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무장친위대 상급집단지도자 리하르트 힐데브란트 Richard Hildebrand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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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Richard Hermann Hildebrandt 리하르트 헤르만 힐데브란트 |
출생 | 1897년 3월 13일 |
독일 제국 헤센 대공국 보름스 | |
사망 | 1951년 3월 10일 (향년 53세) |
폴란드 인민 공화국 비드고슈치 | |
복무 |
독일제국군 돌격대 친위대 질서경찰 |
최종계급 |
독일제국군
소위 친위대 무장친위대 대장 질서경찰 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
주요 서훈 | 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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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초기 행적
보름스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힐데브란트는 1915년에 고등학교 졸업 후 제1차 세계 대전 때 육군 야포부대에 입대해 러시아군과 프랑스군을 상대로 싸우다가 부상당하여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1918년에 소위계급으로 예비역에 편입되어 군복을 벗은 후 쾰른과 뮌헨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다음 은행에 입사해 은행원으로 일했다.3. 나치당 행적
1922년 5월에 나치당에 입당한 힐데브란트는 돌격대에도 가입했는데, 이듬 해 뮌헨 폭동으로 인해 나치당의 당 활동이 금지되자 의용군에서 활동하다가 1928년 6월 1일에 재건된 나치당에 복당했지만 그 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에서 일했다. 미국에서 국가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했던 힐데브란트는 1930년에 독일로 귀국해 다시 나치당 활동에 나서 뮌헨 지부장이 되었다.4. 슈츠슈타펠 행적
SS 대장 힐데브란트 |
1931년 2월에 친위대에 들어간 힐데브란트는 제1 친위대 지구와 친위대 남방집단 참모장이 되어 요제프 디트리히 사령관의 부관이 되었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그는 디트리히의 후임으로 사령관직을 맡기도 했다. 그 후 여러 친위대 지구의 사령관을 돌면서 역임했던 힐데브란트는 1943년 4월부터 패전까지 친위대 인종 및 이주본부장으로 취임했다.
5. 전후 재판과 최후
법정에서의 힐데브란트 |
전후 미군에게 체포된 힐데브란트는 뉘른베르크 RuSHA 재판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 후, 폴란드가 폴란드계 유대인 처형관련 혐의로 힐데브란트의 신병을 요구하여 막스 헨체 SS 소장 및 질서경찰 소장과 폴란드로 인계되었는데 폴란드 법정에선 사형을 선고하여 1951년 3월 10일에 헨체와 함께 교수형에 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