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외관계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6자회담 당사국 | |||||||
대한민국 |
북한 |
미국 |
러시아 |
일본 |
||||
아시아 | ||||||||
대만 |
홍콩 |
마카오 |
티베트 |
내몽골 | ||||
몽골 |
베트남 |
라오스 |
말레이시아 |
인도네시아 |
||||
싱가포르 |
미얀마 |
필리핀 |
캄보디아 |
태국 |
||||
인도 |
파키스탄 |
아프가니스탄 |
부탄 |
스리랑카 |
||||
몰디브 |
네팔 |
방글라데시 |
카자흐스탄 |
우즈베키스탄 |
||||
타지키스탄 |
키르기스스탄 |
투르크메니스탄 |
위구르 |
제주특별자치도 |
||||
오키나와현 |
||||||||
유럽 | ||||||||
벨라루스 |
우크라이나 |
아르메니아 |
아제르바이잔 |
독일 |
||||
스위스 |
폴란드 |
체코 |
슬로바키아 |
헝가리 |
||||
영국 |
프랑스 |
네덜란드 |
벨기에 |
아일랜드 |
||||
스페인 |
포르투갈 |
이탈리아 |
바티칸 |
세르비아 |
||||
알바니아 |
튀르키예 |
그리스 |
노르웨이 |
스웨덴 |
||||
리투아니아 |
라트비아 |
에스토니아 |
||||||
서아시아 · 북아프리카 | ||||||||
시리아 |
이란 |
이라크 |
팔레스타인 |
예멘 |
||||
바레인 |
아랍에미리트 |
이스라엘 |
사우디아라비아 |
이집트 |
||||
리비아 |
수단 공화국 |
알제리 |
모로코 |
|||||
아메리카 | ||||||||
캐나다 |
멕시코 |
과테말라 |
니카라과 |
베네수엘라 |
||||
쿠바 |
칠레 |
파라과이 |
브라질 |
가이아나 |
||||
페루 |
||||||||
아프리카 | ||||||||
에티오피아 |
에리트레아 |
소말리아 |
케냐 |
탄자니아 |
||||
르완다 |
마다가스카르 |
모잠비크 |
코모로 |
모리타니 |
||||
카보베르데 |
세네갈 |
감비아 |
말리 |
니제르 |
||||
기니 |
기니비사우 |
나이지리아 |
차드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
||||
카메룬 |
적도 기니 |
콩고민주공화국 |
앙골라 |
상투메 프린시페 |
||||
가봉 |
콩고 공화국 |
짐바브웨 |
에스와티니 |
남아프리카 공화국 |
||||
잠비아 |
레소토 |
|||||||
오세아니아 | ||||||||
호주 |
뉴질랜드 |
파푸아뉴기니 |
솔로몬 제도 |
팔라우 |
||||
키리바시 |
나우루 |
투발루 |
사모아 |
피지 |
||||
바누아투 |
||||||||
다자관계 | ||||||||
한중일 |
한중러 |
미중러 |
북중러 |
미중일 |
||||
중화권·러시아·만주 |
러시아·인도·중국 |
러시아·몽골·중국 |
중국·인도·파키스탄 |
중화권·아제르바이잔 |
||||
아프리카 |
아세안 |
오세아니아 |
||||||
과거의 대외관계 | ||||||||
로마 제국 |
소련 |
가야-후한 관계 | 백제-수나라 관계 | 여요관계 | ||||
당나라 · 송나라 · 명나라 · 청나라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아시아 | ||||
대한민국 |
일본 |
중국 |
태국 |
인도 |
|
방글라데시 |
|||||
유럽 · 아메리카 | |||||
영국 |
러시아 |
캐나다 |
미국 |
중국 | 미얀마 |
1. 개요
- 시진핑과 악수하는 미얀마 군부의 민 아웅 흘라잉
중국과 미얀마의 관계. 미얀마는 친중성향이 매우 강한 나라이고, 특히 2021년 미얀마 쿠데타 이전까지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친중 정서가 만연했다.[1]
지정학적인 이유로 미얀마는 외교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 미얀마는 천연가스 2832억 ㎥에 원유 5000만 배럴이 있는 풍부한 자원의 보고다. 무엇보다 인도양으로 바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중국 남쪽으로 국경을 접한 나라들을 통틀어 중국과 협력이 매우 활발하면서 내륙국이 아닌 나라는 파키스탄과 미얀마밖에 없다. 그런데 파키스탄은 중국의 중심부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데다 카라코람 산맥이란 장애물이 있으므로, 중국 입장에선 미얀마가 사실상 유일하게 해양진출이 가능한 경로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미얀마를 남중국해 지역에서 미국과 벌이는 갈등에 대한 보험 또는 대안으로 생각하여, 남중국해 지역에서 미국과 군사적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경우 천연자원 수입 경로를 미 해군이 장악한 말라카해협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미얀마에 내려 바로 육로로 옮길 계획이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미얀마와 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이 이미 건설되었다. 링크 이 때문에 중국은 당연히 미얀마와 협력, 교류가 활발하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도 미얀마와 협력하려고 한다.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미얀마 일대에는 고대 중국 파촉 지방(오늘날의 쓰촨성)에서 생산된 물산을 남조(왕국), 대리국 등을 통해 수입한 후 다시 인도 일대로 수출하는 루트가 존재하였으나, 현지인들의 무관심 및 교통이 불편한 열대 우림 지대에 위치한 영향으로 교역량은 안정적이지 못한 편이었다. 중세 원나라는 버마와 중국 사이의 대리국을 정복하고 이어 버마를 두 차례에 걸쳐 침공하였는데, 중앙아시아 출신 회회인 상인들이 원나라의 영토로 편입된 대리국 영토( 윈난성 일대)에 정착하고, 무역로를 정비하면서 미얀마 또한 본격적으로 차마고도 교역로에 포함되기 시작했다.1412년부터 1415년에는 미얀마 측에서 중국 국경 지역을 약탈하여 명군이 출동하여 미얀마인들을 격퇴하기도 하였으며, 명나라가 청나라로 교체된 이후에는 청나라와 미얀마 간의 여러 차례 전쟁이 벌어졌다. 첫 번째 전쟁에서는 청나라는 미얀마로 도망간 남명 황제를 송환하기 위해 미얀마를 침공했고 남명 황제는 미얀마에서 다시 청나라로 끌려갔다. 청나라 건륭제 치세에는 미얀마를 대상으로 4차례의 대규모 원정이 이루어졌다.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청군은 전염병 등으로 병력 7만여 명을 상실하고 장군 4명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버마는 국경을 보존하면서 결국 버마의 전략적 승리로 끝났다.
1769년 꼰바웅 왕조는 청과 군신관계를 맺고, 청조에 조공을 바치기 시작했다. 주요 조공물은 비취 원석이었다. 막대한 비취가 미얀마에서 들어오자 청 황실과 귀족층 사이에서는 비취를 장신구로 착용하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오늘날까지 비취가 중국 최고의 귀금속으로 각광받는 계기가 됐다. 중국인들이 미얀마에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던 것도 이 시기다.
중국인들은 미얀마에서 상점을 열어 비취 원석을 매입했다. 비취 원석을 마방을 통해 중국으로 운송한 뒤 윈난 국경도시에서 가공했다. 중국에서 가공한 이유는 세공기술을 미얀마인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완성품은 중국 전역에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런 거래 패턴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1885년 미얀마가 영국 식민지가 된 뒤 더 많은 비취가 중국으로 유출됐다. 미얀마와 윈난 사이의 길을 '제이드 로드(Jade road)'라고 부를 정도였다. 자국 광석을 값싸게 가져가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중국인들에 대한 미얀마인의 불만은 그렇게 축적됐다.
2.2. 20세기
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버마는 독립 이후 중국과 수교했다. 미얀마는 1949년 중국이 탄생했을 때 바로 인정한 몇 안되는 비공산국가였다. 미얀마와 중국의 수교는 1950년대에 이루어졌는데, 여기에는 미얀마인들의 반영, 혐인도 감정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네 윈의 쿠데타 이후 미얀마 역시 사회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에 중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였으며, 1988년에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군사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미얀마 군사정권과 중국과의 밀월 관계는 지속되었다. 다만 갈등도 있었는데, 중국이 마오주의 성향의 버마 공산당(CPB) 반군을 지원했으며[2], 1967년 화교 배척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다.장제스의 패주 이후 윈난에 남은 국민당군은 미얀마를 침공, 소수민족 반군을 이끌고 마약거래에 손을 댄다. 유명한 골든 트라이앵글, 마약왕 쿤사는 그 후예이다.
2.3. 21세기
중국과 미얀마는 양국을 잇는 송유관 가동에 합의했다.2017년 11월 13일에 아웅산수치의 측근인 윈 흐테인 민주주의민족동맹 최고위원은 서방이 로힝야족 문제로 미얀마를 압박하면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링크
2017년 11월 20일 중국 왕이 부장과 틴초 미얀마 대통령이 만났으며, 동시에 로힝야 문제를 해결하려고도 했으나 미얀마의 집단학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미국과 EU측이 로힝야 사태를 두고 제재와 압박을 가하자 중국측은 미얀마 군부를 초청하는 등 견제를 하고 있다. 링크
로힝야 사태로 중국은 미얀마에 영향력확대를 꾀하고 있고, 미얀마는 중국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링크
2018년 1월 2일에 미얀마 정부는 중국과의 경제협력강화 및 중국관광객들의 더 많은 유치를 위해 국경개방을 한다고 밝혔고, 친쉐호 국경검문소를 국제육상출입관문으로 확대 개편시켰다. 링크
중국의 일대일로정책이 미얀마 인구 절반의 삶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링크
최근 5년동안 미얀마 북부지역에선 여성들이 중국인들과 강제결혼한 사례가 발생되었다. 링크
2019년 1월 20일에 중국이 미얀마에서 중단되었던 댐건설을 재개하려고 하자 지역주민들이 반발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보도했다. 링크
2019년 미얀마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억류책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서방 22개국이 중국이 신장(Xinjiang) 위구르 자치구의 소수 민족을 억류한 것에 대해 공식적인 비난 성명을 발표한 지 하루 만에 미얀마, 북한 등 37개국 대표단이 중국의 억류 조치가 인권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며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 영어 원문
2.3.1. 2020년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중국이 군부를 두둔하는데 비판하는 여론이 급속 확산되고 있다. # 황금방패 미얀마 도입 설이 나오고 있다. # 이에 중국측은 부인했다. #미얀마에서 반중시위가 일어났다. #
미얀마가 시위와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적극적인 개입보다는 관망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
미얀마 군부에 고용된 캐나다의 로비스트가 미얀마 군부가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원한다고 주장했다. #
중국측은 미얀마 사태 확산에 대해 자제를 촉구했다. # 미얀마내에서 중국인이 소유하는 공장 등에서 방화가 일어나고 있다. # 그리고 중국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
미얀마의 중국계 공장에 괴한들이 침입해 불을 지른 사건과 관련해 시민들은 자작설까지 제기하는 등 중국에 대해 반발했다. #
중국의 글로벌타임스는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시위와 관련해 서방의 반중 세력이 이간질하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 #
4월 5일에 양곤시에선 오성홍기를 불태우며 중국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
주 미얀마 중국 대사관측이 미얀마 임시정부와 첫 접촉했다. # 그리고 중국측은 미얀마 군부, 임시정부와 소통을 하겠다고 밝혔다. #
중국인들이 미얀마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불법적인 희토류 채취가 늘어났다. #
중국정부는 소수민족 반군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 민주 시위대와 소수민족의 연합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다. #
미얀마에 중국산 백신이 도착했지만, 시민들은 중국산 백신을 거부했다. # 유엔 주재 중국대사는 미얀마에서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중국까지 잇는 송유관을 지키던 경비원들이 사망한 일이 발생했다. #
AIIB는 미얀마에 대해 지원한다고 밝혔다. #
중국의 관영매체가 미얀마 쿠데타 수장에게 미얀마 지도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자 반발이 일어났다. #
미얀마 군정이 중국, 러시아와 백신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
중국 정부가 미얀마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세우고 있다. #
2022년 11월 3일. 중국 광시성 베이부만 항구에서 남중국해를 거쳐 양곤으로 연결되는 신항로가 개통됐다. #
2023년 2월. 미얀마가 중국과 손잡고 처음으로 풍력발전 개발에 나선다. #
3월 3일, 중국과 미얀마 양국간의 풍력발전 사업을 하기 위한 MOU가 체결됐다. #
9월. 미얀마 북동부의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온라인 사기 범죄에 가담한 중국인 1천200명을 검거해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
미얀마 군사정권과 소수민족 무장단체 간 교전이 격화하면서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에서까지 사상자가 나오자 중국 정부가 엄중한 항의의 뜻을 밝혔다. #
2024년 9월 20일, 미얀마 반군이 중국의 압력속에 돌연 공세를 중단했다. # 그럼에도 일부 반군은 공격하고 있다.
2024년 10월, 만달레이시 중심부에 있는 중국 영사관에서 오후 7시께 폭발물이 터졌으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
3. 관련 문서
- 중국/외교 / 중국-아세안 관계
- 미얀마/외교
- 일대일로[3]
- 중국/역사
- 미얀마/역사
- 중국/경제
- 미얀마/경제
- 2021년 미얀마 쿠데타[4]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아시아 국가
- 대국관계일람/아시아 국가/동남아시아 국가
4. 외부 링크
[1]
여기에는 중국이 미얀마 국민 절대다수의 지지를 받던
로힝야 제노사이드를 비호했기 때문도 있다.
[2]
당시 미얀마는 사회주의 국가였지만,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었다.
[3]
일대일로에 미얀마도 참가했다.
[4]
이번 미얀마 쿠테타를 일으킨
민 아웅 흘라잉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