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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07:24:50

장제스/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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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종교3. 중국사 유물 보존4. 증손
4.1. 증손 장여우보4.2. 증손 장완안4.3. 증손의 병역면제
5. 생전 육성6. 야사7. 기타

1. 개요

장제스의 여담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2. 종교

종교 개신교(감리교)였으며 아내인 쑹메이링과 아들인 장징궈 크리스천이었다. 원래 쑨원을 포함한 중화민국 및 중국국민당의 초기 정치적 주요 인사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았다. 사실 장제스는 본래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불자였지만 쑹메이링과 결혼하면서 개종한 것이다. 쑹메이링이 장제스와 결혼할 때 내건 조건 중 하나였다고...

3. 중국사 유물 보존

비록 대만으로 쫓겨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금성에 있던 진귀한 역사적 유물의 핵심을 보존해 대만으로 실어왔다. 이 유물들은 중국의 여러 황실에서 계속 모아온 보물 중의 보물로 지금까지도 중화민국이 가진 가장 큰 보물로 꼽힌다.

정말 문화적인 면에서는 중화민국의 유물 보존 노력이 많이 도움이 되었고 현재 유물을 전시 중인 고궁박물원을 세계 4대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장제스가 유물을 이전한 후 자금성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아 관광객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이후 중국 정부가 대륙 전체에서 유물을 수집해 양적으로는 과거의 규모를 능가했지만 질적으로는 국립 고궁 박물원의 그것과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장제스가 자금성의 유물을 가져가지 않았다면 그 유물들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무사히 넘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현재 대만 고궁박물관과 북경 고궁박물관을 비교한다면 대만 쪽이 명, 청 및 근대시기 유물이 많고 본토에는 고대 시대 유물이 많다고 한다. 당연한 것이 장제스가 유물 들고 대만에 넘어갔을 쯤에는 전제 왕조 시절부터 쌓여 있던 오리지널 유물을 가져간 거고 그 후에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을 거친 뒤 좀 안정됐을 때 좀 더 발전된 고고학 기술을 이용해 발견된 유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4. 증손

4.1. 증손 장여우보

증손자인 장여우보(蔣友柏, 장우백)가 매우 미남이라 한때 화제가 되었다.
파일:external/pic.kaixin001.com/11730882_193283642.jpg
인물 주간 - 나의 증조부 장제스
파일:external/pic.kaixin001.com/11730882_193283250.jpg

대만 여성이 뽑은 멋진 남자 2위에 올랐던 적도 있으며 장징궈의 3남 장샤오융(蔣孝勇, 장효용)의 아들인데 장징궈의 아내 장팡량(蔣芳良, 장방량)이 소련 출신이라 장제스의 손자 대부터 혼혈 외모가 나타나는 것이다. 장징궈에게는 비서와 사통해서 낳은 쌍둥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쪽 계통 자손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장징궈 항목 참조. 장여우보는 미국 유학 후 대만에서 광고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진정한 엄친아.

반대 급부로 마오쩌둥의 유일한 손자인 마오신위 후덕한 외모로 인해 비교되기도 했다. 대만과 대륙의 여성 네티즌 사이에선 얼굴로 대륙을 탈환해 달라는 반응도 나왔다.

정치와는 큰 관련을 맺지는 않지만 장제스의 대만 통치에 대해 반성의 태도를 나타내는 등 장제스에 대해 여타 장씨 가문 인사들과 다른 인식을 보여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한편 장여우보의 동생인 장여우칭(蔣友青, 장우청)은 모교인 타이베이 아메리카 스쿨에 "교사와 학생을 다 죽이겠다",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등의 협박을 일삼은 죄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다.

4.2. 증손 장완안

장제스의 증손자 중 하나인 장완안(蔣萬安, 장만안)은 장징궈(장경국)의 비서이자 내연녀 장야뤄(章亞若, 장아약)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아들이다.

파일:d1077671.jpg

장징궈의 본처 장팡량이 장징궈의 친자식으로 인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바람에 내연녀의 성을 따라 章씨였지만 장팡량이 죽고 장씨 가문에서 인정받아 2005년 3월에 蔣씨로 성을 바꿨으며 2007년에 2.28 사건의 최고 책임자가 장제스라는 주장을 담은 책이 나오자 명예훼손이라며 저자를 고소하기도 하였다.

2016년 제9대 대만 입법위원 선거에서 타이베이시 3선거구( 중산구, 쑹산구)에서 중국국민당 후보로 입법위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입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수려한 외모와 참신한 이미지 덕분에 인기가 매우 높아 정계에 입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국민당의 차기 주자 중 하나로 예상되고 있다.

2022년 11월 26일에 열린 지방선거에서 타이베이 시장으로 나서 승리하였다. 타이베이 시장에서 총통이 된 정치인[1]들을 생각해 보면 국민당의 가장 유력한 총통 주자로 부상하였다고 볼 수 있다.
파일:r23rt23frewqfwef.png
香港的學生及年輕人,無懼港警強力鎮壓,為了捍衛自由與民主,向全世界發聲及吶喊,對於這樣的勇敢,我必須要給予最高的敬意。

在臺灣,一國兩制沒有存在的空間,民主自由憲政體制也不容任何破壞及妥協。政府除了要密切注意並維護在香港就讀的臺生、在港工作的臺灣民眾人身安全,必要時也該提供香港民眾人道救援。
홍콩 학생들과 젊은이들은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강력히 지지할 것입니다.

대만에는 일국양제가 있을 곳이 없으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헌법 체계는 어떠한 탄압도 타협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대만 정부는 홍콩에서 유학 중인 대만 학생들과 홍콩에서 일하는 대만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함은 물론, 홍콩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 장완안(蔣萬安, 장만안) 중화민국 입법원 국회의원( 중국국민당) 출처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을 위해 뛰쳐나온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며 일국양제를 거부하는 논평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장제스의 자손이라는 점 때문에 대만 정계에 충격을 몰고 왔고 해당 글에 대해 중국에서 몰려온 우마오당들은 "장제스 얼굴에 먹칠할 거면 민주진보당으로 꺼져라"는 등 댓글로 각종 패드립을 쳤으며 범록연맹 지지자들도 "진정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며 깠다. #

4.3. 증손의 병역면제


대만 정치인의 병역 관련 내용이 나온 싼리 뉴스의 영상. 38초에서 장제스 후손의 병역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장제스의 아들은 복무 중 질병으로 의병전역했으며 증손 장여우보, 장여우창, 장여우칭, 장완완은 교포 신분으로 병역면제되었다고 한다. 교포 신분으로 병역이 면제되었다는 것은 해외 영주권자 신분으로 병역이 면제되었다고 보면 되는데 장제스의 증손들은 1970년대에 태어났고 1990년대에 병역의무 연령이 되었다.

장완완은 2002년 미국 로스쿨 유학과 변호사 근무로 2013년까지 미국에 있었는데 이게 교포 신분이 되어 병역이 면제된 것이다.

5. 생전 육성


군사학교의 사관 후보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 2분부터는 소련 주재 중국 공사 옌후이칭의 연설이다.


중일전쟁 승전 연설(중 일부). 표준중국어로 하긴 하는데 발음이 영 좋지 않은데 저장성 지역의 방언인 오어를 오랫동안 썼기 때문이었다.

장제스는 열혈 중앙집권주의자로 표준중국어를 유일 국어로 밀었지만 본인은 국어가 어색했다. 이는 숙적인 마오쩌둥과 이 둘의 대선배인 쑨원도 마찬가지였는데 마오쩌둥도 표준중국어만 유일한 공용어로 지원했지만 정작 자신은 사석에서는 고향인 후난성의 샹어를 주로 썼고 공식 석상에서 표준중국어를 쓰긴 했는데 상당히 서툴렀다. 쑨원은 광동어가 모어였고 정치 활동에 쓰던 주 언어는 영어였다. 참고로 중국어 방언들은 소통이 안 되는 외국어 수준으로 각자 다르다.

타이베이에 있는 중정기념당에서 전문을 재생해 준다.

6. 야사

한국에서 정재계 부정부패 사건이 터질 때 가끔 언급되는 야사가 있는데 시점은 중일전쟁이 한창일 시기이거나 국부천대 이후 장제스가 타이완에서 국민당 정권을 개혁할 때로 꼽힌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장제스의 며느리가 밀수 등 심각한 부정부패에 연루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장제스는 며느리의 집을 강제 수색하라고 명하였는데 집을 수색하자 각종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장제스는 며느리를 불러서 한 상자를 선물로 주었는데 며느리가 집으로 돌아와 상자를 열자 권총이 나왔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의 압박을 눈치채고 그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다.

이 야사는 의외로 오래되었는데 한때 중화민국 주재 대사를 지냈던 김신의 회고록에 이 내용의 기반이 된 썰이 나오며 김영삼도 대통령 시절 금융실명제를 시행하면서 김현철에게 이를 언급한 적도 있다. 장제스의 며느리 중 한 명인 스징이(石靜宜, 장웨이궈의 첫 번째 부인)는 실제로 사치와 밀수 등의 행위 때문에 장제스가 매우 싫어했으며 1953년에 사망했는데 이때 전후 사정이 석연치 않아서 장제스가 스징이를 암살 혹은 비밀리에 처형했다는 설이 크게 나돌았다. 김신은 아예 회고록에서 이 설을 사실이라고 소개했는데 이 살해설이 앞서 언급한 부정부패 야사로 발전한 것이다.

7. 기타



[1] 직선제 이후 선출된 4명의 총통 중 차이잉원을 제외한 리덩후이, 천수이볜, 마잉주가 타이베이 시장 경력이 있다. 리덩후이는 관선 시절에 역임했고 천수이볜과 마잉주는 민선 출신이다. [2] 물론 실제 업무를 하는 총장은 따로 있었다. [3] 후술하겠지만 장제스는 한국을 독립시킨 뒤 중화민국의 위성국으로 만들거나 아예 병합하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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