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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On: The Story of Xbox |
1. 개요2. 콘솔 기기3. 관련 서비스
3.1.
Games for Windows3.2.
Xbox Live3.3.
Xbox Play Anywhere3.4.
Xbox Game Pass3.5.
Xbox Cloud Gaming
4. 산하 스튜디오[clearfix]
1. 개요
엑스박스 시리즈가 한국에서 걸어온 길을 정리한 글XBOX 공식 유튜브 계정에서 공개한 6부작의 엑스박스 시리즈 개발 비화 다큐멘터리
엑스박스의 역사에 대해 정리한 문서.
2. 콘솔 기기
2.1. Xbox
2.1.1. 탄생 비화
블룸버그- 엑스박스 20주년 특집 기사
초대 엑스박스 개발에 대한 비화는 딘 다카하시의 저서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전: X박스의 게임의 미래》와 다큐멘터리 Power On: The Story of Xbox에서 자세하게 알아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irectX를 통해 윈도우를 강력한 게임 플랫폼으로 만들어 거실용 종합 엔터테인먼트 허브 장치의 중추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세가가 드림캐스트를 제작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접촉했을 때에도 윈도우 CE와 DirectX 기반 개발 도구를 만들어 주기도 했으며[1], 빌 게이츠는 당시 소니 그룹의 회장이었던 이데이 노부유키와 만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밍 도구를 쓸 것을 권했으나 거절당하기도 했다. 또 1999년 3월 2일 SCE의 플레이스테이션 2 발표를 본 빌 게이츠는 플레이스테이션 2를 윈도우 운영체제로 PC 시장을 지배한 자신들을 노리는 거대한 위협이라고 판단했다.
때마침 드림웍스에서 쥬라기 공원 게임 '트레스페서'를 말아먹고 마이크로소프트로 자리를 옮긴 시무스 블래클리는 GDC에서 플레이스테이션 2의 데뷔를 목도하고, 플레이스테이션 2보다 훨씬 좋은 플랫폼을 만들 구상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엑스박스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이 소니가 주장했던 "플레이스테이션은 PC를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컴퓨터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할 것이다" 같은 발언들[2]을 듣고는, "감히 마이크로소프트 앞에서 그런 소릴 해?" 같은 느낌으로 어그로가 끌렸다. 그리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DirectX 팀이었던 오토 버크스를 리더로 케빈 바커스, 시무스 블래클리, 테드 헤이즈 등 엔지니어 4명이 Dell의 랩탑 컴퓨터를 분해하여 프로토타입 게임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이 팀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 게임 퍼블리싱 사업의 리더인 에드 프라이스에 접근하여 이 프로토타입 게임기를 시연했는데 그것이 DirectX-Box였다. 프라이스는 그때 이 팀을 지원해 주기로 결정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개발 도중 DirectX-Box라는 이름은 Xbox로 바뀌었는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케팅 팀은 이 이름을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게임기의 수많은 후보 이름들을 만들고 나열해 고객들을 통해 평가했으나, 결국 Xbox가 가장 많은 점수를 얻어 이름이 그대로 결정됐다. #
마이크로소프트는 거실용 종합 엔터테인먼트 허브 장치를 만들기 위해 이미 1997년에 웹TV를 4.25억 달러에 인수한 적이 있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서 어느 정도 입지가 있었던 윈도우 CE 팀도 이에 합류하여, 결국 웹TV/윈도우 CE 팀과 엑스박스 팀이 경쟁하게 됐다. 웹TV/윈도우 CE 팀의 리더는 3DO M2를 설계 생산한 경험이 있었고, 윈도우 CE 팀은 이미 드림캐스트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양 팀은 웹TV/윈도우 CE 팀의 전통적인 게임기 vs 엑스박스 팀의 윈도우 기반 게임기라는 주제로 격돌했다. 1999년 5월 5일 회의를 통해 결국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는 엑스박스 팀의 손을 들어주었고, 웹TV 팀은 엑스박스 팀의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윈도우 95의 TCP/IP를 설계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을 개발한 네트워크 프로그래머 출신이었던 기술자 J 앨러드에게 팀을 지휘하도록 엑스박스 팀에 합류시켰다. # 엑스박스 개발 프로젝트명이 정해졌는데, 프로젝트 미드웨이라 불렸으며 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뺏은 계기가 된 미드웨이 해전이 기원이다. #
애당초 처음의 목표였던 윈도우가 들어간 DirectX의 게임기 같은 PC를 보고 J 앨러드는 엑스박스 팀에 합류하기 전부터 $500의 윈도우 게임기는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능과 안정성, 게임 기능에 집중하기 위해 윈도우를 빼고 엑스박스 팀에서 자체적으로 운영체제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윈도우 9x 기반으로는 당시 개발 중이던 프로토타입의 CPU 점유율 15%, 하드디스크 용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등 성능 문제가 심각하여, 9x의 안정성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할 짓이 못되기도 하고. 이때 윈도우 NT 커널을 사용하여 개발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는데, 문제는 엑스박스 팀은 NT 커널에 접근할 권한이 없었고, 윈도우 팀에 요청하자니 윈도우를 그대로 사용하라고 할 것이 뻔해서 결국 엑스박스 팀이 밤중에 회사 서버에서 몰래 윈도우 2000의 커널을 훔쳐와서 운영체제 개발에 사용했다고 한다. # 시무스 블래클리 역시 처음부터 엑스박스에 윈도우를 넣을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기 개발을 위해 윈도우를 넣겠다고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에게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 이 때문에 엑스박스의 4인방 중 오토 버크스와 테드 헤이즈는 먼저 팀에서 떠났다.[3] 여기에 앨러드가 가세한 덕분에 Xbox를 철저하게 게임기로 디자인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빌 게이츠는 격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처음부터 쭉 엑스박스가 윈도우 기반이 될 거라는 식으로 얘기를 해왔기 때문이었다. 이후 정식으로 엑스박스 팀과 미팅을 가졌을 때도 역시 빌 게이츠는 길길이 날뛰며 폭언들을 내뱉었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너희들은 윈도우를 망치고 있고, 이는 그 동안 자신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왔던 모든 것들 중 가장 모욕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발머는 당시 막 CEO가 된 참이라 결정권이 있었지만 그 동안 투입된 시간과 예산으로 개발팀을 질책했다. 사전에 J 앨러드가 빌과 충분한 기술 미팅을 가졌고, 엑스박스 팀도 윈도우를 왜 탑재할 수 없는지에 대해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회의가 지속되는 동안 로비 바흐는 스티브 발머에게 '결론은 나지 않을 것 같으니 걱정되면 그만두시죠' 라고 말했다가 욕만 더 얻어먹었다고. 그러다가 그때까지 지켜보고만 있던 한 임원이 '소니는 어쩌죠?' 라고 질문했다. 그는 '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2로 거실을 차지하고 있고 걔네들은 그걸 컴퓨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소니를 어쩌죠?' 라고 이야기했고 이에 빌과 스티브가 '그러게, 소니는 어쩌지?' 하고 말한 뒤 빌 게이츠는 당신들 말대로 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바꾼다.[4] 스티브 발머는 우리는 당신들이 하자는 것을 승인하며 원하는 모든 것을 줄 것이며, 그 일 뒤에 서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엑스박스 개발에 대한 전권을 엑스박스 개발팀에게 일임했다. 회의 내내 격노한 임원진에게 질책을 듣다 전권을 일임받은 이 회의를 두고 에드 프라이스는 로비 바흐에게 내가 겪은 회의 중에 가장 이상한 회의라고 말했다. 에드 프라이스는 2000년 2월 14일에 하루 종일 진행된 이 마라톤 회의를 두고 발렌타인 데이 학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 #
IGN의 에디터와 엑스박스 전문 팟캐스트 "Unlocked"의 진행자, 라이언 맥케프리가 현재 엑스박스 수장인 필 스펜서, 엑스박스 360 당시 제작 수장이었던 피터 무어, 그리고 구 엑스박스 제작팀원이었던 시무스 블래클리의 인터뷰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참고로 저 인터뷰에서는 엑스박스의 로고가 형광빛의 초록색이 된 계기도 밝혀졌는데, 당시 미팅 때 로고 디자인을 담당한 사람이 끝내주는 사인펜 세트를 갖고 나타나자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사인펜 세트를 가져갔고, 결국 자신이 로고를 발표해야할 때는 초록색만이 남았는데, 그 자리에서 선보인 초록색 엑스박스 로고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사실.
엑스박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돈이 많아 넉넉하게 사업했다거나,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만으로도 이끌 수 있는 사업이다 같은 비아냥 섞인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엑스박스 팀은 사업 인가가 난 다음에도 스티브 발머에게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괴롭힘당하며 수익 모델을 만들어 나갔다. 당초에 엑스박스 팀은 서드파티에 로열티를 부여하고 싶지 않았으나, 발머는 계속 질문을 던져 사업 타당성과 함께 멍청이들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도맡았다. 밥 먹으려고 줄을 서있는데 몰래 뒤에서 접근해 '네가 우리 돈을 다 날려 버릴거야!' 라고 소리를 쳐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 줄도 모를 때도 있었다고. 물론 엑스박스 팀도 콘솔 사업의 수익 모델을 아에 모르지는 않았기 때문에, 로비 바흐는 스티브 발머에게 '이 일을 시작할 거라면, 6개월 후에 돌아와서 손해가 너무 크다고 말하지 말라'는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칩셋 선정을 할 때는 웹TV 팀이 이미 계약을 마친 자사 제조 칩의 사용을 주장했으나 자사 제조 칩의 저렴한 가격 같은 수많은 장점들을 뒤로 한 채 엑스박스 팀은 철저하게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하여 가격이 타사의 두 배는 비싼 엔비디아 칩을 선정했다. 기술 개발 파트너를 위해 세계 유수의 전자 기업들과 접촉했으나( 삼성전자 포함) 요구 조건도 무리하고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며 대부분 거절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를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를 모두 분해하여 나사 하나하나까지 세어가며 비용을 계산하고 생산 전략을 수립했고, 기계를 생산해줄 플렉스트로닉스(현 플렉스)에게 조언도 들었다.
엑스박스 팀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 덕에 2000년부터 1년 넘게 마이크로소프트 내부 별도의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개발이 가능할 수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출시된 지 엿새가 지난 2000년 3월 10일 게임 개발자 회의( GDC)에 참석한 빌 게이츠는 최초로 엑스박스 출시 선언 및 그 프로토타입을 공개했으며, 시연회도 가졌다.
게임기엔 게임이 중요하다는 것을 MS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력한 게임 회사들을 인수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다녔다. 대형 게임사만 해도 EA, 닌텐도[5], 스퀘어 등이 있었지만 전부 실패했으며 1998년 커맨드 앤 컨커 시리즈의 웨스트우드 스튜디오 인수를 시도했으나 EA와의 경쟁에 실패했다. 하지만 1999년에 멕커맨더를 만든 FASA 스튜디오를, 2000년 6월 19일에는 원래 애플이 먼저 인수하려고 했던 번지 소프트를 발빠르게 인수했고, 12월에는 윙커맨더 시리즈의 아버지인 크리스 로버츠가 만든 회사인 디지털 앤빌을, 2001년에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로 유명했던 앙상블 스튜디오를, 2002년 9월 24일에는 007 골든 아이로 유명했고 닌텐도의 주요 협력 게임사였던 레어를 액티비전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3.75억 달러에 인수했다. 그 외에도 세가의 비주얼 콘셉츠, 당시엔 아직 소니 산하가 아니었던 너티 독과도 접촉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심지어 IP 확보를 위해 해리 포터 시리즈의 게임화 권리를 사려고 했으나 그나마도 EA에게 졌다.
엑스박스 프로토타입 |
그해 드림캐스트 단종을 계획한 세가의 오오카와 이사오 회장이 빌 게이츠를 만나 엑스박스의 드림캐스트 호환을 논의한 얘기는 유명한 얘기다. 대신 게임기의 네트워크 연결을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빌 게이츠는 그걸 거절해 결국은 결렬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세가는 후술하겠지만 자사 게임들을 엑스박스에 독점으로 출시했으며, 테크모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연결을 주선해 데드 오어 얼라이브 3의 엑스박스 동시 발매 및 독점 출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01년 1월 라스베가스의 가전 박람회( CES)에서 빌 게이츠는 프로레슬러 더 락과 함께 엑스박스의 모습을 공개했다. 빌 게이츠는 2001년 E3도 참가해 엑스박스의 출시일, 가격을 공개했으며 동시 발매 독점작 헤일로: 전쟁의 서막과 데드 오어 얼라이브 3도 공개했고, 시연회도 가졌다.
2.1.2. 출시 이후
2001년 11월 15일 북미 시장에 출시 됐으며, 일본은 2002년 2월 22일, 유럽은 2002년 3월 14일에 출시했다. 한국에선 2002년 12월 23일 정식 출시되었다. 현재 국내에서는 옛날 엑박이라는 뜻에서 구엑박이라고 불린다.발매 초기부터 일본 시장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나 게임큐브의 경쟁에서는 밀려났다.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소프트 문제. 2001년부터 시작된 PS2의 무수히 쏟아지는 소프트와 강력한 독점작 라인업[6]을 엑스박스가 뚫어볼 여지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었다. 또한 일본 정서에 맞지도 않는 서양 게임을 일본인들이 사줄리도 만무했다.
초기의 자잘한 실패도 기세를 올리지 못하는 데 한몫했다. 구엑박 특유의 투박한 디자인과 커다란 크기 등으로 ' 양키 게임기'로 인식되어[7] 본체를 흉기로 쓸 수 있다느니[8][9], 또한 게임을 하다가 디스크가 긁히는 일이 자주 일어났는데, 이때 일본 유저들의 항의를 무시하고 '게임하는 데는 지장없으니까 그냥 쓰셈'이라 하는 바람에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버린 것도 한몫했다.[10]
엑스박스 개발 중에 만약에 진심으로 일본 게임 시장을 제대로 공략을 위해서였다면 일본게임 시장의 상황을 잘 파악해 회사들을 교섭해 PS2에 맞설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었고 일본의 가정집 형편에 제대로 맞게 디자인 의뢰했거나 품질이 매우 높은 DVD롬을 제대로 선택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막 드림캐스트의 사업을 접은 세가가 '엑스박스의 코드는 세가의 것과 흡사하다'며 크레이지 택시, 젯 셋 라디오 퓨처, 팬저 드래군 오르타, 쉔무 2,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3 등을 의욕적으로 개발했으나, 결국 이 역시 별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11] 그 외에는 캡콤[12], 코나미가 각각 환마 귀무자와 메탈기어 솔리드 2로 간을 봤지만 정말 간만 본 수준이었다. 코에이가 진삼국무쌍 2, 진삼국무쌍 3, 진삼국무쌍 4, 전국무쌍을 이식하고 붉은 바다라는 작품을 독점으로 공급하고, 테크모가 DOA를 독점 공급하고 령 제로를 이식하고, 남코가 브레이크다운이라는 작품을 독점 공급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플랫폼 세일을 이끌기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그나마 나온 일본 제작사의 게임도 대부분 멀티 공급이라 독점작의 희소가치가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13]
결국 일본에서의 총 판매량은 약 50만 대. 데드 오어 얼라이브 3 등을 제외하면 소프트 판매도 부진했다.[14] 결국 이 정서는 그대로 엑스박스 360에도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15] 괜히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다만 아시아 지역(특히 일본)과는 달리 북미에서는 타 기종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월등한 스펙과 헤일로: 전쟁의 서막이나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프로젝트 고담 레이싱 등 성인층을 타깃으로 한 명작 게임들을 앞세워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플레이스테이션 2가 워낙 대히트를 해서 상대적으로 실패한 것처럼 보였을 뿐, 엑스박스에서 월드 와이드 밀리언 셀러를 넘긴 타이틀만 20개나 된다. # 헤일로 2는 무려 월드 와이드 846만 장이나 팔려서 엑스박스의 대표 게임이자 엑스박스 최다 판매량 게임 1위에 등극하게 되었고[16], 엑스박스 독점 이식으로 출시된 엘더스크롤 3: 모로윈드는 출시 당시에는 베데스다에서 별 기대를 하지 않은 것과 다르게 136만 장이나 팔리는 대히트를 쳐 크게 고무되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엑스박스의 발매 게임 리스트를 보면 FPS 게임이 많은 게임기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스포츠 게임, 레이싱 게임, RPG, 대전 격투 게임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이 발매되었다.
기기의 성능이 압도적이었던 만큼 해상도나 프레임 면에서 압도적으로 좋은 그래픽을 보여주었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타깃으로 했다는 컨셉에 맞게 CPU와 GPU의 기본 스펙이 플레이스테이션 2와는 물론이고 게임큐브와 비교해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았으며, 하드디스크와 이더넷 네트워크 기능이 기본적으로 내장돼 있었다.[17] XBOX OS에 개발자들에게 친숙한 Windows API 일부 기능들이 내장돼 있고, DirectX를 활용한 개발이 가능해 개발자들이 크게 환호하기도 했다. DirectX 기반 개발 환경과 PC 게임 시장의 불법 복제 대두 등... 갈고 닦은 기술력을 가진 PC 위주 서양 개발사들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콘솔 시장에 대거 끌어들이면서 다음 게임기 세대부터 콘솔 게임 시장에서 서양 게임들이 크게 앞서 나가게 되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 전까지 1등 콘솔의 전유물로 당연시 여겨졌던 독점 서드파티라는 개념을 거의 사장시켰다는 의의도 있다. 일부 일본 게임을 제외하면 서양권 게임을 포함한 대부분의 게임이 멀티 플랫폼으로 나오는 현재의 추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참전으로 인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기기 자체의 성능, 내구성과 안전성, 높은 신뢰성을 비롯한 여타 흠잡기 힘든 기기 특성 등으로 기기의 완성도에 비해 크게 뜨지 못한 아쉬운 기기라는 평가도 많다. 사실 동시대에 있어선 비교 불가할 정도의 최고의 스펙이었다. 섬세한 그래픽, 최초로 내장된 하드디스크로 별도의 이동식 메모리 장치가 필요 없었다는 점, 쉬운 게임 개발 환경으로 게임 개발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정작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는 비운의 콘솔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제대로 지원을 못했던 온라인 기능을 엑스박스 라이브라는 이름으로 거의 완벽하게 지원한 점 등을 생각해서, 패배의 원인이 단순한 게임 소프트의 부재보다는 선빵을 날리지 못한 데에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개발 당시에는 하드 디스크를 집어 넣느냐 마느냐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었다. 단가를 올리고 디자인을 크게 가면서 하드 디스크를 넣어야 하는가, 아니면 과감하게 포기하느냐. 브로드밴드 지원에 대해서도 애시당초 세가의 제안을 걷어찰 정도로 빌 게이츠는 회의적이었다.[18] 하지만 블랙클리는 이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였고 추가 콘텐츠나 온라인 멀티플레이 등을 지원하기 위하여 하드 디스크와 랜 어댑터를 내장하는 신의 한 수를 둔다. 이런 노력은 헛되지 않아 엑스박스 라이브 구독자는 5년 사이 800만 명으로 늘어나 엑스박스가 멀티플레이어 콘솔의 선두를 잡게 해 주었다.
후속기기인 엑스박스 360은 이런 원인들을 점검해 다양한 서드파티의 참여 유도와 선빵으로 플레이스테이션 3에 앞서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 역시 새끈해졌다.
2.1.3. 관련 문서
2.2. Xbox 360
2.2.1. 개발
엑스박스 360의 개발은 엑스박스를 출시했던 해의 이듬해인 2002년 초부터 시작됐다. 웹TV 팀이 얼티밋 TV를 출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장성이 없다 판단한 마이크로소프트는 2002년 1월 웹TV 팀을 해체하고, 인원의 1/3을 해고했다. 그 나머지 2/3의 인원을 엑스박스 팀에 배치해 개발을 시작했다. J 앨러드를 중심으로 전 웹TV 팀 엔지니어들이었던 니콜라스 베이커, 마이클 애브래쉬, 제프리 앤드류와 그레고리 윌리엄스는 차세대 게임기를 위한 칩 설계를, 토드 홀름달과 그레고리 깁슨은 하드웨어 설계를 했다. 개발 코드명은 처음엔 트리니티였으나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의 다른 프로젝트에서 그 이름을 먼저 쓰고 있었기 때문에 곧 제논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엑스박스 시절 납품 가격 문제로 NVIDIA에게 거하게 데인 마이크로소프트는 2002년 10월부터 공급처를 ATI Technologies로 대신해 GPU 칩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고, CPU 칩 디자인은 인텔이 디자인 커스터마이징에 관심이 없는 이유로 인하여 IBM으로 결정됐다. 당시 IBM은 SCE와 CELL-Broadband Engine의 개발 계약을 맺었을 때, SCE의 실수로 IBM이 CPU를 수정해 타사에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조항이 있던 것을 역이용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이 기술을 제공했다. 그러나 개발이 진척됨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에게 많은 수정을 요구하면서 CELL-Broadband Engine과 많이 달라지게 됐고, 오히려 PowerPC 970 프로세서와 더욱 유사해졌다. 이 덕에 경쟁 게임기였던 플레이스테이션 3의 CPU인 CELL-Broadband Engine이 생소한 구조로 인해 완성도 높은 게임이 등장할 때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던 반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PowerPC 970이 들어간 파워맥 G5를 초기 개발킷으로 제공해[19] 일찍부터 게임 개발자들이 이에 익숙해져서 완성도 높은 게임이 등장할 수 있었다. 다만 PowerPC 970과 다른 점은 멀티코어 프로세서였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개발자들에게 멀티스레드 프로그래밍을 익힐 것을 주문했다. 또한 CPU 설계에 엑스박스의 하위호환 에뮬레이션을 고려해 달라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요구도 반영됐다.
엑스박스가 비용 측면에서 비효율적인 설계를 하여 막대한 손실을 입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처럼 훗날 칩 하나로 통합해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칩의 특허권을 소유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결국 ATI의 Xenos 칩의 특허권을 소유하는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해, 이 덕에 훗날 XBOX 360 S부터 IBM으로 생산 공정을 이전할 수 있게 됐다. 또한 하드디스크가 있는 모델의 출시가를 엑스박스 시절의 $299에서 $399로 좀 더 여유있게 설정했다. 그리고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투박한 디자인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아스트로 스튜디오( Astro Studios)와 일본의 디자인 기업이었던 허즈 실험 디자인 연구소( Hers Experimental Design Laboratory)의 도움을 받았다.
스티브 발머는 2006년에 엑스박스의 후속작이 출시될 것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로비 바흐 엔터테인먼트 & 디바이스 사장은 CELL-Broadband Engine의 개발 진척도를 보면서 플레이스테이션 3가 2005년에 출시될 것이라 예측했고, 그와 동시 내지는 더 일찍 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IBM은 2004년 9월 결국 CPU 설계를 마쳤다. 하지만, GPU의 경우 ATI는 IBM에 비하면 개발 인원이 절반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2004년 11월이 돼서야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었고, 2005년 10월이나 되어야 설계를 마칠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스박스 360의 300만대 생산 후 북미, 일본, 유럽에 동시 발매가 목표였으나 스케쥴이 너무 늦어져 결국 150만대를 생산해 북미 먼저 공급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또한 이 빡빡한 스케쥴 때문에 후술할 레드링 문제가 발생할 빌미를 주고 만다.
빌 게이츠는 여전히 엑스박스를 윈도우가 탑재된 미디어 센터 PC 기반으로 만들기를 원했고 그를 위한 별도의 연구팀을 구성했지만, 결국 현실화되진 않았다. 엑스박스 360은 J 앨러드가 엑스박스 설계에 참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게임기 본연의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엑스박스 360 역시 윈도우를 탑재하지 않았고, 자체적으로 운영 체제를 설계해 탑재했다.
후속작에 2, 3 같은 일반적인 넘버링을 붙인 플레이스테이션과는 달리, 순차상 두 번째 넘버링인 2을 이용한 '엑스박스 2'가 아니라 '엑스박스 360'이란 다소 뜬금없는 이름이 된 이유는 차기 엑스박스 기종에 2라는 넘버링을 붙이면 플레이스테이션 3에 비해 좀 더 뒤쳐보인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랜딩팀에서는 360도 전 방향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의미하기 위해 '엑스박스 360'이라는 이름을 붙였다.[20][21] 엑스박스 360에 대한 FAQ 모음(영어) 이 때문에 한때 네티즌들은 엑스박스 360의 후속 기종의 이름을 '엑스박스 720'으로 농담 삼아 예상하곤 했다. 하지만 2013년 5월 22일 2시에 발표된 차세대기 이름은 엑스박스 원이 되었다. 참고로 엑스박스 원은 엑스박스 올인원을 의미해 이름 지어진 것.
2.2.2. 출시 이후
초기에 플레이스테이션 3와의 경쟁에서 앞서면서 차세대 콘솔의 승자가 되는 듯 하였으나[22] 결국 Wii에게 밀리면서 1위는 넘겨주게 되었고, 끝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 3의 독점작 공세로 인해 근소한 차이로 3위로 밀려났다. 이것은 서드 파티 대부분이 플레이스테이션 3 또는 Windows PC와 멀티라는 게 약간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웬만한 게임은 PC로 통하는 국내 시장에서는 다소 치명적이다. 다만 존 카맥도 욕하는 플레이스테이션 3의 난해한 개발 환경 덕에 그래픽이나 해상도, 프레임 등은 XBOX 360 버전이 좋았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2009년 2월경에는 한국 상륙 3주년을 맞아 성대한 행사를 하였다. 그와 동시에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가격 동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설명하여 많은 유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일본에서는 '죽음의 레드링(RROD: Red Ring of Death)' 등으로 대표되는 기기 결함이나 HD DVD의 패배로 인해 100만 대를 약간 넘는 저조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23][24] 그래도 50만 대 판 구 엑스박스에 비하면 선전하는 것일지도? 이만해도 한국 판매량에 비하면 넘사벽이기도 하다. 2009년 말부터는 게임샵에서 XBOX 360 본체의 중고를 더 이상 매입하지 않는 곳이 늘어나기 시작. 공식적인 이유는 개인정보 삭제가 안 돼서라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레드링과 커스텀 펌웨어 때문에 피를 보는 경우가 많아서라 생각하고 있다. 다만 신형 출시 이후 죽음의 레드링 사태는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측은 일본에서의 엑스박스 사업을 접을 계획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사실상 방치 상태다. 엑스박스 초창기에는 온갖 TV 광고 러시로 관심을 끌어보려 노력했으나, 어느샌가 TV 광고는커녕 전혀 홍보를 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여담으로 일본에서 얼마나 안 팔리냐 하면 엑스박스 360이 7년간 팔린 판매량을 망유라고 조롱받는 중인 Wii U가 1년 만에 돌파해 버렸다. 엑스박스 일본 시장은 없다고 봐도 무방. 그래도 엑스박스 360은 일본 게임 타이틀을 가장 많이 출시해 일본에서 그나마 가장 많이 팔렸다. 구 엑스박스나 지금의 엑스박스 원이 얼마나 일본 게임 타이틀이 없는지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유럽에서도 Wii에 밀리는 추세이지만, 일본처럼 4~5배의 커다란 격차는 아니고 그냥 적당히 밀리는 추세이다. 미국에서는 꽤 오랫동안 1등이었으나 2008년 중순 Wii에게 1등을 빼앗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플레이스테이션 3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팔렸다. 2009년 와서는 SCE의 슬림 플레이스테이션 3의 등장과 동시에 파격적인 가격 인하로 인해 판매대수 차가 줄어들었으나 이미 보급 대수가 700만 대 가까이 차이가 났다.
2009년 엑스박스 쪽 판매 추이가 소강 상태에 든 가운데 플레이스테이션 3 쪽에서 언차티드 2 등의 대작이 출시되어 기어이 분기별 판매량이 역전됐는데, 북미 쪽에서는 대략 5만 대 정도 앞섰다. 이 추세로 누적 판매량에서 역전하려면 140개월이 필요하다. 즉, 대륙별로 나눠볼 때 엑스박스 360 이 플레이스테이션 3을 누른 곳은 결국 북미 시장 한 곳이 됐다.
플레이스테이션 3 진영은 갓 오브 워, 언차티드, 인퍼머스, 킬존, 레지스탕스, 그란투리스모 등의 많은 독점 게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려고 하지만, 이게 생각만큼 여의치 않은 것이 실질적으로 기종을 이끌어주는 게임들은 저 중에서 3~4개[25] 정도밖에 안 된다. 이에 반해 독점 타이틀 대다수를 쳐낸 마이크로소프트는 가장 실한 프랜차이즈 4개 헤일로, 기어즈 오브 워, 페이블, 포르자 모터스포츠를 집중적으로 키워서 밀어주는 상황. 게임 하나 하나의 파급력이 엄청나다. 헤일로와 기어즈 오브 워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때문에 빛을 좀 잃긴 했어도 여전히 플스의 어떠한 프랜차이즈들보다도 잘 나가고 있으며, 콜 오브 듀티 시리즈도 판매량의 태반이 엑스박스판이라 특별히 문제될 건 없다. 페이블은 RPG라고 쳐주기가 좀 애매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가장 잘 나가는 RPG이고,
또한 한 기기당 소프트웨어 장착률이 평균 8개가 넘어가 Wii나 플레이스테이션 3에 비해 넘사벽을 자랑한다. 핵심적으로 키넥트의 기네스적인 대성공 이후로는 한때 총질 박스라는 별명이 지어졌던게 옛 말이 되어버렸고 플레이스테이션 3과의 격차도 늘어났다. 다만, 엑스박스 플랫폼 자체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뒤를 봐주고 있는 만큼 PC 개발환경과 비슷하여 PC로의 포팅도 쉽고, 역시 자사 제품인 윈도우즈 플랫폼으로 포팅하는 것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딱히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포르자 모터스포츠
2010년 크리스마스 시즌을 기점으로 전세계 5천만 대를 돌파했다. 이건 닌텐도의 패밀리컴퓨터, 슈퍼 패미컴, Wii와 SIE의 플레이스테이션, 플레이스테이션 2에 이어서 거치형 게임기로서는 6번째로 누적 판매량 5천만 대를 돌파한 것이다.
2012년 1월 9일, 마이크로소프트는 CES기조연설을 앞두고 XBOX360 판매량이 전 세계적으로 6,600만 대 판매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키넥트 센서는 1,800만 대 판매를 기록하였다. # XBOX 360 판매량은 2012년 1월 기준 6,580만대, 플레이스테이션 3은 2012년 3월 기준 6,390 만대로 거의 비등비등한 상황이다.
2012년 9월 기준으로 누계 판매량 7천만 대를 돌파했다. 2014년 3월 31일 기준으로 8,370만 대 팔렸다.
차세대기 발매 이후에도 예상 외로 선방하는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다. 2014년 블랙 프라이데이 때는 플레이스테이션 3보다는 물론이고 Wii U보다도 더 많은 판매량을 내기도 했다. 참고
2016년 4월 20일(현지 시간)부로 생산을 중단했다. 2016년 6월 30일까지 총 8,400만 대 판매가 됐다. 이 때문에 거의 모든 종류의 엑스박스 360 플랫폼 게임을 엑스박스 원에서 지원해주기를 원하는 유저들도 많았고, 결국 하위 호환을 정식으로 지원되게 되었다. 점차 지원 타이틀도 늘어나고 있다. 어느 정도 판매량과 인기가 있는 게임들은 전부 하위 호환이 가능하다 보아도 좋다.
2013~14년 이후부터는 쉬운 게임 개발 난이도와 차세대 게임기와 좀 더 비슷한 구조로 인해 더 크루, 라이즈 오브 더 툼 레이더, 타이탄폴 등 PS3로는 나오지 않는 게임들이 여럿 출시되었다.
2.3. Xbox One
2.3.1. 발표 전 루머
발매 전에는 코드명인 듀랑고(Durango)로 알려졌고, 엑스박스 720, 엑스박스 인피니트 등의 이름으로 발매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현지시각 2013년 5월 발표회에서 '엑스박스 원'으로 확정되었다. 사실 차기 엑스박스에 관한 성능정보는 2013년 1월부터 VGLEAKS라는 정보유출 전문 사이트에서 꾸준히 공개해왔으나 거의 어느 누구도 이들을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정보를 믿을만한 근거도 없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유출시킨 정보들이 뜬소문이 아니라 죄다 사실이었던 것이다.
차세대 엑스박스에 듀얼 APU[26]가 들어가고 오히려 플레이스테이션 4의 8GB GDDR5 메모리가 차세대 엑스박스에 맞춰 상향조정된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으나, 허위로 밝혀졌다.( #1, #2)
2.3.2. 발매 전 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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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에 처음 공개된 TV 광고[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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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각 11월 7일을 기점으로 여러 게임이나 서비스 등을 비롯한 정보들이 공개되기 시작했다.
2.3.3. 첫 공개
발표회 풀 영상.
발표회에서 게임업계 관계자들을 대거 불러놓고는 하라는 게임 얘기는 안 하고 홈 미디어 기기로서의 기능만 줄줄이 늘어놓은 탓에[29] 발표 직후 게이머와 언론 모두에게 악평을 들었다. 물론 게임 얘기를 하긴 했지만 실플레이 영상은 단 한 건도 공개하지 않았다. 트레일러랍시고 공개한 것들마저 콜 오브 듀티: 고스트를 제외하면 죄다 CG 영상이었다.( #)[30]
이번 엑스박스 원의 발표회에 한 유명 유튜버는 트위터를 통해 "Why do i need a Xbox to watch Tv? I use my Tv to watch Tv.(내가 왜 TV 보는데 엑스박스가 필요하지? 나는 TV 볼 땐 TV를 쓰는데.)"라고 비꼬았다.
그리고 마소의 여러 좋지 않은 정책들과 온갖 루머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게이머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몇가지를 나열하자면,
1.엑스박스 원 발매 지역 외 인증 불허가로 인해 IP가 발매 지역이 아니면 계정이 관계 없이 플레이 불가. 2. 중고 소프트 구입 후 그것을 돌릴 시 추가 요금 과금.[31] 3. 24시간마다 한 번씩 온라인 인증을 요구. 4. 셀프 퍼블리싱 불가능.[32] 5.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디오는 플랫폼 수익 배분 이상의 돈을 가져감. 6. 마이크로소프트 스튜디오는 게임 패치 시 막대한 비용을 요구함. 7. 키넥트가 없으면 기기가 작동을 하지 않으며, 키넥트는 언제나 작동함.[33] |
한국에서는 사용할 수도 없는 셋톱박스 기능은 왜 넣었으며, 스펙도 안좋다고 까였고 해외에서도 유명 유튜버인 앵그리 조가 이를 비판하는 영상을 올린 것을 포함해 수많은 유럽 및 북미 유저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허접한 발표회와 소비자의 자유를 제한하며 돈만 빼가려고 궁리하는 정책에 분노하고 있고, 동시에 엑스박스 원을 까는 수많은 GIF 이미지들이 양산되고 있다. # 덤으로 소니 CEO인 히라이 카즈오를 찬양하는 GIF도 양산되고 있다. #)
특기할 만한 것은 엑스박스 원의 모든 기능을 서비스받을 수 있는 북미 유저들마저 마소로부터 돌아섰다는 것. 일단 정식 출시가 되어봐야 알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엑스박스 원의 초기 분위기를 아주 확실하게 망쳐놨다는 것은 단언할 수 있다.
"전기가 가끔 나가서 청소기를 안 산다느니... 통신이 좋지 않아서 전화기를 안 산다느니... 미안하지만 저는 언제나 인터넷 연결이 필요한 콘솔 소유를 둘러싼 드라마에는 관심이 없어요. 지금도 모든 장치는 인터넷 연결이 필요해요.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라고요. 그러니
Deal With It."[34]
ㅡ 애덤 오스(마이크로소프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35]
ㅡ 애덤 오스(마이크로소프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35]
심지어 직원 중, 애덤 오스라는 사람은 유저들과 다른 게임 디자이너를 비하하면서 불난 집에 가스통을 던져놓는 사태를 저지르기까지 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애덤 오스는 직장을 잃었다. 그러나 애덤 오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고당하고, 2024년에는 작은 게임사에서 여전히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데 이때의 일로 인생이 많이 변했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는 인터뷰를 하면서 이 발언에 대해서 반성하고 있다.
엑스박스 원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
게임스팟에서 진행 했던 Xbox One vs PS4 트위터 전쟁에서는 PS4가 Xbox One을 압도했다. 파란색이 PS4, 초록색이 Xbox One인데 보다시피 초록색은 없다.( #)
심지어 닌텐도 Wii U의 판매율이 영국 아마존닷컴 판매순위 375위에서 40위로 무려 875% 정도 상승하는 등의 일도 일어났다.
결국 패미컴 후반기와 슈퍼 패미컴 시기에 연속되는 대성공으로 서드 파티들과 소매상에 갑질을 하는 지나친 만용을 부려 닌텐도 64와 게임큐브 시기에 제대로 부진에 빠졌던 닌텐도, PS1과 PS2의 연속적인 시장 지배로 PS3 시기 지나친 자만심에 빠져 온갖 망언을 내뱉으며 초기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잡는 데 실패했던 소니의 사레가 충분히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후속 기종을 출시할 때 이를 반면교사 삼았어야 했지만 결국 MS 본인들도 말도 안되는 만용과 자만에 빠져버리면서 결국 엑스박스 원을 크게 부진하게 만들어버렸다.
2.3.4. 이후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큰 비판을 받던 여러 가지 정책들을 2013년 6월 19일자로 모두 철회하였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No more always online requirement
상시 온라인 연결 필요 없음 -
24-hour online check no longer required
24시간마다 온라인 인증할 필요 없음 -
All game discs will work on Xbox One as they do on Xbox 360
모든 게임 디스크는 엑스박스 360처럼 사용 가능 -
An Internet connection is only required when initially setting up the console
인터넷은 게임기를 처음 부팅했을 때만 필요 -
Region locks have been dropped
지역 코드 없음 -
All downloaded games will function the same when online or offline
다운로드한 모든 게임은 인터넷 연결에 상관 없이 플레이 가능 -
No additional restrictions on trading games or loaning discs
게임 디스크를 팔거나 빌려주는 것에 제한 없음
유저들은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조삼모사나 간보기라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다. E3에서의 대실망쇼와 유저 지지도의 완패가 아니었으면 이를 그대로 밀어붙였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 애초에 북미를 제외한 지역에 셋톱박스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소식은 일반 사용자들과 언론이 엑스박스 원을 비난하는 일부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게 "니들 그만 좀 해라"라고 역공을 하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전달 방식이 잘못되기는 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온라인 정책은 본질적으로는 스팀과 같은 온라인 게임 환경을 만들면서 여기서도 서로에게 게임을 중고 판매할 수 있고, 그 수익의 일부를 배급사와 개발사에게도 돌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었다.[37] 그런데 처음의 맹비난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이런 장점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이거다'라는 식으로 장점들이 막 부각이 되기 시작할 즈음에 이 정책이 발표된 것. 실제로도 DL 구매량이 의외로 패키지 구매량을 상회했고 이로 인해 철회된 제약 중 절반가량이 상당수 유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지켜지고 있다는 점을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Xbox Play Anywhere에서 패키지 유저들이 제외된 것도 기존 정책과 같이 현재 패키지를 보유한 유저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라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7월에는 위의 주옥같은 드립들을 남기고 돈 매트릭이 MS를 떠나 Zynga의 CEO로 영입되었다.( #) 마침 이 시점이 마이크로소프트의 내부 구조 개편이 있던 시점이라, 윈도우 부서를 맡고 있던 줄리 라슨 그린이 엑스박스를 위시한 하드웨어 부서로 옮겨오게 되었다. 이후 인디게임 셀프 퍼블리싱이 허용되었으며( #), 이 소식과 함께 1000달러가 훌쩍 넘어가는 값비싼 개발킷으로만이 아닌 499달러짜리 일반 소비자용으로도 게임 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문제가 되었던 패치 시 비용을 받는 정책은 이 문제가 이슈가 되기 전인 연초에 이미 폐지가 되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접근 비용이 굉장히 낮아진 셈. 상당한 논란을 불러왔던 온라인 정책 완전 폐지 건과는 달리, 인디 게임 정책의 개편은 '사용자 콘솔의 개발장치화'라는 강수를 동반하면서 개발자들의 상당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비록 엑스박스 원이 여러 군데서 까이고는 있으나, 언제나 그렇듯 장점 역시 단점 만큼 자세히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초기에 비난받은 각종 정책들을 대부분 철회한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편이며, 유명한 개발사들이 만드는 기대작 4개를 독점 런칭 타이틀로 준비하고[38] 2014년 3월에는 차세대기 공개 이후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게임인 타이탄폴이 나오는 만큼 게임을 하기에 부적절한 기기라는 인상은 한참 전에 지웠다. 무엇보다 여기도 경쟁작과 비슷한 시점에 예약량이 전부 동났다. 발매일을 앞두고 그렇게 각종 루머가 쏟아지는데도 막사 물량이 남아돈다는 식의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일부 판매처에서는 예약량이 너무 많아서 예약구매자들의 카드 결제를 배송 출발 1주일 전부터 시작한다[39]는 공지를 할 정도인 것을 보면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에 큰 타격이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MS의 알버트 페넬로(Albert Penello)가 발매 당시에는 엑스박스 원의 일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 여기서 말하는 일부 서비스란 음성인식, TV 서비스, 그리고 몇몇 앱들을 가리킨다.
2.3.5. 발매 이후
출시 후 플레이스테이션 4와 같이 발매 첫날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했다.그리고 출시 18일만에 13개국에서 200만 대 판매를 달성했다.[40]
2013년 말까지 총 300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타임지가 선정한 2013년 10대 전자기기 중 하나에 선정되었다.
전 세계 출하량 1000만 대를 돌파했고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두고 한정판 콘솔을 포함해 50달러 가격 인하를 했다.
번들 게임들의 호평과 가격 인하에 힘입어 압도적인 할리데이 시즌 판매량을 보여줬다.
신문 기사만 추려본다면 의외로 많은 나라에서 선전하고 있는 듯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PS4 판매량의 60% 가량의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본가인 북미와 영국에서 비등한 판매량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프랑스, 독일 같은 유럽 주요 국가들과 아시아권에서의 판매량은 크게 벌어진 상황이다. 특히 매주 올라오는 일본 게임 통계에서는 PS Vita TV(PS Vita가 아니다!)와 비슷한 판매량을 보여주고 있을 정도이다. 일각에서는 홈 엔터테인먼트를 겨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이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왔으나, 시간이 지나도 PS4에 계속 밀리고 있는 상황을 보면 홈 엔터테인먼트가 차별화되는 강점으로서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그런 서비스가 부족한 한국에서까지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실제로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서의 홈 서비스 기능들은 많이 부족한 상태. 이에 대해서는 국내 케이블/IPTV 업체들과의 원만한 협의가 이루어져야 하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작보다 향상된 동작인식과 부가기능을 가진 키넥트가 꽤나 호평받고 있다. 특히 음성인식 기능은 현대 최고라는 평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이 TV CM에 당한 희생자가 속출하고 있다. TV에서 아론 폴이 'XBOX ON'이라고 말하자 키넥트가 이걸 듣고서 지멋대로 엑박의 전원을 켜 버린다고(…). 이전에는 엑원으로 스카이프를 하던 도중에 상대가 XBOX OFF를 외치면 자신의 XBOX가 꺼지는 상황도 있어서 말이 많았다. 현재 이 부분은 해결되었다.
그러나 막상 게임에 대해서는 다소 소홀한 기기가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자, 2014 E3에서는 상당히 게이밍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E3에서 공개된 게임들의 평들은 상당히 좋은 편.
엑원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건 서드파티의 이탈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다. 서양 서드 AAA 게임을 비롯한 EA, 유비소프트, 테이크 투 등 대형 게임사들은 엑원판도 필수적으로 발매하고 있으며 일본 서드 쪽은 애초부터 부족했던 터라 이탈이 있어도 거의 티가 안나고 캡콤, 반다이 남코 게임즈, 세가도 웬만한 타이틀은 엑원판을 필수로 내고 있다.
조사기관 닐슨에서 북미 유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엑스박스 원의 구매 시 최대 관건이 된 점은
- 엑스박스 브랜드
- 혁신적인 기능
- 빠른 처리 능력
- 독점 게임과 다수의 컨텐츠
- 재미
북미의 경우 플포에 근소하게 밀리며 거의 대등한 판매 경쟁을 하는 중이다. E3 2015 이후 달마다 전년 대비 기기 판매량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플포가 90%의 점유율을 보인다고 한다. 영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선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 중남미에서는 엑원이 앞서는 중이다. #
시장 상황과는 별개로 2015년 게임스컴에서는 본인들이 직접 역대 최고의 라인업이라고 자부하며 플스 진영을 압도하는 라인업을 보여주었다. PS4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MS의 의지가 확실히 드러났다는 좋은 평가를 듣고 있다.
엑원은 Xbox 360과 달리 하드웨어 판매에서 손실이 나지 않고 전 세대보다 판매량이 두 배 넘게 높다. 플포가 워낙 잘 팔려서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는 것. 플포와의 경쟁과 별개로 엑스박스의 시장 자체는 커지는 중이다. #
2017년 키넥트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키넥트를 기본 사항에 포함하던 초기 정책에 대해 결국 실패를 인정한 셈이다.
엑스박스는 360 중후기부터 독점작의 부족을 지적하는 여론이 많았고[41], 그나마 퀀텀 브레이크, 리코어 등 얼마 안 되는 독점작들도 평가와 흥행 양측에서 영 좋지 않은 성적을 남겼으며, 선셋 오버드라이브 같이 좋은 평을 받은 타이틀도 흥행 면에서 선방하지 못했다. 헤일로와 기어즈 오브 워 등도 IP 파워가 많이 약해졌다. 그나마 물이 오른 포르자 시리즈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킬러 타이틀이 없는 셈이다. 이는 PS4가 KILLZONE: SHADOW FALL, 디 오더: 1886 등 초반 독점작들의 부족한 퀄리티의 독점작들도 평가에 비해 판매량은 잘 나온 점, 이후 블러드본, 라쳇 & 클랭크(리부트), 언차티드 4, 호라이즌 제로 던, 갓 오브 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Marvel's Spider-Man, 데스 스트랜딩, 페르소나 5 더 로열, 파이널 판타지 VII 리메이크, 고스트 오브 쓰시마 등의 독점작들이 평가와 흥행 양측으로 대박을 터트리며 기기의 높은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해나가고, 마찬가지로 닌텐도 스위치도 Wii U에서의 부진을 극복하고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42],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 마리오 카트 8 디럭스, 스플래툰 2, 마리오 + 래비드 킹덤 배틀,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 2, 폿권: POKKÉN TOURNAMENT DX 등의 대형 독점작으로 출시 첫 해인 2017년부터 기기의 가치를 올린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그나마도 퀀텀 브레이크 이후 독점작들을 PC와 동발하는 정책을 보여주면서 게이머들을 놀라게 했다. 자세한 건 링크 참조.
PC는 물론이고 PS4와 함께 크로스 플레이를 할 수 있게 오픈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제작사와 소니가 허락한다면 엑원과 PS4 유저가 PC 유저와 함께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는 셈. 소니 측에서는 일단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발표했으며 유저들도 이 발표에는 긍정적인 의견이 압도적이다. 우선 현재는 Windows 10 운영체제를 활용한 PC와의 크로스 게임화를 천명했고, 포트나이트가 PS4와 XBO의 크로스플레이를 지원하는 최초의 게임이 되었다.
2017년 후반 엑스박스 원 X가 발표되었다.
2.4. Xbox One X
2.4.1. 공개 전 정보
자세한 내용은 Xbox One X/공개 전 정보 문서 참고하십시오.2.4.2. 발표
XBOX E3 2017 Breifing |
한국시간으로 2017년 6월 12일 06:00, E3 2017 브리핑에서 스콜피오를 공개했다. #
정식 명칭이 엑스박스 원 X로 확정되었다. 크기가 지금까지 나온 엑스박스 시리즈 게임 콘솔 중 가장 작다고 한다![43]
기존 엑스박스 원 악세서리와 게임들이 호환된다고 하며[44][45] 4K TV를 갖추지 못한 이용자들을 위해 'Super Sampling'으로 1080p HDTV에서도 향상된 그래픽으로 구동된다고 한다.
XBOX ONE X와 함께 발표된 글로벌 런칭 타이틀들 |
2.4.3. 발매
발매 당일 기준 4K를 포함한 향상패치는 59개가 발표, 20개가 릴리즈 예정, 그리고 83개가 추가적으로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 순조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물론 이 리스트에는 현세대 작품들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하위호환이 XBOX ONE X 특유의 메서드로 향상되는 경우도 포함된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리마스터에 필적하는 품질을 가지고 있으며 XBOX ONE X의 성능으로 비로소 구현가능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향상 패치 리스트에 포함되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다.거의 모든 웹진이 XBOX ONE X의 단점을 가격으로 꼽았음에도 엘리트 컨트롤러 발매때와 비슷하게 구매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엑스박스가 약세인 일본의 경우 한국과 비슷하게 예약된 물량만으로 초기 물량이 소진되어 발매일 당일에 구하기 힘들 것이란 예측이 나온 상태이며, 싱가포르는 출시를 연기했다. 연기 사유는 불명이지만 추후 언급할 한국 내 2차 물량 판매 시기랑 비슷해서 물량이 부족해서 연기한 것으로 추측이 나오는 상태. 영국 아마존의 경우는 물량부족을 이유로 발송을 지연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E3 2018 이후로 가장 약점으로 꼽혔던 퍼스트 라인업을 보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46]
2.5. Xbox Series X|S
2019년 TGA 2019에서 공개되었다.3. 관련 서비스
3.1. Games for Windows
자세한 내용은 Games for Windows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과거 윈도우 기반 게임 서비스로 현재는 종료되었다.
3.2. Xbox Live
자세한 내용은 Xbox network 문서 참고하십시오.Xbox콘솔과 윈도우등 마이크로소프트의 통합 온라인 게이밍 서비스이다. 현재는 Xbox network로 명칭 변경되었다.
3.3. Xbox Play Anywhere
자세한 내용은 Xbox Play Anywhere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엑박콘솔, 윈도우 통합 구매 공유 서비스
3.4. Xbox Game Pass
자세한 내용은 Xbox Game Pass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구독형 게임 서비스
3.5. Xbox Cloud Gaming
자세한 내용은 Xbox Cloud Gaming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서버에서 실행한 게임을 스트리밍을 통해 플레이 하는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
4. 산하 스튜디오
4.1. Xbox Game Studios
자세한 내용은 Xbox Game Studios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2. 제니맥스 미디어
자세한 내용은 제니맥스 미디어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인수 과정에 대한 내용은 Microsoft의 제니맥스 미디어 인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인수 이후 구조조정과 해고에 대한 내용은 Microsoft Gaming 문서
의
인수 이후 구조조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3. 액티비전 블리자드
자세한 내용은 액티비전 블리자드 문서의
역사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인수 과정에 대한 내용은 Microsoft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인수 이후 구조조정과 해고에 대한 내용은 Microsoft Gaming 문서
의
인수 이후 구조조정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이때 중요한 역할을 했던 픽서로 제임스 스팬이라는
TCK인
주일 미국인이 있었다. 이 사람이 세가 엔터프라이즈를 거치고 마이크로소프트 일본지사로 이직한 경력이 있기 때문. 그리고 이 사람은 결과적으로
DWANGO가
도완고로 바뀌는데 한몫 하기도 하였다. 상세는 도완고 항목 참조.
[2]
실제로 플레이스테이션의 아버지
쿠타라기 켄은 단순 게임기를 만들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이를 계기로 반도체와 컴퓨터 산업으로 진출해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기고 싶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
[3]
케빈 바커스 역시 2001년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고, 시무스 블래클리 역시 엑스박스 출시 이듬해에 케빈 바커스가 이직했던 동일 회사에 이직했다.
[4]
당시인 2000년대 초반의 소니의 위상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전 세계에서 모든 전자 분야에서 최정상을 달리던 90년대의 위상이 아직 건재했다. 2010년대 이후 LG나 삼성전자가 지배하고 있는 분야를 당대에는 소니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런 소니가 이제 마이크로소프트가 생각하기에는 PC 시장마저 넘보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니, 해당 임원의 말이 상당히 무겁게 다가온 것이다.
[5]
닌텐도는 회사를 매각하는 그런 일에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6]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
철권 시리즈,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
귀무자 시리즈,
킹덤 하츠 시리즈,
드래곤볼 게임 시리즈,
버추어 파이터 시리즈,
릿지 레이서 시리즈,
에이스 컴뱃 시리즈,
괴혼 시리즈,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
테일즈 오브 시리즈,
진삼국무쌍 시리즈,
전국무쌍 시리즈,
스타오션 시리즈,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제노사가 시리즈,
슈퍼로봇대전 시리즈 등.
[7]
무엇보다 큰 본체가 발목을 잡았다. 부동산 가격이 매우 비싸 대부분이 20평대 중반에 불과한 규모가 작은 일본의 가정집 형편상 이런 커다란 크기의 게임 콘솔은 아무래도 면적을 더 요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 일본에서 게임큐브가 저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엑스박스가 그보다 덜 팔렸다.
[8]
지금 기준으로는 아주 큰 편은 아니지만 초기형 컨트롤러를 아령 대용으로 쓴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가 발매 초창기부터 이어졌는데, 그런 반응을 인식해서인지 곧 소형인 컨트롤러 S를 발매했다.
[9]
아이러니하게도 초기 미국내에서 개발된 듀크 컨트롤러는 미국인 게이머들 사이에서조차 너무 크고 무거워 손목에 피로가 많이 간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고, 일본용 컨트롤러 S가 수입 게임 가게에서 출시되자 컨트롤러 S를 구입해 사용하는 일이 생기면서 결국 미국판 듀크 컨트롤러 대신 컨트롤러 S가 쓰이게 됐다. 당시 초기 미국판 컨트롤러를 잡아본 게임 전문 기자의 평이 걸작인데, "감자 2개를 들고있는 느낌이다." 라고 하였다.
[10]
이 뿐 아니라 일본 발매시 소매점에서의 판촉물이나 큰 덩치에 걸맞은 봉투 등 소모품의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일본의 게임 소비 문화를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았던 부분들도 많았다고. 이에 대해서는 당시 발매된 게임잡지 '게임비평'에서 꽤 신랄하게 다루고 있다.
[11]
무엇보다 2002년 및 2003년 당시 세가의 최대 킬러 타이틀인
버추어 파이터 4와
버추어 파이터 4 에볼루션은 결국 각각 2002년과 2003년에 PS2로 독점발매되어버렸다. 또한 세가의 대표 타이틀인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도
소닉 히어로즈 전까지는
게임큐브에 독점 발매된 타이틀이었다. 심지어
소닉 히어로즈 이후의 타이틀마저도
PS2,
게임큐브와 멀티플랫폼으로 발매되었다.
[12]
그래도 캡콤은 엑스박스의 멀티플레이 기능을 활용하여 온라인 대전 격투게임을 선보였고,
철기(게임)라는 독특하고 과감한 시도를 하기는 했다.
[13]
소닉 히어로즈부터
소닉 시리즈는
PS2,
게임큐브와 같이 멀티 기종으로 나왔고,
소울 칼리버 2 같은 경우에도 소닉 히어로즈와 마찬가지로 세 기종 전부 출시되었다.
소닉 시리즈는
소닉 어드벤처 2 배틀때부터
소닉 어드벤처 DX까지 게임큐브 독점작이었고,
바이오하자드 시리즈 역시
바이오하자드(2002)부터
바이오하자드 4까지는
게임큐브 독점작이었다. 또한
소울 칼리버 3도 PS2로 독점 발매된다.
[14]
사실 일본 내에서 게임 판매 순위에 들었던 엑스박스용 일본산 게임이라곤
데드 오어 얼라이브 3와 '오토기'를 제외하면 거의 없었다.
[15]
참고로 360의 일본에서의 판매량은 150만대.
[16]
당장 동시기
플레이스테이션 2의 최다 판매량 게임인
Grand Theft Auto: San Andreas의 총 PS2에서의 판매량이 무려 1733만 장인 것을 감안하면
헤일로 2의 판매량은 상대적으로 굉장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판매량은 동시기
닌텐도 게임큐브의 판매량 1위 게임인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DX가 기록한 판매량인 741만 장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17]
이 당시 발매된 모든 다른 경쟁 기종들은 네트워크 연결을 위해서는 별도의 브로드밴드 어댑터를 구입해야만 했던 시절이다!
[18]
미국의 넓은 땅으로 인한 낮은 브로드밴드 보급률을 보면 당연한 우려였고 플레이스테이션 2의 미국판 네트워크 어댑터에는 전화접속 포트가 추가되어 있다. 아직도 미국에는 전화접속 인터넷 가입자가 많다.
[19]
물론 후에는 엑스박스 360 기반의 개발킷이 나왔다. 엑스박스 1 시절 초기형 개발킷은 델 PC를 개조하여 만들었다.
[20]
몇 년 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넘버링을 건너뛰거나
기존에 사용하던 넘버링 체제를
갈아 엎기도 하였다.
[21]
As various Microsoft executives have noted, Xbox 2 is a fine name until you realize that
Sony's next machine will be called the
PlayStation 3, which sounds newer and more powerful. The Xbox 360 name was chosen to imply that the gamer is at the center of the Xbox experience.
[22]
마소의 게임 전성기는 2006년 부터 2008년까지가 그야말로 최전성기이다. 이 당시 기어즈 오브 워, 헤일로 3, 엘더스크롤 4 오블리비언, 폴아웃 3, 바이오쇼크, 매스이펙트, 데드 스페이스등 걸출한 게임들을 내보냈던 해이다.
[23]
2010년 초 Wii는 900만 대 중반, 플레이스테이션 3은 400만 대 중반
[24]
레드링 문제는 2009년경 대부분 해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25]
갓 오브 워, 언차티드, 그란투리스모
[26]
CPU + GPU = APU가 2개씩 있다는 뜻. 하지만 CPU와 GPU는 컴퓨터 중 가장 발열이 심하고 전기도 많이 먹는 부품이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못하다. 물론 성능을 떨어뜨려 전력과 발열을 잡을 수도 있지만 싱글 APU에 비해 전체 성능이 낫다는 보장도 없으며, 보드 설계가 복잡해진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손바닥만한 콘솔 기판 크기를 고려하면 치명적인 문제다.
[27]
기기의 콘셉트을 매우 성공적으로 전달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28]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에서의 폭발적인 반응과는 달리 대다수의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아직 차세대 콘솔에 대한 소식이 그리 잘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매 직전의 홍보를 통해서 처음 본격적인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매우 많다.
[29]
게임에 대해서는
E3에서 발표할 거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찜찜했었던 건 지울 수가 없었다.
[30]
콜 오브 듀티: 고스트는 게임 본편보다 개가 더 주목을 받았다. 'Call of Duty'가 아니라 'Collar(개목걸이) Duty'라는 멸칭도 얻게 되었다.
[31]
그리고 소니측에선 이걸 대놓고 비꼬는 광고 영상을 만들었다 게임을 공유하는 방법 1. 공유한다 그런데 2년 뒤엔 마소도 하위호환 정책을 소개하면서
저걸 또 패러디했다.
[32]
퍼블리셔가 없으면 인디 게임 제작자가 엑스박스 라이브 마켓에 게임을 판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미. 마이크로소프트 측에선 저질 게임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동시에 인디 게임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참고로 PS4와 Wii U는 모두 셀프 퍼블리싱이 가능하다.
[33]
이것이 논란이 되었던 이유는 강매 논란도 있지만 사생활 침해도 원인이었다. 당시에 키넥트에서 촬영된 장면이 다른 곳으로 사용자의 동의없이 전송된다는 음모론이 돌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와중에 키넥트는 무조건 작동한다고 하니 사생활에 민감한 게이머들은 반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MS는 키넥트 자체의 전원을 끄면 키넥트를 완전히 끌 수 있다고 해명했지만 오히려 소문이 사실인 거냐며 역풍만 맞았고, 이후 2014년 5월 14일 키넥트는 기기에서 분리 가능한 주변기기로 격하되었다.
[34]
차기 엑스박스가 발표되기 전 기기가 무조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만일 인터넷 연결이 끊길 경우 모든 기능이 멈춘다는 루머가 돌았다. 분노한 유저들은 엑스박스 공식 트위터에 사실 여부를 확인했는데 애덤 오스는 저런 식으로 유저들을 비꼬면서 위의 모든 망언들을 한 방에 일축하는 병크를 터트렸다. 참고로 Deal With It은 '맘대로 하라', '참아달라', '걍 받아들이라'라는 뜻이다.
[35]
예전부터 생각 없는 트윗질과 무개념한 발언으로 온갖 어그로를 끌었던 인물이다. 그런 주제에 회사에서는 철저한
예스맨이며 소비자에게는 강하고 상관에게는 약한 전형적인 멍청이로 악명이 높았다.
[36]
이 사태를 보다 못한
바이오웨어의 게임 디자이너가 "당신은
디아블로 3나
심시티 2013이 인터넷 필수 연결로 인해 발생한 사태에서 배운 것이 없느냐?"고 물으면서 "당신은 인터넷 연결이 잘 되는 대도시에서 사니깐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거지,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살아보면 절대 그런 소리를 할 수가 없다."고 말하자 애덤 오스가 이를 비꼰 것.
[37]
이미 게임 제작비는 커질 만큼 커진 상태인데, 게임 가격은 제작비에 비하면 거의 오르지 않아 개발사들의 고민이 많았다.
[38]
미국 현지에서 나올 런칭작으로
포르자 모터스포츠 5와
데드 라이징 3, 그리고 라이즈: 선 오브 로마가 확정된 상태다.
[39]
제품 발매를 최대 한달 정도 앞두고 한번에 예약구매를 열어서 미리 결제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의 온라인 상점들은 한참 전부터 미리 카드 정보와 주소 등을 넣어놓고 예약구매를 하여 제품이 배송될 때 입력한 카드 정보에 따라 결제를 한다.
[40]
플레이스테이션 4는 15일 동안 32개국에 210만 대를 판매했다. 물론 후에 추가된 국가들의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이 역시 엑스박스 원의 판매 추이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일단은 '두 콘솔 모두 잘 팔리고 있다'라고만 알아두면 될 듯.
[41]
특히 구엑박이 게임기 시장에서 신참인 마이크로소프트가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는
헤일로: 전쟁의 서막,
데드 오어 얼라이브 3과 같은 뛰어난 런칭 독점작들이 존재하였고, 이후에도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프로젝트 고담 레이싱 2,
닌자 가이덴,
페이블,
헤일로 2,
데드 오어 얼라이브 얼티메이트 등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완전 혹은 기간 독점작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360도 7세대 게임기 시절 초기에 시장을 장악했던건 가정용 게임기 중에서는 가장 먼저 출시된 점도 있겠지만
데드 오어 얼라이브 4,
세인츠 로우,
데드 라이징,
헤일로 3,
기어스 오브 워 같은 초창기 완전 혹은 기간 독점작들이 높은 완성도와 함께 제대로 유저들을 끌어모으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후에도
페이블 2,
기어스 오브 워 2 등으로 유저들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42]
사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본래 Wii U로 발매할 예정이었으나 제작이 늦어져 스위치로 동시 발매 하게되었다.
[43]
현재 출시된
엑스박스 원 S보다도 소폭이지만 작다.
CUH-2xxx(PS4 Slim)과 비슷한 수준이다. 향상된 성능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놀라울 정도.
[44]
마이크로소프트가 첫 출시한 6세대 게임기인 오리지널 엑스박스 게임들까지도 하위 호환을 지원한다고 한다. 구동되는 게임 목록은 홈페이지를 참조.
[45]
엑스박스 원 X의 기본
컨트롤러는 엑스박스 원 S 버전 컨트롤러이다.
[46]
플레이그라운드 게임즈,
닌자 시어리,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언데드 랩,
인엑자일 엔터테인먼트, 디 이니셔티브, 컴펄젼 게임즈 등의 회사를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