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2:45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여명의 기쁨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
파일:DestinyLegends.png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닫기 ]
하위직업 | 에버버스 | 행성 | 수성 | 화성 | 뒤엉킨 해안 | 꿈의 도시(목적지) | 대장간 | 방랑자 시즌 | 풍요의 시즌 | 공격전 | 명상 | 시련의 장 | 갬빗 | 리바이어던 | 마지막 소원 | 슬픔의 왕관 | 아홉의 시련 | 강철 깃발 | 여명 | 진홍의 주간 | 수호자 대회 | 영웅의 지점 | 업적의 순간 | | 구원의 정원 | 불멸 | 서광 | 자격 | 오시리스의 시험 | 출현 | 사자들의 축제 | 유로파 | 사냥 | 딥스톤 무덤 | 선택받은 자 | 융합 | 잃어버린 자 | 왕좌 세계 | 되살아난 자 | 신봉자의 서약 | 망령 | 이중성 | 우주 해적 | 세라프 | 감시자의 첨탑 | 네오무나 | 대항 | 악몽의 뿌리 | 심해 | 심해의 유령 | 마녀 | 소원 | 빛 속으로 | 창백한 심장 | 구원의 경계 | 에피소드: 메아리 | 에피소드: 망령 | 베스퍼의 주인
선봉대 업적 지식
빛 업적 지식
황혼과 새벽 업적 지식
| 잊혀진 자의 이야기 - 4권 | 정원 길
어둠 업적 지식
}}}}}} ||

1. 개요2. 마음 가벼웠던 시절3. 전통의 중요성4. 여명 전의 여명5. 감정이 중요해6. 우리를 정의하는 선택7. 대가족8.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의 여명9. 서로 축하하기10. 교훈적인 이야기11. 여명 선물로 표현하기12. 우연의 일치는 없다13. 싹싹한 태도14. 두 번 한 이야기15. 우릴 하나로 만드는 것16. 익숙해진다니까17. 소문18. 좋은 싸움19. 아주 착한 젊은이20. 경고 쪽지21. 색다른 감각22. 필요한 거리23. 여명의 도우미

1. 개요

2018년 여명 때 선물을 각 NPC들에게 줄 때마다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이다.

2. 마음 가벼웠던 시절

있잖아, 난 자발라와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어. 그 옛날 처음 탑에 도착했던 때 날 맞이해 준 사람이 바로 자발라였지. 물론 "맞이했다"고 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말이야. 그 말에서는 어딘가 정이나 온기 같은 게 느껴지잖아. 그런데 자발라는… 만나 봤지? 많이 무뚝뚝한 편이야. 안타깝게도 붉은 전쟁을 거치면서 더 그렇게 됐어. 물론 우리도 모두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됐지만. 어쨌든 처음 그를 만난 후에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그 뒤엔 가능한 한 자발라를 피하려고 했어. 물론 가끔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지.

그날의 만남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탑에서 처음으로 여명을 맞았어. 모두들 잔뜩 들떠 있었지.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웃어 주고 축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니 참 기분이 좋았어. 테스와 내가 장식을 막 마쳤을 때, 테스가 뭘 좀 가지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자발라가 내 쪽으로 오기 시작했어. "이런." 난 생각했지. "안 돼, 이 남자는 안 된다고." 아, 하지만 그 사람은 내게 다가왔고, 난 그냥 미소를 지으며 여명 복 많이 받으라고 말했지. 정말로 그 사람에겐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랐거든. 가장 무뚝뚝한 사람이야말로 마음속은 가장 슬픈 일이 많으니까 말이지.

자발라도 내게 여명 복 많이 받으라고 했어. 그런데 그때 그가 미소를 지었지 뭐야! 난 눈을 의심했어! 우린 인사치레를 좀 했고… 내가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런 말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자발라가 문득 이렇게 말했어. "아, 그 얘기를 들으니 우스개가 하나 생각나는군!"

우스개라니!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어. 타이탄 선봉대를 대표하는 그 사람은 늘 "우스개 따위 할 시간 없다"고 외치는 듯한 얼굴로 보였으니까 말이지. 그런데 그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의 자세가 많이 편해졌다는 걸 알았어. 여명의 정신이 이 돌덩이 같은 남자에게도 스며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니까.

요즘은 그런 농담도 일부밖에 기억나지 않아. 아마 수호자와 몰락자 대장과 관련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그래도 그가 처음 몇 마디를 자꾸 틀려서 다시 시작해야 했던 건 분명히 기억이 나네. 나는 최대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용기를 북돋았어. 그리고 그는 내가 들은 것 중에서 가장 길고 가장 부자연스러운 우스개를 했지. 그렇게 귀를 기울이고 있던 시간이 나는 좋았어.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꼈지. 아, 자발라도 진짜 즐거워했다고 맹세할 수 있어.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박장대소했지. 그토록 감춰져 있던 영혼이 그렇게 마음을 열다니, 그야말로 아름다운 순간이었어.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그가 자신을 묶어 두었던 경계 밖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존경심을 품었어. 언젠가 나도 그렇게 용감해질 수 있기를 바랐던 기억이 나네. 처음으로 나는 그를 도시의 지도자로서만 존경하지 않았어. 처음으로 인간 자발라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느꼈지. 자발라, 내 친구.

그때 이후로 그는 항상 내 마음 한 구석을 따뜻하게 차지하고 있지.

---

걀라르낙서:
에테르 줄기와 맛있는 폭발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3. 전통의 중요성

내가 자리를 비우고 농장에 머무는 동안 프레임들이 새로운 탑에서 여명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테스에게 들었을 때는 '날 빼놓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 하지만 이렇게 자신을 타일러야 했지. '에바, 이런 전통은 너 개인보다 더 중요한 거야. 전통이란 그 전통을 남긴 사람들의 가슴과 정신 속에 살아남아 세대와 세대를 거쳐서까지 살아남으니까!'

이제 난 탑으로 돌아와서 사상 최고로 멋진 여명 축제를 준비하고 있어. 그리고 매년 반복할 것이 분명한 전통을 유지해 가고 있지. 아이코라에게 여명의 수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거 말이야. 해 줄 때까지 계속 얘기할 생각이야.

장식 문제를 논의하자고 약속을 잡았지만, 아이코라는 시급한 선봉대 일로 늘 아주 바쁘다는 건 잘 알고 있어. 그래서 그녀의 골방에 다가가다가 그 낮은 목소리가 들리길래, 바로 쳐들어가지 않고 살짝 들여다본 거야.

아이코라는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지. 거의 화가 난 목소리였어. "여명 장식이라니! 그런 바보 같은 일을 할 시간은 없다고…"

남자 목소리도 들렸지. "'바보 같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죠. 당신에게 힘든 일이란 건 알겠어요. 처음으로 이번 여명에는 케이—"

"그만, 오퓨커스. 조용히 해." 아이코라가 누구와 이야기하는 건지는 보이지 않았고, 그 이름을 알아들을 수도 없었지만 아이코라의 목소리는 날카로웠어. "우려스러운 점은 그뿐이 아니야. 뒤엉킨 해안에서 들어온 최근의 보고서는 어때?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던데. 그리고 내 은신자 하나는 고향에서 더 가까운 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해 왔어…" 그녀의 눈이 주 통로로 향하더니 한적한 구석의 반쯤 닫힌 문을 바라봤지.

"네, 아이코라. 하지만—"

"게다가 오시리스에게는 아무 연락도 없어. 물론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어.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냥 연락을 하시면 안 되나요?"

"그런가. 하지만 난 그럴 시간이 없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어. "에바 레반테!"

나는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고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여명의 수정 디자인이 그려진 종이를 부스럭거렸어(아이코라가 내가 엿듣고 있었다고 생각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이코라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바라봤어. 그녀 고스트가 귓가에 떠서 경계하듯 웅웅 소리를 내고 있었지.

"여명 복 많이 받아요, 아이코라 레이!" 난 말을 시작했어. 내 환한 웃음과 디자인을 단호하게 펼쳐 보이는 내 모습을 보고, 그냥 알겠다고만 하면 일이 빨리 끝날 거라는 사실을 그녀도 알았을 거야. 그래도 그녀는 우리 전통을 존중하는 건지, 두 번이나 거절한 후에야 말했어. '좋아, 에바. 좋다고.' 그래도 수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 내 시선을 애써 피하더군. 하지만 그녀의 고스트가 날 바라보며 눈을 깜빡이는 게 보였어.

그녀가 만들기로 약속한 디자인은 아주 정교한 거였어.

그녀가 일을 마치면 다시 만나기로 했지. 나는 조수 말리아와 함께 잡무를 처리하다가 시장에서 아이코라를 만났어. 준비 막바지라 할 일이 어찌나 많던지! 다가가다 보니 그녀와 오퓨커스가 머리를 맞대고 있었어. 아이코라는 계속 고개를 가로젓기만 했지. 그래도 그녀는 손을 들었고, 갑자기 거대한 여명의 수정이 탑 위쪽 하늘에 깜빡이며 나타났지. 수많은 다이아몬드가 하늘에 매달린 것 같았어.

말리아는 숨을 헉, 하고 들이쉬더군. 그 아이는 탑에 그렇게 높이 올라간 적도 없었고, 여명의 수정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었어. 멀리 아래에 있는 도시에서만 봤을 뿐. 들고 있던 상자까지 모두 떨어뜨리더라고.

아이코라가 말리아를 도와 짐을 주워서 차례차례 쌓아 주었어. 하지만 그제서야 말리아가 여전히 돌처럼 굳어서 무릎을 꿇고 그녀를, 하늘에 빛을 피워낸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지. 그 불쌍한 소녀의 상처투성이 얼굴은 눈물로 번들거렸어. 소매로 얼굴을 닦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지. 말리아의 가족은 붉은 전쟁 당시 도시를 탈출했어. 살아남아 다시 가정을 이루긴 했지만, 그들의 삶에 아름다운 건 많지 않았지.

말리아는 아이코라의 팔에 손을 대고 입 모양으로 고맙다는 말을 했어. 그녀의 두 볼은 바늘꽂이처럼 새빨개졌어.

그러고 나서야 나도 무릎을 꿇고(요즘은 내가 좀 많이 굼뜨다니까) 아이코라에게서 상자를 받아들었어. 딱 하나만 빼고. 태양이 눈을 둘러싸고 있는 문양이 새겨지고 황금색 리본으로 묶인 상자였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걸 아이코라의 손에 안겼지. 그러니까 아이코라의 고스트가 작은 소리로 말하더군. "제가 얘기했잖아요." 아이코라도 이렇게 대답했고. "그래, 그랬었지."

---

여행자 도넛 홀:
기갑단 기름과 영감의 성광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4. 여명 전의 여명

전에 아만다가 모친 노라가 이곳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사막 민족 출신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어. 노라는 어린 시절부터 거리에서 살았지. 때로는 가진 게 휘갈겨 그린 낡은 지도와 그 산탄총 하나밖에 없을 때도 있었고. 필요한 게 많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필요했어. 노라는 반쯤 버려진 마을에서 아만다의 아버지를 만났다고 해. 그리고 그녀가 최후의 안전한 도시 이야기를 하자, 뭐, 그는 그녀를 따라왔지. 가족도 없이 오직 두 사람뿐이었어. 그들은 가는 길에 동료 피난민들을 받아들였지. 잃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 과정에 소중한 딸을 낳았어. 아주 천천히 이동해야 했을 거야. 처음엔 갓난아기, 그 후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으니 말이지. 하지만 그들은 믿었어. 희망이 있었어. 그래서 계속 나아갔지.

아만다는 황야에서 그들이 함께 맞았던 한 번의 여명에 대해 내게 얘기해 줬어. 꼬마 아만다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아이 루시아를 데리고 있던 다른 가족과 만났던 때였지. 함께 여행하기 좋은 사람들이었어. 그들은 숲이 우거진 곳에서 만났는데, 폭풍이 다가와서 바람이 세차게 불고 나뭇가지들이 이리저리 날아 다니는 통에… 그곳에서 가만히 기다려야만 했지.

그래서 그들은 수송선의 잔해를 찾아서 부서진 외장과 날개를 기대어 놓고, 어른들과 두 아이 모두 녹슨 선체 아래의 마른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앉았어.

그때 아만다의 모친이 말했지. "한동안 여기 이렇게 있어야 할 것 같네요. 그러니 뭔가 도움이 될 일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그녀는 성인들을 보내 먹을 것과 마실 것, 몸을 말릴 것을 가져오라고 했어. 아만다의 부친은 기다란 잎이 달린 식물을 가져왔고, 그 잎을 엮어서 깔개를 만들 수 있었지. 동료들은 가득 찬 물통, 꺼끌꺼끌한 과일, 오이 같은 채소 여남은 개를 갖고 돌아왔어. 짐 속에 들어 있던 말린 생선과 함께 먹으니 잔치 같았지.

어른들이 일을 하는 동안 루시아는 과일 껍질을 돌돌 말아서 작은 꽃을 만들었어. 하지만 꼬마 아만다는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지. "쓸모 있는 일을 좀 하렴. 장식이라도 좀 만들고 말이야." 아만다의 모친이 아이를 타일렀어. 그리고 아만다에게 전선과 볼트, 너트, 그리고 작은 불이 잔뜩 켜진 회로를 하나 건넸어.

루시아가 낡은 건전지를 하나 갖고 달려왔지. 두 아이는 함께 작은 전구로 뒤덮인 소형 화환을 만들었어. 그리고 루시아는 아만다에게 전선을 건전지에 어떻게 연결해야 불이 켜지는지 알려줬지. 드넓은 검은 숲 속에 작은 불빛들이 환하게 밝혀진 거야.

아만다는 그 과일 얘기도 했어. 속이 하얗고 시큼한 맛이 났다고. 가사도 없이 노래를 만들어 허밍으로 부르고 은신처의 금속 벽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추었다고도 이야기했지.

그 과일이 뭔지는 몰랐어.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라. 다른 가족은 어떻게 됐냐고? 아만다의 가족과는 중간에 헤어지고 말았어. 그 이후로 아만다의 부모도… 세상을 떠났지. 최후의 안전한 도시를 찾아 길을 나섰던 그 수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하지만 아만다 홀리데이는 여전히 빛을 만들고 있어. 남는 잡동사니를 사용해서 작업장을 꾸미기도 하고 말이지. 여명이 올 때마다 그 일을 한다고.

---

초콜릿 우주선 쿠키:
기갑단 기름과 무미건조를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5. 감정이 중요해

탑의 거주민 중 일부는 정말 오랫동안 여기 머물렀어. 수호자, 엑소, 옛 강철 군주. 그들 모두 수많은 여명을 보았지. 탑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축제를 기념하기 전에도 그와 비슷한 빛과 희망의 행사를 축하하던 사람들이 있었어. 가끔은 그런 추억들이 서로 뒤섞이기도 해. 하지만 감정은… 그 감정만은 그대로 남아 있지.

이번 여명은… 지난주였나? 그 전 주였나? 그것도 기억이 나지 않네, 하하! 공급자 중 한 명이 실수로 내 상자 두 개를 총제작자에게 배달했다고 알려 왔어. 그래서 난 일을 해결하려고 밴시-44를 찾아갔지.

그 엑소는 물건을 받은 일도 기억하지 못했어. 하지만 날 알아봤는지 두 눈이 조금 더 밝게 빛나는 게 보였지. "여명에 관한 일이겠군요."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뒤로 돌아서서 뒤쪽의 선반으로 다가갔어. 그리고 커다란 상자 두 개를 들고 돌아왔지.

"이게 그 물건인가요?" 그가 묻더군.

우린 첫 번째 상자를 열었어. 그 안에는 정말, 정말 낡은 초콜릿 상자가 들어 있었어. 그리고 여러 가지 휴대용 무기 청소 도구, "심장 사냥꾼"이라는 책 한 권(나는 잘 아는 소설인데 호불호를 많이 타지), 작은 상자에 조심스럽게 담아 놓은 총알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 엄청나게 많은 여명 연하장이 담겨 있었지.

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가로저었어. "그건 사람들이 여명을 맞아 당신에게 준 거잖아, 밴시!"

총제작자는 눈을 두어 번 껌뻑거렸어. 그러고는 상자를 닫더군. 안타깝게도 초콜릿은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은데, 내년을 기약해야지. 그리고 카운터에 있는 다른 상자로 향했어. 뚜껑을 열었지.

그 상자 안에는 여명 선물이 가득했어. 밝은 색 포장지로 포장하고 반짝이는 리본을 묶은 선물이었지. 아주 작은 상자에 들어 있는 것도 있었는데, 물론 총도 있었겠지. 꼼꼼하게 이름표를 다 붙여 놨더라고.

"당신이 올해 친구들에게 주려고 준비한 선물 아니야?" 나는 한쪽 눈을 깜빡이며 물었지.

밴시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이름표를 읽어보더군. 그리고 그중 일부에는 자세한 사용 방법을 꼼꼼히 적어뒀더라고. 엑소는 어깨를 으쓱했어.

"모든 걸 자세히 적어 두는 습관을 들였어요. 가끔씩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있어서요." 그는 손을 흔들어 그 생각을 떨쳐 버렸어. "그렇죠."

"내 물건은? 내가 가지러 온 상자 말이야." 내가 다시 물었어.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가락 하나를 들더군. "오. 어디에 있는지 알겠어요."

하지만 그가 상자를 치우기 전에 나는 뚜껑을 톡톡 두드렸어. "상자 내용물을 적어 둬야지. '옛날 여명 선물'. '새 여명 선물 - 전달할 것'." 그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뚜껑에 내용물이 뭔지 적었어.

"여명을 위해서라도 내 친구들은 잊지 않아요." 그는 내 상자를 건네주면서 잊지 않고 내게 말했어.

"그래서 나도 기쁘네. 여명 복 많이 받아, 밴시!"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그의 팔을 꼭 잡았어.

그가 초콜릿 내다 버리는 걸 잊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네.

---

원격 측정 타피오카:
벡스 우유와 총알 스프레이를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6. 우리를 정의하는 선택

때로는 뭔가 무서운 것을 마주할 때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에게서 힘을 받으려 하지. 수라야 호손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어. 무뚝뚝한 태도 때문에 좋아하기는 쉽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게 다 의도적인 거라고. 하지만 일단 그런 면만 극복하고 나면 배울 것이 정말 많아.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 고아가 됐고, 데브림과 마크가 그녀를 받아들였지. 솔직히 어느 정도는 그 두 사람이 롤 모델이었던 덕분에 그녀가 이렇게 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 둘은 그녀가 항상 자신감을 갖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 키웠지… 궁극적으로는 그랬기 때문에 그녀가 도시를 떠나게 되긴 했지만 말이야.

수라야 얘기로는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보니 마크와 데브림이 식탁에 앉아 있었다고 하더군. 마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야. 두 사람은 수라야를 자리에 앉히더니, 혹시 하고 싶은 말은 없느냐고 물었대.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지. "없어요."

마크는 다시 한번 말해 보라고 했지.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래서 마크는 집행자 히데오가 집에 들렀었다고 얘기했지. 수라야는 그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고.

"어떻게 지내는지 알잖아." 데브림이 말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다오."

"그의 얼굴이 방해가 됐어요."

마크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는 그날 아침에 그녀가 보급품을 훔치는 모습을 봤다고 주장한 히데오의 말을 전했어. 그리고 그에 관해 할 말이 없느냐고 그녀에게 물었지. 수라야는 아무 말이 없었어.

마크는 수라야에게 보급품을 훔치고 진영 지도자의 코를 박살내는 건 도시에서 쫓겨나기에 딱 좋은 방법이라는 걸 상기시켜 줬지. 그러자 수라야도 더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어. 그녀는 소리 높여 일을 설명했지. 그 진영은 식량과 보급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그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너무 벅차서 각 진영에 충성 맹세를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 말이야. 그녀는 그들을 돕고 싶었어. 그래서 가끔씩 신 군주국의 보급품을 훔쳐냈던 거야.

데브림은 물었어. "히데오는 어떻게 된 거니?"

수라야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끙, 하는 소리를 냈어. 그리고 히데오가 그녀를 보더니 온갖 추잡하고 끔찍한 말을 쏟아냈다는 사실을 얘기했지. 그녀가 쓸모없는 아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뭐 그런 얘기 말이야.

데브림도 히데오가 상당히… 음, 굳이 다시 말하긴 좀 그러니까, 아주 "불쾌한 사람"이라는 점에 동의했다고 하자. 하지만 그는 영향력이 아주 큰 사람이었고, 수라야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어. 아주 가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수라야 입장에서는 그게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어. 그때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는 얘길 하더군. 어쩌면 히데오에게 주먹을 날린 데는 그것도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고 말이야. 그녀는 후견인들에게 그 얘기를 했지만 그들은 그 말을 믿지 못했어.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지. 그리고 데브림이 입을 열었어. "자, 어서 짐을 싸자."

"안 돼요." 그녀는 말했어. "절대로 안 되죠." 수라야는 자기 결정 때문에 그녀를 받아들이고 보살펴 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어. 그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 그들은 수라야의 뜻을 꺾으려고 갖은 애를 썼지. 그녀 말로는 아주 오랫동안 말다툼을 했다고 해. 하지만 결국엔 수라야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이렇게 말해 버렸지. "쫓아오려고 하면 도망칠 거예요."

아마 두 사람은 더는 블러핑을 할 여지가 없었던 것 같아. 지치고 걱정하는 목소리로, 마지막으로 같이 가자는 말을 했다고 하니까. 하지만 수라야는 완강했어. "제 선택 때문에 두 분을 고생시키진 않을 거예요." 두 사람이 어쩔 수 있었겠어?

그녀는 언제 떠나야 하느냐고 물었지. 마크는 계획을 세우는 동안 하루나 이틀 정도는 히데오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어. 그는 다시 완고한 목소리로 말했지. "가까운 곳으로 가라. 우리가 언제든 가서 확인할 수 있게. 잠시 동안만이라도 말이야. 이 조건은 협상의 여지가 없어."

물론 마크에게 그런 조건을 제시할 권한 같은 건 없었지. 그래도 수라야는 거기 동의했어. 일 년 이상 도시 근교에서 머물다가 적절히 작별 인사를 하고 먼 세계 속으로 떠났지.

내가 보기엔 수라야 호손은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을 돕는 게 옳은 일이란 걸 알았고, 데브림과 마크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게 옳은 일이란 걸 알았고, 또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그들을 안심시키는 게 옳은 일이란 걸 알았던 거야. 그게 내가 늘 존경하는 진정한 용기지.

---

엘릭스니 새 모이:
에테르 줄기와 개인적인 손길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7. 대가족

아아, 데브림. 데브림을 만나 보면 누구라도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을 보살피고,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와주니까. 나는 농장으로 돌아온 후에 그를 여러 차례 만났어. 때때로 날 찾아와서 사람들을 모두 확인하고,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걸 확인하곤 했지. 우린 차를 몇 번 함께 마시기도 했어. 정말 친절하고 정직한 사람이었지.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

우린 전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는 몸을 지킬 무장을 해야 한다고 거듭 날 설득하곤 했지. "저 밖에 뭐가 있는지 보셨잖아요." 데브림은 내가 모든 걸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얘기했어.

그 문제로 몇 번이나 언쟁을 했지. 그래서 난 의도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는 직업을 택한 거라고 설명하곤 했지. 내가 가장 많이 기여할 수 있는 곳은 따로 있다고, 그러니까 그쪽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어.

데브림이 요지부동으로 뜻을 굽히지 않던 때 하던 얘기가 생각나는군. "에바!"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었지. 아무래도 의도한 것보다 목소리가 더 커졌던 것 같아. 두 눈은 거의 화가 나기라도 한 듯이 다급한 표정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어. "이건 '만일의 사태'를 논할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몸을 지켜야 하는 상황을 겪으셨잖아요. 다시 또 그럴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겁니다. 기갑단은 물러나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우릴 위협하는 건 그들만이 아닙니다. 그런 사실을 전부 알면서도 자기 몸을 지키려 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그래, 내 몸을 지켜야 했던 기억이 있어. 모든 면에서 싫었던 일이었지.

"데브림." 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내 뜻은 명료했어. "싸우고, 총을 쏘고, 아수라장이 되는 건 내가 함께하고 싶은 일이 아니야. 난 볼 만큼 봤어. 내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물론 그런 일은 생길 테지. 그래도 상관 없어. 내가 함께하고 싶은 건 치유의 과정이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함께하고 싶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런 거 아닐까?"

불쌍한 데브림은 그제서야 날 설득하려던 일을 그만뒀어. 그래도 가끔씩 내가 잘 지내나 확인하는 건 그만두지 않았지. 오랜 습관은 어떻다고 하잖아.

마침내 내가 탑에 돌아왔을 때, 날 기다리는 게 무엇이었을 것 같아? 여명 축제가 막 시작하려던 참인데, 우편 담당자가 내게 배달할 소포를 하나 갖고 있더라고. 거기에는 화려한 디자인에 골동품 같은 색상의 아주 아름다운 보조 무기가 담겨 있었어. 쪽지 한 장하고. 물론 데브림이 보낸 거였지.

처음에는 화가 났어. 그렇게까지 얘기를 했었는데! 처음에는 그 총을 그냥 버려 버릴까도 생각했지. 하지만 나는 그냥 쪽지를 읽었어.

"에바, 친구여!

결국 농장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하게 된다는 생각에 솔직히 기쁜 마음이 드는군요. 그런 마음으로, 그리고 여명을 축하하며 이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벌써 몇 세대에 걸쳐 저희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물건입니다. 케이 가문의 가보라고 할까요. 그냥 버려 버리기 전에 쏠 수 없는 총이라는 점을 알아 주세요. 이 정도면 우리 둘의 의견을 적절히 절충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받아 주시면 좋겠네요.

탑의 생활이 마음에 드시길 빕니다, 옛 친구여.

—데브림"

나는 그 쪽지를 몇 번 더 읽고는, 잘 접어서 주머니 속에 넣어 뒀어.

그리고 이 아름다운 가보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지. 우정의 상징이자 가족의 상징. 그리고 그렇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도, 내가 얼마나 운이 좋아서 그 두 가지를 다시 찾을 수 있었는지 돌이켜 봤어.

---

신사의 쇼트브레드:
에테르 줄기와 완벽한 취향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8.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의 여명

매해 여명이 찾아오면 난 고객들로부터 수많은 연하장을 받네.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우리 태양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편지는 딱 한 번 내 고객이었던 사람한테서 받은 편지야: 토성의 달 중 하나인 타이탄의 바위인, 여군주 슬론에게서 받은 편지였지.

"에바에게,

"여명 복 많이 받으세요.

"먼저 배송 감사합니다. 모든 물품이 완벽한 상태로 잘 도착했어요. 닭 포장은 정말 예술이더군요(이건 뒤에 다시 얘기할게요). 저희는 사령부 밖의 울타리를 화환으로 장식하려 했는데, 몰락자들이 전등을 사격 연습에 사용하더군요. 내년에 더 주문해서 차라리 실내 휴게실을 장식하는 게 낫겠어요. 여명 등불 두 개도 바람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여기 메탄 바다의 날씨는 온화하지 않기로 유명하거든요.

"타이탄에서 저를 도와주고 있는 수호자들한테 들었는데, 도시 밖의 여명 전통에 관심이 많으시다고들 하더군요. 그래서 저희가 고향이라 부르는 이 달에서는 여명을 어떻게 기념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올해 저는 부대원들의 근무를 일찍 마치게 해줬습니다. 1600시간으로요. 홀가분한 마음으로 직원들과 함께 사령부에서 저희끼리 여명 파티를 열었죠.

"사이렌의 감시는 멋진 파도와 떠다니는 단상이 일품이어서, 저희는 휴게실 책상을 모두 구석으로 붙이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연회를 즐겼습니다. 휴게실이 비바람에 완전히 노출돼서(오래전에 조망창이 깨졌는데 수리가 계속 미뤄지고 있습니다), 델과 아리는 두꺼운 옷을 챙겨야 했고, 우리는 식탁보를 금속 덩이로 눌러야 했습니다. 사실 더 심한 적도 많았죠.

"에바, 정말 오랜만에 맛본 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그 닭고기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저희 모두 한 조각씩 맛봤죠. 저희는 주로 단백질 덩이를 여러 재미난 모양으로 잘라 먹는데, 보내 주신 닭을 따뜻하게 데워 먹었을 때는 천국이 따로 없었죠.

"저희는 서로 여명 선물을 나누기도 합니다. 누군가 제 방에 걸어 놓으라고 영감을 주는 인용문을 십자수로 선물해 주기도 했습니다. '내 봉화는 어디에?'라는 문구였죠. 저희끼리 사용하는 농담입니다. 쓸만한 연장, 중화기 탄약, 두꺼운 양말… 여기선 이런 선물을 주고받죠. 탑의 여명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큰 감흥이 없겠지만, 저희한테는 매우 값진 선물입니다.

"온기를 위해서건 그냥 연회를 위해서건 저희가 다시 모이게 되었을 때 저희는 전에는 서로 하지 않던 얘기를 처음으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제 삶에 관한 얘기를 단 한 번도 누구와 나눈 적이 없는데 말이죠! 저희는 붉은 전쟁 이전에 우리가 누구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앞으로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까지 얘기했습니다.

"폭풍이 휩쓸고 간, 이 달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약간의 충격으로도 단상에서 영원히 추락할 수 있죠. 몰락자와 군체와 폭풍우 사이에서 저희는 단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께 모여 얘기를 나누니, 실로 살아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 모든 건 당신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적은 이야기입니다, 에바. 우리에게 어떤 상황에서라도 잠시 시간을 내서 감사하고, 기뻐할 것을 상기시켜 주셨으니까요. 그게 제겐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슬론"

난 한 번도 지구를 떠난 적이 없는데, 타이탄은 상당히… 흥미로운 곳으로 느껴졌어. 그런데 이 명절이 그리도 먼 곳의 사람들마저 모일 수 있게 해주었다니, 내 모든 노력이 가치 있게 느껴지더군.

언젠가 슬론을 꼭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

알칸 드라제 쿠키:
껍질 가루와 총알 스프레이를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9. 서로 축하하기

엑소더스 식민지 우주선 얘기는 전에도 들어 본 적이 있지. 기억이 많이 나지는 않아. 그냥 역사 수업 시간에 배운 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최근까지 모두 잊어버렸었어. 몇몇 수호자들이 그 우주선 중 하나가 네소스에 추락했고, 그 우주선의 안전장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는 걸 듣는 바람에 그 일이 떠올랐던 거지.

처음에는 그들이 하나의 인공지능이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항해용 지능이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분리되었던 거겠지. 하나는 늘 행복해 하고, 다른 하나는 늘 슬퍼했던 것 같더라고. 그중 어느 쪽도 세상을 사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야. 그런 건 균형을 이뤄야 하지. 그들은 컴퓨터에 불과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네.

특히 한 수호자가 최근 여명 축제에 관해 안전장치에게 설명해 주던 때의 일을 얘기해 줬어. 막 현상금을 받은 참이라 빨리 지구로 돌아가 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에 마음이 잔뜩 들떴다는 얘기도 했었지. 그런데 두 안전장치가 그를 막아서며 그게 무슨 뜻인지 물었어. 여명이라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던 거야! 그 수호자는 이런 얘기를 했던 것 같아. "옛 지구의 몇 가지 전통을 결합해서 탄생한 겨울 축제야."

안전장치들은 이렇게 대답했어. 최대한 그때 얘기를 그대로 옮겨 볼게. 안전장치는 이런 말을 따라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던 것 같으니까. 먼저 행복한 인공지능이 이렇게 말했어. "제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지구의 '겨울'은 한쪽 반구가 태양에서 멀어질 때 발생하는군요! 그런데 추운 날씨를 왜 축하하는 거죠?" 그러자 슬픈 쪽이 말했지. "어차피 전 추위를 느낄 수 없지만, 그건 얘기만 들어도 끔찍할 것 같군요."

그러자 이 수호자는 이런 식으로 말했어. "우린 그냥 서로를 축하해 주는 거야."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지. 나도 늘 축제란 그런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여기에 다 같이 모여서 사탕을 먹으며 서로 함께하는 거지.

안전장치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더니, 행복한 쪽이 다시 이렇게 말했어. "서로를 축하해 주는 거라면 제가 어떻게 여명에 참여할 수 있죠? 저는 혼자인데요. 정말 우울하네요!" 그러자 슬픈 쪽도 다시 말했어. "전 몰락자를 축하해 주진 않겠어요."

내 수호자 친구는 머리를 바삐 굴리더니 이렇게 말했지. "네소스에서 돌아온 수호자들에게 행복한 여명이 되기를 빌어 줄 수는 있잖아! 우리와 함께 축제를 즐기자고! 정말 좋을 것 같은데."

그 말에 두 인공지능이 조금이나마 기뻐하는 것 같아서, 그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사실이 참 좋았어. 그리고 그 인공지능들이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그에게 행복한 여명을 보내라고 말하는 연습을 했으니, 지금쯤이면 그런 인사치레도 잘할 수 있겠지. 기회가 있으면 가서 그들을 만나 봐.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즐거운 여명을 보내는 데는 아무 문제 없을 테니까.

---

무한의 숲 케이크:
벡스 우유와 비현실적인 열기를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0. 교훈적인 이야기

"에바 레반테!" 아이코라가 내 손목을 붙잡더니 바싹 다가서며 귓속말을 했어. "에리스 몬에 관해 이야기 좀 하지."

아, 그날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그때만 해도 난 선봉대와 다른 탑 상인들에게 여명의 즐거움을 알리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었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축제에 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날 찾아왔어. 그래도 워록 선봉대가 날 찾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지.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에리스 몬 얘기를 하자고 말이야!

나도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었을지도 몰라.

"축제 장식을 하면서 에리스와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네…"

내가 등불을 다는 동안 에리스가 심연 얘기를 했던 게 떠올랐지만, 아이코라에게 그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

그녀가 말을 이었지. "에리스가 좀 걱정이 돼서 말이야. 많이 우울해 보였거든."

나는 아이코라를 바라보며 두 눈을 꿈뻑거리다가 시선을 돌렸어. 그래도 코웃음을 치지는 않았다고.

"평소보다 더 뚱한 태도라서 수호자의 전당 기술자들이 불만을 표하고 있어. 에바, 당신이 얘기 좀 해 줄 수 있겠나? 혹시… 도와줄 수 있겠어? 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당신도 편할 테니까."

아주 끔찍한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지. 대신 그냥 이렇게만 말했지. "아마 그 아이에게도 친구가 있을 거예요. 음,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와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그냥 편하게 얘기할 수 있고 뭔가 공통점이 있는 사람이…"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어. 그제서야 우리가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실감했겠지.

하지만 아이코라의 얼굴엔 생기가 돌았어. "그 아이가 자발적으로 말을 거는 사람이 있네. 애셔 미르라는 젠심 서기지. 그 또한, 음… 아주 훌륭한 학자야. 내가 그 사람에게 연락하지. 혹시 당신이 그 남자를 알고 있다면…"

"모르는 사람이에요!" 나는 쾌활하게 대꾸했어. "그래도 일이 잘 되기를 빌어요. 모든 사람이 행복한 여명을 보내길 바라니까요. 괜찮으시면 이만 실례할게요. 배달해야 할 게 많아서요."

작별 인사로 아이코라의 팔을 꼭 붙잡을 만큼 친하지는 않아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어.

그리고 그날 오후에 다시 만났는데, 그때 아이코라 표정은 정말이지… "당신이 얘기한 대로 애셔와 이야기했네."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렸지.

"그런데요?"

"처음에는 투덜거리더군. 사실 여명 축제가 열린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 하지만 내가 축제 얘기를 해 주면서, 그가… 여명 연하장을 쓰거나 직접 찾아가 주면 아주 고마운 일이 될 거라고 했더니, 연하장을 써 주겠다고 했네. 그리고 그녀에게 줄 여명 선물도 있다고 했지."

"우와! 정말 다정하네요!"

"그건 잘 모르겠어."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두꺼운 종이 한 장을 꺼냈지.

네 번 접어서 연하장 모양이 되어 있었어. 겉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지. "에리스, 워록 선봉대가 날 찾아와서 축제를 맞이하여 '자네 기운을 북돋아 주라고' 하더군. 이 우연한 기회를 맞이하여 군체의 이단적인 관행에 대해 자네가 요구한 연구 자료를 보내 주지. 물론 자네 주장이 겉보기에만 그럴싸한 터무니없는 얘기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여명을 맞이하여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길 비네! —애셔 미르"

"마지막 줄은 당신이 얘기해 준 건가요, 아이코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어. "그래."

나는 웃음을 터뜨렸지. "가져다주시는 게 좋겠어요. 군체 연구 기록을 전통적인 여명 선물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부탁했던 자료인 건 분명하니까요."

아이코라는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 자리를 떠났어.

그날 아이코라를 또 만났어. 내가 마지막 물건을 배달하러 가게를 나서던 참이었지. 아이코라가 다시 날 찾아왔더군.

그녀는 이렇게 말했지. "에리스를 만나러 갔었네. 기분이 좋아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하더군. '아, 네, 이 연구 자료를 요청한 지 꽤 됐어요. 잘됐네요.' 애셔에게 연하장까지 써 줬다니까."

아이코라는 서기가 보냈던 두꺼운 종이를 꺼냈어. 펼쳤다가 다시 접은 흔적이 있더군. 내용은 이랬지. "애셔. 바보처럼 귓속말에 굴복하지 않게 주의하세요. 여명을 맞이하여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어요 —에리스 몬"

나는 어깨를 으쓱했어.

워록은 헛기침을 하더군. "에리스도 애셔에게 여명 선물을 전해 달라고 부탁했네."

"그 아이도 노력은 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게…" 아이코라는 날 길가로 끌고 가더니 천으로 싼 작고 우둘투둘한 물건을 꺼냈어. 그리고 조심스럽게 포장을 한 꺼풀씩 벗기더군. 그리고 그게 나왔어. 역겨운 초록색 불빛을 내뿜던 여명 선물.

"이걸 애셔에게 줄 순 없어!" 아이코라는 새된 목소리로 말했지. "차라리 그냥…" 그녀는 혹시라도 엿듣는 사람이 있을까 봐 주위를 둘러봤어. "없애 버리는 게 낫겠지?"

"이건 여명의 예의범절을 벗어난 얘기 같아요." 나는 숨죽여 대답했어.

그리고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지. "이번 일을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자고."

---

방산충 푸딩:
벡스 우유와 전기 향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1. 여명 선물로 표현하기

날 이리저리 뛰게 만드는 건 손님만이 아니야. 사람들은 늘 조언이 필요하다며 날 찾아오지. 가끔은 "이 안료가 좋아요, 저 안료가 좋아요?"나 "이거 저랑 잘 어울리나요?" 같은 질문을 하곤 해. 또 가끔은 "여명 파티를 열어야 하나요?"나 "여명 파티에 왜 참석해야 하는 거죠?" 같은 질문도 있고. 하지만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질문을 할 때도 있지.

어느 날 오후에 뒤죽박죽 쌓인 포장지를 정리하려고 잠깐 짬을 냈는데, 어디에선가 낭랑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 어찌나 놀랐던지 몰라!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주 잘 알려진 타이탄이었어. 자발라는 아니야. 누군지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렇네. 에바 레반테는 민감한 일을 여기저기 떠벌리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 사람은 아주 무시무시해 보이는 무기를 들고 있었어. 섬세하게 구부러진 금속 부품의 양 끝이 두꺼운 줄로 연결되어 있는 무기였지. "컴파운드 활이네."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이렇게 말하더군. "화살을 쏘는 무기야." 나는 당혹감을 나타내려 눈썹을 치켜올렸어.

그 무기에는 아주 큰 빨간색 벨벳 리본이 묶여 있었거든. 리본으로 장식한 활이라는 건…

갸우뚱해진 헬멧과 무기를 꽉 움켜쥔 손을 보면 뭔가 아주 잘못된 게 분명했어.

나는 한숨을 쉬었지. 여명 축제가 열릴 때마다 이런 일이 몇 건 정도는 있으니까 말이야. 누군가에게 홀딱 반한 게 분명했어. 그러니까 짧게 끝날 일이 아니었지.

"행복한 여명 맞이하길, 토리토!" (당연히 이건 진짜 이름이 아니야. 그냥 만들어 낸 가명이지.)

"에바 레반테. 사람들이 그러는데, 여명 선물은 아주… 특별한 친구에게 주는 거라고 하더군." 그는 숨을 죽여 말하려 했지만 소리가 엄청 컸어.

"그 '사람들'이 누군데?" 나는 웃음을 터뜨렸지.

그는 내 말을 무시했어. "친구를 위해 이 활을 샀네. 이 정도면 좋은 선물이 될까?"

"당신 친구가 누구인지에 달렸지. 그 친구가 뭘 좋아하는데? 그리고 어떤 사람이야? 자세히 설명해 봐.

"그 여자는… 싸우는 걸 좋아하네.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그녀는 정말…" 타이탄이 잠시 말을 멈췄어. "리커브 활이 컴파운드 활보다 더 로맨틱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제대로 숨을 죽여 말하더라고.)

"아아." 나는 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 나는 그 두 가지 무기의 차이점이 뭔지 전혀 몰랐지만, 그래도 그의 문제가 뭔지는 잘 알 수 있었어.

"아니면 그냥 책 같은 게 더 나을까?" 그가 물었어.

"그것도 어떤 책이냐에 따라 다르지."

"난 아이코라의 '순환궤도: 개정판'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재미있었네."

"그런 건 정말 끔찍한 여명 선물이야. 문학 작품 쪽은 어때?"

토리토는 헬멧의 뿔을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 "전에 그녀의 책을 망가뜨린 적이 있었네. 그걸 새로 사주는 게 좋겠지?"

"전에 나쁜 일이 있었다는 걸 굳이 상기시키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나는 말을 이었어. "아무래도 이 활이 그 친구에게는 충분히 적절한 여명 선물이 될 것 같은데. 그녀가 이걸 사용할 것 같아?"

"물론이지."

"뭐, 그렇다면…" 나는 환하게 웃었어. "답을 찾은 셈이지." "당신과 친구 모두 행복한 여명 보내길!"

"당신도, 에바. 당신의 여명이 기억에 남는 나날이 되길."

그 타이탄은 내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활을 들고 밖으로 나갔어.

---

바닐라 칼날:
기갑단 기름과 날카로운 향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2. 우연의 일치는 없다

질문이 많은 손님은 꼭 제일 바쁜 시간에 찾아오는 것 같아. 오후 늦게 말이야. 오늘은 여자였지. 아름답고 강인한 수호자였어. 검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눈에는 하얀 대각선을 하나씩 그렸더군. 굉장히 인상적이었지! 한쪽 어깨에는 가방을 둘러메고, 한쪽 팔에는 책과 소포 더미를 안고 있었어. 그걸 보고 돈이 있는 손님이라는 걸 알았지. 입술에는 건방진 미소를 띠고 한쪽 손을 허리에 대고는,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며 기다리더군. 그걸 보고 그녀가 헌터라는 걸 알았어.

"여명 복 많이 받게. 이름이…?" 나는 인사를 건넸지.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어. "아주 작고 개인적인 여명 파티를 준비하려는데, 도와주실 수 있나요? 묶어 파는 상품 같은 게 있을까요?" 그녀는 초조하게 어깨 너머를 돌아보며 물었어. "도시에서 여명을 맞이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깜짝 파티를 열어 주려고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 모두 화성에 있어서…"

"아하! 여명의 기본은 집을 장식하고 음식과 선물을 나눠 먹는 거야. 우선 등을 골라야겠지." 나는 가게에 늘어선 색색의 구체들을 가리켰어. "그다음은 양초고." 나는 카운터 아래에서 조그만 양초가 들어 있는 상자를 꺼내서 그 여자 앞에다 내려놓았지. "종이띠도 필요해."

"양초와 종이띠를 같이 사면 화재 위험이 있어요. 양초와 등으로 할게요."

"은색 등과 노란색 등이 서로 잘 어울리지…"

여자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진열품을 올려다봤어. "보라색으로요."

"그렇담 보라색, 녹색, 은색으로 주지. 아주 예쁜 조합이거든. 여명은 경이와 미로 가득한 시기니까, 등을 하나만 사면 못써." 나는 등을 접어서 양초 위에 올렸어.

여자가 입을 열었다가 그냥 다물더군. 나는 제일 큰 여명 사탕 세트를 꺼내서 카운터 위에 놨어. "나누고 베푸는 것이 여명의 핵심이야. 이 세트면 걱정 없을 거야." 나는 여기서 잠시 뜸을 들였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싶다면 말이지."

여자는 입을 꾹 다물고는 리본이 달린 사탕 꾸러미를 양초와 등 옆으로 밀어 놓았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급 옷이 걸린 옷걸이를 꺼냈지. "마지막으로 여명 선물이 필요해. 가장 중요한 거지."

"아, 여명 선물은 이미 괜찮은 걸로 준비했어요." 그녀는 카운터 위에 소지품을 내려놓더니 제일 위에 있는 목걸이 상자를 가리켰어. 그 와중에 나는 두꺼운 책의 책등을 얼른 봤어. 대개는 제목이 아주 길었고, 하나같이 딱지가 붙어 있더군. "푸안 도서관 – 참고용 – 반출 금지"

헌터는 내가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보고 책을 얼른 가방에 밀어넣더군. "제가 고른 건 이거예요. 그녀가 좋아할까요?"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어. 하지만 헌터가 내민 목걸이에는 감탄했지. 조그만 새의 문양이 새겨진 길쭉한 펜던트였어. 아주 잘 만든 물건이었지.

그녀는 씩 웃었어. "문양은 황금기 것이지만, 데이터도 35페타바이트나 들어가죠!"

나도 웃어 주었지. 나는 헌터에게 튼튼한 책가방과 보라색 포장지도 팔았어.

"자! 당신만의 여명이 가방에 들어 있네!" 나는 미광체를 받아 넣고 물건을 넘겨주며 말했지. "친구가 깜짝 선물을 좋아하면 좋겠네."

헌터는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돌아섰어.

"아타스타시아!"

장을 보러 나온 오후의 인파 사이에서, 다름 아닌 사령관 자발라가 양팔을 벌리고 복도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

"자발라." 헌터가 웅얼거렸어. 그녀는 어깨를 펴고 턱을 내밀었지. 매처럼 사나운 모습이었어.

"여명 복 많이 받게, 아나. 자네를 탑에서 만나다니 의외로군."

"아, 뭐, 볼일이 있어서요…"

하지만 그 뒤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누가 소포를 들고 달려와서 물었거든. "저 여자가 화성으로 간다고 했죠? 이것도 화성으로 보내야 되거든요."

나는 주문품 목록을 얼른 살펴봤어. 양초, 등, 사탕 세트, 포장지, 망토… 주문자는 캄린 두무지. 난 묘한 기분이었지. 우연의 일치란…

"아마 이건 깜짝 선물일 거다. 내일 보내는 게 좋겠어." 내가 대답했지.

다시 돌아보자 자발라와 헌터는 한창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어. 타이탄 선봉대는 반쯤 미소를 짓고 있었고 여자는 능글맞게 웃고 있었지. 그걸 보고, 여명의 정신은 옛 친구를 재회시키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

그러고 나는 돌아서서 다음 손님을 맞았지.

---

재블린 월병:
껍질 가루와 날카로운 향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3. 싹싹한 태도

처음부터 거슬리는 사람을 만나 본 적 있어? 언뜻 보기에는 아주 싹싹해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싹싹한 태도에는 특징이 있어. 젊을 때는 그런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꿰뚫어 보게 돼. 가장 귀한 형태는 순수한 친절이야. 자기 형편이 좋을 때나 뭔가 필요할 때만 싹싹하게 구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얼마나 싹싹한지 과시하려고 싹싹하게 구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뭔가 숨기고 있으면서, 연기로 그걸 감추려고 하지.

자칭 방랑자라는 자가 바로 그런 부류야. 보통 남을 험담하는 건 싫어해. 하지만 방랑자? 난 그자만큼은 믿지 않아.

그자가 저 문 너머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어. 사실 알고 싶지 않은지도 몰라. 그자하고 이야기를 해 본 건 두 번이 전부야. 왠지 늘 급해 보이더군.

처음 만나서 소개했을 때를 빼고 나누었던 대화는 아주 짧았어. 그리고 그자는 내가 답을 듣기도 전에 빠져나가 버렸지. 여명 축제가 시작되기 직전의 일이었어. 내가 가게를 장식하던 중에 그자가 다가와서 묻더군. "이게 다 뭡니까?"

"여명이라는 게 뭔지는 알고 있겠지?" 내 말투는 퉁명스럽지 않고 싹싹했어. "네가 뱀이라는 걸 알고 있어"라는 의미에서 싹싹한 거였달까.

"아, 알지요." 그가 말했어. "그 계절이 다가온다는 걸 깜박했나 봅니다. 시간이 참 빠르죠, 누님? 참 빨라요." 그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장식품을 한참 바라보며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지.

"시간이 빠르긴 하지." 내가 대답했어. "사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있잖아요. 전 여명을 제대로 기념하는 곳에 가 본 적이 없어요." 그자가 말했어. "여명에 대해 좀 알려 주시겠어요?"

내가 수백 살은 아니라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도 아냐. 이 늙은이 에바는 거짓말을 들으면 딱 알지. 그래도 나는 그자에게 축제에 대해 말해 줬어. 전통과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줬지. 그자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듣는 척했어. 나는 다시 그자에게로 화제를 돌리려고 했지.

"그래, 방랑자, 자네는 어디—"

"아, 이제 가야겠네요!" 그는 내 말을 못 들은 척하고 뒷걸음질치기 시작했어. "시간을 벌써 많이 빼앗은 것 같아요.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자는 걸어가면서 소리쳤어. "장식이 마음에 듭니다! 색이 아주 좋아요!" 그러고는 모퉁이 너머로 사라졌지.

나는 이 희한한 남자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 대부분 비슷비슷하더군.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해도 아주 싹싹하다는 얘기야. 한편 입에 올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도 들었어. 너무 섬뜩해서 사실일 리가 없거든. 난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싶진 않아. 그자의 식습관은 우리하고 별 차이 없을 거야.

그저 뭔가 이상하다고 하는 걸로 충분하겠지. 그자를 주시하는 게 좋을 거야.

---

다크 초콜릿 티끌:
굴복자 버터와 무미건조를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4. 두 번 한 이야기

탑에 돌아와서 제일 좋았던 건, 사람들을 다시 만난 거였어. 여길 떠나 있는 동안 매일 친구들을 생각했거든.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어도 별수 없이 지난날을 동경하게 되지.

나는 내가 없는 동안의 이야기를 죄다 듣고 싶었지만, 수호자란 족속은 워낙 바빠서 늘 돌아다니잖아. 웬만해서는 한마디 나누기도 힘들어. 아주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도, 들은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이었지.

"거미"라는 이름이 자꾸 들리는데, 대체 누구인 거야? 그냥 흔한 범죄자인가? 신인가? 아니면 친구인가? 어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세 가지가 다 맞는 것 같아. 그 거미라는 녀석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수호자들이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거미가 고스트를 먹고 산다는 얘기, 맞아? 고스트! 실로 통탄할 만한 존재지. 하지만 아무리 가증스러운 고스트라도 그런 꼴을 당해선 안 돼. (그래, 특정한 고스트를 생각하는 건 맞지만… 그건 비밀로 해야겠어.)

내가 들은 바로는, 거미가 남작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모양이지. 그게 맞다면 그들의 관계는 그야말로… 실낱 같았던 모양이야. 뒤엉킨 해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는 몰라도, 거미가 남작들을 다 죽였나 봐.

그런데 그 전에 거미의 남작들이 우주에 있는 최고 경비 감옥에 침입했대. 거미의 소유인 물건을 찾으려고 했다는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 고스트였을 수도 있고 무기였을 수도 있겠지. 그런 걸 왜 감옥에서 찾으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남작들이 나타나니 감옥의 죄수들이 놈들과 싸우기 시작했지. 그 말썽쟁이 케이드-6도 그 교도소에 있었나 봐. 그의 목적은 거미의 목적과는 관련이 없었지. 내가 듣기로는 결국 둘이 싸움에 휘말렸나 봐. 그런데 다들 싸우는 동안에 리프 여왕의 남동생이 등장했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혼자 생각했어. "아! 드디어 우리 편이 등장하는구나. 각성자 왕자가 상황을 정리해 주겠지." 하지만 난 옛날부터 왕자가 조금… 뻣뻣하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 하지만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돕는다는 얘기도 들었지. 하지만 그건 누나 일이 있기 전이야. 상실은 우리에게 끔찍한 짓을 하곤 하지.

이제 내가 확실하게 아는 유일한 사실이 나와. 울드렌 소프가 케이드-6을 죽인 거야.

이유는 모르겠어. 하지만 적어도 일부는, 왕자가 가슴속의 고통에 굴복하는 바람에 세상을 제대로 보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 어쨌든 거미의 남작들은 감옥에서 나가서 리프를 샅샅이 뒤졌어. 아마 거미가 찾던 물건을 찾고는, 자기들이 가지기로 했던 모양이야. 거미가 남작들을 잡으려고 부하를 보냈지. 아마 남작은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그 와중에 누가 울드렌을 죽였어. 아마 케이드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사람들한테 아무리 물어도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듣지 못했지. 거미에 대해 들은 내용을 미루어 보면, 울드렌을 죽인 것도 그자의 소행이 아니었을까 싶어.

내 수호자 친구들은 아직도 자기 민족을 배신하는 그… 괴물의 부탁을 받아 일하고 있지. 그 길이 과연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질지, 난 의심스러워. 어쩌면 내가 진실을 다 아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이건 역사 수업이 아니야. 당신 뜻대로 받아들여도 좋아. 이 늙은이 에바와는 이야기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도 많거든.

---

죽은 고스트 캔디:
암흑 에테르 줄기와 영감의 성광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5. 우릴 하나로 만드는 것

각성자란 뭘까?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하는 얘기 말고. 그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기갑단이나 몰락자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하는 문제만큼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그냥 이 우주가 그들을 원했고, 그래서 만든 거겠지. 내가 감히 우주의 뜻을 의심할 수 있겠어?

최근에는 페트라 벤지와 뒤엉킨 해안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더라니까. 소행성들이 서로 묶여 있다고? 그리고 그냥… 그 사이로 도약해 다니는 거야? 리프 출신 각성자라면 의심이 많아질 수밖에 없겠어. 그렇게 땅조차 믿을 수 없는 곳에서 성장했으니 말이야!

하지만 각성자 전체를 보면… 나도 이제 그들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아직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좀 있어. 그들도 이제는 우리가 "인류"라고 받아들이는 존재들이지. 인간이나 엑소와 마찬가지로 말이야. 나도 그 사실은 알고 또 믿고 있지만, 왜 그렇게 된 걸까?

그들이 우리와… 비슷한 형태이기 때문일까? 기갑단도 어느 정도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이지만, 그들을 인류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

여행자와의 관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믿기 힘든 얘기지만, 몰락자 역시 여행자와 관계가 있다고 들었어. 하지만 그들도 인류의 일원이라고 하지는 않잖아.

"인류"라는 말이 인간과 함께 걷기로 선택한 자들만을 지칭하는 걸까? 하지만 그런 논리라면 리프에 머물기를 선택한 리프 출신 각성자는 인류의 일원이라고 볼 수 없잖아.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페트라는 평생을 리프에서 살았지. 안 그래? 한동안 여기에서 사절 역할을 했다는 건 알지만, 늘 리프를 진짜 고향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그녀가 자신을 인류의 일원이라고 생각할까? 페트라에게 다가가서 "당신은 인류의 일원인가요?"하고 물어보면,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나는 리프의 각성자다." 그러면 다시 이렇게 물어볼 수 있을 거야. "그래요. 그런데 누구 편인데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할 거야. "마라 소프 여왕 편이다."

그렇다면 인류란 우리가 선택하는 걸까? 아니면 당신에게 주어진 걸까? 얻어내야 하는 칭호인 걸까? 아니면 생득의 권리? 유산? 그런 조건 중 하나 때문에 각성자가 인류의 일원이 된 걸까, 아니면—

그런 모든 조건들 때문에 각성자가 인류의 일원인 건 아닐까? 이런 조건 하나하나가 인류를 규정하는 건 아니야. 망토가 헌터를 규정한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들은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여행자와의 관계를 공유하며, 그들 중 상당수가 우리와 함께 여기 지구 위에서 생활하고 있어… 어쩌면 그게 바로 그들이 인류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인지도 몰라. 모든 걸 하나로 묶으면 말이야. 우리 모두가 인류의 이름 아래 하나로 묶여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함께하는 관계 덕분에 우리는 붉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어.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어둠을 영원히 몰아내는 방법일 거라고 믿어. 그런 하나됨이 우리를 강하게 하고, 각성자는 언제나 함께할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

불운의 쿠키:
암흑 에테르 줄기와 비현실적인 열기를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6. 익숙해진다니까

이상한 친구가 하나 있어… 아마 당신도 봤을지도 모르겠군. 그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오고 가는 존재가 아니야. 문득 돌아서면 거기 있거나 없거나 하는, 그런 존재지. 적어도 그 외모만큼은 일정하고 예측을 벗어나지 않아. 쥴이라는 자야. 이름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존중하려 노력해야겠지.

쥴을 처음 봤을 때, 나는 탑에 있는 내 가판대에 혼자 있었어. 지금은 옛 탑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거기서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문득 올려다보니 이 남자가 그야말로 난데없이 나타나 있지 뭐야!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뒤에서 봐도 뭔가 이상했어. 특히 자세가. 그자가 돌아서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얼굴이 온통 털투성이라는 걸 알았지. 심지어 바람도 불지 않는데 털이 혼자서 흐르듯이 움직이는 것만 같았어.

빛이 그 얼굴을 비추는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고는 몸을 웅크려 장 뒤에 숨었어. 그 흉물이 탑을 습격하러 왔다고 생각했지. 보이지 않는 곳에 괴물이 더 있을 테고, 우린 끝장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가만 보니 남들은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 않는 거야. 곤경에 처한 사람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어.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평소와 똑같았지. 나 말고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 거였어! 그자를 본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어.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다시 일을 시작했어. 하지만 눈은 그에게서 뗄 수가 없었지. 얼마 후에 테스가 오길래, 그 이상한 사람에 대해 물었어.

"아, 쥴이야!" 테스는 태연하게 말했지. "가끔 와서 구하기 힘든 물건을 팔곤 하지." 테스는 잠시 쥴을 바라보더니 덧붙였어. "옷은 좀 갈아입으면 좋겠지만, 그걸 빼면 해롭지 않아."

"저자는 무엇이지?" 내가 물었어. "저런 생물은 처음 봐."

"쥴은… 아마 목성인일 거야. 원래 리프 너머 세상에 살던 종족이지. 나도 그것 말고는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래도… 우호적이긴 한 모양이지?"

"일단 우릴 공격하진 않아. 그걸 물은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쥴이 우호적이라고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적대적이진 않아."

이런 대화를 나눈 후에는 마음이 조금 편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공포를 떨쳐 버릴 순 없었어. 나는 몇 달 동안 쥴을 볼 때마다 펄쩍 뛰고, 숨어 버리고 싶은 본능을 억눌러야 했지.

하지만 점차 그의 존재에 익숙해졌어. 심지어 예측을 벗어나지 않는 그의 습관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갖게 됐지.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상징 같은 거였거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공포심이 증발했어.

나는 새로운 걸 보면 일단 공포부터 느낀 적이 많아. 다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공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공포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헤쳐 나아가기가 쉬워. 새로운 것이 처음에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 무서운 경우는 없었거든.

---

이상한 쿠키:
굴복자 버터와 전기 향을 섞고 여명의 정수를 추가한 뒤에 굽는다.

17. 소문

논란이 많은 워록 오시리스의 예언에 관해서는 나도 아는 게 많지는 않아. 그의 이론이 탑과 시민, 수호자를 모두 분열시켰고, 그가 급진적인 연구를 하겠다며 떠난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러한 분열의 흔적이 기이한 곳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말이야.

내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주지, 친구.

오시리스의 추종자와 회의론자가 함께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려고 했어. 그들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지.

그런 얘기를 어디에서 들었냐고 묻지는 마. 그렇게 놀랄 필요 없어. 도시 사람들이 수군대며 수호자를 놀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자네는 세상을 너무 순진하게 살고 있었던 것일 테니까.

어쨌든.

오시리스의 추종자 중 하나였던 반스 형제에 관한 소문을 들었어. 소문은 마치 신화처럼 시작됐지. 그가 오시리스가 알아낸 지식을 이용하여 기적을 행했다느니, 수호자의 잠재력을 모두 깨웠다느니 하는 그런 얘기 말이야. 그러다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소문은 완전히 달라졌어. 어느새 밴스는 오시리스와 아무 관계 없는 광신도로, 수성의 모래 위에서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무언가를 영원히 기다리고만 있는 자가 되어 버렸지.

수호자는 워낙 요란하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 이렇게 소극적인 대상과는 공감할 수 없었겠지.

나 같은 경우는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것과 사람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 누군가의 정신을 보여주는 거라면 그가 과거에 했다고 알려진 일보다는 지금 행하는 일들이 더 정확할 테니까. 영웅이 돌아오기를 끝없이 기다리면서 같은 책과 편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는 건… 뭐, 내겐 아무래도 시간 낭비 같아.

한편으로는 나도 말보다 행동을 좋아해. 손이 바빠야 머리도 빨리 돌아가거든.

하지만 우상에게 버림받는다는 건, 아무리 그 사실이 자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거라고 해도 실로 외롭고 또 실망스러운 감정이겠지. 밴스와 같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오랫동안 외로움을 견뎌야 했을 거야. 어쩌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소문에서 벗어나 더 짙은 고독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어차피 내가 직접 만나 본 적은 없는 사람이니까 그 모든 소문이 진실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험담인지는 알 수가 없어. 그저 여명에는 누구나 환영받을 수 있다는 것, 특히 가장 고독했던 사람을 환영해 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뿐.

18. 좋은 싸움

수호자들이 꿈의 도시에 들어섰을 때, 많은 이들이 나를 찾아와서 그곳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지.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고대의 신성한 건축물로 가득한 아름다운 장소에 관한 이야기가 내게는 마치 동화처럼 들렸어. 수호자들에게 듣는 얘기는 으레 그렇듯, 그런 곳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는 정말 놀라웠던 것 같아.

특히 나디아라는 이름의 각성자 워록이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군. 그녀는 다른 수호자들처럼 조용하고 멋적어하는 듯한 모습으로 찾아와 차를 한 잔 달라고 했었지.

나야 당연히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모두 환영하고.

그날 나디아는 찻잔에 손도 대지 않은 채 탁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 내가 주방에서 다른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워 주느라 오랫동안 입을 놀렸던 뒤가 아니었다면 그녀에게 무슨 말이든 해 보라고 닦달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지. 나는 기다렸어. 결국 그녀도 고개를 들어 나를 보더군.

"제 조각을 하나 찾았다가 결국엔 모두 한꺼번에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나디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슬픔에 잠긴 듯 말했어. "수호자는 여행자 이상의 유산을 꿈꿀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알지만, 꿈의 도시는 왠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지.

"고향 같았나?" 그래서 내가 말했어.

나디아는 고개를 숙이더군. "네, 고향 같았어요." 그리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다시 나를 바라봤어. "그게 잘못된 일일까요?"

"아니." 나는 말했지. "당연히 아니야. 알다시피 고향은 하나의 장소일 필요가 없어. 내게도 고향은 여러 곳이거든."

나디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린 듯 탁자 가장자리에 놓은 찻잔을 이리저리 흔들고만 있었지.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기다린 후에야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어. 이렇게 얘기하더군. "실제로 가져 본 적이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슬픔에 잠긴 듯한 기분이에요."

난 각성자의 고향을 뒤덮은 저주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 그게 엄청난 오해와 고통으로 인해 초래되었다는 건 알고 있지만 말이야. 울드렌 소프와 내가 들어 본 적 없는 다른 생물이 그 고통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들은 바에 따르면 그 이야기에선 누가 적인지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어. 누군가 한 명을 탓할 수 없었다는 말이야.

그래서 받아들이기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일 수도 있지.

나디아의 슬픔은 손에 잡힐 듯 끈적했어. 내 가슴으로 직접 느낄 수 있었지. 하지만 그녀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과 함께, 나는 나디아가 다시 일어나 일터로 돌아가는 모습까지 지켜봐야 했어. 그녀는 매주 꿈의 도시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를 정의하는 건 승리가 아니야. 도저히 승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능력이지. 수호자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 마찬가지라고.

다들, 정말 고마워. 그런 정신의 본보기가 되어 줘서 말이야.

19. 아주 착한 젊은이

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는 외딴곳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작은 벤치야. 난 거기 앉아 우주선이 들어오는 모습과 새와 구름이 오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곤 하지. 일이 너무 바빠질 때는 거기로 잠시 물러나 저 바깥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돌이켜 보곤 하는 거야. 전에 이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아주 키가 큰 타이탄 하나가 두 손을 공손히 앞으로 모으고 내 곁에 다가와 선 적이 있었지.

"실례합니다, 부인." 그는 이렇게 말했어. "함께 앉아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옮겨 앉아 그 타이탄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어. "여기 앉아요." 내가 말하자 그는 앉았지. 어깨가 어찌나 넓은지 나는 조금 더 옆으로 움직여야 했어.

그는 새 모이가 담긴 주머니를 갖고 있었어. 나는 그가 땅에 모이를 조금 뿌리는 것을 지켜봤지. 비둘기들이 재빨리 다가왔는데, 사실 그가 앉자마자 평소보다 더 많은 비둘기가 모여든 것 같았어. 그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여기 와서 모이를 주었는지, 또 그런데도 왜 우리가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건지 갑자기 궁금해 지더군. 분명히 눈에 띄는 사람이었는데 말이야.

비둘기들이 구구거리는 소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도시가 바삐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어. 그 신사도 따뜻한 침묵을 즐기는 듯 보였기 때문에 난 가만히 눈을 감았지. 그런데 잠시 후 우리 뒤쪽에서 발자국 소리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뭐야. 젊은 여성으로 보이는 다른 타이탄이 벤치 곁으로 다가와 긴장된 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 신사에게 말을 걸었지.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당신은 온 세계의 타이탄에게 큰 영감을 주는 존재십니다."

그는 겸손하게 고개를 끄덕였어. "고맙다." 그는 그렇게 대답했고 두 사람은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 그는 그녀의 이름을 물었어. 그녀는 이오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돌아왔노라 이야기했고, 그는 그녀 덕분에 이 행성계의 모든 사람이 안전할 수 있다며 칭찬했지. 잠시 후 그녀와 친구들은 자리를 떠났어.

내 곁에 앉은 남자는 다시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기 시작했어. 나는 농담이라도 하듯 이렇게 물었지. "유명한 분이신가?"

그는 나를 흘긋 보더니 고개를 조금 숙이고 머뭇거리듯 말하더군. "조금 그런 모양입니다."

"그렇구먼." 나는 웃으며 대답했어. 그리고 잠시 후 이렇게 덧붙였지. "에바라고 해요."

"세인트라고 합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잠시 동안 그 대답을 곱씹다가 물었어. "세인트-14?" 아주 오래전 여섯 전선의 전투에서 그가 도시를 위해 싸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 참, 엄청난 박치기로 강력한 몰락자를 쓰러뜨렸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지.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헬멧이 아주 튼튼하기를 바랐던 것 같아.

"맞습니다." 그는 새 모이를 조금 더 흩뿌리며 말했어. "만나서 반갑습니다, 에바."

그 후로도 우리는 가만히 함께 앉아 비둘기들과 구름을 바라봤어.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먼저 실례하겠다고 말하고 돌아왔지.

앞서 얘기했었지만 세인트-14의 전설은 익히 들어 본 적이 있었어. 뛰어난 수호자의 전설을 듣고 있자면 그들이 마치 신화 속 인물처럼 느껴져서 도시의 평범한 시민들이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존재처럼 느껴지고는 하지. 하지만 전설적인 세인트-14도 내겐 전혀 그런 존재 같지 않았어.

그냥 아주 착한 젊은이 같았지.

20. 경고 쪽지

여명은 모두가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물을 주는 시기야.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아주 좋지. 특히 자네가 아끼는 사람이 사려 깊게 고른 선물이라면 더욱더 그렇고. 사심 없이 사랑으로 선물을 준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더 깊어질 수 있어. 자네도 이제 알고 있겠지만, 선물을 주는 것도 받는 것만큼이나 보람 있는 일이지.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잔뜩 받는 일이 생기면, 선물을 준 사람을 다시 한번 보는 게 좋아. 자네도 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었나? 선물을 주는 건 서로 점수를 기록하거나 할 일은 아니지만, 갑자기 찬란한 황금에 자네 이름이 새겨진 호사스러운 선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내린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왜 그런 선물을 받게 된 건지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라고.

가끔은 그런 선물에 의문을 품을 필요도 있어. 그 선물을 준 사람이 전에는 누구를 좋아했을까. 왜 자네일까? 또 왜 지금일까? 이러한 질문에 만족스럽거나 안심이 되는 답을 내놓을 수 없다면, 선물을 준 사람은 조심스럽게 자네에게 "빚"을 지우고 있고, 언젠가 그걸 회수하려 할 수도 있는 거니까.

선물은 공짜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 두는 게 좋아.

소중한 친구여, 지금은 그게 전부야. 이번엔 들려줄 이야기도 없고, 그냥 그거 하나만 경고하고 싶었어.

21. 색다른 감각

나는 여명을 준비하면서 처음 에이다-1을 만났어. 그녀는 내 판매대에 찾아와서는 내가 손님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옆에 서서 가만히 기다렸었지. 시야의 한쪽 구석에서 언뜻 그녀가 보였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서… 조금은 긴장된 모습을 하고 있었지.

물론 그건 내 상상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손님을 보내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작업대로 오라고 손짓했어. 그녀는 내 곁으로 다가와 잠시 나와 내 옷감들을 살펴본 후 이렇게 물었지. "여명은 수호자의 명절인가요?"

나는 웃었지. 단골들 중에서 수다를 떠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에이다가 이 도시의 전통을 잘 모른다고 들었거든.

"여명은 모두를 위한 것이란다." 나는 대답했지. "이 도시와 그 너머의 모든 사람들이 축제에 참여할 수 있지."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어. 부끄러워하는 건지 그냥 침묵을 선호하는 고독한 성격 때문인 건지는 잘 모르겠더라고. 어느 쪽이든 나는 그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지. 한참이 지나고 그녀는 떠나려는 듯 돌아섰다가, 다시 멈춰서서 나를 바라봤어.

"패턴을 봤어요." 그녀는 말했어. "이번 명절에 사용하실 색상 배합이요. 제게도 아이디어가 몇 가지 있는데 혹시 들어 보실 생각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깜짝 놀란 난 바로 그녀의 생각을 물었어.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색채와 디자인 감각이 남다르다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지. 여명의 안료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독차지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고 재능 있는 자문 위원 역할을 충실히 해냈어. 다음 한 주 동안 우리는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며 원단을 분류하고, 색상을 비교하고, 조합을 고민했지. 너무 친해지는 건 경계하는 눈치였지만, 나와, 그리고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이 도시 전통의 일부가 된다는 개념과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

나는 에이다가 암흑기를 견뎌냈다는 것 말고는 그녀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어. 참으로 가혹한 시절이었을 테지. 그때의 수호자들은 지금과는 달랐으니까.

고난의 시기를 살아내는 과정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 때로는 그런 경험이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바꾸기도 하지만, 또 그러지 못하는 때도 있는 법이지.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에이다는 자신에게 꼭 맞는 삶의 방식을 완성했고, 그것을 조금씩 이 탑과 도시에서 펼쳐지는 다른 삶들에 조화시키기 시작한 거야. 그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 존경할 만한 일이라고.

22. 필요한 거리

나는 수호자와 그들이 지키는 시민들이 함께 경험과 전통을 공유하며 살아갈 때 우리 도시가 가장 번성할 수 있다고 믿어.

수호자들은 우리 중 상당수가 온전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일들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어.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 중에서, "영원한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오직 어리석은 자들뿐이겠지. 자네들의 생명은 여행자가 준 위대한 선물이지만,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짐이야. 이 도시의 모든 수호자는 기꺼이 그런 짐을 받아들이고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여행자의 빛 때문에 수호자들은 계속해서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어. 그래, 수호자가 느끼는 위험성은 나머지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많이 다르겠지. 하지만 감정적인 부담까지도 그렇게 다를까? 자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공포와 트라우마에 얼마나 둔감해져야 하지? 아이코라는 이런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더라고.

에리스 몬이라는 수호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 나는 실재하는 지금이라는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쪽을 선호하지. 지금 내 친구들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이 즐겁게 환호하고, 즐겁게 대화하고, 즐겁게 식사를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에는 에리스가 그 모든 것의 반대쪽에 서 있다고 생각했어. 난 머릿속으로는 그녀가… 너무 침울하다고 비난했었지.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냥 그녀가 나와는 너무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봤던 것 같기도 해. 사실 그녀는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험을 해왔으니, 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것도 당연할 테지.

그래, 난 수호자와 수호자가 아닌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우리의 닮은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양쪽의 차이점 때문에 서로를 밀어내곤 한다는 사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자네들 중 일부는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우리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 그런 모두가 우리가 배우며 살아가야 하는 진실일 테고.

그렇긴 해도 에리스는 우리 전통의 여러 분야에 기여한 바가 있어. 특히 사자들의 축제가 그렇지. 어찌나 야단법석을 피웠던지! 처음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던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어. "에바, 전 인류의 생존에 긴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파티에 할애할 시간은 없습니다."

나는 늘 하는 말을 했지. "중차대한 일들 외에도 이런 작은 일들이 모여 우리가 힘겨운 시기를 헤쳐가는 데 도움을 주지. 정원을 가꾸는 사이에 꽃병의 꽃이 시들게 하지는 말자고, 에리스."

그 사람은 그 말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늘 마지못해 받아들이곤 했어.

그러면서도 참여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기는 해. 전에 그녀가 딱딱한 얼굴로 가면을 쓴 수호자에게 건포도 한 상자를 건넨 후에 돌아서며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거든. 에리스가! 웃었다니까!

여명 행사를 그녀에게 맡겨 본다면, 아마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거야.

23. 여명의 도우미

탑의 프레임들이 이 명절의 전통을 도시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일에 정말 큰 도움을 줬어. 난 이제 예전처럼 젊은 사람이 아닌데, 명절이 지나난 후에는 끔찍하게 많은 색종이를 치워야 하지 않겠어.

요전 날 나는 저장고의 많이 손상된 계단에서 색 테이프가 가득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어. 층계 맨 아래에는 깨끗한 바닥을 거듭 쓸고 있는 프레임이 하나 있었어. 그 녀석을 보면서 처음엔 애처로운 기분이 들었지만, 조금 짜증스럽기도 했지. 우리 자원을 더 필요한 곳에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저는 이곳의 정비를 맡고 있습니다." 그 프레임은 이렇게 말했어.

"그래, 정비는 잘 한 것 같아." 나는 쾌활하게 말하면서 그리고 색 테이프가 든 상자를 내밀었어. "빗자루질은 충분히 잘 된 것 같네. 그러니 괜찮으면 마당을 꾸미는 일 좀 도와주지 않을래?"

그 프레임은 고개를 숙이며 상자를 내려다봤어. "저는 이곳의 저어어어어—"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지. 계속해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는데, 속도가 점점 빨라졌어. "저어엉—지지직—이 과업은 수준 이하—각하—교전을 중단하라, 대화 정—"

나는 참을성 있게 지켜봤어.

."자-자-자애로운 가-가-각하, 저—정비." 빗자루질이 멈췄어. "저는 이곳의 정비를 맡고 있습니다."

나는 '흠' 소리와 함께 상자를 내려놓고는 프레임에게서 빗자루를 빼앗았어. 그리고 그걸 벽에 기대어 놓고 상자를 다시 들었지. 허리가 벌써 아파 오고 있었어. 나는 프레임에게 상자를 건넨 후 계단을 가리켰어. "날 따라오렴."

열심히 구슬린 끝에 난 그 프레임과 함께 마당까지 갔어. 거기서 난 색 테이프를 걸고 싶은 자리를 가리켰지.

"저는 이곳의 정비를 맡고 있습니다." 그 프레임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어.

내 기대를 충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난 그곳 일은 프레임에게 마당을 떠났어. 마감이 촉박할 때는 까다롭게 굴 수 없잖아. 놀랍지도 않은 일이지만 내가 그곳에 다시 갔을 때는 프레임과 색 테이프 상자 모두 사라지고 없었어. 일을 키우고 싶지는 않아서 그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덕분에 지금은 친근하게 정상 작동하는 프레임이 내 일을 도와준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지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