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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7 04:23:44

아폴로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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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호 (실패) 아폴로 2, 3호 (결번) 아폴로 4–6호
(무인시험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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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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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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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8호
APOLLO 8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Apollo-8-patch.png
아폴로 8호 미션 패치
이름 아폴로 8호
호출부호 사령선: CM-103
달 착륙선: LTA-B
발사일 1968년 12월 21일
12시 51분 0초 UTC
케네디 우주센터, 플로리다 LC 39A
귀환일 1968년 12월 27일
15시 51분 42초 UTC
달궤도 시간 20시간 10분 13초
미션 기간 6일, 3시간 42초
원월점 310.6 km
근월점 111.2 km
우주선 사령선 - 아폴로 CSM-103
사령관(CDR) 프랭크 보먼[1]
사령선 조종사(CMP) 짐 러블[2]
달착륙선 조종사(LMP) 윌리엄 앤더스[3]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38px-Apollo_8_Crewmembers_-_GPN-2000-001125.jpg
왼쪽으로부터 짐 러벨, 윌리엄 앤더스, 프랭크 보먼

1. 개요2. 불가능에 도전하다3. 메리 크리스마스4. Earthrise(지구돋이)5. 갤러리6. 의의7. 여담

[clearfix]

1. 개요

아폴로 계획의 6번째 미션.[4]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지구 궤도를 완전히 벗어나 우주로 나간 미션이자,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 궤도에 갔다 온 미션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 미션의 성공과 함께 소련과의 우주 경쟁 대결 구도는 미국의 우위로 기울었다.

2. 불가능에 도전하다

아폴로 8호는 아폴로 11호 이전의 가장 괄목할 만한 미션이었다. 아폴로 8호 이전까지의 유인 우주 비행은 지구 궤도 선회 수준만 성공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계획은 달 천이 궤도 형성, 달 궤도 형성, 지구 천이 궤도 형성이라는 원래라면 몇 차례로 쪼개어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과정을 한 번에 모두 담고 있었다. 거의 도박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원래 아폴로 8호 계획은 달 착륙선을 탑재하여 시험 비행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사실 달 착륙선 이전에 새턴 V 로켓의 유인 비행 테스트부터 시행하는게 올바른 단계였다. 로켓은 한 번도 유인 비행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시간은 촉박했다. 새턴 V 로켓은 신뢰성을 어느 정도 검증받은 상태였기에 유인 로켓 발사 시험 과정은 생략했고 연구진들은 과감히 다음 단계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정작 착륙선 개발이 지연됨에 따라 원래 계획은 아폴로 9호로 미루어졌고, 아폴로 8호는 무언가 새로운 임무로 대체되어야 했다.

한편 아폴로 7호 성공 후 소련도 존드와 소유즈를 잇달아 성공시키며 미국을 위협하고 있었다.[5]

자칫 아폴로 8호 계획 자체가 목적 없이 붕 떠버릴 수도 있었기에, 폰 브라운은 사람을 태운 아폴로 8호를 아예 새턴 V에 우주인 3명이 탄 사령선만 실어서 쏘아 달까지 보내 달 선회 비행을 시킨 후 지구로 귀환시키자는 제안을 했다. 당시 이 제안은 무척 충격적인 것이었다. 달 선회 비행이라는 아폴로 8호 계획 자체의 무모함을 차치하더라도 아폴로 8호에 투입될 새턴 V 로켓은 이제 막 개발된 것으로 사람을 탑승시킨 유인 우주 비행은 한 번도 테스트해 본 적이 없었다. 아폴로 8호가 발사되기 6개월 전에 BBC 기자가 이 내용을 특종으로 보도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내용이라 오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폴로 8호 미션은 졸지에 새턴 V가 아폴로 우주선을 달 궤도로 보낼 수 있는지사령선이 자체 추진력으로 달 궤도를 탈출해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지 검증하는 초유의 빅 이벤트로 변했다. 여기에 힘을 실은 게 소련과의 우주 경쟁을 종결 시켜 미국의 우위를 세계에 확인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

당시 폰 브라운은 NASA의 기술력과,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접 개발한 새턴 V 로켓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또 그는 아폴로 8호가 성공한다면 소련 과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어 그들의 개발 열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브라운은 회의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8호 계획을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NASA에서도 매우 회의적인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절대 불가능하다고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폰 브라운은 특유의 설득력으로 시니어 멤버들을 설득했다.

그 와중에서 아폴로 7호 발사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매우 성공적으로 끝났다. 최초의 유인 아폴로 우주선의 발사는 미국 시민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아폴로 계획에서 로켓과 조종선의 기계적 성능은 완전히 문제 없음이 입증되었다. 아폴로 7호 발사 시점이 다가오면서 NASA 구성원들의 의구심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 갔다. 아폴로 7호만 성공한다면 8호도 실패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고, 마침내 아폴로 7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자 NASA의 멤버들은 8호도 성공할 것이라고 모두 확신하였다. 결국 11월 중순 NASA 전문가 회의에서 17명 가운데 16명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어 계획이 추진되었다.

그래도 대담한 미션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계획의 실패를 우려했다. 정치권에서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발사하기로 되어 있던 아폴로 8호가 만약 실패한다면 그 후폭풍이 클 것이라 우려해 아폴로 8호 연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NASA 측은 연기를 한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이렇게 하다가는 케네디 대통령이 말한 60년대 안에 달에 갔다 오겠다는 계획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예정대로 계획을 밀어붙였다.

승무원이었던 윌리엄 앤더스 조차 자신이 이 미션에서 죽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았다. 미션을 앞두고 아내에게 성공할 확률은 1/3이고, 실패하지만 살아 돌아올 확률은 1/3이고, 돌아오지 못할 확률은 1/3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도 베트남 전쟁에서 살아 돌아올 확률과 별 차이 없다고 말했고 아내도 이해해 주었다고 한다.

발사 전날 BBC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실패하여 지구로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자살을 위한 약을 준비했느냐"는 질문을 받자 빌 앤더스는 "만약 돌아오지 못한다면 점차 산소가 부족해지기 때문에 약을 먹는 것과 같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죽음을 위한 약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물론 NASA의 철저한 준비하에 진행되는 계획이지만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이 지구 궤도를 벗어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달 궤도까지 갔다 오는 사상 초유의 모험이었기에 살아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아폴로 8호 미션은 준비도 부족한 가운데 "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결행한 도박행위지만,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1968년 12월 21일에 발사된 아폴로 8호는 3일만에 성공적으로 달 궤도에 진입했던 것이다. 물론 이 사이에 프랭크 보먼이 구토를 하며 NASA 관계자들이 단체로 감기 걸렸던 아폴로 7호를 떠올리며 걱정하기도 했지만 미션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1968년 12월 24일 아폴로 8호는 달 궤도에 안착했다. 달 표면에서 약 60마일(95.5km) 상공 궤도를 25일 오전까지 약 20시간에 걸쳐 10회 선회하며 달의 표면을 촬영하고 TV로 생중계했다. 또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은 달 뒷면을 최초로 본 사람이 되었다.

달 착륙선도 없이 감행한 상태에서 사고가 나거나[6] 사령선 추진력이 생각보다 약해 달 궤도를 탈출하지 못했다면 우주 비행사들은 모두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이들은 모두 살아서 돌아왔다. 탑승한 우주비행사는 프랭크 보먼(사령관), 짐 러블(사령선 조종사), 윌리엄 앤더스(달착륙선 조종사)로, 이 중 짐 러블은 아폴로 13호 사령관[7]이 된다.

소련은 이번에도 아폴로 8호 발사일보다 12일 앞선 1968년 12월 9일 발사를 계획했으나, N-1 로켓의 불안정성과 소유즈 1호 추락 등의 이유로 취소했다.

3. 메리 크리스마스

미션의 클라이맥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찾아왔는데,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이 킹 제임스 성경 창세기 제1장을 돌아가며 읽었다. 읽은 후 이렇게 마무리를 했다. "아폴로 8호 승무원들로부터, 좋은 밤을 보내시길 빌면서 마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지구의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이 말을 듣고 NASA에 나중에 지원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다만 미국이 아무리 개신교, 가톨릭 인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지만, 국교가 없고 다양한 종교가 있다보니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에 아폴로 11호때는 종교 기도를 공개적으로 하진 못했다. 대신, 각자가 믿는 신이나 창조주에 대해 생각해보라는 말만 하고 버즈 올드린은 따로 챙겨온 성체와 포도주로 조용히 성찬식을 올렸다.

여담으로 위의 크리스마스 이브 인사 음성은 마이클 잭슨의 곡 History에 샘플링되어 수록되었다.

4. Earthrise(지구돋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지구 궤도를 벗어나 달 궤도에 갔다 온 아폴로 8호는 달 궤도에서 바라 본 지구의 사진을 다량 촬영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As08-16-2593.jpg
윌리엄 앤더스가 촬영한 지구

특히 아폴로 8호가 찍은 Earthrise(지구돋이)라는 사진은 아직도 유명하다. 일출, 해돋이라는 뜻의 Sunrise에서 해(Sun)만 지구(Earth)로 바꾼 것이다. ' 지구돋이'라는 표현은 달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달에 착륙한 사람은 관측할 수 없는데 달은 지구에 대해 동주기 자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에서 본 지구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영원히 고정된 것처럼 보인다. 즉 뜨지도 지지도 않으니 일출과 일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NASA에서는 지구돋이를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제천문연맹은 위의 사진 속 크레이터의 공식 명칭을 해당 사진을 찍은 우주인 앤더슨과 지구돋이를 합쳐 "Ander's Earthrise"라 지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NASA-Apollo8-Dec24-Earthrise.jpg
1968년 12월 24일, 지구돋이(Earthrise). 인류가 최초로 지구돋이를 촬영한 사진이다.
파일:attachment/moon_earth.jpg
달에서 본 지구. 착륙선 조종사 윌리엄 앤더스가 촬영하였다.

5. 갤러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Apollo_8_crew_leaves_Manned_Spacecraft_Operations_Building_during_countdown.jpg
발사를 준비하고있는 아폴로 8호의 승무원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Ap8-KSC-68PC-147.jpg
MLP와 함께 발사장으로 이동중인 아폴로 8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As8-16-2583.jpg
아폴로 8호에서 분리된 새턴 V 로켓의 3단 로켓 S-IVB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70px-Apollo_8_reentry%2C_December_27%2C_1968.jpg
대기권에 재돌입하는 아폴로 8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7px-Ap8-S68-56310.jpg
구조된 아폴로 8호의 사령선

6. 의의

아폴로 8호의 성공은 유인 달착륙 계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약 중 하나였다. 아폴로 8호를 통해 미국은 소련과의 치열한 우주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아폴로 미션에서 가장 위대한 성공은 최초로 달 궤도에 도달한 유인 우주선 아폴로 8호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애초에 여러 번에 나누어서 수행되었어야 했을 중요한 미션들을 한 번에 성공시킴으로써 달착륙 일정을 크게 앞당길 수 있었다. 이는 케네디가 발표한 1969년 안에 달착륙 후 귀환시킨다는 계획 실현에 일조했다.
미디어의 영향을 십분 활용했던 폰 브라운의 영향으로 TV 카메라를 싣고 간 아폴로 8호는 달 선회 비행 동안 달에서 본 지구의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아 생중계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일반 대중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일반 대중들은 아폴로 8호가 달 상공에 생중계로 촬영한 달 표면의 화면들을 보면서 인간이 달 상공까지 갔다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인류의 달 착륙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타임 지에서 68혁명의 젊은이들 대신 올해의 인물로 아폴로 8호의 우주인들을 실은 것처럼, 68혁명의 좌절과 보수파의 승리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아폴로 8호 미션에 대해 쓴 책 인류의 가장 위대한 모험 아폴로 8이 2018년 5월 국내 출간되었다.

7. 여담

참고로 2023년 11월까지는 멤버가 모두 생존 중이었다. 역대급 미션에 역대급 장수한 크루. 그리고 유독 이혼율이 높은 우주비행사들 중에 유일하게 모든 멤버가 이혼하지않고 2023년 현재까지 결혼생활을 유지중인 우주인으로도 역대급이고 가정적으로도 대단한 멤버들이다.[8]

2023년 11월 7일 사령관인 프랭크 보먼이 향년 9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로써 남은 생존 멤버는 짐 러블 윌리엄 앤더스 두 명으로 줄었다.

2024년 6월 8일 윌리엄 앤더스이 비행기 조종 중 추락으로 인해 향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아폴로 8호 크루중 생존자는 짐 러블 혼자가 되었다.


지구 귀환 도중, 짐 러블이 컴퓨터에 잘못된 명령을 입력하여 메모리의 유도 데이터가 지워지는 일이 있었다. 다행히도 별자리를 통하여 다시 선체의 각도를 찾아내어 데이터를 복구할 수 있었다.
[1] CDR백업 닐 암스트롱 [2] CMP백업 버즈 올드린 [3] LMP백업 프레드 헤이즈 [4] 아폴로 2, 3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8호는 6번째 미션이고 유인 미션으로만 따지면 2번째다. [5] 소련은 새로운 사령선인 존드를 잇달아 성공시켰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발사체 개발에 끝내 실패했다. 반면 아폴로 계획은 이미 새턴 V 로켓의 무인 비행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6] 아폴로 13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사령선에 문제가 생겼을 때 착륙선을 임시 대피소로 사용하는 등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 [7] 짐 러블은 수 차례 아폴로 계획에 참여 했지만, 그는 달에 착륙하지 못했다. [8] 물론 이혼하지 않고 끝까지 결혼생활을 유지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우주인들은 거의 대부분 가정적으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맨날 목숨을 건 작업과 훈련, 미션이 시작되면 몇달은 집에 못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고 스트레스를 술로 푼다던지 엄청 많은 이유가 있어 실제로 이혼율이 엄청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