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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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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1947년 3월 17일,([age(1947-03-17)]주년),
창간 1920년 3월 5일,([age(1920-03-05)]주년),[1]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30
,( 정동 1-16),
대표자 방준오, 홍준호
임원진 회장 방상훈
대표이사 사장 방준오
대표이사 부사장, 발행·편집·인쇄인 홍준호
업종명 신문 발행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중견기업
임직원 473명 (2019년 12월)
매출액 3,201억 8,772만 998원 (2022년 연간)
영업이익 89억 8,674만 5,131원 (2022년 연간)
순이익 318억 5,487만 8,544원 (2022년 연간)
모기업 조선미디어그룹
사이트 <colbgcolor=#C42626><colcolor=#fff> 파일:조선일보 아이콘.svg
SNS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포스트 아이콘.svg 파일:카카오스토리 아이콘.svg
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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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143만명[A]
조회수 1,227,659,023회[A]
가입일 2012년 1월 31일

1. 개요2. 역대 제호3. 인지도
3.1. 향후 전망
4. 역사5. 사주 일가6. 업무환경7. 성향8. 비판9. 사건 사고10. 안티조선 운동11. 경제면 및 주간 섹션, 기타 연재물12. SNS 활동13. 관련 인물14. 사옥15. 상징물16. 사가17. 여담18. 계열사1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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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20230225_140802.jpg
조선일보 신문의 모습[4]
사실에 대한 믿음, 할 말은 하는 용기
아침의 베스트셀러, 조선일보[5]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6]
대한민국의 조간 일간 신문.

조선일보 본사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으며, 조선일보는 1920년 일제강점기 문화 통치기에 언론 탄압이 완화되었을 때 첫 발간되었다. 2020년 3월 5일 창간 100주년을 맞이했다. 2017년 6월 24일, 대한민국 최초로 지령 30,000호를 넘었다.

신문의 논조와 정치적 성향은 국내의 제도권 신문들 중 가장 강경한 보수주의, 우파, 반공주의이다. 실제 대내외적으로도 보수주의[7] 성향을 공개적으로 표방한다. 또한 한국의 보수 우파 신문 3대장인, 이른바 조중동 중에서 언제나 첫 번째로 꼽히는 언론이기도 하다.[8]

2020년대 이후에도 최소한 신문 업계 내에서 만큼은 한국 내 최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다른 언론 매체들과 인터넷 매체에 영향력이 뒤쳐지게 되어, 과거처럼 '언론의 선두주자'의 이미지는 이제 전혀 아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모바일 혁명 이후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론사들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던 과거의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한 뒤에는 방송사, 또는 포털사이트 등에도 영향력이 뒤쳐지게 되었고, 대부분의 매체 신뢰도 및 영향력 조사에서 5위권 이내에 들지 못하고 있다.[9] 이후부터는 자회사인 TV조선 종합편성채널을 통해 방송계에 진출하여, 그룹 차원의 매체 영향력 유지를 꾀하고 있다.

언론사 매출 순위에 2011년 동아일보에 한차례 1위를 내어준 것을 제외하면, 2000년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매출 기준 신문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데, # 다만 2002년과 2022년의 매출 규모를 비교하면, 20년 만에 약 4,817억 원에서 약 3,219억 원으로 약 32% 가량 매출이 감소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10]

2. 역대 제호

파일:조선일보 1920-22.svg 파일:조선일보 1922-24.svg 파일:Screenshot_20220227-174359_Chrome.jpg
1920- 1922 1922- 1924 1924- 1925
파일:조선일보 1926-99.svg 파일:조선일보 제호.svg
1926- 1999 1999- 현재
해당 제호를 쓴 사람은 오세창이라는 증언이 있으나, 조선일보 측에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1969년 기사. 다른 신문사의 제호도 나와있다. 일단 현재 조선일보 측에서는 김돈희로 보고 있다. #

3. 인지도

2021년도 한국 ABC협회 유료부수 통계에서도 2위 동아일보와 상당한 격차를 벌린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국 각 지역별로도 부산일보가 1위인 부산광역시 매일신문이 1위인 대구광역시를 제외한 모든 시도 지역에서 일간지 유료부수 1위를 차지하고 있다.[11] 물론 후술된 내용이나 신문 항목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렇게 알려진 유료부수나 발행부수의 대부분이 뻥튀기 부수인 것은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12] 일례로 2018년도에 신문 업계 관계자가 "조선일보 유료부수는 100만이 무너졌고, 동아일보는 실제 유료부수와 ABC협회 공사결과와 큰 차이가 있다는 게 업계 시각"이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2022년에는 조선일보를 판매하는 수도권 신문 지국장이 "조선일보 유료부수 55만부 줄 거 아니면, ABC협회는 부수인증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13] 어쨌든 1970년대 말 발행부수 1위를 기록한 이래로 줄곧 발행부수나 유료부수가 제일 많으며[14], 따라서 적어도 신문사 가운데에서는 가장 큰 매체 영향력을 발휘하는 언론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스스로 '1등 신문'임을 내세운다. 물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점차 신문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기 시작했고, 매체로서의 신문 영향력 또한 급격히 쪼그라드는 세상이 된 터라 과거처럼 '신문 중의 영향력 1위'가 더이상 '언론 중의 1위'가 아니게 되었다. 일례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조사하여 발표하는 '언론수용자 조사' 통계를 보면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모든 매체를 통들어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모두에서 줄곧 3위 안에 꼽혔으나, 2020년 현재 통계 기준으로 보면 여러 지상파 채널 및 종편과 포털 사이트에 밀려 영향력 및 신뢰도 조사 순위 모두에서 10위로 추락했다.[15]

박정희의 집권 시기인 1960~70년대에는 동아일보와 같은 독보적인 1등 신문은 아니었지만 박정희 정부와 깊게 결탁하는 한편[16],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력을 동원하여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동아일보에 버금가는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이후 조선일보가 본격적으로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하나회 일당의 12.12 쿠데타였다. 이후 전두환 신군부에 적극 영합하면서 피해를 보지 않았고[17], 조선일보는 1980년대 전두환 정부 시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 조선일보 사장이던 방우영은 전두환이 집권을 위해 만든 초법적 통치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입법위원으로 참여하며 노골적으로 결탁했을 정도였으며, 특히 전두환이 집권을 눈앞에 두었던 시기인 8월 23일에는 그 유명한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와 행동'이라는 용비어천가 특집 기사를 쓰며 전두환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전력을 쏟았다. 원래 이 기사는 조선일보의 기사 라이브러리에서 아주 오랫동안 삭제되어 있었는데, 창간 100주년 기념으로 조선일보가 자체 아카이브를 '조선 뉴스 라이브러리 100'으로 개편하면서 비로소 대중에 공개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몇몇 언론 비평 매체 기자, 또는 언론학을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직접 국회도서관에 가서 해당 기사에 대한 마이크로 필름을 열람한 후 썼던 분석 기사, 논문, 언론비평 서적 등을 통해서만 알려져 있었다.

또한 조선일보가 1980년대에 급성장 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언론통폐합이었는데, 당시 조선일보의 주요 경쟁지인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방송사인 동아방송 동양방송 KBS에게 강제로 헌납했고 한국일보 역시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의 사업을 접어야하는 등 모두 언론통폐합으로 엄청난 재산을 뺏긴 반면, 조선일보는 일부 개혁 성향의 기자들만 해직시키는 선에서 처리했고, 전두환 정부에 깊이 참여하여 지속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전성기는 1990년대로 꼽을 수 있는데, 1987년 6월 항쟁으로 언론 자유화가 되고 지면 제한이 없어지자 의욕적인 확장에 나서서 발행 부수가 200만 부를 넘겼고[18], 보수 정치권이나 경제계와 결탁하여 촘촘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당시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미디어 광고 시장의 수혜도 톡톡히 누렸다.

특히 1987년 민주화 이후부터는 김대중을 적극적으로 비토해서 '反 DJ 정서'를 고착시키는 한편, 1990년 3당 합당과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김영삼을 적극적으로 편들어 준 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됨으로써 매체 영향력을 입증하며 승승장구했다. 특히 당시 조선일보의 논조는 제14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터진 초원복집 사건 관련 보도 사례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심지어 정치 권력을 옹립하는 기능으로써의 거대 언론 권력이 최초로 부각된 사례가 김영삼 정부와 조선일보의 결탁이었다는 분석이 이후 언론학계에서 나올 정도였다.[19] 이 덕분인지 1992년 12월,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영삼 대통령 당선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바로 다음날 서울 흑석동에 있는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의 집을 방문하여 만찬을 함께 하기도 했다. 당시 조선일보가 가졌던 막강한 권력을 보여준 단적인 장면이었다.[20]

거기에다가 이 시기는 언론 통제도 누그러질 때라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도 덤이었다. 물론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도 같이 200만부를 넘겼기 때문에 혼자 독주를 하지는 못했지만[21], 어쨌든 영향력으로나 매출액으로나 이때 만큼의 전성기는 없었다. 사실 이 전성기 시절에도 조선일보가 능력있는 기자들을 많이 보유했던 것과는 별개로 오보를 많이 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어쨌든 시간이 훌러 1997년 대선에서도 조선일보는 이회창 이인제를 놓고 이회창을 선택했고, 한동안 이인제가 승승장구해서 지지율이 이회창을 크게 앞섰을 때에도 중앙일보와 합작해서 이회창을 적극적으로 밀어주기도 했지만[22], IMF 외환위기가 한창 닥쳐왔던 때라서 표 분산을 완전히 막지 못한 채로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발행부수가 200만부를 여전히 넘을 정도로 영향력이 강했기에 국민의 정부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고 비토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2001년부터는 동아일보도 보수 진영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며 이른바 조중동 3사가 전부 한나라당과 한나라당 총재이자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을 밀어주는 스탠스가 되었다.

조중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널리 정착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절정에 이르렀던 2001년에는 발행부수가 248만 부에 달했고,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이후 각종 이슈를 만들어내면서[23] 참여정부의 지지율을 하락시켰으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이후로는 박근혜를 밀어주면서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종편 출범 이후부터는 TV조선 또한 고령층 보수 유권자들에게 꽤나 강력하게 어필하면서, 여전히 종이신문 자체 발행부수에 비해 보수층 내부에서 만큼은 높은 매체 영향력을 행사했다.

3.1. 향후 전망

조선일보 전성기의 마지막 시점은 대략 2000년대 초반 즈음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일례로 2001년에 조선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변용식 기자가 어느 인터뷰에서 "전국 국민의 4분의 1이 같은 시간에 조선일보 기사를 본다", "영향력 면에서 정치권력을 능가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하여 구설에 오를 정도였으며[24],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각종 언론 비평에서 '천만 독자 조선일보'라는 표현이 간혹 등장할 정도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초고속 인터넷과 컴퓨터의 보급이 점차 이뤄짐에 따라 언론매체의 환경 또한 온라인으로 점점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는 스마트폰의 급격한 보급과 함께 통신 환경 또한 모바일 위주로 급변하기 시작하면서 신문 구독률이나 열독률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조선일보의 매체로써의 영향력도 함께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기사를 쓰면 여론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지만, 세월이 흘러 현재는 조선일보가 1면에 뭘 쓰든, 사설에 뭘 쓰든 여론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매체 영향력의 확연한 축소세와 더불어 취재력의 한계 또한 뚜렷하게 관측되는데, 이는 종이신문 산업 전체의 영향력 축소와도 직접적으로 결부된 것으로 보인다. 발행부수나 유료부수 집계는 신문 업계에서는 이미 가짜 유료부수 만들기로 허수와 다름 없이 인식된 지도 오래이고, 조선일보의 유료부수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약 100만 부 정도와는 다르게 이미 오래 전부터 100만부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 실제 ABC 공사에서 발표하는 유료부수는 신문대금의 45%만 지불해도 유료부수 1부로 집계해 주고, 짧은 집계 실사 기간동안 신문 사측에서 보급소로 강제 밀어넣기 영업을 통해 유료부수를 부풀리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발표 자체의 공신력이 없어진 지 오래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례로 종이신문의 가구 구독률이 약 60% 가량 되던 2000년 경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200만 부였는데, 종이신문 구독률이 6.3%로 떨어져 종이신문 구독률 자체가 과거에 비해 약 10분의 1 수준이 된 2021년에 조선일보의 유료부수가 약 100만 부로 발표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이에 대해서는 급격히 줄어든 가구 구독 대신 영업장 구독[25] 쪽에 집중하여 유료부수 숫자를 어느 정도 방어하고 있다는 해석도 있지만, 영업장 구독 확대를 통한 부수 방어에도 한계가 있고, 또한 영업장 구독은 그 특성상 신문 독자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기 때문에 매체의 집중도와 독자에 대한 영향력이 매우 미약해지므로, 줄어든 유료부수나 구독률보다도 훨씬 더 매체 영향력이 더욱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중평.

실제 조선일보의 매체 영향력 상실은 객관적인 통계 자료로도 입증되는데, 단적으로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매년 수행하는 언론 수용자 조사의 결과를 보면, 2010년의 신문 열독률 조사[26]에서 조선일보의 열독률이 17.7%로 조사 되었던 것이, 10년 후인 2020년의 조사에서는 3.2%가 나왔다. 10년 만에 열독률이 5분의 1 이하로 급락한 것이다. 물론 이는 종이신문 산업 전체가 쪼그라들어서 그런 것인지라 모든 신문사가 전반적으로 비슷한 비율로 열독률이 줄어든 것인데, 특히 종이신문 업계 선두주자이던 조선일보는 열독률에 관한 절대 수치에서 매우 큰 타격을 입었다. # 2016년 제20대 총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로는 2010년대 전반기에 비해서도 영향력이 크게 줄어든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평이 많으며,[27] 전통적인 보수층에서도 상당수가 조선일보가 박근혜를 비토한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다양한 극우파 인터넷 대안 언론이나 극우 유튜브 등으로 갈아타는 현상이 관측되기도 했다.

한편 종편 채널인 TV조선이 탄생하면서 완전히 레거시 미디어로 전락한 종이 신문에서 벗어나 방송으로 진출한 후, 60대 이상의 노년층을 타겟으로 하는 전략이 성공하여 2020년 들어서는 JTBC와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청률 경쟁을 하고 있다. 물론 광고주들에게 가장 중요한 숫자인 '2049 타켓 시청률'면에서 보면, JTBC가 지상파 3사나 tvN과 비슷한 레벨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것에 반해 TV조선은 해당 청년 세대에게는 존재감이나 소구력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참고로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까지는 소비 성향이 크고, 문화 생활의 동향 및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기 때문에 방송국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인데, 당연히 이 세대를 타겟으로 한 광고나 프로그램은 광고 효과가 크므로 단가 또한 상당히 비싸다. 종편 경쟁사인 JTBC의 채널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진 판이어서, 중장기적으로는 방씨 가문 우위의 조중동 체제가 홍씨 가문 우위의 중조동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현재 조선일보 계열에 대한 가장 불안한 지점은 방송통신위원회 차원에서의 TV조선의 방송 재허가 취소와, 사주 가문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이다. 실제 TV조선은 늘 방송 재허가 여부에 대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또한 방상훈 회장의 아들인 방준오와 방정오에 대한 지분 상속 작업이 제대로 아직 이뤄지지 않은 터라, 계열사 분할-합병 작업이나 지분 상속 사항 등에 따라 앞으로 상속 및 승계의 불법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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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주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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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업무환경

대체로 임금도 많고, 노동 강도가 세다고 알려지지만, 2017년 미디어오늘 기사에 따르면 크레딧잡 조사 결과 조선일보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6,875만 원으로, 내일신문, 연합뉴스, 중앙일보에 이어 4위이다. 그러나 이 연봉평균값은 기자들이 받는 평균 연봉이 아니라, 조선일보 회사에 고용된 다양한 분야의 일반 직원들을 포함하여 전체 평균낸 것이므로, 직책, 직급, 파견, 연차별 기본급이나 성과급 추산 등이 천차만별이다.

참고로 국내 신문 업계가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던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 소속 기자들의 연봉 및 처우는 다른 대기업 직장인들에 비해서도 꽤 두둑한 편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젠 대기업 직장인들에 비할 바는 전혀 아니게 된 상태이고, 심지어 같은 언론계인 지상파 방송국에 비해서도 뒤쳐진 지 이미 오래이며, 지금은 다른 신문사나 중견기업들과 비교해야 하는 정도이다. 사실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대형 신문사들의 영향력, 위세, 권력이 대단했고, 처우까지 좋았기 때문에 언론사 지망생들이 조중동과 지상파 방송국에 동시에 합격하면, 대형 신문사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젠 전세계적으로 이미 종이신문이 사양산업이 되었고, 국내 대형 신문사들의 미래도 암울하긴 마찬가지인 터라, 지금은 조중동과 방송국에 동시에 합격하면 웬만하면 방송국으로 가려고 하지 신문에 남으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례로 조선일보 노조의 노보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입사한 주니어급 기자 106명 가운데 무려 40명이 퇴사했다고 한다. 과거 조선일보가 전성기를 달리던 시절을 생각하면, 경력 10년 미만의 말단 평기자 급에서조차 인력 유출이 심각한 지금의 현실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인 것. #

참고로 과거 신문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기자, 특히 조중동과 같은 대형 언론사 소속 기자의 '끗발'과 '위세'라는 것이 대단했기 때문에, 회사에서 받는 봉급 외에 여기 저기서 받아 먹는 촌지는 물론이고, 출입처나 취재 대상들로부터 이리 저리 챙기는 각종 물질적, 비물질적 혜택들이 엄청났다. 기자들이 회사에서 받는 월급보다 출입처에서 촌지로 받아 챙기는 뇌물이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을 정도였다. 일례로 1991년 ' 보건사회부 기자단 촌지 사건' 때 폭로된 내용을 보면, 추석 명절 기간을 전후로 보건사회부 출입 기자단 19명이 출입처와 관련된 여러 대기업과 협회로부터 받은 촌지 규모가 무려 8,850만원에 달했다는 보도가 있었을 정도였다. 기자 1인당 약 465만원씩 나눠 가진 셈이었는데, 참고로 당시는 대졸 신입 대기업 직장인 기본급이 70만원 정도 하던 시절이었다. 일선 평기자들이 평범한 직장인들 월급보다도 몇 배나 많은 뇌물을 불과 명절 기간 며칠동안에 '떡값'이랍시고 출입처에서 낼름 받아 챙기는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는 말이다. # # 이렇게 각종 출입처에서 기자들에게 온갖 뇌물, 접대, 물질적, 비물질적 향응을 제공하면서 대놓고 보도를 관리하는 풍조는 무려 2010년대 중반까지도 버젓이 존재했고, 비로소 2016년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부터 차츰 사라지기 시작했다.[28]

한편 2010년대 후반부터 사측과 조선일보 노조 사이의 갈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서 독보적으로 영업이익을 많이 내는데도 불구하고 기자들의 연봉을 그닥 인상해 주지도 않고,[29] 온라인 뉴스 집중 정책 때문에 거의 2배 가량 늘어난 업무량에 비해 처우 개선도 별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인력 확충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업무나 근무 시간이 과중되는 등, 사측에서 제대로 된 업무 환경을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라고.[30]

2022년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정부가 물가 상승 억제를 위한다며 '노동자 임금 인상 자제' 방침을 내세우자,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강경한 보수 우파 신문 답게 정부의 해당 방침에 대해 꾸준히 적극 찬성하는 논조를 보였다. 그러나 정작 조선일보 노조에서 자사 기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조선일보가 '물가 인상을 억누르려면 임금 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사설을 게재한 것에 대해 응답자의 86.7%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한다. # 특히 81.7%가 자신의 임금에 대해 불만족한다고 답했고, 88.8%는 자신의 대학 동기 등의 준거집단에 비해 본인의 임금이 낮다고 답했다. 사설이나 칼럼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보도 방향에서조차 임금 동결 정책에 대한 찬성 논조가 일관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조선일보 기자들이 '노동자들 임금 인상 하지 말라'고 열심히 기사와 칼럼을 써놓고, 정작 자신들 월급만은 낼름 올려서 받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 노조 측에서도 2022년 6월 30일 발행한 노보를 통해, "인플레이션 악화를 막기 위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발언은 그간의 본지 사설 내용과도 일치한다"며,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설에 따르면 조선일보 직원들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라는 지적도 나오는 실정"이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제 대기업은 고사하고 중견기업 수준이 된 우리 월급 명세서를 바라보다가, 본지 사설을 읽으니 마음이 착잡하다”는 조합원의 반응까지 나왔다고. #

또한 조선일보 편집국 내의 과도한 업무량, 근무 강도, 퇴사자 증가로 인해 인력난이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다른 신문사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인데, 대형 신문사라고 하는 조선일보도 이를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조선일보 노보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편집국의 의무휴가 사용률이 66.4%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부족한 인력으로 인한 업무의 압박 때문에 직원들이 의무휴가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특히 사용 안한 의무휴가에 대한 연차보상도 없어서, 처우가 점점 열악해 지고 있다고 한다. 해당 노보에 따르면, 편집국에서 지면 제작에 참여하는 기자 수는 지난 2017년 222명에서 2020년 216명, 2023년에는 202명까지 줄었다고 한다. 지면 기사 작성이나 온라인 기사 송고뿐만 아니라, 유튜브, 뉴스레터 등 갈수록 업무량은 폭증하는데, 인력은 되려 대폭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부, 사회부 등의 대형 주류 부서에서 조차 의무휴가 사용률이 60%를 밑돌 정도로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

특히 편집국의 핵심적 중추 역할이 되는 허리 연차들인 11~20년 차 공채 직원들의 경우, 2024년 현재 기준으로 입사자의 절반이 이미 회사를 떠났고, 나머지 절반 정도만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조선일보 노조가 발행하는 노보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노조의 자체 조사 결과 2005년부터 2014년까지 공채로 입사한 11~20년 차 조합원 142명 중 73명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잔류율이 49%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한다. # 취재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중간 연차에 해당하는 어느 기자는 "기자 생활을 오래 해도 남는 게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주는 직업도 아니다. 다른 회사에 비해 노동 강도도 높은데, 보상은 적어 퇴직하는 기자들이 많은 것 같다", "신문산업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신문을 보는 사람들도 줄고 있다",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라고.

7. 성향

조선일보의 성향과 논조는 국내 제도권 언론사 중 가장 강경한 보수주의, 우파, 반공주의, 뉴라이트 성향이다. 일명 조중동이라고 일컫는 '보수 언론들'의 선두주자이기도 한데, 조선일보 쪽에서는 조중동으로 함께 엮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다시 말해, 사회 분위기나 회사 사정에 따라 2000년대 초반 한때 잠시나마 보수 성향에서 벗어난 논조를 보여주기도 했던 중앙일보나,[31] 과거 90년대 후반까지는 중도 개혁적 성향이였던 동아일보와는 달리,[32] 조선일보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일관적인 이념적 우파 반공주의 성향의 초강경 노선이다.

조중동의 다른 구성원인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는 강경한 보수주의, 우파 성향이긴 해도, 간혹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섹션별로 논조가 조금씩 다를 때도 있지만, 조선일보만큼은 그야말로 모든 이슈와 섹션에서 초강성 보수주의, 우파, 반공주의 논조의 기사와 칼럼을 쏟아낸다. 심지어 스포츠, 문화 섹션의 칼럼에서조차 뜬금없이 '좌우파 이념' 드립을 치는 문장이 튀어 나올 정도이다. #1 #2 다만 칼럼의 주된 내용이 작성자 개개인의 견해 및 가치관을 담은 것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전부 일반화하여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인 이념 보수 성향의 노년층을 제외한 타 연령대의 보수 성향 사람들 중에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극단적이라는 비판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 쪽에서는 뉴라이트에 대한 옹호를 표방한다. 조선 말기에 대한 폄하, 일제 지배 옹호 등을 꽤 보여 주며, 특히 일제 식민 지배를 해방 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쁘게 봐서는 곤란하며, 무조건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기조를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특히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대로 이승만을 위인으로 생각하는 반면, 정작 당시 이승만이 혐오하였던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서 펼치는 주장을 사실로 프로파간다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한국의 극우 뉴라이트 세력의 대부인 이영훈의 저서 반일 종족주의가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바 있으며, 윤석열 정부 들어서 크게 불거진 윤석열 정부의 뉴라이트 기조 논란 이슈에서도 적극적으로 사설과 칼럼, 기사 등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해당 기조를 옹호하였다.

한편 박근혜 정부와의 불화를 겪으며 자신들이 그렇게 옹호하던 박근혜 대통령을 가열차게 깐 적도 있다. 당시 조선일보는 친박계를 비판하고 청와대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며 박근혜 정부와 극한의 대립을 펼쳤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직전인 16년 8월에는 청와대가 "조선일보는 부패 기득권 세력"이라고 못박아 둘 사이의 관계가 최악까지 갔다. 다만 박근혜가 역대 최악의 정치 스캔들에 연루되어 탄핵당할 지경까지 갔을 때는 정권교체의 위기감을 느꼈는지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을 비판하고, 박사모의 광고를 실으면서 탄핵에 반대하는 여론 응집을 시도했다.[33]

과거 보수정권 시기에는 전반적으로 온건한 논조를 보이던 조선일보이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는 같은 조중동 계열인 중앙일보, 동아일보를 훨씬 뛰어넘는 자극적인 칼럼과 기사가 유독 많아졌다. 국내 정치 현안과 정부 공직자들의 크고 작은 혐의나 비리 관련 보도와 관련하여 여타 보수 언론들보다도 훨씬 더 원색적인 칼럼과 강경한 논조로 확대 보도하고 있으며, 특히 별의별 극우 단체나 종교 단체들의 홍보 광고가 조선일보에 유독 집중적으로 실리고 있다. 일례로 2020년 8월 중순 이후 벌어진 전국적인 코로나-19 대량 감염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극우 단체들의 광복절 집회 홍보 광고가 7~8월 동안 가장 집중적으로 게재된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였다. 심지어 조선일보를 위시한 조중동은 당시 집단 감염 사태가 터진 이후에도 전광훈 측의 일방적인 입장문을 전면광고 형태로 또 실어주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 이후의 조선일보 논조는 과거 진보정권 시기의 보도 논조보다도 훨씬 더 우경화된 상태라는 평이 많다.

2010년대 후반들어서 정치 관련 유튜브가 급성장하면서 강성 보수층들이 극우 유튜브로 건너가고 있는 터라, 조선일보가 점점 극우 유튜브와 정치적 프레임 경쟁을 벌이거나, 심지어는 조선일보에서 극우 유튜브의 정치적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먹는 상황까지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2020년 제21대 총선 이후, 조선일보의 최고위급 기자인 김대중 고문과 최보식 선임논설위원 등이 극우 유튜브에서 주장하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그대로 받아서 본인들의 기명 칼럼을 통해 주장하기도 했다.

각 언론사별 비하 명칭에서도 조선일보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이 본격화 되던 90년대 후반 이전부터도 그러했다. 특히 매년마다 발표되는 언론 매체 신뢰도 관련 여론조사에서 언제나 '불신하는 매체' 1위에 고정적으로 오르는 영광 아닌 영광을 차지한다. 단, 이는 대부분의 경우 일반인들 대상 여론조사기 때문에 실제 언론의 신뢰도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일반 사람들의 선호도를 보여주는 것에 가깝다. 또한 매체 신뢰도나 선호도 조사에서도 종종 조선일보가 최상위권을 차지할 때가 있는데, 이는 보수 지지자들이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등의 다른 보수 언론을 선호한다고 대답하기 보다는, 조선일보에 대해 긍정 응답을 몰빵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선일보를 제외한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제신문 등의 다른 보수 우파 언론들은 상대적으로 조선일보에 비해 형편없는 신뢰도 및 선호도 수치를 보이곤 한다.

한편 한국기자협회에서 2024년에 협회 소속 현직 기자 11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조선일보가 신뢰도 8%로 전체 3위, 불신도 35.3%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 물론 각 언론사별 수치가 매년 요동치는 터라 숫자 자체의 일관성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기에는 쉽지 않지만, 기자 사회 내부에서도 조선일보의 이미지가 이 정도로 극단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겠다.

미국의 미디어 편향 체크 웹사이트 MBFC에 따르면, 조선일보의 논조는 전반적으로 일방적인 보수 내셔널리즘 보도를 기반으로 중도 우익 편향으로 평가했다.[34] 또한 잘못된 출처 인용, 자본 투명성 부족 및 팩트 체크 실패로 인해 보도 사실성은 Mixed로 평가했다.[35] MBFC의 분석에 따르면 헤드라인에 감정적인 워딩을 자주 사용하는 것으로 평가했다. 예를 들어 문 대통령의 탄소 중립 계획은 몽상이다., 여당은 국회의원 부패로 더럽혀졌다, 야권, 재보궐선거 싹쓸이 여당에 불똥 튀다와 같이 보도했다. 또한 같은 국내 뉴스를 보도할 때는 젊은 지도자의 당선 이후 국민의힘에 새로운 당원들이 몰리다와 같은 뉴스로 보수 야당 국민의힘에 긍정적인 어조로 편향되었다고 판단했다. 사설에서는 강경한 보수 우파 성향이며 거의 모든 사안에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문재인 및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수년간 헤드라인에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문 대통령 지지율 급락, 왜 납세자들은 문 대통령의 어리석음에 대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탈원전땐 40% 전기료 폭등” 보고서, 文정부 처음부터 뭉갰다와 같이 보도했다.

8.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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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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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티조선 운동

1998년 최장집 교수 사건을 계기로 잉태되어 2000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국내 진보 시민사회 단체로부터 안티조선 운동의 요주의 대상으로 오르기도 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1969년 3선 개헌 시기부터 쭉 일관되게 보여주었던 반민주주의적인 논조와 친독재정권, 기득권 세력 옹호 논조, 사실관계 왜곡보도와 허위보도, 짜깁기, 특정인 모욕주기 등을 보다 못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안티조선 운동을 펼쳤으며, 이들은 조선일보 구독 거부 및 사절, 조선일보 신문 및 잡지 불매운동 등을 벌였다. 2001년 조선일보가 언론사 세무조사 대상에 올랐을 때 조선일보 사측이 세무조사를 거부하고 다른 보수 언론들이 조선일보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이러한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를 넘어서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이른바 족벌언론 3인방인 조중동 전체에게 불똥이 튀기도 하였다.

2008년 광화문 촛불시위 때는 광화문에 집결했던 과격 폭력 시위자들에 의해서 본사 입구가 공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그 때문에 조선일보 간판이 부서지고 출입문 유리가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또한 옆동네 동아일보도 과격 폭력시위자들에 의해 동아일보 깃발이 강제로 끌어내려져 밟힐 뻔도 했고, 동아일보 간판과 출입문이 박살 나고 파손되는 등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후에 한 청년이 조선일보 본사 건물과 함께 쓰고 있는 코리아나호텔의 손님으로 가장하더니 조선일보 사옥 유리창을 깨부수고 조선일보는 폐간하라라는 현수막을 보이며 시위를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안티조선 운동이 기성 종이신문 점유율을 크게 바꾸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조선일보의 권위와 권력에[36]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히는데는 성공했으며 종이신문의 쇠락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종이신문의 전성기였던 1990년대에는 조선일보를 보며 불쾌해하면서도 언론의 역할이라고 인식하며 수용을 했고, 또한 1990년대 당시 대항 매체였다고 할 수 있던 PC통신은 이용자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비싼 전화요금과 느린 속도때문에 파급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데 반해, ADSL이 보급됨에 따라 인터넷을 값싸게 즐길 수있게 되면서 다음, 야후, 네이버, 엠파스, 네이트 등 포털 사이트를 통해서 뉴스를 접하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종이신문의 발행부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가 안티 조선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던데다가, 시의적절하게 상대적으로 親 민주당계 리버럴 포지션이던 동아일보가 세무조사에 반발하며 보수진영으로 전환해버리기까지 하면서 종이신문의 신뢰도가 당대의 30대 이하 계층에게서 폭락해버렸고, 또한 폭락한 종이신문의 신뢰도가 그대로 고착화 되면서 그 기간 동안 조선일보를 포함한 종이신문들의 신규독자층의 유입이 확 줄어드는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는 네이버와 다음 등의 대형 포털 사이트와 다양한 언론 비평 매체 등을 통해 조선일보의 기사에 대해 실시간 교차 검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37] 또한 점차 조선일보의 과거의 보도 기사들과 논조들이 알려지고 공유되면서 과거 조선일보에서 올렸던 오보들과 편향적인 기사들이 계속해서 재발굴되기도 했는데, 이 덕분에 현대는 물론 과거 대한민국에서 거대한 위상을 차지했던 조선일보의 과거 행보에 대해 비판적/회의적인 시각들이 크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이때 언론 비평계에서 재발굴했던 기사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 전두환 -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이라는 용비어천가 찬양 기사였다.

다시 말해, 미디어의 변화와 인터넷의 보급, 그리고 시민사회의 격변을 거치면서 '조선일보'라는 무소불위의 언론 권력에 대한 권위가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만 해도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조선일보를 두고 "그래도 1위 신문사인데..." 하면서 어느 정도는 인정해 주는 분위기였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좆선이 그럼 그렇지 뭘 바라냐"는 반응이 확 많아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조선일보 차원에서도 이를 방어하기 위해 과거에 간혹 시도했던 구독층 확장을 위한 '중립적인 논조' 기획마저 사실상 철회하고,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보수층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논조로 매몰되기 시작했다. 구독층 확장을 위한 논조 다변화 대신,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자들의 입맛에 맞는 논조를 공고히 하게 되면서 조선일보의 신뢰성에도 상처를 계속해서 내게 된 것이다. 물론 이 덕분에 전통적 구독자들을 결집, 유지하는데는 큰 효과를 보여주었지만, 반대로 또 과거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어 왔던 조선일보의 정치적 편향성들이 더 크게, 계속해서 부각되는 부작용을 안겨주게 되었다.

그 외에도 과거와 달리 조선일보를 경영하는 방씨 일가의 지배 구조에 대한 의혹 제기들도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과거엔 그냥 쉬쉬하면 되는 문제였고, 과거엔 조선일보를 소유하고 경영하는 방씨 일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과 언론 보도는 감히 상상치도 못할 일이였다. 하지만 점차 조선일보를 소유/지배하는 방씨일가 내에서 발생한 사건들이 속속히 공개되기 시작하면서 방씨 일가 뿐 아니라 방씨 일가가 소유하는 조선일보도 같이 이미지가 실추되게 된다. 결국 장자연 자살 사건 의혹,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 조선일보 사주 손녀의 운전기사 폭언 사건 등을 거치면서 사회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 반응도 상당하다. 무소 불위의 힘을 자랑하며 견제 받지 않던 권력인 조선일보와 방씨 일가라면 그런 막장 행각들도 충분히 발생할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참고로 김어준이 90년대 말에 조선일보의 안티테제로 만든 것이 바로 딴지일보이다. 그래서 딴지일보는 초창기부터 쭉 조선일보를 집중적으로 까는 기사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의 그 유명한 ' 월스트리트 저널 왜곡 번역 보도 사건'을 최초로 밝혀내어 세상에 폭로한 것도 딴지일보였다.[38] 다만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즈음까지는 조갑제와 김대중 등이 영향력 있는 언론인 조사 TOP 10에 꼭 들었을 정도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여전했었고, 아무리 김어준이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주목받는 언론인이 되었다 한들, 어디까지나 인터넷 대안 매체 분야에 한정된 인물이었고, 심지어 중소기업 수준 회사의 재정 충당을 위해 관광 가이드업이나, 쇼핑몰, 성인용품 판매 같은 잡사업까지 도맡아 할 정도였으니, 당시에는 둘의 규모나 영향력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아예 신문 산업 자체의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팟캐스트 유튜브 등의 여러 온라인 미디어들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2016년 제20대 총선, 2017년 제19대 대선, 2020년 제21대 총선 등의 주요 정치적 이벤트를 겪으며 조선일보의 미디어 영향력이 줄어들고, 비슷한 시기에 나는 꼼수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이 일부의 지지를 받으며 그 영향력의 점유율이 많이 바뀐 상태이다.

11. 경제면 및 주간 섹션, 기타 연재물

지금은 어느덧 옛말이 되었지만,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선일보의 진정한 강점은 경제면과 문화면에 있다고 했을 만큼, 엄청난 고품질을 자랑했다. 조선일보가 정치면과 논설면의 편집에서는 강경한 보수 우파 성향이라서 진보 좌파 성향의 독자들은 거부감을 보여도, 정치색이 상대적으로 덜한 문화면 쪽의 지면 편집만큼은 꽤 호평받았던 것. 일례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활동하면서 맹활약을 하던 때가 바로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였다. 이동진은 1993년에서 2006년까지 조선일보에서 문화부에서 영화 담당 기자로 활동했는데, 이동진의 영화 평론은 그 당시 조선일보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신문 앞머리를 차지하는 정치면과 마지막을 차지하는 논설의 서술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경제면과 문화면 등의 다른 섹션이 마음에 들어서 구독한다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 조선일보 기자 경력만 20년이 넘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도 평이 좋다.[39] 한편 경향신문, 한겨레 등 진보 언론은 이런 쪽에서는 확실히 약한 편이며, 차라리 사회면이나 경제면의 탐사보도 측면에서 승부하는 언론으로,[40] 서로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고 보면 된다. 즉 누가 좋다 나쁘다를 판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고로 경제면은 조선일보가 2000년대 초중반부터 강력하게 승부하던 컨텐츠였다. 한국경제신문, 매일경제신문 등 거물급 경제신문과 경쟁하기 위한 방안으로 냈다고 하는데, 조선일보의 신문으로써의 힘이 남아있던 시절만 해도, 기업들 입장에선 조선일보의 지면을 놓칠 수 없으니, 컨텐츠 자체는 확실히 빵빵한 편이긴 했다. 특히 경제섹션의 마지막에 나오는 최신 과학기술 동향 소개, 취업전략 소개 등은 꽤 알찬 편이었으며. 특히 토요일의 Why 섹션은 저 많은 섹션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았다.

어쨌거나 이런 비결 덕분에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 사장 때의 MBC와 비교해서도 성공적으로 전 회사적 위기를 잘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았다.[41]

그러나 모바일 혁명이 자리잡고, 인터넷 채널이 본격적으로 다변화 된 2010년대 이후로는 문화 컨텐츠나 경제 컨텐츠의 헤게모니가 전부 인터넷과 유튜브, SNS 등으로 넘어간 터라, 과거처럼 조선일보 문화면과 경제면이 조선일보 특유의 컨텐츠 생산력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문화 컨텐츠는 말 할 필요도 없고, 경제면만 해도 국내 경제신문들도 힘이 없어지는 판에, 조선일보 경제 섹션이 주목되기가 만무인 것. 사실상 경제 컨텐츠들의 이슈 메이킹 능력도 유튜브와 기타 인터넷 채널 쪽으로 거의 다 넘어갔으며, 특히 고급 컨텐츠 수요는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 등 유력 경제 전문 외신으로 확연히 집중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도 모바일 기기의 급격한 보급을 통해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이코노미스트를 유료 구독하는 독자들의 규모가 상당해진 터라, 경제 분야를 취재하는 일선의 기자들보다도 되려 권위있는 외신을 유료 구독하고 있는 국내의 일반 독자들이 최신 고급 정보를 취득하기가 훨씬 쉬워진 환경이 되었다. 또한 한때 조선일보의 강점이었던 최신 과학 기술이나 취업 전략의 경우에도, 이미 고급 정보나 최신 정보는 다양한 인터넷 미디어 채널들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해외 미디어 등이 중심이 된지 오래다.

한때 조선일보가 전성기를 구가하며 풍부한 인력을 굴리던 과거에는 아예 섹션만을 위한 취재팀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기자들은 일반 정치, 사회면을 거의 건드리지 않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지만 최근에는 이것도 옛말이고 편집국 인원이 경영 효율화 명분으로 퇴직/유고 등 자연소멸분 만큼 100% 다 충원이 안 되기 시작하면서 거의 대부분 기자가 본지 기사를 쓰고, 섹션면 기사도 쓰며, 클릭 앵벌이용 인터넷 기사까지 열심히 쓴다. 본 부서는 경제부면서 경제면 조간 마감을 막고, 섹션 기사 쓸 일이 있으면 소속팀에서 또 기사를 쓰는 것. 여기서 노동 강도가 더 늘어나면 요즘은 예전보단 덜하지만 가끔 TV조선 패널로도 가는 경우가 있으니 결코 노동 부담이 작다곤 할 수 없다.

참고로 여러 섹션들에서는 지금도 광고 영업을 위해 광고형 기사, 업계 용어로 'advertorial section'을 열심히 만든다. 기사의 형식을 빌려서 사실상 광고를 실어주는 경우임을 저 단어로 명시하고 있는 것인데, 회사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경우라 만들긴 만드는 것이다. 대체로 갓 졸업한 기자가 연습용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고, 한직으로 밀려난 주간조선이나 월간조선 소속 기자들이 광고 영업의 일환으로 협찬을 따와서 일간 지면 섹션을 채우는 경우도 많으며, 사실상의 대충 이름만 걸어 놓은 외주 광고를 나타내는 '객원기자'란 명칭도 많이 보인다.

조선경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12면이 발행되고, 금요일은 8면을 발행한다. 경제 뉴스 외에 Stock & Money면을 고정 운용하며, TV프로그램 면도 여기에 편성한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자 학습 연재물과 치매 예방 콘텐츠도 이 섹션에 실린다. 요일별로 특화된 콘텐츠 또한 정기적으로 수록되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N: 세계를 보는 창 Now
이슈 & 트렌드
부동산

건강 섹션 Health+: 물론 특정 병원 광고성 기사도 있지만 정보성 기사도 많은 편이며 주 독자가 아무래도 노년층이 많아서 맞춤형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다. 보관해서 어르신들께 선물해 드리면 좋아할수도 있다. 에듀 섹션: 특목고, 상위권 대학으로 가거나 갔던 학생들의 공부방법 등을 알려주는 정보다. 다만 사교육 업체의 광고가 좀 많은 편이라 걸러 들어야 하며 기존에 삽지되던 교육 섹션 맛있는 공부는 단종되었다.

자동차섹션 Auto: 말 그대로 자동차에 대한 섹션이다. 최신 기술동향, 최신 발매 차량의 정보, 최신 기술 등을 소개하는 코너. 1개월에 1번 온다. 모터쇼라든가 큰 기사거리가 없을 때는 신차 홍보 기사를 쓰고, 박스 기사로 취재 기자의 탑승기를 울며 겨자먹기로 주로 붙이는데 기사 양을 늘리기 위해 아는 형용사를 총동원해 운전감과 탑승감을 서술하는 기자의 분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2018.04 기준) 월요일 경제면(B9~B10)에 격주로 실린다.

2018년 9월 21일자를 끝으로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는 공지를 하였다. 10월 27일자를 마지막으로 발행된 Why? 섹션과 합쳐 11월부터 새로운 형태로 발행한다고 한다.

Books: friday와 붙어 있으며 주로 서평, 책 추천, 인기 작가 인터뷰가 수록된다. - 토요일 A면으로 원상복귀 하였다.

아무튼, 주말: 금요섹션 friday와 토일섹션 Why?의 특장점을 하나로 모아, 매주 토요일 독자를 찾아가는 12면 짜리 주말 섹션이다. 아무튼, 주말 섹션의 도입에 따라, 11년 반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던 Why? 섹션은 종간됐다. 이로써 2007년 3월 중앙선데이 창간으로 개시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일요일판 신문 전쟁은 11년 반만에 막을 내리고, 토일섹션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18년 3월 중앙일보가 토요일자 신문을 폐지하고 중앙선데이를 토요일에 대체 발행한 것을 기점으로 조선일보의 토일섹션은 사실상 그 수명을 다했던 것이다.

Weekly Biz: 별매품으로 발행되는 경제경영전문 격주간지. 별도 신청자에 국한하여, 무료 삽지하여 배달된다. 최근 10년 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미국의 대기업 CEO 인터뷰 등 거물급 인사의 인터뷰가 많이 실려 있다. 무려 2007년도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단독 인터뷰도 있었다. 매주 금요일 지면 B섹션의 5개 면에 실린다. 뉴스레터도 발송된다. 물론 한국 언론이 이런 인물들과 단독으로 인터뷰하기 쉽지 않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007년 도널드 트럼프 이런 스케일의 인물들은 이건희 회장보다도 더욱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돈도 많이 벌 정도로 자국 언론 인터뷰도 응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며, 그런 인물들은 대한민국을 아직까지도 변방 취급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조선일보 정도나 되어야 단독 인터뷰를 따올 수 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학자의 인터뷰도 싣고 기업의 사회적 윤리를 매우 강조하는 등, 경제경영학 원론적 이야기 수준을 넘는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기사처럼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을 볼 수 있는 양질의 기사가 많다.

Why?: 역경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또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많이 실리는 편이다. 또한 사회면의 사건 중 특별히 추리소설적으로 풀어낼 만한 이야기가 있으면 심층 분석해 준다. 간장 두 종지라는 흑역사급 사건도 있었지만, 이희진이 한창 뜰 때 인터뷰를 했다가 사기꾼 같다는 점을 기자의 동물적 본능으로 알아채고[42] 내보내지 않은 선견지명 있다. 앞장이 아닌 뒷장 섹션이라고 해서 얕잡아볼 섹션이 절대 아니다. 조선일보에는 기자가 작정하고 말아먹은 사례( 송희영 주필 등)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3류 사기꾼이 사기를 치려는 것까지 용인할 수준의 신문사는 절대 아니다. 현재는 발행되지 않는다. 양경숙 전 라디오21 대표가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이미지를 통해 <조선일보 Why> 지면에 플랑드르 스칼렛이 등장 #했다.

아래 2개는 하나의 섹션으로 온다. 각각 1~5면, 6~8면이다. 4면은 전면광고, 5면은 보통 IPTV 컨텐츠 소개면이다.
Tech & Biz: 4차 산업혁명 시대 최신 IT 기술동향을 소개하는 코너. 전자신문의 마이너 버전이라 보면 된다. 현재는 폐지됨.
과학섹션 iF (into the Future): 이영완 기자가 기획한 과학섹션으로 최신 과학에 대한 소개를 주로 한다. 과학동아의 마이너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중력파같이 상당히 어려운 개념을 여기 나올 정도로만 써도 매우 쉽게 쓴 편이라는 게 중론이었지만 현재는 폐지된 섹션이며, 조선경제 섹션에 병합되었다.

신문은 선생님: 어린이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신문 활용 교육(NIE, Newspaper in Education)을 실시하는 지면. 초중고 전/현직 교사가 주 집필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이 지면은 절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는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래의 독자인 아이들에게 종이 신문을 읽는 좋은(?) 습관을 들여 주기 위한 방편으로 여겨진다. 매요일마다 각각 한국사(월), 자연과학(화), 세계사(수), 경제학(목), 예술(금) 분야의 소재 한 가지를 정해서 소개하며 한자, 영단어 어원 소개도 있다. 하단에는 최근 이슈가 된 내용의 소재 또는 희귀종 생물에 대해 다루기도 한다. 어른들이 보기에도 알찬 내용이 많으며 토론란의 경우 중립적으로 양측의 입장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두근두근 뇌운동: 치매 예방을 위해 머리를 쓰게 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코너인데,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신문 사진 잘라 붙이기, 숫자 계산하기, 문장 활용하기 등이 꾸준히 나오고, 이것을 활용하는 프로그램도 치매 예방센터 등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다. 이 코너의 한가지 특징은 조선일보 특유의 강성 친박 논조의 기사 제목을 치매 예방 놀이의 예시 문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이런 문제가 해당 프로그램 개발 주체인 중앙치매센터를 상대로 한 국회 국정감사에서까지 다뤄졌고, 결국 조선일보 특유의 '기사놀이'는 조용히 사라지게 되었다.

최보식이 만난 사람: 최보식 기자의 인물 인터뷰 지면. 종래에 토일섹션 'Why?'에 연재되던 고정물이었으나, 2010년대 중반부터는 매주 월요일 오피니언 앞면에 게재되고 있다. 최보식의 인터뷰 스타일은 인터뷰이에 반론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인터뷰이의 심연 속으로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본다거나, 심층적인 정보와 논리를 독자 제위에 선사하려 노력한다고는 하는데, 여러가지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일단 인터뷰이 선정부터 다소 안일한데, 주로 사회 원로, 그것도 일반적인 원로라기 보다는 조선일보 독자들 기준의 원로를 주로 인터뷰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원로 전문가 계층보다도 더 연배가 높은 7~80대 나이의 노년층 전문가를 주로 섭외하기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상당히 고루하고 고색창연한 느낌을 줄 때가 많아서, 최보식도 이렇게 노쇠해져 가는 것인가 하는 의아함을 자아낼 때가 많다. 정년퇴임을 몇년 남겨두지 않은 최보식의 안일한 특성이 드러난다는 평가가 많고, 조선일보 지면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노쇠화와 결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1년 1월, 최보식 기자의 정년퇴임 및 퇴사와 함께 이 섹션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2. SNS 활동

유튜브 채널도 여러 개 운영중이다.
<colcolor=#000> 조선일보
파일:조선일보 아이콘.svg
방송사 파일:조선일보 제호.svg
구독자 수 110만[43]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유튜브

조선일보사에서 운영하는 공식 유튜브 채널이 존재한다. 정치 콘텐츠를 주력으로 다루고 있으며 11시 김광일 쇼[44], 이슈포청천[45], 정치펀치[46] 등의 컨텐츠들이 업로드되고 있다. 대부분의 콘텐츠들은 조선일보 미술관에 있는 스튜디오 광화문[47]에서 제작된다고 한다.

또한 아래와 같은 유튜브 채널들도 있다.
파일:uskL4G9.png

과거 조선일보 페이스북은 여타 다른 언론사 페이스북과 같이 뉴스 기사 링크만 제공하는 페이지였으나 카드뉴스 등 젊은 층을 타겟팅한 뉴스 컨텐츠를 앞세워 신문사 페이스북 중 이용자 수 1위를 달성하며 2015년 하반기 좋아요 수가 30만을 돌파했었다. 2017년 2월 현재 좋아요 수는 약 55만이 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조페지기(조선일보 페이스북 지기)의 드립 때문이다.

원래 조선일보 페이스북 좋아요는 기존 보수 성향의 페북 이용자들에 불과했으나 조선일보 페이스북 지기가 기사 내용과 관련된 드립을 댓글로 올리기 시작하자 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드립으론 ' 김정은[56], ' 안철수', ' 문재인', ' 김무성', ' 최경환' 등의 정치적인 관련된 대상을 이용하는 드립이며 보수주의적인 성향의 이용자 뿐만 아니라 일반 유저들도 팔로우하고 조선일보에 반감을 갖고 있던 유저들도 좋아요를 눌렀으나 최순실 게이트와 정권교체 이후 노선이 강경해지자 주목도는 떨어진 편이다. 참조

2015년,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으로 메갈리아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JTBC에서 JTBC 뉴스룸 성우 교체 보도 논란이 일어나자 대부분 인터넷 커뮤니티가 격렬한 비판을 가했는데 조페지기는 이를 두고 "JTBC덕분에 인터넷이 통일되었다"며 글을 썼다. 2016년에 조선일보 페이스북에서 메갈리아, 워마드 등을 비판하지 말라고 다량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의견 감사합니다🙂'라고 반복하고 무시하며 무지개 반사 시전하는 것이 밈으로 자리잡았다. 기존 종이 신문에서의 보도 논조와는 다르게 보수정권에 대한 비판은 2016년에 들어 더욱 심해졌는데 박근혜 정부와 사이가 매우 나빠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서 기자가 다양한 드립을 쳤다. # 2017년에도 재미있는 드립이 나왔다. 마약의 현장 2017년 이후로는 주로 조선2보 페이지에서 드립친다. 바로가기 이후 한동안 뜸하다 2019년 지드래곤의 휴가 관련 논란에서 'GD, 이번에도 Goon Dae 논란'이라며 유머성 게시글 업로드를 다시 시작했다. 또한 2019년 5월부터 관리자가 웃긴 댓글을 뽑아 시상하기도 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2019년 이후로는 조선일보의 논조가 강경해지며 드립이 잘 언급되지 않는다.

조선일보 페북에서 밝힌 바로는 페북을 관리하는 고정된 기자가 있는 것은 아니고, 기자들이 돌아가며 당번식으로 맡는다고 한다. 페북 관리자가 직접 "한 명이 관리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을 했다.[57] 이외에 조선일보 인스타그램에도 진출해 있으며, 같은 관리자가 관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트위터도 존재하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드립을 치지는 않는다. 페북 관리하는 기자중 한 명은 야갤러 내지는 국내야구 갤러리 디시인사이드 갤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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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관련 인물

가나다 순

14. 사옥

파일:37D6A57E-9FA1-4BFB-8AA7-0E0F9A5AADC7.jpg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코리아나 호텔 주변에 일부 사무실이 있다.[61] 현재의 모습은 2001년에 보수한 것으로, 1970년대 이전에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조선일보 사옥이 있었다.

광화문 정면에서 '조선일보' 네 글자를 볼 수 있다.

파일:3E270D86-878B-45C2-ADA6-FA6603D58819.jpg
코리아나 호텔 뒷편에 있는 공식 사옥.[62] 1988년에 준공되었다.

별관이 사실상 본사 건물이다. 조선일보 사장 집무실과 기자들이 상주하는 편집국이 있는 건물.

15. 상징물

사기(社旗)는 하얀 바탕에 빨간색 세 줄무늬와 둥근 원에 十자와 X가 합쳐진 로고가 새겨진 깃발로 를 형상화한 것이다. 과거 1990년대까지는 조선일보 신문 보급소 입구에서 신문사 깃발을 거리에 게양해두었던 시절이라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종이 신문의 비중이 줄고 신문 보급소들도 줄어들면서 현재는 조선일보 본사 건물에서만 이 깃발을 볼 수 있다.

16. 사가

작사는 본사 사가제정위원회, 작곡은 김정길이 담당했으며, 1980년 2월에 제정되었다.
(1절)3.1 독립운동의 정기 받들어 / 망국의 설움을 딛고 일어나
온 겨레 깨우침에 앞장을 서서 / 이 땅의 슬기를 한데 모았네

(2절)민족의 외침을 글로 모아서 / 자유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 정의의 필봉은 꺾이지 않네

(후렴)민족지 조선일보 / 길이 빛나리

17. 여담

파일:조선일보 심볼.png }}} ||
1992년 11월 30일 대한뉴스 제1930호 - 내일은 늦으리 환경콘서트

18. 계열사

파일:조선미디어 로고.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colbgcolor=#C42626> 신문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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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조선뉴스프레스( 월간조선, 주간조선, 여성조선, 산, 웰빙라이프, topclass, 행복플러스)
스포츠/헬스 스포츠조선 | 헬스조선
교육/문화 조선교육문화미디어 | 에듀조선 | 조선아이에스 | 조선영상비전
디지털/IT 디지틀조선일보 | 조선경제i( 조선비즈, IT조선, 이코노미조선, 조선닷컴)
연구소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NK조선)
재단 방일영문화재단 | 통일과나눔
기타 코리아나호텔 | TCN미디어 | 조선NS }}}}}}}}}

이들을 통틀어 조선미디어그룹이라고 한다.

이외에 방일영문화재단, 통일과나눔이라는 재단도 운영하고 있다.

19. 관련 문서



[1] 1940년 8월 10일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폐간, 1945년 11월 23일 해방 이후 복간 [A] 2024년 1월 6일 기준 [A] [4] 해당 신문은 2023년 2월 20일자 신문이다. [5] 2020년 창간 100주년을 앞두고 2019년부터 밀기 시작한 홍보 멘트이다. [6] 8대 조선일보 사장 조만식이 제정한 사시(社是)이다. [7] 2019년 12월 21일 사보에서 방상훈 사장이 신년사에서 조선일보를 "보수 언론"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 [8] '조중동' 용어에 대해서는 나 먼저 원리에 따라 중앙일보에서는 굳이 그렇게 불러야 할 일이 있다면 '중조동', 동아일보에서는 '동조중'이라고 애써 자기들끼리 부르긴 한다만, 사람들은 그냥 늘 '조중동'이라고만 부른다. [9] 여러 언론 관련 신뢰도 및 인지도 조사를 기준으로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방송사를 포함한 전체 언론사 중에서도 조선일보가 매체 영향력 수위권을 다투었지만, 신문 업계 자체가 사양산업이 된 2010년대 이후부터는 방송사, 포털사이트, 유튜브 등에게 매체 영향력이 추월 당하여, 이제는 신문 업계 내에서만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있을 뿐이다. [10] 참고로 한국은행에서 제공하는 물가 상승률 지표를 감안하면, 2002년 기준 매출액인 약 4,817억 원의 2022년 기준 화폐 가치는 약 7,700억 원이다. 이를 미뤄보면, 조선일보의 실질적 매출 규모가 약 20년 만에 반토막이 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액수의 절대 규모가 조금씩 다를 뿐, 다른 신문사들도 사정이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11] 그나마도 부산과 대구에서도 조선일보가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2] 물론 업계 모든 회사들이 뻥튀기 부수이기 대문에 상대적인 순위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다만, 절대적인 부수 규모 자체는 알려진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 [13] 2021년 ABC 협회 발표 기준으로 보면 조선일보의 유료부수는 100만부가 넘는다. 그러나 정작 조선일보를 직접 판매하는 지국장은 '조선일보의 실제 유료부수는 외부에 알려진 것의 반 밖에 안된다'는 취지의 증언을 하는 형편인 것. [14] 한국 ABC 협회 기준 2021년(2020년 조사) 유료부수가 100만 부로써 23개 신문사 중 1위인데, ABC 협회의 부수 공시가 허위 부풀리기 공시임을 감안해도 최근 몇 년간 유료부수 수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양상이 눈에 띈다. [15] 과거에는 '신문사 기자가 진짜 기자이지, 방송사 기자는 기자도 아니다'는 말이 언론계에서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방송의 영향력이 신문을 압도한 지가 한참 오래되었고, 기자 지망생들 조차 기왕이면 방송사 기자를 하려고 하지 굳이 신문사 기자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한때는 '중앙 일간지 소속 기자'라는 명함만으로도 큰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었지만 지금은 조중동에 합격한 신입 수습기자들이 방송사에서 동시에 합격 연락이 오면 죄다 신문사를 버리고 냉큼 방송사로 달려가는 분위기가 정착된 지 이미 오래이다. [16] 1960년대 후반, 조선일보가 코리아나 호텔을 지을 때 일본으로부터 약 400만 달러에 달하는 상업차관을 들여온 사건이 있었다. 당시 400만 달러라면 굉장히 큰 돈이었는데, 시중 은행의 금리가 연 26%일 때, 조선일보가 부담한 금리는 겨우 7%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이 조선일보에 엄청난 특혜를 준 것이다. [17] 언론통폐합의 설계자인 허문도가 조선일보 출신이었던 덕을 보았다. 또한 중앙일보나 동아일보와는 다르게, 조선일보는 지상파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지 않은 상태였던 터라 방송사를 빼앗길 꺼리도 없었다. [18] 여기서 감안할 점은 온갖 사은품에 전단지 수준으로 뿌려대서 유료부수 규모의 거품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실상 대한민국 신문들은 진보-보수나 좌우파를 떠나, 사실상 구독료 수입이 아닌 기업 광고료 수입으로 먹고 살다보니, 각종 사은품은 물론이고 1년치 구독료 공짜 서비스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로 마구 무가지를 뿌려대는 수준이다. 이는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대형 족벌 언론이나, 매일경제신문이나 한국경제신문 같은 경제신문들이 특히 심각하다. [19] 조선일보는 민주화 이후로도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논조를 보여왔고, 김대중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보도를 많이 내놓았지만, 김영삼과는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김영삼은 언론을 대하는 데 능숙했고, 또 그가 이끄는 상도동계는 민주화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일보와 유사한 보수 우파 성향을 가진 인물이 많았기 때문에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 사실 언론들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특정 세력과 결탁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밀어주는 건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처지이다. 말하자면 조중동은 전통적인 보수정당 세력을 노골적으로 밀어주고, 한겨레 경향신문의 경우에는 민주당계 정당을 의식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비민주당계 진보정당 세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참고로 보수 진영 유권자들이 '아니, 한경오는 민주당이랑 깐부먹은 애들 아니야?'라고 아직 많이들 오해하곤 하는데,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진보 언론 소속의 기자들은 선거나 정치적 사건, 정책 등에서 진보정당 계열을 지지하지,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하는 일은 거의 없다. [21] 전통적으로 볼 때, 조선일보는 반공주의와 안보 체제를 내세우는 '이념 보수', 중앙일보는 삼성그룹 계열 언론라는 태생적 특성에 기인한 탓에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노선을 걷는 '시장 보수', 동아일보는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당을 밀어주는 개혁 성향의 신문으로 분류되곤 했다. 다만 중앙일보는 언론 통폐합의 영향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정책에 부정적인 스텐스를 보이긴 했으며, 한편 동아일보는 2000년 즈음을 기점으로 완연한 보수 언론으로 변모하여,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른바 조중동 체제가 완성된다. 한편 한국일보는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여러 논조와 색채가 뒤섞인 신문이었다. [22] 일례로 1997년 당시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둔 상태에서, 조선일보 사옥 근처에서 조선일보의 편파 보도에 관해 항의 시위를 하는 새정치국민회의 국민신당 선거 운동원들을 향해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손가락질을 하며 "국민회의, 국민신당. 까불지 마. 내일 모레면 너희들은 다 죽은 목숨이야."라며 주정을 부렸던 사건은 유명하다. [23] 정말 별볼일 없는 일로도 참여정부를 까댔다. 물론 보수층들에게는 잘 먹혔으며 진보언론도 참여정부를 깠던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효과는 배가 되었다. [24] 언론수용자 조사 기준으로 보면, 2000년 당시에는 1주일에 최소 하루 이상 종이신문을 보는 국민의 비율, 즉 신문 열독률이 81.4%였고, 가구별 신문 구독률도 52.3%였다. 다시말해 시민들 대부분이 매일 신문을 읽는 시대였던 것이다. 특히 종이신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단연 독보적인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20년 조사 기준으로 보면, 신문 구독률은 6.3%이고, 열독률도 10.2% 정도밖에 안 되며, 특히 매일 신문을 읽는다고 답변하는 사람은 심지어 불과 1.1%밖에 안 된다. [25] 회사, 사무실, 가게, 관공서 등 [26] "지난 1주일 동안 (하루 이상) 읽은 종이 신문은 무엇입니까?"에 대한 응답 [27] 즉, 영향력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더라도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다. 19대 대선을 앞두고 주요 언론사들이 안철수를 밀어주었지만 정작 안철수가 토론회에서 초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3위에 그치면서 언론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반증해버린 셈이 되었고 그 덕택에 자연스레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조선일보가 이회창을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1.6%P, 2.3P 차이로 석패한 것이라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었던 데 반해서, 보수언론-진보언론 상당수가 안철수를 밀어주었음에도 3위에 그친 것은 영향력 과시라는 측면에서 볼 때 뼈아픈 타격일 수밖에 없다. [28] 이러한 '기자 관리' 풍조가 정치권에서는 선거법이 강화된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라지기 시작했지만, 경제계와 기업 쪽에서는 과거보다는 확실히 줄어들긴 했어도 2020년대인 현재에도 크건 작건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도 기업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여러 형태의 식사, 기념품,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다. [29] 이는 영업이익의 대부분이 대주주인 방씨 일가의 배당금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 업계에서는 방씨 일가의 상속세 대비를 위한 현금 마련책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30] 신문 업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매체이니만큼, 조선일보 노조 관련 소식도 종종 미디어 비평 관련 언론계의 관심을 받는데, 조선일보 노조위원장이 조선일보 사측과 충돌한다는 뉴스가 뜰 때마다 '노조를 혐오하는 조선일보에 무슨 놈의 노조가 있어?'라는 비꼼이 항상 붙는다. 여담으로, 조선일보와 너무나 안 어울리게도, 조선일보 노조에서 행사를 할 때, 대표적인 민중가요 가수인 안치환의 노래 같은 것도 부르곤 한다고 한다. [31] 홍석현 참여정부에서 주미대사를 지냈을 정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우호적인 관계였다. 2003년 인터뷰에서 홍석현이 조선, 동아와 지난 몇 년간 이념적으로 달리해왔으니 조중동으로 묶이는 건 적절치 않다고 인터뷰했을 정도. 그러나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에 홍석현이 연루되자 그는 주미대사직을 사퇴해야 했고, 이를 계기로 참여정부와의 사이가 확 틀어져 다시 보수성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32] 호남과 관련된 기업이다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던 이낙연도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다가 DJ에게 발탁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유시민 진중권이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고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송건호도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었다. 그러나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 때 동아일보 회장의 부인이 자살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이를 계기로 동아일보와 국민의 정부간의 관계는 파탄났다. 이 시점부터 동아일보는 조선일보를 능가하는 강경보수 성향으로 돌아서 2000년대 내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비토해 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이전보다는 약간 개혁적인 성향으로 발을 옮겼다. [33] 다만 탄핵 사태 초기 박근혜 정부와 대립했었던 점 때문에 현재도 친박/ 극우 성향의 지지자들은 조선일보를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김대중 전 주필이 조선일보에 적는 칼럼의 댓글이 막힌 이유도, 조선일보에 반감이 심한 친박 성향의 네티즌들이 몰려와 악플을 달았기 때문이다. [34] 이 표현은 조선일보의 논조가 강경한 보수 우익 반공주의로 평가 받는 국내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사실 이것은 전형적인 내셔널리즘이나 전체주의를 표방하는 매체가 아니라면 대체로 '중도 우익' 정도로 지칭해 두는 학문적 관습 때문이다. 일례로 대표적인 일본의 사실상 극우 성향 매체로 평가받는 산케이 신문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는 '우익' 정도로만 지칭되는 것에서도 알 수있다. [35] 참고로 MBFC에서'매우 높음(VERY HIGH)'등급을 받은 언론사는 로이터가 있고, 높음(high)' 등급을 받은 언론사는 뉴욕 타임스, BBC 등이고 블룸버그랑 월 스트리트 저널은 대부분 사실적 등급(MOSTLY FACTUAL)을 CNN, 폭스 뉴스는 mixed 등급을, 데일리 메일은 낮음(Low) 등급을 받았으며, 페이스북 유튜브 등 주요 IT 기업들로부터 '증오와 음모론을 확산시킨다'며 콘텐츠를 일제히 삭제 당한 적이 있는 # 인포워즈의 경우에는 매우 낮음(very low) 등급을 받았다. [36] 전 조선일보 회장인 방우영 회장이 '밤의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였다. 당시 조선일보가 정재계와 언론계, 문화계 등에 행사하는 권력과 영향력의 크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37] 물론 검색광고료 획득을 위한 기사 낚시질이나 광고성 기사 범람같은 폐헤도 극심하기는 했지만 실시간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해졌다는 면에서는 90년대에 비해 진보된것이기는 하다. 양날의 검 [38]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를 완전히 반대의 뜻으로 번역하여,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비난하는 기사로 왜곡 보도했던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김대중 항목 참조. [39] 참고로 김성윤 기자는 이탈리아 유학파다. [40] 한겨레는 2008년 대침체를 유일하게, 그리고 가장 빨리 예측한 성과가 있다. 이런 측면은 오히려 진보 언론의 특화 분야이다. [41] 안티조선 운동 자체가 내부에서 몰락한 탓도 있으나, 조선일보의 경제면 보강, 섹션 보강은 우회적으로 다사다난한 회사 분위기를 잘 이겨냈다. 특히 자사 기자들을 어이없게 내보내는 악랄하고 추악한 악행은 안 저질렀다. 이게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 사장 때의 MBC와의 결정적 차이점. 안티조선 전성기 때, 조선일보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이동진 영화평론가도 외압이 아닌 본인 스스로 조선일보에서 나간 것이다. [42] 부장급 등 데스크의 결재를 받아서 이희진을 인터뷰했는데 막상 실제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가 냄새가 난다고 하고 기사로 보내지 않았다. [43] 2022년 10월 기준 [44] 매주 월·화·금 오전 11시 라이브 [45] 매주 수·목 오전 11시 라이브 [46] 매주 수·목 오후 3시 [47] 조선일보 계열사 [48] 구독자 142만명 [49] 구독자 20만명 [50] 구독자 21.5만명 [51] 구독자 131만명 [52] 구독자 16.7만명 [53] 구독자 10만명 [54] IT조선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55] 구독자 21만명 [56] 조페지기가 붙여준 별명이 바로수소돼지/하이드로겐 포크 [57] 사실 대부분의 기업, 기관 SNS는 고정된 관리자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계정을 여러 인원이 공유해서 관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58] 조선일보 내에 호남 출신 고위직은 의외로 적지 않은 편이다. 이규태 칼럼으로 유명한 이규태 기자는 물론, 사내 실세로까지 소문났던 송희영도 호남 출신이다. TV조선 대표이사를 3연임한 김민배는 전남 진도 출신이다. [59] 조선일보 최초의 부자(父子) 편집국장 [60] 사실 조선일보 재직시절에도 간혹 이쪽 책을 펴냈다. [61] 코리아나 호텔은 방상훈 회장의 동생인 방용훈 사장이 소유하고 있다. 따라서 공식 사옥이라 칭할 순 없지만 사실상 한 회사인 셈. [62] 호텔 옆길에서 성공회 성당을 지나 좀 올라가면 있다. 이 건물의 공식 명칭은 조선일보 미술관이나 공식 홈페이지엔 사옥임을 명시하고 있다. 실제로 2층 전시실을 중심으로 전시 및 대관 사업을 하고 있다. 이 건물 외에도 별관 형식으로 주변 일방통행로에 여러 건물이 있고 각종 부서들이 여기저기 세들어 있는 형식. 편집국은 미술관 3~4층, TV 조선이 5층을 사용하고 있다. [63] 가독성에 대한 비판이 간혹 들어온다. [64] 첫 아카이브는 1996년 12월 19일에 있었다. # [65] 경춘선 전철 개통 전에 무궁화호가 다니던 시절에는 마라톤 당일날 무궁화호 증편이 있었을 정도였다. 전철화되고 나서도 ITX-청춘이 증편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66] 다만 몇 번의 사이트 개편 후 실명보다는 닉네임 투고의 비중이 늘어났다. [67] 칼럼이 쓰이는 동안 이규태 기자는 논설위원, 논설위원실장, 편집국장, 주필, 논설고문 순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4년을 끝으로 정년퇴임했다. [68] 2003년까지 주필로 있다가 은퇴하고서 고문으로 물러난다. 조선일보 주식을 3%나 가지고 있다고 한다. [69] 전설로 남을 ' 맥주를 차게 마시려면 얼음을 넣으면 좋다' [70] 여담이지만 청룡봉사상은 포상금과 1계급 특진이 따라오는 상이라 경찰이 조선일보에 묶이는 이유가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 [71] 자기 언론사는 선택할 수 없음 [72] 朝鮮日報의 일본어 발음. 국제음성기호로는 [t͡ɕo̞ːseȵȵip̚po̞ː\] 정도이고 외래어 표기법상으로는 '조센닛포'. [73] 원래는 언론노조 소속이었지만, 민주노총 산하 산별 노조화 된 후 탈퇴했다. [74] 경제전문지로 조선일보사에서 야심차게 성장시키고 있는 회사. 출범이 10년도 되지 않았지만 뚜렷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의 후계자로 점쳐지는 방준오(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씨가 대표이사로 오면서 주목받고 있다. [75] 경제전문 매체이자 온라인 뉴스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자회사이다. [76] 2016년 미디어잇을 조선비즈에서 인수 [77] 디지틀조선일보에서 운영했으나 방준오 사장이 조선경제로 취임하고 이관되었다. 조선경제 디지털편집국으로 개편되었다. [78] 코스닥 상장기업. 의외로 디지탈이나 디지털이 아니다. [79] 여기서 쓰는 기사들은 항상 K리그 클래식을 K-리그라고 쓰는 특징이 있었다. 많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욕먹는 이유. 그러나 이것도 2015년부터 정상적으로 K리그라고 표기하기 시작하면서 과거형이 되었다. 온게임넷에서 진행했던 스타리그의 공동 주관사이기도 했다. [80] 구. 맛있는공부. [81] 구. 소년조선일보(2018년 6월 4일, 창간 81년만에 제호 변경), 만화가 김우영이 『 뚱딴지』를 1990년부터 2019년까지 29년 간 연재했다. [82] 방상훈 회장의 동생인 방용훈이 사장이며, 조선일보와 붙어있고 사무실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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