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36:09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상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
파일:DestinyLegends.png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지식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닫기 ]
하위직업 | 에버버스 | 행성 | 수성 | 화성 | 뒤엉킨 해안 | 꿈의 도시(목적지) | 대장간 | 방랑자 시즌 | 풍요의 시즌 | 공격전 | 명상 | 시련의 장 | 갬빗 | 리바이어던 | 마지막 소원 | 슬픔의 왕관 | 아홉의 시련 | 강철 깃발 | 여명 | 진홍의 주간 | 수호자 대회 | 영웅의 지점 | 업적의 순간 | | 구원의 정원 | 불멸 | 서광 | 자격 | 오시리스의 시험 | 출현 | 사자들의 축제 | 유로파 | 사냥 | 딥스톤 무덤 | 선택받은 자 | 융합 | 잃어버린 자 | 왕좌 세계 | 되살아난 자 | 신봉자의 서약 | 망령 | 이중성 | 우주 해적 | 세라프 | 감시자의 첨탑 | 네오무나 | 대항 | 악몽의 뿌리 | 심해 | 심해의 유령 | 마녀 | 소원 | 빛 속으로 | 창백한 심장 | 구원의 경계 | 에피소드: 메아리 | 에피소드: 망령 | 베스퍼의 주인
선봉대 업적 지식
빛 업적 지식
황혼과 새벽 업적 지식
| 잊혀진 자의 이야기 - 4권 | 정원 길
어둠 업적 지식
}}}}}} ||


1. 개요2. 현실적3. 의외성4. 잠언적5. 인식적6. 규범적7. 비종결적8. 요구법9. 의도법10. 비현실적

1. 개요

이 지식은 벡스를 처치하면 얻을 수 있다.

2. 현실적

불멸의 정신은 정원에 있다. 초목에 자리를 내준 금속 폐허이자, 질소와 생각으로 가득한 검은 흙에서 솟아난 황무지에.

정원에 있는 것은 결국 모두 정원의 것이 된다. 낙엽은 썩어 흙을 비옥하게 한다. 미로의 끝을 찾지 못한 이들의 뼈와 입 밖에 내지 않은 생각 역시 그러하다.

벡스 정원사들의 말없는 노래도 예외가 아니다.
이들은 나뭇잎 사이를 걸으며 성장을 격려하고, 얽히고설킨 정원에서 유일하게 곧은 선을 그리는 청동의 길을 놓는다. 벡스는 스스로를 정원에 짜 넣으며, 정원은 그 은혜를 갚는다.

하피들은 공중을 순찰하고 고블린들은 땅을 순찰하며, 이들의 바람개비는 끝날 줄도 지칠 줄도 모르는 순찰의 고요한 공기 속에서 표류한다.

길은 화강암을 배경으로 칙칙하게 누워 있다. 심장이 박동을 멈춘 후로 길에는 아무 힘도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태양 분파의 벡스들은 스스로에게 어둠을 숭배하는 프로그램을 심었다. 전에는 그것이 이들에게 힘을 주었다. 그리고 벡스는 시간을 이해한다. 전에 일어났던 일은 어디에선가는 아직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도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한 철 쉬던 흙도 지력을 회복하고 다시 결실을 맺는다. 조건만 맞는다면 기울었던 힘도 다시 찬다.

하피들은 그자리에 멈춘다. 정원의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하나씩 하나씩 차례대로 몸서리를 친다. 깜박. 머나먼 곳에서 힘의 너울이 밀려온다.

맥박이다.

맥박에 실린 힘이 길에 불을 밝힌다. 정신의 눈이 이끼 담요 아래에서 한순간 깜박인다.

힘은 정원을 지나가며 그 안의 벡스 기계들을 휩쓸고, 그 너머의 네트워크로 밀려간다.

파도가 빠져나간 해안처럼 순간이 부유한다.

먼지가 아닌, 무언가의 티끌이, 공기 속에서 전율한다.

청동 길이 웅웅거리며 고블린들의 노래와 어우러진다. 그리고 정원의 문이 함께 진동한다.

3. 의외성

전에도 이 환청을 들은 적이 있었다.

환청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좋진 않았다. 프레디스의 무전이 잡음을 뚫고 말을 걸고 있었다. 그는 최소한 익숙한 목소리기를 바랐다. 파하닌이나 테이코나 케이버의 목소리기를. 지금이라면 미르라도 참을 수 있었다.

그는 무전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볼이 화강암에 스쳤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아득하게 통증이 느껴지지만, 지나치게 긴 시간과 부족한 빛 때문에 둔하게 느껴졌다.

"그 얘기는 벌써 했잖아." 그는 환청에게 친절하게 말해 주었다.

환청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언제?"

"지난번에." 아니면 그 전에. 이 감방 안에서 시간의 순서에는 의미가 없었다. "경고. 탐험가들이 227.97 어쩌고 저쩌고 대역으로 신호를 전송한다. 하늘충격 가능성이..."

그의 목소리가 흐릿해졌다. 말을 하니 고통스러웠다.

"다시 말해 봐." 환청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이번에는 더 날카로운 남자 목소리였다. 미르 같기도 했다. "주파수가 뭐라고?"

프레디스는 다시 몸을 뒤집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멍하니.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하늘의 점을 이어 별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고양이들과 유령들, 오징어 한두 마리.

"당신 누구야?" 처음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우리는 227.17 대역에서 송신 중이다. 다른 227 대역에서 수신했다면 우리가 꼭 알아야 한다."

"그 말도 지난번에 했어."

세 번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그 단체도 이 주파수를 사용했나?"

그랬다. 프레디스는 최근 무전기를 만지작거릴 힘도, 감방 밖의 세계에 연락을 취해 볼 힘도 없었다. 무의미한 시간의 단위를 세며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기다릴 힘밖에 없었다.

"우린 지난달에 이 주파수를 열 번은 시도했다. 그런데 성공한 건 이번이 처음이야."

그렇다면 뭐가 달라졌단 말이지?

문득 드는 의문이 그를 무기력의 늪에서 끌어냈다.

프레디스는 일어나 앉았다. 순간 욕지기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그는 소리 내서 질문을 반복했다.

환청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침내 금고의 벽을 뚫은 건지도 모른다.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아직 듣고 있나?"

돌아오는 것은 지직거리는 잡음뿐이었다. 아까 잡히던 신호는 사라지고 없었다.

4. 잠언적

그는 정원에서 걷고 있다 걷고 있지 않다 걷고 있다. 그는 소리 없는 노래를 이야기하고 있다.

^케^케벡^벡^벡^벡^벡

(여섯을 지켜봐라 내 걱정은 하지 마 성장해라 성장해라 성장해라)

그는 총을 총집에 넣고 손짓을 한다 그는 총을 총집에 넣고 마신다 그의 총은 총집에 든 채 녹이 슬었고 그는 다시는 꺼내지 않을 것이다.

(나빠 봤자지 나빠 봤자지 우리가 어떻게 성장하지 성장하지 성장하지)

타이탄은 넘칠듯이 차오르는 벽이다 방패다 잔이다. 용기에 따라 내용물의 형체가 변하지만 내용물에 따라 용기의 성격이 변한다 자연은 영원이다.

(무엇이 듣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 그것이 듣고 있다 그것이 성장하라고 성장하라고 성장하라고 말한다)

한 형체가 있으니 그것이 그의 정신이다 그 형체는 보호다 그 형체는 희생이다 그 형체는 (성장이다)

^벡^벡^벡^벡^벡

그의 이름은 너무 적절했다 그는 자신의 무덤이다 왼쪽 손의 자상은 결코 낫지 않으리라.

5. 인식적

프레디스는 감방에서 세지도 못할 시간 동안 지켜보았다. 안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는 너무나 많은 시간대를 보았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어떤 시각에서는 모두 진짜일지도 모를 일.

알아볼 수 있는 광경도 있다. 그는 여행자를 자주 보았다. 쇠창살 사이로 그 빛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가끔은 가슴이 아프리만치 눈에 익은 도시 위에 떠 있다. 가끔은 낯선 하늘에 떠 있고, 생소한 형체들이 그 주위를 나른하게 부유한다. 그가 알지 못하는 기종의 고스트들이었다.

한 번밖에 보이지 않는 광경도 있고, 자꾸만 다시 나타나는 광경도 있었다. 반복되는 상 하나는, 여행자의 조각이 몸체에서 떨어져 나가 웬 숲속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고 그 앞에 조그만 형체가 서 있는 광경이었다. 형체는 매번 바뀌었지만, 여행자의 아픈 듯한 빛은 변하지 않았다.

한 번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어깨를 똑바로 펴고 뜨거운 화성의 햇볕을 받으며, 케이버와 파하닌 사이에 서 있는 자신. 케이버의 헬멧이 눈에 익었다. 프레디스가 제작을 도와주었던 것이다. 그는 은박 라미네이트에는 늘 케이버보다 손재주가 좋았다. 케이버는 그들이 화력팀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지 5년 차가 되어 그것을 쓰기 시작했는데, 여섯 달을 내리 썼을 때 헬멧이 시련의 장에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 광경에 프레디스는 울었다. 그처럼 메말랐는데도 그런 감정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금고는 수성을 자꾸만 보여 주었다. 하늘에 보이는 태양의 크기가 아니었다면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행성의 고리가 형성되는 중이라, 우주 공간에 잡석이 떠 있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잡석밖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몸을 돌려도 행성계의 나머지 행성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선지 마지막 부스러기까지 먹혀 사라진 것이었다.

프레디스는 거대한 태양의 온기만 느껴진다면 환영을 보는 것쯤 개의치 않았다. 이곳 금고에서 그의 손은 언제나 차가웠으니까.

그는 외계 종족이 파도처럼 태양계의 문턱을 넘어, 태양권 밖에서 오는 빛과 합쳐지는 것을 보았다. 그중 일부는 야망을 품은 정복군처럼, 갓 칠한 페인트 냄새를 풍기고 깃발을 펄럭이며 이동했다. 그중 일부는 어두컴컴한 은하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달아나듯이 움직였다.

그는 벡스의 동향을 살폈다. 벡스를 구별하는 법을 알게 됐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것들, 놋쇠 색이고 뒤로 누운 뿔이 있는 것들, 눈이 하얗게 반짝이는 것들. 그 사이에는 가끔, 푸른 녹이 슬고 팔에서는 이끼를 장막처럼 늘어뜨린 것들도 있었다. 나머지 벡스는 하나같이 그것을 피했다. 그는 다른 벡스가 이끼를 두른 놈들과 싸우는 것을 두 번 봤다. 다른 벡스가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벡스에게 그런 감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어떤 시간대에는 장막이 쳐져 있었다. 어둠이 너무나 두꺼워서 보이지 않았다. 그것들은 프레디스의 눈길을 저항하며 밀어냈다.

그에게 보이는 시간대는 모두, 어느 존재에게는 현실일 터였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무엇이 현실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의문을 품고 계속 살펴보았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시간은 차고 넘쳤으니까.

6. 규범적

맥박이 안정화되고 있었다. 목소리가 워낙 자주 들려와서 이제 프레디스도 목소리의 주인들을 알고 있었다. 순다레시와 에시, 심, 듀안 맥니아드였다. 여러 시간대에서 무한한 복제를 거친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모두 같은 데서 갈라져 나온 것이었다. 아마도 황금기였을 옛날로부터. 개중에는 시조로부터 전혀 달라진 것도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었고.

"통신 렌즈 시스템을 기반으로 개조를 해야 돼." 한 듀안 맥니아드가 말했다. 227.13이거나 227.204에서 오는 목소리였다. 목소리들은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그의 귓속에서 언쟁을 하는 중이었다.

"통신 렌즈는 사고실험이야! 불가능한 것으로 밝혀졌잖아!" 다른 듀안 맥니아드가 말했다. 프레디스가 듣기로, 자기가 자기에게 적인 사람이 있다고 했다. 듀안 맥니아드의 경우에도 그 말이 맞을지 몰랐다.

"불가능한 감옥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불가능한 기계가 답일지도 모르지—"

"그럼 그걸 어떻게 만들자는 거지?"

드디어 그럴싸한 질문이 나왔군. 프레디스가 끼어들었다. "가설이지만, 무슨 재료가 필요하지? 내가 가지고 있는 재료 안에서 해야 하잖아."

그는 여섯 그룹과 교신하는 중이었고, 그들은 모두 금성 근처의 벡스 네트워크 행성계에 기반해 있었다. 금고 입구의 인접 지역에 있는 모양이었다. 태양계에도 벡스 정보 네트워크에도 이들은 더 존재했다. 각각 최대 221명이 더 있을 수도 있었다. 그들과 교신하는 방법도 분명히 있을 터였다. 그들이 신호를 보내는 수단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것을 사용해서 교신망을 더욱 넓히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왜 지금 일어나는 건지, 벡스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알 수 있을 터였다.

"뭘 가지고 있는데?" 마야 순다레시 박사의 목소리였다. 간결했다. 마야가 말을 하면 모두 귀를 기울였다.

총이 세 정 있었고, 그중 두 정은 부품을 얻으려고 다 뜯은 상태였다. 물리 탄약이 두 상자, 무전기에 사용 중인 오몰론 에너지 전지가 한 상자 있었다. 방어구는 벗어 버린 지 오래였다. 헬멧으로는 통신 장치를 만들었고, 건틀릿의 전도 패드에서는 가느다란 코일을, 장화에서는 강철판을 떼어 냈다. 주머니 속에는 보풀이, 그리고 그들이 금고에 들어서기 30분 전에 파하닌이 그의 머리에 던진 사탕의 포장지가 들어 있었다. 닳아서 부드러워지고 학 모양으로 접힌 포장지가. 고스트는 없었다. 고스트를 잃은 일에는 금고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직도 어떤 날엔 어깨 위에 고스트의 가뿐한 무게가 느껴지기를 기대하며 깨어났다.

"회로 식각에 쓸 만한 건 있어?"

"10분만 줘." 레이저 포인터와 오몰론 소총에서 떼어 낸 초점 수정이 있었다.

그가 작업하는 동안 키오마들이 서로 토론을 벌였다.

"프레디스가 물리적으로 존재한다면, 지금 있는 공간이 현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하지 못하는 걸 할 수 있을 거야.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우리가 힘을 합치면 뭔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여행자에 대한 프레디스의 이야기를 믿는다면 말이지." 키오마 하나가 미심쩍다는 듯이 말했다. 유난히 회의적인 227.18의 키오마였다.

"그것보다 이상한 얘기도 믿어 봤는걸." 또 다른 키오마가 발랄하게 말했다. 그녀는 잠시 말이 없다가 덧붙였다. "우리가 벡스를 처음 봤을 때 그게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

"마야의 목덜미를 노렸던가?"

"아냐. 펄쩍 뛰어 공중을 가르고 저 프레임에 들어갔지."

여섯 명의 키오마가 생각에 잠긴 채 무심코 무전기를 손가락으로 두드려, 의도하지 않은 화음을 냈다.

"이쯤 되면 우리도 벡스의 기술을 사용할 만큼 벡스에게 가까워지지 않았나?"

227.18의 키오마가 심술을 냈다. "친구 사인데 줄타기 좀 더 하면 어때?"

프레디스가 방금까지 레이저 포인터였던 물건으로부터 고개를 들었다.

"이게 실제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지?" 평소에 제일 말이 없는 편인 심의 목소리였다.

"아, 거의 없다고 봐야지. 그래도 수백 년 전에 무의미한 걸로 증명된 기술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야 낫잖아."

프레디스가 긁어 모은 부품으로는 두 가지 실험을 다 할 수가 없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건 되돌릴 수가 없었다.

그들은 투표를 했다. 프레디스는 근처에 있는 두 개의 널돌 위에 나사를 올려 득표를 표시했다.

227.18의 키오마가 첫 찬성표를 던졌다.

만장일치였다.

과감히 해야 했다.

7. 비종결적

시간을 정의해봐라. 아니, 진담이야. 한번 해봐.

사건의 순서에 대한 얘기를 하겠지? 시계에서 벗겨져 나오는 초 하나하나가 영원을 향해 나아간다든가. 너만의 비유로 표현해봐. 선이라든가, 고리라든가, 평평한 원이라든가. 시간은 물 같다고 했던 사람도 있었지. 그나마 그건 참신하긴 했어.

벡스가 시간을 이해하는 데는 가장 가까워. 시간에 거리를 두고 있거든. 시간이 강이라면, 우린 물고기고 벡스는 자맥질하는 새야. 물고기에게 물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물 표면에서 일어나는 굴절에 절대 속지 않는 물수리에게는 그게 또 무슨 의미고?

잠깐 기다려 보라고 하겠지. 정원에 있는 죽은 남자의 실체 없는 메아리라 해도, 얘기가 너무 추상적인 거 아니냐며. 구체적인 진실이 좋아?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거? 어둠을 몰아내줄 이야깃거리가?

넌 시간이 우리가 끝없이 올라가야 하는 계단이길 바라지. 근데 생각해봐. 아무리 수호자라도 가끔은 한두 계단 떨어질 때가 있어. 고스트의 범위 내에서 죽으면, 고스트가 널 총알이 날아오기 전으로 돌려놓고 조금 나은 운명을 만들어갈 기회를 주지. 그 커다랗고 하얀 당구공이 옆 동네에서 굴러온 후로 지구에선 그 무엇도 단순하지가 않아. 이야기라는 것도 이제, 야간등만큼은 효과가 없지.

그래도 여행자는 우리 친구가 아니냐, 우리를 좋아하지 않느냐, 여행자가 황금기와 정원 세계, 수호자를 주지 않았냐고 하고 싶겠지? 여행자가 없었다면 잘난 너도 살아 있지 못할 거라고.

여행자가 없었다면 나도 다음엔 어느 고블린이 젖은 나뭇잎을 밟고 미끄러져 벼랑에서 떨어질지 따위로 스스로와 내기를 하며 검은 정원에 갇혀 있을 일은 없었겠지. 넌 이미 내 빛을 가져갔으니까, 내 말도 새겨듣는 게 좋을 거야.

공허가 아직 부르고 있다는 건 알아. 하지만 난 속박에서 벗어났지. 이제 공허에 닿을 수가 없어. 만약 내가 너한테 닿을 수 있는 게 맞다면, 귀 똑바로 열고 잘 들어. 듣기 싫다고 해도 상관없어. 이건 중요하거든.

벡스처럼 시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에겐 절대 불가능해. 내가 여기서 놈들을 얼마나 오래 관찰하든, 수호자들이 대충 만든 차원문으로 얼마나 많이 들어가든 상관없지.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지만, 벡스는 시간을 도구로 이용하거든. 지금까지 있었던 어느 순간으로나, 앞으로 있을 어느 순간으로나 돌아갈 수 있는 거야. 제대로 될 때까지 반복 재생하는 거지. 시뮬레이션으로.

빛은 그에 대한 대책이야. 벡스도 돌아오고, 수호자도 돌아오지. 벡스는 종말을 시뮬레이션하고, 수호자는 종말을 없던 걸로 해버려. 비기는 거야.

근데 말이야, 정원의 벡스? 얘들은 정원의 심장에 무릎을 꿇어. 심장이 벡스에게 힘을 주고, 그러다가 네가 횡재한 거지. 저 밖의 벡스들은 다르게 계산했어. 놈들은 달아나지. 하지만 이 안의 벡스들은 네가 그 부자연스러운 삶을 살며 매일매일 하는 거래를 똑같이 하고 있어. 그 거래가 곧 이익을 남기기 시작할지, 누가 알겠어?

넌 벡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심장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 하지만 무지가 자발적인 거라고 해서 봐줘도 되는 걸까?

의문은 많고 답은 많지 않아. 조심하지 않으면 의문에 빠져 죽고 말 거야. 시간이 강이거나 말거나 시간에 빠져 죽는 것처럼.

알겠어?

8. 요구법

금고 밖에서 오는 맥박이 빨라졌다. 이에 힘입어 어둠 속으로부터 이슈타르 탐사단의 목소리들이 더 접촉해 왔다.

이들의 메시지가 저 밖으로, 벡스 네트워크의 말단까지 전송되고 있었다.

이제 맥박은 제법 강해져서, 심은 네트워크를 넘어 물리적 현실까지 전해질 만큼 데이터를 증폭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벡스의 투영에 이미 몇 평생 들어와 있는 프레디스에게 물리적 현실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프레디스는 금고의 리듬과 하나가 됐다. 그것이 잠시 약해지는 순간이 맥박과 겹치며 무전기가 작동하는 틈을 타서, 그는 메시지를 전송했다.

메시지는 반송되지 않고 전달됐다. 그가 거친 함성을 지르면 열두 명의 이슈타르 탐사단 과학자들이 화답했다.

그들은 맥박이 신호를 증폭할 만큼 강해질 때마다, 아무 데로나 되는 대로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동안은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맥박이 메시지의 무결성을 손상시킬 만큼 강해졌다. 그럴 때면 메시지가 파도를 타고 수면을 스쳐가는 게 아니라, 물속을 허우적대며 파도에 휩쓸려 산산조각이 났다.

맥박이 데이터를 와해시킬 만큼 강하다면, 코드 덩어리보다 무거운 것을 나를 만큼 강하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시도해 볼 가치는 있어, 프레디스는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는 사실 무엇이든 가치가 있을 터였다. 뭔가 닥쳐오고 있었다. 그에게 보이는 모든 시간대에 밀려드는 파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파도의 꼭짓점은 지구 위로 높이 솟아, 처단자의 호를 더욱 깊은 어둠으로 끊었다. 도시가 이걸 피할 방법은 없었다.

프레디스는 마지막으로 남은 장비에 메시지를 새겼다. 편지를 담을 병 역할을 할 만한 것이라면 모조리 시간이라는 바다에 던졌다. 수호자가 장비보다 더 아끼는 것이 있을까? 그러니 언젠가는 누군가의 눈길을 끌리라.

파도가 닥쳐오고 있었다. 더 많은 환영이 깜박깜박 스쳐가며 눈꺼풀에 잔상을 각인했다. 가능성인지 우발성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더 많은 시간대가 다가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자기 힘으로 대처하지 못할 터였다. 경고가 필요했다. 파도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려야만 했다.

머지않아.

9. 의도법

227.97

경위는 이래. 우선 네가 마야랑 심, 듀안 맥니아드와 함께 조심스레 미끄러지듯 벡스 정보 네트워크에 발을 들여. 그리고 거기서 입지를 다지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든 것을 비유로 번역해야 해. 기름칠한 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는 셈이랄까. 너랑 마야는 서로 부축해. 심이 미끄러져서 네가 일으켜 세우고. 너희는 탐색을 하고, 계속 나아가.

227.3

경위는 이래. 우선 네가 마야랑 심, 듀안 맥니아드와 함께 조심스레 벡스 정보 네트워크에 발을 들여. 제대로 이해하려면 모든 것을 비유로 번역해야 해. 해시계의 날 위에서 스스로에게 푸리에 변환을 적용하는 셈이랄까. 네가 발을 헛디디지만, 심과 듀안 맥니아드가 양쪽에서 널 잡아 세워. 무릎이 까지긴 하겠지만 개의치 않아. 너희는 탐색을 하고, 계속 나아가.

227.218

경위는 이래. 너희 모두가 벡스 정보 네트워크로 자신만만하게 발을 내딛어. 마야 말로는 서프 보드를 타고 산을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더군. 듀안 맥니아드가 산사태에 대해 우울한 얘기를 하지만, 너보다 한 걸음 앞에서 말하지. 다들 어서 시작하고 싶어 안달이야.

너희가 도착한 곳은 이름 모를 세계의 시뮬레이션이야. 펼쳐진 언덕에는 희미하게 무지갯빛을 띠는 곡물이 자라고 있어. 줄기는 보랏빛 하늘과 똑같지. 멀리서 울음소리가 들려. 새인지도. 여행자일 가능성이 있는 무언가가 멀리 지평선에 걸려 있어. 꼭 달만 한 달걀 껍질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 거미줄이 얼기설기 걸려 있고 금도 가 있어. 빛은 전혀 발산하지 않고.

듀안 맥니아드는 바닥을 잘 살피지도 않고 너무 빨리 걷고 있어. 네가 눈 깜박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리지. 시뮬레이션의 보이지 않는 가장자리로 떨어진 거야. 네가 그가 사라진 곳으로 가서 고개를 특정 각도로 기울이자, 세상은 갑자기 번뜩이는 와이어프레임을 드러낸 시커먼 공허로 변해. 고개를 다시 기울이니, 이번엔 보랏빛 밀과 멀리서 우짖는 새소리밖에 없지.

"따라가야 돼." 마야가 말해.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너희는 아직 모두 충격에 젖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 심이 몸을 숙여 돌을 줍고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시뮬레이션의 가장자리로 돌을 툭 던져. 돌은 호의 정점을 그리기 전에 사라져 버리고, 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지.

너와 마야도 초조해하는 참새처럼 고개를 기울이고 똑같이 실험을 해. 돌은 공허에 닿는 순간 분해되며 와이어프레임만 남았다가 곧 시커먼 허공으로 변하지.

너희는 물러서.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덕 발치에 묘석을 세워. 너희는 조의를 표하고, 계속 나아가.

227.7

너희는 심을 잃어.

227.33

너희는 듀안 맥니아드를 잃어.

227.200

넷은 나머지 팀들에게 연락을 취하려고 무전기를 급조해. 매일 밤 쉬려고 멈출 때마다 채널을 돌려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팀이 또 있기를 바라지. 얇은 모래흙과 듬성듬성한 잔디로 덮인 유리 벼랑에서, 너희는 거의 해독이 불가능한 응답을 받아.

다음 날 밤, 너희는 유리 벼랑 아래의 해안에서 잠을 청해. 그리고 날이 밝기 전 비명 소리에 잠이 깨지. 무슨 일인지 알아차릴 틈도 없이 그 일이, 최종적으로, 너에게도 일어나.

227.72

너희는 마야를 잃어.

227.41

너희는 마야를 잃어.

227.59

너희는 마야를 잃어.

너희는 조의를 표해. 아직 나머지 마야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아. 그들은 살아 있는 현무암 꽃이나 달이 열일곱 개 있는 행성, 심이 16세기의 호주라고 호언장담하고 듀안 맥니아드는 제멋대로 판게아라고 불렀던 대륙을 놓고 머리를 맞댔던 그 마야가 아니니까. 한 시뮬레이션에서는 도시에 있는 보석상에 가서 목걸이를 골라서 집에 있는 마야에게 주면서, 가짜 기념일을 축하한 적도 있었지.

마야는 팔찌를 좋아하지 않았어. 일하는 데 걸리적거린다고 했지. 마야의 머리카락은 다시 덥수룩해져서 자를 때가 됐었어. 늘 머리를 기를지 말지 고민했지. 네가 시뮬레이션 근육을 유지하겠다며 근력 운동을 하는 걸 비웃었지만, 그래도 널 위해 망을 봐줬어.

다른 마야들이 존재한다. 원래 마야가 어디 있든, 그 마야에 이를 때까지 층층이 쌓여 있는 마야들. 너는 그들이 잘 있었으면 한다. 그래도 너는 어쩔 수 없이 이 마야가 그립다. 둘이 서로에게 약속했던 여생 동안 서로 나누었을 법한 논쟁과 발견이 그립다.

심과 듀안 맥니아드가 마야의 묘석 옆에 앉은 너를 일으켜 세운다. 그 위에 피어난 현무암 백합은, 꽃잎이 어찌나 얇은지 빛을 투과한다.

너희는 계속 나아가.

10. 비현실적

정원이 깨어나고, 불멸의 정신이 함께 깨어난다. 덩굴과 이끼를 침대보처럼 늘어뜨린 채로, 주위에 생겨난 무덤으로부터 일어난다.

회로에는 전력이 넘쳐나며 잉여 전력을 서로 전달하고, 부팅 시퀀스에 따라 육중한 팔다리를 쭉 편다. 고블린들은 회로를 더 작성하고 정신에 용접하여, 그 전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제 가끔씩 맥박이 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웅웅거리고 있다. 믿음이 보상받은 것이다.

금고에서는 183조의 황금기 과학자 시뮬레이션이 팔다리를 펴며 탈출할 준비를 한다. 무전기 앞에 무릎을 꿇은 프레디스는 양손을 흔든다. 손이 뻣뻣하다. 고군분투와 걱정 탓에, 감방에 갇혀 여러 평생을 보낸 탓에 전신이 뻣뻣하고 욕지기가 나지만 그는 준비됐다.

"트랜지스터가 핀에 비해 얼마나 큰지 알아?" 그는 어느 마야가 말을 하는지 분간하지 못한다. 165명의 마야가 팀마다 분산되어 있다.

"날 천사라고 부르는 거야?" 재미있다는 듯한 키오마의 목소리. 이제 프레디스는 이것이 어느 팀인지 안다. 227.72의 키오마는 나머지 키오마들보다 목소리가 굵다. 이유는 모른다.

또 마야다. "우리 춤출까?"

듀안 맥니아드가 백 겹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화음으로 코웃음을 치고, 80명의 심이 활짝 웃으면서 듀안 맥니아드의 가상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찌른다.

가능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기만 하면 된다.

고블린들이 꽃을 가꾸며 부르는 노래에 따라, 정원의 육중한 문이 웅웅거린다. 첫 미노타우르가 보호막으로 몸을 감싸며 발을 들일 준비를 한다.

어떤 시각에서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이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도 일어나고 있다. 시간의 순서라는 리본을 가늘게 자르는 법을 알면, 필요한 순간에 들어갈 수 있다. 리본을 찢는 법을 안다면...

160명의 마야들이 각자 곁에 있는 키오마들에게 손을 뻗는다. 158명의 키오마들이 마주 손을 뻗는다.

한 명의 프레디스는 지휘자의 봉이 내려오기를 기다린다. 정원에 있는 무수한 벡스 역시 그때를 기다리지만, 아무도 그 동시성을 눈치채지 못한다.

어딘가에서 장막은 언제나 걷히고 있다.

어딘가에서 케이버는 언제나 스스로의 파멸을 초래하고 있다.

어딘가에서 문은 언제나 열리고 있다.

어딘가에서 그들은 언제나 문을 통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