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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1:38:04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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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단 선수단 명단 선수단 등번호
유니폼 KIA 타이거즈 유니폼
경기장 1군 파일: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로고.svg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월명종합경기장 야구장 무등 야구장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2군 기아 챌린저스 필드 전남 야구장
타이거즈 역사 해태 타이거즈 역사 KIA 타이거즈 역사 감독 해태 왕조 김씨 왕조(김씨 타선) KKK포 이강철-조계현-이대진 SKY CK포-LCK포 양현종-헥터 원투펀치 박전문 전장정(JJJ 라인)
타이거즈 기록 해태-KIA 타이거즈 기록 및 인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1호 기록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공사 현장 변천사 홈런존 저주
우승 기록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파일:KBO 한국시리즈 트로피.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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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대세4. 몰락5. 결과
5.1. 8월5.2. 9월5.3. 10월
6. 시즌 2?7. 인용 및 패러디8. 기타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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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attachment/20130811_173045.jpg
이 글은 성지가 될 것입니다...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포스트시즌 진출을 못 했나
해당 칼럼에 달렸던 베스트 댓글
원본 칼럼(아카이브)[1]

박동희가 작성하고 네이버 산하 스포츠 매거진 '매거진 S'에서 2013년 5월 3일 게재한 칼럼의 제목으로, 함부로 설레발을 치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후 스포츠조선 이원만 기자가 쓴 KIA에 '되는 집안'의 분위기가 풍긴다라는 기사와 더불어 설레발의 대명사로 쓰인다.

2013 시즌 초반에 유행했던 번저강을 넘어선 최고의 유행어로, 요기 베라의 명언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와 김재박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와 연관된 야구계의 새로운 명언이 되고 있다. 이 이후, 특히 후술할 '타이거즈는 어떻게 7위가 됐나'라는 기사의 등장 이후부터 비단 야구 뿐만이 아닌 다른 스포츠, 연예, 시사 등 분야를 막론하고 '~는 어떻게 ~됐나'라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제목의 앞 글자만 따서 '타어강'으로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가끔 '다시'가 빠진 채 '타이거즈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라고 잘못 쓰이기도 한다. 또 네이버 기사 제목에는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나'로 잘못 쓰여서 이쪽이 공식 제목이라고 잘못 아는 사람들도 많다.

제목은 박동희 기자가 지은 게 아니고 포털 사이트 담당자가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라는 책 제목에서 따왔다고 한다. 박동희가 작성한 원 제목은 <타이거즈의 빛과 그림자>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림자가 언급되기는 하나 주요 논지는 아니었기에 제목으로 달았다면 그것대로 비판받았을 듯. 원 제목을 안 네티즌들이 보인 반응도 기사 내용이 칭찬 일색이라 깔 수밖에 없다고 할 정도. 그와는 별개로 제목이 너무 강렬했고, 또 너무 뒤쪽에서 언급되었기에 아예 단점 언급이 없다고 아는 사람들도 많다. 한 강연에서 본인은 빛과 어둠을 적절히 지목했다는 얘기를 했으나 원고를 엄청나게 길게 쓰는 박동희의 특성상 뒷부분이 짤리게 됐고 시즌 초반에는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쓰지 않는다는 보이지 않는 규칙에 따라 비판 부분이 짧아졌다고 이야기했다.

정리를 하면 원문 자체는 타이거즈의 빛과 그림자를 짚으면서 글을 썼고, 게시 과정에서 편집부가 그림자 부분을 쳐내고 제목까지 바꾼 상황인데 KIA가 그림자 부분에서 언급한 문제들이 다 일어나면서 역대급 DTD를 시전했고 조롱거리가 된 셈이다.

2. 내용

우선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의 KIA 타이거즈를 언급한다. 우승 직전 시즌이던 2008년 당시 10승 투수는 윤석민밖에 없었고,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도 윤석민과 이범석뿐이었으며, 3할 타자는 이용규 김원섭,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도 이용규, 김원섭, 이현곤 뿐이었다. 그러나 조범현 감독은 2008시즌 이후 스프링 캠프를 빡세게 굴려 기본기를 보강했고, 팀에서 다소 겉돌고 있던 최희섭을 집중 관리해 최희섭의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언급한다.

2009년 시즌 초반 전문가들은 KIA를 4강권 밖으로 지목했고, KIA는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힘든 4월을 보냈다. 이에 조범현 감독은 프런트에게 유격수 자원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했고 이에 KIA의 프런트는 3루수 이현곤을 유격수로 돌리는 동시에 LG에서 김상현을 받아와 3루수로 쓰자는 의견을 꺼냈다. 김상현의 수비 능력 문제와 LG가 김상현을 내주는 조건으로 1차 지명자인 유망주 투수 강철민을 요구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갑자기 LG가 박기남까지 주겠다고 하며 트레이드는 성사되었고 김상현은 최희섭과 시너지를 일으켜 CK포를 만들어내며 KIA의 방망이를 불태우는 데에 큰 공헌을 한다. 불안했던 중간계투진도 5월 27일 SK전에서부터 유동훈이 마무리를 맡아줌에 따라 안정되었다. 이런 불방망이와 안정된 마운드를 KIA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유로 지목한다.

2013년 KIA는 선동열 감독의 고강도 마무리 캠프로 기본기와 체력을 보강했고, 새로 선임된 김용달 타격 코치가 과거와는 반대로 선수와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특히 최희섭이 김용달 코치를 적극적으로 따르면서 스토브리그부터 2009년을 닮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FA로 영입한 김주찬이 2009년의 김상현과 마찬가지로 타격을 직간접적으로 이끌고 있고, 선발 투수 역시 2009년처럼 김진우와 부활한 양현종, 그리고 돌아오는 윤석민 등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불안한 중간계투진과 제 몫을 해주는 야수가 한정적이라는 요소를 단점으로 수박 겉핥듯 언급하며 칼럼을 마친다.

사실 KIA의 약점인 얇은 선수층과 믿을 만한 중간계투의 부재는 몇 년째 이어지고 있었던 고질적인 문제로, 아는 야구 팬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 때의 KIA가 워낙 잘 나가서 그랬는지, 시즌 초반이라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인지 박동희 기자는 KIA의 고질적인 아킬레스건을 그냥 지나가듯이 언급했고, KIA는 이후 바로 그 약점 때문에 전례 없는 추락을 경험했다.

3. 대세

KIA는 2010년에는 전설의 16연패와 잠실 KIA팬의 난 속에 망신을 당하며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했고, 2011년에는 절치부심하여 올스타전 시점까지 1위를 달리며 다시 막강한 모습을 보였다가 이후 왕조의 기운으로 올라오는 삼성 라이온즈를 막지 못하고 후반기에 대몰락하며 어찌저찌 준플레이오프에는 진출했지만 탈락하고 말았다. 이 여파로 조범현 감독이 사퇴하고 선동열이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비록 삼성 감독 재임 시절에 기존 삼성의 트레이드 마크인 화려한 공격 야구에서 불펜 위주의 수비 야구로 팀 스타일을 바꾸고 그 와중에 베테랑 선수들을 함부로 여겨 골수 팬들과 마찰을 빚었던 것 때문에 말년에는 비참하게 끝났지만[2], 그래도 한국시리즈 우승 2회에 준우승 1회를 이룬 감독이며 무엇보다도 KIA의 레전드라 KIA의 팬들은 선동열의 부임을 열렬히 환영했고 삼성의 팬들은 "너희들도 선동열이 우리에게 해놓은 짓거리 그대로 한 번 당해봐라!"라고 벼르고 별렀다. 삼성 팬들이 4-4-5라는 삼성 나름의 암흑기라고 선동열 감독을 깔 때마다 일부 KIA 팬들이 "우승을 2번 했으니 흑역사라고 할 수 없다", " 안정권KO라는 강력한 불펜진은 선동열의 공이다"[3], " 류중일은 선동열의 업적에 숟가락만 얹은 것 뿐이다"라고 주장하며 치고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맞이한 2012년, KIA는 기대와는 달리 이종범을 강제 은퇴시키고 5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하지만 KIA의 팬들은 부임 첫 해라는 점과 그럭저럭 괜찮은 선수 운용으로 막판에 롯데 자이언츠와 4강을 두고 극적인 순위 다툼을 보여줬다고 하면서 희망을 품게 되었다.[4]

2013년에는 FA로 풀린 김주찬을 무려 50억을 주고 데려왔고 시범경기에서 9승 2패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전문가들이 모두 다 삼성의 독주를 저지할 가장 유력한 후보로 KIA를 꼽았다. 실제로 개막 직전에 전문가들이 예상한 4강 후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KIA를 지목했고, 이러한 예상과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경기력이 더해져서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KIA의 팬들은 꿈에 부풀게 된다.

실제로 KIA는 2013 시즌 시작 직후 승률 0.722를 찍으며 1위에 올랐다. 여기에 편승한 기자들은 매년 그러하듯 2강이니 우승후보니 하는 말들을 하며 KIA와 관련된 뉴스들은 시즌 초반 내내 스포츠 신문 지면을 장식하게 되었는데, 그 정점을 찍은 기사가 이 칼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사가 올라온 5월 3일 KIA는 불안하게나마 여전히 선두 자리를 고수하고 있었고, 비록 김주찬이 시즌 초반부터 투구에 맞아 손목 부상으로 이탈하는 악재가 있었지만 신종길이 갓종길 모드가 되어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게다가 팀의 에이스인 윤석민은 WBC 출전 후유증으로 5월까지는 가동조차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김주찬과 윤석민이 없는데도 이 정도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사가 나온지 얼마 안 되어 KIA는 앤서니 르루가 마무리 자리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5월 6일에는 시즌 중 주전 좌익수 김상현과 잦은 방화로 신임을 잃었던 진해수를 보내고 송은범 신승현을 받아오는 2:2 트레이드를 SK 와이번스와 성사시킨다. 큰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김주찬이 돌아오면 김상현은 외야 한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할 입장이라 잉여 전력으로 볼 수 있었고, 진해수는 일명 진해수소폭탄으로 당시 KIA 불펜 불안의 원흉이라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있던 상황이라 SK에게 내줘도 그만이라는 여론이 팽배해 있었다. 그에 비해 KIA의 선발진은 여전히 강력했고, 여기에 송은범이라는 거물이 여전히 불안한 불펜의 구멍을 메워준다면 모두들 KIA가 이번에는 무난히 가을 야구에 진출하고 우승도 사정권이라는 낙관적인 여론에 휩싸였다. 실제로 4월의 KIA는 무시무시한 선발[5]과 타선으로 상위권을 질주하며 트레이드 전날인 5월 5일까지 17승 8패 1무로 승률 0.680을 기록하고 있었기에, 이런 예상에는 힘이 실렸고 몇몇 팬들은 성급히 KIA 선수들의 골든글러브 수상을 점치기도 했다.

즉 이 기사가 나온 당시, 그리고 사흘 뒤 트레이드 날, 그리고 얼마 뒤 KIA가 9연승을 달릴 때까지 이 칼럼은 설레발로 인식되지도 않았고, 오히려 사흘 뒤의 대형 트레이드를 내다본 개념 기사라는 평가까지 있었다.

4. 몰락

파일:taeogang.png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위에 나온 수많은 기자들의 대세에 편승했던 기사들은 모두 설레발이 되었다. 원래 성적이 나빠지면 뭐든지 이유를 찾아 욕하는 사람들의 속성이 드러나는 대목. 팬들은 처음에는 칭찬하던 트레이드를 부진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SK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팀 충성도가 강했던 김상현과 사고로 인한 부친상으로 멘탈이 흔들렸던 진해수를 내보내는 것을 보고 KIA 선수단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서 상승세가 꺾였다고 한다.

트레이드 후 한 달 정도 지난 6월 8일부터 20일까지는 9연승을 달리면서 리그 3위에 안착해 팀의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트레이드 때문에 팀이 망했다는 소리는 없었다. 또 자기 팀의 선수가 트레이드 되었다는 이유로 프로 선수가 남은 리그의 대부분인 5개월 동안 자기 성적과 연봉을 버려가면서까지 침울해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이는 오히려 KIA 선수들을 욕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런데 5월 7일에 금방 복귀할 것만 같았던 김주찬은 복귀가 예상보다 늦어졌고, 그 와중에 김원섭은 부상으로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으며, 김상현이 트레이드로 떠나 비어 있는 자리에 들어올 신종길마저 부상으로 잠시 2군에 내려갔고 이용규는 어깨 부상으로 외야 수비를 잠시 쉬었다. 나지완은 체력 문제 때문에 지명타자로 출전하면서 선수 과잉으로 봤던 외야진은 오히려 2군에서 선수를 콜업해와야 할 정도로 허약해졌다.

그리고 김상현을 보낸 이후 KIA의 타선은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듯 극도의 부진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특히 4월 한 달에만 6홈런 24타점을 쓸어담았던 최희섭은 이후 4개월 동안 5홈런 18타점에 그쳤다. 게다가 선동열 감독이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기 운영을 보이면서 "선동열이 삼성을 우승시킨 것이 아니라 삼성이 선동열을 우승시켰다"는 삼성 팬들의 주장이 재조명을 받았고, '류중일 숟가락론'을 내세우던 일부 KIA 팬들마저 후회하며 선동열의 경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KIA가 계속 영원한 웃음후보로 남기를 원하는 타 팀의 팬들은 대동단결하여 선동열 KIA 종신감독을 외쳤다.

그래도 6월 8일부터 20일까지 9연승을 달리는 등 반전의 불꽃을 태우며 3위에 안착했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특히 KIA의 마지막 퍼즐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 송은범의 부진은 예상보다 심각했고, 결국 송은범은 이적 후 FA 등록일수도 못 채우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면서 FA 대박의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말았다. 물론 송은범은 검증된 투수였기 때문에 팬들도 좋아했고, 선동열이 트레이드 시 송은범을 선택한 것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프로는 결과로 말하는 것이다.

거기다가 앤서니 르루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도저히 눈을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블론세이브를 반복했고 나머지 불펜진들도 시즌 초부터 변함없이 답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동안 KIA의 장점이었던 선발진도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는데, 윤석민 타이중 쇼크 이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다가 결국 마무리로 뛰게 되었고, 김진우 서재응은 작년의 모습을 찾지 못했으며, 두 외국인 투수인 헨리 소사와 앤서니 르루 역시 부진했고 결국 앤서니 르루는 시즌 도중에 방출당했다. 그나마 양현종만이 부활하여 제 몫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6월 말 삼성과의 경기 도중 갑자기 옆구리 부상이 도져 두 달 동안 아웃당했다. 양현종은 이후 승리를 전혀 추가하지 못해 6월 20일 9승을 올린 것이 시즌 최종 승이 되고 말았다. 부상 원인도 기가 막힌데, 김상수가 때린 홈런 타구를 쳐다보다가 부상을 당했다고... 사실 이때부터 조금씩 하락하던 KIA는 더욱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6]

이 칼럼이 난 시점과 맞물려 2011년의 LG를 뛰어넘을 정도의 추락을 한 KIA는 우승 후보에서 웃음 후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해 승패마진의 차이가 31로, 그때까지 KBO 역사에서 가장 큰 낙폭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였다.[7] 2013년 9월 하순까지만 해도 4강 탈락은 이미 확정되었지만 그나마 7위 자리는 위태롭게 지키고 있었는데, 2013년 9월 27일에 NC가 승리하고 KIA는 무승부에 그치면서 7위 자리도 놓치고 단독 8위로 추락하게 되었다. 심지어 9위인 한화 이글스와는 승률이 꼴랑 4모 차이였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KIA의 2013년은 흑역사로 취급되었지만, 2017년에 불거진 KBO 리그 심판 최규순 금전요구 사건을 조사하는 도중에 2012~2013년 사이에 KIA가 최규순에게 돈을 보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이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박동희 기자의 공로를 생각하면 타어강의 저주는 본인도 의도치 않은 정의구현이 되어버린 셈이다. 결론은 돈 먹이고 8등을 한 사상 최악의 흑역사 시즌이 되어버린 것.

5. 결과

파일:attachment/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taayak7.jpg 파일:attachment/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taeogang2.jpg

최종전적 51승 74패 3무 승률 0.408로 최종 순위 8위.

다만 2007년의 KIA(51승 74패, 0.408)보다 2005년의 KIA(49승 76패, 0.392)가 더 못했다. 그러나 2013년은 2007년의 승수와 패수까지 똑같이 재현했으며 승률 역시 2007년과 동일한 0.408이었기에 2007년으로 비유한 것.

덕분에 이거즈는 떻게 해도 팀이 못 된다, 이거즈는 떻게 팀의 자격을 잃었나, 이거즈는 째서 팀이 될 수 없나, 이거즈는 떻게 다시 강(降, 내릴 강)팀이 되었나로 신나게 까였다.

5.1. 8월

8월 13일에는 시즌 후반기에 상승세를 탄 SK 와이번스에게 패배, SK와 순위를 맞바꾸면서 시즌 처음으로 7위로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언론에서도 선동열을 까는 기사들이 속속 올라오기 시작하였고 팬들마저 팀의 레전드 선 감독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동희는 KIA 팬들에게 거의 금지어가 되었다.

8월 15일에는 급기야 < 타이거즈는 어떻게 7위가 됐나>라는 기사까지 나왔다. 일명 타이7ㅓ즈 본문에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라는 기사제목을 직접 인용해 언급하고 있다. 당연히 댓글란은 대폭발. 당시 베스트 댓글은 SUN "기자 글쓸 때 팔각도 좁혀야..."로 그야말로 미친 드립들의 향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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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카메라에 다 보이는 데서 김진우 서재응 루키 포수 이홍구를 갈구는 모습을 보이며 분위기가 개판이라는것도 인증했다.

결국 1, 2군 코치를 대대적으로 물갈이하는 조치를 취했다. 항간에는 선동열 감독의 손발을 쳐내는 경질의 밑작업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파일:external/e2b733117d55def75758498f4ffa30b24a05eebdfa70c16e898561dfd45e4bfc.jpg

2013년 8월 11일 삼성전에서 올드 유니폼을 입고 오랜만에 승리를 거두자 유니폼 버프라는 드립도 생겼다. 하지만 이 검빨 유니폼 무적드립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 2년 전인 2011년 KIA는 전반기 종료시점까지 1위를 고수했으나 턱밑까지 따라온 삼성에게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선두를 내주고 말았는데 그렇게 1위를 빼앗긴 날이 바로 '올드 유니폼 데이'였다. 타구단과는 달리 올드 유니폼 착용에 인색하던 KIA가 모처럼 옛 해태의 영광을 상징하는 검빨 유니폼을 착용했는데, 하필 그날 삼성에게 거하게 털리며 선두자리를 빼앗겼고, 이후 다시는 탈환하지 못하고 몰락했던 것.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같은 날 삼성은 올드 유니폼을 입고 왕조를 세웠는데 KIA는 올드 유니폼을 입고 이런 치욕적인 사건이 겪었기 때문이다. 검빨의 상징성이 치욕으로 뒤덮이고 만 그 날 이후, 물론 2013년 8월 11일 삼성전에서 오랜만에 다시 검빨 유니폼을 착용하고 어찌어찌 6-5로 역전승을 거두긴 해지만, 이후 2020 시즌 이전까지 KIA는 검빨 유니폼을 다시 착용하지 않았다.

KIA의 대몰락, 어디에서 비롯됐을까라는 기사마저 나와버렸다.

이대로 가면 2014 시즌부터는 주전 선수들이 줄줄이 FA 자격을 얻거나 군대에 입대하는 바람에 LG나 롯데처럼 비밀번호를 찍을 가능성 역시 제기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리빌딩 등 팀의 재건을 위해 수 년을 투자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사실 2009년 우승 이후로 말이 안 나와서 그랬지, KIA의 2군 구장은 그야말로 암울 자체로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추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거기서 1군급 인재가 나올 수가 없었다. 한화 이글스의 현재 암흑기 원인 중 하나가 2군의 역량 부족이었다는 걸 감안하고 현대-KIA차 그룹에서도 대대적으로 투자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게 효과를 보려면 최소 몇 년이 더 걸릴 것이다.

5.2. 9월

9월 3~4일에 뜬금없이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2연승한 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부진을 이어가면서 NC와의 승차도 계속 좁혀졌다. 압도적인 9위인 한화 및 상위권에 있지만 스윕을 잘 하지 못했던 LG에게 스윕을 헌납해버린 건 덤.

그리고 대망의 2013년 9월 16일, KIA는 한화에게 패하면서 4강 진출 실패가 확정되었고 타어강은 완벽한 전설이 되었다.

9월 19일에는 이 '타어강의 전설'을 정리라도 하려는 건지 '우승후보' 타이거즈는 왜 웃음거리로 전락했는가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9월 24일 기어이 NC와 공동 7위가 되어버렸다. 사실 NC 역시 시즌 막판 힘이 빠진 덕분에 신생팀의 한계를 보이면서 슬슬 승률이 내려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 내려가는 속도를 역전해버렸다. 이쯤 되면 대단하다...

9월 27일 드디어 SK전에서 경기 막판 자신들이 버렸던 진해수에게 타선을 틀어막히면서 무승부를 기록하여 이 문제의 칼럼이 작성된지 148일만에 타이거즈는 단독 8위로 추락했다. 이 때 네이버 경기 댓글창에 운명의 장난이라느니 진해수가 KIA 황천길 가는 길을 손수 터준다는 등의 드립이 흥하면서 댓글창이 폭발하였다. 이 날 MBC 스포츠 플러스 베이스볼 투나잇 야!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박동희가 출연, KIA 경기를 담당했다. 이것만으로도 KIA팬들은 속이 뒤집히는데 박동희는 KIA 경기 정리 후 마지막 멘트로 KIA팬들을 더 빡치게 만들었다.
"오늘 KIA가 지면서[8] 시즌 8위로 떨어졌는데 시즌이 끝나게 되면 현장과 프론트에 다소간의 변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조짐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글쎄요. 사람을 바꾼다고 될 문제 같지는 않고, KIA는 제가 경험한 구단 중에서 가장 폐쇄적인 구단입니다. 이 폐쇄적인 구단과 재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KIA는 늘 8위를 지킬지도 모릅니다."
사실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특히나 재활 시스템은 현재 프로야구 구단 중에서 제일 극악이라고 해도 무방. 괜히 매년 주력 선수들이 부상으로 드러눕는 게 아니다. 단지 이 말을 타어강을 쓴 지 반 년도 안 된 박동희가 하니까 미친듯이 까이는 것이지.

5.3. 10월

10월 4일 박동희는 누가 한·일 ‘괴물’을 ‘퇴물’로 만들었나라는 칼럼을 작성, 한기주와 前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좌완 투수 스지우치 다카노부에 관해서 칼럼을 썼다. 주된 원인은 고교 시절의 혹사지만 한기주의 수술 타이밍을 놓친 프런트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리고 그 칼럼이 올라온 날, 무등 야구장 고별전에서 넥센에게 8-3으로 귀신같이 패배하며 결국 페넌트레이스 8위를 확정짓고 말았다. KIA 타이거즈는 2013시즌을 51승 3무 74패, 승률은 정확하게 0.408로 마무리했다.

더 비참한 것은 사실 KIA의 8위는 이미 최종전 시점에서 자력으로는 탈출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것. 시즌 최종전 승리를 전제로 다음날 있는 NC SK의 시즌 최종전 결과를 지켜봐야 할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이었는데, 그 다음날에 NC가 SK를 이겨버린 바람에 고별전에서 승리해봤자 8위라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작년 내내 꼴찌를 유지했던 한화와의 승률(.4076923…)과 고작 4 차이로 앞섰다.

결국 KIA 타이거즈는 공식 홈페이지에 사과문까지 게재했다.

이렇게 말아먹고도 2015시즌에 개막전을 홈경기로 하게 되었는데, 2013 PO에서 두산에게 제압당한 LG가 3위로 추락하고, 두산이 2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두산이 순위가 더 높아서 LG는 원정에서 개막전을 하게 되었다. kt wiz의 합류로 3위팀은 8위팀과 개막전에서 맞붙는데, 그 8위팀이 KIA라서[9]...

6. 시즌 2?

이후 2014년에도 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찍었고, 2015년에는 그래도 5강 싸움은 하긴 했지만 결국 7위를 찍고 4년 연속으로 가을야구에 실패하면서 타어강의 저주에 걸린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2016년에도 하위권으로 예상되었고 6월에는 꼴찌 직전까지 떨어지는 위기를 맞이했지만 이후 상승세를 타면서 극적으로 5위를 찍어 와일드카드에 진출하면서 저주를 끊어냈고, 4위 LG 트윈스를 상대로 1승이라도 하는 등 희망적인 전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7년, 4월부터 KIA가 오래간만에 1위를 수성하기 시작하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같은 불펜진들이 약점이지만 막강 선발진과 강력한 타선이 이 약점을 메워버리면서 2017시즌 전반기를 1위로, 그것도 2위와 8경기차라는 압도적인 결과로 마무리 하였다. 약점이라던 불펜진도 시즌을 치르면서 점차 안정되어갔기에 2011년만큼 연패가 계속되지 않는다면 가을야구는 보장된 상태라는게 전반기의 전망이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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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어강 VS 육절못

2017년 7월 24일 2017, 타이거즈는 어떻게 다시 강팀이 되었나라는 칼럼이 올라왔다. 올 시즌 타이거즈가 시즌 내내 1위를 달리고 있고 팀 득실차 등의 세부 지표로도 강팀이라는 건 분명하지만, 하필이면 롯데에게 스윕을 허용한 직후 기사가 공개되었고 타어강이라는 말이 KIA 팬들에게 금기시되는 말인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KIA 전담기자가[10] 당당하게도 타어강이라는 제목을 사용하는 바람에 KIA 팬들에게 욕을 엄청나게 먹고 있다. 심지어 2013년 전설의 그 사건 당시 롯데에게 스윕당한 이후로 성적이 추락했기에 더더욱... 게다가 타어강의 원흉이자 당시 감독인 선동열이 국대감독으로 선임이 됐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뜬거라 배로 기아 팬들이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기사가 뜬 후 반응은 말그대로 폭발적이었다. 간혹 "너무 미신에 민감한 거 아니냐?"라는 반응도 있는데, KIA 팬들이 모두 그런 징크스에 대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비난은 굳이 팀이 잘나가다가 주춤한 시점에 KIA에겐 흑역사와도 같은 타어강 기사를 다시 내야 했나 하는 의문과 KIA 담당 기자라면 KIA 팬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함에도 저런 기사를 다시 써서 굳이 안 좋은 기억을 되살리게 했어야 했나 하는 점이다. 물론 나쁜 징크스는 깨는 쪽이 좋긴 하지만 기사의 타이밍과 팬들이 느꼈던 당시의 악몽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도발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사에 대한 비난 여론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이 기사가 나온 다음 날, SK와의 홈경기에서 9회초 10:8 역전을 허용하면서 타어강의 저주가 다시 발현하는 듯 싶었으나 타선의 활약으로 10:11이라는 짜릿한 재역전승을 가져온다. 그리고 나머지 2경기에서도 각각 6:7, 1:9라는 스코어로 SK에 승리하며 타어강 시즌 2가 나온 직후 SK와의 3연전을 모두 쓸어담았다.

그 뒤로 8월 초만해도 무난하게 1위를 지키며 타어강의 저주를 깨는가 했는데 8월 18일부터 이해할 수 없는 감독의 작전, 완전히 망가진 선발진과 압도적 물빠따를 자랑하며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8월 22일까지 4연패로 추락한데다 팀타율이 0.219밖에 되지 않는 상황이다. 8월 23일 롯데에게 7대5로 깨지며 5연패의 늪에 빠지고 다음날 한화와의 경기는 우천 순연되었지만 잠실에서 2위 두산이 넥센에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승차가 3게임으로 좁혀졌다.

8월 25일, 우천 취소 후에 한화 이글스에 패배하고 6연패를 기록했으며, 2위 두산 베어스는 넥센 히어로즈에 승리를 거두면서 1, 2위간 승차가 2게임으로 좁혀졌다. 전반기에는 승률 7할에 육박하던 강력한 팀이었던 KIA는 이 기사가 올라온 이후 승률이 5할 이하로 떨어졌다. KIA는 후반기 어느 정도로 부진했나… 선발 '7승'이라니

8월 27일, NC 다이노스에 5대4로 역전패를 당하고 2위 두산 베어스는 LG 트윈스에 무승부를 거두면서 1, 2위간 승차가 1.5게임까지 좁혀졌었으나 그 뒤에 삼성과의 2연전을 스윕하고 2위 두산과의 2연전도 스윕, 4연승을 하면서 승차를 4.5게임으로 벌렸다. 흔들리던 타선과 불펜이 안정감을 찾아가면서 팬들은 한숨을 돌리고 있다.

9월 3일. 침체되었던 타선이 다시 불붙으며 2일경기까지 5연승을 달리던 KIA는 헥터를 선발로 세워 9회초 K공격까지 7대1로 넥센을 크게 앞서고 있었으며 지난 6연패의 아픔을 씻어내는 6연승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명장놀이에 푹 빠진 김기태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교체와 패전조에 가까운 불펜투수 투입으로 9회말 넥센에게 대거 7실점하며 7대8로 역전패를 당하며 KIA 팬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

9월 13일, KIA 타이거즈는 SK 와이번스를 상대로 7회 초까지 10-5로 이겨 나가던 경기를 8회 초 시작할 시점에 10-15로 역전당하며 그 스코어 그대로 역전패하고 만다. 9월 22일, 9월 내내 불안한 경기력을 보이던 KIA 타이거즈는 점차 승차우위를 까먹더니 결국 이 날 두산 베어스에게 6-0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하여 2위 두산에게 0.5게임차까지 추격을 허용하게 되었다. 9월 24일, KIA는 한화에게 9회 4실점하면서 5-0으로 패배하고 곧이어 두산은 kt에게 6-4로 승리하면서 두 팀의 승차도, 승률차도 사라져서 공동 1위가 되었다. 참고로 타어강 기사가 올라온 날 이후로 단독 1위 자리를 잃은 이 날까지 KIA 타이거즈의 승패와 승률 기록을 세어보면 22승 1무 24패로 승률 0.478을 기록하고 있다.

10월 1일, 1위 KIA가 10위 kt에게 20-2로 패배하고 두산은 한화에게 6-4로 승리하여, 두 팀의 승차는 0.5 게임차로 줄어들었다. 결국 페넌트레이스 1위를 자력으로 확정지으려면 KIA는 남은 2경기를 전승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그보다는 1위 확정이 아닌 상황에서 1위팀이 꼴찌팀을 상대로 20-2라는 기록적인 점수차로 치욕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점에서 KIA 팬들은 더더욱 절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10월 3일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에서 두산이 SK에게 패배하면서 KIA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지었다. kt를 상대로도 10-2로 대승을 거두며 기분 좋게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하였다. 이것으로 KIA 타이거즈의 2017년은 타어강의 저주라는 관문을 무사히 통과한 성공적인 해가 되었다. 마침내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을 상대로 4승 1패로 승리를 거두어 KIA 타이거즈는 2017시즌 우승을 차지하며, 진짜로 강팀이 되는데 성공한다. 이 때는 진짜 다른 의미로 타어강이 되었다.

7. 인용 및 패러디

종목을 불문하고 올해는 다르다와 비슷하게 '팀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라는 식으로 패러디되고 있다. 간혹 특정 팀의 패배를 간절히 바랄 때 역 부두술 또는 기도메타 차원에서 사용하는 것이 있다.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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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에서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을 앞두고 정한 구호. 후반 22분까지 2-0으로 가볍게 앞서가면서 사실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9. 관련 문서


[1] 네이버에서도 흑역사라고 생각했는지 현재는 네이버에서 볼 수 없다. [2] 다만 비참하게 끝났다고 하기에는 남아있던 계약 기간 연봉은 다 받았다. 그것도 무려 4년치를. [3] 주로 삼성의 승리 공식을 만들었다고 평가한 김성근의 인터뷰 내용도 같이 언급한다. [4] 사실 이때의 순위 다툼도 롯데가 2위 다툼을 하다가 9월에 1승 1무 12패로 대몰락하면서 끌어내려온 거지, KIA가 선전해서 치고 올라간 것은 아니었다는 게 함정이다. 심지어 롯데의 당시 상황을 보면 양승호 감독이 검찰수사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제대로 된 팀 운영이 어렵기도 했다. [5] 다만 이 당시 KIA의 선발 투수들은 양현종을 제외하고는 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6] 여담으로 이날 양현종을 상대로 멀티 홈런을 기록한 김상수는 김거포라는 별명을 얻었다. [7] 이후 최대 낙폭의 DTD 경험팀 타이틀은 2017년의 kt 위즈가 가져가게 됐는데 144경기에 최대 승패마진 차이가 50으로, 126경기에 승패마진 차이가 31이었던 2013년의 KIA 타이거즈를 뛰어넘은 것. [8] 실제 결과는 비겼다. [9] 이후 2019년과 2022년에도 KIA는 개막전을 LG와의 홈경기로 치르게 되었다. [10] 참고로 이 기자는 선동열 안치홍에게 임의탈퇴 공시라는 말까지 꺼냈다는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선동열의 재계약 후 사퇴에 공헌하기도 했다. [11] 결승전은 편파판정 논란이 있는 경기였다 [12] 그리고 설레발 문서에도 있지만, 한참 밀리다가 겨우 한번 숨을 고른 상황에서 2번의 승리를 가정하고 7차전 선발 류현진의 MVP 드립까지 치는 엄청난 기사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13] 그리고 그렇게 LG는 포스트시즌에서 넥센과 혈투를 벌이고 올라온 두산에게 멸망했다. 재밌는 점은 이때 박동희는 플레이오프 승자로 두산을 예측해 두산 팬들이 불안에 떨었으며, 이 기사가 나오면서 대부분 팬들이 류제국만 지고 LG가 올라간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14] 참고로 ' 크리스 데이비스는 어떻게 홈런왕이 되었나' 칼럼을 올린 적이 있는데 데이비스는 2014년 커리어 로우 및 약물 적발로 망하고 말았다. [15] 댓글로 격렬한 항의를 받았기 때문인지 현재는 제목이 수정되었다. 원본. [16] 이 시리즈의 좀 더 자세한 동기를 설명하자면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LCK 1시드인 담원 게이밍이 한국뿐만아니라 전세계 모든 롤 팬들과 선수, 전문가들에게 월드 챔피언십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팬들의 반응은 담원이 LCK가 2년간 LPL에 내줬던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을 탈환할 수 있을지 기대하면서도 너무 모든 사람들이 호평을 하다 보니 혹시 탈락할 경우 후유증이 클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반응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깔끔한 분석으로 유명한 유튜버 프로관전러 P.S가 해외의 강팀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이 팀들에게 부두술을 걸기 위한 시리즈를 기획한 것이다. 각 영상 제목은 1편 TOP Esports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2편 JD Gaming은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3편 G2 Esports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17] 영상 제목은 " 담원은 어떻게 우승팀이 되었나". 결과적으로 담원이 월드 챔피언십 결승까지 걸어온 길을 모두 영상에 담을 수 있기에 더욱 꽉 찬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18] 다만 롤드컵 종료 이후 너구리와 베릴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부두술이 다른 쪽으로 터진거 아니냐는 걱정도 있었다. 다행히도 베릴은 팀에 남았고 너구리는 중국으로 떠났지만 그의 빈 자리는 칸이 생각 이상으로 잘 채워주는 중이다. [19] 심지어 당일 경기 해설위원이었던 노페는 위의 유칼의 아어강 발언 당시 같은 팀에서 감독 대행으로 활동했었다. [20] 2008년에 새로 입단한 선수는 총 8명으로, 이중 7명이 지배 선수로 지명받았는데 대졸 선수들은 1985년생, 고졸 선수들은 1989년생임에도 불구하고(한 선수는 대학 중퇴자라 1986년생이었다.) 2022년 기준 전멸했다. 그나마 2021년까지 살아남았던 고졸 1라운더 타카하마 타쿠야가 제일 성공했는데 그 타카하마는 14년간 212경기에 나와 통산 84안타 3홈런에 타율 .220 OPS .555를 기록했다. [21] 하지만 이 경우는 샴페인을 조금 일찍 터뜨린 것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오히려 2008년 열심히 삽을 푸던 이승엽 까지 뜬금없이 크레이지 모드가 되면서 13경기 차이를 따라잡은 요미우리가 미친 것이다. [22] 참고로 이는 타어강 이전까지 장기적으로는 최악의 DTD였다. 그러나 바로 타어강이 있던 2013년에 비밀번호 자체를 끊어 버렸다. 게다가 2011 LG의 승패마진 차는 25에 불과한데 비해(+10 ➡️ -15 ➡️ -13) 2013 기아의 승패마진 차는 30에 달한다.(+9 ➡️ - 21) 즉 승패마진이 더 떨어진 셈이다. 이는 2017시즌 kt가 경신하게 된다.(+6 ➡️ -44) [23] 참고로 이는 타어강 이전까지 KBO 사상 역대급 DTD로 불렸다. [24] 참고로 이는 타어강 이전까지 단기적으로는 최악의 DTD 달성이었다. 그래도 롯데는 가을야구를 하긴 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DTD가 나옴에 따라 이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25] 오키나와 캠프 당시 요코하마와 가진 연습경기에서 17대 6으로 대승했던 상황을 기사로 올린 것이다. 그야말로 넥센이 가패모드로 나와서 일본 기자들이 "메이저 리그팀이 온 줄 알았다"고 경악했을 정도였다고. 경기 후 당시 요코하마 감독이었던 나카하타 기요시는 "경기내내 우리 투수들이 얻어맞은 것 외엔 기억나는게 없다"고 현지 기자들에게 말할 만큼 넥센이 일방적으로 요코하마를 '갖고 논' 경기였다. 특히 요코하마는 이 경기 사흘 전 넥센과 대결했다가 5:8로 진 적이 있어서 이 경기에 특별히 신경을 썼었다. 5:8로 졌던 경기에서는 2군 선수들을 주전으로 내보냈었기에 이에 대한 지적을 받았던 기요시 감독이 그야말로 작정하고 1군 정예를 출정시켰고 그 중에는 뉴욕 메츠등에서 활약했다 일본무대로 복귀한 다카하시 히사노리도 있었다. 더구나 다카하시에게는 일본 복귀 후 첫 실전 무대였으나 무려 4안타 4실점으로 망했다. [26] 베트남 U-19 팀의 홈 경기에는 4만명 이상의 관중이 운집한다고 하며, 이들을 소재로 한 만화책도 있다고 한다. 한국과의 경기 당일에는 거리 응원전을 나서는 팬들도 있었다고 한다. [27] 사실 유니폼이 나오기 전에 이미 4연패 중이었다. [28] 아이러니한건, 이 문서의 피해자였던 KIA 타이거즈가 SK의 9연패 이후로 가을야구에 성공하면서 오히려 수혜자가 되었다. [29] LG의 경우 설레발의 빈도가 다른 팀들보다 잦고 그때마다 결말이 배드엔딩이었음에도 매번 언론이나 팬들이나 계속 설레발을 치고 다니다 보니 다른 팀 팬들의 반감도 크고 조롱도 많이 당한다.문제는 그럼에도 설레발이 반복된다는 것. [30] 2017년에도 SK와 LG가 가을야구 싸움을 하고 SK가 가장 적은 잔여경기를 가지게 되었다는 점 까진 비슷하지만, 이번엔 LG가 작년과는 달리 오히려 순위 하락을 겪고 하위권 팀들에게 고춧가루를 제대로 얻어맞은데다 많은 잔여경기에서 연패를 하면서 가을야구 싸움을 망쳤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 되었다. [31] 특히 이 3연전 스윕은 한화 이글스가 LG 상대로 2913일만에 거둔 스윕승이었다. [32] 그나마 1승도 15패 이후에 차우찬의 완투로 겨우 거둔거였고 차우찬은 이날 이후 뼛조각 수술을 받게 되면서 그를 굴린 류중일은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었다. [33] 사실 타어강 이전부터 LG는 비밀번호를 찍을 당시 비시즌 혹은 시즌 초반에 좋은 성적을 거둘 때 설레발 기사들이 나오다가 얼마 안 되거나 한참 뒤에 폭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엘레발이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타어강의 원조격일 수도 있지만 2013년 당시 타어강의 임팩트가 강한 것도 있었고 LG는 그 해에 비밀번호를 끊게 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는데 2017년 어우냄 기사로 다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LG의 대명사로 자리잡게 된 DTD 역시 원래는 LG가 아닌 롯데를 상대로 친 드립이란 것을 생각하면 트어강으로 바뀔 수 있다는게 진짜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34] 2018년 4월 6일까지 단독 1위였고 2018년 5월 15일에 10등에 등극했다가 하루 뒤에 공동 9등에 오르지만 2018년 5월 20일에 10등으로 다시 추락했다. 그 뒤에는 순위도 오르지 않았고 결국 2018년 6월 3일 이 기사 올라온지 두 달도 안 되어서 김경문 감독이 경질되었다. 유영준 대행 체제에서도 한동안 꼴찌에 머무르다 kt를 제치고 9위에 오른 뒤 막판 반등을 노려 봤으나 힘이 떨어지며 다시 꼴찌로 내려앉고 결국 창단 첫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35] 그런데 종전 기록도 SK가 두 번이나 보유했었는데 2009년 기아, 2011년 삼성한테 7경기 차를 역전당했었다. [36] 이는 엉뚱하게도 예능인 최강야구에도 영향을 주는데 경기 끝나고 파이팅 하는 상황에서 기세라는 단어가 나오자 선수들이 다 장시원 PD 눈치를 보며 그 단어 쓰지 말자고 하는 일이 있었다. 이런 이유는 장시원 PD가 롯데팬이었기 때문... [37] 24년부터 대상이 되고있다. [38] 대표적으로는 23년엔 징어강과 웨어강, 24년엔 비어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