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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ght=500]]|IBM PC와 100% "합법" 호환되는 최초의 컴퓨터인 컬럼비아 데이터 프로덕트사의 MPC 1600. 1982년에 소개되었다. |
1. 개요
IBM PC compatibleIBM PC 互換機種
IBM에서 발표한 IBM PC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든 개인용 컴퓨터 아키텍처 계열. 흔히 \' PC'라고 한다. IBM PC 호환 기종이라고 하는 것은, IBM PC와 호환되는 컴퓨터라는 뜻이다. IBM PC와 호환성을 가지는 컴퓨터는 공통적으로 호환 CPU, 호환 BIOS, 호환 칩셋을 가지고 있다. 현대 대부분 컴퓨터는 여전히 IBM PC와 호환되는 CPU, 호환 칩셋, 호환 바이오스(CSM 지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IBM PC 호환 기종이다.
그러나 UEFI 클래스 3+ 이상의 컴퓨터는 더 이상 IBM PC와 호환되는 BIOS 구조를 지원하지 못하여, DOS를 실행할 수 없으므로 IBM PC 호환 기종이 아니다. CPU와 칩셋에는 아직 하위 호환성이 있기 때문에 UEFI에만 BIOS 지원을 추가하면 해결되는 문제기는 하다.[1] 인텔이 2005년 펜티엄 4 프레스캇 발표 이후, 칩셋단에서도 레거시 지원을 끊는 중에 있기 때문에 DOS를 실행할 수 있더라도 리얼 모드에서만 안정성이 보장되고 보호 모드와 가상 8086 모드에서는 호환 이슈가 발생할 수 있다.
2005년에 IBM이 개인용 컴퓨터 사업을 레노버에 매각하여 발을 뺀 이후에는 IBM PC 호환 기종이라는 이름을 굳이 쓸 필요가 없어졌다. 그 이후 IBM PC 호환 기종이라는 용어는 거의 쓰이지 않게 되었다.
2. 역사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당시는 아직 여러 기업들이 제각기 별도의 아키텍처로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했다. IBM PC 규격도 본래는 IBM에서 만든 업무용 컴퓨터 규격들 중 하나였지만 IBM PC는 다른 기업들에게 아키텍처를 공개했다. 단순히 CPU뿐만 아니라 시스템 내부 버스, ISA, IRQ, DMA, 주변 장치 컨트롤러 같은 여러 시스템 장치까지 모두 포괄하는 규격이다. 그러나 IBM은 BIOS만은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컴팩에서 처음으로 IBM PC 100% 호환 기종을 개발한 때에 IBM BIOS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해서 탑재했다. 이러한 시도 이후로 IBM BIOS와 호환되는 BIOS를 파는 기업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IBM의 독점 시도는 무의미해졌고 다른 컴퓨터 기업들도 IBM PC 호환 기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한편 IBM PC 출시 후에도 한동안은 인텔 x86 CPU를 사용하지만 IBM PC와 100% 호환되지 않는 컴퓨터들이 있었다. 실제로 1990년대에 컴퓨터를 사용해보지 않았거나 당시의 컴퓨터 잡지 등을 보지 않은 세대에게 말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IBM PC는 업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만 넣었고 특히 멀티미디어와 그래픽에서 취약했다. 컴퓨터 제조사들은 IBM과 차별화를 위해서 추가 하드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당시 IBM PC의 기본 운영 체제인 MS-DOS는 IBM PC 규격에 없었던 하드웨어를 지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현대적인 하드웨어 추상화 계층도 없었기 때문에, 이들 하드웨어를 사용하려면 독자적인 규격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 언젠가 교통 정리를 해야 할 상황이긴 했지만, 더 많은 메모리를 사용하거나 새로운 하드웨어를 지원하기 위해 PC 규격을 확장한 때에도 IBM이 모든 것을 주도하지는 않았다.
밥상을 맛있게 차려놨는데 정신차리고 보니까 정작 다른 놈들이 맛있는 건 다 먹고 어렵게 밥상 차린 자신은 찬밥 신세가 된 것을 뒤늦게 깨달은 IBM에서는 'MCA(Micro Channel Architecture)'라는 신기술을 바탕으로 PS/2 시리즈를 발매해 컴퓨터 시장의 탈환을 시도하였다. PS/2는 개방형 아키텍처인 예전의 IBM PC와 달리 폐쇄 아키텍처였지만 컴퓨터 시장의 주도권은 이미 CPU의 인텔과 운영체제의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호환 기종을 만드는 다른 컴퓨터 제조 기업들에게 완전히 넘어간 상태여서 결국 시원하게 망했다. 실질적으로 80386 시대에 IBM은 이미 이 아키텍처의 선도 능력을 잃어버렸고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아키텍처 설계의 중심이 되었다. 이른바 ' 윈텔'이 이때 탄생했다. 80386 PC를 최초로 발표한 곳도 IBM이 아닌 컴팩이다. (이후 컴팩도 결국 HP에 팔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컴퓨터 제조 기업들이 MCA의 대항마로 내놓은 EISA도 마찬가지로 망했다. ISA와 호환되는 장점이 있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는 평. 결국 486 시대에는 ISA 옆에 VESA 로컬 버스를 붙이는 방식으로 버텼고 진짜 승자는 펜티엄 시절에 나온 인텔의 PCI가 되었다. PS/2 아키텍처의 흔적은 아직도 PC에 남아 있는데 그게 키보드와 마우스를 연결하는 PS/2 포트와 VGA. PS/2 포트는 한동안 키보드와 마우스 연결용으로 사용했지만 외부 연결용으로는 USB에 밀려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초창기의 VGA는 PS/2 머신에 회로의 형태로 내장되어 있는데 그것을 호환기기 개발사들에서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비디오 카드의 형태로 만든 것이 VGA 카드의 시초이다.
여러 기업들의 파워 게임과 좌충우돌을 거친 끝에 PC 규격은 사실상 표준화되었고 그래서 부품만 구비되어 있으면 납땜 같은 전문적인 과정 없이 슬롯이나 소켓에 끼워맞추고 나사로 고정하면 어렵지 않게 PC 본체 한 대가 나올 수 있게 됐다. 이 특징 때문에 Dell과 컴팩, 휴렛팩커드에서 완제품을 마구마구 찍어낼 수 있었고 사용자가 하드웨어 지식을 조금만 익혀도 손쉽게 완제품을 개조하거나 처음부터 직접 조립할 수 있다. 그 결과 다른 기업들이 만든 아키텍처의 컴퓨터들을 몰아내고 전세계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기성품 PC( 매킨토시 계열 포함)와의 가성비 논란에서 가성비 최강으로 항상 손꼽히는 것이 이 조립 PC이다. 물론 사후지원 같은 여러가지를 총체적으로 따지면 조립 PC도 기성품보다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순수하게 부품 단가+공임(용산 기준)+운영 체제 가격을 따지면 확실히 조립 PC가 우위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립 PC도 AS를 못 받는 건 아니지만 한 곳에서 모든 부품을 조립하지 않으면 총체적인 AS를 못 하고 부품별로 된다. 이 때문에 부품끼리의 호환성 문제로 발생하는 문제는 사용자가 직접 캐치해야 한다.
1990년 이후 그리고 2020년 이전 전 세계의 개인용 컴퓨터는 애플사의 매킨토시 계열을 제외하고는 모두 IBM PC 호환 기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IBM이 만든 PC조차 이무렵부터는 IBM PC 호환 기종화되었다.[2] 이마저도 애플에서 인텔 CPU를 사용하면서 기본 구조는 거의 같아졌다. 이 때문에 요즘은 윈도우가 매킨토시 계열에서도 설치되고 macOS도 해킹을 하면 IBM PC 호환 기종에서 설치된다. 결국 운영 체제를 제외하면 같다. 업무용, 저개발 국가용으로 널리 퍼져있는 리눅스 PC하고 다를 것이 없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스티브 잡스가 상대 진영을 끝까지 계속 'PC'라고 불러서인지 사람들에게 맥 계열 컴퓨터는 IBM PC 호환 PC와 대척점으로 포지셔닝되었다. 그리고 Mac은 2020년부터 ARM을 기반으로 한 자사 설계의 Apple Silicon으로 이주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다시 IBM PC 호환기종과의 호환성이 사라졌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 IBM PC 아키텍처의 기본 구조가 PC를 넘어서 서버나 다른 임베디드 시스템에도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POS기와 ATM 등의 임베디드 기기에도 이걸 쓰고, 서버와 아케이드 게임 기판도 이걸 쓰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타이토 Type X, 세가 LINDBERGH 등등... 반다이 남코 게임스의 과거 일부 아케이드 게임은 PS3 기반 기판을 사용했으나 2007년 출시작인 완간 미드나이트 맥시멈 튠 3부터 PC 기반의 SYSTEM N2 기판을 쓰기 시작하면서 사실상 모든 아케이드 게임 기판은 PC 기반이 됐다. 그 중에는 IBM PC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있지만 성능 개선이나 전력 소모 최적화를 위해서 구닥다리 규격은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SGI 워크스테이션 중 일부 모델은 펜티엄 CPU를 사용했지만 BIOS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PC용 운영 체제를 설치할 수 없었다. 인텔 아톰 기반 스마트폰 SoC도 PC 아키텍처의 일부는 완전히 처냈고 콘솔 게임기인 엑스박스 원과 플레이스테이션 4도 IBM PC의 기반 구조 중 일부는 완전히 생략되었다. 그래서 "x86 아키텍처=IBM PC 호환 기종"이 아니라, "x86 아키텍처⊃IBM PC 호환 기종"이라고 해야 한다.
이제는 이미 IBM이 PC 산업에서 물러나버린 상황이고 IBM PC 호환 기종이 아닌 개인용 컴퓨터를 찾기 어려워져서 오히려 이런 표현을 듣는 게 어려워졌다. PC가 곧 IBM PC 호환 기종인 것이 당연하게 되어서 더 이상 "IBM PC 호환 기종"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도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심지어 매킨토시조차 PC의 일종쯤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대부분이다. 영어 위키피디아에서는 매킨토시를 애플에서 출시하는 PC라고 정의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과거 한국 맥 유저들이 PC를 가리켜 아범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맥의 점유율이 PC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열폭 심리로 쓴 용어였는데 어원은 당연히 본 항목이지만 IBM이 PC사업 자체를 Lenovo에 매각한 뒤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용어가 되었다.
1990년대부터 윈텔은 자신들이 확립한 PC 설계 가이드를 내세우며 IBM 호환 규격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이 때문에 64비트 AMD64 CPU와 펌웨어도 64비트 UEFI가 도입된 이후부터 하드웨어 데이터 버스들은 인텔의 주도 아래 만들어진 하드웨어를 사용해서 오리지날 IBM PC 아키텍처의 표준들이었던 기능들은 네이티브 지원도 아닌 에뮬레이션 지원으로 동작하고 있다.( SATA의 IDE 에뮬레이션, PCI-Express Super I/O 컨트롤러의 PS/2 에뮬레이션, UEFI CSM의 16비트 BIOS 에뮬레이션 등) 그리고 본래 존재했던 표준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도 않고 모두 대체된 형국이라 (BIOS→UEFI, ISA→ PCI[3]/ PCI Express, ATA→ SATA 및 NVMe, AT 6핀 커넥터→ ATX 24핀 커넥터) IBM PC 호환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상태이지만[4] 일부 맥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여전히 해당 표현은 사용되고 있는 상태다. 애초에 CSM 이 없는 UEFI 기반의 모던 컴퓨터는 본래 IBM PC에서 동작하던 프로그램은 아예 호환이 안 된다.[5]
2010년대 이후로 64비트 운영 체제가 활성화되자 x86은 x86-64로 대체되었다. 16비트/ 32비트의 x86 아키텍처의 한계상 4 GB 이상의 RAM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AMD에서 개발한 AMD64 아키텍처로 빠르게 대체되고 있다. 인텔은 x86의 64비트 후계자로 IA-64를 기획하고 있었으나 이름과 달리 IA-32와 전혀 다른 아키텍처라 x86으로 분류하지 않으며(x86 인스트럭션을 에뮬레이션으로 지원하기는 한다) IA-64를 채용한 아이태니엄 시리즈는 인텔의 흑역사. 결국 32비트 x86(IA-32)과 호환되는 x86-64가 대세가 되었다. 단, 'AMD64'라고 해도 하드웨어의 구조적인 부분은 같은 데다 거의 모든 운영 체제에서 x86 하위 호환성 모드를 지원하기 때문에( 윈도우의 경우에는 WOW64) 사용자는 x86에서 AMD64로 넘어가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듯하다. 과거 16비트에서 32비트로 넘어올 때도 하위 호환을 유지하고 넘어왔듯이 AMD64로 바뀐다고 IBM PC 호환 기종 그 자체의 카테고리가 사라지고 생판 다른 아키텍처로 바뀌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콘솔 게임기인 엑스박스 원과 플레이스테이션 4는 x86-64를 기반으로 한 임베디드 기기로 봐도 손색이 없다.
3. 특징
원래는 보안상 메인프레임과 연동할 수 없거나 메인프레임을 들여놓기 어려운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쓸 수 있도록 개발된 컴퓨터이다. 그래서 원형 IBM PC는 빠른 속도와 미려한 텍스트 기능을 갖춘 대신 홈 컴퓨터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성능인 그래픽과 사운드 기능이 같은 시대의 경쟁기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 그래픽은 텍스트만 찍을 수 있는 MDA와 눈아픈 4색 표현만 되는 CGA, 사운드는 삑삑 거리는 비프음만 낼 수 있는 PC 스피커가 전부였다. 업무에 필요한 기능 위주로 추구하다 보니 그래픽과 사운드처럼 업무와는 관계없는 기능은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CPU 처리 만은 고속이었다. IBM PC 5150/XT에 탑재되어 있던 8088은 8080과 Z80과 같은 전세대 8비트 CPU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 단순 연산 성능 만이라면 경쟁모델인 68000보다도 우월하며 여기에 부동소수점 연산용 보조 프로세서인 8087을 추가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다만 8087이 비싸서 과학 기술 등의 꼭 필요한 분야가 아니면 잘 장착하지 않았다.그래픽과 사운드 측면에서는 애플 II 정도보단 좋지만 코모도어 64와 MSX 같은 기종에 비교하면 16비트 컴퓨터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었다. 1980년대 중반 무렵부터 나오기 시작한 경쟁 16비트 컴퓨터들과 비교하면 차이는 더 벌어져 매킨토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미가와 아타리 ST 같은 가정용 컴퓨터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VGA와 사운드 카드가 나오면서 서서히 다른 기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멀티미디어 성능을 갖추게 되었다. 80486이 나온 시기에는 CD-ROM 드라이브까지 나오면서 미려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출력하고 대용량 보조 기억 장치까지 갖춘 " 멀티미디어 PC"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4. 2바이트 문자권(DBCS) 국가들의 글자 표기 및 보급
한글, 한자, 가나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문자는 알파벳에 비해 글자 구조가 복잡하고 수도 많아 더 많은 메모리 용량과 처리 성능이 요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알파벳의 1바이트의 2배인 2바이트로 문자를 구성했다. 이를 2바이트 문자 체계(DBCS, Double-Byte Charactor Set)라 부른다. 그러다 보니 알파벳 위주의 문자 체계를 가진 유럽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도 8비트 컴퓨터를 제법 많이 볼 수 있었던 것과 다르게, 이들 국가들의 언어 처리에 8비트 컴퓨터는 성능상 어려움이 있어 상대적으로 16비트 컴퓨터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4.1. 한국
한국의 경우 1990년대에 들어서야 컴퓨터가 서서히 대중화되었는데[6] IBM PC 호환 기종의 보급이 상대적으로 무척 빨랐다. 거기에 한국 특유의 교육열도 한몫했는데 1989년에 교육용 PC를 정할 때 학생용으로 IBM PC XT 호환 기종, 교사용은 IBM PC AT 호환 기종으로 결정했다. 당시에 다가오는 21세기는 정보화 시대가 될 것으로 이미 예상하고 있었고 이 흐름에 동참하려면 컴퓨터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특히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용 PC 사업에서 IBM PC 호환 기종으로 결정되자 기존의 8비트 시장은 급격하게 위축되고 그 동안 부진하던 IBM PC 호환 기종 시장이 급성장하였으며 거기에 맞춰 컴퓨터 산업이 8비트에서 16비트 위주로 재빠르게 재편되었다. 애플과 MSX 호환 기종이 나눠 가지고 있던 시장은 1989년 이후 단 1~2년 만에 IBM PC 호환 기종으로 통일되었다.물론 이는 교육열보다는 컴퓨터 제조 기업들의 로비로 인해 결정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8비트 기종의 경우 1987~89년 당시에 애플 II 호환 기종은 삼보 트라이젬과 효성 PC-8000 정도를 제외하면 세운상가에 있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제조하였고 MSX는 한때 가전 3사에서 다 뛰어들었지만 이쯤엔 대우전자에서만 만들고 있었다. 삼성전자와 금성사(현 LG전자)에서는 1983년부터 SPC 시리즈와 금성 패미콤 등 일본 8비트 컴퓨터 모델을 들여와 교육용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이 무렵에는 시장 판도가 MSX와 애플 양대 기종으로 고착되어 밀려나 버린 상황이었다. 그래서 판을 한 번 리셋하는 쪽이 유리했다 보니 이런 얘기가 나올 만했다. 현대전자처럼 교육용 시장에 신규 참가를 바라는 기업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그덕에 한글 MS-DOS도 나왔고, 대기업 컴퓨터에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글 MS-DOS의 한글 표현 방식은 기본 메모리에 상주해(TSR, Terminate and Stay Resident) 완성형 한글(KS C 5601)을 표시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기본 메모리가 영어 DOS보다 적었던 데다가[7] 텍스트 모드를 후킹해서 그래픽으로 뿌려주는 방식의 특성 상 속도도 반응성도 약간 느려서[8] 대다수 사용자들은 그냥 영어 MS-DOS를 사용했다.[9]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새 버전 DOS가 나와도 한국어판 DOS는 버전업이 한두 달 늦었다. 이 때문에 한국 프로그래머들은 허큘리스 그래픽 카드의 그래픽 모드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한글을 표시하는 유틸리티를 개발해 밑에 서술한 일본의 자국어 표시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해결했다. 대표적으로 아래아 한글과 이야기가 그렇다.[10] 그리고 태백 한글 바이오스는 대부분 확장 메모리 영역에 상주해 적은 기본 메모리로 한글을 표시하기도 했고[11], 도깨비는 확장 카드를 통해 적은 기본 메모리로 한글을 깔끔하게 구현했다.[12]
4.2. 일본
일본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 이유로 고해상도 그래픽 기능이 필요했으나 한국과 다르게 1980년대 당시 일본의 컴퓨터 설계 기술은 미국 다음이었고, 그래서 PC-9801을 비롯한 고해상도 그래픽 기능을 넣은 독자적인 아키텍처의 컴퓨터들을 NEC와 샤프, 후지쯔, 히타치 같은 여러 기업에서 설계 및 생산해 발매했다. 더구나 1980년대는 일본 거품 경제 전성기라서 온갖 희한한 기능으로 무장한 고가의 자국 컴퓨터들도 잘 팔렸다. 그 결과 한 기업에서도 가정용, 업무용으로 서로 다른 아키텍처의 16비트 컴퓨터[13]를 출시하는 등 잘라파고스화의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IBM 조차도 일본 내수용으로 내놓은 멀티스테이션 5550은 1024 x 768 해상도의 독자적인 그래픽 모드 및 IBM PC와는 호환되지 않는 독자적인 아키텍쳐를 썼으며, IBM PCjr의 현지화 사양인 IBM JX는 720 x 512 해상도의 일본 전용의 독자적인 그래픽 모드를 사용하였으며 이후에 나온 PS/2의 일본 현지화 사양인 PS/55도 일본 전용의 1040 x 725 (텍스트), 1024 x 768 해상도의 8514/A나 XGA와는 호환이 안되는 독자적인 그래픽 모드를 사용했었다.[14] 외려 한국과 정반대로 IBM PC 모델인 멀티스테이션 5550과 PS/55, PS/V[15]조차 PC-9801과 비교해도 가격면에서도 전혀 경쟁력이 없어서 처참히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같은 IBM PC 호환 아키텍쳐를 썼음에도 제조사 마다 일본어 지원을 위한 독자적인 고해상도 그래픽 모드를 따로 쓰다 보니 같은 IBM PC 호환기종 끼리도 제조사가 다르면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가 생겼다.[16]일본에서는 그동안 IBM PC 호환 기종 컴퓨터들은 독자적인 그래픽 모드를 사용한 일본 IBM의 기종들을 비롯하여 일본어를 지원하는 방식이 중구난방이라서 호환성에 문제가 있었거나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서 인기가 저조했다가 ' DOS/V'라는 이름의 표준 VGA 그래픽 모드를 사용하는 일본어 지원 DOS가 나오고 나서야 점유율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1990년 10월 최초 버젼인 DOS J4.0/V 발매 당시에는 IBM 5535-S라는 386SX 프로세서에 640 x 480 해상도의 VGA를 탑재한 랩탑PC 전용의 OS로 내놓아서 따로 판매하지 않았으며, 일본 IBM에서도 자사 기종의 판매에 악영향이 미치는 것을 우려해 오직 번들 형태로만 판매하고 타사에 판매할 계획이 아예 없었으나, 이후 이 DOS J4.0/V가 ET4000 같은 일반적인 VGA를 사용한 타사의 IBM PC/AT 호환 기종에도 구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알려지고, 타사에도 판매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듬해 부터는 타사로의 판매도 허용이 되었다. 특히 1992년 10월 컴팩이 일본시장에 내놓은 IBM PC/AT 호환기종인 ProLinea 3/25zs는 엔트리 모델이 386SX 25MHz 프로세서를 장착하고도, 386SX 16MHz급인 PC-9801US(248,000엔)의 절반에 불과한 128,000엔 이라는 파격가에 내놓으면서 당시 일본의 PC업계에서는 쿠로후네 사건에 비견될 정도로 PC 시장을 뒤흔든 사건인 컴팩 쇼크가 발발되어 경쟁사들도 가격 인하를 하게 되면서 일본서도 IBM PC 호환기종들의 점유율이 크게 늘게 되었다. 이 기종을 대개 'DOS/V'로 불렀으며 나중에는 아예 "DOS파츠"라 하여 " 조립용 부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리잡았다.[17]
일본에서 IBM PC 호환 기종이 주류로 자리잡게 된 것은 윈도우 95가 나오면서부터이다. 당시 PC-9801이 오랫동안 일본의 컴퓨터 사용 환경을 만들었으나, 윈도우 95가 나오면서 그것들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도 거품 경제가 끝나 잃어버린 10년이 되면서 표준화된 생산 방식으로 원가를 낮춰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된 동아시아(한국[18], 대만, 홍콩, 중국[19])제 IBM PC 호환 기종들이 일본에서의 전환에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여파로 인하여 후지쯔는 FM TOWNS를 1997년에 단종시키고 IBM PC 호환기종인 FMV 시리즈로 완전히 갈아탔고, NEC도 1996년에는 Express 5800이라는 IBM PC 호환기종 서버를 내놓다가, 이듬해인 1997년에는 결국 PC-98NX라는 일종의 IBM PC 호환기종을 내놓으면서 이쪽을 주력 라인업으로 전환하였고, 종전의 PC-9801/9821 라인업은 레거시 장비나 소프트웨어를 유지해야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군으로 대폭 축소하게 되었다.
5. 관련 문서
[1]
하드웨어 직접 제어가 중요한 산업용 컴퓨터는 비록 CPU는 최신형을 썼더라도 ISA 슬롯을 달고 나오고 DOS를 실행할 수 있도록 CSM 지원이 되는 UEFI를 사용한다.
[2]
95년쯤 되면 IBM이 IBM PC 아키텍처의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에서 윈텔은 물론 각종 호환 기종 업계에서 만든것들이 사실상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IBM이 오히려 이를 채용한 것. 심지어 핵심인 BIOS조차 대표적인 호환 BIOS 기업인 AMI나 Phoenix 등에서 만든 것을 장착한 IBM 메인보드도 있었다. 이쯤 되면 IBM이 만든 IBM PC 호환 기종이라고 해야 될 듯. 나중에는 아예 호환 기종 기업들이 OEM으로 기계를 받아 IBM 로고를 붙여 팔기도 했었는데 IBM이 OEM사에 요구한 것은 외관 디자인뿐이었다.
[3]
PCI도 IBM이 아니라 인텔에서 IBM 규격을 대체하고자 민든 규격이다.
[4]
그러나 IBM PC 기능이 하드웨어 에뮬레이션이 되기 시작한 역사는 이미 최소 80386부터로 꽤 오래되었다. 칩셋에서 인텔 8253, 인텔 8255 같은 칩을 에뮬레이션하기 때문이다.
[5]
CSM는 메인보드 펌웨어의 지원 여부에 따라 갈리는 것이고, CPU와 칩셋 자체는 여전히 16비트 하위 호환 기능을 지원하고 있으므로, CSM 기능을 지원하는 펌웨어로 갈면 여전히 호환이 된다. 즉 소프트웨어적 문제이다. 하드웨어는 여전히 IBM PC에 기초하고 있다. x86의 CPU는 오직 1MB의 메모리 주소에만 접근할 수 있는 실제 모드에서 시작되며(바로 보호모드로 들어가긴 함), 심지어 그 1MB 중 하위 640KB를 제외한 384KB는 지금도 비워두고 있다. 다만 이 또한 이제 사형선고를 받은 상황인데 실리콘 레벨레서 16비트, 32비트 네이티브 지원을 삭제하고
AMD64파트만 남겨두는
X86S가 도입되면 소프트웨어는 물론이고 하드웨어 레벨에서 IBM PC 호환이라는 말이 아무 의미 없어질 것이다.
[6]
엄밀히 말하면 컴퓨터가 완전히 대중화된 것은 1999년
국민PC 사업 때부터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7]
'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바이오스를 사용하는데 기본 메모리에서 40~50 KB 이상을 혼자 점유한다. DOS 특성 상 기본 메모리가 640 KB였기 때문에 PC 게이머들에겐 기피 대상이었다. 다만 hbios /u(또는 hcode /e, hbios /e, mshbios /u) 옵션을 줘서 실행하면 깔끔하게 삭제되어 이를 아는 이들에겐 별 문제가 안 됐다.
[8]
가산 한글마당 같은 하드웨어에서 한글 표시를 지원하는 한글 카드도 있었고 삼성 알라딘 계열의 경우 하드웨어 한글 표시가 가능한 CGA 혹은 VGA 호환 칩을 내장하고 있었다. 이런 하드웨어 방식인 경우 표시 속도가 떨어지지 않았다.
[9]
특히 S3 Graphics 계열 그래픽 카드를 쓰는 사람에겐 기피 대상이었다. 화면이 아래로 늘어나면서 잘려나가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아예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Windows 3.1를 설치할 때 상용 한국어 바이오스를 설치하고 해야 한다.
[10]
8비트 시절부터 워드프로세서의 추세가
WYSIWYG이어서 그래픽 모드를 사용하는 경향은 아래아 한글 뿐만이 아니었다. 한편 PC 통신 프로그램은 유닉스 터미널 환경을 똑같이 모방(Emulate)해야 하는데 텍스트 모드로는 그럴 수 없어 반드시 그래픽 모드로 사용해야 했다. 다만 단일 작업 환경에서의 터미널 에뮬레이션이다 보니 덜 까다로웠다.
[11]
태백소프트에서는 이를 두고 스텔스 기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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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태백 한글 바이오스와 다르게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 바이오스는 일부 그래픽카드(예: S3 Graphics 계열)에서 호환성 문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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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소프트웨어가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후술하는대로 일본 IBM 조차도 멀티스테이션 5550과 IBM JX의 아키텍쳐가 달라서 소프트웨어 호환이 되지 않았으며, PS/2를 기반으로 한 PS/55 또한 전작인 멀티스테이션 5550과의 호환성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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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이러한 그래픽 모드는 오직 일본 IBM의 기종에서만 쓰였고, 일본 내에서도 점유율이 미진했기에 PS/2의 VGA 처럼 서드파티 업체들이 리버스 엔지니어링에 나서지도 않아서 타사의 IBM PC 호환기종에서는 절대로 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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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한국 IBM에서도 이들 기종을 판매했는데, 본사인 미국 IBM의 기종은 2바이트 문자를 표시하기 어려워서 같은 2바이트 문자권인 일본 IBM의 기종을 수입해서 한글화 하여 판매했었다. 물론 이쪽 역시도 비싼 가격으로 인하여 일부 기업에 판매되는거 외에는 판매량은 많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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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S/V 출시 이전에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AX 아키텍쳐 라는 EGA를 기반으로 640x480으로 독자적으로 해상도를 확장하고(VGA와의 호환성은 당연히 없었다) DOS에서 일본어 지원을 위한 표준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이 역시도 일본내의 IBM PC 호환기종을 생산하는 모든 업체들이 참여한것도 아니고, 역시나 외국 소프트웨어와의 호환성 문제가 있어서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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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양판점인 요도바시 카메라나 빅카메라, 소프맙 등의 홈페이지로 가면 'DOS/V 파츠' 또는 'DOS 파츠' 카테고리가 보이는데 들어가면 내장형 하드 디스크부터 최신형 CPU, 전원 공급 장치, 케이스까지 몽땅 찾을 수 있다. 물론 각각의 하위 카테고리로 각 부품을 정렬할 수도 있다. 또한 컴퓨터 전문 대형 판매점인 '도스파라'는 'DOS/V' 또는 'DOS/J'에 "파라다이스"를 합친 이름이다. 당연히 조립용 부품과 조립 PC를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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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삼보컴퓨터는 일본 소텍컴퓨터와 컴퓨터 납품 거래를 맺으면서 PC들을 일본 시장에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하여 잠깐 대박을 친 적이 있다. 그러나 1999년 삼보컴퓨터의 미국 합작 회사였던 eMachines의 eOne을 일본에 팔면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eOne의 조악한 품질과 미흡한 사후 지원으로 일본 소비자들의 비난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iMac G3와의 디자인 유사성으로 애플이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삼보컴퓨터는 이 여파로 eOne의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이후에도 소텍의 컴퓨터 품질 문제와 미흡한 사후 지원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었고 일본에서 이를 두고 '우소텍', '総鉄屑'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2006년 소텍코리아의 철수 이후 삼보컴퓨터는 일본과의 관계가 끊기면서 수출을 중단하고 흑역사가 되었다. 그래도 꽤나 많이 팔린 것인지 그때 판매된 소텍 PC들이 한동안 일본 야후 옥션 등지에 꽤나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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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레노버가 그렇다. 레노버는 일본의 3대 컴퓨터 회사,
NEC,
후지쯔,
샤프 중 NEC와 후지쯔의 PC 사업들을 인수해 노트북을 비롯한 일본 PC 시장의 선도자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