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인물에 대한 내용은 최지몽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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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배우는 박지영.[1]2. 극중 행적
제141화에서 최초로 등장하는데 최응이 왕건에게 "최총진이라고 하는 학문이 뛰어나고 천문과 복술에 밝은 신동이 있다"며 천거한다. 이때 그의 나이 17살로 최응보다는 3살 늦게 조정에 출사했다.왕건과의 첫 만남에서 과거 왕건이 30살에 꾼 꿈을 아직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해몽을 요청하는데 정확하고 명쾌한 꿈 풀이를 선보여 천문과 복술에 밝다는 점을 스스로 증명했다.
'내의성령'이란 벼슬로 조정에 출사한 이후에도 실제 사료처럼 뛰어난 해몽과 예언에 가까운 예측을 선보여 왕건의 신뢰를 얻는다. 최응을 존경하여 최응 밑에서 활약하였으며 마치 최응의 후계자같은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2] 이는 최응이 최승우와 대담할 때도 직접 최지몽을 데려와 같이 대담하기도 한다. 조물성으로 친정하는 것에 대해서 안 좋은 점괘가 나왔다고 하거나 제146화에서 죽는 태평이 죽기 며칠 전 꿈 이야기를 할 때 등 최지몽이 불길하다거나 안 좋은 점괘가 나왔다고 말만 하면 그대로 들어맞는다.
전투에서는 왕건과 함께 전장에 종군하는데 주로 복술을 이용하여 전투의 향배를 예측하는 모습을 보인다. 공산 전투 이후 수세에 몰리는 왕건의 친정에서 최응과 함께 참전하며 보조 참모 비슷한 역할을 하는데 아무리 불길하다고 조언을 해도 왕건이 듣지를 않아서 고생이 말이 아니게 나온다. 고창 전투를 앞두고는 "기근재(굶주림에 시달리는 재난)(어린 시절), 역려재(전염병에 걸리는 재난)(조물성), 도병재(무기나 도구 등으로 인해 입게 되는 재난)(공산) 삼재(三災)가 모두 지나갔으니 이번에는 이긴다"는 희망찬 예언을 해준다.
최응 사후에도 계속 관직에 있으며 적절한 점괘 및 조언을 해줬고, 일리천 전투에 종군할 시점에서는 그 역시 수염이 나며 세월의 흐름을 보여준다. 일리천 전투에서 대패한 신검이 항복하고 그 처우를 논할 때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도 항복한 적국의 군주를 당장 죽이는 법은 없었다며 일단은 살려주라고 조언한다.[3]
여담으로 출사한 이후에는 관복 대신 평복을 입고 나오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는 관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온 것으로 보면 고증 오류라고 해야 할 지 의심스럽다.
그 이후 최지몽 역할은 제국의 아침에서 정동환이 맡게 된다.
[1]
현재는 '지아니 박'이라는 예명을 쓰며 음악가 겸 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
[2]
최응 사후 최응이 맡고 있던 직책인 병부의 수장인
병부령은 최지몽이 아니라
배현경이 맡게 된다. 이는 마치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사망한 이후
승상 직책은
장완,
비의 등이 이었지만 후계자로서
강유가 부각되는
삼국지연의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3]
이 장면은 차기작 제국의 아침에서도 광종의 아들한테 사약을 내리라고 명하자 탄문을 포함 모든 대소신료들이 역사에서 자식을 죽인 황제가 여럿 있었으나 어린 친자식을 죽이는 법은 없었다며 손이 발이되도록 빌어서 동궁에 계속유폐시키는 선에서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