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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5:44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선택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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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티쿠우의 점3. 망자의 이야기4. 회수자의 일제 사격5. 전장 무기
5.1. 기이한 연주, 데카르트의 좌표5.2. 황동 공격5.3. 실을 꿴 바늘5.4. 결투 규칙5.5. 영원한 문장5.6. 타란튤라
6. 경이 방어구
6.1. 전투 화음의 외투6.2. 유성의 흉갑6.3. 옴니큘러스
7. 전설 방어구
7.1. 머리7.2. 팔7.3. 가슴7.4. 다리7.5. 직업
8. 도전자 의체9. 길가메시의 의체10. 상당히 진지함11. 짧은 인생12. 정복의 종

1. 개요

선택받은 자 시즌 아이템의 지식이다.

2. 티쿠우의 점

세 개의 점을 영원히 관통했습니다.

군단병 두 명이 폐위된 황제의 무기고를 뒤졌다. 그들은 잔해를 헤치고 날카로운 금속 활을 들어 올렸다. 검은 칼날 같은 얇은 프레임에 와이어가 묶여 있었다.

"사이온 중 하나가 화살이 빗나가지 않게 만든 활이다."

"허. 어떻게 한 거지?"

"시간을 넣었다고 하던데."

"무슨 시간?"

"화살을 쏘면, 그때가 항상 화살이 적중하는 시간이 되게 했다고 한다."

"절대로 빗나가는 일이 없다고?"

"물론 어차피 빗나갈 거였다면 얘기가 다르지."

"그런데 정말로 빗나간다고 하면, 그때가 또 빗나가지 않는 시간이 되는 건 아닌가?"

"그래. 그때가 빗나가는 시간인 게 아니라면 그렇지."

**

응결 건조의 세 번째 날이었다. 티쿠우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었지만, 그는 여전히 활을 가슴에 품고 차분하게 정신에 새겼다.

티쿠우는 생각을 무와 뒤섞었다. 조악한 정신 융합, 광활한 우주 속 하나의 목소리, 하나가 된 시간의 화음.

태양의 힘을 희미하게 내뿜는 화살 세 개가 그의 손아귀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그때, 메아리가 들렸다. 해진 와이어가 말총처럼 거칠게 윙윙거렸다. 티쿠우는 활시위를 튕겼다. 핏방울이 점점이 바닥에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활시위를 튕겨 주위를 위압적인 진동으로 가득 채웠다.

손가락에서 피가 샘솟아, 발치에 떨어진 것과 같은 형태로 떨어졌다.

**

"화살은 어떻게 만들어지는데?"

"시간에서 나오지. 전에 시간 속에 놓아두었으니까."

"그걸 발사하면, 어디를 맞혀야 할지 어떻게 알지?"

"시간을 가로질러 미래로 가서, 언제나 화살이 박혀 있었던 곳에 도달하겠지."

"그게 어딘데?"

"이미 화살이 박혀 있는 곳."

**

티쿠우의 정신이 모든 것을 지웠다. 예정된 미래의 실체와 허상을 모두 소멸시켰다.

그의 주위에서 시간은 공허한 고리가 되었다. 그의 노래가 시간을 붙잡고, 결합을 제자리에 묶었다. 의지와 물질 사이 세 점의 화음.

그의 주먹이 올라왔다. 세 개의 자루가 그의 Y 모양 동공을 채웠다. 그건 언제나 거기 있었다. 세 개의 점이 영원까지 뻗어 나갔다.

3. 망자의 이야기

"길든 짧든, 모든 길은 어차피 같은 곳에서 끝나지." —카타베이시스

게일린-4의 전쟁 야수가 아늑한 금성의 밀림 속에서 우리를 이끌었다. 소총을 내린 우리 머리 위로 고스트들이 파수기처럼 떠 있었다.

"이젠 너무 낡아서 정비가 필요해. 엔진을 교체하지 않고 너무 오래 탄 거겠지." 나는 말했다.

게일린은 곁눈질로 나를 흘긋 봤다. "그 우주선 제작자 아직 일하고 있지? 가을에 사과주를 만들던 여자. 우릴 무슨 길 잃은 개들처럼 보살펴 줬었지."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이거 말이야." 나는 손으로 내 몸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거 알잖아." 나는 텍스 제조사에서 제작한 소총의 가죽 싸개를 똑바로 폈다.

"내 몸은 내가 조율한다는 거 알지?" 엑소 헌터가 물었다.

"왜지? 당신은 불멸이잖아."

"당신은 아니고?"

"그게, 나는… 좀 느려진 것 같아. 그냥 느려진 느낌이 든다고."

"으흠."

"예전과는 감각이 달라졌어. 그러니까… 기운이 떨어졌다고 할까. 여기도 그렇고." 나는 헬멧을 두드렸다.

"비극적이네. 어떤 느낌인지 알아. 그럼 길가메시한테 좀 조율해 달라고 해."

나는 킥킥 웃었다. "그래… 퍽이나 좋아하겠다."

"둘이 또 다툰 거야?"

나는 거짓말을 할 때면 드러나는 뻣뻣한 몸짓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매번 똑같이 부활한다고 생각해?"

"그래. 공장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대로지." 게일린-4가 말했다.

"가끔은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 뭔가 달라졌다는 느낌."

게일린은 잠시 행동을 멈추고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고개를 숙여 두건을 앞으로 떨어뜨렸다. "정확히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냥 이런저런 것들이 조금씩 바뀌었다고 할까."

"그가 당신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해?" 게일린의 목소리는 놀란 기색 없이 차분했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침묵한 후 대답했다.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아직 확신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게일린은 나와 눈을 맞추고는 숲 위쪽을 바라봤다.

그는 상체를 기울여 내게 접근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클립은 착하긴 한데, 고스트라고 모든 걸 알지는 못한다는 걸 잊지 마. 그런 존재는 없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을 뿐이야. 호기심이 생기면 질문을 할 뿐이라고. 뭔가 꼬였다는 생각이 들면, 편하게 앉아서 툭 터놓고 얘기해야 해."

"잠깐… 클립이 당신도 변하게—"

"적당히 해." 게일린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렇게 편집증적으로 굴지 말고." 그는 돌아서서 계속 걸으며 말했다. "삶이 당신을 변화시키지. 그들도 마찬가지야. 그대로 남는 건 나뿐이라고."

게일린은 주먹을 들어올렸고 우리는 멈췄다. 그의 전쟁 야수는 코를 킁킁거리더니 동쪽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계속 걸었다.

"야수 이름은 뭐라고 붙였어?"

"카스투스."

"요즘 거미의 책을 너무 많이 읽은 것 같네."

"개중에는 괜찮은 것도 있어."

나는 웃었다. "당신을 구속하는 건 전부 올가미로 만들 수 있다고 했던 게 당신 아닌가?"

"그래, 전에 그랬었지."

"요즘 그에게 일 많이 받았어? 그 몰락자들?"

"황제의 하수인인 당신이 할 얘기는 아니지. 엘릭스니 중에는 그리 나쁘지 않은 녀석들도 있어."

4. 회수자의 일제 사격

유일한 길은 정면돌파뿐입니다.

// 선봉대네트워크—보안-04 // FOTC_조사관_로그북_01.7733// V.메이어 //

해케 무기고는 탑의 소란과 동시에 타격을 받았다. 과학 수사 결과, 사이온 세 명이 물리 절단기를 사용하여 보안 방벽을 통과하고 물질 변이 닻을 사용하여 콘크리트 벽을 투과할 수 있는 물질로 변화시킨 것이 드러났다.

해케가 여기에 무엇을 보관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제작한 것이 아닌 회수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주선 부품처럼 보이지만, 어떤 종류의 함선인지는 알 수 없다. 접근 권한을 받지 못해서 정확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워록 선봉대에 전달해야 한다.

// 선봉대네트워크—보안-04 // FOTC_조사관_로그북_01.7734// V.메이어 //

해케에서 강탈당한 하드웨어를 페러그린 구역의 불법 개조상에서 발견했다. 해당 조직을 궤멸시키고 해당 물품을 입수했다. 해케가 보관하고 있던 것과 동일한 곳에서 동일한 재료로 제작된 것이었다. 사이온이 달아나면서 버리고 간 게 분명했다. 탑에 보고했지만 다들 너무 바쁜 것 같다. 아무래도 공식적인 응답이 오기까지는 며칠 걸릴 것 같다.

그동안에는 물품을 엔지니어링 팀에 넘겨 확인해 볼 생각이다. 낯이 익지만, 정확히 뭔지 알 수는 없다.

// 선봉대네트워크—보안-04 // FOTC_조사관_로그북_01.7737// V.메이어 //

몇 개의 기록을 지워야 했다. 엔지니어링 팀에서 확인한 정보 때문이었다. 하루 동안 도시 외부로 나갔다. 도약선을 타고 EDZ 외곽까지 가 보았다. 가는 길에 비발디를 들으니 머리를 비우는 데 도움이 됐다. 일이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라면, 힘의 균형을 완전히 뒤흔들 수 있다.

// 선봉대네트워크—보안-04 // FOTC_조사관_로그북_01.7738// V.메이어 //

확인되었다. 믿을 수가 없군. 락슈미와 접촉해야 한다.

// 선봉대네트워크—보안-00 // 선봉대_영구_기록_73.10159// I.레이 //

미래 전쟁 교단에 매수된 도시 조사관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도시 수준의 보안 검문소에서 조사관 메이어를 체포하고 그의 우주선을 압수했다. 락슈미는 예상했던 대로 전혀 몰랐다고만 하고, 우리도 증거가 부족하여 그 이상 추궁할 수는 없다.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그렇다.

은신자들이 붉은 전쟁 이후 해케가 건져낸 우리의 잔해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미 피해를 입은 후였고, 그걸로 내 우려가 확인되었다. 카이아틀의 부하들은 가울이 여행자를 구속하고 빛을 훔치는 데 사용했던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이 정보는 빛 없는 자들에게는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5. 전장 무기

5.1. 기이한 연주, 데카르트의 좌표

"나의 전사들은 자신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나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다. 서로를 위해 싸운다." —카이아틀 여제

[선봉대 네트워크 암호화 라우터 보고 사항]

첫 번째인 내 친구여, 엄니 여왕은 제 담당 임무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최근 당신도 익히 알고 있는 그곳을 방문했던 때 아래 첨부한 교신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웃기긴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실천의 세력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당신을 괴롭히면, 저 대신 한 대 제대로 걷어차 주시기 바랍니다. —용

[대화록 첨부]



기록: 30.10.15.용.보고
신원: 조언자 타우룬[타], 여제 카이아틀[카], 거미[거]
파일//은_대외비//오디오

[타] 연결이 이루어졌다. 오늘, 칼루스의 후손이자 우문아라스의 학살자이신 위대한 카이아틀 여제께서 무전 교신을 통해 뒤엉킨 해안의 거미와 대화하게 되었음을 제국의 기록에 남긴다. 교신 상대는 이전—

[카] 그만해라, 타우룬. 인사치레는 일이 다 끝난 후 서기가 마음대로 덧붙여도 좋다.

[거] 그래,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지금 처리해야 할 일이 잔뜩 있다는 거 다 아니까. 물론 그런 일들이라면 나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기꺼이 도울 수 있다고.

[카] 전쟁 야수가 진드기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네게 도움을 구할 이유는 없다. 내가 부하들 중에서 도둑들을 몇 명이나 제거해야 했는지 알고 있나? 그런 자들은 자기 위신을 격하시켰다. 우리 증명의 장을 어슬렁거리고, 전투의 쓰레기를 무기로 변형시키던 녀석들. 그게 다 네놈이 번쩍이는 미광체로 놈들을 유혹했기 때문이다.

[거] 하! 내가? 유혹했다고? 난 놈들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지 않게 막는 것만도 벅찼어.

[카] 내가 무기상을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벌레야. 하지만 널 제대로 짓밟아 주기만 하면, 적어도 마지막은 될 것 같구나.

[거] 나 원. 오늘은 기갑단의 운영에 도움을 줄까 해서 이렇게 나온 거야. 제국에 자금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카] 그런가?

[거] 폐하, 제국의 아첨꾼들에게 무슨 얘기를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타] 네놈이 어딜—

[카] 조용히 해라.

[거] 태양계는 상황이 좀 달라. 옛 토로바틀의 전통처럼 그냥 때려 부수고 정복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고. 가울도 아주 어렵게 그 교훈을 배웠지. 그의 붉은 군단의 잔당들도 결국엔 적응하는 법을 배웠고.

[거] 뭐, 당신도 같은 길을 가고 싶다면 미리 얘기해 줘. 난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원한다면 할부 결제라도 해줄 테니까.

[카] 너그럽기도 하지.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가 이미 얘기한 것처럼, 나는 무한한 자원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거] 그래, 숙청에서 살아남은 자들 말이지. 하지만 내가 파는 물건 중에 가장 중요한 건 무기가 아니야. 당신도 당신 아버지와 같다면, 아마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에 훨씬 더 관심이 있을 텐데.

[카] 좌표를 보내라. 면전에서 이야기하자.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네게 자비를 베풀 가치가 있을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으니까.

[거] 오, 위대하신 제국의 여왕 폐하를 누추한 우리 해안에 모실 수 있다니, 정말 엄청난 영광인데. 뭐, 으리으리한 영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 같은 벌레들은 그냥 집이라 부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거든.

[교신 종료.]

5.2. 황동 공격

"미모로 상대를 처치할 수 있다면, 이 무기는 조준할 필요조차 없을 겁니다." —밴시-44

밴시-44는 보조 무기를 들어 올려 금속 손잡이를 잡고 균형을 시험해 보았다. 멋진 작품이었다. 그는 슬라이드를 당기고 사출구를 들여다보았다. 총열은 탄탄하고 스프링은 실리콘처럼 부드러웠다. 놋쇠판과 피카티니 레일도 아주 고전적인 느낌을 주었다. 그가 아주 좋아하는 형태였다.

건설용 레드잭이 헬름의 건설 현장에서 이 권총을 끄집어냈다. 처리 장치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전투 코드가 작용했기 때문인지, 그들은 이 총을 그에게 바로 가져왔다. 밴시는 이 아름다운 장비가 그 잔해 안에 얼마나 오랫동안 갇혀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글쎄, 어쩌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거기 묻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주 오래전 행한 사악한 행위의 증거였던 건 아닐까.

뭐, 이 장비에 얽힌 오점이야 이미 오래전 잊혀져 버렸을 것이다. 밴시는 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단 몇 초 만에 그는 작업대 위에 부품을 모두 늘어놓았다. 그는 각 부품의 표면을 스캔하며 제작자의 표식을 찾았다.

저기다! 방아쇠 핀에 작은 각인이 있었다. 그의 디지털 눈에도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루페를 통해 핀을 관찰했다. "B-44.4.C-6"이라는 표식이었다. 일련번호 같아 보였다.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을 것만 같았다.

정말 굉장한 작품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안목이 대단한 장인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생각했다. 네가 어디에서 왔든, 새집을 찾아 줘야 할 때가 됐구나.

5.3. 실을 꿴 바늘

"우리 최첨단 기술은 대부분 처음에 외계 종족이 우리를 공격했던 기술이다. 이제 그 빚을 갚을 시간이야." —살라딘 경

기갑단의 선택받은 자 이그노분은 하루 종일 칭찬에 시달렸다. 카이아틀 여제의 발표 이후, 지상 탱크의 모든 군단병이 그를 찾아와 진급을 질투하듯 경례를 붙였다.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임명이었다.

할파스 엘렉투스 깊은 곳에서, 이그노분은 경기장 준비를 감독했다. 카이아틀의 깃발을 걸고, 탄약에 성유를 바르고, 제국 신화 수호자가 선택받은 자의 기도를 읊조렸다. 그는 찬란하게 빛나는 새로운 방어구를 착용했다. 의식의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의 승리를 기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지금 경기장에 홀로 서 있으니 이그노분의 머릿속에 의혹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가울은 작은 자들의 힘의 근원이 빛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행자의 힘을 여느 무기처럼 적에게서 빼앗아 그걸로 적을 공격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틀렸던 게 분명했다.

이그노분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의 힘은 빛이 아니라 죽음에서 오는 것이었다. 수호자는 이미 살아 있는 시체이면서 계속해서 싸웠다. 다들 수천 번 죽었던 자들이지만, 이그노분은 아직 단 한 번도 죽지 않았다. 죽음조차 꺾을 수 없는 상대를 어떻게 물리친다는 말인가?

갑자기 원대한 자 익셀의 헛소리도 그렇게 터무니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기갑단이 작은 자들에게 승리하려면 가울이 실패한 측면에서 성공해야 한다. 선봉대를 필멸의 존재로 끌어내려야 한다.

이그노분은 이런 생각만으로 자신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걸 알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작은 자들이 죽음을 마주할 수 있다면, 그 또한 그러리라.

5.4. 결투 규칙

총열을 따라 완성되지 않은 각인이 남아 있습니다. "틀라무스, 그녀는—"

솜씨 좋은 무기제작자 두 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중 한 명인 두투스는 산맥에서 직접 캐낸 금속으로 무기를 만들었다. 장인의 침착한 손놀림으로 총열 안 강선을 새겼다. 코발트와 아이코를 사용하는 그녀의 염료는 딱정벌레 껍질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다른 한 명, 가레트는 먼 평원 출신이었다. 그는 자기 장비를 매우 비싼 값에 팔았고, 그렇게 상당한 부를 비축했다. 그는 자기 상품을 화려한 광채와 불길의 색상으로 장식했다.

프리무스가 가장 강한 전사들을 소환했을 때, 모든 이들은 날카로운 조준과 막강한 무기로 도전자를 전부 격퇴한 투사 틀라무스가 그들을 대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투스와 가레트는 둘 다 그녀에게 자기 최고의 장비를 선사하고 싶어했다. 그녀처럼 명망 있는 전사가 그들의 색상을 착용한다면, 막대한 명예가 뒤따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두투스는 틀라무스에게 얼음처럼 푸른 손잡이와 넓은 황금 날이 달린 강대한 전쟁 도끼를 만들어 주었다. 틀라무스는 기쁜 마음으로 그 선물을 받았다.

가레트는 밝은 주황색 판금을 덮은 납탄 소총을 준비해 주었고, 틀라무스도 그 총을 당당히 등에 멨다.

그다음, 두투스는 산탄총을 제작했다. 밤처럼 검은 몸통 양쪽으로 화려한 환기구가 돋보이는 그 총을 들고 틀라무스는 전투에 뛰어들었다.

그에 답하듯 가레트는 두꺼운 판금에 일몰의 빛을 담고 그 위에 당당한 뿔을 세운 투구를 선사했다. 틀라무스의 적들이 쏟은 피가 금세 그 뿔을 적셨다.

두투스는 경쟁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되는 제련 작업 때문에 어깨가 아팠고, 그녀의 손은 화상에 화상이 겹쳐 물집이 잡혔다.

그래서 두투스는 가레트에게 도전했다. 그 누구도 겁쟁이의 무기를 들지 않을 걸 알았기에, 가레트도 수락했다.

다음 여명에 두투스는 전장에 나와 상대를 기다렸다. 그녀의 어깨에는 그녀가 만든 최고의 무기, 로켓 발사기가 놓여 있었다. 그 총열은 조가비의 파란색와 금색이 뒤엉킨 기둥이었다. 원래 틀라무스에게 줄 선물이었지만 지금은 제작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전장 반대쪽에서 한 형체가 나타나 두투스와 마주했다. 하지만 가레트라기엔 체격이 너무 컸다. 지나치게 키가 크고 근육도 탄탄했다. 그가 자기 대신 싸워줄 용사를 데려온 것이었다.

가슴에 대충 두른 주황색 띠가 당당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닥을 쓸어 모래를 피워올렸다. 징을 박은 주황색 가죽이 거대한 팔과 넓적다리를 감싸고 있었다. 엄니에는 산호 구슬을 꿰어 만든 줄이 길게 묶여 있었다.

그녀는 주먹을 가슴에 대고 두투스를 맞이했다. "나 틀라무스가," 그녀는 말했다. "가레트의 선택받은 자다."

두투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틀라무스는 아름답고도 흉측한 무기들 중 하나를 꺼냈고, 의식은 곧 종결되었다.

5.5. 영원한 문장

"그러나 이 영원한 문장은 산 자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으리."

최후의 도시에 따뜻한 밤이 찾아왔다. 보드라운 바람이 거리를 스치며 나무를 흔들고 매미들의 화음을 깨웠다. 이런 밤에는 아무리 끔찍한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라도 꿈을 꾸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머리를 누이고 심호흡을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발라는 예외였다. 그는 이런 밤에는 정원을 거니는 것을 좋아했다. "한밤중의 산책보다 좋은 건 없지. 안 그런가, 타르지?" 그는 어깨 위에 떠 있는 고스트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타르지가 산들바람에 실려 조용히 오르내렸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특히 지친 사령관의 경우 여덟 시간 정도 푹 자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고스트 중에는 항상 적절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타르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르지의 생각은 충분히 전해진 것 같았다. "나도 쉬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어." 자발라는 눈을 감고 숨을 들이쉬었다. 밤공기는 갓 피어난 꽃과 지나간 비 냄새로 향긋했다. "하지만 이것도 그만큼 중요하다고 얘기하고 싶군."

타르지는 처음 나무를 심으려 이 땅을 파헤치던 때의 일을 떠올렸다. 최후의 도시가 조금씩 성장하는 야영지에 불과했던 때였다. 그들은 정말로 힘겨웠던 정찰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자발라는 다른 사람들이 땅을 파는 모습을 보자마자 무기를 내려놓고 삽을 들었다.

살라딘은 휴식과 회복의 중요성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설교를 늘어 놓았지만, 그는 그저 묵묵히 땅을 팠다. "나도 이제는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싶네." 그는 말했다. 타르지는 그 순간, 자부심과 분노가 교차하던 강철 군주의 표정을 지금도 생생히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살라딘도 삽을 들었다.

"참으로 멀리까지 왔어." 현재의 자발라가 중얼거렸다. "참으로 많은 희생도 있었지."

이번에도 타르지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정말 그랬다. 그들이 나무 아래를 지나자, 가지에 매달려 있던 매미들이 울음을 멈췄다. 잠깐 동안 달그락거리며 자갈길을 밟는 소리만 들렸다. 자발라와 타르지가 몇 미터 정도 떨어지자, 매미들은 다시 요란한 곡조로 울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야." 자발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홍채에, 하늘에 떠 있는 뼈처럼 하얀 여행자가 비쳤다.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비난하는 것인지 감사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타르지도 몸을 기울여 시선을 여행자에게 향했다. 그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수호자를 부활시키는 것은 그의 의무였다. 아니, 그의 사명이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자발라도 마찬가지였다.

이전보다 더 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고스트와 수호자는 불투명한 달을 올려다봤다. 둘의 머릿속에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당신은 우릴 지켜보고 있는 겁니까? 아니면 우리가 살길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겁니까?"

5.6. 타란튤라

누구도 내 거미줄에서 벗어날 수 없죠.

"농담이겠지, 아르하. 아무것도 없다고? 돌멩이 하나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건가?"

아르하는 고개를 저었다. "거미 님은 정보를 요청했지만," 그는 엘릭스니어로 대답했다. "기갑단에는 아무 정보도 없었고, 구원의 가문은 여전히 흩어져 있습니다."

"내가 뭘 요청했는지는 알아. 너도 빈손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았을 거 아냐. 너라면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미는 가늘게 뜬 눈으로 부들부들 떠는 부하를 바라봤다.

"알고 있습니다, 거미 님. 알아낸 게 있긴 하지만, 어둠에 관한 건 아닙니다. 까마귀를 봤습니다. 골렘과 그의 대원들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선봉대가 그를 시켜 바실리우스를 염탐하고 있다고? 어쨌든 여제와 거래할 만한 게 생겼군. 어차피 여제한테 큰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내 작은 새는 쉽게 잡히지 않거든." 거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 녀석이라면 유로파에서 뭔가 쓸모 있는 걸 얻어냈을 거야. 네가 가서 그걸 알아내야지."

"네, 거미 님." 아르하는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미한 연회의 소리가 통로 반대쪽에서 들려왔다. 다른 부하들이 이번 주의 소득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까마귀가 선봉대 요원으로서 새로운 임무를 받았다는 얘기는 아브로크에게 이미 들었다. 기갑단의 멍청한 의식에 판돈을 꽤 크게 건 모양이던데." 거미는 킥킥 웃었다. "아브로크가 그 녀석에게 자유를 걸어 보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랬다면 내 수집품을 모두 얻을 수 있었겠지. 그만큼 값어치 있는 녀석이니까."

"네, 거미 님." 아르하는 반복했다. 그는 방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기 몫의 에테르를 흘긋 바라봤다.

"아, 급료를 받고 빨리 가 봐라.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으니 삭감해야 마땅하지만, 이번 주에는 왠지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거미의 목소리가 거칠게 낮아졌다. "내가 얼마나 잘 해줬는지 잊지 마라, 아르하."

아르하는 고개를 끄덕인 후 허둥지둥 에테르 탱크를 갖고 떠났다. 마침내 홀로 남은 거미는 왕좌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사실 이런 잔소리는 까마귀에게 해야 하는데." 그는 소리 내어 혼잣말을 했다. "어떻게 전해 줘야 하려나?"

6. 경이 방어구

6.1. 전투 화음의 외투

놓아 주는 것은 초라한 일입니다.

추락 현장, 네소스 지역, 2일 차

**

파네쉬는 찢겨진 금속 선체의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는 기갑단 전사의 눈을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추락한 호위함 잔해에 갇혔고, 얼기설기 쌓인 무거운 금속 기둥들만이 둘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기갑단은 기다란 복도 전체를 거닐 수 있는 상황임에도 굳이 여기로 돌아왔고, 그녀의 거친 목소리가 쪼그려 앉은 빛의 운반자 주위를 가득 채웠다.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나?" 그녀가 물었다. "궁금해서 묻는다."

파네쉬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지. 넌 아주 큰 표적이잖아. 그냥 네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총을 쏘면 그만이야."

"아니," 그녀는 으르렁거렸다. "칼을 쓰는 진짜 전투에서 말이다. 총이나 빛의 마법 같은 걸 써선 안 된다."

"바르게서스," 파네쉬는 침착하게 말했다. "넌 덩치가 내 다섯 배는 되잖아. 내가 믿을 건 총과 빛의 마법뿐이라고."

바르게서스는 넌더리가 난다는 듯 틈에서 멀어졌다. "겁쟁이들 같으니. 너희 동족은 그 마법에 너무 크게 의존한다." 그녀는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복도를 오갔다. "그렇게 무른 생물이니까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거겠지."

위쪽 멀리서 쾅, 하는 금속음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파네쉬의 선실 구석에서 똑똑 떨어지던 더러운 검은 물방울이 잠시 동안 미약한 물살이 되어 흘러내렸다. 그는 빈 헬멧을 흐르는 물 아래에 밀어 놓았다.

"빛은 우리에게 위대한 일들을 이룩할 수 있는 자유를 줬어." 파네쉬가 말했다. 그는 금속 각반을 바닥에 눕혀 놓고, 물 절반을 조심스럽게 각반 안에 따랐다. "우리 안에 그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강해질 수 있어. 그 힘을 꼭 꺼내야만 하는 건 아니야."

파네쉬는 가장 낮게 걸린 기둥 아래에 복도 쪽으로 간이 물통을 밀어 넣었다. 두 생존자가 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이아틀 여제의 함대 지휘관인 이그노분은?" 바르게서스가 투덜거렸다. "그의 투구는 사이온이 제작한 것으로, 그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그 투구가 그에게 불길을 지배할 힘을 준다."

"그가 그 힘으로 뭘 하는데?"

바르게서스의 목소리만으로도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죽인다."

파네쉬는 키들키들 웃었다. 그의 배가 주인에게 저항하듯 꼬르륵거렸다. 그는 무릎을 들고 끌어안았다. "지금은 뭐든 먹을 것만 있다면 여제와 싸울 수도 있을 것 같네." 그는 끙, 신음을 냈다.

무너져 내린 기둥 곁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파네쉬가 고개를 들어 보니, 두꺼운 손가락이 두툼한 고기 비상식량 한 덩어리를 금속의 틈 사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먹어라." 바르게서스는 말했다. "강해져야 죽일 맛도 나지."

6.2. 유성의 흉갑

가장 멀리 있는 구름에서 떨어진 번개가 가장 강력합니다.

추락 현장, 네소스 지역, 4일 차

**

파네쉬는 기갑단 호위함의 잔해 안에 자신을 가둔 금속 기둥 곁에 지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기둥의 벽 반대쪽에는 복도에 갇힌 기갑단 전사가 좌절한 듯 울부짖으며 또 다시 벽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기운 아껴, 바르게서스." 파네쉬는 시끄러운 소음을 뚫을 수 있도록 고함을 쳤다. "발길질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고. 이건…"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낯선 금속을 손톱으로 긁어 보았다. "아주 튼튼한 기갑단 물질이잖아."

묵직한 발소리가 선체 옆의 벽이 갈라진 부위로 다가왔다. "기갑단은 거의 모든 걸 발길질로 부술 수 있다." 바르게서스는 금속의 갈라진 틈에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댔다. "카이아틀이 발길질로 너희 선봉대를 산산이 부술 거다. 너희 겁쟁이들이 도망치는 걸 멈추기만 하면 말이야."

"누가 도망치고 있는데?" 파네쉬가 말했다. "우린 도시에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어. 저 커다란 하얀색 공 아래에서 말이야. 그거 들어는 봤지? 우린 도망치지 않는다고."

"하!" 바르게서스는 웃었다. "너희는 도망친다. 전에 너희 중 하나와 싸운 적이 있는데, 그놈은 도망치기만 하더군. 방어벽을 세우고 도망쳤지. 우리가 뒤쫓는 걸 멈췄더니, 쾅!" 그녀는 거대한 주먹으로 금속 벽을 때렸다. "놈은 우리에게 달려들어 번개를 퍼부었다! 그러자마자 또 도망쳤고."

"그건 도망치는 게 아니잖아." 파네쉬가 말했다. "전술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잠시 물러난 거지."

"그게 다 '도망친다'는 말을 멋들어지게 표현한 것뿐이지." 바르게서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의 걸음이 불안정해지고, 그녀는 통로에 주저앉아 파네쉬처럼 벽에 등을 기댔다.

"이봐," 파네쉬가 말했다. "너도 전술적 거리를 좀 유지하는 게 어때? 무슨… 뜨거운 외양간 냄새가 나잖아."

"너도 핏기 없는 꼬맹이 냄새가 난다. 시큼한 냄새."

머리 위에서 펑, 소리와 함께 전기 폭발이 일어났다. 파네쉬는 급히 손을 들어올려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불꽃을 막았다.

"파네쉬?" 바르게서스가 소리쳤다.

"괜찮아." 그는 대답했다. "또 누전이 생긴 모양이네."

기갑단은 대답하듯 끙, 소리를 냈다. 파네쉬는 그녀가 다시 벽에 등을 기대고 앉는 소리를 들었다.

"여물지 않은 냄새야."그녀가 덧붙였다.

"네가 지나칠 만큼 충분히 여물었으니까 괜찮아." 그도 대꾸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움직이지는 않았다.

6.3. 옴니큘러스

위험을 봅니다. 위험이 당신을 보지 못할 때도요.

추락 현장, 네소스 지역, 5일 차

**

기갑단 수색대가 빽빽하게 모여들어 있었다. 저 호위함에는 뭔가 중요한 게 있었고, 따라서 그게 기갑단의 손에 들어가는 일은 없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규모가 큰 무리를 우회하기 위해 두 번이나 몸을 감춰야 했다. 겁쟁이라서가 아니다. 화력전의 소음으로 놈들에게 순양함이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커다란 족장 중 하나의 뒤를 밟았다. 산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도 그 녀석 가까이에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호위함을 찾았다. 완전히 부서진 채 협곡에 흩어져 있어, 정찰 팀의 눈에 띄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내 눈썰미가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 도움이 됐다.

이 정도의 저궤도 추락이라면 화물도 무사할 것 같았다. 기갑단의 금이 담긴 커다란 상자 두 개를 발견했다. 조각상, 금속판, 징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값어치 있는 것들은 물질 전송으로 보내 버리고 나머지는 그냥 남겨 두었다.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그야말로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목소리가 들린 것이다. 미약하고 희미한 소리, 최후의 순간이 가까워진 자의 음성이었다.

잔해를 부수고 들어가 보니 덩치 큰 기갑단 전사가 통로에 쓰러져 있었다.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바로 옆 방에는 빛의 운반자 포로가 하나 갇혀 있었다. 상당히 큰 충격을 받고 탈수 증상을 보였지만,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빛의 운반자는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총으로 관자놀이를 후려쳐서 조용히 시킬 수 있었다. 그를 참새 뒤에 싣고 깨어나기 전에 가까운 정찰 기지에 내려놓았다. 전초기지에서는 생존자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기에, 한참을 채근해서야 겨우 몸값을 받아낼 수 있었다.

별로 생색낼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상관없다. 생색을 낸다고 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7. 전설 방어구

7.1. 머리

"과거는 과거일뿐이다.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검과 피로 우리에게 마땅한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뿐이다." —발루스 코토르

코토르는 앞서 걸어가며 발렉 꽃의 섬세한 섬유를 손으로 쓰다듬는 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딸의 뒤로 날아오른 생체 발광 꽃가루가 일몰을 배경으로 희미하게 보였다. 코토르는 두 눈을 감고 숨을 깊이 들이쉬어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매캐한 향기를 만끽했다.

"왜 여기로 데려오신 거죠?" 딸이 물었다. 딸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코토르는 기억 속의 모습을 떠올렸다. 밝은 색상의 로브를 입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그가 눈을 뜨자 압도적인 전투복을 입은 장성한 전사의 모습이 눈을 가득 채웠다.

그는 딸이 허리에 찬 판금 브로드소드를 향해 손짓했다. "네가 오늘 아침 스파링에서 아주 흉포하게 싸웠다고 서기들이 그러던데."

"제 검은 만족을 모릅니다."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며 장난스럽게 무기를 들고 아버지를 가리켰다. 그녀의 미소가 조금 흐려졌다. "직접 보셨어도 좋았을 텐데요."

코토르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최대한 감췄다. "조만간 그럴 수 있을 거다, 타남."

타남은 검을 칼집에 넣었다. 코토르는 발밑으로 마른 풀과 꽃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딸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 여기엔 왜 온 건가요? 전투 전날 밤에 고향을 돌이켜 보고 싶으셨나요?" 타남이 물었다.

아버지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거라면 이런 것까지 필요했겠나?"

타남은 얼굴을 찌푸렸다. "매일 그리우니까요."

"우리 모두 그렇지."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 난 네가 네 눈으로 직접 그곳을 볼 마지막 기회를 주고 싶었다."

타남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마지막 기회라고요?"

"그만." 코토르가 외쳤다. 낮게 우르르릉거리는 소리가 뼈를 울리고 세계가 달라졌다. 멀리 있던 산맥이 흔들리며 하늘을 향해 뻗어 올랐다. 꽃들이 폭발하여 꿈틀거리는 거품의 구름이 되었다. 빛과 물질이 끈적한 액체처럼 하늘의 빛나는 균열로 빠져 나가고, 하늘이 흐릿해졌다. 그림자 같은 그 균열이 모든 것을 삼켰다.

그들은 별들 사이를 질주하는 바르바토스 렉스 위에서 깨어났다. 그들의 손은 낡고 녹슨 검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사이온 하나가 곁에 서 있었다. 세 사람을 연결하던 유령 같은 사이오닉 에너지의 촉수가 사라졌다.

코토르는 사이온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비켜라."

"이해할 수가 없군요." 두 사람만 남게 되자마자 타남이 말했다.

코토르는 검을 들어 올렸다. "네 세대 전, 이 무기가 제국에서 우리 가문의 지위를 결정해 주었다. 그 역사를 되새기는 것이 이런 정신의 산책에 어울리는 자리일 거야." 그는 칼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며, 무게 배분을 시험했다. "하지만 역사라는 건 승자의 사치품이지."

코토르는 양손으로 무기를 붙잡고 반으로 쪼갰다. 건틀릿의 약한 물질이 바스러져 떨어졌다.

타남은 몸을 조금 움츠렸다. "아버지…"

"이것이 온 세계는 사라졌다." 코토르가 말을 이었다. "이제 우리 뒤쪽에 고향은 없다. 멀리 앞쪽에, 드높은 산과 광대한 바다를 건너야만 찾을 수 있다."

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기갑단입니다. 산을 씹어 삼키고, 바다를 들이키죠."

코토르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하지만 제멋대로인 몽상으로 굶주림을 채우면 그럴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린 다시는 이 생각 속을 걷지 않을 거다."

타남은 긴장했다. "알겠습니다."

"태양계는 우리 동족의 무덤이다. 하지만 그 전사들은 우리 도시가 영혼불꽃에 불타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얘야, 고향의 기억은 위안이 아니라 피의 광기를 북돋우는 상처가 되어야 한다."

타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뱃속이 옭죄어오는 느낌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두렵습니까, 아버지? 태양계의 전사들이?"

코토르는 당당히 웃으며 딸의 손을 잡았다. "그렇지 않다, 얘야. 나는 타남과 함께 싸우고, 그녀의 검은 만족을 모르니까."

7.2.

"우주선이 필요하다고? 함대의 네 친구들도 잃어버린 군단병을 회수할 수 있다면 참 좋아할 텐데 말이야. 물론, 네가 그걸 원치 않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거미

//기갑단의 여제 카이아틀이 태양계의 모든 군단병에게 전하는 메시지//

제국의 전사들이여. 제국의 군주가 너희를 부른다.

가울은 우리 기대를 저버렸고, 붉은 군단은 피의 대가를 치렀다. 너희는 흩어지고 버려졌다. 적들에게 사냥당하며 고향을 그리워 했겠지만… 이제 토로바틀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제국의 연합 함대가 태양계의 공역에 진입했다. 우리의 동료와 가족에게 돌아와라. 다시 우리 부대에 합류해라. 내가 조각난 제국을 복원할 수 있게 도와다오. 명예와 힘으로, 우리는 제국의 힘겨운 역사의 다음 장을 써 내려갈 것이며—

//

백인대장은 스위치를 젖혀 통신 장치를 침묵시켰다. 그녀는 고철로 만든 동굴의 간이 문 너머를 바라보며, 연보랏빛 바다에서 잠자는 거인처럼 소행성이 해안 위로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스크립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백인대장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는 문을 철컥 닫고 납탄 소총을 준비하며 점점 커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한참이 지나 침묵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무너지듯 벽에 기대어 앉아 지친 손으로 무기를 떨어뜨렸다. 총은 가문의 이름으로 제작되어 그녀 오라비의 피로 적셔진 무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희미해져 가는 유품이 되어, 빈 헬멧 곁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었다.

메시지가 머릿속에서 거듭 반복 재생되어, 그녀는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왕관. 건틀릿. 성배. 모두 금속을 열로 고문하고 다른 누군가의 야심에 따라 다른 형태로 만들어 빚어낸 것일 뿐이었다. 제국은 그녀를 무엇으로 빚어냈을까? 낡은 케이블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압력복 내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쇠퇴한 그녀의 근육에 견주어 보면, 압력복은 이제 우스꽝스러울 만큼 컸다.

그녀는 건틀릿을 휘둘러 통신 장치를 후려쳤다. 스레셔 엔진이 멀리서 포효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군단병들이 부름에 응하는 소리였다. 그녀는 쪼그려 앉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7.3. 가슴

"승리가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 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상처 위에 또 상처를 입으며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네 손에 들어올 것이다." —카이아틀 여제

"제국의 전사여." 카이아틀 여제가 부상당한 붉은 군단 백인대장의 침상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그 병사는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현창 밖을 바라보다가 카이아틀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그 바람에 고통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병사의 상체와 오른팔 전체를 감싼 합성 섬유가 검게 물들어 있었고, 특히 팔은 말라붙어 부서질 듯 여려 보였다. 카이아틀은 그가 더는 전투를 경험할 수 없으리라는 걸 잘 알았다.

"여제시여!" 전사는 그렇게 대답하며 붕대를 감지 않은 팔을 들어 주먹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카이아틀도 그에 응답하듯 경례를 했다.

여제는 환자의 데이터를 표시하는 모니터를 흘긋 보았다. "발아스트, 발투이 출신." 그녀는 현창 밖을 바라봤다.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이 그녀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제국이 너희를 위해 돌아왔다, 붉은 군단병이여. 그런데 넌 여전히 심란해하는 것 같구나. 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냐?"

발아스트는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여제님."

"그럴 필요 없다, 형제여." 카이아틀이 말했다.

발아스트는 한숨을 쉬었다. "수년 동안, 매일 생존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루만 더 싸울 수 있기만을 갈망하면서. 하지만 이제…" 그는 말끝을 흐리며 침대보를 붙잡았다. 싸구려 천이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그가 덮어 본 것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물질이었다.

"전쟁이 이토록 오랫동안 지속되면, 평화 자체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카이아틀이 말했다.

발아스트는 천을 놓았다. "전 제가 다시 태어난 아크리우스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족을 위해 다른 태양을 차지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현창을 내다봤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카이아틀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작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그 이야기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느냐?"

발아스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주 옛날에 하던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요즘 이야기만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는 어린 시절 운 좋게 들을 수 있었지." 여제는 말을 이었다. "아크리우스보다 먼저, 세 명의 전사가 산을 올라가 태양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끔찍한 야수가 그들을 막아섰지."

"첫 번째 전사는 재치로 야수를 따돌리고 그림자 속에 숨어들었다. 하지만 야수는 그 전사의 냄새를 맡고는 한입에 삼켜 버렸다."

"두 번째 전사는 야수를 피해 달아나려고 바람을 타는 장치를 만들어 하늘로 솟아올랐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바람이 마음을 바꿔 그녀를 야수의 아가리에 던져 넣었다."

"세 번째 전사는 세베루스를 손에 들고 야수에게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녀 또한 야수의 날카로운 이빨에 쓰러졌지만, 그녀의 검은 피를 맛본 후였지."

발아스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전부 실패한 겁니까?"

카이아틀은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처음 두 명은 분명히 그랬다. 전투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세 번째 전사는 당당하고 명예롭게 죽었다."

발아스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록 패배했지만, 적에게 자기 흔적을 남겼군요."

카이아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 동족이 그 야수를 상대할 때면, 그 야수는 죽음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가 있었겠지."

"다른 이들이 더 찾아왔습니까?" 발아스트가 물었다.

"당연하지!" 카이아틀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기갑단이고, 태양은 그들 차지다. 다시, 또다시 강한 자들이 쓰러져 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야수에게는 상처가 하나씩 더 남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전사가 결정타를 적중시켰다. 그 전사가 바로 아크리우스다."

발아스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 어린 시절부터 아크리우스를 영웅으로 우러러보며 자랐습니다…"

"그는 영웅이었을 것이다." 카이아틀은 발아스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하지만 처음 야수를 공격했던 전사 또한 그러하다."

발아스트가 두 눈을 빛내며 여제의 손을 꽉 잡았다. "감사합니다, 여제여."

카이아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제여, 제국이 네게 감사한다."

7.4. 다리

"가울은 자기 허영심을 위해 네게 죽으라 했다. 난 그저 네가 내 곁에서 제국을 위해 싸워 줄 것을 부탁하려는 것이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네 몫이다." —카이아틀 여제

(날카롭게 폭발하는 전기가 나무를 산산이 조각내, 네소스의 붉은 식물을 전장 전체에 흩뿌렸다.)

사이온 바톡은 한때 겁쟁이였다. 한 번도 겁쟁이가 아닌 적이 없었다. 그는 벡스의 탑 뒤쪽에서 웅크리고 빈 소총을 움켜쥐며, 황급히 달아나기만 했던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리프의 폐기물 소함대에 대한 종사 대형 와이어 소총 사격과 영혼불꽃 포화를 등지고 달아났었다.

그는 시간 자동 장치의 끝없는 진격을 마주하고 달아났었고, 그때 수성의 사막에서 전투복 속 푹 익은 고깃덩이가 될 뻔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그는 태양계의 죽지 않는 수호자, 그 빛으로 잠식된 육신들 앞에서 달아났었다. 그는 거듭 자신의 목숨을 건졌지만, 군단은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맡기고 난전의 현장에 내던졌다. 다들 그가 약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군단병까지도 수없이 쓰러져 가는 와중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거친 포효가 협곡을 휩쓸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스레셔가 데굴데굴 굴러 소멸했다.)

바톡은 살아남는 것에 죄책감은 없었다. 사이온에게는 생존이 전부였다. 명예를 얻을 일도 없었고, 계급이 올라갈 일도, 부를 축적할 일도 없었다. 군단이 남겨 주는 것은 오직 목숨뿐이라, 바톡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버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가울이 원자 단위로 행성계 전역에 흩어지기 전까지였다. 워록의 시간 장치를 이용한 도박이 실패하기 전까지였다. 군단의 찬란한 승리였던 전능자가 돌멩이처럼 떨어져 내리고 무심한 신의 손에 맞아 내동댕이쳐지기 전까지만 그러했다.

이제 카이아틀 여제가 나타났다. 그리고 바톡은 그가 손에 넣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을 약속받았다. 자유였다. 제국의 온전한 힘이 순양함과 모함의 행렬로 나타나 두 세계 사이의 공간을 파괴적인 힘으로 채웠다. 그의 생애 처음으로, 바톡은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그에게 살아 있어야 할 목표가 생겼다.

(거상이 집결의 구호를 외쳤다. 납탄 소총의 불협화음이 그에 대답했다.)

그의 주위로 전투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고, 동포들이 속속 쓰러지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으로 피신할 길이 보였다. 산 사이의 어둠에 잠긴 크레바스로 달려가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바톡은 소총을 재장전하고 여제에 대한 맹세를 노래했다.)

그는 한때 겁쟁이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7.5. 직업

"연회를 즐겨라, 나의 동지들이여. 토로바틀은 잃었지만, 그 정신은 우리의 전통에 남아 있다." —카이아틀 여제

// 해독단 분석 기록 R11320 — 훔쳐낸 기갑단 데이터 //

// 저자 — 마스터 라훌 //

요약

아래는 건초더미 작전 수행 과정에서 입수된 기갑단의 데이터 파일을 자발라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번역한 내용이다. 이 기록은 우리가 해독할 수 있었던 유일한 파일에 집중하고 있다. 해당 데이터의 전체 내용물과 추가로 해독 중인 내용은 기록 R11312에서 참조할 것.

표면적으로, 이 파일은 카이아틀을 위해 소집되는 공식 모임에서 제공될 요리의 조리법으로 보인다. 여기에 언급된 재료는 다양한 고대 기갑단 문서에서 나타난 적이 있으며, 제국 경제의 역사적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저렴하고 썩 고급스럽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제조법은 오래전 하급 계층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가난한 노동 계층이 판매되지 않은 재료를 기발하지만 까다로운 방식으로 활용하여 맛있고 몸에도 좋은 음식을 만들려 한 사례라고 생각된다.

카이아틀이 이런 요리를 공식 집회의 주요리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통해 그녀가 피지배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그녀는 칼루스 시대의 풍요나 가울의 통치하의 실용주의적 면모와는 차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제국의 평민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일 수 있다.

아쉽지만 모든 문구의 해독에 성공한 것은 아니고 일부 데이터는 손상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해독가의 의견을 주석으로 추가해 두었다. 일부 번역은 다소 모호한 경우도 있지만, 본래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다.

// 파일 시작 //— [CBX 해석기 오류]

— [CBX 해석기 오류]

— 용매 혼합물이 함께 섞일 때까지 [CBX 해석기 오류].

— 아틀로틀 힘줄이 잘 휘어지고 표면에 실금이 생길 때까지 두드린 후 [36–84시간: 여기 명시된 참조 주기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현재 수치는 보수적인 예상치이다] 동안 용매 혼합물에 담가 둔다.

— [검은 입방체]를 만들려면, 감귤 혼합물을 짓이겨 체로 거른다. 과즙은 버리고 과육과 씁쓸한 중과피만 남긴다. [주방용 바이스? 번역이 확실하지 않다]의 온도를 최고로 높여 단단히 압축한다. 덩어리가 까맣게 그을려 손을 대면 [CBX 해석기 오류]할 때까지 그대로 둔다. 햇빛이 잘 드는 장소에 놓아둔다.

— 힘줄이 부드럽고 잘 늘어나게 되면, 용매에서 꺼내 바닷물에 씻는다. 그다음 리본 모양으로 잘라 옆에 둔다.

— 아틀로틀 엉덩잇살을 갈고리로 [회전 장치]에 걸고 향이 날 때까지 돌 표면에 때린다.

— 모든 알갱이를 얇게 써는 것에 주의하면서 엉덩잇살을 사면체로 자르고 옆에 둔다.

— 커다란 가마솥에 물과 쇼락 기름, 적당량의 뿌리 혼합물(계절과 연도에 따라 조절 가능)을 넣는다. 가마솥의 내용물이 끓기 시작하면 엉덩잇살과 힘줄을 넣는다. [CBX 해석기 오류]가 가라앉고 액체 표면 전체가 황토색이 될 때까지 조리한다.

— [CBX 해석기 오류]시간 더 끓여 죽이 국자 뒷면에서 [CBX 해석기 오류]할 때까지 졸인다.

— 두껍게 썬 [검은 입방체]와 함께 내놓는다.

// 파일 끝 //

8. 도전자 의체

어떤 도전이라도 마주할 준비가 된 고스트에게 적합합니다.

쪼개진 방패와 조각난 목재가 전장에 흩어져 있었다. 고스트는 수호자의 몸이 지면에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그가 절명했음을 알았다. 그들은 1 대 1 결투를 예상했지만, 매복해 있던 적들이 뛰쳐나왔다. 거짓 의식으로 수호자들을 도살장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스코르피우스 포탑이 목표물을 조준했다. 방패병들이 벽처럼 수호자와 고스트를 둘러싸고, 미리 설치해 둔 폭탄들이 작동했다. 육중한 납탄 투척기가 기갑단의 손에서 가동되었다. 총성이 주위를 가득 채우고, 수호자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유혈 사태는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쓰러진 기갑단 방어병 몇몇에 둘러싸인 채, 고스트는 수호자의 빛이 스러지는 것을 느꼈다.

고스트는 남은 기갑단이 자기를 찾는 소리를 들었다. 그녀까지 없애 버리고 또 다른 수호자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일 것이다. 그녀는 수호자의 사체 아래에서 잠시 비틀거리다가, 죽은 기갑단들 사이를 구불구불 지나갔다. 그리고 기름으로 얼룩진 흙을 지나쳐 머리 위 포탑의 스캔 범위 밖으로 빠져나갔다. 고스트는 전장 외곽으로 잠시 몸을 피한 후, 다시 포탑의 사각 지점으로 돌아왔다.

빛줄기가 포탑 프레임을 뒤덮고, 고스트가 포탑의 조준 컴퓨터를 해킹했다. 그리고 제어 모듈을 우회하여 제어권을 자신에게 할당했다. 고스트는 기갑단이 적이라는 정보를 포탑에 인식시켰다. 스코르피우스의 이중 총열에서 총탄이 쏟아져 나왔다. 기갑단이 헉, 하고 놀라는 소리를 그녀는 귀를 닫고 무시했다. 묵직한 투사체에 맞아 쓰러지는 그들의 당황한 표정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오래전 스스로 책임을 물어야 했던 그때와 같은 회한을 느끼지 않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끝났다. 고스트는 EDZ의 죽음 같은 고요함 속에 홀로 남았다.

그녀는 대학살의 현장 위를 날아 자기 수호자를 찾았다. 궁금했다. 여행자가 지구가 아닌 토로바틀을 택했다면, 그녀의 소속도 바뀌었을까? 그녀는 시부 아라스의 병력에 맞서 전선을 사수하는 기갑단 군단병의 전우가 되었을까? 인류에도 폭군은 있었다. 황금기 이전, 암흑기 이후, 그리고 도시가 수립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전쟁군주와 도둑이 존재했다. 그녀가 지금 옳은 편에 서 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요즘은 심장 박동이 멈춰 있는 동안 이런 생각이 너무 자주 떠올랐다.

수호자를 찾아낸 후 처음 몇 달 동안의 절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도시를 찾아가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수호자의 신뢰를 얻기까지 정말 많이 싸워야 했다. 어쩌면 아무런 차이가 없는 건지도 몰랐다. 언젠가, 그녀의 수호자는 자기가 상황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기갑단도 그런지도 몰랐다.

그녀는 이제 도시의 자랑스러운 방패가 된 수호자와 그 주위의 기갑단을 바라봤다. 오늘 그들은 적이었지만, 내일은… 그녀는 여행자가 황폐해진 세계에 도래하여 그곳을 회복시키는 과정에 대해 생각했다. 기적 같은 부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깨어나는 것이 아니라, 잠재력이 모두 발현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고스트가 수호자에게 해주는 일도 그와 같은 거라면, 상대가 누구라 해도 적절히 인도해 주기만 한다면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상대가 기갑단 야수라 해도.

그녀는 수호자를 다시 깨웠다. 그의 잠재력을 계속 키워 주고 싶었다.

그는 전장을 둘러보며 그녀의 솜씨를 감상했다. "너 같은 녀석이 나타날 줄은 몰랐던 것 같지?"

9. 길가메시의 의체

지하세계에 잠입한 고스트에게 적합합니다.

"이건 하고 싶지 않아." 카타베이시스가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네소스의 높다란 벡스 기둥 밖으로 다리를 내리고 앉아 있었다. 멀리서 칼루스의 유람선 엔진이 가동하는 윙윙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씩 일을 하는 건 그렇다고 해도…"

카타베이시스는 새롭게 받은 제국 동전에 박힌 작은 왕실 보석을 더듬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초대 같았다. 게다가 회의의 자원이 한도를 넘어선 부담을 느끼고 있는 지금, 도시의 관할 지역 밖에서 수행하는 활동의 수익성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헌터 선봉대가 그의 활동 보고서를 요청하는 일도 없을 테니, 몰래 불법적인 개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너무나도 쉬웠다.

카타베이시스의 고스트 길가메시는 수호자를 흘긋 본 후 몸을 돌려 리바이어던의 그림자 아래로 들어섰다. "황제의 믿음을 저버리면 안 되죠."

카타와 길리가 아주 오랜 노력 끝에 얻어낸 것이었다. 금성의 밀림에서 사냥감을 추적하고, 토성의 폭풍 속에서 기이한 양자 해파리를 밀렵하고, 칼루스와 그의 지지자를 방목장에 몰아 넣어 카이아틀의 심판을 받게 하려는 붉은 군단의 배신자들을 제거하면서 얻어낸 신뢰. 카타베이시스의 사냥은 언제나 거대한 행성의 거친 변경 지역을 배경으로 했다. 그는 통 안에 갇힌 물고기 같은 일은 원치 않았고, 자기가 그런 일거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텅 빈 우주 공간에서 기갑단 순양함에 앉아 있으려니, 왠지 봉인된 통 속에 갇혀 사방을 가득 채운 바다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달아날 곳 없이 갇힌 심정이었다.

"그보다는 그의 불평에 귀를 기울이는 게 나뿐일 것 같은데." 카타베이시스는 제국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아이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어. 아마 무모해지기도 했겠지. 칼루스는 지금 눈에 띄는 명망 있는 붉은 군단을 전부 제거해 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그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게 나쁜 건가요?"

"전에는 붉은 군단과 칼루스 부하들의 차이점이 그냥 정치적인 견해뿐이었지. 나도 독립된 정치적 문제라면 그냥 눈 감아 주겠지만, 이건 어둠과 관련된 문제라고, 꼬마 친구. 어딘가 이상해. 우리가 건드릴 일이 아닌 것 같아."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대원을 모집하거나, 그게 싫으면 그냥 비참한 신세로 도시에 돌아가 빈 구석에 앉아 명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되죠." 길리는 비웃듯 말했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걸 생각해 봐요. 유로파에서 시공을 쫓아 신을 도살하려 하는 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한 가지는 제대로 맞혔어요. 힘이 미래를 결정하죠. 우리도 거기에서 그 힘을 차지했어야 했어요."

"어둠으로 향하는 여정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생각은 없었는데." 카타베이시스는 쿡쿡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요즘 너무 지쳤단 말이야."

"빛이 희미해지고 있어요, 카타베이시스. 우리가 아직 손대지 못한 것과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길리는 빙글 돌아 수호자를 바라봤다. "물러날 곳이 필요해요, 친구. 우린 꽤 오래 살았잖아요. 늘 발밑을 조심하라고, 햇빛이 비치는 곳에 있으라는 얘기를 들었죠? 하지만 우리가 그림자 속에서 우리의 길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헌터는 고스트를 바라봤다. "우린 더 강해지고, 더 부자가 됐어." 길리는 이런 냄새를 잘 맡았다. 카타베이시스가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길리는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새로운 힘을 주고, 전기 지팡이를 휘두르는 법을 알려 주고, 그림자 속에서 춤 추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깨달음에는 대가가 따랐다. 그들의 흉터, 그들의 교훈… 하지만 불멸이 남기는 흉터는 무엇일까?

10. 상당히 진지함

"아주 깔끔한 우주선인데, 수호자. 여기저기 좀 긁어 주는 게 어때?" —아만다 홀리데이

기갑단 전투기 편대가 머리 위 높은 곳의 대기권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자, 아만다 홀리데이의 시간이 느려졌다. 근육 기억이 치고 들어와, 그녀는 우주선을 굉음과 함께 아래로 내리꽂았다. 그리고 나무 위를 스치듯 지나면서 발사 기지의 거친 메사 위에서 우주선을 회전시켰다. 기갑단이 그녀를 추적하려면, 먼저 따라올 수 있는 실력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바위 첨탑 주위로 좁은 원을 그리며 회전했다. 추적해 오는 편대를 언제든 태워 버리려고 무기는 이미 준비해 둔 상태였다. 하지만 전투기들은 그대로 멀리 사라져 버렸다. 아마 군체 둥지에 포탄을 퍼부어 방어를 약화시키려 하는 것이겠지. 거기에 있는 그녀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홀리데이는 추진력을 줄이고 고도를 높였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아드레날린을 진정시키려고 호흡을 늦췄다. 솔직히 실망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이편이 낫겠지. 그녀는 생각했다. 기갑단을 제거하는 건 여분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에게 맡기자.

아만다는 그렇게 자신을 타일렀지만, 실망감은 그대로 남았다. 탑의 우주선 제작자가 된 이후로, 그녀의 전투 출격 빈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제야 그녀는 그게 얼마나 그리웠는지 깨달았다. 출격을 해야 자기 몫을 다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참 많은 것을 이루었고, 참 많은 위기에서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탑 사람들은 그녀를 기술자와 조종사로 보았다. 하지만 그녀 꿈속의 아만다는 여전히 영양실조에 걸린 작은 소녀였다. 도약선들이 머리 위에서 비명을 질러대는 최후의 도시를 향해 터덜터덜 걷고 있는 어린아이였다.

가장 친한 친구들이 불멸의 존재니까 그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 수호자나 군체 신들과 비교하면 내 목숨 따위야 그냥 레이더에 깜빡이는 점 하나에 불과하니까. 젠장, 아마 이 우주선이 나보다 더 오래 버틸 것 같은데.

대시보드에 작은 신호가 반짝여 그녀의 음울한 생각을 깨웠다. 허. 회피 기동 중에 플라스마 변환기에 과부하가 발생한 게 분명했다. 또 고쳐야 할 게 생겼다. 언제나 그거면 충분했다.

아만다는 싱긋 웃으며 탑으로 가는 항로를 지정하며 생각했다. 목숨이 하나뿐이라면, 빨리 움직여야겠지.

11. 짧은 인생

천천히 달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함정이면 어떡하죠?" 글린트는 떨리는 몸짓으로 녹슨 두 창고 사이의 풀로 덮인 통로로 들어서는 까마귀 주위를 한 바퀴 회전했다. "여기는 옛 악마들의 영토예요. 우리 친구가 우릴 깔끔하게 풀어 주긴 했지만, 거미가 당신을 데려가고 싶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을 거야." 까마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은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바삐 오갔다. "게다가 내가 가고 있다는 걸 모르는데 어떻게 함정일 수가—"

레이저 사격이 그의 코를 스쳤다. 지붕 중 하나의 위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엘릭스니어를 외쳤다. 까마귀는 그 말에 따라 두 손을 들었고, 글린트는 사라졌다.

"난 잘 익은 야비르시 무화과를 찾고 있는데." 까마귀는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격용 조준점이 자신의 몸을 뒤덮는 것을 보며 외쳤다. 상대는 그의 얘기를 들었을까? "무화과라고!"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하나씩 하나씩 조준점이 사라졌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금속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간이 문이 밀려 옆으로 열리고 벌레를 닮은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브로크." 까마귀가 손을 내렸다. "승진했네."

인사치레를 할 기분은 아닌지, 엘릭스니는 끙 소리를 내며 창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까마귀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새로 온 여제는 좀 어때?" 그는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너무 어두워서 상자 위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거대한 형체들에 둘러싸여 있는 아브로크의 윤곽선만 어렴풋이 보였다. "자발라 사령관 무릎을 꿇려야 한다는 아우성이 클 것 같은데."

"염탐꾼 같으니." 아브로크가 으르렁거렸다. "정보에는 대가가 필요하지."

"걱정하지 마. 내 둥지에서 반짝이는 걸 가져왔으니까." 까마귀는 미광체를 들어올렸다. 파란 빛이 벽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물품을 비췄다. "아무래도 옛 붉은 군단의 친구들도 그랬던 것 같네."

아브로크가 싱긋 웃으며 쇼맨 같은 몸짓으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에너지 방패, 열려 있는 행성 폭죽 상자, 용암 발사기… 기갑단의 온갖 용품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쪽 구석에서 유난히 예쁜 상품이 반짝이고 있었다. 광택 나는 동색의 날씬한 참새였다. 까마귀는 참새에 다가가 그 멋진 모습을 감상했다.

"아름다운 녀석이지." 상대도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발 마라그는 자기가 여제의 전쟁 의회에 가장 먼저 합류할 거라는 데 내기를 걸었어."

작은 빛을 반짝이며 글린트가 다시 나타나 참새를 살폈다. "자기 자신에게 걸다니," 글린트가 말했다. "정말 기갑단 답네요."

까마귀는 쪼그리고 앉아 참새의 코를 감싼 띠 모양의 장식을 살폈다. "동기를 부여해 주는 거라면 뭐든 좋으니까." 그가 중얼거렸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 아브로크를 바라봤다. "나도 그렇게 해 봐야겠네. 발 마라그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내 판돈을 가져가도 좋아. 하지만 우리가 그 증명의 의식을 막아낸다면, 뭐, 당연히…"

몰락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과감한 베팅인데! 거미가 널 놔준 건 실수였던 것 같군. 수수료는 7%다."

"7%!" 글린트가 화가 난 듯 깜빡였다. "거미가 너무 많이 떼 가는 거 아닌가요?"

그 말을 무시하며 아브로크는 빈 곳을 가리켰다. "네 차량은 저기에 둬. 자,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해 보자고."

"참새를 걸고 도박을 한다니 믿을 수가 없네요." 아브로크가 대화를 들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지자 글린트가 불쑥 뱉었다. "걷는 거 싫어하잖아요."

까마귀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기는 게 더 좋거든."

12. 정복의 종

칼날을 부르는 일곱 번째 일격의 소리를 들으세요.

이런 형태의 기갑단 전쟁 종은 정복의 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피의 각인"을 뜻하는 스칼생거스로 알려진 전통적 전투 예술의 가장 상징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예술 작품들은 기갑단이 인접한 행성계 너머로 마수를 뻗기 전인 지휘의 시대에 유행했으며, 전투의 위업과 개인적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농민 계층 용병의 경우 단순히 처치한 적의 치아를 조각하여 상대의 가죽에 매달아 장식하기도 했으며, 형편이 넉넉한 자들은 쓰러뜨린 상대의 상체에 통째로 옻칠을 하여 보존하고 흉상으로 전시하기도 했다.

정복의 종은 이보다는 덜 끔찍하면서도 소유자의 승리의 역사를 아주 잘 보여주는 연대기이다. 전사들이 처음 상대의 피를 보면 장식되지 않은 종이 수여되었다. 전투로 전사에게 도전하려 하는 이들은 그 종을 일곱 번 울려야 했다.

전사들은 승리를 거둘 때마다 장인에게 요청하여 종에 장식을 하고 영광을 기념했다. 이런 장식을 받은 전사는 과거의 승리에 기반하여 명예로운 전투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야수의 시험을 완료한 전사는 훈련된 전쟁 야수를 결투에 데려갈 수 있었다. 고행의 밤에서 살아남은 자는 상대의 복부를 두 번 벨 수 있었다. 차가운 강철 입을 견뎌낸 자는 검에 부식성 백색 재를 바를 수 있었다.

전쟁 종의 소유자를 쓰러뜨리면, 종은 승자의 차지가 되었다. 이때 종의 추에 이전 소유자의 사인을 얕은 각인으로 새기곤 했다. 새로운 도전자가 다시 종을 울려 이 각인이 닳아 없어지면,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되었다. 그 시점부터는 이전 소유자에게 부여되던 혜택을 새로운 소유자가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정성스럽게 장식된 전쟁 종은 노리는 자도 많았고, 지키는 자들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전쟁 종은 은하계 식민지화 시대까지 이어졌고, 장식은 점점 더 세련되게 변해 갔다. 귀한 보석을 사용한 복잡한 모자이크가 부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결투 시의 충당금을 확보해 주는 동시에 수많은 자들에게 도전의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쟁의 규모가 한없이 커지면서 전쟁 종을 운반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래서 가끔은 회수된 전쟁 종을 한꺼번에 녹여 아름다운 전쟁 징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에 따라 상대에게 도전하기 위해 우주를 가로질러 징을 울리는 의식도 생겨났다.

붉은 전쟁 이후의 기갑단에서는 전통을 고수하는 병사가 그리 많지 않았고, 그에 따라 정복의 종 또한 거추장스러운 성물로만 취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에게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투의 전통을 존중하는 이들은 여전히 우주선에 특별한 자리를 마련하여 그 종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