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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2 01:59:05

귄터 뤼첸스

파일:나치 독일 국장(화이트).svg 독일 국방군의 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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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귄터 뤼첸스
Johann Günther Lütjens
파일:200px-Bundesarchiv_Bild_101II-MW-0434-05A,_Günter_Lütjens.jpg
출생 1889년 5월 25일
프로이센 왕국 헤센나사우 비스바덴
사망 1941년 5월 27일 (향년 52세)
북대서양, 비스마르크급 전함 비스마르크
복무 독일 제국 해군
국가해군
나치 독일 해군
최종 계급 대장
주요 참전 베저위붕 작전
베를린 작전
비스마르크 추격전
주요 서훈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
1. 개요2. 제1차 세계 대전 및 전간기3. 제2차 세계 대전4. 기타

[clearfix]

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나치 독일 해군 제독. 유명한 비스마르크 추격전의 주인공이었던 비스마르크를 기함으로 두었던 함대 사령관이었다. 최종 계급은 대장(Admiral)[1]

국내에서는 흔히 뤼스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래어 표기법으로나 실제 발음으로나 뤼스가 정확하다. 독일어 T는 그냥 [t]로 발음하지, [ts]로 발음하지 않기 때문.

2. 제1차 세계 대전 및 전간기

1889년에 태어난 뤼첸스는 18세가 되던 해에 독일 제국 해군에 입대하였다. 어뢰정 전대에 근무하면서 성실하고 영리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는 북해와 영국 해협 일대에서 영국 해군을 상대하였다. 종전이 되어서는 대위로 진급하였고 1차대전에서의 전공으로 1·2등급 철십자훈장이 수훈된다. 뤼첸스는 계속 해군에 남았으며 1925년에는 어뢰정 전대장으로 진급하였고 근무기간 동안 좋은 평판을 받았다.

1935년에는 나치당을 아돌프 히틀러가 장악하면서 독일 국가해군(Reichsmarine)이 전쟁해군으로 변경되었고, 1차대전기 어뢰정, 유보트의 함장이었던 여느 해군 장교들처럼 이 시점을 즈음하여 제독으로 진급하였다. 뤼첸스도 1937년에 소장(Konteradmiral)으로 진급한다.

3.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9월, 나치 독일 폴란드 침공을 개시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고, 베저위붕 작전으로 알려진 노르웨이 침공 덴마크 침공을 위해 해군은 북해에서 크고 작은 교전을 펼쳤다. 뤼첸스는 폴란드 전역과 북해에서 구축함 작전을 지휘하였고 중장(Vizeadmiral)으로 진급하면서 수상함 함대의 지휘를 맡아 노르웨이, 덴마크 초기 상륙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때의 전공으로 나중에 1·2등급 철십자 훈장과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을 수여 받게 되며, 1940년 9월 1일부로 대장으로 진급한다.

이후 바다사자 작전(Operation Sea Lion)으로도 알려진 영국 상륙 작전의 초안을 준비하기도 하였으나 영국 본토 항공전에서의 교착화된 상태에서 작전안은 유야무야 사라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독일의 대 영국 작전의 노선도 해상봉쇄로 변경되었고, 뤼첸스가 이끄는 샤른호르스트 그나이제나우를 중심으로 함대를 구성하여 베를린 작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1941년 5월에 뤼첸스는 비스마르크를 기함으로 프린츠 오이겐과 함께 운명의 라인 연습 작전을 전개하게 된다. 수뇌부의 명령에 따라 뤼첸스는 폴란드의 해군 기지 탈환, 노르웨이 해역에서의 상선에 대한 공격을 수행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인근에서 영국 해군에 발각되었고 덴마크 해협에서 교전이 일어나 영국 해군의 HMS 후드를 격침시켰으나 뒤이어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피격되면서 뤼첸스가 탑승한 함대 기함이었던 비스마르크는 조기 귀환하고, 프린츠 오이겐은 본래 예정대로의 통상 파괴전을 수행 후 귀환토록 명령했다. 참고로 귀환 루트를 정하는 과정에서 뤼첸스와 비스마르크의 함장 에른스트 린데만간의 불화가 있었는데, 뤼첸스는 최단거리를 달려 프랑스로 귀환해야한다고 주장했고 린데만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뱅 돌아서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귀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몇번의 치열한 토론 끝에 뤼첸스의 안이 받아들여져 비스마르크는 프랑스를 향해서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린츠 오이겐이 무사히 귀환한 반면, 비스마르크는 이미 교전 도중 연료탱크가 프린스 오브 웨일스에 의해 손상된 상태였기에 유실된 연료 때문에 모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전속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속도를 늦추어 가야했고, 이후 시간을 끌러 온 소드피쉬의 공격에 의해서 키가 손상되며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완전히 멈춰서게 된다.[2] 결국 비스마르크를 계속 추격해오던 영국 해군의 함포 사정거리에 비스마르크가 들어왔고 뤼첸스는 "더 이상의 항해가 불가능하다. 마지막 한 발까지 끝까지 싸우겠다. 총통 각하 만세"라는 마지막 메세지를 송신하고 교전을 펼쳤다. 치열한 교전 끝에 HMS 로드니가 비스마르크의 함교를 적중시켰고, 이때 뤼첸스와 린데만 등 비스마르크의 함교 인원들이 사실상 몰살당한다.[3] 이후 비스마르크는 함교 피격 당시 부상당한 이들을 대신해 부장 등이 계속 지휘하면서 저항하였지만 결국 격침됐다.

독일 해군의 라인 연습 작전의 시행 전에 이미 잠수함사령관이었던 되니츠 제독과 U보트를 통한 지원이 펼치는 것에 대한 토의가 있었으나 서부해군집단사령관 알프레트 잘베히터 제독 및 사령부와의 연락이 용이하지 않았던 탓에 U보트의 투입이 다소 늦어졌고, 각 U보트들 또한 각 저마다의 문제─연료 부족 또는 어뢰의 소진 등의 이유로 비스마르크가 침몰한 이후에 도착하였다. 또 되니츠가 U-557함에 비스마르크의 항해일지를 확보할 것을 명령하였으나 이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4. 기타

해군 내에서도 소문난 독쟁이로, 비스마르크 추격전 당시 기함 비스마르크의 승조원들이 다들 싫어했다고 생존 승조원들이 평했다. 반면 함장 에른스트 린데만 대령은 승조원들을 잘 대해 준 편이라 인기가 많았다고 하며, 뤼첸스 제독과 린데만 대령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라 언성을 높여 싸우는 걸 많이들 봤다고 한다.

이후 귄터 뤼첸스의 이름을 따서 서독 해군의 방공구축함 뤼첸스급 구축함 함급명으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퇴역하였다.



[1] 엄밀히 말하자면 제독. 참고로 최종계급이 중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생전에 대장까지 진급했었다. 대장으로 진급을 명령하는 서류와 대장의 군복을 입은 모습이 모두 사진으로 남아있으니 헷갈리지 말자. [2]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만 더 가면 루프트바페 전투기들의 방공호위구역으로 진입할 수 있었으나 하필 키가 박살나는 바람에 배가 앞으로 안 가고 계속 옆으로 돌아갔다. [3] 단, 린데만이 함교에서 전사했는지는 논란이 있다. 자세한 건 에른스트 린데만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