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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06:11:31

이왕삼각

1. 개요

이왕삼각(二王三恪)은 동아시아사에서 새 왕가의 군주가 이전의 왕가를 우대해주는 조치를 뜻하는 중국식 한자어다. 중국에서 고대로부터의 전통으로, 과거의 성군을 기리고 그들의 제사가 끊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 용어 분석

天子存二代之後, 猶尊賢也. 尊賢不過二代.
천자가 이전 2대의 후손을 높이는 것은 존현(尊賢, 어진 이를 존경)하려는 것이다. 존현은 2대를 넘지 않는다.
예기》 권11, <교특생>(郊特生).
周武王克商,而封夏後於杞、殷後於宋,皆爵公,封舜後於陳,爵侯,以備三恪。周得天下,封夏殷二王後,又封舜後,謂之恪。恪,敬也,義取王之所敬,并二王後為三國,其轉降示敬而已,故曰三恪。
주무왕 상나라를 무찌르고 하나라의 후손을 기(杞)에, 은나라의 후손을 송(宋)에 봉했으며 모두 (公) 작위를 내렸고, 순의 후손을 진(陳)에 봉해 (侯) 작위를 내렸으니, 이로서 삼각(三恪)을 갖췄다. 주나라가 천하를 얻고 하·은 두 왕의 후손(二王後)을 봉했고, 또한 순의 후손을 봉했으니 이를 일컬어 각(恪)이라고 한다. 각이란 공경함()으로, 왕이 공경하는 바가 두 왕의 후손을 아울러 세 나라가 되는 것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 그것이 전해 내려오며 공경을 보일 따름이니, 고로 삼각이라고 한다.
통전》 권74.

우대해야 할 왕조는 바로 전 왕조와 그 전 왕조의 후손(二王後, 이왕후)으로 한정한다. 이들 이왕후 직전 왕조의 후손을 더하면 공경해야 할 대상 셋(三恪, 삼각)이 생긴다. 恪은 "삼갈 각"으로 "공경하다"라는 뜻도 있다. 삼각이왕후(三恪二王後)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현 왕조 직전 왕조 2대 전 왕조 3대 전 왕조 4대 전 왕조
폐지
존현의 대상, 이왕후
삼각

지배자의 이름이 '황제'로 바뀐 뒤로 선대 두 황제의 후손을 (王)으로 봉하는 일도 있었다. 조선에서는 고려 왕조 후손들에게 공 대신 군(君)으로 봉했다.

3. 대우

이전 왕가의 후손들은 임금의 손님()으로 대우됐다. 《통전》에 따르면 우순의 아들 단주(丹朱)를 '우빈(虞賓)'으로 부르며 대우했다. 순의 뒤를 이은 하우는 단주와 상균(商均, 순의 아들)이 그 선조들이 군주로서 입던 의복이나 예악(禮樂) 등도 전과 같이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역시 왕의 신하가 아니라 빈객으로 대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편 작위를 받고 땅을 떼어줌으로 그 땅의 수익으로 제사를 지낼 수 있었다. 하우가 처음으로 단주와 상균에게 강토(疆土)를 내렸다. 작위를 내려주게 된 것은 앞 문단에서 인용한 것처럼 주나라 때가 처음이다. 조선의 경우를 보면 제사를 지낼 때는 인력 역시 필요하므로 고려의 봉사손에게 노비를 제공하는 모습도 보인다.

4. 이상과 현실

중국 신화에서 포장된 평화적 선양의 이면에 서로 다른 부족간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듯, 전조의 후손이라고 해서 반드시 우대와 존중의 대상만이 되지는 않았다. 왕실 후손들은 반란 모의에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실제로 반란에 가담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실제로는 우환이 될 것 같은 인물이라면 존중하기는커녕 죽여버리기까지 했다. 이왕삼각에 반대되는 상황 역시 공자가 이상향으로 그리는 주나라에서부터 있었다. 그 사례에 대해서는 왕씨 몰살 문서의 비슷한 전 왕가 숙청 사례 문단을 참고.

5. 사례

이하는 나라별로 이전 왕조의 후손을 우대한 사례의 예시이다. 엄밀히 이왕삼각이 아닌 경우가 포함됐을 수 있다.

5.1. 중화권

5.1.1. 주나라

5.1.2. 진나라

5.1.3. 한나라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주자남군
(周子南君)
희가(姬嘉) 기원전 113년 ~ 기원전 107년
2대 희치(姬置) 기원전 107년 ~ 기원전 87년 희가의 아들
3대 희당(姬當) 기원전 83년 ~ 기원전 67년 희치의 아들
4대 희연년(姬延年) 기원전 65년 ~ 기원전 44년 희치의 아들, 희당의 동생
시호는 고(考)
주승휴후
(周承休侯)
기원전 44년 ~ 기원전 36년
5대 희안(姬安) 기원전 36년 ~ 기원전 23년 희연년의 아들, 시호는 질(質)
6대 희세(姬世) 기원전 23년 ~ 기원전 15년 희안의 아들, 시호는 리(釐)
7대 희당(姬黨) 기원전 15년 ~ 기원전 8년 희세의 아들
주승휴공
(周承休公)
기원전 8년 ~ 4년
정공(鄭公) 4년 ~ 8년
장모공
(章牟公)
8년 ~ 14년
8대 희상(姬常) 14년 ~ 26년 희당의 아들
주승휴공 26년 ~ 29년
9대 주승휴후 희무(姬武) 29년 ~ 37년 희상의 아들
위공(衛公) 37년 ~ ?
가계 불명
위공 희서(姬署) ? ~ 267년
위후(衛侯) 267년 ~ 271년

5.1.4. 조위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산양공
(山陽公)
유협(劉協) 220년 ~ 234년 후한의 마지막 황제
2대 유강(劉康) 234년 ~ 285년 유협의 손자
3대 유근(劉瑾) 285년 ~ 289년 유강의 아들
4대 유추(劉秋) 289년 ~ 309년 유근의 아들,
309년 영가의 난 때 피살, 산양국 소멸

5.1.5. 서진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안락공
(安樂公)
유선(劉禪) 263년 ~ 271년 촉한의 마지막 황제
2대 유순(劉恂) 271년 ~ 310년 유선의 아들, 영가의 난 때 피살
3대 유현(劉玄) 310년 ~ 347년 유비의 증손, 유영의 손자
347년 성한 멸망으로 소멸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진류왕 조환(曹奐) 265년 ~ 302년 조위의 마지막 황제
가계 불명
진류왕
(陳留王)
조매(曹勱) 326년 ~ 358년 조조의 현손
조회(曹恢) 363년 ~ 378년 조매의 아들
조영탄(曹靈誕) 383년 ~ 408년 조회의 아들
조건사(曹虔嗣) 409년 ~ 420년 조영탄의 아들
조건수(曹虔秀) 421년 ~ 462년 조건사의 동생
조선(曹銑) 463년 ~ 473년 조건수의 아들
조찬(曹粲) 474년 ~ 479년 479년 송나라 멸망으로 진류국 폐지

후한- 삼국시대의 후예들은 조위, 서진에서 우대를 받았고, 영가의 난으로 대부분 단절된다.

5.1.6. 남북조시대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영릉왕
(零陵王)
사마덕문(司馬德文) 420년 ~ 421년 동진의 마지막 황제
2대 사마원유(司馬元瑜) 421년 ~ 448년
3대 사마욱(司馬勗) 448년~ 468년
4대 사마약사(司馬藥師) 468년 ~ 490년 502년 제나라 멸망으로 영릉국 폐지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여음왕
(汝陰王)
유준(劉準) 479년 송의 마지막 황제
2대 유윤(劉胤) 479년 ~ 515년
3대 유단(劉端) 515년 ~ 522년
4대 유철(劉哲) 522년 ~ 546년
5대 유예(劉叡) 556년 ~ 557년 557년 양나라 멸망으로 여음국 폐지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파릉왕
(巴陵王)
소보융(蕭寶融) 502년 제의 마지막 황제
2대 소보의(蕭寶義) 502년 ~ 509년 소보융의 형
3대 소병(蕭屏) 509년 ~ 522년 소보의의 아들
4대 소연(蕭沇) 556년 ~ ? 589년 진나라 멸망으로 파릉국 폐지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강음왕
(江陰王)
소방지(蕭方智) 557년 ~ 558년 양의 마지막 황제
2대 소계경(蕭季卿) 558년 ~ 571년 태조 문황제 소순지의 증손,
파양충렬왕 소회(蕭恢)의 손자,
무림후 소자(蕭諮)의 아들
3대 소이(蕭彝) 571년 ~ 589년 소계경의 아들,
589년 진나라 멸망으로 강음국 폐지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송공(宋公) 탁발곽(拓跋廓) 557년 서위의 마지막 황제
2대 한국공
(韓國公)
원라(元羅) 558년 ~ 568년 태조 도무제의 5세손,
양평왕 탁발희(拓跋熙)의 현손,
남평강왕 탁발혼(拓跋渾)의 증손,
남평안왕 탁발소(拓跋霄)의 손자,
강음무열왕 원계(元繼)의 아들
3대 원겸(元謙) 569년 ~ ? 고조 효문제의 현손,
광평무목왕 원회(元懷)의 증손,
광평문의왕 원제(元悌)의 손자,
광평공 원찬(元贊)의 아들
4대 원보제(元菩提) ? ~ ? 원겸의 아들
5대 원보림(元寶琳) ? ~ 607년 원보제의 아들
가계 불명
한국공 원백명(元伯明) 749년 ~ ? 원보림의 현손
원소준(元紹俊) ? ~ ? 원백명의 아들
원문지(元文贄) ? ~ ? 원소준의 아들

그러나 남북조 이후로는 서서히 흔적이 사라지며 찾아볼 수 없게 된다.

5.1.7. 수나라· 당나라

당나라에서는 이왕후(二王後)인 북주 황실과 수나라 황실의 후예에게 작위를 내렸다.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개국공
(介國公)
우문천(宇文闡) 581년 북주의 마지막 황제
2대 우문락(宇文洛) 581년 ~ ? 우문천의 당숙조부
3대 우문유(宇文裕) ? ~ ? 우문락의 아들
4대 우문연(宇文延) ? ~ ? 우문유의 아들
5대 우문리혹(宇文離惑) ? ~ ? 우문연의 아들
6대 우문정립(宇文庭立) ? ~ ? 우문리혹의 아들
7대 우문초(宇文超) ? ~ ? 우문정립의 아들
8대 우문안(宇文晏) 737년 ~ ? 우문초의 아들
9대 우문중달(宇文仲達) ? ~ 820년 우문안의 아들
10대 우문사원(宇文士元) ? ~ 840년 우문중달의 서장자
가계 불명
개국공 우문힐(宇文頡) 936년 이전 ~ 941년 이후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휴국공
(酅國公)
양유(楊侑) 618년 ~ 619년 수의 마지막 황제
2대 양행기(楊行基) 619년 ~ ?
3대 양분(楊棻) ? ~ 689년 양행기의 아들
4대 양유언(楊幼言) ? ~ ? 양분의 손자,
양온(楊溫)의 아들
가계 불명
휴국공 양조(楊造) ? ~ 820년
양원주(楊元湊) 825년 ~ ? 양조의 아들
가계 불명
휴국공 양인구(楊仁矩) ? ~ 930년
양연소(楊延紹) 932년 ~ 년
양연수(楊延壽) 940년 이전 ~ ?

또한,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백제, 고구려 왕실의 후예에게 작위를 내렸다.

5.1.8. 후량

5.1.9. 요나라

5.1.10. 송나라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정왕(鄭王) 시종훈(柴宗訓) 960년 ~ 973년 후주의 마지막 황제
2대 숭의공
(崇義公)
시영(柴咏) 1059년 ~ 1072년 시수례의 질손, 세종의 조카
3대 시약눌(柴若訥) 1072년 ~ 1094년 시영의 아들
4대 시안택(柴安澤) 1094년 ~ 1116년
5대 시기오(柴夔悟) 1116년 ~ 1127년
6대 시숙하(柴叔夏) 1127년 ~ 1156년 세종의 현손
7대 시국기(柴國器) 1156년 ~ 1188년 시숙하의 아들
8대 시백순(柴伯淳) 1188년 ~ 1194년
9대 시원(柴源) 1194년 ~ 1221년
10대 시보록(柴補祿) 1221년 ~ 1228년
11대 시위(柴瑋) 1228년 ~ 1248년
12대 시언영(柴彦潁) 1248년 ~ 1255년 세종의 8세손
13대 시림(柴林) 1255년 ~ 1266년
14대 시안(柴安) 1266년 ~ 1279년 1279년 남송 멸망으로 작위 소멸

5.1.11. 금나라

5.1.12. 원나라

몽골 문단의 하위 문단인 보르지긴 왕조 문단 참고.

5.1.13. 명나라

명나라는 원말명초 군벌 또는 그 후손들에게 작위를 내렸다. 귀의후 명승과 귀덕후 진리는 이웃나라 고려로 귀화했다.

5.1.14. 청나라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연은후
(延恩侯)
주지련(朱之璉) 1724년 ~ 1730년 홍무제의 12대손,
주정사(朱廷榭)의 손자,
주린조(朱麟兆)의 아들
2대 주진(朱震) 1730년 ~ 1746년 주지련의 아들
3대 주소미(朱紹美) 1746년 ~ ? 주진의 아들
4대 주의봉(朱儀鳳) 1775년 ~ ? 주지련의 증손,
주림(朱霖)의 손자,
주응룡(朱應龍)의 아들
5대 주육서(朱毓瑞) 1797년 ~ ? 주의봉의 아들
6대 주수길(朱秀吉) ? ~ ? 주육서의 아들
7대 주수상(朱秀祥) 1828년 ~ ? 주수길의 동생
8대 주이탄(朱貽坦) 1836년 주진의 손자,
주문룡(朱文龍)의 아들,
주이배(朱貽培)의 동생
9대 주서계(朱書桂) 1836년 ~ ? 주정사의 현손,
주린정(朱麟正)의 증손,
주지기(朱之琦)의 손자,
주량(朱諒)의 아들,
주문욱(朱文郁)의 동생
10대 주학령(朱鶴齡) ?~ ? 주량의 손자,
주문욱의 아들
11대 주성단(朱誠端) 1869년 ~ ? 주진의 현손,
주문룡의 증손,
주이배의 손자,
주항풍(朱恆豐)의 아들
12대 주욱훈(朱煜勳) 1891년 ~ 1929년 주성단의 아들,
1929년 작위 폐지

5.1.15. 동녕 왕국

5.1.16. 중화민국

5.1.17. 중화제국

5.1.18. 중화인민공화국

5.2. 한국

5.2.1. 신라

5.2.2. 고려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낙랑왕(樂浪王) 김부(金傅) 936년 ~ 978년 신라의 마지막 왕

5.2.3. 조선- 대한제국

조선에서는 '삼각'의 예를 따라 팔전을 세우고 선대 여덟 왕조[4]의 제사를 지내게 했다. 직전 왕조인 고려 왕실에 대해서는 팔전이 정립되기 전부터 작위를 내리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배려해왔다.
제사는 잠시 중단됐으나 문종이 처음으로 고려 태조의 제사를 위한 숭의전을 세우고, 고려 현종의 후손인 왕휴(王休)의 손자 왕우지라는 인물을 찾았다. 단종은 왕우지에게 '왕순례'라는 이름을 주고 숭의전사(崇義殿使)로서 제사를 잇게 했다. 전(殿)의 관직은 감, 영, 수, 부사로 나뉘었으며, 한 명만 임명돼 승진을 거치는 방식이었다. 숭의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이들은 빈객의 예, 삼각(三恪)의 의전으로 대우받았다.

왕순례의 손자인 왕적 사후 직계가 끊어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후사를 이으려는 왕씨가 많아서 조정에서 왕희를 왕씨의 적통으로 삼기로 정했다. 그러나 사실 왕희는 고려 왕조의 후손이 아닌 전주 왕씨였음이 밝혀졌고, 이를 밝혀낸 왕훈(王勳)이 정파가 되어 그 후손이 숭의전에서 봉사하게 되었다. 왕훈의 후손이 고종 시기까지 11대에 걸쳐 제사를 지냈는데, 왕희의 후손이 또 기어들어와서 참봉에 임명되니 암행어사 이헌영에 의해 발각되어 파면됐다.
귀의군
순서 작위 이름 재위 비고
1대 귀의군 왕우(王瑀) 1392년 ~ 1397년 공양왕의 동생
2대 귀의군 왕조(王珇) 1397년 ~ 1398년 왕우의 아들
숭의전 봉사손
순서 관직 이름 재위 비고
1대 숭의전부사 왕순례(王循禮) 1452년 ~ 1485년 왕미의 아들
2대 숭의전감 왕천계(王千繼) ? ~ ? 왕순례의 서자
3대 숭의전감 왕적(王績) ? ~ 1540년? 후손 단절
숭의전감 왕희(王希) 1541년 ~ 1588년? 파직
4대 왕훈(王勳) 1589년 ~ ?
5대 숭의전수 왕곤(王鵾) ? ~ ? 왕훈의 장손자
숭의전감 왕성원(王聖元) 1710년 ~ 1717년 왕곤의 장증손자
숭의전령 1717년 ~ 1727년
숭의전수 1727년 ~ 1731년
숭의전부사 1731년 ~ ? [5]
숭의전감 왕세빈(王世賓) 1738년 ~ 1749년 왕성원의 장손자
숭의전령 1749년 ~ 1798년
숭의전감 왕경효(王景孝) 1798년 ~ 1811년 왕세빈의 장남
숭의전령 1811년 ~ ?
숭의전령 왕윤동(王尹東) 1819년 ~ 1869년 왕경효의 양자[6]
숭의전참봉 왕재기(王在基) 1870년 ~ 1876년 왕윤동의 장손자
숭의전참봉 왕사희(王師熙) 1876년 ~ 1878년 왕희의 11대손, 파직
숭의전참봉 왕익수(王益修) 1883년 ~ ? 왕곤의 9대손[7]
숭의전참봉 왕재준(王在儁) 1888년 ~ ? 왕익수의 5촌 조카
숭의전참봉 왕재소(王在韶)[8] 1893년 ~ 1898년 왕윤동의 생가 종손(從孫)[9]
숭의전참봉 왕응종(王應鍾) 1898년 ~ 1901년 왕재기의 장남
숭의전참봉 왕재하(王在夏) 1901년 ~ ? 왕익수의 7촌 조카[10]
숭의전참봉 왕회종(王會鍾) ? ~ 1907년 왕재기의 9촌 조카[11]
숭의전참봉 왕재형(王在衡) 1907년 ~ ? 왕재준의 생가 4촌 동생[12]

5.2.4. 대한민국

5.3. 일본

진짜 군주는 천황이지만 일본 무사 정권의 지휘자 또한 실질적 군주로 분류되므로 여기에 등재한다.

5.3.1. 아스카 시대

5.3.2. 에도 막부

5.3.3. 일본 제국

5.4. 몽골

5.4.1. 몽골 제국

5.4.1.1. 보르지긴 왕조
5.4.1.2. 아이신기오로 왕조( 청나라)
중국 문단의 하위 문단인 청나라 문단 참고.

5.4.2. 몽골 인민 공화국

5.4.3. 몽골국

5.5. 베트남

5.5.1. 전 레 왕조

5.5.2. 막 왕조

5.5.3.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6. 같이보기



[1] 다만 209년 폐하며 소멸한다. [2] 신찬(臣瓚)의 말에 의하면 위(衛)나라의 공자 자남미모(子南彌牟)의 후손이라고 한다. [3] 참고로 둘이 먼 친척이다. [4] 단군조선+ 고구려, 기자조선, 백제, 신라(박씨, 석씨, 김씨), 금관가야, 고려. [5] 왕성원의 증조 왕곤 이래 한 봉사자가 숭의전부사까지 오른 경우는 처음이다. [6] 왕경효의 막내 남동생 왕경신(王景信)이 왕경효의 5촌 당숙인 왕세신(王世臣)에 양자로 간 뒤 낳은 장남이다. [7] 전 숭의전감 왕성원(王聖元)의 4촌 동생 왕이원(王履元)의 5대손이다. [8] 족보명 왕재설(王在卨). [9] 왕윤동의 친동생 왕계동(王啓東)의 손자이다. [10] 전임 숭의전참봉 왕재준(王在儁)의 8촌 삼종형(三從兄)이기도 하다. [11] 왕응종의 10촌 동생이기도 하다. [12] 왕재준(王在儁)은 본래 왕기수(王夔修)의 장남인데, 출생 이후 7촌 재종숙 왕철수(王哲修)에 입양되었다. [13] 다만 이와 대조적으로 14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히데를 배출한 아시카가씨의 지류, 히라시마쿠보 가문은 초대 당주 아시카가 요시츠나가 12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동생이라 남아있는 아시카가 일족 중 혈통상으로는 아시카가 쇼군가와 가장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성까지 히라시마로 바꾼 채 아와 토쿠시마 번주로 부임한 하치스카 가문의 지배 아래 살아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