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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구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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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하는 절대불가변의 근거.
지구를 상공 3600만 미터에서 찍은 사진이다. 천리안 2A호가 촬영하였다.
파일:external/www.nasa.gov/250521main_GPN-2001-000009_1600_946-710.jpg
아폴로 8호 궤도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
일명 지구돋이( Earthrise)라 불린다.[1]
1. 개요2. 내용3. 고대4. 중세와 그 이후5. 중국과 조선의 우주관6. 현대7. 관련 문서

1. 개요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W.H.I.T.E - 네모의 꿈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동요 앞으로
지구 구형론(地球球形論 / doctrine of spherical earth)은 우리가 딛고 사는 땅(Earth)이 공처럼 둥글다는[2] 주장이자 이론이다.

2. 내용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이지만 과거에는 이것이 당연하지도 않았고, 보편적 지식도 아니었다.

사실 구형이든 평평하든 크기가 너무 크다면 지구 위에 서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중력도 그렇고 여러 요소 때문에 겉보기에는 평평해보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후에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도 밝혀지게 되었다. 지구가 도는 속도가 느린 건 아니지만 이 역시나 지구가 너무 크고 일정한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에 전혀 느끼지 못할 뿐이다. 또 애초에 이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지란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과거의 사람에게 지구란 단어를 말하면 그 지구가 아니라 그냥 다른 구체를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땅덩어리를 한자 지구()라는, 이름부터 구형임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이렇게 된 건 과학적 우주론과 지구 구형론이 널리 퍼진 이후이며[3], 실학자들은 지구 구형론을 지구론(地球論)이라고 칭했다. 땅()이 둥글다()는 이론()인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관찰과 일상 경험만으로는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 길이 없었으니, 땅은 평평하다고 믿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지구의 곡률은 너무 완만해서 지표면에서는 눈치채기 어려우며, 또 땅이 평평하지 않고 공처럼 둥글다면 당장 지구 반대편 아래쪽 사람들은 어떻게 땅에 붙어사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즉, 지구가 둥글다는 건 보통 사람의 자연적인 직관과 일상 경험에는 어긋나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대인들이나 교육을 받지 못한 근세 이전 일반 백성들 등 과학적 지식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땅은 평평하다고 굳게 믿었고 지구 구형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현대인도 교육받지 못하면 마찬가지다. 땅은 평평하다고 굳게 믿어오던 사람이나 사회에서 지구 구형론은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사회질서의 권위를 뒤흔드는 일대의 충격이자 개벽인 것이다.

그래서 학생에게 과학을 교육하는 맨 첫 단계는 우리가 딛고 서있는 땅이 평평하지 않고 공처럼 둥글다는 과학적 사실을 직관이나 경험적 선입견에는 어긋나지만 수평선의 배나 월식 때 지구 그림자 등 경험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들어 과학적 증거와 합리적 설명으로 설득하여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다.

3. 고대

파일:external/s4.postimg.org/4018.jpg

옛날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땅이 평평하고 땅의 가장자리로 가면 낭떠러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4] 즉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면 보이지 않는 이유가 해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탈레스(기원전 624-기원전 545?)가 지중해를 항해하면서 관찰한 땅의 모양을 근거로 땅은 원형 방패처럼 가운데가 부풀어 오른 원반형이라고 말하며 주위의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로 빠뜨렸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기원전 570-기원전 490)였다. 그는 지구가 둥글며, 완전한 구형이라고 주장했다.

적도 지방의 지름이 극점의 지름보다 약간 길다. 이 차이는 사실 20km 안팎이지만 GPS에서는 중요하다. 지구의 반지름이 대략 6400km이니 구의 중심을 포함하는 단면 기준으로 대략 0.16% 정도 어긋나는데, 이정도 오차라면 문구점에서 파는 컴퍼스로 그린 원보다 더 완전한 원에 가깝다. 지구가 자전하기에 생긴 원심력으로 적도 쪽이 약간 부풀었기 때문이다. 이는 지구 자체가 '완전한' 강체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5] 피타고라스 시대에는 수학 및 자연과학이 철학 및 종교와 구분되지 않았으니, 지구가 둥글다는 건 알았지만 타원 같은 불완전한 도형이 아니라 우주의 섭리를 드러내는 완전한 도형인 구여야 한다고 믿었던 것.

그러나 피타고라스 시대 사람들은 원이든 타원이든 간에 지구가 둥글다는 생각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럼 물건은 위에서 아래로 땅으로 떨어지는데, 지구가 둥글면 지구 반대편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떨어진다'는 거냐?" 하는 식이었다. 물론 위와 아래는 중력에 의해 정해지므로 지구 한 쪽에서 반대쪽의 위아래를 판단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다소 종교적이고 이념적이었던 피타고라스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기원전 322)는 훨씬 실제 관찰 자료에 근거한 주장을 폈다. 월식 때 달에 생기는 지구 그림자가 둥글다는 것, 그리고 남쪽 지방으로 가면 북쪽 지방의 하늘에서 볼 수 없었던 별자리가 보이고, 수평선 너머에서 배가 다가올 때 돚대의 끝이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 등을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로 댄 것이다. 모든 것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지점으로 모이는 것인데, 그렇게 물질이 모이면 구형이 되지 않겠느냐는 논리도 개진했으나, 아직까지 현대과학의 방법론이 정립된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만유인력과 같은 수학적 이론으로 정립되기보다는 그냥 지상의 물체[6]의 '본성'이라고 치고 넘어갔다.

파일:에라토스테네스의 지구 둘레 측정.png

아리스토텔레스가 체계화된 이후 헬레니즘 천문학계에서는 지구가 구형이라는 설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에라토스테네스는 한술 더 떠서 기원전 240년에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기도 했다. ' 하지(북반구에서 해가 가장 높게 올라오는 날)날 정오에 시에네(현재 명칭은 아스완)에서는 해가 머리 위에 있어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지만,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을 토대로 지구의 둘레를 25만 스타디아[7]라고 계산했다.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여러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오차가 5~15%[8]밖에 되지 않는 정확도를 자랑했다.

참고로 스타디온의 길이 외에도 에라토스테네스의 계산에 오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에나와 알렉산드리아 간에는 약 3도 정도의 경도 차이가 있는데, 이를 알 방법이 없었으므로 같은 경도에 있는 걸로 가정했다. 시에네(아스완)의 위도는 24.1도로, 북회귀선(23.27도)에 비해 1도 가까히 북쪽에 위치한다. 90여 km에 달하는 차이다. 정확한 경도를 구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한 시계를 이용해 이동 거리와 시간을 계산해야 하는지라, 에라토스테네스의 시대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또한 두 도시 간의 거리는 (하루에 걸어서 얼마나 갈 수 있나) × (며칠 걸리나) 수준의 당시 측정 기술로는 10~20% 오차 내에서 알 수 있는 게 전부였을 것이다. 당시 도출한 값은 5000스타디아(185 m 기준 925 km). 실제 거리는 844 km이다.[9]

의외로 신화에서도 지구는 구형으로 빚어졌다고 나오는데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에서도 나오는 대목이다.[10]

4. 중세와 그 이후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거부하고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다는 잘못된 인식이 현대에 널리 퍼져 있으나, 중세시대에도 관련 지식에 접근이 가능한 학자들은 고대의 연구를 받아들여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이 시대에는 지동설이냐 천동설이냐가 논쟁의 중심이며,[11] 헬레니즘 시대에 이미 완성된 천동설은 지구 구형설[12]을 전제로 성립된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 히에로니무스, 암브로시오 같은 기독교의 초기 교부들도 모두 지구가 둥글다는 데 동의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증명을 받아들여 지표면의 다른 곳에서 별자리의 위치가 변하는 것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로저 베이컨도 자신의 저서에 지구가 둥글다고 분명히 적었고, 캉브레의 대주교였던 피에르 다이이도 지구가 구형이라고 말했다.

15세기 말에 이탈리아의 천문학자인 토스카넬리는 지구 구형설을 주장하며, 유럽 아시아 사이에는 좁은 바다가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또한 독일의 베하임은 최초의 지구의를 만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지구 구형설에 입각한 최초의 해도가 작성되었다. 학자들 뿐만 아니라 자국어로 글을 쓰던 대중작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장 드 맨더빌 여행이나 단테 신곡에는 세상이 둥글다는 내용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지구를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헛소문이 만들어져 유포된 것은 19세기 일이다.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미국 작가인 워싱턴 어빙이다. 그는 1828년에 《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삶과 항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 콜럼버스는 지구 구형설을 받아들인 근대적 지식인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 당대의 관료들과 종교인들 대부분은 지구를 평평하다고 생각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로 묘사되었다. 그는 콜럼버스라는 주인공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린 것이다. 이런 잘못된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교과서에까지 실렸다.

본래 콜럼버스의 계획이 격렬한 반대를 받은 것은, '세상이 평평하다'는 선입견 때문이 아니라 콜럼버스가 계획한 항해의 거리 때문이었다. 콜럼버스는 지구의 둘레를 실제보다 너무 짧게 계산해서 항해 거리 또한 그만큼 짧게 계산했는데, 그렇게 날려먹은 거리가 무려 지구 반 바퀴 정도나 되었던 것.[13] 지구의 둘레를 비교적 정확히 알던 당시 학자들과 관료들은 콜럼버스의 계획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당연히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몰랐으며, 콜럼버스를 놔두면 보나마나 바다 한복판에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콜럼버스의 계산대로라면 아메리카 대륙의 위치에 인도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과 인도의 거리는 지구 반바퀴에 가까울 정도로 콜럼버스는 당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말도 안되는 오차를 내버린 것이었다. 덤으로 이런 오류투성이 이론을 내세우면서 엄청난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던 콜럼버스의 행동은 사기꾼과 유사했다. 어찌보면 그의 항해를 '뜯어 말린 것'은 그 당시에도 지금 시점에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작 콜럼버스는 나중에 아메리카 대륙이 자신의 이론과 맞지 않자 지구구형론을 부인해버렸다.[14]

이렇듯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랜 옛날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흔히 중세 시대 사람들의 가졌을 법한 이미지로 많이 등장하는 '바다 건너에 세상의 끝이 있고 그곳에 악마나 지옥이 있다'는 식의 믿음은 실제로는 없었다. 다만 그 시대 지리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주변부나 남북극 부근 등 알려지지 않은 지역(Terra incognita)이나 위험한 지역(Terra pericolosa)에 "여기에는 용이 산다"(Here be dragons) 식으로 지도에서 얼버무리기도 했다. 학자들이 이런 잘못된 상식을 고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 사람들의 편견이 워낙 깊게 박힌터라 고쳐지기까지는 엄청난 세월이 걸릴 듯 싶다.

근세 대항해시대에 이르러서는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이 이끄는 선단이 세계일주에 성공[15]함으로써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증명하였다.

하지만 "세계가 거대한 거북의 등껍질 위에 있다." 하고 우기는 중산층과 새로운 과학지식을 강연하는 연사의 이야기가 여전히 일화로 인용될 정도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에게 보급되지는 못하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구의 모양은커녕 읽고 쓰는 법도 모르고, 평생을 살며 만나는 그나마 지식인 비슷한 사람은 시골동네 신부가 고작인 경우가 흔했다.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계층도 천문학자라거나 원양항해사와 같은 직업을 갖지 않는 한, 먹고 사는 것 혹은 당시 사회에서 교양으로 취급받던 분야와 관련 없는 부분에 대해선 무지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지구구형론은 천문학이나 원양항해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때에나 필요한 것이었으므로 당대에는 교양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5. 중국과 조선의 우주관

일반 백성과 선비들에게 중국 중심의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은 땅은 평평하고 반구형의 우주가 덮개처럼 덮혀있다는 개천설(蓋天說)이다. 중국 주나라 시대에 나온 설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고요하다'는 천동지정(天動地靜)으로 요약되며 성리학적 우주관의 기반으로 조선의 선비나 중국 유학자 등 일반적 동양 지식인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로 믿었다. 단, 천원지방은 철학에서 형이상/형이하 혹은 무형/유형의 세계를 가르는 말로 주로 풀이된다.

한편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묵자는 지구가 둥글고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른 사람들이 묵자의 주장을 가리키는 말 중 하나가 "지구는 둥글고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기이한 주장으로만 받아들여졌을 뿐, 당시의 사람들의 우주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러다 후한시대에 이르러서는 공처럼 둥근 우주의 바다 중심에 평평한 지구가 달걀 노른자처럼 둥둥 떠 있다는 혼천설(渾天說)이라고 하는 일종의 천동설이 등장했다. 이 혼천설은 주로 천문과 역법 관리나 지도제작자 등 동양의 천문 전문가들이나 뛰어난 학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따라서 역법이나 중국 혼천의 등 천문 관측기구도 혼천설 모델을 따라 제작되었다. 조선의 혼천의도 중국 혼천의를 따라 만들어졌다. 15세기 중국판 세계지도도 두개의 반구로 나눠그려 혼천설을 반영하고 있다.[16] 혼천설은 기존의 천원지방설보다 발전된 이론이었으나 실제 천문 관측이나 지도 분야 등 관련 전문가들에 한정된 지식이고 관리 등 일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관념적으로는 여전히 평평한 땅을 반원형 덮개가 덮고 있다는 천원지방설이 우세했다.

그러다가 땅이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지구 구형론이 중국에 퍼지진 것은 마테오 리치 아담 샬등의 서양에선 온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소개되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마테오 리치와 명나라 학자 이지조(李之澡)가 공동으로 1602년에 목판으로 제작해 발간한 곤여만국전도 라는 세계지도는 명확하게 지구구형론을 반영하고 있다. 아담 샬은 구형 지구본을 포함한 천문학 지리학 등 각종 서양의 과학기술을 중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하여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지식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천문학자나 서양에 관심많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보급되었고, 근대까지는 대부분의 관리나 민중 사이에서 여전히 혼천설 아니면 천원지방설이 널리 믿어졌다. 이후 본격적으로 근대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지구 구형론이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조선인으로 최초로 서양과학을 접한 것은 청나라에 인질로 붙잡혀온 소현세자가 중국에 서양과학을 전파한 장본인인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신부와 직접 교류한 것으로 기독교와 서양과학 특히 천구의 등 천문학과 역법을 소개받고 수하들에게 이를 전수받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소현세자의 요절로 조선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소현세자가 아담 샬과 교류한 것은 1644년(인조 22년) 이며 조선에선 숙종 34년(1708년) 관상감에서 곤여만국전도의 복사본을 만들어 보급하였으니 관련 학자들이나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구구형론 자체는 어느정도 지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후 조선에도 이수광이 조선에 서양을 소개하고 중국을 통해 한역 서학 서적이 들어오거나 서양 선교사와의 접촉으로 홍대용 박제가 등 몇몇 실학자들이 지전설·지구구형설· 태양중심설(지동설) 등을 접하고 이를 주장, 전파하고 최한기가 태양중심설 및 뉴턴 역학 기반의 서양 우주론을 다룬 책을 저술한다.

하지만 이런 서양 우주론은 개천설에 근거한 주자학적 전통 세계관과 정면충돌하고 서양 중세사회에서의 태양중심설처럼 성리학 철학에 기반한 조선사회를 뒤흔들 위험 때문에 조선에는 널리 수용되지 못하고 청나라의 학풍에 영향을 받은 북학파 등 일부 실학자들에게만 전파된다. 신미양요 병인양요 무렵에도 조선관리와 접촉한 서양인들이 둥근 지구본을 보여주며 자기들 나라의 위치를 설명했지만 조선 관리들은 남반구에 사람이 거꾸로 붙어사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고 한다.[17]

조선 말기 개화기에 역관 유홍기(유대치) 등이 젊은 개화파 인사들에게 청나라 선진문물을 소개하며 지구구형론을 전파하였고 그후 개항 전후에 개화문물의 형태로 젊은 선비와 학생 등 일반적 지식인 사이에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

6. 현대

소련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1934~1968)은 아예 대기권 밖까지 나가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특히 이 문서의 제목 아래에 걸린 두 번째 사진은 1968년 아폴로 8호가 달궤도 공전중 달을 뒷면에서 나오며 핫셀브라드 중형카메라로 찍은 최초의 지구출(earthrise) 사진으로 지구도 해나 달과 마찬가지로 둥글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는 LIFE 잡지표지와 수많은 신문의 1면을 장식하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야말로 지구가 둥글다는 시각적 증거물인 셈이다. 지금은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 등에서 찍은, 대놓고 둥그런 지구의 모습이 담긴 아름다운 사진을 누구나 쉽게 검색해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하니, 2,500년 전의 피타고라스가 탄식할 만한 일이다. 이들은 미국 최초의 궤도비행에서 '지구가 둥글다'고 외친 우주비행사 존 글렌에게 항의편지를 수없이 보내기도 했다.

2014년 11월, 터키의 과학교육기술부 장관이 이슬람 과학자들 중세 암흑기의 유럽보다 더 빨리 지구가 둥글다는 걸 밝혀냈다는 발언을 했다. 잘 알겠지만 앞서 언급했다시피 중세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전의 고대 그리스에서도 지구가 둥글다는 걸 알아낸데다, 그 시대에 살았던 에라토스테네스는 그 이론을 토대로 지구의 지름까지 계산했으니 매우 무의미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무슬림 항해사들이 미대륙을 먼저 발견했다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조롱을 받고 있다.[18]

유치원생이나 초등 저학년생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그것의 실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과학교육계에서 발표된 적 있다. 예를 들면 지구에 언덕도 있고, 산도 있어서 생기는 곡면이 둥글어서 지구가 둥글다고 이해한다든지 지구를 '우리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잘못 이해한다든지.[19]

7. 관련 문서


[1] 물론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말하는 "돋이(rise)"라는 단어가 적절하지는 않으나, 단어가 주는 간지 때문인지 NASA에서도 공식 명칭으로 써먹고 있다. [2] 사실 완전한 둥근 모양은 아니고 타원면에 가깝다. 자세한 건 후술. [3] 이전에는 '곤여()'라고 칭했다고 한다. 명나라때의 '곤여도'나 조선 시대 후기에 조선에 들어온 곤여만국전도가 그 예시다. [4] 만약 정말로 지구가 평평하다면, 땅의 끝 쪽으로 갈수록 중력의 방향이 지구 중심 쪽으로 기울다가 끝에 가면 중력이 완전히 지구의 중심을 향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가장자리로 간다고 해도 떨어질 일은 없다. 물론 중력이 그런 식으로 작용하는 상태라면 지구는 스스로 붕괴되어 구형이 되어버릴 것이다. [5] 지구 정도 되는 행성 규모의 스케일에서는 개개 물질의 강도가 의미 없기 때문에 모든 물질은 유체로 가정할 수 있다. 즉 행성의 구성 성분이 어떻든 그 행성의 전체 형태에는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더군다나 흔히 이야기하는 지구 타원체(지오이드)는 유체인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다. 목성형 행성은 지구형 행성보다 타원율이 더 큰데, 가장 타원율이 큰 행성은 토성(0.098)이다.(지구는 0.003) 이유는 단순히 더 빠른 속도로 자전하기 때문이다. [6]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해, 달, 별과 같은 천상의 물체는 지상의 물체와 다른 본질을 가지고 있어서 지구로 추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7] 고대 그리스의 거리의 단위(단수형 스타디온(Stadion)). 스타디움(경기장)의 대략적인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 1스타디온은 600포데스(podes)인데, 1포데스는 성인 남성의 발 크기였다고 한다. 그리스 외에 고대 여러 국가들에서 사용되었는데, 각 국가별로 거리도 157-209 m로 다양하다. 에라토스테네스가 사용한 스타디온은 187 m로 추정. [8] 오차가 '범위'인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고대 단위 '스타디온'의 정확한 길이를 모르기 때문. [9] 지구가 완전한 구형이 아니며 적도 쪽으로 약간 부풀어 오른 타원체이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으나 이는 사실상 트집을 잡는 것에 가깝다. 지구의 극 반지름은 약 6357km, 적도 반지름은 약 6378km로 둘 간의 오차는 약 0.3%에 불과하다. 이는 1스타디온을 187m로 계산했을 때 기준 오차의 2%가 안 되게 영향을 미치는 수준이다. [10] 신들 중에서 정리와 배열을 담당한 신이 혼돈의 덩어리를 이런 식으로 나누었고, 일단 나눈 다음 각 부분들을 고정해 대지에 울퉁불퉁한 부분이 없도록 했다. 그 후 신은 땅에 집중하여 이를 커다란 구형으로 만들었다. - 열린책들 변신 이야기 13p [11] 그나마도 초기에는 천동설이 틀렸더라도 그럼 성경 해석을 지동설에 맞춰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둘 사이의 논쟁이 과열된 것은 천동설 지지 사제+학자 VS 지동설 지지 사제+학자에 정치적 문제라는 종교 VS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12] 이 땐 완전히 증명할 수가 없어서 '설'이었다. [13] 가장 유력한 설은 번역오류로 이슬람에서 쓰던 마일 단위로 지구 둘레를 산출한 9세기 아랍 천문학자 알 파르가니(라틴어 이름 알프라가누스)가 제시한 수치를 더 짧은 유럽-로마 마일로 생각해서 이런 초대형 오차가 발생했다는 것. [14] 정확히는 지구가 과일 서양배 모양이라고 주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문서 참조. [15] 마젤란 본인은 중간에 필리핀에서 원주민들이랑 싸우다 죽어 세계일주에는 실패했다. [16] 지금도 천문학에서 순전히 방향을 표현할 때 혼천설과 거의 비슷한 천구 좌표계를 쓰고 있다. [17] 이걸 이해하려면 중력과 만유인력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서양도 18세기에나 뉴턴에 의해 알아낸 사실이니 그 개념을 모르고 개념을 몰라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이상할 일도 아니다. 또한 그 전에도 마젤란이 지구일주를 한 후에야 지구구형설이 최종 증명됐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 당연히 의문이 나올 것이다. [18] 더하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말이 맞더라도 별 의미는 없다. 왜냐면 레이프 에이릭손이라는 10~11세기에 살았던 바이킹이 오늘날 뉴펀들랜드에 다녀왔다는 것이 정설급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내세운 그 오스만 제국은 레이프 에이릭손이 죽고도 200년 넘게서야 건국된 나라다. [19] 특히 과학시간이 아닌 동요 지구는 둥그니까만 듣고 끝나면 더욱 더 이해할수가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