이었는데, 그 3명을 모두 쓸어 담은 LG는 미래의 클린업을 얻었다고 좋아했고, 이 3명에게 많은 기대를 걸게 되었다.

그만큼 안치용의 고교 시절 위상은 전국구 급이었다.

그러나 프로 입단 대신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98학번)의 러브콜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고, 신입생임에도 연세대학교 야구부의 클린업 트리오를 꿰어찼지만, 처음 입학 때와는 달리 안치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4번 타자로 입학해 9번 타자로 졸업한다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12]

2.2. LG 트윈스 시절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98학번) 졸업 후 LG 트윈스에 입단, 2002년 5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전에 데뷔하였으나 그냥 그저 그런 성적만 보여주며 1, 2군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열심히 훈련을 하던 선수가 아니었기에[13] 구단에선 그를 미련 없이 포기하고 방출하려 하였으나 2006년 LG의 감독으로 부임한 김재박 감독은 도하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과 LG의 1.5군이 가진 연습 경기에서 안치용의 파이팅 넘치는 외야 수비[14]를 보고는 안치용을 더 지켜보자고 구단을 설득하였다.

2.2.1. 2008 시즌~2009 시즌

그리고 2008년 라뱅의 일본 진출, 박용택의 부진, 동수옹의 부상 등으로 중심 타선에 자리 잡은 안치용은 시즌 초부터 맹타를 휘두르며[15] 5월 한때 3할 5푼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다. 9연패 중이던 5월 11일 대전 한화전에서 에이스 류현진을 상대로 역전 결승 투런 홈런으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해 9연패를 끊어냈다. 또다시 9연패를 당하던 도중 6월 26일 삼성전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풀 타임 시즌 경험 부족으로 차츰 페이스가 하강, 1군 101경기에 출장하여 0.295의 타율과 7홈런, 52타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때 얻은 별명이 난세의 영웅. 다만 난세를 평정할 만큼의 힘은 되지 않았는지 LG는 창단 이래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시즌 말 트윈스 러브 페스티벌에서 전일수 주심에게 퇴장을 당한다....[16] 물론 심판하고 미리 짜고 한 연출. 애초에 들어선 타석도 좌타석이다.

참고로 1군과 2군(2003년)에서 모두 사이클링 히트를 해 본 선수는 드문데, 이 선수는 그것을 해봤다는 것이 중요하다. 퓨처스 리그 기록은 기사화 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드러날 일이 많지 않기 때문.

파일:1474281275.gif
이 시절 지금도 화자되는 봉산탈춤 수비를 선보이기도 했다.

2009년에도 시범경기에서 연일 홈런포를 쏘아올리며 난세의 영웅 시즌2를 예고했으나, 극심한 타격부진으로 안쳐용이라는 별명까지 붙어 버린 반면, 부활한 박용택, FA로 들어온 이진영등에 밀려 벤치 신세를 면치 못했다. 2009년 성적은 타율 0.237, 5홈런 30타점.

2.3.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image/003/2010/07/28/NISI20100728_0003223072_web.jpg

2010년에는 기존 주전에다 이병규, 이택근이 또 추가되며 외야의 빅5가 완성되었으니 더더욱 출장 기회도 잡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7월 28일 4:3 트레이드로 권용관, 이재영, 최동수와 함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2.3.1. 2010 시즌

그리고 당일 벌어진 LG와의 경기에서 첫 타석에서 2루타를 기록했다. 당장 주전으로는 박재상- 김강민- 박정권, 백업에는 박재홍, 조동화, 임훈 등이 버티고 있는 SK 외야진을 뚫고 올라가기는 쉽지 않았지만, 의외의 선수 기용과 높은 적중률로 유명한 김성근 감독이 있는 만큼 2007년 김재현, 2008년의 최정에 이은 신데렐라가 될 가능성을 보였다. 하지만 SK로 온 지 불과 3일 만인 7월 30일 KIA전에서 상대 투수 로만 콜론의 공에 왼손 약지가 골절되어 시즌 아웃되는 비극을 맞았다. 이적 후 끌어올리던 페이스가 언제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지가 불투명해졌다.

다행히도 9월 11일 대전 한화전에 1군으로 조기 복귀했다. 당시 인터뷰에서는 "부상은 완치되었다. 문제는 타격감."이라고 하였을 정도로 부상에서 회복한 모습. 이후 대타로 출전하다 17일부터 주전 외야수(우익수)로 출전, 최근 5경기서 0.462(13타수 6안타 1홈런)를 기록했다. 우려해오던 타격감은 오히려 절정의 모습을 보였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대수비로, 4차전에 김재현의 대타로 출전하여 1볼넷, 출루율 1.000을 기록한 게 전부였지만, 팀이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하여 생애 최초 우승 반지를 획득했다.

2.3.2. 2011 시즌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안치용(야구)/2011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후반기 SK의 난세영웅으로 활약했다.[17]

2.3.3. 2012 시즌

개막전부터 팀의 4번타자로 시즌을 시작, 4월 15일 한화와의 문학 홈 경기에서 선발 지명타자로 출장하여 팀이 7:0으로 이기던 2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브라이언 배스를 상대로 마수걸이 솔로홈런을 쏘아 올렸고, 팀이 8:2로 이기던 6회말 1사 1, 2루에서는 2012 시즌 첫번째이자 KBO 역대 72번째 인사이드 파크 홈런[18]을 달성하며 팀의 11:6 승리를 견인 했다. 이날 3타수 2안타 2홈런 4타점 3득점을 기록.

하지만 이후 끝없는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4번타자에서 내려갈 타순은 내려간다 대타 요원으로까지 강등, 타격감까지 잃으며 폭풍삼진만 당하다가 결국 5월 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문학 홈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3:2로 지던 8회말 선두타자 대타로 나와 삼진을 당했다. 팀은 9회말 조인성의 대타 끝내기 투런포로 5:3으로 재역전승했지만, 결국 안치용은 그 다음날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으로 내려갈 때의 타율은 0.196, 안타는 11개에 삼진이 25개였다. 작년의 성적이 플루크였다는 소리까지 조금씩 나왔다.

곧 콜업되었고 5월 타율은 3할3리로 마감한다. 6월 16일 열린 대 한화 전에서 박찬호에게 3안타를 뽑아내며 박찬호 킬러임을 과시 하기도 하였다. 6월 18일 현재, 타율을 .259 로 끌어 올렸다. 박재상의 부재로 꾸준히 좌익수로 출장 중인데 LG 시절의 봉산탈춤 수비를 무색하게 할 정도의 수비력을 보였다.

그러나 9월 7일에 있었던 KIA와의 경기에서는 김광현 vs. 윤석민의 빅뱅이 예고되었으나, 안치용이 명불허전 쓰레기같은 예능수비를 작렬하여 필요 이상의 점수를 대량으로 허용함으로써[19] 결국 김광현은 멘붕하며 무너졌다. 타석에서는 1타석 1볼넷을 골라내었다.

2.3.4. 2013 시즌

시즌 초반 2군에서 시작해서 1군으로 콜업된다. 하지만 포지션이 겹치는 김상현이 KIA에서 오면서 5월 9일부로 2군행, 오랜기간 2군에 머물다가 9월 엔트리 확대시 1군으로 복귀해서 9월 3일 LG전에서 복귀 첫타석 대타로 나와 역전 안타를 치며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912 대첩의 마지막 9회말 2아웃에 대타로 나와 아주 바깥으로 빠지는 변화구에도 큰 헛스윙을 날리며 힘없게 삼구 삼진을 당했다.

2.3.5. 2014 시즌

1년 내내 2군에서 머물렀고, 1군에 단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다.

10월 21일 이호준의 인터뷰로 뜬금없이 까였다. 이호준은 준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하던 최경철을 칭찬하며 "SK 시절 안치용과 함께 살던 최경철은 훈련이 끝난 뒤에도 동네 놀이터에서 항상 1시간씩 타격 연습을 한 뒤 돌아왔다. 때문에 안치용은 항상 기다렸다 1시간 늦게 최경철과 식사를 하곤 했다."고 말했다. 이 말은 최경철이 연습할 동안 안치용은 쉬었다는 얘기이기 때문에 이 기사의 베댓은 안치용을 까는 내용이 다수였다. 까였다고는 하나 아직 그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그리고 2015년 새해가 밝은 지 12일 만인 1월 12일, 은퇴 결정을 했다.

3. 해설자 경력

파일:external/sccdn.chosun.com/12994_2015032101002644600172771.jpg
선배 조성환 해설위원과 함께 찍힌 사진

파일:external/cc5b24ec243b4af32c3f7798edff8e7490dc47d3954bec1e678835e1e78ed25b.jpg
김재현 코치와 대화 나눈 사진 형사아찌 같다.

은퇴 선언과 동시에 해설자로서의 변신을 선언했다.[20]

KBS N SPORTS에 영입되면서 해설자 데뷔를 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언변이 뛰어나다보니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유머도 있고 목소리도 괜찮아 듣기 편하다는 평. KBS N SPORTS가 2015년에 영입한 해설위원 조성환, 송진우, 안치용 중 가장 낫다는 평가이다. 다만 조성환 해설이 성장세를 보여주고 본인은 언변에 비해 전문성에서는 좀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같은 방송사 송진우, 이용철 해설위원이 워낙 자격 미달이라 반사이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재평가 여론도 조금 있었다. 그래도 몇몇 팀에 대한 편파 논란만 빼면 대체적으로 불호가 심하지 않는 합격점의 해설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은퇴를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야구장비를 남김없이 전부 다른 선수들에게 줬다는 후문이 있다. 이 소식을 들었던 SK 와이번스 스태프들은 정말 독하다는 말을 했었을 정도.

단, SK 경기를 중계할 경우 분위기적인 편파 해설이 심하다는 의견이 있다. 아무래도 본인이 은퇴 전까지 선수생활을 했던 팀이라 애정도 있겠지만,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공식적인 정보 이외의 별로 알려지지 않은 성격이나 습관 등 사적인 정보들 역시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2015년 4강이 어느 정도 결정되고 5위 싸움이 치열하던 무렵 모든 방송사 해설자들의 5위 예측 발언이 주목된 적이 있었는데, 다들 롯데나 한화, 기아 등으로 할때 안치용 혼자 "저는 SK가 5위가 될 거 같다"며 SK를 한 달 넘게[21] 5위 후보로 주목하며 튀는 행보를 보였는데, 정말로 SK가 5위를 함으로써 안치용 혼자만[22] 예측이 맞게 되었다.

2017년 들어서는 KBS 해설진이 다 그렇듯이 썩 평가가 좋지 않은 쪽으로 변하고 있다. 언급했듯 조성환 해설이 계속 발전하는 해설을 보여주는 사이 별로 발전이 없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편파해설 문제가 친 김성근 기질과 합쳐져서 싫어하는 사람들은 SBS의 안경현과 함께 해설계의 양대 노리타라며 상당히 싫어한다.

2018년부터는 조성환이 두산 베어스의 수비코치로 부임하면서 이용철, 장성호, 봉중근, 대니얼 김과 해설을 한다.

2018년 박태원 아나운서로 진행자가 바뀐 KBS 제1라디오 스포츠 스포츠의 코너 야구장 가는 길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그외 해설 중에 호수비 장면을 보고 '저 타구는 타구판단만 잘하면 충분히 쉽게 잡을 수 있는 타구인데 불안하게 잡는다'라고 말하며 호수비를 평가절하 하는 부분이 논란이 되고 있다.
해설자로써의 큰 문제점은 롯까라는 점인데, 사실 롯데를 넘어 영남 구단들에 대체로 비우호적이기는 하다. 또한 SK 편파중계가 너무 심하다. 사실 2020년 6월 30일 경기로 삼까로 악명높아지기는 했으나, 이건 그냥 SK 빠돌이라서 보여준 행적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SK와의 경기 시에는 한일전 급의 해설을 선보인다. 이는 해설위원 초창기이던 2015년부터 시작되었는데, 2015년 9월 16일 SK와 삼성의 경기를 중계하던 중 카메라에 나바로의 가족이 나오자 까매서 누가 동생이고 아버지인지 모르겠다는 희대의 망언을 한 뒤 아차 싶었는지 급히 사과를 했으나, 크게 이슈는 되지 않고 묻혔다. 한편, 편파해설을 가장 잘 보여준 날이 2020년 6월 30일 SK vs 삼성의 경기였다. SK 선수 최준우의 추격포 때는 매우 좋아하다가, 삼성 선수 이원석의 8회 말 쐐기 홈런포에는 긴 시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해설을 보여 주었다.[23] 삼성의 공격 때에는 입을 꾹 닫고 네. 혹은 맞습니다. 혹은 SK의 투수진들을 언급하다가, SK 공격 때에는 작은 플레이에도 극찬을 쏟아내거나 비판하는 등 SK의 코칭스태프로 느껴질 정도의 편파 해설을 했다.[24] 심지어 그 다음날인 7월 1일 데이비드 뷰캐넌이 9이닝 1실점 완투승을 하며 인생경기를 펼친 날에는 외국인 투수는 120개는 던져줘야 한다는 발언을 일삼았다.[25][26]이쯤 되면 그의 야구관은 상당히 뒤틀려 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해설자로서의 자격이 의심되는 수준이다.

또 롯데와의 경기에선 롯데 공격시에는 꾸준하게 침묵을 지키다가 롯데의 상대팀 공격이 되면 갑자기 말문이 트이는지 해설을 한다. 특히나 2020년 7월 15일 롯데와 LG 경기에서도 윌슨의 높은 볼 성의 공을 쳐낸 이대호의 안타가 나왔을 때 이런 공은 헛스윙이 나와야 하는데 맞아나갔다. 전준우의 홈런이 나올 때는 넘어갈 타구가 아닌거 같은데 넘어갔다 등 의 발언을 하며 전지적 LG 시점으로만 해설을 하고 그 외 롯데 공격에서는 어쩌다 한 번씩 말을 하고 꾸준히 침묵을 지켰다.

2020년 9월 11일 롯데와 삼성 경기에서도 평소 삼성 안티 기질을 버리고 삼성이 초반 앞서가자 상당히 기분좋게 해설을 하였다. 분명히 롯데의 공격인데도 지속적으로 삼성 이야기만 하면서 4회 롯데 공격에선 민병헌의 역전 적시타가 나오니 잘 맞은 타구지만 완벽한 안타라고 하기에는... 이라며 이상한 소릴 하더니 다음 타자 한동희의 적시타 때도 한동희가 기술적으로 쳐서 안타를 만들어 냈는데도 불구하고 타이밍을 뺏긴 타격자세인데 빈 곳에 떨어져요 라고 연속으로 헛소리를 하였다. 그러다 롯데가 점수를 계속 내며 무려 한 이닝 10점으로 빅이닝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기분이 나빴는지 이후로 지속적으로 침묵모드에 들어가며 롯데의 실책이 나오면 그제서야 한마디를 하였다. 그리고 5회말 이성곤의 실책이 나오자 한참을 침묵하다 양 팀이 실망스러운 경기가 아닌가 싶네요 라며 해설자의 기본 자질이 의심되게 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여기서 끝났다면 모를까... 경기의 마지막 아웃카운트가 잡히고 나서는 롯데 타격이 상승세다. SK를 만나는 것은 호재다. 라는 발언까지 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물론 SK가 당시 한화와 함께 최하위권 팀이기는 했으나 개인 편파 방송이 아닌 중립을 지켜야 할 정식 스포츠채널 해설위원으로서 이러한 발언은 적절치 못하다.

한화가 청주 홈경기를 하는 경우 KBS청주방송총국 2라디오에서 라디오 중계를 맡고 있다.

2021년 1월 6일 KBS N 스포츠에서 박용택 김태균을 새 해설위원으로 영입했다는 기사에 나온 해설위원진에서 보이지 않은 것을 봐서 계약이 만료된 것으로 추정된다.

KBS N 스포츠 만료 후 약 6개월 뒤인 8월 11일에는 MBC SPORTS+의 웹예능 스톡킹에 출연해 오랜만에 입담을 뽐냈고, 이듬해 3월 2일부터는 MBC SPORTS+ 신규 웹예능 베이스볼 런치 : 브런치의 고정멤버로 도상현 기자와 활동중이다. 또한 SPOTV의 프로야구 종료후 리뷰 프로그램 스포츠타임 베이스볼에서 노윤주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kt에서 은퇴한 이대형과 전 KIA와 롯데 선수였던 윤석민, 김성배 등과 함께 패널로 나선다.

2024년 새로 개편된 스톡킹 2 진행을 안윤상과 맡고 있으나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으나 김선신이 MC를 맡으면서 안치용의 입담도 덩달아 살아났고 시청자들도 김선신-안치용 조합에 대해 호평하고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성적
연도 소속팀 타율 경기수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삼진
2002 LG .000 1 2 0 0 0 0 0 0 0 0 1
2003 .119 37 42 9 5 2 0 0 7 4 4 12
2004 .103 22 29 5 3 2 0 0 5 1 6 11
2005 .143 13 7 1 1 0 0 0 0 0 0 2
2006 .071 20 28 2 2 0 0 0 0 0 3 8
2007 .222 12 18 2 4 1 0 0 1 1 1 4
2008 .295 101 370 46 109 27 3 7 52 7 39 79
2009 .237 90 224 29 53 5 1 5 30 3 28 47
연도 소속팀 타율 경기수 타수 득점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도루 사사구 삼진
2010 SK .313 30 48 3 15 1 0 1 4 2 9 10
2011 .311 93 219 45 68 8 0 12 42 3 34 1
2012 .222 92 198 23 44 10 1 6 23 3 32 66
2013 .244 17 41 2 10 0 0 1 5 1 4 17
KBO 통산
(12시즌)
.256 528 1226 167 314 56 5 32 169 25 171 313

5. 여담

"지금 주효상 선수가 너무 쉽게 병살타에 물려가는 상황이 아닌것 같아요.."
(화면 리플레이로 강성철 캐스터의 부연설명에) 잠깐만요, 볼께요... 이게 1루에 사실은 접전이 되어야 하는 코스이잖아요? 특별히 부상이 없으면 이런 플레이는 아니죠.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거죠.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으로 아웃카운트를 빨리 늘려서 5회를 빨리 마쳐야겠다는 생각인데...
다만 경기는 9회까지 계속 진행되었고 롯데는 5회까지 6:0으로 뒤지는 상황에 역전을 시켜 6:8로 승을 거두었다. 넥센 팬들은 너무 심하게 편파적인 의견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때론 선배이기도 하기에 질책을 하는 건 맞다.

6. 관련 문서



[1] 안치용~ LG 안치용~ (안!치!용!) 무!적!L!G! 안!치!용! 오~ 오~ ×2 [2] 안치용이 SK로 떠나고 이후 정의윤이 물려받았으나 공교롭게도 정의윤도 이후 SK로 이적하였다. [3] L!G! 안치용! ×3 날려버려라 [4] 당연히 평은 최악이였고 이후 위 마리아 응원가를 사용했다. [5] 우리모두 안! 우리같이 치! 다같이 용! 와이번스 난세영웅! 와이번스 안!치!용! 와이번스 난세영웅! 와이번스 안!치!용! [6] 안치용이 은퇴한 후 SK로 이적한 정의윤에게 이 응원가가 잠시 넘어갔었다. 여담으로 정의윤은 두 팀에서 안치용의 응원가만 두 번 물려받았다. [7] 불!꽃! 투!혼! S!K!안!치!용! [8] SK 와이번스 안치용~ 라랄라라라 라라라~ SK 와이번스 안치용~ 라랄라라라 라라라~ Hey~ Hey~ 안치용~ Hey~ Hey~ 안치용~ Hey~ Hey~ 안치용~ SK 와이번스 안치용~ [9] 이후 이 응원가는 조성우가 물려받았다. [10] 2월생이라 빠른 79년생에 해당되는데도 79년생-98학번들과 동기인걸 봐서는 입학유예를 거쳐 제 나이에 맞게 초등학교에 입학한것으로 보인다.-본인 말로는 수두가 심해서 그냥 나이에 맞게 갔다고 한다.- [11] MBC 청룡, LG 트윈스 역사를 통틀어 게으르고 불성실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멘탈이 심각하게 개판이었다. 2군에서 햇빛에 얼굴이 타기 때문에 낮경기를 못하겠다며 경기 출장을 거부한 일화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그럼에도 불구하고 2군사상 최초로 4할타자(.418, 1999년)였다는 것도 전설, 결국 코칭스태프에게 단단히 찍혀서 쫓겨나듯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당연히 빛을 보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였다. 참고로 박용택의 휘문고와 안치용의 신일고는 강팀이었지만, 정현택의 배명고는 정현택의 원맨팀이었다. [12] 대학생 시절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어깨을 다쳤고, 설상가상으로 타격 훈련을 하다가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내내 재활만 하느라 2~3학년 때는 경기 출장 기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4학년이 돼서야 복귀하여 8번타자부터 시작했다고. [13] 본인이 회상하는 자신의 프로선수 시절, 여담이지만 안치용은 SK 시절에도 김성근의 훈련을 피해 대놓고 땡땡이를 쳤던 용자였다. 본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사실 당시 LG코치였던 이순철도 먼 훗날 주간야구라는 방송에서 안치용은 신인때부터 자기관리 안해서 입단했을때 이미 심각하게 뚱뚱했다고 대놓고 디스했다. 물론 방송주제는 안치용이 아니라 박용택이었는데, 그를 신인때부터 본 이순철이 완벽한 근육질 몸관리를 신인때부터 한 박용택의 모습을 설명하다 보니, 그의 동기였던 안치용을 절로 비교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디스하게 된 것. [14] 우익수로 선발 출장 하였는데, 관중석으로 넘어갈 외야 플라이 타구를 전력 질주해서 잡는 멋진 호수비를 하였다. [15] 2002년에 데뷔했으나, 통산 첫 홈런은 2008년에 기록. [16] 아마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일 것이다......만 원조는 이쪽, 그렇다고 홍성흔이 따라한건 아니지만, 정말 둘의 동작이 비슷했다. [17] 훗날 4년의 세월을 거쳐, 이 외부영입 출신 SK 난세영웅 계보는 2015년의 정의윤이 이어받게 된다. [18] 당시 우익수 정원석이 타구를 잡다가 펜스에 부딪힌 사이 홈에 들어왔다. 정원석은 그 부상으로 시즌아웃, 선수인생도 마감하였다. (엄지탈골) [19] 이상하게 KIA 타자들이 칠 때마다 타구가 좌익수 안치용 쪽으로 계속 갔다. [20] 몇년 전 인터뷰에서는 뛸 수 있을 때까지 뛰겠다고 말했다. [21] 그가 처음 아이 러브 베이스볼에서 예측을 말하던 당시에는 SK가 7위였고 한동안 5위를 하지 못한 채 6위와 7위를 오갔었다. 심지어 SK 팬들조차 5위를 어렵다고 봤던 시기. 그러나 안치용은 계속 5위 예측을 바꾸지 않았다. [22] 물론 추후 SK가 종료 2주 정도를 남기고 5위를 하자 그때부터는 5위가 SK일 거라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예언한 사람은 분명 안치용 혼자였다. [23] 결국 이 날 경기는 삼성의 4:1 승리로 끝났다. [24] 이를 종합해보면 SK에 우호적이기보다는 SK 골수팬의 시선으로 경기 해설을 진행했다. 예를 들어 SK 선수들이 행복수비를 하면 분노했지만 삼성 타자들이 안타를 치면 조용히 있었다. [25] 상황을 설명하자면, 뷰캐넌이 8회 투구수가 100개를 막 넘겼을때 캐스터가 뷰캐넌의 평균투구수 104개보다 덜 던졌다고 말했다. 안치용은 그 말을 듣고 "평균 투구수를 좀 늘려야겠죠, 외국인 투수가 120개는 던져줘야 합니다"라고 발언을 해 버렸다. 참고로 6선발을 돌리는 일본프로야구도 어지간한 호투가 아니면 그냥 100개 정도 던지면 내린다. 물론 6일 휴식이라서 110-120개 정도까지는 밀고 나가는 경우가 자주 보이기는 하지만... [26] 물론 외국인 선수가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건 미덕이다 그러나 투구수와 이닝은 별개의 문제로 "외국인 선수에게 많은 이닝을 기대한다 뷰캐넌은 그 기대를 채워주고있다" 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말을 굳이 굳이 뷰캐넌 까려고 그따위로 말한것 [27] 당시 주제가 박용택의 최다안타 기록 경신이었는데, 박용택이 신인 때 이순철이 소속팀 코치여서 정우영이 물어본 것이었다. 근데 상관없는 안치용 이야기까지 하자, 정우영이 당황한 걸 보면 약속된 이야기가 아니었고, 이순철은 그걸 개의치 않을만큼 코치나 감독 시절, 진심으로 안치용이 아쉬었던 듯 하다. 심지어 당시 안치용은 이미 KBSN 해설자였다... 방송계에서 같은 해설자가 된 후배를 여지없이 깐 것. 다만 이게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안치용과 너무 친해서 스스럼 없이 아주 솔직하게 말을 한 것이다. 안치용의 말에 따르면 이순철과 현역 시절 굉장히 친해서 선수들이 이순철의 양아들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