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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13:04:14

호렘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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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제18왕조 제15대 파라오
호렘헤브
Horemheb
파일:Horemheb.jpg
<colbgcolor=#decd87><colcolor=#A0522D> 이름 호렘헤브(Horemheb)
출생 미상
사망 기원전 1292년
재위 기간 이집트 파라오
기원전 1319년 ~ 기원전 1292년
(약 27년)
전임자 아이
후임자 람세스 1세
무덤 왕가의 계곡 KV57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clearfix]

1. 개요

정식 이름은 호르-엠-헤브.[1]

제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가 된 인물이며 원래 평민이었다. 본래는 투탕카멘이 생전에 정한 후계자였으나 아이가 선수를 쳐서 밀렸고 아이와 그가 정한 후계자인 낙트민(Naktmin)이 모두 고령으로 사망하여 그 뒤를 이었다.

2. 생애

평민 출신으로 군대에 들어가 실력자가 됐지만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정치생활은 투탕카멘 치세에 시작한 걸로 보이는데 멤피스에 있는 예배당에 왕의 옆에 서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처음에는 외교관(이집트 외교 분야의 왕의 대리인)이었고 누비아 지역의 주지사들을 방문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 덕분에 미암(Miam)의 군주가 역으로 투탕카멘의 궁정을 방문했으며 당시 쿠시총독이었던 후이의 무덤에 이 사건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이후 투탕카멘 아래에서 빠르게 승진하여 군사령관과 파라오의 조언자 직책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던 걸로 보인다.

아마르나 시기 이후로 이어진 이집트의 혼란을 수습하고 안정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아멘호테프 4세 이후 어린 투탕카멘이 왕위에 올라서 후사도 없이 죽으면서 외척인 아이가 파라오가 되는 등 파라오의 권위가 실추된 것을 우려해서 아들을 낳기 위해 노력했다. 첫 번째 부인 아메니아[2]는 아이가 없었고 두 번째 아내 무트노지메트[3] 임신 중 사망[4]했으나 무트노지메트 소생이 아닌 다른 아들과 친척이 있었다. 오히려 그가 19왕조의 존경을 얻은 건 아들이 있음에도 람세스에게 왕위를 계승한 점이다. 람세스의 아버지는 군사령관 세티로 어쩌면 호렘헤브는 람세스 아버지 세티의 밑에서 군대에 있었던 인연을 통해 람세스와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호렘헤브가 18왕조의 마지막 파라오가 아니라 19왕조의 창건자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공식적인 치세는 무려 59년이나, 그 중 30년은 그의 전임자들인 아케나텐, 스멘크카레, 투탕카멘, 아이의 치세를 가로챈 것이다. 그들을 이단 파라오로 규정하고 공식 파라오 명단에서 삭제했기 때문인데 투탕카멘은 기록말살까지는 가지 않았다. 그는 왕가의 계곡에 있는 거대한 KV57(57호 무덤)에 안장되었으나, 도굴꾼들에 의해 부장품이 약탈당하고 석관과 기구들이 박살나는 수모를 입었다. 그의 미라는 복구를 거쳐 19왕조 투스레트 여왕과 20왕조 세크나크테의 무덤(KV14)[5]으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벽에 적혀있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된 지 알려지지 않았고 현재도 공식적으로 그의 미라로 판명된 미라가 없다. 다만 그의 무덤 내에서는 4~5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그의 가족들로 보인다.

그의 무덤은 2개 존재하는데 한 곳은 관리 시절에 사카라에 건설했던 무덤으로, 19세기에 재발견되었으나 발견한 이들이 미술품을 노리는 도굴꾼들이라 부조만 잘라내서 유럽 각지의 박물관으로 팔아버렸고 정식 발굴을 거치지 못하고 다시 잊혀졌다가 1970년대에 다시 찾아내서 정식 발굴 작업을 거쳤다.

사카라의 무덤은 관리 시절에 새겼던 자신의 부조에 우라에우스를 추가하는 조치를 취했던 걸 볼 때 파라오에 즉위한 후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한 신전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에는 후계자(iry-pat), 왕의 오른편에 있는 부채를 드는 자와 군 총사령관 같은 고위직책을 맡았음을 투탕카멘의 카르투슈와 함께 새겼고, '명예로운 황금'을 투탕카멘에게서 하사받는 장면도 있다.[6]

이중 후계자라는 직책은 무덤에서 단독으로 쓰인 경우가 많아서 학자들은 이것이 투탕카멘이 생전에 호렘헤브를 공식적인 후계자로 지목했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 그리고 투탕카멘의 무덤에 그려진 그의 장례식을 묘사한 벽화에서 두 재상들 사이에서 장례식을 지켜보는 인물이 그려져 있는데 호렘헤브일 가능성이 높다. 비록 아이나 마야같이 투탕카멘의 무덤에 부장품을 기부한 기록은 없으나 사망한 파라오의 관을 운구하는 관리들 중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인물도 호렘헤브로 추정되므로 그가 투탕카멘의 장례 집전 책임자였으며 그만큼 차기 파라오에 가장 가까웠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선수를 쳐서 파라오에 즉위했고, 호렘헤브는 아이가 너무 고령이니 얼마 못 가고 죽을 것이라고 예상해 아이 생전에는 군사력을 쥔 상태로 만족하다가 그가 사망한 후 파라오에 등극한 것으로 보인다. 투탕카멘만 기록말살을 피한 이유도 자신을 출세시켜줬고 차기 파라오 후보자로 임명해줬으니 호렘헤브 입장에선 굳이 적대할 이유가 없어서 파라오 명단에서 삭제하는 걸로 끝냈던 것이다.

왕가의 계곡에 조성되었던 파라오 즉위 후의 무덤은 1908년 영국의 에드워드 에어튼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미 고대 시절에 탈탈 털려서 남아있는 유물이 거의 없었다.

3. 대중매체

하늘은 붉은 강가에서는 이집트의 군 사령관이자 우세르 람세스의 상관으로 등장하며, 작품 중간에 이집트 파라오가 된다. 람세스에 비해서는 능력이 상당히 부족해서 무르시리의 좋은 먹이감이 되어 준다. 사실 작중 모습을 봐도 아주 무능하거나 성격이 나쁘게 묘사된 것은 아니며[7]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충분히 건실하고 믿을 만한 지휘관이다. 그냥 적국 대장 적국 대장 마누라 직속 부하가 먼치킨이라 비교 대상이 안 좋아서 그렇지... 람세스가 유리를 이집트로 데려갔을 때 유리를 알아볼 뻔했지만 람세스의 재치로 무사히 넘어가기도 했다.[8] 이 장면에서 아내인 무트노지메트도 잠깐 등장한다.

빅터 마추어가 주연한 영화 이집트인[9]에서는 치즈 장사 아들인 평민 출신에서 군사적 능력으로 왕위에 오른 야심가이자, 의사 출신의 주인공인 친구와 신관들과 모의해서 선왕을 암살하고[10] 친구를 배반한 것으로 묘사된다. 친구[11]와의 우정도 왕실에 대한 충성도 버린 채 친구의 애인 무트노지메트와의 정략결혼으로 왕위에 오르고 정통성이 있는 친구를 추방하는 결말.

미카 왈타리의 소설 '시누헤'에서는 시누헤의 친구로, 아예 중심인물로 나온다. 여기서는 호렘헤브의 정치적, 군사적 역량이 대단히 강조되어 유능한 인물로 나오는 편.[12] 실제 역사에서 호렘헤브는 아마르나 시기의 혼란을 다독인 인물이고 작중에서도 이렇게 묘사되나, 아마르나 시대를 이끌어낸 아케나톤에 대한 감정은 몹시 미묘한 편. 아케나톤의 이상을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현실 감각이 없는 아케나톤이 싸지른 똥을 다 치우느라 아케나톤에게 넌더리를 내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자신이 보호해야 할 파라오로 여기고 있다. 마지막에는 이집트를 위해 아케나톤을 독살하나 마지막까지도 독살된 시신을 자신의 옷으로 감싸준다. 아케나톤의 여동생인 바케타몬에게 한눈에 반했으나 공주인 바케타몬은 신분이 낮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고[13] 급기야 그녀 오빠인 아케나톤을 호렘헤브가 독살, 그녀를 강제로 부인으로 삼은데다 부부 강간으로 둘째를 만들자[14] 참다못한 바케타몬이 온 동네 남자들과 다 자고 다니는 식으로 호렘헤브에게 복수한다. 주인공인 시누헤의 말로는 그 갈등을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파라오로서 일한 것 같다고.

[1] ' 호루스가 축제를 열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2] 출신은 알려진 게 없지만 아이의 딸이자 네페르티티의 동생이라는 설이 있다. [3] 네페르티티의 동생이다. [4] 미라 태아가 들어있었다. [5] 원래는 투스레트의 무덤이었으나, 세크나크테가 투스레트를 축출한 후 그녀의 왕명과 초상화를 지우고 재활용했다. [6] 명예로운 황금(Gold of honour)는 파라오가 신하에게 황금으로 된 목걸이를 하사하는 것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관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였다. [7] 다만 황태후 네페르티티의 전횡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8] 카일의 후궁인 유리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 본 거 같은데...'하고 말을 걸었으나 '파라오여, 너무나도 상투적인 유혹의 문구입니다'하고 농담하는 바람에 입을 다문다. [9] 국내에 출시된 해적판 DVD 제목은 무려 '이집트의 왕자'. [10] 사실 선왕인 아이 자신도 죽기를 바라고 주인공에게 자살약을 요구했다. [11] 스포일러지만 주인공은 어려서 강가에 버려진 아이로 나중에 무트노지메트의 대사에 따르면 선왕인 아멘호테프 4세의 미라와 얼굴이 상당히 닮았다고 한다. 즉 왕가의 사생아. [12] 작중에 전쟁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지휘권은 호렘헤브가 다 쥐고 있으므로 대부분 지휘한 것으로 나온다. [13] 사실 작중 묘사로 보면 원래는 좀 끌리긴 했던 것 같다. 자존심 때문에 부인했던 모양. [14] 부인이 첫째아들을 낳아준 후 자기는 할만큼 해줬으니 더이상 나에게 뭘 요구하지 말라고 했는데 약을 먹여 재워놓고 강간해서 임신시킨다. 물론 부부 강간이나 데이트 강간의 개념이 없던 고대라는 점은 참작해야 하나,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오빠를 죽인 남자가 힘으로 자기를 부인 삼은 것도 모자라 강간까지 하니 분노할 만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