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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계 프랑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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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문화
3.1. 언어
4. 인물5. 관련 문서

1. 개요

러시아계 프랑스인 프랑스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또는 러시아계 후손이다.

2. 역사

프랑스와 러시아가 관계를 맺은 시기는 키예프 루스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1] 키예프 공국이 몽골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러시아와 프랑스 간의 교류가 크게 축소되었다가 루스 차르국 표트르 대제 치세에 서유럽의 문물들을 받아들이면서 본격적으로 프랑스와 교역 및 문화교류가 시작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프랑스와 교역 및 무역을 하면서 당시 유럽 상류 계층의 공용어였던 프랑스의 문화까지 받아들였다. 프랑스인 교사들이 러시아 귀족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기 위해 초빙되고[2] 러시아 귀족들은 공문서 사용과 교회 예배 외 일상 생활에서 일부러 프랑스어만 쓰다시피 했다.

러시아 귀족들 중에는 요양이나 휴양으로 프랑스로 여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폴레옹 러시아 원정을 하면서 러시아 제국에서 반프랑스 운동이 일어난 적도 있었으나 파리에 진주한 러시아 제국 군대에 귀환한 후 프랑스 문화를 전하고 반프랑스 운동 이전보다 프랑스 문화가 러시아 제국에 깊이 침투했다. 서구화를 주장하던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종종 러시아에서 정치범으로 몰리면 이반 투르게네프 처럼 프랑스로 망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19세기 기준으로는 프랑스에 폴란드인들이 러시아인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러시아인을 폴란드인으로 오인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20세기에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하자 프랑스 혁명 때와는 반대로 러시아 귀족들이 대거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로 이주했다.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 당시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인들은 약 40만여 명에 달했다.[3] 이 가운데 상당수는 프랑스를 거쳐 미국 등으로 다시 이주하였으나 프랑스에 정착한 인원은 10만여 명 정도에 달했다. 이들의 망명 과정에서 노르웨이의 탐험가 이자 외교관인 프리드쇼프 난센이 활약했으며 소련 수립 후 망명한 경우 대부분 난센 비자를 받고 프랑스에 입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망명 러시아인의 상당수는 본국에서는 귀족이었으나 프랑스에서는 일반 노동 계급과 다를 바 없는 처지로 무시를 당했으며 러시아 내전으로 망명한 러시아인 난민들의 러시아인 공동체의 권익을 다지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당시 러시아 망명 1세대는 기본적으로 소련이 지속되지 못할 것이며 자신들은 결국 러시아로 되돌아가게 되리라는 희망과 확신에 차서 살며 자녀들에게 러시아어 및 러시아 정교회 전례를 교육시켰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련이 초강대국이 되면서 이들의 바램도 좌절되었고 결국 체념 상태에 빠진 러시아계 난민의 상당수는 프랑스 사회에서 자신이 러시아인인 것을 숨긴 채 프랑스인으로 동화되어 살게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했고 21세기 들어서 푸틴의 독재를 피하기 위해 이주한 경우도 상당하다. 러시아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러시아인들이 프랑스로 이주한 경우도 있다 보니 프랑스 각지(특히 코트다쥐르 일대)에도 러시아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3.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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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의 체호프식 저택들에선 구 러시아 귀족들의 목가적인 생활을 연상시키는 주말 파티가 열렸다. 혁명 전에는 서구식 생활 방식을 익히고 교회에 가본 적이 없던 러시아인들도 이제 망명객으로서 고향 풍습과 정교 신앙에 집착했다. 망명객들은 마치 자신들의 개성에 집착하듯이 모국어에 집착했다 (...)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강조는 망명객들과 그들이 망명한 나라 사람들 간의 상호 적대감으로 강화되었다. 특히 프랑스인들과 독일인들은 러시아인들을 전쟁으로 해체된 경제의 야만적 기생자로 본 반면, 가난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프랑스인이나 독일인보다 훨씬 지적이었던 러시아 난민들은 자신들이 (대개 귀족 출신이므로) 프랑스와 독일의 " 프티 부르주아지"보다는 뛰어난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파리 망명객들의 러시아 민족주의 활동의 의의는 표트르와 예카테리나의 제국 문화의 정수였던 귀족적 가치를 부활시켰다는 데 있었다. 파리에서의 러시아식 발레 공연은 러시아 난민 문화생활의 중심이었다. 파리의 발레 공연장은 일종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르네상스의 파리 대사관이었던 셈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향유하는 문화가 실용 예술과는 다르게 "어떤 형태로든 민주적인 일탈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고" "귀족적 정신"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다. 파리 망명객들이 무엇보다 높이 평가하는 것은 바로 니체가 비판했던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가치였다.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은 현실도피를 원하는 망명객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망명객들 대부분이 속해 있던 귀족 문명은 혁명으로 파괴되었고 그들은 서유럽에서 두 번째 고향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망명객들은 자신들이 러시아의 특권 엘리트로서 향유했던 지위를 상실했다는 사실 때문에 동요했다. 난센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가진 명문 귀족의 후손들은 서구 국가 내에서 자신들이 "이등시민"으로 취급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탸샤 댄스 : 러시아 문화사 / 올랜도 파이지스 저

이반 부닌의 사례에서 보듯 프랑스계 러시아인의 상당수가 러시아인 귀족 계층이자 반볼셰비키 성향으로 러시아 정교회 보수 성향이 강했지만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의주의 및 세속주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강했던 프랑스 사회 특성상 이들도 점차 동화되어 오늘날 프랑스에서 정교회 교세는 미미한 편이다. 니스 파리 등에 정교회 성당이 있으나 규모가 크지는 않다.

오늘날 러시아계 프랑스인들은 교회 같은 시설들보다는 니스, 파리 등지의 러시아계 수입 식료품점을 가면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식료품점이나 식당 같은 시설은 사실상 프랑스인에 완전히 동화된 러시아계 프랑스인 외에도 러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나 난민, 관광객 등도 모이기 때문에 사실상 프랑스내 러시아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프랑스의 유명 홍차 브랜드 쿠스미티(Kusmi Tea)는 원래 러시아에서 홍차를 판매하는 업체였으나 러시아 혁명 당시 사업체가 싹 날아가고 프랑스로 망명한 쿠스미쵸프(Kousmichoff) 오너 일가가 다시 프랑스에서 업체를 재건했다고 한다. 1972년 파산했으나 2003년 다른 사람들이 경영권을 사들인 후 부흥하는 데 성공했는데 “러시아 황실에서 마시던 전통 홍차” 마케팅이 주효했다고 한다. 혁명 직전 러시아 황실이 콩가루 가족이었던 건 넘아가자[4]

일부 무슬림 타타르인들이나 러시아계 유대인들도 당시 이주하였으나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1887년 비텝스크 주에서 출생한 유대인 화가 마르크 샤갈은 본인은 나치 독일의 마수로부터 무사했지만 1941년 고향이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어 유대인 거주자들이 거의 다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3년 후 다음과 같은 애도문을 남겼다.
그대를 마지막으로 보고 내가 그대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거리에 있었던 이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대와 함께 살았지만 아직 나의 그림 중엔 그대의 기쁨과 슬픔이 반영된 한 장의 그림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나는 끊임없이 나의 고향 도시가 나를 이해하고 있을까 하는 근심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으로 망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자신의 러시아에 고향에 놔두고 온 저택을 이상화하면서 노년을 스위스에 한 호텔에 거주하며 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샤갈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자신이 유대인인 것을 숨기고 공부했을 때부터 어렸을 적 자신의 고향이었던 비텝스크를 이상화했다. 여타 러시아 난민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인 그에게 있어서도 고향은 그저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예술적 장소로 신화적 이상이었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샤갈이 벨라루스에서의 삶을 어떻게 그렇게 그리워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20세기 초반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타타르인들은 별 다른 특별한 통계 결과가 없어 완전히 동화된 것으로 추정되며 러시아 제국 및 소련의 아르메니아인들이 프랑스에 정착한 경우도 꽤 된다.[5]

2020년 10월에 일어난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의 범인은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난민 신청한 체첸인 가정 출신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해당 극단주의자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였다.

3.1. 언어

러시아 혁명 당시에 이주한 러시아 귀족 후손들은 원래 러시아어보다는 프랑스어를 더 유창하게 구사하던 사람들로 오늘날에는 과거 망명인들의 후손들은 프랑스인으로 사실상 완전히 동화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최근에 프랑스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은 대부분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4. 인물

5. 관련 문서


[1] 키예프 공국 시절에 서프랑크 왕국과 교역을 한 때부터 관계를 맺게 되었다. [2] 18세기말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프랑스 귀족들이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했다. 대표적으로 학살을 피한 부르봉 왕가도 러시아로 도피했는데 예카테리나 여제는 프랑스 혁명을 매우 혐오했기 때문에 왕정복고되기 전까지 러시아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3] 표트르 브란겔의 후계자이자 러시아 전군연합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루드비크 밀러 장군도 프랑스에서 활동했을 정도다. [4] 이와는 별개로 러시아 혁명 당시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인 중 황실 복권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막장 황실이라고 해도 여기에 애착과 향수를 느끼던 사람들도 꽤 있었다. [5] 아르메니아계 프랑스인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