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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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국성 {{{#!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160><tablebordercolor=#008080> 이천 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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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008080><colbgcolor=#008080> 관향 | 경기도 이천시 | ||
시조 | 서신일(徐神逸) | ||
집성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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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99,792명(2015년) | ||
링크 | 이천 서씨 대종회 | 서씨일가연합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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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천 서씨는 경기도 이천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며 대부분의 서씨들의 원류이다.2. 기원과 역사
시조는 후삼국시대 신라의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낸[1] 이천 일대의 호족 서신일(徐神逸)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화살에 맞은 채 사냥꾼에게 쫓기던 사슴을 집에 숨겨줬더니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자기 아들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자손으로 하여금 대대로 고관대작이 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서신일이 나이 여든에 아들 서필을 낳았고, 이 서필이 과연 고려 초기 나라에 기틀을 다지며 재상이 된다.이어 서봉, 서희(손자), 서눌, 서유걸 (증손자), 서정, 서존[2], 서준방, 서균, 서린, 서원, 서성, 서공, 서순, 서린, 서릉, 서원경, 서신계, 서신, 서충, 서윤, 서호 등 이천 서씨는 대대로 15대 재상을 배출한 고려의 대표적인 문벌 명문가였다.
3. 백제 왕실과의 연관성
백제 왕실의 후손을 자처하는 부여 서씨의 족보에 따르면 시조는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융이지만 세계가 실전되면서 서희의 현손인 태원군(太源君) 서존(徐存)이 중시조이자 1세조로 되어있다. 이를 통해서 부여 서씨 또한 이천 서씨에서 결국 분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서씨(徐氏)라는 성씨의 계보가 후삼국시대부터 규명되고, 과거 고구려와 백제의 왕족과 귀족들이 개성(改性)하거나 은성(隱性)했던 역사적 흐름에 더해 서씨(徐氏)와 부여씨(扶餘氏)의 획간 유사성을 감안하면 부여 서씨와 이천 서씨 모두 백제 왕실인 부여씨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고 볼 수 있다.[3] 나말여초에서 선계가 처음으로 규명된다고 해서 그 이전에 성씨가 없었다는 주장은 전후 파악을 하지 않은 것인만큼 고려해 볼만한 상황이다.[4]부여씨(扶餘氏)의 부(扶)자를 생략하고 여(餘)자를 변형하면 서(徐)자가 된다.[5] 이는 백제의 대성팔족인 목씨(木氏), 백씨(苩氏), 진씨(眞氏)가 비슷한 시기 신라로부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 쓴 수법이니만큼 서씨 또한 그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6] 고려 멸망 당시 왕씨 몰살로 말미암아 왕씨(王氏)들이 외가의 성씨를 차용하거나 성씨를 옥씨(玉氏) 등으로 개성(改性)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백제 유민 가운데 일본으로 망명한 왕족 출신의 부여자신의 이름이 기록될 때 여자신으로 성씨가 축약되었던 것을 생각하면[7] 부여씨 혹은 여씨가 서씨로 개성(改性)한 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이천 서씨나 부여 서씨 모두 관향이 신라 내지(內地), 즉 경상도와는 거리가 먼 구 백제 영토에 속하는 지역들이었던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천의 경우 진흥왕 대에 신라가 팽창하면서 영토로 편입하고 군대를 주둔시킨 지역인 남천주(南川州)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남천주는 여전히 신라 내지와는 거리가 멀고 백제와 오히려 더 가까운 곳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당시에는 삼국전쟁이 한창일 땐 전란을 피해, 전후에는 황폐화된 고향을 떠나 더 나은 곳을 찾아 유민들이 이동하는 현상이 흔했다.
4. 집성촌
4.1. 경기
4.2. 전라·제주
-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백양리[10]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구면 부용리
-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유등면 건곡리·유촌리
-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대곡리
-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대치리·봉산리
-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신기리
- 전라남도 광양시 중동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동곡리·산남리[11]·용곡리·운평리·죽천리
- 전라남도 광양시 진월면 송금리
-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
- 전라남도 무안군 몽탄면 내리·대치리·봉명리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영등리
- 전라남도 여수시 월하동
-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 송학리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쌍풍리
- 전라남도 완도군 금당면 육산리
-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금곡리·백호리
-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성천리
-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12]
-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국동리·오동리[13]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연동
4.3. 대구·경상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오산리
-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금구리·동부리·수서리
-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하구리
-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회룡리[14]
-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보미리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덕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
- 경상북도 경주시 천북면 물천리
- 경상남도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
4.4. 북한
- 강원특별자치도 통천군 임남면 외염성리
- 강원특별자치도 회양군 안풍면 풍미리
- 황해도 평산군 적암면 신답리[15]
- 평안남도 용강군 다미면 장미리
- 평안북도 박천군 북면 사직리·원남리
- 함경남도 고원군 군내면 상사창리·하사창리
- 함경남도 단천군 광천면 동원리
- 함경남도 단천군 복귀면 오몽리[16]
- 함경남도 영흥군 복흥면 하국사리·형탄리
- 함경남도 홍원군 보청면 나상리·나천리·신흥리·중평리
5. 인물
- 서필 - 고려 광종 배향공신
- 서희 - 고려 성종 배향공신
- 서눌 - 고려 정종 배향공신
- 서균(고려)
- 원목왕후 - 고려 현종의 왕후
- 서민호 - 독립유공자
- 서윤제 - 독립유공자
- 서일 - 독립유공자
- 서장주 - 독립유공자, 제헌 국회의원
- 서건창 - 야구선수
- 서경배 -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
- 서균렬 - 교수
- 서미경 - 배우
- 서민정 - 배우
- 서민준 - 모델
- 서수길 - 기업인
- 서신애 - 배우
- 서욱 - 제48대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 서훈 - 제38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장
- 서영은 - 가수
- 서영은 - 가수. Kep1er 멤버
- 서인영 - 가수
- 서예지 - 배우
- 서은광 - 가수. 비투비 멤버
- 서재덕 - 배구선수
- 서재희 - 인터넷방송인
- 서정원 - 前 축구 선수, 축구 감독
- 서정희
- 서지영 - 배우
- 서지오 - 가수
- 서지훈 - 프로게이머
- 서태화 - 배우
- 서한규 - 야구선수
- 서향희 - 법조인
- 서윤건 - 가수
6. 기타
왕건이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이러 가면서 복하천에 이르렀는데 큰 비로 복하천을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현지인[17]의 도움을 받아 강을 무사히 건너는 일이 있었는데, 이때 큰 내를 건너 이로웠다는 '이섭대천'이라는 이름이 줄여져 그곳의 지명이 이천이 되었다고 한다.이천 서씨는 타 지역에 많이 세거하는 편이다.[18]
[1]
이러한 직함을 갖고 있던 후삼국시대 호족들의 케이스에서 흔히 나타나듯이 고려나 조선의 지방관처럼 중앙에서 임명해 내려보낸 게 아니라 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호족이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막기 위해 세력권을 인정하는 의미로 부여한 것이다. 즉 이 시기 이천 일대는 서씨 호족의 영지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음을 나타낸다.
[2]
태원군(太源君) 서존으로, 부여 서씨의 중시조다.
[3]
당시
의자왕만 해도 아들들만 한정해서 그 수가 약 50여명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당으로, 일부는
왜국으로 도피했지만 거의 대부분은 백제 영토에 잔류해
통일신라에서 연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의하면 "
고조선의
준왕이 나라를 뺏긴 후 서아성(徐阿城) 지방에 정착을 했는데 그곳 지명을 따 성씨를 서씨(徐氏)라 하였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어 준왕의 후예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고증이 불가능한 다분히 전설적인 내용인 한편 나라의 멸망 후 어딘가에 정착했다는 레퍼토리는 백제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기원이 각색된 설화일 가능성이 있다.
[5]
사마(성씨)(司馬)씨가 풍(馮)씨로 축약한 방식과 거의 비슷하다. 餘와 余는 동자로 통하는데, 余 앞에 변을 붙이면 딱 徐가 되기 때문. 고대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던 사마씨는 고대 말~중세쯤에 들어서부터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는데,
서진과
동진의 황성이었으니만큼 국가의 멸망으로 인한 탄압을 피해 변성을 행한 걸로 추정된다. 또한
부여는
선비족
모용부에 대대적으로 털려 수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적이 있는데, 그래서 모용선비가 세운 나라인
전연이나
후연에서는 부여의 유민 출신인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며, 특히 부여에서 따온 여(餘)씨 성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그 중
여암(후연)이란 인물은 서암(徐巖)이란 이름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6]
설령
부여융이 실제 조상이 아니더라도 의자왕에게는 자식들만 백여명이 넘게 있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의 후손일 가능성도 있다. 하물며 백제의 선대
어라하들에게서 비롯된 부여씨들은 말할 것도 없다.
[7]
부여자신이 특이 케이스가 아니라 이전부터도 부여씨는 그냥 여(餘)씨로 축약되어서 기록되는 경우가 많았다.
[8]
독립유공자
서용하가 이 마을 출신이다.
[9]
교리공파 집성촌이다.
[10]
독립유공자
서종채가 이 마을 출신이다.
[11]
독립유공자
서경식이 이 마을 출신이다.
[12]
독립유공자
서상룡, 야구선수
서건창이 이 마을 출신이다.
[13]
독립유공자
서기표가 이 마을 출신이다.
[14]
독립유공자
서진구가 이 마을 출신이다.
[15]
서성환 태평양 창업주가 이 마을 출신이다.
[16]
독립유공자
서봉화가 이 마을 출신이다.
[17]
이름이 '서목'으로, 이천 서씨이다. 서신일의 형제인 서신통의 아들로 서필의 사촌형제라고 한다.
[18]
이천 인근에도 집성촌이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