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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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 ||||||||||||||||||||||||||||||||||||||||||||||||||||||||||||||||||||||||||||||||||||||||||||||||||||||||
제18회 ( 199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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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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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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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 초록물고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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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 강원도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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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 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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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상 | ||||||||||||||||||||||||||||||||||||||||||||||||||||||||||||||||||||||||||||||||||||||||||||||||||||||||
제18회 ( 199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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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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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 199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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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능한 ( 넘버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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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 강원도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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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향 ( 미술관 옆 동물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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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 | |||||
은곰상 : 심사위원대상 | |||||
제71회 (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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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 202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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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회 ( 20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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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 우연과 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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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 소설가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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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페촐트 (어파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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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회 ( 202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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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회 ( 202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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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 202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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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페촐트 ( 어파이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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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 여행자의 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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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곰상 : 감독상 | |||||
제69회 ( 201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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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회 ( 20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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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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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샤넬렉 (나는 집에 있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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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 도망친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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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나기 (내츄럴 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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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곰상 : 각본상 | |||||
제70회 ( 20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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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 202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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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회 ( 202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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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아노 디노첸초, 파비오 디노첸초 (배드 테일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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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 인트로덕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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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라 슈틸러 (라비예 쿠르나즈 vs. 조지 W. 부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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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000> 홍상수 洪尙秀 | Hong Sang-so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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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0년[1] 10월 25일 ([age(1960-10-25)]세) |
서울특별시 | |
키 | 183cm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데뷔 | 1996년 영화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학력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 / 중퇴)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2] (예술학 / 학사)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대학원 (영화학 / 석사 수료) 시카고 예술대학교 대학원 (영화학 / 석사) |
경력 |
前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 前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영상영화학과 교수 |
가족 |
아버지 홍의선, 어머니
전옥숙 형, 누나 홍난실, 매형 오세정[3], 슬하 1녀 |
배우자 | 조성혜(1985년 결혼 / 2016년 별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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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세계 10대 영화제 수상 이력을 보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로테르담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10년 《 하하하》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상', 2020년 《 도망친 여자》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 2021년 《 인트로덕션》으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각본상)', 2022년 《 소설가의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했으며, 2015년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최우수 작품상)을, 2017년 《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김민희에게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허나 국내에서는 2016년 6월 21일에 공식적으로 기사화된 김민희와의 불륜으로 인해 논란을 겪었으며 끝내 2017년 3월 13일 공식석상에서 스스로 김민희와의 관계를 인정했다. 이로 인해 홍상수 영화에 대한 평가에는 항상 불륜한 사람의 작품을 보는 건 도덕적이지 않다는 의견이 따라다닌다. 즉, 작품과 작가를 따로 분리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있는 것. #[4]
2. 생애
스스로 잘 말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의 부모는 대중문화계의 거물이었고 홍상수는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 그의 가정환경을 살펴보면 이게 그의 유년기에 얼마나 강한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홍 감독은 1960년대 영화 제작자 부부인 홍의선(父), 전옥숙(母) 아래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친 홍의선은 육군 중령 출신 영화 제작자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제작 스튜디오를 설립한 사람이다.[5] 전옥숙은 영화, 방송 제작자로 후지TV의 서울지국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대쪽 같은 성미와 호탕함, 리더십으로 따르는 사람도 많았던 듯. 1968년 경향신문에 실렸던 사진흥미로운 것은 부부가 각자 정치적 성향이 굉장히 달랐다. 홍의선은 아무래도 군 장교 출신이니 보수 우익 성향에 가까웠지만, 전옥숙은 해방 후 좌익 인사로 활동하다가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북하다가 국군에게 체포될 전력이 있을 만큼 극좌 성향이었다. 그런데 외모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헌병대장인 홍의선이 홀딱 반해 풀어주고 결혼까지 해버린 덕분에 살아 남을 수 있었다. 특히 대중영화계의 대모라고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높았는데 교수 리영희가 누님이라고 깍듯이 존경했고,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물심 양면으로 지원할 정도로 진보적 인사로 유명했다. 그러나 호탕한 성격으로 우익 인사들에게도 우호적이었기에 2015년 7월 9일에 전옥숙이 85세로 세상을 떠날 당시 보수 성향 언론사인 뉴데일리가 꽤 긍정적인 기사를 내며 명복을 빈다는 글을 썼다. "YS 부를까?" 여왕봉(女王蜂) 전옥숙 한 마디에…
어쨌거나 전옥숙이 시인 김지하의 뺨을 칠 정도로 괄괄한 성격에, 밤에 술 마시다가 YS를 부르면 YS가 금방 나타났다고 할 정도로 워낙 당대의 정치-문화 계통으로 마당발이라, 굉장히 요란한 집안 환경에서 자랐다. 전옥숙이 매년 연말에 주최하는 송년회는 대한민국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이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어 함께하는 자리로 유명했으며, 그녀의 사망 전인 2010년대까지도 그 영향력은 막강했다.
부부가 해방- 한국 전쟁 후 겨우 다시 싹트던 근현대 문화의 핵심 인물들이었으니 잘 사는 집안도 집안이지만 집안이 갖는 문화-예술적인 권력과 특권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 《오! 수정》 당시 부잣집 도련님들의 심리와 행태에 관한 살아 있는 디테일은 멀리서 온 게 아닌 듯싶다.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지만 어릴 때 방황했으며,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음주와 비행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편해지긴 하지만 확실히 이 시절의 경험이 그를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듯. 부모의 이혼 후 사랑받지 못한 경험이 자신을 반평생 괴롭혔다고 술회하고 있다. 성인이 되기 전부터 밤낮없이 술독에 빠져 살았으며, 어디에도 잘 속하지 못하고 도덕적-문화적 결벽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래서 책도 읽어보고 나름대로 사회가 권하는 방안(지금으로 치면 처세술이나 자기계발 같은 내용)을 열심히 시도해 보았지만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자신은 자신대로 고통스러웠다. 그때서야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면서 모든 통념과 틀을 버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기만의 직관적인 눈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만 거의 몇 년이 걸렸다고. 그의 가치관 중 가장 중심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그래서 대학도 갈 생각 없이 빈둥거리던 중, 작곡이나 해볼까 했는데 입시 기간을 놓쳐서 포기하고 다시 빈둥거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친구인 연극연출가 오태석이 "너는 연극 연출하면 잘 어울리겠다"라는 권유를 듣고[6]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서 연극 연출을 배우려 했으나 강압적인 분위기와[7] 무기력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서 1년 만에 자퇴한다. 이 당시의 그는 굉장히 소심하고 연약하고 감성적이었다고 술회한다.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혼자 학교 앞 술집에 앉아서 한없이 답답함에만 빠져 있는 자신의 상태만 생각난다니 학교가 꽤나 싫었던 듯하다.
결국 그는 미국에 도피성 유학을 가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교와 시카고 예술대학교에서 공부한다. 거의 10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는데, 그의 세계관과 가치관은 모두 이 시절 확립되었을 정도로 중요하고 치열했던 시기였다고 한다. 미국 유학 시절에 영화 말고도 미술, 문학, 음악 등 전반적인 예술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던 듯하다.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예술가들( 세잔, 지드), 미국의 대문호들(벨로, 헤밍웨이) 등은 모두 이 시기 때 탐닉한 걸로 보인다.[8] 그리고 이 시기에 결혼도 했다. 25살 때인 1985년에 동갑내기 여자와 결혼을 했다. 부인이 미국 영주권자(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병역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영화에 눈을 뜨고 영화를 파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이나 돼서였다고 한다.[9] 그렇다고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 달려가는 씨네키드도 아니었던 모양. 대학 졸업과제로는 실험영화 ' 개미 쳐다보는 여인'과 ' 사과 먹는 여인' 등을 찍었다. 말 그대로 개미 보는 여자와 사과 먹는 여자를 롱테이크로 찍은 실험영화였다. 원래 사과 먹는 여인은 고기 먹는 여인이었는데, 모델이 채식주의자라고 해서 뒤늦게 사과로 바꿔서 찍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제출 기간에 턱걸이로 냈고, 그 외에 기간도 오로지 생각과 구상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의 기질과 즉흥성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
1991년 프랑스 파리에 1년간 체류하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홍상수가 프랑스 예술 영화 극장 시네마테크에 다녔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홍상수 본인은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 프랑스 영화가 아니라 옛날 미국 영화만 보러 다녔다고 한다. 이후 그의 아내가 파리 생활에 합류해서 애 보는 일도 함께했다고 한다.
30줄에 들어선 나이인 1992년에 한국에 돌아온 홍상수는 어머니가 설립한 '시네텔 서울'에 들어가 PD 생활을 하였다. SBS에서 방영했던 다큐 《작가와 화제작》[10]이 홍상수가 만든 프로그램.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발표하며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구효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특이한 서사를 보여주는 편집기법으로 발표되자마자 비평계에 충격을 주며,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홍상수는 일약 주목 받는 감독으로 떠올랐다. 특히 정성일의 경우는 엄청난 극찬을 했는데, "1996년이 나와 한국영화계에 큰 의미를 갖는 것은 홍상수, 김기덕, 임순례의 데뷔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평론을 썼다. 당시 그들의 영화는 상업적 히트작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심지어 그해로부터 몇 년이나 지나서도 다른 평론에 또 저 이야기를 썼을 정도다. 무려 20년이 지난 뒤에도 정성일은 홍상수 최고의 작품으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서슴없이 꼽는다. 게다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영화는 무려 송강호의 영화 데뷔작[11]이다. 주인공의 대학 친구[12]로 한 장면밖에 안 나오는 단역이었다.
이후 1998년《강원도의 힘》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 초청되어 프랑스 비평가들을 사로잡았으며, 이를 계기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시나리오 교수로 임명되어 몇 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시절에 졸업한 영화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이 모두 홍상수화되었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이후 2004년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으며, 2005년에는 《극장전》으로 칸 경쟁 부분 연속 진출에 성공했다. ( 이기우 인터뷰 기사) 결국 2010년 <하하하>로 63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대상을 받게 된다. 2015년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로카르노 영화제 대상인 황금표범상을 받았는데 이는 1989년 배용균이 감독한 《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26년 만에 한국 영화로 이 상을 받은 것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국제영화제-아시아 쪽 영화제 빼고 서구권-에서 한국영화가 처음으로 대상을 받아 당시 엄청난 화제를 일으켰던 영화였다. 더불어 2020~2022년까지 3년 연속으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 한국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3년 연속 수상한 감독이기도 하다.
지금도 꾸준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중이지만 흥행 부진 탓인지 사재를 털어서 만든다거나, 상업 스폰서가 아닌 지자체에서 투자를 받아서 찍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제작비를 정말 들이지 않기로 알려졌고 흥행부진도 쫄딱 망한 수준이 아니며 프랑스 영화계의 지속적인 푸시 덕인지 홍상수의 명성이 갈수록 쌓이고 영화 연출 스타일에 반한 영화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함으로써 제작비 절감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노 개런티로 출연한 배우들의 목록을 보면 그야말로 위엄이 쩐다. 고현정을 시작으로 김태우, 정유미, 문성근, 이선균, 김상경, 유준상, 하정우, 정재영, 김상중, 문소리, 엄지원, 예지원, 정은채, 김강우, 김규리, 윤여정, 김주혁, 권해효, 이기우 등 독립/예술영화 진영에선 찾아보기 힘든 캐스팅이다.
이 캐스팅 자체가 정말로 순수하게 홍상수 영화에 대한 헌사도 있지만, 자신의 필모에 거장의 작품을 넣고 싶어하는 배우들도 있고 또 출연 이후 잘 풀리는 배우들이 많다. 출연했던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홍상수 영화를 하고 나서 매너리즘 타파, 연기가 늘었다는 걸 후에 체감한다고 한다. 또한 홍상수 감독 영화 특성상 롱테이크를 찍는 장면이 많아 대사를 외우기 힘들 거라고 여겨지지만 생각보다 잘 외워져서 배우들 스스로 놀란다고 한다. 이는 감독이 배우들을 평상시에도 관찰해서 배우들 위에 비슷한 성격의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표현하기 때문인 거 같다고 이동진은 평했다.
대표적으로 배우 김의성의 경우 홍상수의 데뷔작의 주인공으로 주목받아 활동했으나 세월이 지나 영화계에서 잊혀졌다가 북촌방향에서 기용된 이후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김상중, 권해효 등 잊혀졌던 중견 배우들이 재조명을 받고 다른 영화들에 나오고 있다.
그리고 홍상수 영화의 경우 촬영기간이 다른 상업영화에 비해 굉장히 짧고 스피디하기 때문에 스케줄만 맞으면 해볼 만하고 연출, 촬영 스타일이 갖는 독특함과 어려움 때문에 영화배우 입장에서 상당한 도전이 되고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상당수의 배우들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씩 다시 출연하니 홍상수 감독과 배우 모두가 윈윈하는 결과가 된다.
2012년 개봉작 《다른 나라에서》의 주연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13] 역시 노 개런티로 촬영했다. 한국에 올 때 수행원 1명도 없이, 가방 하나만 끌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촬영지까지 혼자서 왔다고 한다. 이후 이자벨 위페르는 홍상수의 2017년 작품 《클레어의 카메라》에서도 주연 배우로 출연하게 된다. 그리고 2013년 개봉작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는 제인 버킨이 출연하였다. 이 사람은 잉글랜드의 가수, 배우, 각본가로 유럽 대중 문화계의 아이콘적인 존재.[14] 물론 노 개런티로 출연했다. 제인 버킨이 다른 스케줄차 방한하였을 때 홍상수에게 "개인적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홍상수가 "지금 촬영하는 영화가 있다"고 하니 제인 버킨이 "내가 그 영화에 출연할 수 있겠냐"고 먼저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즉석 캐스팅.
2013년에는 일본의 배우인 카세 료와도 함께 영화를 찍었다. 원래부터 카세가 홍상수 감독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그리고 우리의 생각보다 더 프랑스에서 네임 밸류가 있는 감독으로 한국 문화를 좀 안다 싶은 사람들은 홍상수 감독 이야기를 꼭 한다. 그의 작품들이 누벨 바그(그중에서도 특히 로메르) 영화와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15] 로맨스의 1주일 예지원 편에서도 가게 주인이 "예지원을 홍상수 영화에서 봤다"고 사진을 요청하거나, 예지원의 파트너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예지원이 출연했다"고 하자 놀라워 할 정도.
홍상수 감독은 《강원도의 힘》까지만 해도 대중성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지만, 2010년대 들어서 개봉한 5편의 영화 《밤과낮》,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북촌방향》, 《옥희의 영화》의 경우는 전작들에 비해 관객들이 보기에 굉장히 편한 영화가 되었으며,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평가받는다.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들이 모두 수익을 내는 데 실패하자, 나름대로 영화를 계속 찍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예를 들어 감독 본인 포함 5명을 넘지 않을 정도로 스태프를 줄이고, 카메라도 좋아하는 필름을 버리고 디지털 카메라를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홍상수는 인디영화 감독이면서도 블루레이 발매율이 높은 감독이기도 하다. 디지털로 찍으니 오소링 과정도 간편하고, 블루레이 제작도 전원사 쪽에서 관여하기에, 싸게 내놓기 편해서인 듯. 물론 본인 성격상 코멘터리 같은 부록은 거의 없고 조촐하게 영화만 내놓지만... 사실 전원사 이전에도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HD 텔레시네도 거친 적 있고[16] 기존 엉성한 DVD가 HD 리마스터링되어 재발매될 정도로[17] 유달리 광매체 친화적인 감독이기도 했다.
거기에 예술적 명성을 미리 얻은 덕에 배우들도 노 개런티로 출연해준다. 그리하여 최근의 영화에서는 흑자전환(!!!)을 이룩했다.
해외 영화제 상복도 여전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18] 사상 처음으로 3년 연속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과 각본상, 심사위원대상을 각각 수상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2년 이상 연속 수상을 한 첫번째 한국영화인이다.
재미있는 건 처음에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이렇게 스태프와 제작비를 줄이기 시작했지만, 이게 오히려 예술적으로도 이익이 되었다는 점이다. 스태프가 적고 투자비도 소액이다 보니, 외부 간섭 없이 감독이 맘 편하게 자신의 의도대로 영화를 이끌 수 있게 되었다. 자잘한 의견 교환, 조율도 블록버스터에 비해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홍상수 감독은 앞으로 자신이 더욱 상업적으로 실패할 경우에는 혼자서 100만 원 가지고라도 영화를 만들 의향이 있다고 한다. 실험영화 감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대로 소통을 유지하는 한에서 자기 자신을 위해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들에게는 그의 영화가 '맨날 똑같다'라고 느껴질 수 있다. 보통 이미지냐, 스토리냐를 가르는 것이 일반 대중들의 영화 감상 방식이고 이곳에서도 그런 식으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홍상수는 애초부터 '구조'에 집착해왔고 데뷔 이후 내내 그것을 통한 실험에 집중했다. 한 마디로 우리의 기억들이 나열되는 방식은 일종의 편견일 뿐이고, 그 나열을 이리저리 뒤바꾸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가? 가 홍상수의 알파이자 오메가.[19]
한편, 홍상수는 14년 간 대학교수로 재직하다가 2022년 12월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영상영화학과 전임교수[20]를 사직했다.
3. 페르소나
홍상수는 같은 배우와 여러 번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몇몇 배우는 홍상수의 페르소나라고 별명이 붙여지기는 했는데, 위에 말했듯이 배우들은 그 수식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는 듯. 정유미는 공식석상에서 홍상수의 페르소나냐? 라는 질문에 부인하기도 했다.밑 링크는 역대 홍상수 감독과 2번 이상 작업한 배우들을 정리해 놓은 표다.
링크
사실 표를 보면 알겠지만, 홍상수 사단이라 불리지만 본인 역시 이런 틀을 싫어하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3-4편 단위로 사단 멤버들이 교체되는 편이며,[21] 의외의 캐스팅도 즐겨쓴다. 고현정, 정재영, 이민우 같은 경우 첫 캐스팅 당시 의외라는 평을 받았지만 평이 좋았던 캐스팅으로 꼽힌다.
비슷비슷한 시기에 촬영돼서 그런지 다른 영화에서 조역으로 나왔던 배우가 차기작에서 주역으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는 편. 권해효가 대표적이다.
김민희의 경우 아예 그 후/풀잎들/강변호텔에 아름이라는 동일 캐릭터로 나올 정도이다. 홍상수의 경우 인물이 다른 작품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는데,[22] 김민희가 이를 달성했다.
인트로덕션 이후로는 신인 중심 캐스팅도 시도하고 있다. 이런 캐스팅에서는 신석호가 페르소나를 주로 담당한다. [23] 신인 캐스팅 위주의 홍상수 영화는 인트로덕션과 물 안에서가 있다.
4. 필모그래피
홍상수 감독 장편 연출 작품
<rowcolor=#fff>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1996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연출, 각본 | |
1998 | 강원도의 힘 | 연출, 각본 | 제51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초청 |
2000 | 오! 수정 | 연출, 각본 | 제53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초청 |
2002 | 생활의 발견 | 연출, 각본 | |
2004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 연출, 각본 | 제5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2005 | 극장전 | 연출, 각본 | 제58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 본인 | 다큐멘터리 | |
2006 | 해변의 여인[24] | 연출, 각본 | |
2008 | 밤과 낮 | 연출, 각본 | 제5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2009 |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연출, 각본 | 제62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
어떤 방문 - 첩첩산중 | 연출, 각본 | 단편영화 | |
2010 | 하하하 | 연출, 각본 | 제63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대상 |
옥희의 영화 | 연출, 각본 | 제6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초청 | |
2011 | 북촌방향 | 제작, 연출, 각본 | 제64회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초청 |
다른나라에서 | 제작, 연출, 각본 | 제6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
리스트 | 연출, 각본 | 단편영화 | |
2012 |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 제작, 연출, 각본 | 제6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2013 | 우리 선희 | 연출, 각본 | 제66회 로카르노 영화제 국제경쟁-감독상 |
베니스 70: 미래 재장전 - 50:50 | 연출, 각본 | 단편영화, 제7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상영 | |
2014 | 자유의 언덕 | 제작, 연출, 각본 | 제7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오리종티 부문 초청 |
2015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제작, 연출, 각본 |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 황금표범상 |
2016 |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제작, 연출, 각본 | |
밤의 해변에서 혼자 | 제작, 연출, 각본 | 제67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
클레어의 카메라 | 제작, 연출, 각본 | 제70회 칸 영화제 스폐셜 스크리닝 부문 초청 | |
2017 | 그 후 | 제작, 연출, 각본 | 제70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풀잎들 | 제작, 연출, 각본 | 제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초청 | |
2018 | 강변호텔[25] | 제작, 연출, 각본 | 제71회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2020 | 도망친 여자 | 제작, 연출, 각본, 편집, 음악 | 제70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 |
2021 | 인트로덕션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각본상 |
당신얼굴 앞에서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4회 칸 영화제 프리미어 부문 초청 | |
2022 | 소설가의 영화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
탑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47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특별 프레젠테이션 부문 초청 | |
2023 | 물안에서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3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인카운터 부문 초청 |
우리의 하루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6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 초청 | |
2024 | 여행자의 필요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
수유천 | 제작, 연출, 각본, 촬영, 편집, 음악 | 제77회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 |
5. 수상 경력
<rowcolor=#fff> 연도 | 시상식/영화제 | 수상 부문 | 작품 |
2024 | 제74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 여행자의 필요 |
2022 | 제72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 소설가의 영화 |
2021 | 제71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은곰상 각본상 | 인트로덕션 |
2020 | 제70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 은곰상 감독상 | 도망친 여자 |
2019 | 제20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대상 | 강변호텔 |
2018 | 제5회 들꽃영화상 | 극영화 감독상 | 그 후 |
2017 | 제18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대상 | 밤의 해변에서 혼자, 그 후 |
2016 | 제64회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 은조개상 |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
2015 | 제16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대상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 | 황금표범상 | ||
제2회 들꽃영화상 | 극영화 감독상 | 자유의 언덕 | |
2014 | 제36회 낭트 3대륙 영화제 | 골든 몽골피에 최우수작품상 | |
제3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최우수작품상 | ||
제23회 부일영화상 | 최우수감독상 | 우리 선희 | |
2013 | 제14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심사위원특별상 | |
제66회 로카르노 영화제 | 국제경쟁-감독상 | ||
2012 | 제21회 부일영화상 | 유현목영화예술상 | |
2011 | 제2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 대통령표창 | |
제40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 리턴 오브 타이거상 | 옥희의 영화 | |
2010 | 제19회 부일영화상 | 최우수감독상 | 하하하 |
제63회 칸 영화제 |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 대상 | ||
2008 | 제28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최우수작품상 | 밤과 낮 |
각본상 | |||
제17회 부일영화상 | 최우수작품상 | ||
제9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최우수작품상 | ||
2007 | 제22회 마르 델 플라타 영화제 | 감독상 | 해변의 여인 |
2006 | 제9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올해의감독상 | |
2003 | 제29회 시애틀국제영화제 | 거장감독쇼케이스상 | |
2002 | 제47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감독상 | 생활의 발견 |
2000 | 제45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각본상 | 오! 수정 |
제1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 최우수작품상 | ||
각본상 | |||
제13회 도쿄국제영화제 | 심사위원특별상 | ||
특별언급상 | |||
1998 | 제19회 청룡영화상 | 감독상 | 강원도의 힘 |
각본상 | |||
1997 | 제42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최고신인상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제20회 황금촬영상 | 신인감독상 | ||
제26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 타이거 상 | ||
1996 | 제16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신인감독상 | |
제17회 청룡영화상 | 신인감독상 | ||
제15회 밴쿠버국제영화제 | 용호상 |
6. 카예 뒤 시네마 평가
프랑스 카예 뒤 시네마에서 선정하는 올해의 영화부문에 한국 감독 중에서는 가장 많이 선정되었다.[26] 그리고, 카예 뒤 시네마/연도별 베스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적으로도 자주 선정된 감독이기도 하다.- 2005 극장전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8위
- 2012 다른나라에서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5위
- 2013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8위
- 2014 우리 선희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10위
- 2017 그 후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5위
- 2018 밤의 해변에서 혼자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7위
- 2020 도망친 여자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2위
- 2020 강변호텔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6위
- 2022 인트로덕션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8위
- 2024 물안에서 카예 뒤 시네마 선정 올해의 영화 3위
7. 사건사고
7.1. 김민희와의 불륜
2016년 6월 21일, 배우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되었다.2017년 3월 13일, 홍상수는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기자간담회에서 김민희와의 연애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들리는 말에 따르면, 홍상수는 김민희와의 연애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이후에 영화 작품보다도 두 사람의 사생활에 더 포커스를 맞춘 언론에게 시달리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홍상수, 연인 김민희와 관계 밝힌 것 크게 후회 중 리얼스토리 눈에서는 홍상수가 영화·애니메이션학과의 영화 연출 전공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건국대학교까지 찾아가기도 했고 이 때 홍상수는 <리얼스토리 눈> 제작진에게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홍상수는 "더 이상 국내 공식석상에는 모습을 드러지 않겠다"고 마음을 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5월 칸 영화제에서도 홍상수는 국내 취재진을 멀리하고 해외 취재진하고만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27] 2017년 7월 6일에 개봉일이 정해진 《 그 후》라는 영화의 언론시사회에서도 의례적으로 있는 기자간담회도 하지 않고 아예 참석 자체를 하지 않았다. [28]
2016년 6월 21일, 기사에서 배우 김민희와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통해 호흡을 맞추고서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두 사람의 간통은 영화계에 암암리에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여러 영화계 종사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다. # 영화계에선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지만 기사가 나오지 않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홍상수 김민희 불륜설 비하인드 (뉴스엔 윤가이 기자) 영화 《 아가씨》가 칸 영화제로 진출할 때까지, 해당 영화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암암리에 아는 기자들에게 "영화에 흠이 되지 않게끔, 기사를 쓰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실제로 실명을 언급하지 않은 기사가 6월 1일자로 보도된 바 있다. #
2016년 7월 20일에 방영된 리얼스토리 눈에서, 홍상수 감독의 부인은 자신은 인터뷰를 한 적이 없으며 일부 기사는 기자들의 악의적인 보도로 심하게 과장되었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6월 21일 단독보도라면서 나온 김민희의 막장 드라마스러운 발언과 기타 여러가지 자극적인 관련 보도는 정작 당사자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은 한마디로 카더라 통신에 불과 한 것.
홍상수는 결별설이 보도될 당시 귀국 후 직접 해명하겠다고 했으나, 그 이후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으며 11월 중순 경 이혼 신청을 넣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김민희의 경우 이 사태의 여파로 활동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며 청룡영화상 시상식도 불참했다.
2017년 3월 13일, 홍상수와 김민희는 공개적으로 기자들 앞에서 자신들의 간통을 인정했다.
2017년 2월 17일, 《 밤의 해변에서 혼자》라는 작품으로 베를린 영화제에 김민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2022년 2월 16일 (현지시간) 오후 독일 베를린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는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소설가의 영화'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홍상수와 배우이자 제작실장을 맡은 김민희가 참석했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2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2022년 11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홍상수와 김민희의 목격담이 올라왔다. 홍상수가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교에서 김민희의 팬이 호들갑을 떨자 홍상수가 째려봤으며, 운전은 김민희가 하고 있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
8. 여담
8.1. 작품활동 관련
- 원래부터 2년에 1편씩 낼 정도로 다작 감독이었는데 영상원 교수를 겸임하면서 영화를 찍기 힘들자 결국 교수를 그만두고, 2008년부터는 1년에 하나씩 작품을 내고 있다. 그리고 그 틈이 갈수록 줄어들어 2010년에는 무려 1년에 두 편, 5월엔 《하하하》, 9월엔 《옥희의 영화》를 개봉하기에 이른다. 전에 비해 홍상수 감독의 최근 영화가 조금이나마 더 대중성을 띄게 되었고 대부분의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했기에 제작비가 많이 절감되어서인 듯 하다. 사실 카메라를 모두 디지털화하고 [29] 스태프를 10~5명 혹은 그 이하로(!!!) 줄이면서 그야말로 남들 뮤비 찍을 돈으로 장편영화를 만드는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다. 이러다보니 2010년대 후반부터는 영화제에 가면 배우들을 불러모아 영화를 촬영하기도 한다. 클레어의 카메라부터 시작한 작법.
- 시나리오를 쓰지 않지만 치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로케이션이 되는 현장에 몇번이고 둘러보고, 배우와 잦은 대화를 나눈 뒤 그때의 인상들을 바로바로 시나리오에 반영한다고 한다. 유준상의 엉까지마가 영화에 나온 이유. 《하하하》에서 유준상이 다리를 다치는 것도 원래는 없는 설정. 진짜로 다치면서 병원 씬이 생겼다. 배우들이 홍상수 감독과 자주 작업하고 싶어하는 이유도 이런 방식이 배우 본인에게 굉장히 좋은 경험이 되기 때문인 듯하다. 대신 애드리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배우들에게 (시나리오 상의) 대사를 그대로 정확하게 말할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30]
- 촬영은 항상 시나리오 내의 시간 순서대로 촬영하기로도 유명하다. 대개 영화는 로케이션과 배우의 사정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면서 촬영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날씨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풀리면 풀리는 대로 영화에 반영한다. 그러니까 《 극장전》의 눈 내리는 장면은 기적에 가까운 씬. 그리고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마지막 장면에 또 한번 기적이 일어났다.
- 편집 자체는 하루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GV에서 밝혔다. 다만 거리를 두기 위해 1주일 정도 놔둔 뒤, 다시 꺼내서 다듬는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제 직전에 촬영/편집 끝내고 보낸 영화도 있다.
- 다소 주류 영화계와 거리를 두는 인상이지만, 의외로 잘 나가는 영화 감독들과 친한 사이라고 한다. 한국 영화판 감독들이 모르는 사이가 없다. 배우들 사이에서도 선호도가 높아서 유명한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하길 자청한다고 한다.
- 술을 굉장히 좋아해 영화에 등장하는 술은 모두 진짜 술이다. 그래서 촬영하다가 배우가 술에 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옥희의 영화》에 등장하는 페트병 소주는 진짜 소주다. 원래 술집 1곳을 잡아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여건이 안 되어 진구의 가방에 소주를 넣어다니는 걸로 설정했다. 진구 역을 맡은 이선균은 촬영 내내 소주를 홀짝홀짝 까며 좋아했다고. 그리고 《오! 수정》,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에서 배우들이 펼지는 취중 연기는 실제상황이다. 특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엄지원은 술에 취해 구토하는 장면에서 괴로웠다고 회고했다. 그 외 《하하하》에서는 유준상이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 술에 잔뜩 취해서 큰아버지 댁에서 꼬장을 피우다 쓰러져 자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로 술에 취해서 한 연기다. 한 마디로 촬영하다 진짜로 잤다. 그 장면이 맘에 안 든 홍상수 감독이 여러 번 테이크를 갔지만 자고 일어나서 점점 술이 깨는 바람에 결국 제일 처음 테이크를 사용했다고 한다.
- 작품과는 다르게 GV 등에서는 말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데뷔 시절에는 꽤나 달변가였고 말도 많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더 이상 자신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잘 표현하지 않는 듯하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잘 포장했다고 해서 팔아먹지 말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가끔씩은 운이 좋은 건지 기분이 좋은 건지 다정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는 GV도 있는데, 특히 오랜 친구 사이인 허문영 평론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는 자신을 잘 드러내는 편이다. 또 여자 인터뷰어와 함께할 때도 말을 잘하는 편이다.
- 사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망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꽤 흥행에 알짜배기로 성공하는 감독이다. 게다가 밑의 영화들 대다수가 전국 30~50개 수준 상영관에서 개봉한 독립영화 수준 배급으로 소개된 걸 생각하면 망한 게 아니라 오히려 대박이다. 독립영화 시장은 보통 2만 명이 본 수준으로도 흥행작으로 평가받는 걸 생각하면 흥행도 되고 해외에서도 평가도 좋다고 봐야 한다.
- 예전에는 19세 관람가가 당연한 수위의 영화들이었으나 2010년대부터[31] 홍상수의 작품세계가 많이 완화되었음에도 심의신청을 19금으로 넣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 본인이 운영하는 영화 제작사인 전원사를 차린 이후 내놓은 영화들(《잘 알지도 못하면서》이후)의 포스터는 보통 한국 영화 포스터와 달리 태그라인이 일절 없고 배우/감독 이름과 영화 제목, 초대받은 영화제 마크만 있는 초심플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딱 본인의 영화 세계관이 변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듯.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는 오즈 야스지로의 오프닝들과 점점 굉장히 닮아가고 있다. 다만 탑(영화) 이후론 단가 절감을 위해 포스터 디자인 외주 주길 포기하고 본인이 직접 국제/한국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있는데, 퀄리티가 상당히 조악해져서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물안에서 포스터는 배달 전단지냐는 평이 많을 정도. 탑(영화) 이후론 해외 수입사에서 따로 제작하는 개봉 포스터가 낫다는 게 중론이다.
- 여기다 더불어 영화 오프닝 크레딧 역시 수제작하고 있다. 전원사 로고도 직접 그리고[33] 캐스팅/스탭롤도 손글씨로 쓴다. 예외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폰트로 처리했다.
- 일본에서는 생활의 발견부터 자유의 언덕까지 비터즈 엔드라는 배급사에서 배급을 전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는 크레스트 인터내셔널이 수입하면서 깨지게 되었다.
- 전담 프로듀서의 증언에 따르면 의외로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2012》 같은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저 많은 예산을 썼나' 하면서 본다고 한다.
- 홍상수와 친분이 있는 클레르 드니는 '홍상수 영화와 비슷하다'는 평을 받은 렛 더 선샤인 인 개봉 당시, 홍상수는 12일이면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재능이 있지만, 나는 12주나 필요하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다.
- 2019년 3월 《강변호텔》 개봉 이후 건강 악화로 인해 휴식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는데, 2020년 1월, 김민희와 함께하는 7번째 장편영화 촬영을 완료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며, # 곧이어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부문에 초청받았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 영화의 제목은 《도망친 여자(The Woman Who Ran)》라고 한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전원사와 콘텐츠판다가 배급을 담당하며, 국내에는 봄 중 개봉할 것으로 알려졌다.
- 2023년 2월, 홍상수 감독의 신작 '물 안에서'가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상에 실패했다. 3년 연속 수상해온 홍 감독이 4년째 수상을 할 수 있을지 기대가 쏠렸지만 결국 불발됐다. #
8.2. 기타
- 늘 후덕한 신선같은 모습이지만 데뷔 시절만 해도 굉장한 독설가에 달변가였다. 어느 영화 잡지 편집장이 홍상수 데뷔 최초의 인터뷰를 회고하길 나는 아직도 그 사람보다 자기의 영화에 대해 토 나올만큼 잘 설명하는 사람은 못봤다고. 욕설도 많이 했고 음담패설의 황제였다고 한다.
- 예전에는 참 후덕하게 생긴 외모였다. 하지만 2015년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하게 되어 언론에 비친 모습은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굉장히 야위고 마른 모습이 되었다. 모친상 이후 체중이 급격히 줄었는데 본인이 이 모습을 꽤 마음에 들어해서 유지하는 중이라고 한다.
- 술자리에서 가위바위보 게임과 진실게임을 하기로 유명했다. 진실게임은 이제 접은 듯. 둘 다 술자리에서의 빈말과 괜한 소리들을 미연에 방지하고 엑기스만 뽑아내기 위한 게임인 듯 하다.
- 지병으로 눈병이 있다고 한다. 《오! 수정》 촬영 때 병이 났고 수술을 받았지만 점점 시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때문인지 각종 취재 자리에서 강한 플래시가 비칠 때마다 괴로워하곤 한다.
-
여러 영화 감독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이창동 감독이 홍상수에게 '당신 영화는 먹물들이 자위하는 영화'라고 디스하자 ‘X까지마, X까지마’라며 고래고래 소리지른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창동과 홍상수는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서로 상대에게 들려줘야 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절친이 확실하다.
- 키가 183cm로 상당한 장신이다.
- 2007년 마틴 스코세이지는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소개 영상에서 홍상수의 작품에 대해 "내가 본 그의 영화는 모든 것이 덤덤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상황들이 오렌지처럼 껍질이 벗겨집니다"라고 설명했다. #
9. 참고자료
<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 홍상수 인터뷰 ①<극장전> 극장에 도착하다 - 홍상수 인터뷰 ②
인터뷰 홍상수 감독, 그의 추종자들을 만나다
6월1일 일곱 번째 특강, 홍상수 감독이 말하는 ‘홍상수 월드’에 영향을 준 인물들
말.2005.06. 극장전-정성일
theDVD 2005.07.한국영화의 작가주의-정성일
오!수정 키노 인터뷰
티티엘 반복 속의 차이 -정성일
말2002.04 생활의 발견 -정성일
서브 1998.04.강원도의 힘 -정성일
문화예술. 1998.05 강원도의 힘-정성일
뉴스플러스 1998 강원도의 힘-정성일
말.1998 강원도의 힘-정성일
미디어 오늘 1996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정성일
포스코신문 1996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정성일
북촌방향,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홍상수 감독이 뽑은 영화 베스트 10
[1]
1960년생인지 1961년생인지 불분명하나 1960년이 더 유력하다. 과거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홍상수, 임순례, 김기덕을 가리켜 1996년에 장편영화 데뷔한 묘하게도 다르면서 닮은 세 감독이라고 강조한 평론이 있는데, 닮은 부분을 이야기할때 같은 나이라고 했기 때문. 두사람이 1960년생이고, 정성일은 홍상수와 친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감독 데뷔전에 알긴 알던 사이였으니 나이를 모를리는 없다. 그런데 모친
전옥숙은 1964년에 홍의선과 결혼했다고 나와 있다. 기사의 오류인지,
속도위반인지는 불분명.
[2]
캘리포니아 예술학교와는 다른 곳이다. 영어 명칭은 California College of Art and Crafts
[3]
전
서울대 총장
[4]
이건 한국 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수시로 벌어지는 논쟁이기도 하다.
로만 폴란스키,
레니 리펜슈탈,
엘리아 카잔 등의 인물들이 이러한 논쟁의 대상으로 자주 거론된다.
[5]
60년대 영화환경이 열악할 때 답십리 촬영소를 설립했다. 답십리동 산 12번지에 스튜디오 2개와 대기실·녹음실·현상실·변전실에 각종 편의시설까지 갖춘 당시에는 최첨단 영화 촬영소였었다. '촬영소사거리'라는 명칭으로 그 흔적을 짐작할 수 있다.
[6]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7]
당시 각종 데모와 운동이 한창이었는데 홍상수는 그런 데에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이 당시
자살 시도를 했다는 모호한 인터뷰도 있다.
[8]
때문에 한국 평론가들 사이에서 홍상수 영화는 민주화 항쟁 등으로 격렬했던 한국사와 무관한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흐름을 보인다는 평가가 많다.
[9]
사이트 앤 사운드에 실린 인터뷰에서 밝히길 27세에
로베르 브레송의 <
어느 시골 본당 신부의 일기>를 보고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단, 이후 그가 가장 많이 본 영화들의 감독은
에릭 로메르였다고 한다. 현재도 소장 DVD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한다.
[10]
이 다큐는 1992년 한국방송대상 '외주제작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11]
연극배우 시절 출연한 순수 독립영화는 제외한 기준이다.
[12]
주인공은 영화감독을 지망하다가 안 풀린 역할인데,
송강호의 역할은 '주인공과 함께 연극영화는 전공했지만, 졸업하고 예술과 전혀 무관한 사업으로 운 좋게도 크게 돈을 벌어 건방져진 졸부' 역할이다. 송강호가 대중인지도를 얻은 건 <초록물고기>나 <넘버3>에서 조폭 역할을 한 뒤다.
[13]
항목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은
프랑스의 대표 세계구급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만 2회 수상한 경력이 있다.
[14]
전 세계 수 많은 여성들을 애끓게 하는 그 유명한
에르메스 버킨백의 모티브가 된 그 버킨이다. 남편은 프랑스의 국민 작곡가
세르주 갱스부르이며 딸은 역시 세계적인 배우이자 가수인
샤를로트 갱스부르. 그야말로 프랑스 문화계의 로열 패밀리.
[15]
2008년 개봉한 8번째 작품 《
밤과 낮》의 경우 대다수의 촬영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루어졌는데,
오르세 미술관 관장이 홍상수 감독의 팬이어서 무료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원래 오르세 미술관은 대여료가 무려 2,000만 원이다.
[16]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17]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강원도의 힘,
오! 수정. 이 영화들은 블루레이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18]
2018년 새로 취임한 베를린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로카르노 출신이라 로카르노의 홍상수 총애가 그대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19]
이와 관련해 평단에서 언급되는 감독은 의외로
에릭 로메르가 아니라,
루이스 부뉘엘이다. 얼핏 잘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루이스 부뉘엘은 유머와 풍자 이외에도 구조에 관심이 많았고 서사를 해체/재조립하는 방식을 즐겨썼다.
[20]
시력 건강 문제로 인해 사직한 것으로 추측된다. 2023년 9월 배우
유지태가 부임했다.
[21]
최다 캐스팅은 2023년 기준으로 9편 출연한
김민희가 차지하고 있으며, 8편 출연한
유준상, 7편 출연한
문성근과
정유미, 6편 출연한
이선균과
송선미가 그 뒤를 잇고 있다.
[22]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에서
하하하의
유준상-
예지원 커플 재등장 정도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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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들 단역으로 발굴되어
인트로덕션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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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최초 15세관람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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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연도는 2018년이지만, 국내 개봉은
2019년
3월 27일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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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3번, 이창동 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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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랑스 현지시각으로 2017년 5월 22일에 칸 영화제에서 열린 '한국 영화의 밤' 행사에도 홍상수와 김민희는 참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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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시간이 지난 2022년부터는 평론가 인터뷰는 수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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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소니 PMW-F55로,
인트로덕션은 캐논 XA40로 찍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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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우리 선희에서
이선균이 대사를 잊어먹어 애드리브로 끝없이 파낸 장면만큼은 아주 흡족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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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자신이 직접 차린 제작사인 '전원사'를 통해 나온 작품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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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신청이 다 받아 들여지는 건 아닌지,
인트로덕션은 홍상수 최초로 12세 관람가 등급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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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다르지만 이렇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