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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8:43:50

데스티니 가디언즈/지식/강압과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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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애셔: 관찰3. 슬론: 감독관4. 아나: 예민5. 반스: 카나리아6. 애셔: 예측7. 슬론: 방파제8. 아나: 물리학9. 반스: 점쟁이10. 애셔: 결론11. 슬론: 광전사12. 아나: 블랙박스13. 반스: 명금

1. 개요

출현의 시즌 경이 퀘스트 "탈출: 준비"와 "탈출: 대피:를 진행하면서 얻을 수 있다.

2. 애셔: 관찰

뼛속까지 과학자인 애셔 미르가 가장 먼저 보인 반응은 그 망할 것을 향해 무기를 발사하는 것이었다.

피라미드가 이오의 대기권으로 침투했다. 충분한 속도로 투사체를 발사하면 타격할 수도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애셔는 눈을 두 번 깜빡하는 사이에 공격 각도와 투사체의 질량을 파악해냈다.

애셔는 커피가 식기도 전에 장착식 레일건을 완성했다.

그는 자력 코일을 충전하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 후, 우주선 측면을 공격했다. 그는 투사체가 물리 보호막과 충돌하거나, 잘하면 피라미드에 적중하여 극미한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적중 순간, 투사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애셔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지만 억누를 수 없는 미소가 얼굴 가득 번졌다. 그의 금속 팔이 스스로 딸깍 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윙윙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실험실 앞에 멋대로 주차를 하고 이런 조악한 속임수를 쓰다니, 정말 뻔뻔한 피라미드였다.

분명히, 애셔 미르를 만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는 미사일을 하나 더 조립했다. 이번에는 추적 가능한 방사능 식별자와 무선 신호도 탑재했다. 그리고 피라미드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앞선 투사체와 비슷하게 미사일은 적중 순간 사라졌고, 신호 역시 소멸되어 이오의 표면 위에서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 하나의 탄두가 그 뒤를 따라갔다. 이번에는 초소형 중계기였다. 그는 중계기를 콘솔에 연결한 후 발사했다. 피라미드와 접촉하는 순간, 중계기에서 방출되는 방사능과 무선 신호가 급작스럽게 치솟았다.

애셔는 능글맞게 웃었다. 지금까지 쏘아 보낸 것들은 모두 피라미드의 장막에 붙잡힌 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시각적으로는 감지할 수 없고 신호도 억제되어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거기 있었다.

피라미드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영점 에너지에 관한 환상이 그의 머릿속에 물밀듯 밀려들었다. 그를 머뭇거리게 한 건 본질적인 의문이었다. 저 우주선은 제 혐오스러운 형체 주위에 투사체를 멈춰 두고 뭘 하려는 걸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

3. 슬론: 감독관

부사령관 슬론의 눈에 과적 상태의 선봉대 소형선이 파도 가까이 내려앉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해!" 그녀가 통신 장치에 대고 소리치자 함선은 정상 궤도에 올랐다. "그 아래에 있는 건 액화 메탄이고, 거기에 죽지 않으면 리바이어던에게 죽을 거다."

"이거 왜 이래요. 리바이어던 같은 건 없어요." 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조종사 목소리가 들렸다. 17살도 안 되어 보이는 도시에서 온 꼬마였다. "그리고 저게 메탄이라면 왜 헬멧도 안 쓰고 있는 겁니까?"

슬론은 히죽 웃었다. 이렇게 무례한 말대꾸는 낯선 경험이었다. "난 보습을 열심히 하고 있거든, 이 애송아." 슬론은 그렇게 말하고 통신을 끊었다.

몰락자 범선이 굉음을 내며 머리 위를 지나갔고, 슬론은 한달음에 시추 설비 외부의 통로로 나왔다. 그녀는 갑판에서 일하는 부하들에게 화물이 없는 곳으로 피하라고 외친 후 정찰 소총을 꺼내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처음으로 나타난 드렉 몇 명은 땅에 내려서기도 전에 죽었다. 하지만 몰아치는 해풍에 다음 사격은 크게 빗나갔다. 그녀는 상륙 부대가 부하들이 아니라 화물 왕복선을 노릴 거라고 생각했고, 그대로 몸을 돌려 왕복선 쪽으로 시야를 확보했지만, 적들은 보급품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투덜거리며 난간을 뛰어넘었고, 내리치는 번개처럼 착지했다.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렌의 감시, 보급선 비엔나 스팅어에서 착륙 장소를 찾고 있다."

"남쪽 5번 착륙장!" 그녀는 우렁찬 소총 발사음 사이로 외쳤다. "가져온 걸 전부 내려놔. 곧바로 보급 팀을 그쪽으로 보내겠다."

그녀는 드렉 두 명에게 추가로 총알을 박아 넣었고, 범선의 굉음은 웅웅거리는 소음으로 바뀌었다. 멀어지는 범선에서 건성으로 발사한 와이어 소총 사격이 착륙장에 꽂혔다.

슬론이 큰 소리로 팀을 호출했다. 사상자는 없었고, 새로 받은 보급품 상자 두 개를 제외하면 빼앗긴 것도 없었다. 그녀는 착륙장 옆에 있는 팀에 명령을 내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도시로 실어 보낼 황금기 기술을 적재하는 도중에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들은 보급품을 쫓고 있었다. 여길 떠나는 길인 게 분명했다.

그녀는 하늘에 도사린 피라미드를 올려다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집무실로 통하는 문이 닫히고 쉬잇 소리와 함께 잠겼다. 패널의 희미한 파란색 불빛이 문이 완전히 밀폐되었음을 알렸다. 슬론은 방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시추 설비의 한쪽 벽에 뚫린 커다란 구멍 너머로 바다를 바라봤다.

4. 아나: 예민

그녀는 모든 것을 시도했다. 위대한 브레이. 그들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한 혈통. 그녀가 아무리 천재적이고 용감해도, 이건 그녀의 능력을 벗어난 일이었다.

아나의 지휘본부에서, 십여 개의 텅 빈 화면만 여기저기 남긴 채 라스푸틴은 죽어가고 있었다. 아나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코드의 피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자발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먼 곳의 총성처럼 그녀의 머릿속 외진 곳으로 밀려나 의미 없이 희미할 뿐이었다. 피라미드의 왜곡 파장이 여전히 생생했다. 이건 공격이 아니었다. 명령이었다. 그들이 최선을 다해 준비한 계획을 느긋하게 묵살해 버린 것이다.

폭발은 없었다. 귀가 찢어질 듯한 사이렌도, 극적인 전기 불꽃도 없었다. 싸울 것도, 고칠 것도 없었다. 침묵에 잠긴 검은 유리 안에 갇혀 어쩔 줄 모르는 수호자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확신했었는데.

아나의 눈이 콘솔에서 콘솔로 빠르게 이동하는 진주를 추적했다. 그녀의 고스트는 각 콘솔에 여러 빛줄기를 연결하고 있었다. 빛줄기가 부하를 더하고 있는 것인지, 진주의 움직임이 조금씩 느려졌다.

"아나." 부담스러운 무게에 짓눌린 진주의 목소리는 잔뜩 왜곡되어 있었다. "찾은 것 같아요. 거의 다요.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요."

그 목소리가 먼 곳의 총성을 꿰뚫고 귀에 꽂혔다. "뭐?" 아나의 처음 대답은 희미했다. 그 정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뭐라고!?"

진주가 끙 소리를 내고는 화가 난 듯 속삭였다. "항쇄와… 엔그램이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아나, 어서 해야 해요!"

"미쳐 버리고 말 거야! 난… 못해."

진주에게 연결된 빛줄기가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돼요!"

그 말에 아나는 방을 가로질러 달렸다. 그녀가 공중에 명령을 그리자 바닥의 금고가 열렸다. 아나는 금고에서 12면체 상자를 꺼내 진주 앞에 내밀었다.

"진주, 어서 해!"

고스트의 의체가 변형되어 유도 구조물을 형성했고, 곧 핵에서 빛과 데이터가 쏟아져 나왔다. 순수한 정보의 줄기가 엔그램 안으로 쏟아져 들어가, 엔그램을 소용돌이치는 빛으로 가득 채웠다.

"된 건가…?"

"최선을 다했어요."

창문 밖으로, 저궤도 방어 위치에서 추락하는 전쟁위성들의 대기 마찰이 하늘에 기다란 불꽃을 남겼다. 멀리서 희미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5. 반스: 카나리아

타이탄이 그의 성소에 들어서자 반스 형제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착각할 수 없는 냄새였다. 고대의 화약, 불타 버린 기름, 그을린 벡스 체액, 수백 번의 생을 거치며 끝없이 사용한 강철의 알싸한 내음까지.

"완벽한 역설을 갖고 있군." 반스가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손을 뻗었다. "좀 봐도 될까?"

타이탄은 어깨를 으쓱한 후 가방에 손을 넣어 그 산탄총을 꺼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반스의 손에 총을 올려놓았다.

그는 총열을 손가락으로 더듬은 후 개머리판의 무게를 느껴 보았다. "아, 진짜 완벽한 역설은 아니군. 그렇지?"

타이탄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반스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잠시 기다린 후 말을 이었다.

"이 무기는 세인트-14의 무덤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프랙탈린으로 작동시킨 테서렉트에서 가져온 거겠지?"

타이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눈먼 상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 해시계가 만들었습니다."

반스의 손이 총을 꽉 잡았다. 산탄 일곱 발, 아니, 여덟 발이 들어 있어 묵직했다. 전술 탄창. 이걸 손에 넣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을 것이다.

"이 무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대를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시간대에 묶었지? 이 공허한 괴물을 만들기 위해 이 세계가 추가 현실을 얼마나 많이 짊어져야 했나?"

반스의 정신은 산탄총을 끌어당기는 무한한 거미줄 위를 헤엄쳤다. "이걸 위해 프랙탈린을 얼마나 많이 희생해야 했어? 400개?" 그는 경악한 표정으로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이상인가?"

"트렌치 배럴도 붙어 있죠." 타이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 성소에서 나가." 반스는 산탄총이 죽은 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려놓았다. "그대는 모든 것의 최후를 앞당겼다. 나 또한 그에 따라 예언을 조정해야 하겠다."

6. 애셔: 예측

애셔 미르는 끊임없이 투덜거리며 이오를 가로질렀다.

바위투성이 노두를 건너며 그는 발아래 땅이 무르다고, 배낭이 너무 크다고, 어슬렁거리는 굴복자가 성가시다고, 실리콘 신경종 총에 눌린 어깨가 아프다고 투덜거렸다.

그는 더러운 에너지를 요람에 쏟아붓고 있는 피라미드를 올려다보며 냉소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아무리 박식한 그라도 이런 광경에 어울릴 말을 엮어 내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은 이오에서 밤으로 통칭되는 시간의 말미였고, 애셔는 많이 피곤했지만 쉬지 않고 걸었다. 껍질에서 검은 수정 오벨리스크 무더기가 형성되고 있는 달팽이를 살펴보려고 단 한 번, 아주 잠깐 멈춰 섰을 뿐이다.

그는 요람 아래의 동굴 같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토양으로 이루어진 벽에서 낯선 뿌리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는 꿈틀거리는 비명자의 패턴을 침착하게 관찰한 후, 신중하게 계산된 도탄으로 굴복자 한 무리를 엉뚱한 길로 쫓아 보냈다.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그곳을 통과했다.

에리스는 거대한 나무의 뒤틀린 뿌리 근처 엉성한 야영지에 있었다. 그녀는 아주 먼 위쪽으로부터 내리쬐어 나무 사이를 통과한 후 바닥에 묘한 형성층의 꽃잎을 그리고 있는 빛줄기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애셔는 수액과 가열한 조리용 기름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일단 반갑다고 말하긴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보급품을 갖고 찾아온 이유가 뭐냐고 묻는 걸 보면, 아무래도 예상치 못한 방문이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애셔가 짐을 풀고 가져온 것을 꺼내는 사이, 에리스는 나무와 메시지, 속삭임에 대해 설명했다. 알 수 없는 존재의 얼굴을 엿보는 험난한 과정이 얼마나 짜릿하고 즐거운지 이야기했다. 그 미지의 존재가 자기를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셔도 그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셔는 불가에서 쉬었다. 근처에 있는 작은 탁자에는 군체 키틴질 표본과 나무에서 잘라낸 조각, 잿빛 흙과 함께 공책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공책을 들여다본 애셔는 그 안의 내용이 개인적인 기록이라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덮어 버렸다.

그는 다시 가방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아주 좋은 황금색 술이 들어 있는 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예전에 한 덩치 큰 무식쟁이가 그가 부탁한 이소프로필 알코올 대신 가져온 물건이었다. 그는 눈금 실린더가 담겨 있던 커다란 배송 상자 안에 깨끗한 잔 두 개를 담아서 가져왔다. 하지만 잔은 그냥 하나만 꺼내서 병 옆에 슬며시 놓았다.

애셔는 콜록 기침을 하고 신발 끈을 다시 맨 후 일어서서 배낭을 짊어졌다.

"알아서 잘 처리하고 있겠지?" 그가 에리스에게 물었다.

"물론." 그녀는 휘도는 빛줄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불편한 듯 몸을 움직이다가 희미하게 헛기침을 했다. "뭘 잘 처리하고 있는지 알아야겠는데." 그가 다시 한번 말했다.

에리스는 고개를 돌려 건너편에 서 있는 사람을 가만히 바라봤다.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리고 이렇게만 말했다.

애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먼 길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7. 슬론: 방파제

부사령관 슬론은 기분이 매우 언짢았고, 불행히도, 아만다 홀리데이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타이탄의 파도가 사이렌의 감시의 거대한 버팀대에 끊임없이 부딪혔다. 사정이 지금과 달랐다면 지원 요원들이 내려와 매머드의 다리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수리하고 안정화하느라 바삐 움직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그냥 박스교를 대충 만들어서 보강하면 돼. 아무 문제 없어." 아만다가 말했다.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겠지. 난 안 돼." 슬론이 말했다. 그녀도 장벽 몇 개 정도는 건설해 본 적이 있지만, 아만다처럼 부러움을 살 만한 공학적 지식은 없었다. 아쉽게도 아만다는 가르치는 소질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아만다의 홀로그램이 라면을 후루룩 먹었다. "얼마나 견뎌야 하는데?"

"내가 신경을 끌 수 있을 정도만 버텨 주면 돼." 슬론이 대답했다. "그게 흔들리기 시작한 뒤부터는 피라미드 걱정을 할 새도 없었거든."

"그나마 다행이네!" 아만다가 재잘거렸다. 슬론은 거친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겼다.

"잘 생각해 봐." 아만다가 끙, 하는 소리를 냈다. "당신은 타이탄에서 황금기의 기술 무더기를 깔고 앉아 있잖아. 거기 있는 엔그램 중에 다리가 들어 있는 게 하나는 있지 않겠어?"

슬론은 심드렁한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사라진 기술을 뒤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러면 방파제를 만들어! 테트라포드를 버팀목에 고정해 두거나, 아니면 바다 한가운데에 뭐든 세워서 파도가 일찍 부서지게 하는 거지."

"파도가 와서 부딪히는 걸 견딜 수 없다면, 미리 밖으로 나가서 파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부딪혀 버리라고. 이렇게 말이야!" 아만다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라면 그릇 안에서 무언가 시범을 보였다. 당연히 슬론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길 좀 보라니까." 아만다가 그렇게 말하며 그릇을 앞쪽으로 기울였다. 국물이 조금 넘쳐 책상에 쏟아졌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끊을게." 슬론이 말했다. 아만다가 쾌활하게 손을 흔들고 과장되게 입술을 내밀어 인사한 후, 그녀는 통신을 끊었다.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슬론은 어둠 속에 혼자 남았다. 그리고 거기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8. 아나: 물리학

자발라는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나의 얼굴을 바라보며 벨벳 같은 액체를 잔에 채웠다. 그녀의 두 눈은 자발라의 책상 위 나무 무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주의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면 주위의 커다란 나무 캔버스와 뒤섞여 구분할 수 없을 부분이었다.

그들 뒤로 구름에 가린 여행자가 드리워 있었다. 하늘의 일부인 동시에 외따로 떨어진 존재이기도 했다.

"우리가 졌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그녀가 말했다.

"우린 지지 않았네."

자발라는 잔 하나를 아나 쪽으로 밀었다.

"전 얼어붙었어요. 아직도 우리가 뭘 건진 건지, 아니, 건지기는 한 건지도 몰라요." 그녀가 말했다.

"패배를 눈앞에 두고 행동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우리는 항상 예상되는 미래를 가슴에 품고 있어야 하네."

아나는 자발라를 노려봤다. "우리가 하는 일 중에 쉬운 건 없어요. 그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이건 스트레스 테스트였어요. 전 꺾였고요."

"신념을 갖게, 아나. 그대를 보니 우리는 늘 과거의 실패가 남긴 의혹에 짓눌린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군. 그대가 없었다면 이 도시는 잿더미가 되었을 거야. 그것도 몇 번이나 말이지."

아나는 유리잔을 들어 올렸다. 액체의 냄새를 맡고, 얼굴을 찌푸린 후, 잔을 다시 탁자에 내려 놓았다. "당신은 절 믿어 주셨어요. 라스푸틴은 제 담당이었죠."

"그래. 지금도 마찬가지네. 미래에 수행해야 할 일이지." 자발라는 술을 들이켜며 말했다. "지금은 새로운 일이 생겼네. 에리스에게 지원이 필요해."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라고 얘기해 주세요."

"케이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선봉대의 균열이 필연적인 실패로 향하는 길이라 생각했었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은 찾지 못했지. 나는 내가 너무 약하다고, 그의… 독특한 관점이 균형을 찾아 주지 않으면 내가 모두를 이끌 수는 없다고 생각했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의 죽음도 영원한 선택지들 중 하나였던 것 같아."

"자발라, 전 그런 건—"

"안심하게. 그대에게 그 일을 맡기려는 건 아니니까. 혹시 그대가 케이드를 없앴고 우리가 지금껏 범인을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그랬다면, 절 용서해 주실 건가요?"

"이해는 해 줬겠지."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전에 아이코라가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인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네. 늘 멋진 표현이라 생각했지만, 솔직히 실천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네."

아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물리학에서나 통하는 얘기죠."

"생명의 근본적인 양상이야." 자발라는 아나가 이 말을 곱씹으며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보았다. "어떻게든 주어진 발판을 딛고, 우리 앞에 놓인 땅을 최선을 다해 밟으면 되는 걸세."

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드의 닭은 어떻게 됐죠?"

자발라는 한숨을 쉬었다. "세인트가 그걸 '비둘기 군주'인가 뭔가로 임명한 것 같아."

아나의 굳게 다문 입이 희미한 미소로 녹아내렸다.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아간다고 해도, 삶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아. 마시게." 자발라는 잔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며 쿡쿡 웃었다. "비둘기의 군주가 우릴 소환해서 피라미드를 공격하라고 하기 전에 말이야."

9. 반스: 점쟁이

음악이 명료하게 들려왔다. 반스 형제는 영광에 심취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반복되는군." 그는 자신과 어린 워록을 향해 속삭였다. 그 워록은 무한의 대장간 위로 허리를 구부리고 바지런히 다른 시대의 무기를 제작하고 있었다.

그녀는 공손히 귀를 기울였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하던 일을 계속했다.

"왜 아무도 불사조를 가엾게 생각하지 않는 거지?"

워록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반스는 그녀가 모르는 사이 다가와 어느새 반대쪽에 서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었기라도 한 것처럼 뜬금없이 물었다.

"뭐라고요?" 워록이 반문했다.

"끝없는 부활도 좋지만 그 끝은 항상 타오르는 죽음뿐." 반스가 말했다. "깃에서 재를 다 털어내기도 전에 다시 불길 속으로 떨어지지 않는가."

눈먼 남자는 돌아서서 반짝이며 성소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얼굴에 만끽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노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지."

워록은 반스에게 대장간을 쓰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 후 일어서 떠나려 했다.

"얼마든지 써도 좋아." 그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공허한 미소는 어느새 조금 더 친절한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고서와 두루마리를 향해 손짓했다.

"예언도 마음대로 가져가도 돼, 친구." 그는 말했다. "드디어 내 연구가 끝난 것 같거든."

10. 애셔: 결론

애셔 미르는 조수의 우주선이 마지막으로 궤도를 향해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그제야 그들이 함께해낸 일이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편지를 남길까도 잠깐 생각해 봤지만, 지금 당장 더 시급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이 떠올랐다. 우선순위의 내림차순으로 처리를 시작한다면, 조수에게 연락하는 일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고, 그렇다면 그 행위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래서 그는 그냥 피라미디온으로 향했다.

벡스는 태어나지 않지만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이 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셔는 이오에 왔다. 그는 피라미드 또한 그 외계 자원과 미지의 힘을 활용하여 같은 목적으로 여기까지 왔을 거라고 추론했다. 어둠의 함선이 직접 벡스의 비밀을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애셔 미르가 점령했고, 그는 그걸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곧 피라미디온 입구에 도착했다. 예상했던 대로 벡스 경비대가 대응을 시작했지만 그는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적의 부서진 사체들을 쌓아 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처음 백여 마리 벡스를 파괴했다. 그리고 다시 백여 마리를 파괴했다. 미노타우르가 포효하며 그의 앞에 나타났지만 그는 금속 주먹으로 적의 방산충 핵을 박살냈다. 그는 작동을 멈춘 갈고리 모양의 팔다리를 넘어 앞으로 나아갔다. 죽은 체액과 끈적한 냉매에 발이 미끄러졌다.

애셔는 입안에 고인 피를 삼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그 불규칙한 파동을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정확히 원하는 순간에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천천히 걸어서 주위를 휘도는 듯한 레이저 격자를 통과했다. 그는 발아래 지면이 깜빡이며 미친 듯이 흔들리는 동안 중력의 회오리바람에 침착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벡스는 관찰하기 시작했다.

피라미디온의 통로에는 반짝이는 빨간색 눈이 줄지어 서 있었다. 금속 마네킹들이 멍청히 서서 꿈틀거리며 지나가는 애셔를 보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낯익은 지역이 눈앞에 펼쳐졌다. 점판암 진창과 표백제의 뭉근한 악취가 스며 나오는 입체 구멍이었다.

하늘이 있을 곳을 바라보자 불가능한 형체가, 프랙탈의 모순이 또 하나 보였다. 머리 위 높은 곳, 펜로즈의 소용돌이에서 잔잔한 방산충 호수가 금속 해안을 부드럽게 두드렸다.

그는 금속 팔을 들어 호수를 향해 뻗었다. 그리고 육체의 팔을 뻗었다.

그는 두 손을 뻗어 호수를 끌어내렸다.

11. 슬론: 광전사

수호자의 우주선이 굉음과 함께 마지막으로 타이탄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 부사령관 슬론은 집무실로 들어가 군체에서 빼앗은 황금기 기술을 작동시켰다.

묵직한 동력원이 탄띠처럼 어깨에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걸 목 너머로 늘어뜨린 후 크고 투박한 수트 안으로 발을 넣었다. 고개를 숙여 회색 두건으로 머리를 밀어 넣을 때 눈앞에 화면이 나타났다.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녀는 초록색 옵션을 선택했다.

쉬잇 소리와 함께 수트는 그녀의 몸에 맞게 줄어들었다. 여전히 무겁긴 했지만,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가 팔에 신경을 집중하자 그 부위에 딱지처럼 두꺼운 장갑판이 생겨났다. 꽤 인상적이었다.

전기 에너지를 형성해 보려 했지만 수트가 그녀의 빛을 차단했다. 어쩌면 빛이 수트를 통과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녀는 눈으로 다른 옵션을 선택하고, 다시 한번 선택하여 확인했다. 아무런 고통 없이 수트가 차가운 튜브를 그녀의 옆구리에 꽂았고, 배 근처 어딘가에 똬리를 틀었다. 그걸로 몇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슬론은 휘청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느긋하게 하늘 위에 떠 있는 침입자를 타이탄이 직접 몰아내려 하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돌풍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빗방울이 그녀의 두 번째 피부를 두드렸다.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수트가 그녀의 걸음걸이에 조금씩 적응하면서 움직이기가 편해졌다.

기호가 번쩍이고, 군체 노예가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적의 목덜미와 팔을 붙잡아 그대로 찢어 버렸다. 아주 간단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웃었다. 수트는 그 소리를 전투의 함성으로 해석하여 증폭한 후 방송했다. 우렁찬 목소리가 비 내리는 착륙장 위, 버려진 컨테이너들 사이에서 메아리쳤고, 사이렌의 감시를 넘어 위쪽 피라미드를 향해 뻗어 나갔다.

번개가 하늘을 밝히고, 폭풍은 쉬지 않고 몰아쳤다.

12. 아나: 블랙박스

아나 브레이는 수호자의 참새가 헬라스 분지를 마지막으로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았을 때에도 꿋꿋이 그녀를 믿어 준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런 믿음이야말로 행성계의 모든 전쟁지능 무기보다 강한 결속이라고, 자발라는 말했다. 그건 앞으로 계속 나아가겠다는 약속이자, 아직 미래가 남아 있다는 합의였다. 진주는 "역전된 회수"라고 불렀다. 그녀는 과거의 잔해로부터 의미를 일궈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건물은 거의 비어 있었다. 그녀는 처분할 수 있는 기술은 전부 탑으로 보냈다. 화물선 한 척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분량이었다.

아나는 침묵에 잠긴 전쟁위성 대포를 내려다보는 커다란 유리창을 향해 돌아섰다. 기갑단은 없었다. 화성에 묻힌 죽음도 조용해졌다.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원격에서 제어하는 발키리 서브루틴은 계속 작동시켜 두었다.

진주가 도약선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검은 피라미드가 머리 위를 가득 채웠다. 실험적 엑소 신체가 우주선 화물실에 실려 있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13. 반스: 명금

수호자가 마지막으로 그의 성소를 떠난 후, 반스 형제는 얼마 되지 않는 소지품을 챙겨 수성의 타오르는 듯한 표면으로 나섰다. 그는 머릿속으로 끝없이 연습했던 것처럼 무한의 숲 입구를 손쉽게 찾아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곳을 통과했다.

숲이 포효했다. 아찔한 공허가 그를 강타했다. 메아리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신성한 장소를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후 무릎을 꿇고 토했다.

돌풍이 고막을 때리는 가운데 그는 짐을 끌고 가려고 발버둥쳤다. 그는 이 광대한 공간에서 불가능하게 작은 무한의 시뮬러크럼을 꺼내고, 떨리는 손으로 숲의 찢어지는 듯한 주파수에 동기화했다. 시뮬러크럼은 잠시 메트로놈처럼 재깍거리다가…

침묵했다. 숲이 봉인되었다.

반스는 망설이는 손길로 지금 서 있는 거대한 돌을 더듬었다. 그와 동시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경험한 것처럼 그 돌을 어렵지 않게 뛰어넘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는—떨어지고, 웃고, 노래하며—모든 방향으로 움직였다. 모든 길을 따라 모든 현실로 향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그리고 본래의 진짜 반스는 무한한 평행의 존재들이 자신에게서 솟구쳐 분출되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스쳐 지나며 그에게 힘을 주는 것을 느꼈다. 그는 기쁨에 숨이 벅차 고맙다고 소리 없이 말했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손길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도닥이는 것을 느꼈다. 어느새 그는 울고 있었다.

그때, 황금빛 메아리의 소용돌이 안에서, 반스 형제는 목소리를 드높여 그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희망의—"

그 자신의 목소리가 뒤쪽에서 답했다. "미래여." 노래는 계속되었다.

반스는 그 목소리를 향해 뛰었다. 그는 자기 망토의 느낌을 인지하고, 그의 손이 그 목덜미를 찾았다. 형태가 뒤틀리고, 그의 손 아래에서 차갑고 날카롭고 변해갔다.

그것이 반스를 내동댕이치려 했지만, 그는 버텼다. 그리고 그것의 얼굴을 향해, 그 눈가리개 안쪽으로 손을 뻗었고, 엄지손가락을 박아넣었다.

그것은 울부짖었다. 정말 안타깝구나. 반스는 환하게 웃으며 생각했다. 아직 눈이 남아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