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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11:40:17

향신료

🌿 향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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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ice, 좁은 의미의 향신료. 딱딱한 열매, 씨앗류를 의미.
/
**: Herb, 향료 중에서 부드러운 잎과 줄기를 의미.
그 외 비가공 식품 및 재배물 틀: 고기 · 곡물 · 과일 · 채소 · 해조류 · 향신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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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유의어4. 사용5. 역사
5.1. 고대5.2. 중세
5.2.1. 유행의 원인
5.3. 대항해시대
6. 생소한 외국 향신료와 친해지기
6.1. 기초
7. 목록8.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9. 언어별 명칭10.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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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Spice

고유한 향기을 내는 식재료. 여기서 '고유의 향기나 맛'은 한마디로 일반적인 맛으로 설명이 어려운 독특한 맛이나 향을 말한다. 주로 부재료로 쓰이며, 식재료나 요리에 첨가하여 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2. 특징

좁은 의미의 향신료는 허브처럼 부드러운 것이나, 향유처럼 기름 성분의 것들을 제외하고 참깨, 마늘 등 딱딱한 씨앗이나 열매만 의미한다.

향신료의 맛과 향은 본디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생되는 것이다. 자신을 뜯어먹으려는 포식자에게 '먹지 마시오'라는 경고로써 강렬한 향과 맛만큼 확실한 수단도 없다. 그러나 인간은 오히려 이를 즐기면서 손수 재배하기 시작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음식에 빠져서는 안될 식재료로 삼고 있다. 즉 향신료의 원전이 되는 식물들은 어찌 보면 다른 방향으로 종족 보전에 성공한 셈이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은 향신료를 잘 먹지 않는다" 내지 " 한국 요리는 향신료를 쓰지 않는다"라는 얘기가 이따금 나오기도 하는데, 정 반대다. 향신료를 특이한 외국의 산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한국인이 단순 채소라고만 생각하는 고추, , 마늘, 깻잎, 달래, 부추, 참깨 등은 모두 향신료다. 한식에서 고추, 파, 마늘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향신료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 향신료를 잘 먹지 않는다는 얘기는 대체로 외국 요리를 접할 때 생소할 수 있는 고수, 정향, 팔각, 육두구 등을 접할 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셀 수도 없이 많은 요리에 밑간으로 마늘이 들어가고,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고, 깻잎에 편마늘까지 얹어서 고기 쌈을 싸먹거나, 마늘장아찌를 밥반찬으로 먹는 등 오히려 한식이야말로 향신료를 일반 채소로 취급할 정도로 향신료를 펑펑 쓰는 식문화다.

3. 유의어

향신료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풀, 열매, 종자, 나무껍질 등이 존재한다.

4. 사용

세계적으로 향신료 요리의 발전은 인도 동남아시아의 교류와 큰 관련이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지역의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은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기원전 6세기 경에 이미 서로의 해상 무역로를 개발하였으며,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를 서로 교역하였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과 인도는 서로의 교역 외에도 주변 지역에 향신료를 수출하였다.

인도, 동남아시아 뒤를 이어 향신료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문화권은 남중국, 페르시아 문화권, 이집트 문화권, 서남아시아권 등이 있는데 모두 고대에 인도와 오스트르네시아어족들이 설립한 무역로에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또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도 중세 이후에 이슬람 상인들의 교역을 통해서 인도 유래의 향신료가 다양하게 소개되어 향신료가 다양하게 쓰이는 지역이 되었다. 또 대항해시대에 향신료 교역의 주역이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 및 그 식민지였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도 향신료를 많이 쓴다. 인도와의 교류가 적었던 지역, 인도와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사용하는 향신료의 종류가 적거나 토산물류의 향신료가 주로 쓰인다. 한국도 비교적 세계 향신료 무역로에서 벗어난 편이었기 때문에 이런 케이스에 전형적으로 해당한다. 북유럽과 러시아, 동유럽 등지도 전통 요리에서 향신료와 좀 거리가 있는 편. 인도는 아직까지도 엄청난 양과 다양한 종류의 향신료를 사용하는데, 그 양이 2위인 방글라데시의 8배에 달한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네팔도 인도 문화권으로 묶는다면 인도 문화권만 해도 그 나머지 전 세계가 사용하는 양의 향신료보다 많다.

오늘날에도 인도, 중동, 아프리카의 요리에는 많은 양의 향신료가 사용된다. 한국도 연교차가 크고 여름이 습한 특성상 요리에 고추와 마늘, 생강 등의 향신료는 필수다. 예를 들어 가정집에서 수육을 삶을 때도, 다른 재료 없이 그저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이기만 한다면 역한 냄새가 남아 있게 된다. 수육을 맛있게 삶는 사람은 이 냄새를 잡기 위해서 마늘이나 생강 같은 각종 향신료를 이용한다. 그래도 향신료의 위상이 와 닿지 않는다면, 한국 요리에서 파, 고추와 마늘, 생강이 모두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자.

한민족의 경우에도 오래전부터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마늘.[2] 다만, 구체적인 문헌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언제부터 어떤 종류의 향신료가 사용되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5. 역사

5.1. 고대

서양은 이미 고대 로마 시절부터 향신료를 적극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로마의 요리서에 보면 후추는 이미 80%의 레시피에 쓰였을 정도로 흔한 향신료였다. 호라티우스는 후추 장사로 성공을 거뒀으며 대 플리니우스는 별 맛도 없고 맵기만 한 후추를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는 불평을 남기기도 했다. 왜냐하면 로마에서는 후추를 수입하는 대가로 값비싼 금과 은을 지불했었고, 그래서 로마 밖으로 금과 은이 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많이 채취한 나머지 멸종해버린 실피움도 썼다.

하지만 고대 로마인들이 소비한 향신료는 그다지 다양하지는 않은 것 같다. 또한 Spice의 어원인 라틴어 SPECIES는 토산물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중세 말까지도 'SPECIES' 로 분류되는 것에는 과일, 곡물, 기름, 포도주 등 향신료와는 전혀 상관 없는 물건이 잔뜩 있었다.

5.2. 중세

이슬람 세력이 7세기 이후 북아프리카에서 아랍과 페르시아에 이르는 막대한 영토를 점유했기 때문에 아시아발 무역은 이슬람 세력이 독점하게 된다. 그렇다고 딱히 지중해의 무역이 끊긴 것은 아니었다. 초기 중세의 강국인 동로마 제국의 경우 와인에 다양한 향신료를 넣어 마시는 것이 기본이었으며, 이슬람 세력에서는 향신료 장사로 부자가 된 수많은 상인들이 존재한다.

서유럽 역시 중세 초기 600여년이 끝나 11세기 중세 전성기에 들자 이슬람에서 향신료를 마구 수입해오기 시작한다. 십자군 전쟁 이후로 동방과 교류가 활발해지자 동로마의 레시피도 수입이 됐고, 저지대 지역에서부터 이어진 서유럽의 국제 무역망을 따라서 포목이 이슬람으로 수출되고 향신료가 유럽으로 유입되는 지중해 국제 무역 시대가 열린다.

당시 이슬람 상인 역시 향신료 가격을 올리기 위해 신비주의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이들은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곳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지어내 향신료가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인양 퍼뜨리고 다녔는데, 예를 들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3]
(중략) 성경에도 여러 번 등장하는 계피에 대해,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실론계피를 아랍 지방에 있던 불사조의 둥지에서 발견했다고 적고 있다. 불사조의 둥지는 매우 가파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갈 수 없었다. 그러나 아랍인들은 놀라운 방법을 찾아냈다. 그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짐승을 큰 조각으로 잘라 불사조의 둥지 근처에 흩어 놓았다. 불사조들은 둥지에서 내려와 이 고기 조각을 물고 다시 둥지로 갔다. 결국 둥지는 고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계피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피렌체의 상단이 남긴 상업 실무 서적에는 288가지의 'SPECIES' 품목이 있으나, 상기하였듯 아직 'SPECIES'라는 단어는 토산물을 뜻했기 때문에, 현대에는 향신료로 여기지 않는 것을 제외하면 향신료는 38개뿐이었다. 또 이슬람과 인도와 중국 등을 포함한 동방에서 수입되는 향신료는 31개뿐이었다.

13세기 무렵부터 오스만 제국이 부상하는 16세기 초까지 지중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한 것은 유럽의 베네치아 공화국과 이슬람의 맘루크 왕조였다. 망해가는 동로마에게서 에게해의 섬들을 삥뜯어 식민지와 무역 거점으로 삼은 베네치아는 레반트 무역을 독점하였고, 맘루크는 홍해를 통한 인도발 무역로를 독점해서 지중해 국제 무역의 가장 큰 축을 분담했다. 둘은 서로의 영토에 상업거점을 설치했을 정도로 거의 절대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베네치아의 향신료 상인의 장부를 보면 수입물량의 80% 가량이 후추 수입이었고, 10~20%를 좀 넘는 분량의 생강 수입이 있었다. 그 외 기타 향신료는 나머지 10% 미만의 분량이었다. 나머지 10%에 해당되는 향신료는 희귀 향신료였는데, 시나몬, 육두구, 메이스, 정향 등이 필수적으로 언급되었을 정도로 큰 마진율을 가졌다. 지금 육메가 대폭락이야

향신료 무역의 이야기가 많이 와전되어서 후추의 가격이 굉장히 비싼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1차 사료를 직접 확인하면 후추는 향신료 중에서는 무척 싼 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세기에 베네치아에서 120kg 후추 한 자루가 50~100두카트에 판매되었다. 그런데 베네치아 상인들이 레반트 지역에서 후추 매입가가 어땠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운데, 36만 두카트 정도의 가치의 향신료를 23만 디나르에 매입했다고 하니 마진률은 50% 정도로 보인다. 수송 비용을 제외하면 순이익률은 30% 전후였을 것이다. 하여간 베네치아에서 도매 판매가 기준으로 계산하면, 100g 정도 후추는 당시 막노동자의 하루 임금 정도의 가치이니 완전 깡촌이 아닌 국제 교역망이 닿는 곳이면 서민도 어렵지는 않게 구경 가능한 수준이었다. 심지어 백년전쟁 시기 부르고뉴 공작은 죄수들에게도 후추가 들어간 요리를 먹였으며, 프랑스 요리책에서는 후추를 시골요리나 가난한 사람들의 죽에나 넣는 향신료로 취급했으며, 영국 요리책에서도 '평민들의 위한 포도주' 레시피에 후추를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대이슬람 무역에서 수입액의 50% 가량은 후추였을 정도로 후추는 많은 양이 수입되었다. 유럽의 후추 수요 때문에 맘루크 왕조 통치하의 이집트 지역은 후추 플렌테이션이 형성되었고, 맘루크 왕조의 카이로 상인들은 유럽과의 향신료 무역으로 막대한 돈을 벌었다.

5.2.1. 유행의 원인

중세시대 사람들이 오염되거나 부패한 음식을 자주 먹었다는 증거는 없다. 실제로 중세인들이 이를 피하려고 예방책을 강구한 증거가 있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음식의 맛을 감추려고 향신료를 사용한 것은 아니다.
Peter Hammond 지음, 홍성표 옮김, 『서양 중세의 음식과 축제』, 청주, 도서출판 개신( 충북대학교 출판부), 2003, p.90~91.

흔히 고기의 썩은내를 방지하기 위해 향신료가 유행했다는 말이 나도는데 사실이 아니다. 중세 유럽 귀족층은 식품 위생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였고,[4] 향신료 자체가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기 때문에 단순히 유통기한을 늘리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건 어려웠다. 당시 기준으로는 유통기한을 늘리려고 향신료를 사느니 그냥 소금이나 꿀로 절이거나 차라리 그 돈으로 새 고기를 더 사는 쪽이 훨씬 이득이다.

겨울을 앞두고 최소한의 가축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도살한 후 고기를 소금에 절여놓고 먹었고 그 때문에 향신료를 뿌려 풍미를 좋게했다는 낭설도 돌지만, 냉장 기술 발달 이전 대부분 세계에서는 고기를 먹을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동물을 잡았고, 13세기경부터 건초와 축사를 만드는 기술이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겨울이라고 가축이 몰살당할 일도 없었다. 중앙아시아 같이 겨울이 혹독한 지역이면 모를까. 또한 중세시대에는 살아 있는 가축을 도시 안에 위치한 푸줏간까지 데려와서 도축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날 도축된 고기는 바로 도시에서 소비되었다. 또한 과거부터 방부제로 주로 사용된 것은 이었다.

게다가 고기를 소금에 절여 숙성 혹은 발효하는 유럽 음식들, 예컨대 하몬이나 살라미 같은 음식들은 원래 향신료를 쓰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향과 맛은 발효로 저절로 형성되니 소금만 있으면 되는 저장 식품에 값비싼 향신료를 쓸 리가 없다. 재료가 싸지고 풍부해진 요즘의 소시지나 육류가공품에는 여러 가지 향신료가 들어간다.

오늘날의 학계에서는 향신료가 방부제라기보다는 당시 귀족들의 사치품으로 사용되었다는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설탕은 또 후추와 마찬가지로 고급 조미료였다. 정교하게 세공된 모습으로 왕이나 귀족이 참석하는 자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런 설탕 장식이 오늘날 웨딩케이크의 기원이 됐다. 설탕은 십자군 전쟁을 통해 중세 유럽으로 널리 전파됐다. 존스홉킨스대학 시드니 민츠 교수(인류학과)는 '설탕과 권력'에서 “영국의 헨리 3세는 1226년 윈체스터 시장에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산 설탕 3파운드(1.4㎏)를 구해 달라고 요구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에드워드 1세 재위 시절인 1288년에는 왕실의 설탕 소비가 6258파운드(2800㎏)에 이를 정도로 소비가 급증했다”고 적었다. 이집트의 술탄은 1040년 라마단 기간에 7만3300㎏의 설탕을 썼다. 설탕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설탕의 고향은 뉴기니, 이슬람 거쳐 유럽으로』 中

특히나 귀족의 사치가 극에 달했을 시기에는 주객이 전도되어, 음식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향신료를 쓰는 게 아니라, 그 비싼 향신료를 이 만큼이나 쓴다는 걸 자랑하기 위해 맛이고 뭐고 없이 그저 무작정 향신료를 마구마구 뿌려대기도 했다. 거의 카레 수준에 가까웠으며 잠시 귀족들의 식탁이 남아시아와 비슷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다만 중세 요리들이 맛도 없이 향신료만 들이부었다는 주장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다. 그러한 주장의 근원은 중세 요리책을 통해 실제로 음식들을 복원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대부분의 경우 정확한 양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계량화 이전의 한식조리법처럼 간장 약간, 마늘 좀 많이, 소금 한움큼, 이런 식으로. 오늘날의 연구자들은 아랍이나 터키, 인도의 요리와 비슷할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 음식은 육류 위주의 식사가 주가 된다거나 빵을 그릇 겸 식기로 쓴다거나 하는 점에서 중세 시대의 식문화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향신료를 좀 끼얹기는 하지만 나름의 균형이 있어 맛있는 요리들이다. 그것과 별개로 당시 식문화에 허세 과시가 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금도 고급 요리에 그러듯이.

조선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신선한 고기가 오면 양념 안 하고 소금으로 구워먹는 게 당연시되지만, 조선시대에만 해도 이런 양념 없는 구이는 방자구이라 하여 하인들이 어쩌다 고기 얻을 때 급하게 구워먹는 요리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 시대의 책에서도 아주 신선한 고기라면 양념 없이 소금간만으로 구워먹어도 맛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지금이야 쉽게 구하는 간장, 설탕, , 후추 같은 것은 지금보다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니 그런 것으로 양념하는 고기를 더 높게 평가했던 것이다.

서양에서도 향신료를 통한 자극적인 맛을 결코 못 먹는 게 아니며,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다만 고추와 같은 잘 안 쓰는 향신료의 매운 맛,[5] 날파나 날 마늘의 아리고 매운 맛은 서양인들에게 제대로 적응이 안 됐을 뿐이고, 김장 같은 걸 할 때도 고추, 마늘을 팍팍 치는 한국과 달리 육류 위주로 향신료를 치며, 주로 익은 요리에 향신료를 치기 때문에 이런 편견이 생긴 것. 사실 서양 요리가 지금처럼 느끼해진 것은 의외로 근세 이후의 일이다.

일본의 연구가 하네다 마사시가 쓴 책인 '동인도 회사와 아시아의 바다'에서는 향신료가 단순한 사치품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인식에서는 하나의 건강기능식품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지적한다. 중세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모든 사물은 건습한열의 네 가지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 4체액설을 신봉해서 몸에 병이 나는 것은 이 균형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건강하고 오래 살려면 그 당시 기준으로는 건습한열에 맞추어 음식을 먹어야 했다. 중세 유럽에서 모든 고기는 찬 성질을 지닌 음식이었고 그와 반대로 향신료는 모두 더운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찬 음식인 고기에 더운 기운을 가진 향신료를 뿌리면 밸런스가 맞게 되는 것. 또한 이 시대에는 오염된 공기로 병이 전염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독기를 몰아낸다고 생각되는 향신료들이 더욱 인기를 끌기도 했다. 계피 생강 등 특유의 향이 강한 향신료는 방향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연히 효과는 미미했다. 이런 중세 유럽인들의 생각이 근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변화하게 되었고 이 시점에서 향신료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이 하네다 마사시의 설명이다.

이건 딱히 중세의 이야기만도 아니라서, 병의 원인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근현대에 와서 이야기이다. 대항해시대에 유럽에 전해진 담배가 만병통치약 취급을 받기도 했고, 이게 동양으로 전해지면서 한의학 서적에 담배가 역시 만병통치약처럼 나오기도 한다. 심지어 1970년대에 가난한 집에서는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 태반은 기생충 감염이었는데, 구충제 대신에 담배를 입에 물렸던 것이 한국의 모습이었다.[6] 중세 전염병이 돌 때를 묘사한 그림을 보면 역병 의사들이 새 부리가 달린 가면을 쓰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부리 부분에 향신료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5.3. 대항해시대

중세 향신료 무역에 대한 설명에서 흔히 반복되는 레퍼토리가, 이슬람 세력이 무역로를 장악해서 유럽의 향신료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식의 설명이다.

이런 설명에는 여러 문제가 있는데, 일단 '이슬람 세력'이 항상 무조건 단일한 세력도 아니었던 데다가, 오히려 중세에는 베네치아와 맘루크 왕조가 긴밀한 무역 파트너로써 협력적인 관계였다는 점에서 또 틀렸다.

고대부터 중세 말까지 서유럽과 인도-동남아를 연결한 무역로는 지중해-레반트-홍해(아라비아 반도)-페르시아-인도로 이어지는 해상 무역로였다. 중세 전성기 이후 부활한 지중해 무역로는 서유럽으로 향신료를 유입시킬 때 절대적으로 이집트와 시리아에 의존했다. 십자군 전쟁 때에도 시리아의 도시들이 향신료 유통의 중심이 되었다. 당시 향신료 무역의 중심 도시는 베이루트와 알렉산드리아였다. 지중해 교역에서 베네치아, 제노바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바르셀로나의 상인들도 알렉산드리아와 베이루트에서 향신료를 구매했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 동방 무역을 막았다'는 서술도 있지만 이것도 실제와 다르다. 당시 유럽에 향신료를 공급하던 베네치아 상인들의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는 이집트와 시리아를 차지한 맘루크 제국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향신료를 구매하는 창구였다. 원산지에서 거래를 막지 않은 상황이었고 새로운 창구를 열면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알렉산드리아에서 향료 무역을 이어갔다.
결국 포르투갈의 신항로 개척은 이러한 베네치아와 맘루크가 독점한 향신료 시장을 타파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이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와 동남아에 직접 도달하는 항로를 개척했다. 맘루크의 손을 거칠 필요가 없어지자 홍해 무역은 타격을 입었다. 자연스레 현지의 향신료 가격도 폭등했다. 당황한 맘루크 술탄은 포르투갈이 인도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예루살렘을 파괴하겠다고 협박했으나 포르투갈은 그랬다간 십자군을 조직하겠다고 응수했다. 결국 경제적으로 약화된 맘루크는 오스만에게 멸망했고,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무역 파트너를 잃은 데다가 오스만과 지중해의 제해권을 놓고 싸우고 있던 베네치아도 따라서 몰락했다. 1510년대엔 유럽의 향신료 품귀가 극에 달할 시기에는 배네치아조차 포르투갈에 향료를 수입해올 정도였다.

이번에는 포르투갈이 유럽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게 되었다. 문제는 아프리카를 빙 돌아서 수입해온 만큼 향신료 가격이 폭등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1560년대 오스만의 정복활동이 잦아들고 베네치아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상관을 재설치해서 지중해 향신료 무역이 되살아나자 유럽의 향신료 품귀는 잠잠해졌다. 이로 인해 전유럽에 대량의 향신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시작,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향신료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지면서부터는 향신료의 값어치는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폭락했다.

대항해시대는 결론적으로 향신료가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콜롬버스, 바스코 다 가마 등이 목숨을 걸어가며 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한 것도 그 근본적인 목적은 북아프리카계 상인들과 이탈리아계 도시국가들이 독점하던 향신료 교역로를 타파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바스코 다 가마가 말도 안 통하는 인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 앞서 도착해 있던 북아프리카계 상인이 반갑게 맞아주었다고 한다.[7][8] 하지만 항로가 개척된 후에도 높은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나무를 태우는 등의 가격 안정책을 시도했었기 때문에 향신료가 유럽에 대량으로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다.

6. 생소한 외국 향신료와 친해지기

21세기에는 잘 모르는 독특한 향신료도 인터넷 쇼핑몰에서 바로 구할 수 있다. 주로 전문 식당에서 독특한 맛을 낼 때 쓰는 재료들, 뒤집어 말하면 이게 있으면 집에서도 식당 맛을 흉내낼 수 있다는 말이다. 오프라인에서 구매하고 싶으면 버스터미널 근처의 아시아마트, 이태원동 등 외국인 거주지역의 외국인 마트도 괜찮다. 하지만 외국인이 가게를 볼 경우가 있으니 적절한 영어회화실력은 필수. 대신 싸면서 양은 푸짐하다. 온라인에서 사기 힘든 물건도 취급하니 적절히 이용하면 좋다.

독특하고 강한 향기로 인해 호불호가 갈린다. 자칫하면 거부반응을 나타내기 쉬울 수 있는 향신료와 친해지려면 우선 생고기를 구울 때 소금과 같이 뿌려서 구워보자. 혹은 향신료와 소금으로 고기를 재우는 방법도 좋다. 잘 쓰면 각종 소스 부럽지 않지만, 소스의 베이스가 향신료일 경우도 많다.

고기의 종류마다 적절한 향신료가 있는데 예를 들어서 각종 허브는 닭고기를 구울 때 좋고( 백리향, 로즈마리 등) 돼지고기 세이지, 팔각 등, 쇠고기는 커민, 오레가노 이런 식으로. 정향은 모든 고기 요리에 적절하다. 다만 향이 너무 강하니 양 조절에 주의할 것.

일단 고기에 시험해봤다면 다음 단계로 과일이나 디저트, 심지어 계란의 맛을 낼 때도 요긴하다. 이 경우에는 계피, 생강, 팔각, 올스파이스, 카르다몸, 캐러웨이, 정향 등의 가루를 설탕과 함께 뿌려서 먹어보자, 향의 여운이 웬만한 시중의 디저트 부럽지 않을 것이다. 바닐라도 향신료의 일종이긴 하나 사용 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에 에센스 형태의 것이 좋다. 계란의 경우 커민, 파프리카 가루를 소금에 섞어 향신료 소금을 만들어서 삶은 계란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팔각도 의외로 계란과의 궁합이 좋다.[9]

2012년 9월 기준으로 농심그룹에서 미국의 식료품 회사인 맥코믹제 유기농 향신료 시리즈와 그라인더 시리즈도 정식으로 수입해서 판매 한다는 걸 보면 예전보다는 좀더 쉽게 향신료를 사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통후추나 굵은 소금 등 갈지 않은 원재료를 병에 넣고서 그 병 위에 재료를 원하는 크기로 갈아서 쓸 수 있는 그라인더를 단 향신료병으로 되어 있다.

6.1. 기초

괜히 아무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이것저것 시도하려고 하면 감이 안 잡힌다. 우선은 서양요리를 전문으로 다루는 요리책이나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된다면 고든 램지, 제이미 올리버 등 유명 요리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등을 참고하면 식재료에 따라 자주 등장하는 향신료와 적정 양의 감을 잡을 수 있으니 참고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익숙해져도 굳이 많이 사용할 필요없이 특성에 맞게 활용하면 된다. 보통 통에 보면 무슨 용도라고 쓰여있는데, 굳이 용도를 연관시켜 생각하지 말고 이 향을 썼을 때 어떻게 조화가 될 지 상상해보면 쉽게 쓸 수 있다.

사실 풍미를 결정하는 데는 맛뿐만 아니라 향도 중요하다. 짠맛, 단맛, 신맛 이런 쪽으로만 접근해서는 복잡 미묘한 느낌을 구현하기에 무척 어렵다.

어느 음식이던 향신료만 잘 활용해도 매우 다양한 맛과 향으로 변한다. 별도로 공식을 따져야 하거나, 시간이나 온도를 치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요리에 기본만 된다면, 향신료만 잘 써도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낼 수 있다.

향신료는 조미료가 아니다. 맛도 내지만 향을 내는 게 주가 된다. 향신료를 많이 쓰는 서양 음식을 보면 감칠맛보다는 향을 내는 것이 강조된다.

서양에서 잘 쓰이는 지방맛은 향신료를 잘 조합하면 매우 쉽고 간편하게 훌륭해질 수 있다. 식용유를 쓴다면, 콩기름만은 피하자. 콩기름은 콩비린내 때문에 맛을 크게 해치는 주된 원인 중 하나.

모르면 일단 파슬리로 시도해 본다. 웬만한 음식에서 파슬리는 거부감 없이 잘 조화된다. 그냥 장식으로 생각해도 좋고, 약간 진지한 느낌의 풀맛이 나는데 버터 맛(기름 맛)의 느끼함과 잘 조화를 이루어 준다. 파슬리는 좀 많이 써도 향이 너무 강해지지 않는 편이다. 보통 요리 후에 위에 뿌리고, 섞지 않는다.

파슬리 다음은 로즈마리다. 로즈마리도 생각보다 쉽게 잘 어울린다. 그런데 로즈마리는 파슬리와 달리 요리 후가 아니라 요리 중에 뜨거울 때 쓰면 나무 향과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고기류에 좋고, 너무 많이 쓰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조절해야 한다.

시나몬. 자주 쓸 일은 없는데, 은근히 쓰인다. 계란 구워먹을 때도 뜨거울 때 아주 조금 뿌리면 좋고, 뭔가 볶아먹거나 국물 혹은 면 요리에도 아주 조금 넣어 섞으면 맛이 곱상해진다. 제빵제과용 향신료로는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메이저급 향신료이다. 대신에 시나몬은 일반적인 요리에는 아주 조금만 써야지, 욕심내서 두 번 톡톡쳤다가는 시나몬 맛밖에 안 난다. 요주의.

칠리 파우더도 은근히 잘 어울린다. 품종이 달라서 한국 고춧가루 맛이 아니라, 정말 깔끔한 매운맛을 내 주는 것들이 있다. 향신료로 쓰기 때문에 불같이 매운맛을 만들기 위한 용도보다는 매운 맛을 조금 더 조화롭게 맵게 만들거나, 심심한 맛에 생기를 넣는 느낌으로 생각하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짜장면에 안 어울릴 것 같지만 종종 애용하는 고춧가루 떠올려보면 된다.

그냥 믹스된 것도 좋다. 향신료를 고르다보면, 믹스된 게 있다. 편리하고 맛있게 배합되어있고, 이런 믹스는 대중음식점에서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거부감 없이 쓰기 좋다.

그리고 향신료를 고를 때는 브랜드보다 원산지가 어딘지 볼 필요가 있다. 쉽게 생각해서 해 쨍쨍한 곳에서 자란 향신료가 향이 좋다. 그 차이가 정말 천지 차이다. 동네에서 그냥 아무거나 산다고 샀다가 잘못 사면 맡아보면 향이 거의 없다. 칸나멜라나 ISFI 고르면 중상 이상은 된다.

7. 목록

앞서 언급했듯이 허브 조미료도 포함한다. 그리고 야채처럼 생으로 먹어서 부식처럼 섭취하는 경우도 향신료로 쓰기 위해 일정한 가공을 해서 판매하면 포함한다. 또한 설탕, 조청, 자일리톨, 올리고당 같은 감미료 가쓰오부시 같은 동물성 식재료는 엄밀히 말해서는 향신료에 포함될 수 없으니 아래 목록에 추가할 때 주의를 요한다.

8. 대중 매체에서의 등장

9.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향신료()
그리스어 καρύκευμα(karýkevma), μπαχαρικό(바하리꼬, bacharikó), μπαχάρι(bachári)
ἄρωμα(아로마, árōma)( 고전 그리스어)
영어 spice(스파이스)
일본어 [ruby(香辛料, ruby=こうしんりょう)](kōshinryō), スパイス(supaisu)
중국어 (xiāngliào)
튀르키예어 baharat(바하랏)
힌디어 मसाला(마살라, masālā)
مصالحہ(masālha)( 우르두어)

10. 관련 문서



[1] 앤쵸비나 가쓰오부시, 굴소스, 액젓, 다시마 등을 생각하면 좋다. 치킨스톡 등의 소스나 브로스도 조미료다. [2] 단, 진짜 마늘은 아니다. 현대에는 마늘이 아니라 달래 명이, 산초로 추정한다. [3] 사실 이슬람에서 향신료를 유통할 때는 캐러밴으로 운반을 했는데, 육로로 운송했고, 거기에 수레를 쓰지 못하고 낙타에 실어야 했기 때문에 운송효율이 매우 낮았다. [4] 동로마 제국은 식품 부정에 민감해서 10세기 초에 완성된 바실리카 법전에 관련한 내용이 실려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경우 상한 고기를 팔거나 빵의 무게를 속이거나 향신료를 거래할 때 먼지나 흙을 섞는 행위를 저지른 악덕상인을 그의 가게 앞에서 교수형에 처했다. 이는 다른 유럽 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5] 실제로 카옌페퍼(cayenne pepper) 같은 고추는 유럽 요리에서 은근히 자주 쓰인다. 후추처럼 재료맛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들어갈 뿐. [6] 니코틴에는 살충 효과가 있어서, 뱃 속의 기생충을 죽이거나 기절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담배연기는 단순히 폐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는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데, 이 식도로 넘어간 담배연기 속의 니코틴이 미약하게나마 살충 작용을 한다. [7] 튀니지 출신의 두 무어인이 그들을 맞았다. 무어인들은 제노바어와 카스티야어를 할 줄 알았다. 무어인들은 '세상에!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온 것이오?'라고 물었다. 포르투갈인들은 '우린 새 그리스도인과 향신료를 찾아 왔소' 라고 대답했다. 무어인들은 '왜 카스티야와 프랑스왕, 베네치아의 세뇨르는 사람을 보내지 않은 것이오?'라고 물었다. 포르투갈인들은 '우리 왕께서 그들을 가로막았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고, 무어인들은 포르투갈 왕이 잘했다고 대답했다. Velho 1987:54-5 혹은 좀 더 적대적으로 "망할 놈들, 여긴 어떻게 온 거냐?" 라는 식으로 묻자 저런 대답을 했다는 설도 있다. [8] 그러나 바스코 다 가마가 평화적으로 향신료 무역을 한 것은 아니었고, 몰고 간 군함에 실린 대포로 원주민들의 배와 항구를 포격해서 힘으로 위협하여 향신료를 왕창 뜯어냈다. 심지어 이미 인도에서 향신료 무역을 하고 있던 이슬람 상인들이 이슬람 국가의 해군을 불러들여 견제하려 하자, 그들과 해전을 벌인 끝에 모조리 침몰시키는 방법으로 해상 무역권을 장악했다. 원래 16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나는 물건들은 비서구권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고 잘 팔리지도 않았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교역에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부득이하게 자신들이 비서구인들보다 우수한 위치에 있던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은 19세기 초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계속 적자만 쌓이자, 고심 끝에 아편을 팔고 중국이 그것을 막으려 하자 군대를 동원해 중국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강제로 시장을 개방시킨 아편전쟁에까지도 계속된다. [9] 아예 ' 차예단'이라는, 홍차에 팔각 등의 향신료를 넣은 것에 삶은 계란도 있다. [10] 바닐린이라는 성분이다. 향으로만 즐기는 경우에는 쿠마린이라는 것도 있다. 얘는 먹으면 안 된다 재미있는 점은, 캡사이신이 바닐린에서 유도된 물질이라는 것. [11] 기후 상황에 따라 가격 편차가 심한 편이나, 마다가스카르에서 독점적으로 재배하다시피 해 대체로 굉장히 비싼 편. [12] 요리에 한번 쓰고 말 0.1g 파우더의 경우에는 몇천원 대 수준이기는 하다. 다만 그램 단위를 넘어서는 순간 수 만원대, 업소용은 수십 수백만원이다. 이란산이 최고급으로 통한다. [13] 보통 녹차에 많이들 곁들인다. [14] 차로 우리면 PH 농도에 따라 핑크색, 보라색 등으로 아주 아름답게 변하는 색을 볼 수 있다. [15] 마라탕 밑바닥을 살펴보면 보이는 동그란 후추 같은 향신료. 씹었을 때 혀가 미칠 듯이 아려오면서, 맵지는 않은데 저릿저릿하게 아픈 느낌을 받을 수 있다. [16] 우조, 라크에 들어간다. 물을 타면 뿌옇게 변하는 성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