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d700><colcolor=#b70707> 스페인 부총리 아구스틴 무뇨스 그란데스 Agustín Muñoz Grand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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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6년 1월 27일 |
스페인 까라벤첼 바호 | |
사망 | 1970년 7월 11일 (향년 74세) |
스페인국 마드리드 | |
국적 | 스페인국 |
학력 |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원수 |
경력 | 스페인 육군부 장관 |
1951년 7월 19일 ~ 1957년 2월 25일 | |
스페인 부총리 | |
1962년 7월 11일 ~ 1967년 7월 22일 | |
참전 |
리프 전쟁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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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군인이자 정치인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독일 국방군 청색사단의 초대 사단장이었다.2. 생애
2.1. 전간기
1896년 마드리드의 자치도시였던 카라반첼 바호의 평범한 가정에 출생했다. 1913년 톨레도의 보병학교를 입교했고, 1915년 졸업 후 모로코에 파견되었으며 1920년에 발발한 리프 전쟁에 참여했다. 모로코에서 근무하면서 돌격헌병대 (Guardia de Asalto)를 창설했으며, 1935년까지 돌격헌병대의 지휘관으로 있었다. 1935년부터 1936년까지 모로코 원주민 담당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었다.2.2. 스페인 내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공화당에 의해서 수감되었으나 공화당측에 가담한다는 합의 아래에 출소했다. 하지만 1937년 무뇨스 그란데스는 발렌시아로 탈출하는 데에 성공해서 반란군에게 가세했다. 이후 나바라 여단, 제150사단 등의 사령관을 맡아 아라곤 공세에서 국제여단의 군대에 맞서 많은 전공을 세웠고 세그레 강을 기준으로 전선을 형성하는 데에 성공했다. 1938년 카탈루냐 공세에서는 세그레 강을 돌파하여 공화당 세력의 지휘거점을 격파하는 전공을 거두었다. 이후 스페인 내전이 종결되면서 준장으로 진급했다.스페인 내전 기간 대체로 독일의 콘도르 군단과 함께 활동했으며 이는 훗날 친독성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39년, 프랑코 정권이 수립되면서 무뇨스 그란데스는 팔랑헤당의 사무총장로 임명되었다. 정치적 색체가 비교적 강한 편은 아니었고 정치가도 아니었기에 의외의 인사로 평가받았고 의외로 빠른 기간 내에 당 내에서 세 손가락에 꼽히는 정치적 입지를 쌓기도 했다. 그러나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공화당 지지세력들과의 화해 및 재기용을 추진하면서 다시 팔랑헤 당 내부적인 비판을 받아야했고 결국 1940년에 사무총장직에서 물러난다.
정치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다시 군으로 돌아와 지브롤터 지역에 배치된 제22사단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 기간에 스페인과 나치 독일은 유사시 지브롤터를 점령하는 펠릭스 작전을 입안했으며, 무뇨스 그란데스는 이 작전을 지지했고 실행담당을 맡았으나 다만 2차대전기간 동안 스페인이 어쨌거나 중립을 유지했기에 이는 실행되지는 않았다.
2.3. 청색사단
1941년, 나치 독일이 바르바로사 작전을 발동했고 스페인은 이에 스페인 내전에 독일이 파견한 콘도르 군단에 대한 보답으로 자원부대인 청색사단을 파견했고 초대 사단장으로 무뇨스 그란데스를 임명했다. 청색사단이 주로 대소련 전선에서 활약하면서 전공을 거두어 올렸고, 나중에 무뇨스 그란데스는 늑대굴에서 히틀러로부터 직접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받았다.한편 무뇨스 그란데스가 독일에서 인기를 얻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스페인의 본격적인 참전이 촉발되는 것을 우려하였으며, 실제로도 독소전쟁이 나치 독일에 유리하게 흘러가자 스페인은 연합국으로부터 참전하지 않을 것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프랑코는 히틀러와 무뇨스 그란데스의 간의 대화내용을 통해 청색사단의 사단장을 교체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군부의 무뇨스 그란데스의 호감도로 인해 이 교체는 프랑코의 계획에 비해서는 몇 달간 지체되어야 했다.
1942년에는 국방군 계급 중장으로 진급했고 곡엽 기사십자 철십자장을 수여받았으며, 같은 해에 스페인으로 복귀하면서는 독일 방위군에서의 군계급을 인정받아서 정식으로 중장으로 진급했다. 청색사단의 후임사단장으로는 비교적 보수적인 군인이었던 에밀리오 에스테반인판테스 중장이 선임되었다.
2.4. 복귀 및 종전 이후
무뇨스 그란데스는 1945년에 제1군관구사령관이 되면서 대장으로 진급했고, 1950년에는 육군부 장관을 역임했고 1958년에는 스페인군 총참모장에 올랐다. 이후 1962년부터 1967년 동안은 스페인 부총리로 재직하는 등 프랑코 정부 내내 신임되었다.1970년, 74세를 일기로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고향인 카라반첼 바초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