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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0년~2002년 까지 방영된 KBS 대하 드라마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에 대한 문서드라마가 워낙 길었는지, 몇몇 조연들은 1인 다( 多)역을 하기도 하였다. 관련 인물에는 ★ 표시. 그리고 가상의 인물은 ☆, 사료와 달리 일찍 하차한 인물들은 #.
한편, 왕건 측과 궁예 측의 인물들 중에는 두 정권에 걸쳐서 활동한 인물들이 많은데, 왕건에게 협조적이었거나 그의 즉위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출사한 인사들을 왕건 측으로, 대립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인물들을 궁예 측으로 정리한다.
2. 세 주인공
-
왕건 (
최수종 분 / 소년기: 오현철 분)
자세한 내용은 왕건(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고려를 건국한 초대 황제이다. 송악의 성주 왕륭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도선대사로부터 수학한 유발제자[1]이다. 처음에는 뱃일을 도맡으며 노쇠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송악의 성주로 그 임무를 다하다가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송악에 다다르자 아버지와 함께 송악을 바치며 태봉국의 왕 궁예의 신료가 되었다. 궁예는 어릴적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을 계기로 그들을 성대히 맞이하였고, 왕건에게 장군직을 하사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궁예의 직속장수가 된다. 북원과의 첫 전쟁에서 총사령관으로 출전하여 양길로부터 승리를 거두는 것을 시작으로 승승장구하여 궁예의 눈에 들었고, 극 중에서 의형제를 맺으면서 궁예의 신임을 받았다. 후에 폭군으로 변모한 궁예도 왕건에게만큼은 죽는 그 순간까지 신임에 변함이 없었다. 왕건이 장군이 된 이후로는 궁예는 직접 전투에 나서지 않을 정도로 왕건에게 군사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맡길 정도로 신임을 받았으니 거의 황제에 가까운 권력을 갖기도 하였다.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인 금성을 공략해 취함으로써 궁예가 후삼국 중 가장 넓은 영토와 힘을 갖게 하는데, 왕건이 앞장섰다. 사주를 풀이하여 왕건과 궁예가 상극임을 알게 된 종간의 이간질에도 궁예의 신임을 받아왔으며, 그 때문에 부하 장수들의 혁명 설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충성을 맹세했었다. 결국엔 백성들의 굶주림과 어려움을 보고, 오랜시간의 고민끝에 역성혁명을 일으킴으로써, 태봉국을 멸망시키고 고려를 건국한다. 덕을 겸비한 황제로 많은 신료들의 존경을 받았으며, 똑 부러지는 일 처리로 후백제와 다르게 태자(정윤) 문제를 해결했으며, 조물성 전투에 공산 전투, 삼년산성 전투 등 어려움을 계속해서 겪는 와중에도 이를 헤쳐나갈 수 있는 묘책이나 인물이 계속해서 등장하며 위기를 넘겼다. 신료들의 권력 암투를 없애는데도 특출한 대화법을 이용해서 모두를 다스렸으며, 이러한 왕건을 위해서는 목숨을 기꺼이 바치려는 인물들이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
궁예 (
김영철 분 / 소년기:
맹세창 분)
자세한 내용은 궁예(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신라 왕과 후궁의 아들로 태어나 왕족의 피를 이어받았음에도 권력에 밀려 목숨을 잃을 뻔했던 인물로 신라를 증오했다.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이 어린 궁예를 살리고, 세달사를 가겠다는 궁예의 뜻에 따라 보내지게 되었다. 세달사에 도착한 궁예는 그 곳에서 사형인 종간을 만나 수행을 쌓고, 길을 떠나 전국을 떠돌다가 죽주의 기훤과 북원의 양길에게 의탁했고, 백성들을 돌보면서 여기저기서 사람이 모여들어 황제로 추대했다. 이후 태봉[2]을 건국하였는데, 처음에는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이들이 원할 만한 일이 아니거나 힘들 것 같은 일이 있다면 결단코 하지 않을 정도의 성군으로 자리매김했으나 건국 이후 순행길에 올랐다가 청주의 아지태를 만나 대동방국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되어 수도를 무리해서 옮기고 나라 이름을 계속 바꾸면서 가혹한 나라 운영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죽음의 기로에서 일어선 뒤에는 더욱 폭정이 심해져 특유의 관심법을 통해 죄가 없거나 작은 죄를 지은 자들까지 모조리 숙청했는데, 이는 장인이나 황후도 예외가 아니었다. 결국 궁예의 폭정에 질린 신료들이 하나둘씩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고, 결국 왕건이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궁예는 명성산으로 피신했으나 피할 길이 모두 막히자 왕건에게 자신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는 성군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은부에게 부탁해 삶을 마감하였다. 그렇게 궁예가 세운 나라 태봉은 멸망한다.
-
견훤 (
서인석 분)
자세한 내용은 견훤(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신라 여왕의 숙부를 경호하는 군관 출신으로 등장해 인생을 살다가 위홍 사후, 능환, 추허조 등 휘하의 의형제들과 함께 금성(錦城,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의 미다부리정으로 발령받아 이동해 터를 잡았고, 그것을 기반으로 나라를 세웠다. 특유의 호탕함과 완력으로 성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성주들을 휘하에 두었고, 이윽고 후백제를 건국하여 황제에 오른다. 궁예와는 달리 전투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신라를 상대로 유화책을 폈던 왕건과는 달리 신라를 힘으로 무너뜨리려 했다. 작중의 주인공인 왕건과 가장 오랫동안 대립하는 라이벌로, 조물성 전투를 시작으로 공산 전투, 삼년산성 전투 등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한계도 많았는데, 최측근이며 중신들인 능환과 최승우의 갈등, 장남인 신검과 막내 금강 사이의 권력 다툼, 황후와 후처인 승평부인 간의 갈등, 친부인 아자개와 사실상 절연함은 물론 아자개가 왕건과 손을 잡아 상주 일대가 결국 고려에게 넘어감 등이었다. 결국에는 신검의 난이 일어나 금산사에 감금되었으나 탈출, 평생의 라이벌이었으나 사적으로는 친밀한 사이였던 왕건에게 의탁하여 자신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린 뒤 눈을 감는다.
3. 왕건 측 인물
3.1. 가족[3]
-
왕륭 (
신구 분)[4]
자세한 내용은 왕륭(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왕건의 부친으로 일찍이 도선대사를 통해 왕건이 황제 될 것임을 알고 훈육을 했으며, 궁예에게 송악을 통째로 맡기면서 왕건을 그의 부하로 두게 한다. 그리고 본인은 금성(金城, 지금의 김화군)의 태수직에 있다가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난다.
- 한씨 (서우림 분): 왕륭의 부인이자 왕건의 어머니로 왕륭의 사망 이후, 암자에서 여생을 보낸다는 말과 함께 하차한다.
- 신혜왕후 유씨 ( 박상아 분)# : 왕건의 첫째 부인으로 송악 인근 정주의 대호족인 유천궁의 딸이며, 극 중의 이름은 부용. 1차 나주 침공 당시부터 등장해 부친의 권유로 왕건의 시중을 들면서 약혼을 하기는 했으나, 이후의 전개 상황에 실망했는지[5], 자살을 기도하다가 석총에게 발견되어 그가 머물던 절에서 승려가 되었으나 왕건을 잊지 못했는지 후에 석총을 처음 만나면서 그 소식을 들은 왕건과 오씨 부인이 절에 찾아가 되찾아 오고, 정식으로 왕건과 혼인을 맺었다. 첫째 부인이긴 하지만 초기 대소사는 둘째 부인이 맡았고, 이후 본격적으로 집안의 어른으로서 왕건의 혁명 당시에 가장 비중있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황후가 된 이후에 중병을 얻으면서 요양을 떠나면서 하차한다.[6]
- 장화왕후 오씨 ( 염정아 분): 왕건의 둘째 부인이자 2대 황제 혜종(왕무)의 어머니이다.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 관내의 목포의 호족 오다련의 무남독녀이며, 극 중 이름은 도영. 후백제 견훤 정권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있던 부친 오다련과 태수 종례(나총례), 수달(능창)이 대화[7]하던 중 다과상을 건내는 모습으로 첫 등장. 사내 못지않은 활동성으로 왕건의 1차 서남해 침공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후로도 나주에서 태수인 부친보다 더 열심히 챙기면서 복지겸한테 "갑옷을 입지 않을 뿐 장수의 모습이다."라는 극찬을 받기도 하였다.[8] 왕건이 궁예 정권 말에 시중이 되면서부터는 출산과 아들 무의 양육 등의 이유로 나주에서 머무는데, 그 이후부터는 여장부가 아닌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변모하면서 전쟁을 걱정하고, 사람이 죽고 사는 부분에 대해서 크게 염려하는 전형적인 전국시대 여인네의 모습으로 바뀌게 된다. 고려 건국 이후 충주부인 유씨과의 갈등 속에서 아들 무를 정윤에 책봉하게 된다. 첫 부인이자 황후였던 유씨(부용)가 떠난 후, 황후가 공석이 되면서 조물성 이후 자연스레 왕후가 되면서 드라마 후반대에는 그녀를 보여주면서 자막이나 대화에 '나주부인'이나 '오씨' 대신 '장화왕후'로 많이 나온다.
- 충주부인 유씨 ( 전미선 분): 왕건의 셋째 부인이자 고려의 3대, 4대 황제의 어머니[9]로 충주의 대호족인 유긍달의 딸로 극 중 이름은 수인이며 전선에 복귀한 왕건이 잃었던 전선을 회복하기 위해 사벌주성의 아자개를 만나려 할 때, 유긍달의 집에 들를 때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전투(사화진 전투) 이후 궁예와 첫째 부인의 아버지인 유천궁[10]의 허락으로 왕건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11] 이후 철원으로 오긴 했지만, 둘째 부인인 오씨와의 미묘한 갈등 탓[12]인지 소리소문없이 지내오다가 고려 건국 이후에 신혜왕후가 궁에서 떠나고, 아들인 태자 태를 낳자, 태를 정윤에 오르려고 대립을 세웠다. 하지만 태가 일찍 요절하고 나서 오씨와 화해하고 이후 최종화까지 오씨와 함께 등장한다. 여담으로 자막에는 첫 부인인 유씨(유천궁의 딸)가 있기 때문에 창작명인 '수인'이라고 했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유씨'라고 나온다.
- 왕무 ( 안정훈 분 / 소년기: 강민규 분)[13]: 왕건의 장남이자 장화왕후 오씨의 유일한 아들이다. 왕건이 시중이 될 무렵에 태어나, 이후에는 아역 배우만 나오다가, 배역이 성인으로 들어서고, 조물성 전투부터 부친과 함께 전장에 나서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14]
- 왕소 (배우 미상):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한 번 짧게 나온다. 극의 배경이 태조 시절 이야기라 비중은 없으며 굳이 출연할 필요도 없었으나[15], 내레이션으로 훗날 광종이 되는 인물이라는 설명이 짧게 나온다.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3.2. 친인척 및 송악 시절의 인물들
- 왕평달 ( 장항선 분): 왕륭의 아우이자 왕건의 숙부이며, 왕식렴, 왕신의 아버지. 왕륭 사후 연일 전투에 나서는 조카를 대신해 집안을 이끌었으나, 궁예 암살에 연루되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궁예의 명으로 두 스승들과 함께 외딴 섬으로 유배를 가면서 하차한다.
- 변사부 ( 나한일 분)☆: 왕건의 무예 스승. 1차 나주 공략 때 왕식렴과 이치와 함께 큰 역할을 했으며, 후에 왕평달, 마사부과 함께 유배를 가면서 하차한다.
- 마사부 (박영목 분)[16]☆: 왕건의 글 스승. 왕륭이 금성태수로 부임할 때 동행해 왕륭의 임종을 지켰으며, 이후로는 왕평달, 변사부와 함께 암살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가면서 하차한다.
-
왕식렴 (정국진 분)[17]
자세한 내용은 왕식렴(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왕건의 사촌 동생으로 일찍부터 왕건을 보필하면서, 나주 공방전에서 활약했으며, 이후에는 북방 지역을 다닌 적이 있었다. 고려 건국 이후에는 서경 총관으로 발령받아 그 곳의 책임자로 활약한다.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건 사후, 왕규와 대립하면서 그 권력을 드러내는 인물이다.
- 왕신 ( 김광영 분): 극 초반인 허월이 송악에서 도선의 죽음을 알릴 때부터 등장한 왕건의 사촌동생으로, 형인 왕식렴에 이어 사촌 형인 왕건을 돕다가[18] 조물성 전투 이후 화친의 목적으로 후백제에 볼모로 잡혀갔다. 이후 화친이 깨지면서 극 중 자결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한다. 극중에서는 왕식렴이 "하나뿐인 아우" 운운하기도 하는데,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육이라는 다른 아우가 나온다.
- 장수장 ( 장순국 분)☆: 가상의 인물로 왕건 집안의 집사이자 무예 스승. 왕건이 황제로 즉위한 후에 복지겸 휘하의 내군으로 들어갔다. 환선길이 반란을 일으킬 땐 기지를 발휘해 왕건 일행을 위기에서 구해내기도 하는 인물. 이후 왕무에게 무예를 가르쳤으며, 왕무의 첫 번째 전투인 조물성 전투에서 용검의 계락으로 위기에 처한 왕무를 구하려는 도중 상귀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을 보고 달려나온 용검과의 싸움 끝에 전사했다.
- 유천궁 ( 김진해 분)[19]: 신혜왕후 유씨(부용)의 아버지이자 정주의 대호족. 왕건이 나주를 취하기 위해 훈련과 배를 건조하려 할 때 왕건을 사위로 삼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다시파하여 왕건을 사위로 맞이하였다. 그러한 왕건이 황제가 되니 최고의 가문 반열에 오른 셈이다. 그러니 황후인 딸 유씨가 자식없이 병환으로 인하여 요양을 떠나면서 인생이 너무도 허무하다는 독백을 한 뒤 조정에서 물러난다.
- 오다련 ( 이일웅 분): 장화황후 오씨의 아버지. 대본 작가의 실수인지, 극중에서는 '오다린'이라고 주로 불린다. 금성(錦城, 지금의 나주) 관내 목포의 호족으로 소금업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으며, 견훤의 순행 도중, 태수였던 종례와 함께 인사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한다. 견훤의 압박에 힘들어하다가 서남해 공략을 목표로 한 왕건의 계획을 듣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면서 왕건이 보낸 사람들을 창고에 가두었으나, 사정을 안 딸 도영의 설득에 종례와 함께 견훤을 배신하고 왕건에게 의탁해 서남해 일대를 왕건의 영향력 아래 두도록 한다. 이후, 나종례의 뒤를 이어 나주 태수를 맡다가 고려 건국 이후 중앙에 들어와 광평성의 원로로 지냈는데, 자신의 외손을 정윤으로 책봉하고자 박술희를 대신해 왕건에게 주청했으나 이후 이를 둘러싼 대립 끝에 왕건의 질책을 듣고 향리로 내려갔다. 드라마 후반부에 나주에서 다시 등장해 견훤의 금산사 탈출과 관련된 내용을 왕건에게 전해주고, 금산사를 탈출해 나주를 떠나 왕건에게 가는 견훤을 배웅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하차했다. 여담으로 배웅을 받으며 견훤은 고비에게 "저 사람은 50년 전부터 나를 봐왔던 사람."이라고 하였다.
-
유긍달 (
민욱 분)
자세한 내용은 유긍달(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충주부인 유씨(수인)의 아버지로 권력욕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계 구도를 놓고 오다련, 패서 지역 호족들과 권력 싸움을 하다가 왕건의 질책을 받고, 오다련과 향리로 내려가게 되면서 140화에서 태자 왕무의 정윤 책봉식을 끝으로 퇴장한다.
3.3. 주요 신료
-
태평 (
김하균 분)
자세한 내용은 태평(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유금필 휘하의 군졸로 충주 전투에서 회의 중에 처음 등장했다. 왕건을 비롯해 누구도 뾰족한 책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닌 간단한 일로 고민들 하신다" 라며 입을 열면서 병법서를 인용하며 묘안을 내놓고, 이것을 인정받아 왕건의 군사가 되어 2차 나주 전투와 고려 건국 이후에도 큰 공을 세우는 책사로 자리잡는다. 고려 건국 이후 병부령 겸 순군부령에 임명되었고, 건국 초기에 불안했던 나라의 정국을 다지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왕건을 위해 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스스로 공신 작위를 사양할 정도로 충성스러운 인물이었으나, 141화 이후 병부령으로 재직 중일 때 조물성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염병을 얻어 전장에서 세상을 뜨고 만다. 책사로서 여러 큰 공을 세웠기에 주군인 왕건도 매우 슬퍼했다. 실제로는 전투에 관여했다는 기록이 없는 최응이나 능환, 최승우 등과 달리 순군부의 낭중을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실제로 군무를 보았던 인물이지만, 고려 건국 이후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
최응 (
정태우 분)
자세한 내용은 최응(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뛰어난 신동으로 14세에 궁예의 눈에 띄어 그의 조정에 들어왔고, 이 때 만난 왕건을 여러차례 도운 일로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 광평시랑과, 병부령, 내봉경 등의 여러 요직들을 맡았다. 관련 문서에도 나오지만, 사서오경과 문장에 능통했으며, 전장에서 전략을 세우는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피가 탁해지는 것을 싫어하여 고기도 먹지 않았으며, 술을 마시지도 않고 맑은 죽과 나물로만 식생활을 지켰고, 궁예가 이를 듣고 성인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학자였다. 실제 역사에서는 군사에 관여했다는 기록은 없고 정치적인 부분에서 활약한 인물인데, 극에서는 병권까지 틀어쥐는 대단한 전략가로의 모습도 보여준다. 궁예가 황제로 있을 때는 늘 대전에서 궁예와 함께 있었고,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이후에도 늘 불려와서 왕건의 고민을 풀어주거나 조언을 하는 역할로 함께 있었다. 하지만 옥룡사의 경보와 백제의 파진찬 최승우의 점괘처럼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35세에 요절하게 되어 고려의 삼한통일을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죽는 순간까지 나라를 운영하는 법과 세상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글을 왕건에게 남겨 마지막 순간까지 왕건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충신.
-
박유 / 왕유 (
김진태 분)
자세한 내용은 박유(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처음에는 허월이 종간에게 추천한 박유라는 인물로 등장하여 아지태를 견제하고, 궁예의 아들들을 가르치는 학사로서 일하다가 궁예의 폭정에 앞날을 개탄하며 종간에게 글을 남기고, 금강산에 몸을 숨겼다. 왕건의 즉위 이후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 왕건의 자식인 왕무의 스승으로 모셨으며, 왕씨 성을 하사하여 왕유가 되었다. 조물성 전투 이후에 극중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
김행선 (
민지환 분)
자세한 내용은 김행선 문서 참고하십시오.
고려의 시중 벼슬에 있는 원로 대신으로 왕건의 역성혁명 이전부터 금서성이란 관청에서 관직에 몸을 담아 왔던 인물로서 종간이 임춘길을 통해서 고경참문을 만들어 왕건을 모함하려는 당시 동료 학사들과 최응과 함께 거짓으로 해석해 자신들과 왕건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였다. 왕건이 즉위한 이후에 시중에 임명되는데, 상당히 유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왕건의 장인들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이 140화 이후에 평양으로 파견되는 것으로 하나둘씩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신들 중에선 왕규, 추언규, 최지몽과 함께 최종화까지 등장한다.
- 왕규 ( 김명수 분): 140화에서 왕무의 정윤 책봉 이전, 추언규와 함께 천거된 신료로서 내봉성에서 많은 일을 도맡았으며, 김행선, 추언규와 함께 주요 신료로서 얼굴을 내민다. 역사적으로는 왕건 사후에 왕건의 장인의 한사람으로써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으로 권력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지만, 이 극에서는 오로지 왕건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문신으로의 역할이 전부이다.
- 추언규 (김경하 분)★ : 140화에서 중국 오월국에서 벼슬을 했던 인물로 왕규와 함께 천거되어 조정의 신료가 되었다. 여담으로, 처음 소개받은 때, 자막에 '추언위'라고 기재되었다. 이 배우는 태조왕건 초반에 견훤에 의해 함락당하게 되는 무진주 도독으로도 출연하였는데, 신강과 함께 막으려고 준비하던 중에 음독자결하였다가 후에 다시 다른 역할로 출연하게 된다.
-
최지몽 (지아니 박 분)[20]
자세한 내용은 최지몽(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천문에 밝은 신동으로 초명은 '최총진'이다. 조물성 전투 당시인 141화부터 언급이 되어 최응의 천거로 조정에 들어와[21] 최응의 측근 같은 역할을 하며, 그의 정신적인 후계자 같은 모습도 보인다.[22] 길흉화복을 점치면서 고창 전투의 승리나 후백제의 정변을 예측하기도 하였다. 역사적으로 최지몽은 왕건부터 6대 황제인 성종까지 모시면서 81세까지 장수한 인물로,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도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을 받아 제법 비중 있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3.4. 주요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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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금필 (
강인덕 분)
자세한 내용은 유금필(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본래는 강 장자 휘하의 무사로, 왕건이 궁예 휘하에 들면서 송악성을 개축할 당시부터 그에게 합류한 인물로 왕건과 강비(연화)와의 관계를 누구보다 아는 사이이다. 역사적으로나 극 중에서나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최고의 무장이다.[23] 드라마상 왕건의 의형제 중에서 왕건 다음으로 둘째이며, 유배를 가서도 고려를 위해 큰 공을 세우는 최고의 무장이자 충신이다. 극에선 나오지 않지만 후에 왕건에게 자신의 딸을 보냄으로써 왕건의 장인이 되기도 하는 인물이다. 제국의 아침에서 그의 딸 동양원부인이 언급된다.
-
신숭겸 (
김형일 분)
자세한 내용은 신숭겸(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왕건의 의형제로 평산 신씨의 시조이며,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 공신 4인 중 한 사람이다. 초명은 능산이며, 신숭겸이란 이름은 고려 건국 후 서경으로 행차하던 중 평산 인근에서 기러기를 활로 쏜 걸 본 왕건이 하사한 것이다. 진중하고 생각이 깊으며, 형제들을 끔찍히 아끼는 인물. 공산 전투 당시 고려이 포위되자 왕건을 살리기 위해 그의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싸우다가 김락, 전이갑 형제와 함께 전사했다. 언월도를 휘두르는 신숭겸을 보고 다 이긴 전투라고 생각하고 여유만만했던 견훤도 엄청나게 놀란 표정으로 "저 장수가 도대체 누구인가"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
박술희 (
김학철 분)
자세한 내용은 박술희(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궁예의 지휘관이었다가 왕건을 모셨으며, 그의 유언인 훈요십조를 받은 충신. 드라마에서는 23화 후반에 송악성을 개축하던 왕건에 신숭겸과 함께 합류하려 온 인물로, 왕건 의형제의 막내를 맡았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모습과 달리 문[24], 무[25]에 모두 뛰어난 장수이며, 무엇보다 친화력도 뛰어났기에 친아들도 멀리하던 아자개가 제일 좋아했던 인물이다.
-
홍유 (
송용태 분)
자세한 내용은 홍유(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드라마에서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등장해 아래의 배현경과 세트로 나온다.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 공신으로 이후에는 커다란 언월도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맹장으로 나온다. 청주의 선장이란 호족이 난을 일으킬 때, 앞장서서 우두머리인 선장 형제를 처단하는 공을 세운다. 초반에는 백제의 수달에게 1:1에서 패배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이것은 수달이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하느라 그런 것이고, 이 부분을 제외하면 지휘관으로서 흠 잡을 데 없는 활약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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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경 (
신동훈 분)
자세한 내용은 배현경(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드라마에서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등장했으며, 초명은 백옥삼이다. 검을 즐겨 쓰는 장수로, 백제의 신덕과 밤을 꼬박 보내며 1대 1로 겨루는 장면도 있었다. 다른 측근 지휘관들도 그렇지만 왕건에게 대단한 충성을 바쳤으며, 왕건을 추대하고 고려를 건국하는 공을 세워 개국 1등 공신이 되었다. 병부령으로 있던 최응이 사망한 이후 병부령를 맡았으며, 드라마의 마지막까지 왕건을 보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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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겸 (
길용우 분)
자세한 내용은 복지겸(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드라마에서는 본래 양길의 수하로 나왔으며, 초명은 복사귀이다. 양길의 밑에서 책사 겸 장수로 활약하다 궁예의 권유에 초심을 잃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내며 밑에 있다가,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 왕건을 추대해 고려를 건국한 개국 1등 공신이 된다. 전장에 나서서 싸우며 용맹을 과시하는 다른 공신들과는 달리 내군을 지휘하며 지장(智將)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는 편이다. 조물성 전투에서 괴질에 감염되어 생사의 갈림길에 섰지만, 왕건의 기지로 약을 얻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며, 후삼국 통일을 지켜본다. 실제 기록에는 환선길과 이흔암의 난이 진압된 이후이 행적이 남아 있지 않아, 고려 건국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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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락 (김기복 분)
자세한 내용은 김락(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드라마에서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나오고, 고려를 건국한 개국 2등 공신이다. 여러 전장에서 활약하다가 신숭겸과 함께 공산 전투에서 그 목숨을 다하여 왕건을 구해낸 충신이다. 사후에 왕건이 제사를 지낼때나 중요한 국사를 논할 때 짚으로 그의 형상을 만들어 반열에 앉혔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를 아꼈다.
- 염상 ( 심우창 분): 본래 궁예 휘하의 내군 소속으로, 종간의 명을 받아 미향의 목을 졸라 없애려 하는 등 궁예를 위해선 더러운 짓도 마다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신 도읍 철원의 실상을 알게 된 뒤, 궁예의 연이은 폭정과 난행에 실망하고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 궁예가 석총을 공개 처형하는 사태에 이르자, 내군에서 마군장군으로 보직을 옮긴다[26]. 훗날 4기장이 역성혁명을 계획할 때, 옛 부하였던 장일을 쿠테타 세력에 끌어들이는 활약을 하였다. 이로 인해 고려를 건국한 개국 2등 공신이 된다. 다만 사료상으로는 고려 건국 이후 성을 쌓는 일을 감독하는 기록이 주로 나와 공병 지휘관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나 추측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아무래도 드라마로 만들기 어려워서 그런지 개성 없는 평범한 장군 A로 나오는 감이 있다.
- 김언 ( 조인표 분): 본래는 김순식 휘하의 장수로 나오며, 왕건의 나주 공략전 이후에는 오랫동안 나주 총관을 맡아 견훤의 침공을 막아왔다. 왕건이 즉위하고 난 이후, 조물성 전투 무렵부터 중앙으로 소환된 것으로 보이며[27], 공산 전투에서 애술에게 베였다. 실제로는 종희와 함께 왕건의 초기 최측근으로 유금필, 신숭겸, 박술희보다도 앞서서 왕건의 부장으로 활동했으며 나주 전선에서 활약했던 인물이다.
- 전이갑 (강만희)/전의갑( 권혁호 분): 전이갑이 형, 전의갑이 동생으로 본관은 정선 전씨이다. 사화진 전투 당시부터 윤신달과 함께 등장해 많은 전투에 참여했으며, 둘 다 세트처럼 같이 나오다가 공산 전투에서 전이갑은 애술에게 전의갑은 소달+부장 1명에게 협공을 당하면서 전사한다.
- 윤신달 ( 이계영 분)★[28]: 충주에서 벌어지는 사화진 전투 당시 위의 전이갑과 전의갑 형제와 함께 등장한다. 파평 윤씨의 시조로서 초기에는 부장으로 이름을 알렸으나, 고려 건국 이후부터는 박수문 형제, 왕충, 염상과 더불어 중간급으로 활약하면서 본격적으로 큰 임무에는 모습을 보이는 장수가 되었다.
- 왕충 ( 이한위 분)★[29]: 고려 건국 이후, 드라마 후반 무렵부터 등장했다. 주로 자신보다 항렬이 위인 다른 지휘관들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으며, 막판에는 경보대사를 만나러 김행선, 최지몽과 함께 옥룡사에 다녀오기도 했다.
- 입전 ( 오성열 분)★☆[30]: 청주 출신의 인물로 아지태의 천거에 의해 법률을 관장하는 의형대의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아지태의 역모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궁예의 관심법과 종간과 은부가 이끄는 내원의 감시가 두려운 나머지 신방과 함께 역모를 고변한다. 고려 건국 이후에도 의형대를 맡았지만, 비중은 줄어들었다.
- 신방 ( 김태형 분)[31]☆: 고려 건국 이전에는 같은 청주 출신인 입전과 같이 붙어 다니다가, 고려 건국 후에는 의형대에 속해 이런저런 조사를 하면서 관료들을 폭넓게 알고 있다는 이유로 복지겸의 내군에 들어가 활약한다. 함께 내군에 소속된 장일과 장수장이 모두 전사한 후에도 계속 복지겸을 보좌했으나 공산에서의 첫 전투 때 후백제군의 야습을 받아 전사.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백제의 기병대에 맞서려 안간힘을 쓰다 말발굽에 밟히며 가장 먼저 전사한 지휘관이 되었다.
- 금식 (김옥만 분): 충주의 지방 호족이자 신명순성왕후의 아버지인 유긍달 휘하의 사병들을 이끄는 지휘관으로, 죽령 전투와 조령 일대의 사화진 전투 당시 왕건을 도왔다. 아자개가 고려에 귀부하는 대목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했는데, 배우 김옥만의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맹장에 가깝지만 극 중에서 가장 활약한 죽령, 조령 전투에서는 나름대로 계책을 내놓기도 하는 등 용맹보다는 지략이 강조된다.
- 애선 (김동석 분): 조물성의 성주. 1차 조물성 전투에서 후백제군과 싸우다가 애술에게 전사했다.
- 박수문 ( 김경응 분) / 박수경 (김관기 분): 패강진의 대호족인 박지윤의 아들들로 박수문이 형, 박수경이 동생이다. 궁예 정권이 철원에 있기 전부터 간간히 나오다가, 고려 개국 직후에는 신료로, 조물성 전투(141화)를 전후해서는 순군부 휘하의 장수로서 활약하지만, 비중은 많은 편이 아니다. 다만, 이후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나름 비중이 큰 인물들로 나온다.
- 장일 (공호석 분): 왕건 초기의 부장급 장수. 내군에 몸담았다가 궁예의 폭정을 계속 경험하면서 회의감을 느꼈고, 이를 눈치챈 신숭겸과 염상의 조언에 결국 왕건의 혁명 때 궁예를 배반하고 궁문을 연다. 이후에도 복지겸 산하 내군의 부장 중 하나로 활약했지만, 이흔암의 반란 때 왕건을 호위하다가 독화살을 맞고 전사했다.
- 이치[32] (장기용 분): 웅주(지금의 공주시)의 지방 호족이자 장군으로 전의 이씨의 시조. 왕건의 나주 공략전 당시에 왕식렴, 변사부 등과 함께 오다련을 만나기 위해 잠입하거나, 전투 당시 군을 지휘하는 등 공을 세웠다. 극 후반의 운주성 전투에서는 서목이라는 호족을 보내어 남천에 갇혀 있던 왕건 일행을 장대비 속에서 구해내는 한편,[33] 정예병 100여명을 이끌고 직접 참전하며 후방에서 매복해 있다가 도주 중인 후백제군을 기습해 맹장 최필을 비롯한 후백제군 여럿을 죽이는 공적을 세우지만 후백제군의 전략에 넘어가 견훤을 잡는 데는 실패한다.[34] 그래도 운주성 전투 때의 논공행상을 하는 왕건에게 공을 높이 인정받아 본래의 이름 '치' 대신 '도'라는 이름을 받는 등의 은혜를 입는다[35].
- 종희 (진운성 분)[36]: 궁예가 나라를 일으키기 위해 거쳤던 명주성에서 처음 등장한다. 왕융이 병환으로 위중하다는 소식을 궁예에게 전하기도 했다. 큰 비중 없이 장수들의 끝 반열에 있었던 것으로 보였고, 훗날 왕건이 나주를 취했을 때 김언과 함께 나주를 지켰으나 전의갑, 전이갑 형제가 등장하면서부터 하차하였다.
- 흑수말갈 족장(박세범 분)
4. 궁예 측 인물
4.1. 가족(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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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향 (유민주 분)☆
자세한 내용은 미향 문서 참고하십시오.
가상인물. 양길의 막내딸로 양길이 궁예를 좀 더 가까이 두고자 시집보냈으며, 극 중에서 궁예의 첫 아이를 출산하였다. 그러나 이 아이는 궁예와 양길이 적으로 돌아서고 양길이 전사하기에 이르면서 미향에게서 강제로 떼어내져 승려가 된다. 이후 정신이 피폐해진 미향은 아들을 다시 보는 것이 소원일 뿐인 폐인처럼 살아가나, 궁예의 순행을 따르던 도중 명주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37] 그녀의 죽음은 궁예에게도 상처가 되었으며, 그것이 강비와 합방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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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비 (
김혜리 분 / 소년기:
이정후 분)[38]
자세한 내용은 연화(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친정인 신천 강씨 집안과 송악의 왕씨 집안이 대대로 친분이 있었다는 설정이라 어린 시절부터 왕건의 정혼자로 정해졌으나[39], 왕건의 부친인 왕륭이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성사되지 못하다가[40] 종간이 그를 황후감으로 천거하여 궁예의 부인이자 후고구려의 황후가 되었다[41]. 궁예의 폭정 때에 억울하게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였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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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 (
이치우 분)
자세한 내용은 양길(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궁예를 수하로 삼아 세력을 키우려 했으나, 오히려 궁예가 황제에 즉위하는 것을 크게 도운 사람이다. 궁예는 그의 수하(은부,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등)를 대부분 넘겨받고, 양길의 지원을 받아 명주성을 함락한 이후 독립적인 세력을 이루기 때문. 이후 궁예의 독립에 분개하면서 주변 세력들과 함께 궁예를 두 차례나 공격하지만, 모두 실패하고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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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자 (
김성옥 분)☆
자세한 내용은 강 장자 문서 참고하십시오.
권력에 눈이 먼 호족 출신으로 연화의 아버지다. 처음에는 송악의 왕륭과 사돈을 맺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의 가벼운 사람됨을 꿰뚫어 본 왕륭이 왕건과 연화의 혼인을 반대하는 와중에 딸 연화가 황후로 추대되자, 이를 발판 삼아 태자들을 앞세워 아지태와 손을 잡고 나라의 권력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었다가 발각되었다. 시중이었던 왕건이 재판을 통해 그를 용서하는 대신 가택 연금을 하였으나 궁예는 끝끝내 다시금 이를 물고 늘어지며 장인인 그를 처형하였고, 이는 강씨 집안의 몰락을 야기하였다.
- 백씨 부인 ( 박주아 분)☆ : 강 장자의 아내이자 연화의 어머니. 남편보다는 눈치가 있지만 어리석기로는 오십 보 백 보인 인물. 강 장자가 떳떳하게 헛소리를 늘어 놓는다면 이 쪽은 조곤조곤하게 헛소리를 늘어 놓는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 나라의 국모인 자신의 딸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백성들 따위야 어떻게 되어 버리든 상관 없지 않냐."는 소리를 대놓고 지껄일 정도로 인격적 결함이 매우 심각하다.[42]남편인 강 장자가 과욕을 부리자 나름 걱정을 하며 우려하나 결국 처형당하자 정신줄을 놓은 뒤 얼마 안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화가 이에 분개하여 궁예에게 모욕적인 말을 쏟아냈고, 이것이 연화가 처형되는 빌미가 되었다.
- 강 장자의 양자 ( 이필모 분 - 김성수 분)[43]☆ : 강 장자가 훗날 자신이 태자를 등에 업고 섭정 노릇을 하게 되었을 때, 집안의 대를 잇는 권력층을 만들기 위해 들인 양자이다. 물론 궁예와 연화는 이를 반기지 않았다. 비중은 그다지 없는 캐릭터로, 왕건 가문 측에서도 별 신통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연화가 왕건에게 역성혁명을 제안했을 때 양자 역시 내군에 잡혀 들어갔으나, 궁예는 연화와 두 아들은 처형하는 대신에 강 장자의 양자는 방면하였다. 그 이후의 등장이나 언급은 없다.[44]
4.2. 측근 및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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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간 (
김갑수 분)
자세한 내용은 종간(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궁예가 어린 시절 세달사에 머물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보좌[45]했으며, 궁예가 왕건 다음으로 의지하는 인물이다. 관직에는 뜻이 없어 내원이라는 곳에서 비공식적인 제2인자로 군림했으며[46], 그에 따라 내원이 그를 부르는 호칭이 된다. 본래 자신도 신라 왕실의 일원이었지만, 역모에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할 때 살아남아 중이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관상을 잘 보는 것으로 묘사되며, 어린 왕건의 상을 본 결과 궁예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끝없이 경계하게 되고 제거하기 위해 갖가지 계략을 꾸미나 번번이 실패한다. 궁예의 최측근 중에 최측근인 동시에 일을 철두철미하게 처리하는 성격으로 궁예 개인에게는 이상적인 신하였으나, 아지태가 등장하고 궁예의 폭정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태봉이라는 나라보다도 궁예의 신하라는 입장을 우선하게 되며 그에 따라 점차 부정적이고 막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47]. 결국 궁예의 폭정이 계속되면서 허월의 추천으로 불러들였던 박유와 철원의 현실에 환멸을 느낀 염상이 휘하에서 떠나고, 장일도 왕건의 혁명 때 왕건의 편으로 돌아서게 된다. 결국 왕건의 혁명 당시 궁예에게 작별을 고하고, 궁에 입성한 왕건[48]에게 궁예를 다시 만나게 되거든 욕된 자리를 만들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자결한다.
- 신훤 (박승호 분) / 원회 ( 손호균 분): 본래 죽주(지금의 안성시)의 기훤의 부하들로서 수하들이 노략질을 하다가 궁예에게 당한 이후 복수를 하기 위해 궁예와 만나 격투 끝에 패배한 후 기훤에게 천거하여 함께 지내다 백성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궁예의 행보에 감복하고, 망나니보다 더한 기훤의 폭정을 견디지 못하고[49], 기훤을 배신하고 제거한 후, 궁예를 추대하고 수하가 된 인물들이다. 궁예가 양길을 거쳐 자립하면서 송악에 이를 때까지 활약하다가 양길이 궁예를 처음 공격할 때 왕건과 함께 가평 축령산에서 제압하던 중에 양길에 의해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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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부 (
박상조 분)
자세한 내용은 은부(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본래는 양길의 부하였으며, 처음에는 양길로부터 궁예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아 함께 하게 되나, 의심병 환자에 소인배인 양길에게 처음부터 회의를 품고 있었기에 감시를 하기는커녕 통수를 치고 궁예의 부하가 된다[50]. 태봉이 창건된 이후에는 내군을 맡아[51] 종간과 함께 궁예의 최측근이 된다. 궁예의 최후까지 함께 하다가 명성산 계곡에서 궁예의 부탁으로 그를 시해하고, 자신 역시 곧 부장 금대의 칼을 맞고 최후를 맞았다. 111회에 나온 한자 이름은 猌鈇.[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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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 (
최운교 분)★[53]
자세한 내용은 금대(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선배 염상과 동료 장일이 왕건 쪽으로 돌아섰음에도 끝까지 궁예를 지키려 했던 내군의 은부 휘하의 장수이다. 왕건의 혁명 이후에 사전에 궁예의 부탁을 받아놓고 궁예를 처형한 은부 역시 자신의 손으로 처형한 뒤 곧 본인도 할복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후에 이 금대 부장을 맡았던 배우 최운교는 근황올림픽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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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서방 (
하대경 분)
강장자 집의 집사장. 왕후로 간택된 연화를 따라서 궁에 들어와 황후전의 내관이 된다. 강비가 처형된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는데, 정황상 처형장에서 궁예가 내렸던 명령대로 관노로 강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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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이 (
최지선 분)
연화의 시녀. 왕후로 간택된 연화를 따라서 궁에 들어와 궁녀가 된다. 역시 강비의 처형 이후로는 등장이 없으며, 아마도 궁예의 명에 따라 관비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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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 1 (김진오 분)★
태봉국의 신하 중 한 명. 작중에서 궁예가 북벌을 장려하는 법회가 지체되는 것에 대해 분노하여 본보기로 신하를 몇명 숙청하려고 관심법을 쓰는 도중 실수로 기침을 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궁예에게 트집을 잡혀 마구니로 몰려 궁예의 명령을 받은 금대에 의해 철퇴를 맞고 즉사했다.
여담으로, 이 배우는 이전 56회에서 왕건의 수군이 나주를 공략할 때 함께 협조하기 위해 오다련의 집에 모인 호족 중 한 명으로 나왔었다. 만일 이 호족과 기침한 신하가 동일 인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이 인물은 정말 불쌍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왕건을 도와 고려가 나주를 차지한 공으로 벼슬을 얻어 조정에 출세했지만 훗날 하필 관심법 쓰는 궁예 앞에서 기침 한 번 잘못하여 금대에게 철퇴를 맞아 끔살을 당해버리는 비운의 인생을 살다가 간 셈이 된다.
4.3. 반역자
이들은 대부분 궁예 조정에서 득세를 하였으며, 작게 크게 왕건의 진영과 대립각을 세우던 인물들이다. 이들 중 먼저 반란을 시도했다가 처형된 아지태를 제외하고는 왕건의 혁명(119화~120화)에 동참하거나 살아남았지만, 이후 반란을 도모했다가 처형된 인물들이다.[54]-
아지태 (
김인태 분)
자세한 내용은 아지태(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큰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궁예에게 접근하여 현혹시킨 청주 출신의 인물이다. 궁예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나라의 자리 곳곳에 청주인들을 심어 나라를 쥐락펴락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욕망 덩어리였다. 궁예가 폭정이 심해지고 나라 운영이 어려워짐을 알게 되자 처음으로 왕건에게 손을 내밀어 혁명을 일으키자고 종용하였으나 왕건이 이를 거절하고 이후 청주인들과 강 장자를 끌여들여 반란을 시도했다가 입전, 신방의 고변으로 알게 된 종간과 은부에 의해 체포. 궁예가 이 사실로 국문을 열게 되자, 왕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궁예의 의심만을 일으킨 채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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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길 (
백인철 분)[55]
자세한 내용은 환선길(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양길의 부하로 등장하였고, 후에 궁예를 섬기면서 마군대장군이 되었다. 지략이 없고 힘만 앞세우는 인물로, 왕건이 조정으로 삼시 소환된 사이에 그가 효율적으로 관리하던 조령과 죽령 전선을 견훤에게 홀라당 빼앗겨 궁예에게 질책을 받는 장면도 있다. 왕건의 혁명 당시 얼떨결에 동참하긴 했지만, 보상을 받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다가 발각되어 참형되었다.
- 환향식 ( 이원발 분): 환선길의 아우로, 궁예 정권 때에는 출연은커녕 언급도 없다가 고려 건국 이후에 내군에 속한 병사들 가운데 일부를 지휘하게 된 인물이다. 다만 이것은 환선길이 역성혁명에 참가한 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동생의 동향을 살피면 환선길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의도에서 조치된 것. 환선길을 부추겨서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도망치던 중에 붙잡혀 목이 베인다.
- 임춘길 (조재훈 분)[56]: 청주 출신으로 아지태와 함께 궁예 조정의 실세로 군림하여 순군부의 낭중을 지냈지만, 아지태의 반란으로 그 직을 잃고 나서 후백제의 첩자인 도우의 농간과 종간의 요청으로 계속해서 왕건을 견제했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다. 왕건의 혁명 때에는 4기장이 "졸장부이니 무시해도 된다" 라고 판단함에 따라 목숨을 건졌으나, 도우의 계속된 농간에 고향인 청주의 세력가 선장과 연계하여 난을 일으키로 했다. 이후 모의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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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흔암 (
최주봉 분)
자세한 내용은 이흔암(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흔암의 누이가 환선길의 부인으로 둘이 콤비인 탓에 환선길이 나올 때마다 같이 나온다. 고려 건국 직전에는 나주로 내려간 박술희의 후임으로 충주를 맡아 오다가 고려 건국 후에 그보다 더 험지인 웅주(지금의 공주시)로 발령이 났다. 이흔암이 당연히 황도로 올라올 줄 알았던 환선길은 이 소식을 듣고 길길이 뛰고 난리를 쳤으며, 충주에서 소식을 접한 이흔암도 "나도 이제 늙어서 편이 쉬고 싶은데..." 하며 불쾌해했다. 웅주로 옮긴 이후 환선길이 난을 일으키고 실패하여 가족들과 함께 처형당한 소식을 듣자 불만을 품은 나머지 웅주성을 버리고 철원으로 올라와 과거 환선길의 수하들과 함께 왕건과 마침 고려에 귀부하려 오던 아자개를 제거하고자 난을 일으켰다가 역시 실패[57]하여 자결하였다. 그리고 그 여파로 웅주성을 비롯한 금강 유역의 고을들이 일제히 백제에 투항하였다.
5. 견훤 측 인물
다른 진영의 출연진들과는 다르게 갑자기 하차하는 경우가 많다.5.1. 견훤 일가
견훤에게 그야말로 작중내 만악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3대가 닮을 정도로 고집이 똑같았으며, 세대 간 갈등 특히, 본처와 후처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집안과 나라를 분열하게 만들었다. 결국 아버지가 아들을 버리고, 또 세 아들이 아버지를 배신하였으며, 결국 아버지가 적국에 투항해서 자신이 이룬 국가와 아들들의 목숨을 거두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세부적으로 견훤 일가의 갈등과 파국인 어느 정도는 창작이 들어가기는 했으나 토대 자체는 역사에 근거한 사실이다.-
왕후 박씨 (
금보라 분)
자세한 내용은 왕후 박씨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의 첫 번째 부인이자 신검 삼형제의 친모로. 초반에는 조용하면서도 평범한 시골 아낙네 A에 지나지 않았으나 승평부인이 견훤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되면서 시기와 질투를 반복한 끝에 신검의 정변을 승인하기까지 한다. 영상으로는 나오지 않지만, 대본에서는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가 패배하여 나라가 망하자 목을 매어 자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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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검 (
이광기 분 / 소년기: 김영찬 분)
자세한 내용은 신검(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과 박씨 사이의 첫째 아들. 인망은 있어서 자신을 따르는 관료와 지휘관들이 많은 등 순탄한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괜찮은 군주가 될 만한 재목이지만, 시대는 난세. 군사적인 재능은 영 못미더운 수준이라 패배를 여러 번 겪었으며, 이복동생인 금강이 이와 대조적으로 훌륭한 군재를 보이며 견훤의 총애를 받자 시기심과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결국 능환 등 신료들의 추대로 반란을 일으키나, 왕위에 오른 뒤 깍듯이 모시려고 했던 견훤은 고려로 망명해 버린다. 결국 일리천 전투에서 패하여 고려에 항복했으며,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나 머지않아 죽임을 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내레이션이 깔리면서 처형당하는 장면이 나온다[58].
- 양검 ( 이영호 분 / 소년기: 윤동원 분): 견훤과 박씨 사이의 둘째 아들. 용검과 세트로라면 신검의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동생들로서 나름 비중이 있으나, 양검 혼자만 놓고 보면 병풍에 가깝다. 후백제가 패망한 뒤 고려군에 의해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 끝으로 퇴장하며, 용검과 사이좋게 유배길에 올랐다가 나란히 처형되었다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 용검 (강인기 분)[59]: 견훤과 박씨 사이의 셋째 아들. 형들과 달리 아역이 따로 없고 130화 이후에야 겨우 등장한다. 전체적인 행적은 양검과 거의 같으나, 조물성에서 왕건을 오랫동안 보필했고 정윤 왕무의 무예 스승이었던 장수장을 베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 국대부인 견씨( 임채원[60] 분): 견훤의 장녀이자 박영규의 아내로서 극초반에는 아역으로만 잠시 나오다가 드라마 후반부에 승평으로 귀향한 남편 박영규를 설득하여 금산사에 갇힌 견훤을 탈출시킨다. 내레이션으로 왕건의 장모[61]가 된다는 사실이 소개된다. 박영규를 설득할 때 굉장히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서 수십 년을 부부로서 함께한 박영규도 감탄하며 '부인에게서 마치 폐하의 기백이 느껴진다.'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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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 (
조민희 분)
자세한 내용은 고비(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이 황제가 되고 난 이후 박영규가 바친 여인이다. 박영규의 일가이자 금강의 친모로 '승평 부인'이라고도 불린다. 후처인 남원부인 때문에 견훤과 아자개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 판단, 고비가 견훤의 후실로 들어오는 것에 처음부터 반대했던 왕후 박씨의 시기와 질투를 계속 받는 와중에도 박씨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 하나, 금강이 뛰어난 모습을 보이자 황태후가 되려는 생각에 조금씩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다. 신검의 난 이후에는 견훤과 함께 금산사에 갇히게 되었고, 이후 견훤과 함께 고려로 귀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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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
전현 / 소년기: 김경호 분)
자세한 내용은 금강(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과 승평부인 사이의 아들. 군사적인 재능이 매우 뛰어나며, 효심도 깊고 형제 간의 우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등[62] 성품도 무던하여 일찍부터 견훤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그 바람에 황후와 이복 형들에게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다. 결국 견훤으로부터 다음 왕으로 낙점받으나, 이를 안 신검이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노렸다는 죄목으로 제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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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애 (전병옥 분)[63]
자세한 내용은 능애(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의 친동생으로 극 초반에는 사벌주에 머물렀으나 부친과 계모의 미움을 견디지 못하고 견훤에게 합류. 능환, 추허조와 더불어 후백제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다. 이후로도 여러 전장에 나섰으나,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능환과 함께 후방에 머무는 날이 많아진다, 왕위 계승 문제에서 장조카인 신검의 편을 드는 바람에 견훤과의 사이가 악화되고, 신검의 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에 이른다[64]. 후백제의 패망 때 능환에 이어서 왕건에 의해 처형되었다.
- 진호 (박유승 분)★[65]: 조물성 전투 때 화친을 맺은 고려에 보낸 후백제 측의 볼모이다. 견훤의 왕후 박씨의 조카로 고려의 왕신과 서로 교환되어 적국에서 머물게 되었다. 왕건의 사촌 동생인 왕식렴의 집에서 기거하다가 최응의 계책으로 목숨을 잃게 되어 화친이 깨지게 되었다. 죄책감 때문인지 왕식렴이 진호의 눈을 감겨 주면서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는 장면이 볼 만 하며, 왕후 박씨는 진호의 죽음을 전해 듣고 하필이면 볼모로 왕실의 일가가 아니라 자신의 인척을 보낸 것에 분노하며 견훤을 더욱 원망하게 된다. 실제로는 기록이 없어서 단언하기는 힘드나, 견훤의 외조카라고는 되어 있다는 점에서 견훤의 누이로 알려져 있는 대주도금의 아들로 보는 견해도 있다.
5.2. 사벌주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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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개 (
김성겸 분)
자세한 내용은 아자개(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의 친부로, 고향인 사벌주(지금의 상주)의 성주이다. 견훤과 궁예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중 상주를 중립지대로 선포하고 어느곳의 편도 들지 않았다. 생일때 찾아오던 박술희를 총애했고 왕건이 약을 보내서[66]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고려에 귀부해, 철원에서 여생을 보낸다. 금산사에 갇혔던 견훤이 탈출해 고려로 돌아올 무렵에 천수를 누리고 세상을 떠난다. 다만, 죽기 전에 낮밤으로 머루주를 마셨다는 것[67]으로 보아 평생 갈등했지만, 아들이 폐위당하고 고려로 망명하는 처지가 된 것이 내심 괴로웠던 듯.
- 남원부인 ( 이미지 분)[68]☆ : 견훤의 계모로서 견훤 형제를 미워하고, 아자개를 정성껏 보살핀다. 늘 딸 때문에 속앓이를 하지만, 귀부할 때 동행하면서 아자개와 여생을 보낸다. 못된 계모이자 헌신적인 아내라는 상반된 속성을 절묘히 섞은 캐릭터. 소설판에서는 견훤이 계모를 강간하려고 했다는 누명을 쓰자 열받아서 상주를 떠나 서라벌로 갔다는 이야기가 나오나 이게 드라마판에서는 너무 자극적인 설정이라 봤는지 그냥 둘이 사이가 나쁘다는 묘사만 한다. 견훤이 왕위에 올라 성공가도를 달렸기에 옛날 이야기 속 자업자득의 망해버린 못된 계모의 결말을 맞이할만 했으나 왕건이라는 힘을 갖춘 제3자가 뜬금없이 등장해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바람에 이걸 등에 업고 계속 견훤과 적대관계로 기세좋게 나갈 수 있었다.[69]
- 용개 (김대환 분): 아자개가 성을 떠나면서 사벌주 성의 성주로서 생을 보낸다.
- 보개 (양재원 분): 아버지인 아자개를 모시고 고려에 귀부하는 견훤의 이복동생이자 용개, 대주도금의 친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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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주도금 (
박윤선 분)
자세한 내용은 대주도금(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의 이복 여동생이지만 부모와 동복 오빠와 동복 남동생과는 달리, 이복오빠 견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드라마에서 박술희의 짝사랑 대상이었고, 본인도 마음 속으로는 사모하긴 했지만, 부모의 고려 귀부 후에 이복오빠 견훤을 배신할 수 없다는 마음에 스스로 비구니의 길을 택하며, 박술희와의 연이 끊어진다. 드라마 막판에 비구니의 모습으로 등장해 박술희가 말을 잃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면서 그녀를 부른 남원부인의 말로는 철원의 도피안사란 절에 주석하는 비구니 스님이 되었으며, 법명이 '무상'이라고 한다.
5.3. 책사 및 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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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환 (
정진 분)
자세한 내용은 능환(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아자개의 집사 출신으로 초기에는 견훤을 도와 나라를 건국하는데 일조하면서 이찬의 높은 벼슬에 올랐다. 그러나 최승우의 등장으로 나라에서 그가 할 일이 줄어들자 시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눈 밖에 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거기에 견훤이 금강을 후계자로 삼자 신검을 설득하여 난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다. 후백제 패망 직후, 여러 인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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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우 (
전무송 분)
자세한 내용은 최승우(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신라의 3명의 천재 중 한 사람[70]으로, 중국에서 유학한 뒤에 신라는 기울었고, 자신이 모실 황제가 이곳에 있다고 하면서 견훤을 섬겼다. 하지만 그는 중국 유학길에 돌아와서 견훤을 섬기기 전까지 옥룡사에 머물렸는데, 머무를 당시 도선으로부터 "자네가 머무는 곳에는 주인의 의자가 없다는 것이다"라는 얘기를 듣고 처음부터 후백제는 후삼국의 주인이 되지 않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도선대사의 예언을 빗겨나가게 하기 위함인지, 역사에서 그가 후백제 통일의 큰 역할을 하기 위함인지 견훤을 택했던 것이다. 능환의 천거로 최승우를 만난 견훤도 극진히 그를 아꼈다. 술을 하지 않았으며, 늘 책을 옆에 두었고, 견훤이 큰 근심에 잠겼을 때 늘 옆에서 함께 했으며, 고려의 계책에 큰 패배를 보게 되었을 때도 함께였던 충신이었다. 순리대로 신검을 다음 황제로 하는 것이 맞다고 하였으나 견훤이 고집을 꺾지 않자 차선으로 차라리 황후 소생을 멀리 보내거나 죽인 후 금강에게 다음 황제를 물려주라고 권했다. 하지만 견훤은 자신의 아들들을 끝끝내 죽이지 못했고, 결국 견훤의 우유부단한 결정으로 인해 난이 일어나자 금강을 추대하였다는 이유로 능환이 보는 앞에서 최후를 마쳤다.[71] 고려의 신동이었던 최응을 특별히 생각했던 인물로, 전쟁중에서도 따로 만나 차를 마시며 책사로의 고충을 나눴고, 최응 역시 병이 들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를 만나고 그를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 종훈 ( 민경진 분): 극 후반부터 등장하는 책사로, 견훤의 대사로 미루어 보면 능환이 천거한 모양이지만, 최승우는 물론 능환보다도 한 단계 아래인 것으로 묘사된다.[72] 고창 전투 당시에는 신검을 보좌했으나, 결국 신검이 견훤을 돕지 않아 대패한 것으로 설정되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견훤에게 제대로 야단을 맞기도 했다.[73] 그 후 운주 전투에서 포로로 잡히며, 자신을 직접 심문하는 태조에게 견훤왕은 이미 무사히 피신했을 것이라며 껄껄 웃는 것을 끝으로 퇴장한다.
- 영순 ( 신국 분): 극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신검파 관료. 기본적으로 전쟁 사극인 이 작품에서 순전한 정치 관료라는 점부터가 비중이 낮다는 의미이며, 실제로도 '신검파 관료 A' 이상의 비중은 없다. 그나마 나오는 장면도 견훤에게 끊임 없이 갈굼 당하는 장면이 대다수다. 그래도 능환, 왕후 박씨와 함께 혁명을 모의하는 등, 여러 장면에서 나름대로 짬짬이 등장은 하는 편. 금산사에 유폐되어있던 견훤에게 신검의 등극식을 알리러 가기도 했는데, 견훤이 빡쳐서 내뱉은 '어차피 내 허락을 중요시하지도 않으면서 뭐하러 왔냐! 할 거면 냉큼 해버리라고 해라!'라는 말을 초월적인 감각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해서 신검에게 견훤이 등극식을 허락했다고 전달하기도 했다. 대본에 따르면 일리천에서 승리한 왕건이 완산주(지금의 전주)의 옛 후백제의 궁궐에 들어가 옛 후백제의 신하들을 위로하는 장면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 신강 ( 태민영 분)# : 무진주(지금의 광주)의 외사정으로 사벌주(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아자개의 아들인 견훤의 군권을 환수하려 왔다가 추허조에게 곤장을 맞았고, 이후에 견훤이 무진주 성을 취할 당시, 자결한 도독을 대신해 군을 이끌고 저항하다가 방회의 화살에 부상을 입긴 했으나, 견훤의 명으로 살아남아서 견훤에게 충성을 바친다. 이후 양길에게 사자로도 가능 등 활약하는가 했지만, 촬영 기간 중에 배우 태민영[74]이 지병인 간암으로 조기 하차를 하고 그 해 가을에 사망하면서, 캐릭터가 중간에 증발해 견훤이 공들여서 영입했음에도 갑자기 없어져서 스토리가 조금 꼬였다. 실제로 신강은 후백제가 망하고, 고려 시대까지 계속 생존하는 인물로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잠깐 등장한다.
- 염흔 ( 차기환 분)[75] : 백제의 일길찬이란 벼슬을 하면서 왕건이 송악으로의 천도 후에 백제의 사신으로 왔으며, 고창 전투 이후에 어지러운 후백제의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고려로 투항을 한다.[76]
5.4. 주요 장수
5.4.1. 후백제 건국 전후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견훤의 경주의 군관으로 있을 때부터 의형제를 맺었고, 견훤의 금성(錦城) 관내 미다부리정의 지휘관으로 있을 때, 건국 직후에 입조한 이들이다.-
추허조 (
강재일 분)#
자세한 내용은 추허조(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초창기부터 견훤을 보필했던 우직하고 충직한 장수이다. 신검을 아꼈으며, 성미가 급한 것이 흠이지만 전투에 선봉을 맡으면서 뒷걸음이 없었다. 2차 나주 공방전 당시 능창의 복수를 하기 위해 견훤과 앞장서다가 화살을 맞고 완산주로 이송되었으며, 이후, 3차 대야성 전투 도중 신검이 실수로 위험에 빠지자 그를 구하려다 쏟아지는 신라군의 화살에 전사함으로 견훤이 가장 슬퍼한 사건이 되었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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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 (
유태술 분)
자세한 내용은 김총(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을 처음부터 보좌했던 군인으로, 백제 건국 후에 의형제를 맺고 장군이 되었다. 다만 전투력은 부장급 이하만 벨 수 있으며 장군급에게는 늘 발리는 중간급에 해당된다. 노장인 홍유에게도 한 방에 패배했고, 왕건에게도 이렇다할 공격도 못한채로 부상을 당했다. 견훤의 의형제라고는 하지만 비중도 적고, 공을 세운것도 거의 없다시피 했다. 억지로 신검의 난 때 애술과 억류되었다가 신검의 편에 서서 일리천 전투에 참여했으나 홍유에 의해 사로잡혀 애술과 함께 고려로 귀부한 장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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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군 (
방형주 분)☆: 우직한 맹장 타입으로 언월도를 사용하는 가상 인물로 이름은 방희 이지만 극 중에서는 자막으로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후백제 건국 전, 견훤의 서남해 부임시에 견훤군의 철기군 장교였으나, 최승우가 후백제로 입국할 때는 서남해의 일개 병사였고(이는 장교에서 병사로 강등 후 장군으로 진급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겹치기 출연의 오류로 봐야 한다...), 후백제 건국 이후 장수가 되었다. 상주 전투에서는 겨울에 방심하고 술을 퍼마시고 있다가 조령을 넘어온 왕건의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였고, 나주 전투에서는 화공에 당한 후 퇴각하는 견훤을 호위하다가 언월도를 쓰지도 않은 신숭겸의 칼에 죽는다. 이때의 유언은 "폐하…." 사망 이후에도 한동안 견훤이 그의 죽음에 분노를 표하는 모습으로 보아
방장군이 주거써!수달만큼은 아니어도 서라벌에 있던 시절부터 자신의 휘하에 있었던 부하였던만큼 매우 아꼈던 장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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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창(수달) (
김시원 분)
자세한 내용은 능창(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견훤이 금성에서 힘으로 의형제를 맺은 장수로 지금의 전남 서남해안 일대를 주름잡았던 해적 출신이다. 본명보다는 물에 능통하다고 하여 수달이라는 별명이 즐겨쓴다. 작중에서는 견훤 휘하의 장수들 중에서도 추허조와 더불어 최강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혼자서 여러 명의 장수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왕건에 의해 금성을 비롯한 서남해 일대를 잃었으며, 이후 재탈환을 위해 압해도에서 군선들을 모아놓고 시위를 벌이다가 화공과 신숭겸의 계략으로 사로 잡혔다. 왕건과 신숭겸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고, 옥 안에서 금식을 하면서 견훤을 섬기겠다고 의지를 보였다가 이후 철원으로 끌려갔고, 궁예 앞에서 화형을 당해 견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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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
임혁주 분)
자세한 내용은 박영규(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승평의 호족으로 후백제 건국 이후에 공직과 합께 입조하면서 등장하는데, 집안의 여인이던 고비를 승평부인으로 견훤에게 바침과 동시에 견훤의 맏 사위가 되는 사람이다. 견훤과 신검, 이후에는 금강과 함께 참전하는 경우가 많았고, 최승우 다음으로 견훤이 신뢰하는 인물이다. 극중에서의 무예실력은 운주전투에서 도망가는 견훤일행의 뒤를 막기 위해 고려의 이치 장군일행과의 전투에서 잠시 나왔다. 신검의 난 당시 병부의 수장을 맡았지만, 진압하지 못한 채 실패하고, 이후 고향인 승평으로 내려가 지내다가 견훤을 탈출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극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왕건과 그의 아들인 정종에게 딸을 주어 두 왕의 장인이 되는 인물이다.
- 공직 (이정웅 분)# : 박영규와 함께 입조한 노장으로 본래 매곡성(지금의 보은군 회인면 일대)의 성주였다. 왕건의 고려 조정 초기, 환선길이 역모로 인해 죽자 불안과 위협을 느꼈던 이흔암을 설득하여 난을 일으키게 했으며, 그 와중에 웅주(지금의 공주시)성과 주변 지역들을 취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늙었다는 이유로 견훤에게 버림받다시피 각 전쟁마다 수도에 남으라고 하자 역사상으로는 고려로 귀부했으나 극 중에서는 배우의 건강상의 문제로 하차하게 되어 극 중에서는 염흔이 후백제 후계경쟁 구도에 환멸을 느껴 귀부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5.4.2. 후백제 중반 이후
이들은 상주 전선에 있던 왕건이 잠시 중앙에 소환되고 나서, 견훤이 계책으로 환선길의 후고구려군을 무찌르고 귀환한 이후부터 등장한 장수들이다. 먼저 하차한 지휜과 최필, 그리고 애술을 제외한 대부분이 신검의 편이며, 대부분이 신검의 난에 참여했으며, 일리천 전투 와중에 전사하거나 이후 대거 처형되었다.-
애술 (
이계인 분)
자세한 내용은 애술(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후백제의 맹장으로 중반 이후에 등장한 후백제의 장수들 중에서도 특히 용맹함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복잡한 계략보다는 전면전을 선호하는 장수로 후백제에서는 이를 당해낼 장수가 없었다. 그래도 지략이 어느 정도 있는지, 견훤을 그 동안 애먹이던 대야성을 끝내 함락을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다만 견훤에 대한 충성이 너무도 각별하여, 신검의 난 때는 다른 장수들의 만류로 신검이 그를 합류시키지 않았고 김총과 함께 잠시 억류되고 나서 신검 진영에 붙었다. 고려와 후백제의 마지막 전투인 일리천 전투 때 김총과 사로 잡혀 고려의 포로가 되었다. 극 중에서는 적장인 박술희와 우정이 깊다.
- 신덕 ( 임병기 분): 문무 양면에서 모두 뛰어난 장수로 견훤이 후백제의 인재를 등용할 때 등장하였다.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특히 최승우와 의견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그 안목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고려의 배현경과 막상막하의 싸움실력을 선보일 정도로 무예 또한 뛰어났다. 후반부에는 정치적으로 능환, 능애와 함께 신검의 편에 서서 견훤을 몰아내는데 일조하였으며 이후 일리천 전투이후, 후백제가 패망하면서 이들과 같이 처형되었다.[78]
- 파달 ( 기정수 분):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예성강 전투를 전후로 한 시기였으며, 신검의 난 이후에 금산사에서 견훤을 경비하는 역할로 그 이름을 보였다.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한 후, 자책하는 표정은 덤. 그러고 패망 이후 능환, 능애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 상귀 ( 김명국 분)★[79] : 능창 이후에 후백제의 바다를 맡은 장수로 성격이 붙같으며, 지략보다는 무력으로 싸움을 하려는 성격이 짙다. 신검의 난때 이찬 능환과 함께 당시 최승우를 처단하고, 견훤을 아주 무시했던 장수이다. 마지막 회의 일리천 전투에서 유금필에 칼에 베여 전사한다.
- 최필 ( 한정국 분): 극 초반에 화살에 맞아 낙마한 유금필과 전투를 벌여 거의 베기 직전까지 갔었던[81] 후백제의 용장이고, 운주성 전투에서 역사상으로는 유금필에게 포로로 잡힌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이 전투에서 견훤의 탈출을 돕다가 '''무명의 고려 부장에게 단칼에 통째로 베이고 끝내 목숨을 잃었다.[82] 극중에서 무력 밸런스를 상당히 이상하게 만든 인물[83].
- 소달 (신원균 분)★#[85]: 조물성 전투 이후부터 부달의 동생인 소달로 나온다. 서라벌 점령에서 포석정을 주도적으로 급습했다. 이후 부달과 함께 고창 전투에서 유금필에게 죽었는데, 실제 역사에서 부달과 소달은 후백제 멸망 때까지 살아 남아서 포로가 된다.
5.5. 그 외 인물
- 훈겸 (고희준 분)#: 작중 백제의 어의로 등장한다. 지리산에서 공부를 하다가 최승우가 어렵게 모셔왔다는 설명으로 첫 등장해서, 조물성 전투에서 괴질이 만연해서 고려군, 백제군 모두 고생을 할 때[86] 견훤의 조상신의 도움으로 지렁이 약을 지어 괴질을 치료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예성강 전투 이후로 등창을 앓게 된 견훤을 치료하며 치료방안을 열심히 제시하지만 견훤이 도무지 들어먹지를 않아서 고통받는다. 운주 전투에서 역시 등창을 앓으면서도 친정을 나가려는 견훤을 만류하지만, 군의 사기를 우려해 나가고자 한 견훤을 끝내 막지 못하고 그와 함께 종군을 하게 된다. 그러나 백제군에게 패색이 짙어져서 따로 도주하던 견훤을 따라가던 도중에 낙마, 고려군의 기병에게 죽게 된다.[87] 이 소식을 들은 견훤과 금강, 박영규와 최승우가 안타까워 하는 장면을 보인다. 다만, 실제 역사에서는 최필, 종훈 등과 함께 포로로 잡힌다.
- 도우 ( 원석연 분)[88]☆: 최승우가 보낸 승려 출신의 첩자로, 형제 모두가 수달의 부하들이었으나 왕건에 의해 모두 죽었기에 태봉으로 가는 임무를 자처했다고 한다. 임춘길을 도와주면서 그에게 빌붙어 궁예 치세 말기부터 왕건의 개국 초기까지 왕건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여러가지 계책을 짜낸다. 하지만 정작 임춘길은 왕건의 개국 초기에 청주 반란군과 함께 왕건의 정권을 무너뜨리려던 시도가 실패하여 자신과 도우를 체포하려는 군사들이 들이닥친 뒤에야 이런 사실을 알아차렸다. 붙잡혀 간 이후에는 등장이 없긴 하지만 아무래도 임춘길과 함께 심문받은 후 처형됐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첩자였지만 승려 출신이다보니 형미대사가 처형될 때 안타까워하며 몰래 그의 명복을 빌기도 했다. 2017년 초부터 궁예 밈이 재발굴됨에 따라 덩달아 발굴, ' 피자의 생명은?'이라는 제목으로 도우의 얼굴과 자막이 캡처된 짤이 올라오는 게 일반적으로 가끔 다른 이름으로 자막을 바꾸거나 얼굴도 다른 이미지로 합성하기도 한다.
6. 신라 측 인물
태조 왕건에 나오는 신라 왕들은 유독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미스 캐스팅인데, 만 15세에 즉위해 만 29세에 사망한 경문왕은 즉위 전의 모습부터 당시 만 44세의 이성용이, 골격이 흡사 건장한 사내와 같다고 기록된 진성여왕은 평균키보다 살짝 큰 노현희[89]가, 견훤의 신라 침공 당시 30대 후반으로 추정되는 경애왕은 당시 만 56세의 문회원[90]이, 한술 더 떠 정태우가 연기했던 최응과 동년배로 추정되는 경순왕은 당시 만 62세의 신귀식이 맡았다. 이환경 작가가 사서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고 망국의 왕이라 그런지 왕들에 대한 묘사도 경순왕을 빼면 대단히 평면적인 암군 묘사 위주로 일관되어 드라마 완성도에 대한 옥에 티로 남는다.6.1. 국왕
- 헌안왕 (이근우 분)
- 경문왕 (이성용 분)
- 효공왕 (한근욱 분)
- 경명왕 (안형식 분)
6.2. 왕족 및 신료
- 마의태자 ( 이병욱 분)★[91] :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김부의 첫째 아들이다. 역사에 기록된대로 신라에 대한 충정을 지키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생을 마친다.
- 김위홍 ( 김주영 분): 경문왕의 아우이자 상대등으로서 드라마 초반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조카인 진성여왕과 분에 넘치는 사랑을 나누다가 궁예와 만난 직후, 이상 증세를 보였다. 결국에는 마지막에 황궁 대전에서 조카가 보는 앞에서 복상사를 하고야 말았다.
- 김효종 (김효원 분): 효녀 지은 일화로 유명한 화랑. 드라마에서는 신라의 마지막 명장으로 1차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의 침공을 막아낸다. 왕건이 나주를 공략할 당시에는 유금필을 신라로 보내어 백제를 협공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 때 유금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 후에 제의를 받아들여 나주로 돌아가려는 백제군의 배후를 공격하도록 하고 강주성을 함락시킨다.
- 김율 ( 유병준 분)★[92][93] : 신라 아찬의 벼슬을 가진 자이다. 신라 경명왕이 고려에 구원을 요청하여 원군을 받기 위해 사신으로서 고려에 방문하기도 했으니 왕건이 장수에게 명하여 군대를 내어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이 이 말을 듣고 바로 물러갔다고 한다. 그러나 대야성을 빼앗기고 견훤의 군대가 서라벌로 진군하자 월성 전투에 나섰으나 격전 끝에 불타는 망루 위에서 끝까지 북을 치며 신라의 장졸들과 백성들에게 독려를 부르짖다 끝내 타 죽고 만다. 적군의 손에 죽는걸 원하지 않아서 그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견훤과 최승우도 이 모습을 보고 놀란다. 드라마에서는 신라의 마지막 충신이자 최후의 수호신으로 묘사 되었다.
- 연식 (박경득 분): 견훤이 서라벌 황궁으로 쳐들어오고 경애왕이 포로로 잡혀오자 견훤이 경애왕에게 자결하라고 칼을 건네고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못해 연식이 어차피 자신도 죽을 목숨이라고 하면서 경애왕을 찔러 죽이고 견훤의 명령으로 애술 휘하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 최치원 (김성수 분): 진성여왕에게 간언을 하는 충신으로 잠깐 나오지만 한국사에서의 명성과는 별개로 비중은 지나가는 배경 수준이다. 도선대사에게 신라의 앞길을 묻지만 신라의 미래는 떨어진 낙엽꼴이라는 말을 듣고 낙담한다.
- 김응겸(강성욱 분): 신라의 매국노로 유염과 셋트로 나온다. 이 사람의 이름이 된 모티브는 경순왕의 친척이었던 국상 김웅렴으로 추측되는데, 유염과 시종일관 음모를 꾸며 후백제를 끌어들였다가 끔살되는 드라마와 달리 고려에 구원군을 청한 인물이었다. 견훤이 왕건에게 보낸 최승우가 쓴 서한에서 신라의 친고려파 대표 인물로 딱 언급을 해놨을 정도로 견훤이 이를 갈던 인물이었다.
- 왕실 유모 ( 연운경 분)
- 왕실 일관 ( 국정환 분)
6.3. 지방관 및 장수
- 영기 (김종구 분): 거병 이전 견훤의 상관으로 망해 가는 신라 왕정을 관찰하는 입장이다. 위홍의 사후, 견훤과 함께 지방으로 발령이 났는데, 견훤의 고향인 상주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는 것으로 발령이 났다. 서라벌을 나서면서 자신과 반대로 견훤은 젊으니 잘 해낼거라고 격려해 준다. 이후 견훤이 아자개를 방문하러 가는 걸 끝으로 등장이 없었는데, 나중에 옥룡사에서 도선과 그 제자인 경보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바로는 도적들을 토벌하러 갔다가 패하여 죽임을 당했다고 짧게 언급되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발령 후 상주의 반란을 진압하지 못해 참수되었다고 한다. 초반부에만 등장했다가 이후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비중없는 단역에 불과하지만, 단역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황금갑옷 때문에 태조왕건 유튜브 라이브 방송 댓글에서 황금용자 골드런에 빗대어 '황금용사 영기' '영기는 반란 토벌하러 갔다가 죽은게 아니다. 라젠드라로 간거다'라는 식의 기상천외한 드립들이 나오기도 했다.
- 무진주 도독 (김경하 분)☆★ : 견훤이 거병하자 신강과 함께 무진주 방어에 대해 논해보지만 심약한 성격인지 자살한다.[96] 결국 무진주 방어의 총지휘는 신강이 맡게 된다. 그리고 담당배우는 극 후반 고려의 신료 추언규로 재등장하였다.
- 철원성주 ( 송영창 분)☆ : 드라마 도입부인 철원성 전투에서, 투항을 거부하고 궁예의 미륵군을 막다가 포로로 잡히고 결국 참형을 당한다. 왕건의 집안을 비롯한 호족들에게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참형으로 다스리겠다고 엄명했음에도, 이미 대세가 기울어졌다고 생각한 호족들은 철원성주의 명령을 무시했다[97] . 참고로 철원성의 부장과 방어진장으로 나선 이들은 송금식과 유종근[98]이었으며, 그가 입었던 갑옷은 이후 복지겸이 내군 장군을 맡으면서 자주 나온다.
-
금성(錦城)태수 (
양재성 분)☆ :
태조 왕건판 심영.견훤이 부임한 임지인 미다부리정의 관할 태수. 견훤이 부임하면서 자신의 관할 구역의 군관 두 명을 죽이자, 크게 놀라 견훤에게 이곳은 사실상 능창의 영역이고 부임지의 사정이 암울함을 징징댄다. 일처리를 잘하는 견훤을 보고 "장군은 참 젊다."[99]고 감탄한다. 능창의 견훤 암살 계획[100]에 참여하기도 하나 결국 수달이 패하고 견훤 밑으로 들어가자 자신의 벼슬자리 걱정이나 하면서 비장을 시켜 도독에게 징징대고, 칙사로 온 신강과 세력을 일으킨 견훤에게 목숨 구걸을 한다(...). 나중에는 태수 자리도 종례에게 빼앗기고 쫓겨나는 인물. 포인트는 하이톤에 질질 끄는 말투.
7. 발해 측 인물
- 대광현 (김규 분): 발해의 태자. 발해 멸망 후 고려를 찾아와서 귀부를 요청한다.
- 신덕 (윤용덕 분): 발해의 장군. 발해-요 전쟁이 발발하자 고려에 투항한다.
8. 요나라 측 인물
- 거란 사신 (박세범[101] 분): 발해 침공을 앞두고 고려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려에 온다.
9. 주요 호족들
서술된 이들 외에도 많은 호족들이 있으니,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어 위키백과 참조.-
김순식 (박상규 분)
자세한 내용은 김순식(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당대의 고승 허월의 아들로 지금의 강릉시인 명주의 대호족이자 본래 신라 왕족 출신이다. 그는 군사를 이끌고 온 궁예에게 처음에는 반감을 가지긴 했지만, 미리 궁예를 살펴보고 결단을 내렸던 허월의 판단으로 성을 통째로 맡기며 충성하였다. 그 때문에 처음에는 왕건의 혁명 때 그를 추궁하면서 칙사의 목을 베고, 반란을 도모하였으나 허월대사의 설득과 이후 왕건이 보여준 황제로의 행보에 감복해 충신으로 돌아섰고, 공산 전투 이후에 환궁하던 왕건을 맞이하였다. 드라마 최후반부 일리천 전투에서 참전하였다. 극 중에서는 전투 장면이 하나도 없는 장수로 나온다.
- 박지윤 ( 이신재 분): 패강진(평주, 지금의 황해도 평산군 지역)의 대 호족으로 왕륭, 유천궁과 함께 패서 지역을 대표하는 대 호족으로 불린다. 궁예 정권 초기 시중을 지낸 바 있으며, 왕건 조정 초기까지 활동하다가 후계를 두고 권력 싸움 이후 왕건의 명으로 서경으로 보내지면서 아들인 박수문, 박수경 형제들을 남겨두고 떠나면서 퇴장.
- 원극유 (박승규 분): 패서 지역의 호족들 중 한 사람으로 궁예 정권 말기~왕건 조정 초기 병부를 맡았던 인물로 왕건의 혁명 때 군사 지원을 마련해 준 인물이다. 박지윤, 박질 등 몇몇 원로 대신들과 함께 서경으로 보내지면서 퇴장.
- 박질 ( 김봉근 분): 패서 지역의 호족들 중 한 사람으로 원극유와 세트 분위기. 왕건이 시중이 되기 이전에 잠시 임명되었다.
- 종례 (서상익 분)[102]: 분명 사료 상의 이름은 '羅聰禮'. 그러니까 '종례' 가 아니라 '총례' 인데, 이상하게도 본작에서는 이렇게 불린다. 웃긴 건 이래 놓고 '훗날의 나총례'라는 부연 설명이 있다는 거(...).[103] 견훤이 미다부리정(금성(錦城), 지금의 나주시)의 군관으로 부임할 때, 수달과 친문이 있던 대호족으로 등장해, 견훤의 혁명 이후에는 금성 태수[104]로 있다가 왕건의 1차 나주 점령 이후, 태수직에서 물려나고 이후에 잠시 등장한 것을 끝으로 하차. 담담 배우인 서상익은 마지막 즈음인 196화에 견훤이 금산사를 탈출해 고려에 귀부할 무렵에 나주 태수로 다시 등장한다[105].
- 이총언 ( 김영인 분)[106]: 처음에는 왕건이 지휘하는 배의 선장으로 큰 목소리를 앞세워 배를 움직인 사람으로 나오다 후에 벽진군 호족 장수로 등장하게 된다. 중립 지역이던 벽진군(지금의 경북 성주)의 호족이었으나 패륜을 저지른 견훤을 등지고, 고려로 귀부하게 되는 장수이다. 여담으로 당시 벽진군을 공격하다가 왕창 털렸던 신검 역의 이광기는 이총언을 시조로 한 벽진 이씨다.
-
서목
남천 일대를 다스리는 호족으로 이천 서씨의 시조 서신일의 조카. 최지몽이 운주 전투 때 왕건이 만나게 되리라 점쳤던 귀인 중 1명으로 오랜 지인인 전의성주 이치의 부탁으로 운주 전투를 위해 남정을 나왔다가 겨울비로 금강에 발이 묶인 고려군을 돕기 위해 찾아왔다. 불어난 강물 때문에 고려군이 물살에 휘말리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는 선두에 서서 얕은 물가로 인도해 이들을 위기로부터 구해줬다. 이런 은혜를 잊지 않은 왕건은 훗날 남천의 지명을 이천으로 바꿔 부를것을 지시하면서 서목에게 보답한다. 이 일화는 고려사에도 실려 있으나, 운주성 전투 때의 일이라는 것과 전의성주 이치와 친분이 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이다.
10. 승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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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 (
이대로 분)
자세한 내용은 도선(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왕건의 스승으로서 그의 출생을 예언한 것은 물론 제왕의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을 마련해 준 인물. 하지만 궁예와 종간, 왕건의 사이를 본의 아니게 멀어지게 만들기도 했다[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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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총 (
신충식 분)
자세한 내용은 석총(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궁예와는 대립되는 인물로서 왕건과는 첫 부인 유씨(부용)을 구하고 이를 왕건에게 알릴 때, 처음 만났으며, 이후 왕건이 사화진 전투 과정에서 충주에 머물 때, 허월과 함께 진표율사가 간직하고 있던 부처님의 간자를 왕건에게 바치면서 황제가 될 것임을 말하며 절을 올렸고, 바로 수도인 철원으로 올라가 궁예는 미륵이 아니라고 여러차례 비판을 하다가 83회 초반부 법회에서 금대가 휘두른 철퇴를 맞고 절명하였다.
- 형미 ( 박병호 분): 두려움을 갖지 않는 사무외대사 중 한 사람으로 나주에서 왕건을 만나 함께 궁예의 나라 태봉의 철원으로 왔다가 궁예의 폭정을 보고, 이를 비판하면서 나라를 위해 옳은 말을 하고, 죽임을 당한 연화의 장례를 치르다가 반역자의 장례를 했다는 죄목을 받아 초파일에 공개 처형을 당하게 되는 인물이다. 실제 역사상으로는 고려 태조의 군에서 군법사. 즉 종군 승려를 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운 사이였는데, 이런 모습은 극중에서는 전혀 묘사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주에서 태조를 만나기 전까지는 일면식도 없는 것으로 나온다.
- 범교 (안대용 분): 경문왕이 즉위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극 중에서는 처음에는 화랑의 일원으로 나온다. 경문왕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크게 실망하였다. 이후에는 화랑의 길을 버리고 세달사의 고승이 되어 궁예를 맞이한다.[108] 그 도선대사와도 어느정도 격이 맞는 고승 중 한명으로, 궁예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세달사에서 그를 받아주고 길러주었다. 수행을 마친 궁예가 자신이 미륵이 되어 세상을 구제하겠다고 하자, 궁예를 나무라지만[109] 한편으로는 종간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왕륭을 통해 갈 길을 주선해주었다. 나중에 왕건을 가르치기 위해 도선대사가 세달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궁예가 세상을 구원할 사람인지를 물었지만, 도선은 궁예가 뒷날에 올 성인을 위해 그 자리를 예비할 뿐이라고 대답하자 매우 놀라고 안타까워 하면서 열반에 들었다. 궁예의 뜻을 듣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제자를 아끼고 그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를 바라며 걱정을 많이 한 듯 하다. 궁예가 명주 공략을 하던 당시에 입적했다고 허월의 입을 통해 언급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경문왕의 선배 뻘 되는 화랑으로[110], 범교가 화랑의 우두머리 자리에 있을 때 경문왕이 되는 응렴이 낭도였으며, 후에 응렴이 헌안왕의 사위가 될 때 헌안왕의 두 딸 중 누구와 혼인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할 때, "첫째와 혼인하면 세 가지 좋은 일이, 둘째와 혼인하면 세 가지 나쁜 일이 있을 것"이라고 충고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작중 숨겨진 무력 본좌중 한명이다. 궁예와 유모가 위홍의 군사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해있을때 나타나 그들을 구해주는데 아주 비범한 전투 능력을 보여준다.
- 경보 ( 서영진 분): 도선대사의 제자로 유발제자[111]인 왕건과는 다르게 승려이다. 도선대사의 부탁으로 왕륭의 도움을 받아 중국에서 유학하고, 후삼국 시대 이후인 920년대에 다시 돌아와 옥룡사에 주석하였다. 견훤이 옥룡사에 몸소 찾아가 절까지 올린 끝에 그의 왕사가 되었으며, 드라마 막판에 금산사에 갇힌 견훤을 설득하여 고려에 귀부하도록 한다. 견훤이 탈출한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극중에서는 도선의 제자임을 부각시켜 지위가 견훤의 왕사일 뿐이지 왕건과 가까운 인물로 그렸는데, 실제 역사상으로 후삼국 통일 이전까지는 왕건과 이렇다 할 접점이 없었다. 오히려 당시 중국에서 유학하던 승려들이 왕건의 지원을 받아 귀국한 경우가 많았던 가운데 견훤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색적인 존재.
-
허월 (
곽경환 분)
자세한 내용은 허월(태조 왕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김순식의 부친. 원래 신라 황실의 후예이며, 명주(지금의 강릉시)의 유력 호족이었으나 ,권력의 허망함을 느낀 뒤 자식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자신은 불교에 귀의하여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불교 교리에 얽메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겉모습과 달리 인재를 보는 눈과 현실 정세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정보 수집 능력이 상당한 인물로, 궁예와 왕건에게 여러 도움을 주었다.
-
금산사 주지 (강태기 분)[112]☆ : 견훤이
금산사로 유폐되었을 당시의 주지 스님으로 파달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견훤을 탈출시키는데 적잖은 도움을 주었는데, 이는 사형(師兄) 격인 경보의 뜻이었다.
위제트 스님
- 동자승 효선 ( 이재응 분)☆ : 궁예가 미향과의 사이에서 나을 아들이었지만, 궁예가 철원에 입성한 이후 종간과 은부 등 측근들에 의해 어머니에게 떨어져 명주의 허월과 김순식에게 맡겨져 절의 동자승이 되었다. 이후 궁예의 순행 도중 명주에 있을 때, 김순식이 허월과 왕건의 충고를 듣고 모자 상봉을 하도록 했지만, 그 이전에 발광하다가 가둔 미향이 화재에 질식사하면서 만나지 못했고, 이후 '어느 늙은 고승이 데려가버린 뒤 소식이 끊겼다.'는 강 장자의 발언을 마지막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11. 그 외의 인물
- 기훤 (김윤형 분): 궁예가 처음으로 모셨던 죽주 일대의 도적으로 여색을 좋아하고,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면서 세상을 자세히 보지 못한 탓에 훗날 부하였던 원희에게 죽고 휘하 세력들은 궁예에 편입되었다.
- 설부 ( 맹호림 분)☆ : 설악산에서 내려온 도인으로 최승우의 사주를 받고 양길의 잔당들이 쏜 화살에 맞은 궁예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박유에 의해 불러들여 궁예를 살려내었다.
- 사벌주 의원 ( 유순철 분)☆ : 아자개가 병에 걸렸을 때 증상을 살피던 의원들 중 한 명.
-
철원성 촌노 : 궁예가 나주에서 올라오는 왕건을 맞이하기 위해
잠행을 하다가 길에서 만난 백성인데 궁예와 만난 당시에 죽은 아이를 산에 묻어주려고 지게에 얹고 있었다.[114] 궁예는 놀라면서 왜 아이가 죽었냐고 하고 나라에 이야기를 해봤냐며 묻자 울분을 토하며 황제는 미쳤고 간신들은 저희들 배부르기에 급급한데 나라가 어딨냐고 고함을 지른다. 그리고 언제부터 굶었냐는 궁예의 말에
가짜 미륵놈이 황제라고 철원성에 도읍을 정할때 부터 그랬다고 하고 지옥에나 떨어져 죽을놈이라고 욕을 한바가지 퍼부으며 저주하고 사라진다.[115] 비록 궁예가
잠행도중 만난 일개 백성이긴 하나
태봉의 민심이 얼마나 궁예를 떠나있는지 짧막하게 나마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 유긍달의 집사 : 유긍달의 집에 있던 집사장으로 왕건과 유긍달의 딸을 혼인시키기 위해 유긍달의 쓴 서신을 당시 광치나( 시중)이던 유천궁에게 전달하였고, 박술희와 함께 아자개 가족을 하객으로 모셔오는 역할을 했다가, 아지태 사후 임춘길의 집에 온 후백제 첩자 겸 승려인 도우의 꾀임에 넘어가 석총이 죽기 전 간자를 왕건에게 준 일을 토설해 왕건을 위기에 빠뜨렸다.
- 전의: 첫 등장은 복상사를 당한 김위홍을 진단하는 역할로 나오며, 그 직후 입막음을 위해 죽는다. 두 번째로는 독화살에 맞고 깨어난 뒤 고통스러워 하는 궁예를 진단하는 역할로 나오며 한 동안 궁예의 병증을 숨겼으나 결국 종간의 협박에 못이겨 궁예의 병세가 심통임을 밝힌다. 그 직후 살려준다는 약속을 받았음에도 결국 금대에 의해 또다시죽는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전의로 계속 출근하는데 문 밖에서 궁예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심통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가 종간의 경고에 입을 다문다.이후에는 왕건이 황제로 즉위한 뒤 갑자기 병이든 태자 왕태의 증상을 살피나 결국 왕태는 죽고만다. 조물성 전투 2차 전투때 괴질 사건이 끝난 후 전의 배우는 약을 찾지 못해서 자결했다는 식으로 최종적으로 하차되었다.본 드라마의 방영기간이 워낙 긴지라 전의으로 입막음을 위해 두 번씩이나 죽었음에도 계속 살아나 전의 노릇을 하고 있던 기이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1]
머리를 기른 제자.
[2]
태봉의 초기 국호는 후고구려 였으며 극중에서는 고려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후고구려는 시대를 분류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초창기 국호인 고려는 3년 동안만 유지하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7년후에는 태봉으로 바꾸었다.
[3]
사료에 나와있는 왕건의 부인들은 모두 29명이지만, 드라마에서는 다 소개하기는 어려운 관계로 신혜왕후와 장화왕후, 충주부인 유씨 3인만 등장하게 했다. 나레이션에서도 간략하게만 언급한다.
[4]
신숭겸의 후손이다.
[5]
실망이라기보다 절망에 가깝다. 극중에서는 부인을 둘 이상 두는 것은 당시 황제였던 궁예의 허락을 구해야 할 정도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으로 설정되어 있으며, 그 동시에 여성의 정조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백년가약을 맺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사람과 그 부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6]
이는 당시 박상아가 동 시간대의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캐스팅되었고 연장 방영에 대한 부담감 등을 이유로 조기 하차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에 연예계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7]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는 비용의 대부분을 내라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8]
복지겸의 해당 발언은 능창을 잡은 이후, 왕건을 데려오라는 궁예의 명을 받고 내려올 무렵에 말한 것이다.
[9]
단, 왕요와 왕소는 드라마에서 아역으로만 나온다.
고창 전투 이후인 174회에서 예성강 전투 사이에 왕소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 형제가 등장한 것이 유일하다.
[10]
황제인 궁예가 승낙한 마당에 유천궁이 반대할 힘이 없었다. 이후(궁예가 석총은 죽인 그 때)에 그 얘기를 들은 딸인 유씨(부용)와 오씨(도영) 및 오다련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11]
당시 하객으로
아자개와 그 일가가 참석했다. 태평의 아이디어로 박술희가 직접 상주에 방문해 청했고, 박술희와 왕건을 호의적으로 대하게 된 지 이미 오래였던 아자개는 아들의 적장이 치르는 혼례에 청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긍달의 말에 따르면 혼례를 계기로 아자개의 상주와 유긍달의 충주를 우호적인 관계로 확실히 만들어 두려는 것이었으며, 이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은 견훤은 펄펄 뛴다.
[12]
둘째 부인 오씨가 바로 나주로 가 고려 건국 때까지 그 곳에 머문 탓에 심한 대립은 없었다.
[13]
1997년 KBS 주말연속극
첫사랑에서 장군이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첫사랑에서는 최수종을
외삼촌으로 만났는데 태조 왕건에서는
아버지로 만났다는 것이다.
[14]
여담으로 배역을 맡은 안정훈은 극 중 모친으로 나온 장화왕후 역의 염정아보다 나이가 많아 미스 캐스팅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15]
광종이 나오는 장면은 극의 흐름상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못 보고 넘어가도 극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16]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었으며, 드라마 촬영 중인
2001년 8월에 세상을 떠났다.
[17]
여담으로 왕식렴 역을 맡은 정국진은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욱으로
야인시대에서는
이만섭 역을 한 배우이지만, 2004년
구미호 외전 이후로는 지상파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
[18]
여담으로 고려 건국 직후에 수단령으로 맡았으며, 조물성 전투 당시에는 순군부 휘하의 장수로 나왔다.
[19]
건강을 이유로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물러났으며, 이후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20]
본명은 박지영
[21]
이때, 왕건이 사화진 전투에서 꾼 꿈을 해몽함으로서 '최지몽'이란 이름을 하사하기도 하였다.
[22]
최응이 맡고 있던 병부령 직은
배현경이 이어받게 된다.
[23]
물론 유금필 문서의 7.1.문단 하단에 나오지만, 초반에는 그도 실수가 다소 있었다. 그럼에도, 문자 그대로 불패의 용장. 실제로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는 인물이라 왕건의 서남해 공략때는 참전한 기록이 없기에 극중에서 실수한 일도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다.
[24]
생긴 걸 보니 무식하겠다, 천자문은 뗐느냐고 비꼰 아자개 앞에서 『
대학 (大學)』의 한 구절을 읊어 좌중을 놀라게 했는데, 현대로 비유하자면 "초등학교는 나왔고?" 라는 말을 듣고 "여기 석사 학위입니다." 한 것이다. 실제 박술희는 호족 출신이니만큼 우수한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박술희를 연기한
김학철에게 한문 해독 능력이 별로 없는 것인지, 구절을 끊어 읽는 방법은 모조리 잘못됐다.
[25]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 변사부와의 대련에서 밀리지 않은 실력을 보였다. 이 대련을 지켜보던 왕건과 유금필도 "예사 사람 같지 않다."라고 놀랄 정도. 이 대련은 주변 사람들이 그만 하자고 말려 무승부로 끝났다. 덧붙여 변사부 역을 맡은 배우
나한일은 실제로 검도 유단자다.
[26]
옛 상관이었던 은부가 조치한 것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내군은 주인을 따르는 개처럼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쳐야 하는데 염상은 언젠가부터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고. 염상은 은부의 조치에 순순히 따르며, 은부는 종간에게 "목숨을 거둘까도 했으나 옛 정이 있어 인사조치로 끝냈다" 라고 보고한다.
[27]
조물성 전투 이전,
경보가 중국에서 옥룡사로 향할 때 등장한다.
[28]
드라마 초반에 궁예가 공격했던 철원성의 부장으로 나왔다.
[29]
왕충 역 이전에 청주의 호족 진선 역으로 나온적이 있다. 형인 선장(김명국)과 왕건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홍유의 언월도에 썰리게 되었다. 이후 형인 선장은 백제의 상귀로, 동생인 본인은 고려의 왕충으로 환생하게 된 셈
[30]
극 초반부에는
기훤에게 간
양길의 사자로 나와서 목이 잘릴 뻔한 역을 맡았으며, 극 후반부에는 박영규의 집사로 출연하여 견훤을 금산사에서 탈출시키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1인 多역이 많았던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많은 배역을 소화한 인물들 중 1명. 그 외에
이병욱이나 김창봉(서남해 호족, 왕창근, 의원,
김행 역)도 1인 다역을 많이 하였다.
[31]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에 출연했다.
[32]
훗날의 '이도'
[33]
서목이 왕건에게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남천이 이천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고려사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것이 운주성 전투때의 일이라는 것과 서목과 이치가 친분이 있다는 것은 드라마의 창작.
[34]
이치 본인도 속았다는 것을 알고는 서둘러 추격해 따라잡았지만 박영규가 이끄는 잔졸 백제군의 치열한 저항으로 끝내 실패한다.
[35]
다만 웃긴 것은, 이치에게 성절이라는 시호를 내린다는 내용이 내레이션이 아니라 왕건의 대사로 나온다는 것이다. 즉 멀쩡히 살아서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라는 대사도 치는 인물에게 시호를 내린 것이다.
[36]
대조영에서 당나라 장수 방효태로 열연하였다.
[37]
순행에 미향을 동행시키자는 것은 강비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일전에 종간과 은부의 명을 받은 염상이 미향을 살해하려는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된 그로서는 궁예가 궁을 비우고 나면 미향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청한 것.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미향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 나고 자랐던 북원의 폐허(양길 처단 후, 은부의 명으로 불타 없어짐)를 보고 발광하다가 은부에 의해 몇 번 제압되었고 이후 명주에서 한 번 더 발광하다가 은부가 그녀를 관아 내 건물에 가두고 바깥에 못질까지 했는데, 건물 내에서 아이의 환청을 듣고 서성거리다가 양초를 건드리고 그것이 화재로 이어져 탈출하지 못하고 숨지고야 말았다.
[38]
'바람의 손자'라는 닉네임이 있는
어느 야구선수와는 당연히 동명이인이다. 2016년 12월 10일, 32세의 젊은 나이에 암으로 사망했다.
[39]
이와 관련해서 116화에 강비가 최후를 맞을 때 나레이션의 말미에,
철원 지역의 설화에서 전해 내려오는 왕건과 강비의 정혼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고 밝혔다.
[40]
강비 자신에게는 흠 잡을 데가 없으나, 그 부친이 성품이 경망스러운 강 장자라 곤란하다는 이유.
[41]
극중의 종간은 관상을 볼 줄 아는데, 강비를 처음 보고는 황후감이라고 점찍는다. 그러다 은부로부터 왕건의 정혼자라는 사실을 전해듣고, 황후가 될 만한 인물과 왕건이 결혼하게 두었다가는 왕건이 옥좌에 더 가깝게 다가가게 생겼다고 판단하고는 국혼을 더욱 서두르게 된다.
[42]
자신의 사위이자 국왕인 궁예가 백성들을 구제하는 미륵을 자처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후고구려가 창건된 명분과 이념을 대놓고 부정할 뿐 아니라 자신이 그런 소리를 했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43]
최치원 역을 맡은 배우와는 동명이인이며 야인시대에서 오무라 형사를 맡았다.
[44]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아침에 신천 강씨 세력가가 나오는데, 이를 보면 집안 전체가 멸족된 것은 아니다. 이 양자도 이후 어떻게 되었다고 설정되지 않았으니, 목숨을 건졌을 가능성이 높다.
[45]
다만 세달사와 서라벌에서는
승려로, 이후에는
환속하면서 지낸다. 10화를 기점으로는
삭발되었던 머리가
장발이 되었다.
[46]
궁예가 앓아누울 때는 관료들 중에 최고 우두머리인 광치나를 제쳐 놓고 조회를 주관하기도 했을 정도이니 할 말 다 한 셈. 유천궁이 딸 유씨와 왕건의 혼인을 추진하며 왕건이 훗날 왕이 될 인물이라고 평하자, 그 말을 들은 유천궁의 처가 "이 나라에는 폐하 다음으로 내원이라는 분이 계시지 않사옵니까?"라고 하기도 한다.
[47]
궁예가 아무리 폭정을 저질러도 결국 자신은 그의 신하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나라를 위해서는 역성혁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접고 궁예에게 직언을 해서 상황을 바꾸려 하지조차 않았다. 그나마 아지태를 몰아내기 위해 왕건과 손을 잡는 모습도 보이기는 했으나, 이마저도 아지태를 제거하는 게 급해서였지 왕건과 완전히 화해할 목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48]
종간이 떠나지 않고 내원에 있다는 사실을 최응이 알려주었다.
[49]
14회에서 양길이 기훤에게 사자를 보내오자 기훤이 사자를 죽이려는 것을 원회가 말렸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기훤이 당장 내일 아침에 양길을 치러 출정하겠다고 선언하자 원회가 거듭 말렸고, 이에 개
빡돈 기훤이 원회의 얼굴에 술잔을 끼얹고 그의 머리를 마구 때렸다.
[50]
이 때 종간과 신훤, 원회와 넷이서 잠시 만난 자리에서 "너희가 양길 대장군을 디딤돌로 쓸 생각인 것 다 알고 있다."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만 그것은 겉보기로만 그런 것이었고, 종간 등에게 한 말의 내용을 곱씹어 보면 궁예 일행이 보내지게 될 석남사라는 곳은 어떠한 곳인지와 양길이 궁예를 사실 의심하고 있으며 양길의 측근 복지겸을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준 것이었다. 이후 석남사로 가는 동안에 종간이 은부에게 뒤늦게 감사를 표하고, 은부가 궁예의 부하가 되어 충성을 다 할 작정이라고 밝히는 장면도 있다.
[51]
초기에는 병부령을 겸해서 맡긴 했지만, 궁예의 순행 이후에는 복지겸이 병부령을 맡게 된다.
[52]
한자가
완성형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來犬 金夫 4글자를 장평 50%로 줄여놓은 형태였다.
[53]
드라마 초반 금성(錦城)태수의 비장 역으로 나왔다.
[54]
따라서 드라마를 굳이 1부와 2부로 나눈다면, 궁예가 진 주인공이었던 1부(~120화)와 왕건과 견훤의 후삼국 쟁탈전과 후삼국 통일을 다룬 2부(132화~200화) 사이(121화~131화)가 1.5부로 봐야 할 것이며, 왕건의
고려 건국 이후 연이은 혼란을 수습하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55]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염상 역을, 드라마
무신에서는 이자성 역을 맡았다.
[56]
방송인
조향기의 아버지로 이 드라마 이후에
야인시대,
제5공화국 등 사극과 시대극에서 조연으로 나오다가 2007년 1월에 지병인 간암으로 별세했다.
[57]
당시 이들이 머물던 주막 주인이 환선길의 옛 수하라서 방을 빌려 준 것인데, 그 주인의 아내가 이를 한탄하면서 내군에게 알렸다. 문제는 내군 장군인 복지겸이 이 사실을 보고받았을 당시가 왕건이 부인들과 신료들을 이끌고 아자개를 맞이하던 길이었고, 매복하고 있던 이흔암 일당이 쏜 독화살에 장일이 맞고 사망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58]
극중의 순서가 아니라 실제 촬영된 순서를 기준으로 하면 신검이 처형되는 신이 가장 마지막이다.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를 다룬 특별 방송분을 보면, 이 장면 촬영이 끝나자마자 장장 200부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하는 자리가 벌어진다.
[59]
삼국기에서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 역을 맡았다. 재밌는 것은 삼국기에 이어 태조 왕건에서도 극중에서 서인석과 부자지간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60]
코미디언 최승경의 부인이다. 당시 임경옥이라는 이름으로 출연.
[61]
그녀와 박영규 사이의 딸 하나가 왕건의 부인이 되고, 다른 두 딸은 고려 3대 왕인 정종의 왕후가 된다.
[62]
신검 삼형제와 결국 사이가 틀어지기는 하나, 이는 삼형제가 일방적으로 적대한 결과이며 금강 쪽에서는 신검 등을 드러내 놓고 비방한 적이 없다. 자신을 다음 왕으로 낙점하는 견훤이 형제 간의 우애를 강조하자 노력하겠다고 답하기도 했으며, 그 이후 고비로부터 신검 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말을 듣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63]
드라마 종영 후 자신이 배역을 맡았던 능애의 이름을 따서 충남 공주시 정안면 평정리에 능애 낚시터를 운영하고 있다.
[64]
친신검파 인물들 중에 "정 안 되면 힘으로라도..." 라는 식의 발언을 가장 먼저 한 것이 능애다.
[65]
1인다역으로 드라마 속 여기저기서 등장한다. 첫 등장은 드라마 초반 서라벌에서 죽주 사이의 성의 관문을 지키는 군관으로 나오면서 궁예와 종간에게 위홍의 죽음을 알린 역할을 한다. 두번째는 궁예군이 명주성으로 향하며 백성들에게 양식을 베풀고 모병을 할 때 모병관으로 등장한다. 세번째는 고려국이 금성(현:나주) 공략할 당시 능창에게 생선을 갇다 드리는 인물중 한명으로 나오고 네번째 청주 반란군을 진압할때 성문 수문장으로 나오며 다섯 번째 역할이 진호다.
[66]
무려 천년 묵은 산삼을 보냈다.
[67]
이 부분은 199화에서 복지겸과 내군 부장간의 대화에서 나왔다.
[68]
3년뒤
무인시대에선
견훤역의
서인석(
이의방)과 부부로 출연한다.
[69]
아이러니하게도 남원부인이 '백제로 가봤자 결국 구박덩어리가 된다.'고 한 발언은 훗날 백제가 후계자 문제를 놓고 일이 터지면서 앞날을 예측한 격이 됐다. 실제로 아자개가 백제에 있었다면 아자개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 진짜로 무슨 일을 했을지 모르는 일이다. 백제 내부에서도 초반에는 아자개를 그래도 모셔야한다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갈수록 금강때와 다를바 없이 적대하는 분위기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70]
그를 소개할 때 나레이션으로 최언위는 나중에 소개한다고 되었지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71]
미리 이런 일이 든다는 예감에 하인들을 내보내고, 족자들을 태웠으며, 능환과 군사들이 올 때, 미리 독약을 든 차를 마시면서 눈을 감았다.
[72]
근데 정작 활약상을 보면 능환보다도 나아 보인다. 실제로 그의 계책이 최승우에게 칭찬받는 장면도 몇 번 있는데, 종훈 자신이 퇴장하게 되는 운주 전투에서 견훤을 무사히 피신시키기 위해 가짜 어차와 짐수레를 보내는 계책도 종훈이 낸 것이다. 왕을 어떻게 짐마차로 모시느냐는 반대가 있자, 최승우는 곧바로 "좋은 계책이다. 공산 전투 때 고려 왕이 우리 군졸의 옷을 입고 도망친 것과 같은 것이다." 라며 변호하고 나선다.
[73]
종훈은 전략을 만들어서 신검에게 올렸으나 채택이 되지 않았다고 변명했으나, "그건 그렇다 치는데, 우리에게 항복했던 고창 주변 성들이 다시 고려에게 가 붙는 동안 네가 한 게 뭐냐" 라는 견훤의 꾸중에는 대꾸를 하지 못했다.
[74]
전작인
용의 눈물에서 정종 역할을 맡았고,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중년의 한병태를 맡았다.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되었다.
[75]
처음에는 나주 포구를 맡은 고려군 부장으로 경보대사를 옥룡사로 그냥 보내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후 드라마 대조영에서 신라의 장수 김찬으로 열연하였으며
불멸의 이순신 에서는 신숭겸의 후손인 신립 역을 맡는다.
[76]
역사상 원래는 공직이 투항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공직 역할을 맡은 이정웅이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하차하면서 염흔이 투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만 염흔이 투항한 것은 고려사에 실려 있으므로, 이 인물 자체가 창작이거나 투항했다는 기록이 없는 사람을 공직 대신 고려로 보냈거나 한 것은 아니다.
[77]
사실, 역사대로라면, 오래 나와야 하지만, 후술한 사건사고 하나로 인해서... 일찍 퇴장한 셈이 되었다. 배역을 맡았던
강재일 또한 이후,
대조영까지 출연을 할 수 없었다고...
[78]
다만, 해당 장면에서 신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이는 배우인 임병기가 낙마하면서 이탈한 것이다. 결국, 그가 처형 직전에 하려고 한 말은 파달이 하게 되었다. 다만, 부상 정도가 심하지 않은 편이라 이후 임병기는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최언위의 아들인 최행귀를,
무인시대에서는 전존걸을 맡았다.
[79]
드라마 중반, 청주의 호족 선장 역을 맡았는데, 고려 조정 초기 임춘길에 의한 청주의 난 당시 임춘길이 보낸 부장으로 알고 청주 관아로 들어온 홍유의 일기토에 단번에 전사한다.
[80]
최응의 하인으로 등장하였었다. 그 이후에는 상애역을 맡음.
[81]
사실 유금필이 싸움을 못했다기 보다는 화살에 맞은 유금필의 한 팔을 스크래치 낸 수준이다. 그래도 백제군에서 유금필의 털끝이라도 건들어 본 사람은 최필 하나뿐이다.
[82]
KBS 유튜브에서 다시보기를 제공했는데, 느린 그림으로 천천히 살펴보면, 최필을 벤 인물이 장군급인 이치가 아닌 무명 배우로 평범한 고려 부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치보다 더 늙은 모습에 흰 수염이 확실히 보인다. 단, 왕건에게 최필의 목을 가져다 주는 부장은 이치가 베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치의 부대가 베었다는 말을 한 것이 그렇게 전해진다. 다시 얘기하지만 느린 그림을 보면 평범한 부장이 단칼에 베었다. 예전에는 부하가 한 일을 주인이 한 것으로 많이 보고 되기도 하였다.
[83]
진지하게 따지자면, "무력 밸런스" 라는 것 자체가 무리가 많다. 무력이든 다른 능력이든 언제나 일정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 그 날의 컨디션이나 심리 상태 같은 것에 따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며, 그래서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는 속담도 있는 것이다. 운주 전투에서 최필이 전사했을 당시는 이미 후백제군이 패배가 결정된 상황이었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견훤이 무사히 도주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상황이었으므로, 아무리 스스로 원한 것이라고는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보면 그만이다.
[84]
드라마 초반에 능창의 부장으로 나왔다.
[85]
드라마 시작 부분 철원성으로 향하는 궁예군을 보고하는 신라군 전령을 시작으로 전령이나 부장으로 등장하였다. 이후로도 전령 역할로 간간히 출연하다가 장수들을 천거한 이후에 장군직으로 고정이 되었다. 이후 드라마 대조영에서 마지막화까지 등장하는 고구려의 부장인 무염으로 등장한다.
[86]
고려군에선 태평이 죽었고, 백제군에선 금강이 역병에 걸렸다.
[87]
이 기병은 상대가 설마 견훤왕의 어의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백제의 중신으로 오해하여 살해했다. 아무리 전투 중이라 평상심이 아니었다고는 하더라도 중신이라면 포로로 잡아서 뭐 하나라도 토설하게 하는 게 이득이었으며 실제로도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별로 중요한 장면은 아니지만 고증과 현실성을 둘 다 놓친 대목.
[88]
용의 눈물에서
의안대군(이화)으로 등장.
[89]
노현희의 키는 163cm로 대한민국 평균 여성보다 크고 연령대를 감안하면 꽤 훌륭한 키이다. 어찌보면
후삼국시대 당시 남성들 키라고 할 수도 있다.
[90]
견훤 역의 배우인
서인석 보다도 나이가 많다.
[91]
마의태자 역을 맡았던 이병욱은 극 중반부에 최승우가 사주하여 궁예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객의 일원들 중 하나로 등장한 바 있다. 다른 자객들은 궁예가 솔직히 말하면 용서해 준다고 하였으나, 솔직히 말하기는 커녕 왕건의
숙부인 왕평달이 사주하여 왕씨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궁예를 암살하려 했다고 진술하였고, 이에 제대로
분기탱천한 궁예가 국문장에서
철퇴로 동료 자객들을 모두 죽이자 이 쪽만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이
후백제에서 왔음을 실토하고 살아남았다. 그 전에는
효공왕에게
대야성에서 견훤의 백제군을 격퇴했다고 알리는 전령으로 등장했다.
[92]
드라마 초반에 서남해 호족들 중 하나로 등장했으며 1.2차
대야성 전투에서 견훤의 침공을 막아냈다.
[93]
후일
무인시대에서
왕광취로 분하여
서인석이 연기한
이의방에게 죽는 역할이 되었는데
황제는 폐위되셨소이다를 참조할것.
[94]
유염 출연 이전 118회에서 태봉 학사 '백락'을 연기하였다.
[95]
지구용사 벡터맨의 레디아 공주 역할로 유명하다.
[96]
옥에티로 그가 자살한 후 모습을 비출 때 뒤쪽에 현대인 복장을 한 제작진 중 하나가 슬쩍 지나간다.
[97]
사실 철원성주의 명령 부터가 이미 늦었다. 철원성주의 전령이 송악에 도달할 당시에는 호족들이 모여서 다음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그 시점에서 이미 철원성은 공격받고 있었고, 미륵군은 속전속결로 전초기지와 철원성을 함락시켰다. 철원성의 병력은 공격을 버티며 원군을 기다릴 수준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
[98]
전북도지사를 지낸
동명이인과는 다른 배우 출신이며, 후속 작인
무인시대에서 생선장수 출신의 이영진 역을 맡았다.
[99]
사실은 "견훤 네가 나이가 어려서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라는 의미다.
[100]
연회를 가장해 견훤을 죽이려고 했지만 견훤과 그 일행의 활약으로 역관광 당한다.
[101]
흑수말갈 족장과 함께 1인 2역.
[102]
용의 눈물에서는 양녕대군의 장인인 김한로로 나왔다.
[103]
이환경 작가는 고질적으로 꼼꼼함의 부족을 보여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이것도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환경 작가의 작품에서 이런 문제가 생긴 경우가 한둘이 아닌데 예를 들어
SBS의
연개소문에서는
대걸걸중상을 대걸중상이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등장시킨 바 있다.
[104]
이때 백계산 옥룡사에 머물던
최승우를 모셔오기 위해
추허조와 함께 옥룡사에 갔다가 최승우가 무례하다는 이유로 추허조가 막말을 쏟아내는 바람에 개고생을 했다.
[105]
종례가 다시 태수가 된 것이 아니냐고 보는 경우도 있는데, 세 가지 이유로 그렇게 보기 어렵다. 일단 자막에 나주 태수라고 나오지 종례라고는 안 되어 있고, 종례와는 상호 존대하던 오다련이 이 인물은 아랫사람 취급하며 말을 놓는다. 게다가 고려로 귀부하기 위해 나주에서 출항한 견훤은 오다련을 보며 옛 생각에 젖는데, 오다련보다 종례를 더 일찍 만났던 만큼(극 초반에 견훤이 수달과 겨룰 때부터 수달의 책사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오며, 오다련은 종례가 견훤에게 소개했다) 이 인물이 종례였다면 못 알아봤을 리가 없다.
[106]
야인시대에서
심영 역을 맡은
배우와는 동명이인인 1940년생 원로 배우.
[107]
정확히는 종간과 왕건. 도선이 왕건이 후에 나라를 세우고 후삼국읕 통일할 인물이라고 도선비기에 적었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인데, 종간은 이 예언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왕건을 계속해서 견제했다. 궁예는 이 예언을 반신반의했지만, 그 이전에 왕건과 종간을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 같은 존재들로 생각했다.
[108]
작중에서 언급되기로 이미 한참 전에 출가하여 중이 된 지 오래였지만 화랑직을 겸임하여 경문왕의 등극에도 관여했다고 언급된다. 범교는 그 도선에게조차 존대를 받는 고승인데, 지금도 승려는
법랍이라고 해서 승려가 된 이후로 몇 해가 흘렀는가를 세는 나이 비슷한 것이 따로 있기 때문에 출가한 지 불과 8년 정도의 중이라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이런 대접은 절대로 받을 수 없다. 실제 기록에서도 이미 경문왕이 헌안왕의 사위가 될 시점에 범교가 중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09]
이 때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륵을 자처했으나 결국은 도적으로 끝났다"는 언급을 하는 데 이러한 언급은 궁예의 타락과 그로 인한 몰락에 대한 복선이 된다.
[110]
작중에서는 범교와 경문왕 간의 명확한 관계가 나오지 않았고 거의 동료 화랑처럼 묘사되지만, 이후 범교가 도선대사에게 존대를 받고 본인은 도선에게 하대하는 것으로 보아 도선보다 연배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경문왕은 도선보다 17 ~ 20세 정도 아래이기 때문에 범교와 경문왕이 동료라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작중에서도 범교가 경문왕의 선배일 가능성이 높다.
[111]
머리카락을 기르는 불제자를 말한다.
[112]
100회부터 106회까지 지리산 도인으로 출연하였으며 도인이 지어준 탕제를 마신 궁예가 답답함을 참지 못해 은부에게 도인을 죽이라고 명하여 죽임을 당한다.
[113]
신라의 군관으로 출연하였다가, 이후 백제의 척후병으로 열연하였다.
[114]
죽은 아이는 촌노의 손자이거나 늦둥이로 추정이 된다.
[115]
이때 작중에 나온
태봉의 사정이 말이 아니었는데 태조 왕건에서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인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는가에서 고작 2회 밖에 안 지난 시간대였고(태조 왕건 100회) 궁예가 무리하게 북벌을 추진하기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고혈을 짠 탓에 북벌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이를 반영하듯 궁예가
잠행을 하는 도중에 곳곳에 시체들이 쌓여있고 백성들이 유리걸식을 하고 있었다. 궁예의 무리한 북벌 추진이 얼마나 나라를 내외적으로 썩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