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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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 지식 책은 고파논 또는 베르구시아 대장간을 클리어할 때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다. 대장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데스티니 가디언즈/대장간 참조.2. 항목 10
항목 10저는 예쁜 딸아이의 엄마예요. 제 딸은 실존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하곤 해요. 그래요, 아이들은 다 그렇죠.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
저희 어머니께서 유령 이야기를 해주시던 때요. 전 그 이야기에 매혹됐어요. 특히 유령이 사람들과 소통하려 하는 으시시한 이야기를 좋아했죠.
전 유령과 진정으로 접촉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우리 집에서 가장 으시시한 곳으로 갔죠. 지하실이요. 그냥 어두운 그곳에 앉아 뭔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어요. 뭐든 나타나길 바라면서요. 하지만 제 계획은 시작하자마자 끝나 버렸죠. 지하실 계단에서 심하게 굴러 떨어진 거예요. 여기저기 멍이 들고 팔까지 부러지고 나서야, 저희 어머니께서는 유령이 실제가 아니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냥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하시면서요.
하지만 그냥 막 믿고 싶은 때도 있는 거잖아요? 유령이 진짜면 어떨까요? 이 아름답고 거대한 우주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기이하고 복잡한 세상이라면 어떨까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더 많은 것들을 보고 싶지 않을까요?
무슨 말이냐 하면, 거대하고 불길해 보이는 구체가 하늘에 떠서 다른 행성을 변형시키는 일도 있잖아요.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이랄 게 있을까요. 여행자 같은 게 존재한다고 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아직 많이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린 여행자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행자가 완전히 이질적인 대상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여행자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죠. 하지만 전 세계의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어요. 심지어 신앙에 가까울 정도죠. 잘못된 일이에요. 큰 실수라고요.
우리는 여행자의 최면에 빠져 우리가 모두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우리 주위의 세계를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개개인의 수준에서까지 경계 태세를 모두 해제했던 거죠. 세계의 평화를 이룩한다는 미명으로, 그리고 여행자가 우리에게 그런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하면서요.
우린 마음을 놓았어요. 현실에 안주했죠. 운명이 다시 한 번 우리를 모두 쓸어버리려고 할 때 우리는 속수무책이겠죠. 착각하지 마세요. 반드시 그런 일이 생길 테니까.
제 딸은 아직 너무 어려서 여행자를 이해하지 못해요.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니, 가만 내버려 두면 이 사회의 다른 사람처럼 여행자에 의해 약해지겠죠.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3. 항목 25
항목 25여행자와 함께하는 건 우리만이 아니에요.
저 밖에서 뭔가 다른 것이 감지됐어요. 일종의 이상 현상이죠. 전 운 좋게도 중요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고 해요. 하지만 뭔가 있어요. 여행자가 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냥 전파가 불안정한 것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정말 끔찍한 일이 생기려는 것일 수도 있죠.
만에 하나 뭔가 걱정해야 할 일이 있는 거라면, 그게 현실이 되기 전에 먼저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 몸을 지킬 수단이 더는 우리 손에 있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 제 말을 오해하지는 마세요. 그런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말은 되죠.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져요. 내 손으로 직접 가족을 지킬 수 있지 않다면 마음이 놓이지 않죠. 저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이제 다른 누군가, 또는 다른 무엇이 우릴 지켜줄 거라고 생각하며 멍하니 있지만은 않을 거예요. 제가 직접 처리하겠어요.
혼자서 하진 않을 거예요. 마침 제가 아는 사람들 중에 이런 일에 참여할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소위 '관계 당국'에서는 절대로 승인해 주지 않을 그런 일 말이에요. 전에도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지만, 저 우주 밖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거니까요. 우리나 우리 아이들,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요.
우리는 준비해야 해요.
4. 항목 37
항목 37그래, 성공이란 건 이런 거군요. 우리 세 명이 신념을 위해 이 땅에 토대를 만드는 것.
우리가 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상관없어요. 우리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위해 싸워야 해요. 우리의 가치, 문화... 인간으로서 우리가 믿는 모든 것들을 지켜야 해요. 그것이 우리가 검은 무기고를 설립한 이유에요.
우리 작품. 아주 아름답죠. 전부 다요. 아주 섬세하게 제작되었어요. 가장 강한 재료를 사용해서요. 튼튼하고 정밀하죠.
처음에 디자인 몇 개를 제작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어요. 제대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우리 정체성을 반영해서 아주 독특하게 만들고 싶었죠. 어머니들. 아버지들. 아들들. 딸들. 친구들. 연인들.
누구를 상대하게 될지도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우리가 이런 무기를 손에 쥘 날이 오게 된다면... 이 무기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상기시켜 줄 거예요. 우리의 기원을 떠올리게 해 주고요.
공동 설립자인 헬가와 유키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두 사람 다 이런 감정을 가슴 깊이 공감하고 있거든요.
검은 무기고가 계속 성공을 거두는 건 모두 그들 덕분이에요. 정말 경외심이 차올라요. 헬가는 원래 클로비스 브레이 출신이에요. 경영을 담당하고 있어요. 유키는 우리 엔지니어에요. 과학과 기계를 책임지고 있죠.
매일같이 이 여성들과 그들이 제대로 해내는 일에 감탄할 수밖에 없어요. 두 사람 다 우리 일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어요. 자기 영혼과 유산까지요. 모두 대의를 위해 하는 일이죠.
우린 하나의 가족이 되었어요. 더 행복할 수가 없답니다.
5. 항목 41
항목 41대장간이 가동되고 있어요. 사상 최초의 대장간이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에요. 검은 무기고에도 그렇고요.
가슴이 뛰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이동식 무기 공장을 만들자고 한 건 제가 아니었어요. 제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건 아니라고요. 헬가와 유키였죠. 요즘은 예전처럼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얘기만 하면 아시겠죠.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지금이야말로 우리 제품을 세계에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주 접근하기 쉽다고 하면서요. 수량도 아주 많다고 하더라고요.
우린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너무 빠른 것 같아요. 대량 생산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죠. 그건 우리 일이 우리 손을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의미고요. 제품이 어떻게 배포되고, 또 누구에게 배포되는지 등등. 우리를 지킬 무기가 많아졌다는 의미이긴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그건 제가 바랐던 모습이 아니고요. 통제되지 않는 힘은 혼돈을 초래할 뿐. 뿌린 대로 거두는 거니까요.
휴대용 무기 인쇄기를 전 세계에 설치하는 건 그야말로 모든 일이 통제를 벗어나게 하는 거죠. 맙소사, 심지어는 다른 행성에까지 그걸 설치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전 늘 이 일이 조금 더 친밀하게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될 거라고 생각해 왔어요.
헬가와 유키는 그저 무기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헬가는 늘 이런 얘기를 해요. 솔직히 역겨운 얘기죠. 초록색 외계인들이 침공해 오기 전까지는 대의도 중요하지만 사업이 더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전 그냥 승인해 버렸어요.
헬가가 무정한 사람이 되고 싶으면 그러라고 해요. 내가 그만큼 더 노력해서 중심을 지키면 돼요.
6. 항목 50
항목 50오늘 헬가에게 한 마디 했어요.
무기고에 또 한 가지 "기회"가 생겼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기회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프로젝트는 어느새 도를 넘고 있어요.
엑소. 전 처음부터 그들이 싫었어요. 인간이 아니잖아요. 영혼도 없어요. 인간이 신 놀음을 하며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죠. 그런 게 잘 된 적이 있었나요? 언젠가 그들이 나머지 인류를 싫어하게 되면, 우리가 손 쓸 방법이 있을까요? 학살이 일어날 거예요.
그런 기술을 우리 것과 결합한다고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아요.
헬가는 제가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을 거예요. 분명히 알았을 거라고요. 그런데도 제게 그 일을 가져왔어요. 타이탄 얘기까지 또 꺼내면서요! 이곳을 버리고 대피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더군요. "사람들은 지금 보호가 필요해." 헬가가 그러더군요. "이게 논리적인 수순이야."
유키는 늘 그렇듯이 우리 둘을 중재하려고만 했고요.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닐 거예요.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늘 저와 헬가 사이에서 갈등을 해소하려고 하니까요. 유키는 우리를 진정시키는 법을 알아요. 그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왔죠.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검은 무기고의 존재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에요.
7. 항목 67, 68
항목 67여행자가 움직이고 있어요.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지구로요.
전 타이탄의 대피 소식을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어요. 그랬어야 했는데. 헬가와 유키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일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렸어요. 우리 모두에게 말이에요.
니오베 프로젝트가 인류를 도울 수 있다면, 이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시키는 것이 우리 사명이겠죠.
그 과정에서 조금 불쾌한 사람들과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겠죠... 보호의 대가란 원래 그런 거니까요.
이제는 시간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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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68
그들이 왔어요. 그들은 실존해요.
우리 생각이 옳았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또 한편으로는 완벽하게 빗나갔어요.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순진해도 너무 순진했던 거죠.
우린 전혀 몰랐어요. 그들의 힘을. 그 압도적인 위력을.
대처할 수 없는 그 힘을.
그들이 접근하기 시작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게 숨어 이 시설의 문이 튼튼하기만을 바라는 것밖에 없었어요. 밖은 완전한 혼돈으로 뒤덮였죠.
너무 많은 이들이 여행자를 믿었죠.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구체에서 사람들이 어떤 대답을 기대했을지 모르겠네요. 여행자는 늘 그렇듯 침묵에 잠겨 있어요.
저도 그와 같은 입장이에요. 마지막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게 중요한 거겠죠.
이제 희망이 없어요.
인류의 비명만 남아 있을 뿐.
8. 항목 70, 71, 72
항목 70포효하는 소리는 밤에 가장 크게 들려요.
새벽이 되면 세상은 다시 고요해지지만, 그와 함께 그 끔찍한 냄새에 이끌린 개들이 찾아오죠.
저 문을 열어 동정을 살피고 이곳을 떠날 순간만 기다리고 있어요.
잠을 자려고 애쓸 때면 마지막으로 새소리를 들은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는 사실만 떠오르죠.
살아남은 새들이 있을까요? 전 보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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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71
어젯밤에는 뭔가 벽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어요. 끔찍하게 포효하며 발을 구르더니, 좌절한 듯 목놓아 울다가... 마침내 문을 발견했죠. 문은 오래 버티지 못했어요.
전 보지 못했어요. 모퉁이 너머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그저 총을 쏴대느라 바빴거든요. 축축한 흙 냄새가 기억나요. 그리고 처음 들어본 소리하고요. 마치 기계가 길게 늘어났다가 다시 압축되는 소리 같았죠.
모든 게 끝났을 때 우린 검은 무기고의 가족들을 잃었어요.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어요.
저도 자매들 중 한 명을 잃었어요. 헬가…
우린 자주 다투기도 했지만, 그 아이가 옳을 때도 많았어요. 저도 이제야 알겠네요.
기회가 있을 때 얘기할 걸 그랬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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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72
난리 중에 딸아이가 다쳤어요.
의식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9. 항목 92, 93, 94, 95
항목 92이 모든 건 원래 생명을 위한 거였어요. 그런데 이제 전 여기에 서서 공허를 내다보고 있네요. 이건 제 선택이 아니에요. 제 시선을 마주하는 건 죽음뿐이에요.
감정을 숨기라는 말을 들었어요. 강해지라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제정신인 사람이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이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건 도저히 잊을 수가 없네요.
다시 말하지만, 제정신인 사람이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제정신인 사람. 제정신. 아마 그게 문제인 것 같네요. 이런 일을 고려하고 있는 이유 말이에요. 절망에 빠진 탓에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이 모든 건 원래 생명을 위한 거였어요. 지금도 그래요. 그래야만 해요.
그러니까... 하겠어요. 해야만 해요. 그래야만 한다고요.
그 아이를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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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93
유키가 연구실에 있어요. 지금 일이 일어나고 있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불안한 기분이에요. 인류가 조각조각 해체되는 지금 온 우주가 매일 점점 더 작아지고 있어요. 출혈을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결국엔 총을 생산하는 일이 꺼림칙하던 마음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검은 무기고가 성공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 떠올랐어요. 내가 이대로 도망쳐 버리면 어떻게 될까? 남은 일은 유키가 맡으면 되죠. 누구든 상관없어요. 다른 사람이 맡으라고 해요.
그리고 나는 커피를 마셨어요. 조금 울기도 했죠. 하지만 이제 자기 연민에 빠져 있을 수는 없어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어요.
모든 것이 잘 풀리기를 바래요. 서둘러 일을 진행한 게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건 이곳 지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문제가 생겨도 클로비스 브레이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요.
제가 평생을 바친 과업이 이제 유키의 손에 달려 있어요.
전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어요.
다시 새소리를 듣고 싶어요. 다들 무사히 탈출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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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94
전 최선을 다해 손상된 입구를 봉인했어요. 바삐 움직이다 보니 잠시나마 연구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잊을 수 있었어요. 아직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 말이에요.
하지만 여기에 머물 수는 없어요. 그들이 다시 공격해 올 텐데, 이번엔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시간이 없어서 연구실에서 일을 마칠 수 없어요. 이동하면서 진행해야 해요.
동이 트면 이곳을 떠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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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95
오늘 아침 아이의 유해를 묻었어요.
유키와 함께 간단히 장례식도 치렀죠.
추억에 잠길 시간은 없어요. 떠나야 해요.
10. 항목 99, 100, 101
항목 99정오인데 트럭에 드디어 심을 다 실었어요. 출발이 늦었네요. 오늘 아침 바닥에 까마귀들이 죽어 있었어요. 나쁜 징조죠.
검은 무기고 가족은 이제 유키와 저 외엔 세 명밖에 안 남았어요. 엄밀히 말하면 우리 다섯과... 그 엑소죠. 아직은 얼핏 본 게 전부예요. 그 금속과 합성 재료로 이루어진 몸에 너무 많은 것이 달려 있어요.
오늘 그녀를 깨웠어요.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요…
하늘에 새가 없네요. 우리는 공항으로 가서 가장 안전한 목적지를 택하려고 해요.
제가 마지막으로 연구실에서 나왔어요. 다시 보게 될 날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
항목 100
그 엑소는 내게 궁금한 게 많나 봐요. 저도 궁금한 게 많지만 때와 장소가 적당하지 않네요. 오늘은 길에서 총격을 받았어요. 다행히도 우리가 상대보다 훨씬 무장을 잘하고 있었죠.
모두가 무기를 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제 걱정이 현실이 된 거예요. 인간은 믿을 수가 없어요. 우리에겐 공동의 적이 있다고, 이 멍청이들! 문명을 뼈까지 깨끗이 뜯어 먹고 나서도 우린 계속 서로 싸우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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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01
트럭이 꼼짝도 안 하네요. 걸어 가는 수밖에 없게 됐죠.
이제 여행자들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네요. 연구소를 포기하기로 한 제 결정이 옳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요.
돌이키고 싶은 수많은 결정 중 하나일 뿐이죠.
11. 항목 104, 105
항목 104오늘은 끔찍했어요.
여유가 좀 생겨서 유키는 엑소의 새로운 기능을 시험해 보겠다고 했죠. 이게 애초에 그 엑소가 존재하는 의의였으니까요. 니오베 프로젝트. 총기에 일종의 즉석 위상 변환을 일으켜 우리 무기의 위력을 대폭 증가시키려고 했던 헬가의 위대한 실험. 쉽게 말하면 걷고 말하는 대장간이에요.
오래전에 그건 그냥 아이디어에 불과했죠. 그런데 이제 현실에 되었어요. 그 엑소가 자기 능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음, 가슴 뛰는 일이었어요. 단 몇 분이라도 공포가 아닌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사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 몇 분 정도밖에 없었어요.
우리는 서툴렀죠. 엑소가 능력을 시험하는 동안, 우리는 기습 공격을 받았어요... 누군지도 모를 상대에게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는 건 분명해요. 그들에겐... 능력이 있었어요. 우린 없었고요. 한 명을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자의 빨간색 드론에 불이 켜지더니, 그가 다시 일어났어요.
우린 계속 총을 쐈죠. 그들도 걸어다니는 무기고를 만날 줄은 몰랐던 것 같아요. 달아나더군요.
하지만 우리 중 몇 명이 죽고 유키도 부상을 당했어요.
유키는 자꾸 자기가 짐이 된다고 말해요. 하지만 유키가 없으면 난 어쩔 줄을 모를 거예요.
---
항목 105
우리는 공격자와 거리를 최대한 벌리려고 밤새 이동했어요.
엑소가 유키를 업고 걸었죠. 유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유키는 자기를 두고 가라고 하더군요.
제게 남은 건 이 가족뿐이에요.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아요.
12. 항목 108, 109, 110
항목 108유키가… 죽었어요. 제 예상과는 다르게 죽었어요.
지난번에 우릴 공격했던 남자가 돌아왔어요. 이번에는 거래를 제안하더군요. 엑소를 내놓으라고 했어요. 지난번 트럭에서 엑소의 위력을 본 거예요. 엑소가 맨손으로 무기 위력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본 거죠.
엑소는 우리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하고 있었어요.
전 아연실색했는데, 제가 미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유키가 자기에게 흑요석 가속기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자기 배낭 안에 있다고 했죠.
남자가 조심스레 유키에게 다가가는 동안, 유키가 저를 얼른 쳐다봤어요. 그 마지막 눈길. 절 수도 없이 진정시킨 바로 그 눈길이었죠. 유키는 다가오는 남자를 보며 배낭으로 손을 뻗었어요.
엑소가 절 붙들고 안는 순간, 수류탄이 폭발했어요. 제가 파편을 맞지 않게 지켜 준 거예요. 전 엑소의 손을 잡고 일어서서 함께 뛰었어요. 딱 한 번 뒤돌아봤어요.
남자의 빨간색 드론이 끔찍한 빛을 내며 아수라장에서 주인을 찾고 있더군요.
남자는 다시 살아나겠죠. 엑소의 힘을 알고 있으니,
분명 우릴 찾으려고 할 거예요.
유키… 정말 미안해.
---
항목 109
사흘이 지났어요. 아직 아무 감각이 없네요.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이젠 나와 엑소밖에 안 남았어요.
---
항목 110
엑소와 저는 추락한 제트기의 날개 아래에서 밤을 보냈어요. 이걸 쓰면서 깨달았는데, 요즘 하늘에 비행기가 안 보여요. 길을 떠난 후로 한 번도 못 봤어요. 제가 알던 세상이 아니에요.
엑소를 볼 때마다 생각해요. 제가 알던 세상이 아니에요.
13. 항목 115, 116, 117
항목 115공항은 이제 안전하지 않아요. 관제탑은 불에 타고 있고, 바람에 실려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 때문에 조사를 더 할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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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16
우리는 길과 나란히 걸으면서, 여행자들의 소리가 들리면 엎드려서 숨어요. 다리는 뻐근하고, 엑소가 퍼부어 대는 질문에 답하느라 입안은 바싹 말랐죠. 이 세상에는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너무 많고 제가 말해 주고 싶은 것도 너무 많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요. 유키의 죽음으로 둘 다 충격을 받았지만, 엑소는 아직 천진난만해요. 그걸 망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하고 있죠.
숲 속을 지나다가 석유 연료 자동차의 잔해를 보았는데, 엑소가 아직 살아 있는 건 아니냐고 묻더군요. 자동차는 처음부터 살아 있지 않았다고 설명해 줬죠. 그런 기계에는 영혼이 없다고요. 그 말을 하고 바로 후회했어요. 더욱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돌아올 게 뻔하니까요. 전 머리가 아프니까 잠시 조용히 가자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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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17
우리는 해가 떠 있는 동안은 인간들을 경계해요. 달이 뜨면 인간보다 더한 괴물들을 걱정해야 하죠. 이제는 어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게다가 그때 따돌렸던 남자가 우릴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어요.
내륙으로 들어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죠. 길을 갈수록 파괴가 점점 심해지고 있으니까요. 남쪽의 지중해로 가면 쪽배라도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설령 알프스를 넘어가야 한다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아무래도 섬이 좋을 테니, 코르시카섬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야겠어요. 하긴 우리처럼 운이 없어서야, 무적의 바다 괴물이 나타나서 배를 뒤집어 버린대도 이상하지 않겠지만요.
14. 항목 123
항목 123오늘은 추억에 젖었네요. 이 모든 일이 발생하기 전에 제가 좋아했던 놀이 공원에 도착했어요.
공원엔 어느새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 있더군요. 하지만 다행히도 아직 공원 대부분을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었어요.
그녀에게 제가 자주 밥을 먹던 곳과 지친 발을 쉬던 곳, 또 이국적인 동물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했던 체험형 동물원까지 보여줬어요. 제가 가족과 함께 여기 왔었던 때의 일을 이야기하려는 도중에... 목이 메어 와 더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어요.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모양이에요.
15. 항목 142, 143, 144
항목 142전 호기심이 많은 어린 엑소와 이 새로운 세상을 걸으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었어요. 그녀는 종종 하늘을 쳐다봤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살아있는 생명을 만났어요. 바로 나비였죠. 그녀는 나비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져 버렸어요. 그녀의 초롱초롱한 눈 앞으로 날개가 파닥거리며 지나가자, 엉망이 된 이 세계는 이제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그걸 보니 빅토르 위고의 베레 노보가 생각났어요. 폐허가 된 세상에서 시를 읊고 있자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더군요.
저는 그녀가 이 아름답고 날개 달린 곤충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고 얘기해 줬어요. 나비도 처음에는 아주 보잘것없지만 더욱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난다고요.
우리 둘 중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마 울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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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43
오늘 그 조그만 드론이 지나가는 걸 본 것 같아요. 열매를 따면서 나비가 또 없나 보고 있는데 그 망할 것이 지나가는 걸 본 것 같아요.
저는 엑소에게 다짐을 받아 냈어요. 만에 하나 잡힌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놈들을 믿지 말라고요.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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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44
낮이고 밤이고 힘든 나날이에요. 길이 아닌 곳을 걷자니 속도도 느리고, 이제 둘이 서로 신경을 거스르고 있거든요. 엑소가 그러는데, 검은 무기고에 살던 다른 사람들은 더 잘해 줬다고 하더군요. 저는 발끈해서 받아쳤지만... 맞는 말이에요. 적어도 요즘은 그렇죠.
질문 포화는 멈추지 않아요. 왜 자기가 특별한지 알고 싶나 봐요. 왜 우리에게 자기가 필요했는지, 자기는 어디서 왔는지. 아직도 대답할 엄두가 나지 않아요. 그 질문을 받느니, 이 일기장에 얼굴을 파묻거나 자는 척하는 게 낫겠어요. 해안까지는 아직 한참 가야 해요.
16. 항목 150, 151
항목 150한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어요. 너무 피곤했거든요... 제 옷이 헐렁해진 걸 보고 엑소가 "질량을 잃고" 있다며 걱정하더군요. 그녀와 이런 식으로 알고 싶진 않았어요.
밤에는 긴장을 풀려고 애써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녀는 뜨거운 관심을 보이더니, "르 땅 데 세리즈"라는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엑소는 그 노래를 어떻게 아냐고 물었지만, 전 그 사람 이야기를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에요. 그래서 그냥 가족의 전통이라고 말했죠.
그게 거짓말일까요? 이제는 상관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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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51
그녀의 질문 몇 가지에 답을 하려고 했어요. 검은 무기고에 대해서, 종말 이전의 삶에 대해서... 내 믿음에 대해서.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를 그녀답게 만들어 주는 것에 대해서도.
당신의 기원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인정하긴 싫어하지만, 우린 모두 과거에 매여 있어요.
그녀에게는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모든 것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과거는 소중한 것이며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요.
그 얘기를 하는 동안 사실은 주저하고 있는 게 나라는 걸 알고 있었죠. 비밀을 감춘 건 저였어요. 제가 바로 위선자였죠. 그래서 그녀를 바라볼 수조차 없었어요.
언젠가, 아마 머지 않았겠지만, 그녀는 우리의 유산이 남긴 유일한 생명체가 될 거예요.
언젠가 저도 걱정을 떨쳐 버리고 모든 걸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17. 항목 157, 158, 159
항목 157우리는 해안에 도착했어요. 거긴 작고 깔끔한 야영지가 있었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에 뜨는 건 모두, 그리고 뜨지 않는 것도 일부 바다로 떠난 후였어요. 유럽에서 배를 타고 떠나는 건 불가능했어요. 코르시카는 목적지에서 빼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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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58
불안 발작을 일으켰어요. 웬 여자가 드론을 데리고 야영지에 나타났거든요. 여기선 그 사람이 법이자 규칙인 것 같더군요.
우리가 가진 검은 무기고의 무기를 보고 감탄하더군요. 그냥 무기 보는 눈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뭔가 알고 있는 걸까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 곧 여길 떠나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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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59
오늘 몇몇 어린아이와 부모들이 에이다에게 손을 잡고 이야기해도 되겠냐고 묻더군요. 엑소를 처음 보는 모양이었어요. 그녀는 사람들과 편하게 얘기를 나눠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말해서 상대도 마음이 편해지죠. 그 천진난만한 성격이 빛을 발하고 있어요. 참 착해요.
그녀는 아이들과 노는 게 즐겁나 봐요. "숨바꼭질"을 제법 잘하는데, 그런 기량을 키운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아이들도 발랄한 그녀를 좋아하죠. 이 야영지에는 엑소가 둘이 더 있어요. 셋이서 금방 친구가 되더군요.
그녀가 남들과 친해지는 걸 보니, 제가 잡아 두고 있다는 게 새삼 미안하지만 아직은 떠나 보낼 마음을 먹기가 힘드네요.
18. 항목 170, 171
항목 170지난밤 난민 야영지의 평화가 갑작스레 깨졌어요. 천둥과 번개가 귀를 울렸죠. 드론을 가진 사람들이 야영지에서 서로 전투를 벌였어요. 그녀와 저는 그 틈을 타서 빠져나와, 해안선을 따라 몇 킬로미터 걸었죠.
그들이 왜 왔는지 알아요. 그중 하나는 아는 얼굴이었으니까요. 지난번 그 남자예요. 빨간색 드론을 가지고 있던 남자. 유키를 죽인 남자.
흑요석 가속기를 받으러 온 거예요. 떠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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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171
우리는 벼랑 위에서 활활 타는 야영지를 바라보았어요. 드론을 가진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더군요. 저는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드론의 빛을 보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었어요.
시간이 없었어요. 그녀는 걱정하면서도 자신을 열어 주었죠.
흑요석 가속기를 제거하고 그녀를 떠나 보낼 생각이에요. 가속기를 갖고 싶으면 나한테 오면 돼요. 그 아이 말고요.
아마 이게 마지막이겠죠...
19. 마지막 항목
마지막 항목에이다레이드에게,
드론을 가진 사람들이 그 버려진 교차로에 혼자 있는 날 보고, 네가 어디 있는지 따져 묻더구나. 그래서 흑요석 가속기를 내밀었지. 그냥 내어줬어.
넌 떠날 거라 약속했고, 그래서 떠났어... 하지만 멀리 가겠다고 얘기한 적은 없었잖아? 그래서 가까이 있으면서 망원경을 통해서 다 본 거야.
그 남자가 내 머리를 조준했지. 총소리가 들리는 순간, 난 내가 죽은 줄 알았어. 그런데 죽은 건 내가 아니라 그자였지. 네가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 어딜 봐야 할지 아무도 몰랐어.
두 번째 남자가 우리 무기로 내게 상처를 입혔어. 득의양양하던 그자는 네게서 날아온 총알을 맞고 잠잠해졌지. 천둥 같은 총소리가 두 번 더 들리더니 놈들의 드론도 주인과 함께 죽어 버렸어.
네 망원경의 불빛이 사라지는 걸 보고, 네가 멀어지고 있다는 걸 알았어. 분명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그러지 마. 잘못은 나한테 있으니까.
나는 가속기를 집어서 그들의 고함 소리로부터 최대한 멀리 달아났어. 남자들이 날 쫓아왔지. 지금쯤이면 넌 이미 멀리 갔을 테고, 난 사람들을 다시 내륙으로 유인했어.
이제 달아나지 않을 거야. 내 이갸기의 끝이 가까워졌어. 어쩌면 그래야 마땅하겠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너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해. 네 삶의 끝은 자연의 순리를 따랐어야 해. 내가 이기적인 이유로 순리를 거슬렀다는 게 부끄럽구나.
"에이다레이드"라는 이름, 기억하니? 그건 네가 태어났을 때 받은 이름이며, 내가 너의 뜻과 상관없이 널 새 세상으로 보낼 때까지 네가 매일 듣던 이름이란다.
네가 너에게서 최후를 빼앗았을 때, 너는 에이다-1이 되었지. 나는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널 사랑했다. 어쩌면 네게 무엇이든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인간으로서 겪는 최후의 경험, 품위 있는 죽음을 빼앗은 걸지도 모르겠구나.
다시는 널 보지 못하리라는 거 알아. 네 과거에 대해 알고 싶다면, 넌 니오베 연구실에서 두 번째로 태어났다는 걸 기억해 줘. 네가 연구소에서 부상을 당하고 네 생명이 꺼져 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내가 힘이 들 때면 하는 일을 했단다. 난... 무언가를 만들었어. 너 말이야, 에이다-1. 내가 완전히 잃어버릴 뻔했던 것으로부터. 널 영원히 잃어버릴 거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런 거야. 나는 네가 내려야 할 결정을 내멋대로 내리고 네 삶의 궤적을 바꾸어 버렸지.
부디 나를 용서해 주면 좋겠구나.
나는 순진했어. 과거를 너무 자주 바라봤지. 도무지 놓아 버릴 수가 없었어. 나는 자연의 질서 같은 건 개의치 않았어. 그리고 헬가는, 음... 나와는 정반대였지. 무기고를 성장시키려는 마음뿐이었어. 잠재력을 모두 발휘하게 하려고만 했지. 그리고 유키는 그런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줬고. 두 사람은 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만큼 앞날을 내다봤던 거야.
이제야 이 삶의 균형을 깨달은 것 같아. 뒤를 조금 돌아보고, 앞을 조금 내다봐야 한다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거야.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해. 그 모든 걸 언제 빼앗길지 모르니까.
우리의 성공과 실수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담대해지렴.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를 존중하고. 네가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말아야 해. 그리고 가능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 나는 이제 두렵지 않거든.
그거 아니? 우리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생각도 못 했어. 이 세상을 살았던 모든 어머니의 질투를 한몸에 받으면서도 말이야.
난 너를 두 번 사랑할 수 있었으니까.
너의 어머니,
앙리에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