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666><colcolor=#fff> 디트리히 펠츠
Dietrich Pelt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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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4년 6월 9일 |
로이스게라 후국
게라 (現 독일 튀링겐 주 게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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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01년 8월 10일 (향년 87세) |
독일 바이에른 주 뮌헨 | |
복무 | 나치 독일 육군 |
1934년 ~ 1935년 | |
나치 독일 공군 | |
1935년 ~ 1945년 | |
최종 계급 | 소장 (Generalmajor / 나치 독일 공군)[1] |
주요 참전 |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영국 본토 항공전 바르바로사 작전 |
주요 서훈 | 백엽 검 기사철십자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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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의 소장으로 29세의 나이로 장성이 되었다. 독일 국방군 전체에서 가장 어렸던 장성이다. 1차 세계 대전이 개전했던 해인 1914년 독일 제국에서 태어나 2001년 뮌헨에서 죽었다.2. 어린 시절
그는 1914년 공장장의 아들으로 태어나 헤르만 리츠 기숙학교를 1932년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그는 1934년까지 벤츠에서 인턴쉽을 했고 1934년 국가방위군의 제5 차량수송부대의 장교 후보로 입대했다. 1934년 12월 1일에 하사가 되었고 이후 독일 국방군의 육군사관학교에 있다가 공군사관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3. 군생활
3.1. 2차 세계 대전 전
그의 학교는 제162 급강하 폭격기 부대로 개명 되었고, Ju87 A형으로 무장을 했다. 그는 1937년에 제1 구르페(36대에서 50대)의 부관이 되었다. ju87 b형이 운용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구르페는 제2 구르페로 개명되었고, 1939년 3월 1일 그는 중위가 되었고 2달 뒤 그의 구르페는 제1 구르페로 다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1939년 8월 15일 그는 급강하 폭격 시연을 하게 되었는데 많은 조종사들이 고도를 잘못맞추어 사망했다. 이때 펠츠는 다행히 살아남았다.3.2. 제2차 세계 대전
폴란드를 상대로 약 45회의 전투를 벌였고 보통 교량과 차량들을 파괴하였다. 그는 이 공로로 9월 15일, 2급 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1940년 됭케르크에서 펠츠는 수송선 한대를 침몰시켰고, 총 8번의 전투를 벌였다. 그 공로로 1급 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폴란드와 프랑스 상공에서 102번의 전투에서 손상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3.2.1. 폭격기 조종사
프랑스와 폴란드 침공 이후 그는 Ju88훈련을 받았다. 영국 본토 항공전에 투입되어 130번째 임무를 완수한 그는 기사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이후 그는 KG77의 비행집단장이 되었고 대위로 승진을 했다. 이후 그의 부대는 동부전선에 배치되었고 정밀적인 폭격을 하는데 한발 나아갔다.이후 그는 KG77의 비행집단장을 하인리히 파엡케 대위에게 넘겨주라는 명령을 받았고 공군 본부에 배치되었다. 수많은 회의를 통해 그는 폭격기 조종사 학교의 필요성을 알렸다. 그는 폭격기 조종사 학교에서 훈련을 담당하였고 1941년 12월 31일에 백엽 철십자훈장을 수훈받았다. 그는 포기아에 있는 폭격기 조종사 학교에서 최신 기술들을 훈련받았고 1942년 7월 18일 중령으로 진급했다. 최신 기술로 개발된 정밀유도 폭탄으로 연합군의 선박을 대항하려 하였으나 3주후 그는 북아프리카로 투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