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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3 06:53:05

태조 왕건/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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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세 주인공3. 왕건 측 인물
3.1. 가족3.2. 친인척 및 송악 시절의 인물들3.3. 주요 신료3.4. 주요 장수
4. 궁예 측 인물
4.1. 가족(처가)4.2. 측근 및 장수4.3. 반역자
5. 견훤 측 인물
5.1. 견훤 일가5.2. 사벌주세력5.3. 책사 및 신료5.4. 주요 장수
5.4.1. 후백제 건국 전후5.4.2. 후백제 중반 이후
5.5. 그 외 인물
6. 신라 측 인물
6.1. 국왕6.2. 왕족 및 신료6.3. 지방관 및 장수
7. 발해 측 인물8. 요나라 측 인물9. 주요 호족들10. 승려11. 그 외의 인물

1. 개요

2000년~2002년 까지 방영된 KBS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에 대한 문서

드라마가 워낙 길었는지, 몇몇 조연들은 1인 다()역을 하기도 하였다. 관련 인물에는 ★ 표시. 그리고 가상의 인물은 ☆, 사료와 달리 일찍 하차한 인물들은 #.

한편, 왕건 측과 궁예 측의 인물들 중에는 두 정권에 걸쳐서 활동한 인물들이 많은데, 왕건에게 협조적이었거나 그의 즉위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출사한 인사들을 왕건 측으로, 대립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인물들을 궁예 측으로 정리한다.

2. 세 주인공

3. 왕건 측 인물

3.1. 가족[3]

3.2. 친인척 및 송악 시절의 인물들

3.3. 주요 신료

3.4. 주요 장수

4. 궁예 측 인물

4.1. 가족(처가)

4.2. 측근 및 장수

4.3. 반역자

이들은 대부분 궁예 조정에서 득세를 하였으며, 작게 크게 왕건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 먼저 반란을 시도했다가 처형된 아지태를 제외하고는 왕건의 혁명(119화~120화)에 동참하거나 살아남았지만, 이후 반란을 도모했다가 처형된 인물들이다.[54]

5. 견훤 측 인물

다른 진영의 출연진들과는 다르게 갑자기 하차하는 경우가 많다.

5.1. 견훤 일가

견훤에게 그야말로 작중내 만악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3대가 닮을 정도로 고집이 똑같았으며, 세대 간 갈등 특히, 본처와 후처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집안과 나라를 분열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또 세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였으며, 결국 아버지가 적국에 투항해서 자신이 이룬 국가와 아들들의 목숨을 거두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세부적으로 견훤 일가의 갈등과 파국인 어느 정도는 창작이 들어가기는 했으나 토대 자체는 역사에 근거한 사실이다.

5.2. 사벌주세력

5.3. 책사 및 신료

5.4. 주요 장수

5.4.1. 후백제 건국 전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견훤의 경주의 군관으로 있을 때부터 의형제를 맺었고, 견훤의 금성(錦城) 관내 미다부리정의 지휘관으로 있을 때, 건국 직후에 입조한 이들이다.

5.4.2. 후백제 중반 이후

이들은 상주 전선에 있던 왕건이 잠시 중앙에 소환되고 나서, 견훤이 계책으로 환선길의 후고구려군을 무찌르고 귀환한 이후부터 등장한 장수들이다. 먼저 하차한 지휜과 최필, 그리고 애술을 제외한 대부분이 신검의 편이며, 대부분이 신검의 난에 참여했으며, 일리천 전투 와중에 전사하거나 이후 대거 처형되었다.

5.5. 그 외 인물

6. 신라 측 인물

태조 왕건에 나오는 신라 왕들은 유독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미스 캐스팅인데, 만 15세에 즉위해 만 29세에 사망한 경문왕은 즉위 전의 모습부터 당시 만 44세의 이성용이, 골격이 흡사 건장한 사내와 같다고 기록된 진성여왕은 평균키보다 살짝 큰 노현희[89]가, 견훤의 신라 침공 당시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경애왕은 당시 만 56세 문회원[90]이, 한술 더 떠 정태우가 연기했던 최응과 동년배로 추정되는 경순왕은 당시 만 62세의 신귀식이 맡았다. 이환경 작가가 사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망국의 왕이라 그런지 왕들에 대한 묘사도 경순왕을 빼면 대단히 평면적인 암군 묘사 위주로 일관되어 드라마 완성도에 대한 옥에 티로 남는다.

6.1. 국왕

6.2. 왕족 및 신료

6.3. 지방관 및 장수

7. 발해 측 인물

8. 요나라 측 인물

9. 주요 호족들

서술된 이들 외에도 많은 호족들이 있으니,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

10. 승려

11. 그 외의 인물


[1] 머리를 기른 제자. [2] 태봉의 초기 국호는 후고구려 였으며 극중에서는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후고구려는 시대를 분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초창기 국호인 고려는 3년 동안만 유지하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7년후에는 태봉으로 바꾸었다. [3] 사료에 나와있는 왕건의 부인들은 모두 29명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다 소개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신혜왕후와 장화왕후, 충주부인 유씨 3인만 등장하게 했다. 나레이션에서도 간략하게만 언급한다. [4] 신숭겸의 후손이다. [5] 실망이라기보다 절망에 가깝다. 극중에서는 부인을 둘 이상 두는 것은 당시 황제였던 궁예의 허락을 구해야 할 정도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 동시에 여성의 정조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사람과 그 부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6] 이는 당시 박상아가 동 시간대의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었고 연장 방영에 대한 부담감 등을 이유로 조기 하차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 연예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7]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는 비용의 대부분을 내라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8] 복지겸의 해당 발언은 능창을 잡은 이후, 왕건을 데려오라는 궁예의 명을 받고 내려올 무렵에 말한 것이다. [9] 단, 왕요와 왕소는 드라마에서 아역으로만 나온다. 고창 전투 이후인 174회에서 예성강 전투 사이에 왕소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형제가 등장한 것이 유일하다. [10] 황제인 궁예가 승낙한 마당에 유천궁이 반대할 힘이 없었다. 이후(궁예가 석총은 죽인 그 때)에 그 얘기를 들은 딸인 유씨(부용)와 오씨(도영) 및 오다련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11] 당시 하객으로 아자개와 그 일가가 참석했다. 태평의 아이디어로 박술희가 직접 상주에 방문해 청했고, 박술희와 왕건을 호의적으로 대하게 된 지 이미 오래였던 아자개는 아들의 적장이 치르는 혼례에 청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긍달의 말에 따르면 혼례를 계기로 아자개의 상주와 유긍달의 충주를 우호적인 관계로 확실히 만들어 두려는 것이었으며, 이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은 견훤은 펄펄 뛴다. [12] 둘째 부인 오씨가 바로 나주로 가 고려 건국 때까지 그 곳에 머문 탓에 심한 대립은 없었다. [13] 1997년 KBS 주말연속극 첫사랑에서 장군이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첫사랑에서는 최수종을 외삼촌으로 만났는데 태조 왕건에서는 아버지로 만났다는 것이다. [14] 여담으로 배역을 맡은 안정훈은 극 중 모친으로 나온 장화왕후 역의 염정아보다 나이가 많아 미스 캐스팅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15] 광종이 나오는 장면은 극의 흐름상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못 보고 넘어가도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16]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었으며, 드라마 촬영 중인 2001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17] 여담으로 왕식렴 역을 맡은 정국진은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욱으로 야인시대에서는 이만섭 역을 한 배우이지만, 2004년 구미호 외전 이후로는 지상파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18] 여담으로 고려 건국 직후에 수단령으로 맡았으며, 조물성 전투 당시에는 순군부 휘하의 장수로 나왔다. [19] 건강을 이유로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물러났으며, 이후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20] 본명은 박지영 [21] 이때, 왕건이 사화진 전투에서 꾼 꿈을 해몽함으로서 '최지몽'이란 이름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22] 최응이 맡고 있던 병부령 직은 배현경이 이어받게 된다. [23] 물론 유금필 문서의 7.1.문단 하단에 나오지만, 초반에는 그도 실수가 다소 있었다.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불패의 용장. 실제로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는 인물이라 왕건의 서남해 공략때는 참전한 기록이 없기에 극중에서 실수한 일도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다. [24] 생긴 걸 보니 무식하겠다, 천자문은 뗐느냐고 비꼰 아자개 앞에서 『 대학 (大學)』의 한 구절을 읊어 좌중을 놀라게 했는데, 현대로 비유하자면 "초등학교는 나왔고?" 라는 말을 듣고 "여기 석사 학위입니다." 한 것이다. 실제 박술희는 호족 출신이니만큼 우수한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박술희를 연기한 김학철에게 한문 해독 능력이 별로 없는 것인지, 구절을 끊어 읽는 방법은 모조리 잘못됐다. [25]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변사부와의 대련에서 밀리지 않은 실력을 보였다. 이 대련을 지켜보던 왕건과 유금필도 "예사 사람 같지 않다."라고 놀랄 정도. 이 대련은 주변 사람들이 그만 하자고 말려 무승부로 끝났다. 덧붙여 변사부 역을 맡은 배우 나한일은 실제로 검도 유단자다. [26] 옛 상관이었던 은부가 조치한 것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내군은 주인을 따르는 개처럼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쳐야 하는데 염상은 언젠가부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염상은 은부의 조치에 순순히 따르며, 은부는 종간에게 "목숨을 거둘까도 했으나 옛 정이 있어 인사조치로 끝냈다" 라고 보고한다. [27] 조물성 전투 이전, 경보가 중국에서 옥룡사로 향할 때 등장한다. [28] 드라마 초반에 궁예가 공격했던 철원성의 부장으로 나왔다. [29] 왕충 역 이전에 청주의 호족 진선 역으로 나온적이 있다. 형인 선장(김명국)과 왕건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홍유의 언월도에 썰리게 되었다. 이후 형인 선장은 백제의 상귀로, 동생인 본인은 고려의 왕충으로 환생하게 된 셈 [30] 극 초반부에는 기훤에게 간 양길의 사자로 나와서 목이 잘릴 뻔한 역을 맡았으며, 극 후반부에는 박영규의 집사로 출연하여 견훤을 금산사에서 탈출시키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1인 多역이 많았던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배역을 소화한 인물들 중 1명. 그 외에 이병욱이나 김창봉(서남해 호족, 왕창근, 의원, 김행 역)도 1인 다역을 많이 하였다. [31]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에 출연했다. [32] 훗날의 '이도' [33] 서목이 왕건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남천이 이천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고려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운주성 전투때의 일이라는 것과 서목과 이치가 친분이 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 [34] 이치 본인도 속았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추격해 따라잡았지만 박영규가 이끄는 잔졸 백제군의 치열한 저항으로 끝내 실패한다. [35] 다만 웃긴 것은, 이치에게 성절이라는 시호를 내린다는 내용이 내레이션이 아니라 왕건의 대사로 나온다는 것이다. 즉 멀쩡히 살아서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라는 대사도 치는 인물에게 시호를 내린 것이다. [36]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수 방효태로 열연하였다. [37] 순행에 미향을 동행시키자는 것은 강비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일전에 종간과 은부의 명을 받은 염상이 미향을 살해하려는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된 그로서는 궁예가 궁을 비우고 나면 미향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청한 것.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미향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 나고 자랐던 북원의 폐허(양길 처단 후, 은부의 명으로 불타 없어짐)를 보고 발광하다가 은부에 의해 몇 번 제압되었고 이후 명주에서 한 번 더 발광하다가 은부가 그녀를 관아 내 건물에 가두고 바깥에 못질까지 했는데, 건물 내에서 아이의 환청을 듣고 서성거리다가 양초를 건드리고 그것이 화재로 이어져 탈출하지 못하고 숨지고야 말았다. [38] '바람의 손자'라는 닉네임이 있는 어느 야구선수와는 당연히 동명이인이다. 2016년 12월 10일, 32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39] 이와 관련해서 116화에 강비가 최후를 맞을 때 나레이션의 말미에, 철원 지역의 설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왕건과 강비의 정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밝혔다. [40] 강비 자신에게는 흠 잡을 데가 없으나, 그 부친이 성품이 경망스러운 강 장자라 곤란하다는 이유. [41] 극중의 종간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강비를 처음 보고는 황후감이라고 점찍는다. 그러다 은부로부터 왕건의 정혼자라는 사실을 전해듣고, 황후가 될 만한 인물과 왕건이 결혼하게 두었다가는 왕건이 옥좌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생겼다고 판단하고는 국혼을 더욱 서두르게 된다. [42] 자신의 사위이자 국왕인 궁예가 백성들을 구제하는 미륵을 자처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후고구려가 창건된 명분과 이념을 대놓고 부정할 뿐 아니라 자신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43] 최치원 역을 맡은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며 야인시대에서 오무라 형사를 맡았다. [44]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아침에 신천 강씨 세력가가 나오는데, 이를 보면 집안 전체가 멸족된 것은 아니다. 이 양자도 이후 어떻게 되었다고 설정되지 않았으니, 목숨을 건졌을 가능성이 높다. [45] 다만 세달사와 서라벌에서는 승려로, 이후에는 환속하면서 지낸다. 10화를 기점으로는 삭발되었던 머리가 장발이 되었다. [46] 궁예가 앓아누울 때는 관료들 중에 최고 우두머리인 광치나를 제쳐 놓고 조회를 주관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할 말 다 한 셈. 유천궁이 딸 유씨와 왕건의 혼인을 추진하며 왕건이 훗날 왕이 될 인물이라고 평하자, 그 말을 들은 유천궁의 처가 "이 나라에는 폐하 다음으로 내원이라는 분이 계시지 않사옵니까?"라고 하기도 한다. [47] 궁예가 아무리 폭정을 저질러도 결국 자신은 그의 신하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나라를 위해서는 역성혁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접고 궁예에게 직언을 해서 상황을 바꾸려 하지조차 않았다. 그나마 아지태를 몰아내기 위해 왕건과 손을 잡는 모습도 보이기는 했으나, 이마저도 아지태를 제거하는 게 급해서였지 왕건과 완전히 화해할 목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48] 종간이 떠나지 않고 내원에 있다는 사실을 최응이 알려주었다. [49] 14회에서 양길이 기훤에게 사자를 보내오자 기훤이 사자를 죽이려는 것을 원회가 말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기훤이 당장 내일 아침에 양길을 치러 출정하겠다고 선언하자 원회가 거듭 말렸고, 이에 개돈 기훤이 원회의 얼굴에 술잔을 끼얹고 그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50] 이 때 종간과 신훤, 원회와 넷이서 잠시 만난 자리에서 "너희가 양길 대장군을 디딤돌로 쓸 생각인 것 다 알고 있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만 그것은 겉보기로만 그런 것이었고, 종간 등에게 한 말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 궁예 일행이 보내지게 될 석남사라는 곳은 어떠한 곳인지와 양길이 궁예를 사실 의심하고 있으며 양길의 측근 복지겸을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준 것이었다. 이후 석남사로 가는 동안에 종간이 은부에게 뒤늦게 감사를 표하고, 은부가 궁예의 부하가 되어 충성을 다 할 작정이라고 밝히는 장면도 있다. [51] 초기에는 병부령을 겸해서 맡긴 했지만, 궁예의 순행 이후에는 복지겸이 병부령을 맡게 된다. [52] 한자가 완성형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來犬 金夫 4글자를 장평 50%로 줄여놓은 형태였다. [53] 드라마 초반 금성(錦城)태수의 비장 역으로 나왔다. [54] 따라서 드라마를 굳이 1부와 2부로 나눈다면, 궁예가 진 주인공이었던 1부(~120화)와 왕건과 견훤의 후삼국 쟁탈전과 후삼국 통일을 다룬 2부(132화~200화) 사이(121화~131화)가 1.5부로 봐야 할 것이며,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 연이은 혼란을 수습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55]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염상 역을, 드라마 무신에서는 이자성 역을 맡았다. [56] 방송인 조향기의 아버지로 이 드라마 이후에 야인시대, 제5공화국 등 사극과 시대극에서 조연으로 나오다가 2007년 1월에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57] 당시 이들이 머물던 주막 주인이 환선길의 옛 수하라서 방을 빌려 준 것인데, 그 주인의 아내가 이를 한탄하면서 내군에게 알렸다. 문제는 내군 장군인 복지겸이 이 사실을 보고받았을 당시가 왕건이 부인들과 신료들을 이끌고 아자개를 맞이하던 길이었고, 매복하고 있던 이흔암 일당이 쏜 독화살에 장일이 맞고 사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58] 극중의 순서가 아니라 실제 촬영된 순서를 기준으로 하면 신검이 처형되는 신이 가장 마지막이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특별 방송분을 보면, 이 장면 촬영이 끝나자마자 장장 200부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하는 자리가 벌어진다. [59] 삼국기에서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삼국기에 이어 태조 왕건에서도 극중에서 서인석과 부자지간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60] 코미디언 최승경의 부인이다. 당시 임경옥이라는 이름으로 출연. [61] 그녀와 박영규 사이의 딸 하나가 왕건의 부인이 되고, 다른 두 딸은 고려 3대 왕인 정종의 왕후가 된다. [62] 신검 삼형제와 결국 사이가 틀어지기는 하나, 이는 삼형제가 일방적으로 적대한 결과이며 금강 쪽에서는 신검 등을 드러내 놓고 비방한 적이 없다. 자신을 다음 왕으로 낙점하는 견훤이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하자 노력하겠다고 답하기도 했으며, 그 이후 고비로부터 신검 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63] 드라마 종영 후 자신이 배역을 맡았던 능애의 이름을 따서 충남 공주시 정안면 평정리에 능애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다. [64] 친신검파 인물들 중에 "정 안 되면 힘으로라도..." 라는 식의 발언을 가장 먼저 한 것이 능애다. [65] 1인다역으로 드라마 속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첫 등장은 드라마 초반 서라벌에서 죽주 사이의 성의 관문을 지키는 군관으로 나오면서 궁예와 종간에게 위홍의 죽음을 알린 역할을 한다. 두번째는 궁예군이 명주성으로 향하며 백성들에게 양식을 베풀고 모병을 할 때 모병관으로 등장한다. 세번째는 고려국이 금성(현:나주) 공략할 당시 능창에게 생선을 갇다 드리는 인물중 한명으로 나오고 네번째 청주 반란군을 진압할때 성문 수문장으로 나오며 다섯 번째 역할이 진호다. [66] 무려 천년 묵은 산삼을 보냈다. [67] 이 부분은 199화에서 복지겸과 내군 부장간의 대화에서 나왔다. [68] 3년뒤 무인시대에선 견훤역의 서인석( 이의방)과 부부로 출연한다. [69] 아이러니하게도 남원부인이 '백제로 가봤자 결국 구박덩어리가 된다.'고 한 발언은 훗날 백제가 후계자 문제를 놓고 일이 터지면서 앞날을 예측한 격이 됐다. 실제로 아자개가 백제에 있었다면 아자개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 진짜로 무슨 일을 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백제 내부에서도 초반에는 아자개를 그래도 모셔야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갈수록 금강때와 다를바 없이 적대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70] 그를 소개할 때 나레이션으로 최언위는 나중에 소개한다고 되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71] 미리 이런 일이 든다는 예감에 하인들을 내보내고, 족자들을 태웠으며, 능환과 군사들이 올 때, 미리 독약을 든 차를 마시면서 눈을 감았다. [72] 근데 정작 활약상을 보면 능환보다도 나아 보인다. 실제로 그의 계책이 최승우에게 칭찬받는 장면도 몇 번 있는데, 종훈 자신이 퇴장하게 되는 운주 전투에서 견훤을 무사히 피신시키기 위해 가짜 어차와 짐수레를 보내는 계책도 종훈이 낸 것이다. 왕을 어떻게 짐마차로 모시느냐는 반대가 있자, 최승우는 곧바로 "좋은 계책이다. 공산 전투 때 고려 왕이 우리 군졸의 옷을 입고 도망친 것과 같은 것이다." 라며 변호하고 나선다. [73] 종훈은 전략을 만들어서 신검에게 올렸으나 채택이 되지 않았다고 변명했으나, "그건 그렇다 치는데, 우리에게 항복했던 고창 주변 성들이 다시 고려에게 가 붙는 동안 네가 한 게 뭐냐" 라는 견훤의 꾸중에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74] 전작인 용의 눈물에서 정종 역할을 맡았고,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중년의 한병태를 맡았다.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75] 처음에는 나주 포구를 맡은 고려군 부장으로 경보대사를 옥룡사로 그냥 보내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후 드라마 대조영에서 신라의 장수 김찬으로 열연하였으며 불멸의 이순신 에서는 신숭겸의 후손인 신립 역을 맡는다. [76] 역사상 원래는 공직이 투항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공직 역할을 맡은 이정웅이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하차하면서 염흔이 투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만 염흔이 투항한 것은 고려사에 실려 있으므로, 이 인물 자체가 창작이거나 투항했다는 기록이 없는 사람을 공직 대신 고려로 보냈거나 한 것은 아니다. [77] 사실, 역사대로라면, 오래 나와야 하지만, 후술한 사건사고 하나로 인해서... 일찍 퇴장한 셈이 되었다. 배역을 맡았던 강재일 또한 이후, 대조영까지 출연을 할 수 없었다고... [78] 다만, 해당 장면에서 신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이는 배우인 임병기가 낙마하면서 이탈한 것이다. 결국, 그가 처형 직전에 하려고 한 말은 파달이 하게 되었다. 다만,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이후 임병기는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최언위의 아들인 최행귀를, 무인시대에서는 전존걸을 맡았다. [79] 드라마 중반, 청주의 호족 선장 역을 맡았는데, 고려 조정 초기 임춘길에 의한 청주의 난 당시 임춘길이 보낸 부장으로 알고 청주 관아로 들어온 홍유의 일기토에 단번에 전사한다. [80] 최응의 하인으로 등장하였었다. 그 이후에는 상애역을 맡음. [81] 사실 유금필이 싸움을 못했다기 보다는 화살에 맞은 유금필의 한 팔을 스크래치 낸 수준이다. 그래도 백제군에서 유금필의 털끝이라도 건들어 본 사람은 최필 하나뿐이다. [82] KBS 유튜브에서 다시보기를 제공했는데, 느린 그림으로 천천히 살펴보면, 최필을 벤 인물이 장군급인 이치가 아닌 무명 배우로 평범한 고려 부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치보다 더 늙은 모습에 흰 수염이 확실히 보인다. 단, 왕건에게 최필의 목을 가져다 주는 부장은 이치가 베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치의 부대가 베었다는 말을 한 것이 그렇게 전해진다. 다시 얘기하지만 느린 그림을 보면 평범한 부장이 단칼에 베었다. 예전에는 부하가 한 일을 주인이 한 것으로 많이 보고 되기도 하였다. [83] 진지하게 따지자면, "무력 밸런스" 라는 것 자체가 무리가 많다. 무력이든 다른 능력이든 언제나 일정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 그 날의 컨디션이나 심리 상태 같은 것에 따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래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운주 전투에서 최필이 전사했을 당시는 이미 후백제군이 패배가 결정된 상황이었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견훤이 무사히 도주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상황이었으므로, 아무리 스스로 원한 것이라고는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보면 그만이다. [84] 드라마 초반에 능창의 부장으로 나왔다. [85] 드라마 시작 부분 철원성으로 향하는 궁예군을 보고하는 신라군 전령을 시작으로 전령이나 부장으로 등장하였다. 이후로도 전령 역할로 간간히 출연하다가 장수들을 천거한 이후에 장군직으로 고정이 되었다. 이후 드라마 대조영에서 마지막화까지 등장하는 고구려의 부장인 무염으로 등장한다. [86] 고려군에선 태평이 죽었고, 백제군에선 금강이 역병에 걸렸다. [87] 이 기병은 상대가 설마 견훤왕의 어의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백제의 중신으로 오해하여 살해했다. 아무리 전투 중이라 평상심이 아니었다고는 하더라도 중신이라면 포로로 잡아서 뭐 하나라도 토설하게 하는 게 이득이었으며 실제로도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별로 중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고증과 현실성을 둘 다 놓친 대목. [88] 용의 눈물에서 의안대군(이화)으로 등장. [89] 노현희의 키는 163cm로 대한민국 평균 여성보다 크고 연령대를 감안하면 꽤 훌륭한 키이다. 어찌보면 후삼국시대 당시 남성들 키라고 할 수도 있다. [90] 견훤 역의 배우인 서인석 보다도 나이가 많다. [91] 마의태자 역을 맡았던 이병욱은 극 중반부에 최승우가 사주하여 궁예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객의 일원들 중 하나로 등장한 바 있다. 다른 자객들은 궁예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준다고 하였으나, 솔직히 말하기는 커녕 왕건의 숙부인 왕평달이 사주하여 왕씨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궁예를 암살하려 했다고 진술하였고, 이에 제대로 분기탱천한 궁예가 국문장에서 철퇴로 동료 자객들을 모두 죽이자 이 쪽만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이 후백제에서 왔음을 실토하고 살아남았다. 그 전에는 효공왕에게 대야성에서 견훤의 백제군을 격퇴했다고 알리는 전령으로 등장했다. [92] 드라마 초반에 서남해 호족들 중 하나로 등장했으며 1.2차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의 침공을 막아냈다. [93] 후일 무인시대에서 왕광취로 분하여 서인석이 연기한 이의방에게 죽는 역할이 되었는데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를 참조할것. [94] 유염 출연 이전 118회에서 태봉 학사 '백락'을 연기하였다. [95] 지구용사 벡터맨의 레디아 공주 역할로 유명하다. [96] 옥에티로 그가 자살한 후 모습을 비출 때 뒤쪽에 현대인 복장을 한 제작진 중 하나가 슬쩍 지나간다. [97] 사실 철원성주의 명령 부터가 이미 늦었다. 철원성주의 전령이 송악에 도달할 당시에는 호족들이 모여서 다음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서 이미 철원성은 공격받고 있었고, 미륵군은 속전속결로 전초기지와 철원성을 함락시켰다. 철원성의 병력은 공격을 버티며 원군을 기다릴 수준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98] 전북도지사를 지낸 동명이인과는 다른 배우 출신이며, 후속 작인 무인시대에서 생선장수 출신의 이영진 역을 맡았다. [99] 사실은 "견훤 네가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라는 의미다. [100] 연회를 가장해 견훤을 죽이려고 했지만 견훤과 그 일행의 활약으로 역관광 당한다. [101] 흑수말갈 족장과 함께 1인 2역. [102] 용의 눈물에서는 양녕대군의 장인인 김한로로 나왔다. [103] 이환경 작가는 고질적으로 꼼꼼함의 부족을 보여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환경 작가의 작품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경우가 한둘이 아닌데 예를 들어 SBS 연개소문에서는 대걸걸중상을 대걸중상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 [104] 이때 백계산 옥룡사에 머물던 최승우를 모셔오기 위해 추허조와 함께 옥룡사에 갔다가 최승우가 무례하다는 이유로 추허조가 막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개고생을 했다. [105] 종례가 다시 태수가 된 것이 아니냐고 보는 경우도 있는데, 세 가지 이유로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일단 자막에 나주 태수라고 나오지 종례라고는 안 되어 있고, 종례와는 상호 존대하던 오다련이 이 인물은 아랫사람 취급하며 말을 놓는다. 게다가 고려로 귀부하기 위해 나주에서 출항한 견훤은 오다련을 보며 옛 생각에 젖는데, 오다련보다 종례를 더 일찍 만났던 만큼(극 초반에 견훤이 수달과 겨룰 때부터 수달의 책사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며, 오다련은 종례가 견훤에게 소개했다) 이 인물이 종례였다면 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 [106]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을 맡은 배우와는 동명이인인 1940년생 원로 배우. [107] 정확히는 종간과 왕건. 도선이 왕건이 후에 나라를 세우고 후삼국읕 통일할 인물이라고 도선비기에 적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인데, 종간은 이 예언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왕건을 계속해서 견제했다. 궁예는 이 예언을 반신반의했지만, 그 이전에 왕건과 종간을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 같은 존재들로 생각했다. [108] 작중에서 언급되기로 이미 한참 전에 출가하여 중이 된 지 오래였지만 화랑직을 겸임하여 경문왕의 등극에도 관여했다고 언급된다. 범교는 그 도선에게조차 존대를 받는 고승인데, 지금도 승려는 법랍이라고 해서 승려가 된 이후로 몇 해가 흘렀는가를 세는 나이 비슷한 것이 따로 있기 때문에 출가한 지 불과 8년 정도의 중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이런 대접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 실제 기록에서도 이미 경문왕이 헌안왕의 사위가 될 시점에 범교가 중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09] 이 때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륵을 자처했으나 결국은 도적으로 끝났다"는 언급을 하는 데 이러한 언급은 궁예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몰락에 대한 복선이 된다. [110] 작중에서는 범교와 경문왕 간의 명확한 관계가 나오지 않았고 거의 동료 화랑처럼 묘사되지만, 이후 범교가 도선대사에게 존대를 받고 본인은 도선에게 하대하는 것으로 보아 도선보다 연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문왕은 도선보다 17 ~ 20세 정도 아래이기 때문에 범교와 경문왕이 동료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작중에서도 범교가 경문왕의 선배일 가능성이 높다. [111] 머리카락을 기르는 불제자를 말한다. [112] 100회부터 106회까지 지리산 도인으로 출연하였으며 도인이 지어준 탕제를 마신 궁예가 답답함을 참지 못해 은부에게 도인을 죽이라고 명하여 죽임을 당한다. [113] 신라의 군관으로 출연하였다가, 이후 백제의 척후병으로 열연하였다. [114] 죽은 아이는 촌노의 손자이거나 늦둥이로 추정이 된다. [115] 이때 작중에 나온 태봉의 사정이 말이 아니었는데 태조 왕건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에서 고작 2회 밖에 안 지난 시간대였고(태조 왕건 100회) 궁예가 무리하게 북벌을 추진하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고혈을 짠 탓에 북벌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궁예가 잠행을 하는 도중에 곳곳에 시체들이 쌓여있고 백성들이 유리걸식을 하고 있었다. 궁예의 무리한 북벌 추진이 얼마나 나라를 내외적으로 썩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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