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Eduard Wagner 에두아르트 바그너 |
출생 | 1894년 4월 1일 |
사망 | 1944년 7월 23일 |
복무 | 독일 국방군 병참감 |
최종계급 | 포병대장 |
서훈 |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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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의 병참감.2. 생애
1894년 바이에른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나치 독일의 장성급이 그러하듯, 독일 제국군에 입대하여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계속 군대에 남아 있으면서 2차세계대전에도 참전하게 되었다.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독일 국방군의 병참감을 지냈고 1943년에는 포병대장으로 진급하였다.병참감에 있었지만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점령한 지역의 파르티잔 토벌과 관련된 업무도 담당하였기 때문에 북부·중부·남부후방집단군의 업무보고를 받았다. 그러한 이유는 2차대전 발발 이전부터 독일 국방군이 민간인 저항에 대한 제압 규정을 만든 바 있었고, 폴란드 침공 당시 있었던 단치히 폴란드 우체국 방어전 가담자들에 대한 사형선고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었다. 1941년에도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와 독일 국방군과 아인자츠그루펜이 협력하여 소련 점령지에서 잡은 유태인을 처리하는 것에 협력을 맺기도 했다.
한편 1941년 병참감으로써 히틀러에게 동부전선에서의 점차 더뎌지는 진격상황에 대해서 인적, 물적 자원의 고갈 및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경고한 바 있었다. 1944년, 보급 상황 및 전황에 대한 문제는 나날히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진격만을 요구하던 히틀러에 대해서 완전히 돌아서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에 가담하게 된다. 전쟁의 종식 및 그로 인한 자신의 범죄 행위에 대한 일종의 희석을 위한 참여였다. 바그너는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거사 장소였던 동 동프로이센에서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에르빈 폰 비츨레벤이 작전의 실패를 알려왔고 바그너는 도주하였다. 하지만 게슈타포에 의해서 쫒기는 신세를 염려하여 결국 권총으로 자살한다.
한편 바그너는 소위 뉴 오더로 알려진 나치 독일의 세계 정복 플랜 속에 구성된 하인리히 힘러의 계획 즉, 나치 독일의 2차세계대전 승리 이후, SS를 활용하여 프랑스와 영국 인구의 80%를 학살할 계획에 대해서 보고한 바 있다.
바그너의 행적은 국방군 무오설을 거의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사실상 전범급이지만 자살하여 생을 마쳤고 이처럼 자살하거나 사고사한 전범급 인물이 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