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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8:22:54

이순신의 나라


1. 개요2. 줄거리3. 등장인물
3.1. 이순신과 주변 인물3.2. 왕실3.3. 문신3.4. 무신3.5. 명나라 측 인물3.6. 건주여진 측 인물3.7. 기타 인물
4. 기타

1. 개요

파일:64528919.jpg

대한민국 대체역사 소설. 작가는 슈타인호프.

2015년에 발간됐으며 전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2. 줄거리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노량 해전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끝내 살아남고 여세를 몰아 부산에 있던 왜군들의 항복을 받음으로써 전쟁이 끝났다는 것에서부터 실제 역사와 달라지는 분기점이 된다.

종전 1년 후인 1599년, 선조 임진왜란도 끝냈는데 기왕에 이순신을 역적으로 만들어 처형할 심산으로 누명을 씌우고 한양으로 압송하려 한다. 그러나 고금도의 백성들이 압송을 막아 호송관들에게 이순신을 역적으로 만들지 말라면서 호소하고, 때마침 고금도에 들어온 안위 일행이 이순신을 구출하고는 그에게 의심꾼에다 썩어빠진 마음씨를 지닌 선조를 왕위에서 끌어내자며 거병할 것을 요청했고, 그런 상황에 탐탁지 않으면서도 상황이 상황인 지라 계속 고민하던 이순신이 그 요청을 어렵게 받아들여 반란(!)을 일으킨다는 이야기. 다만, 이순신은 일단 선조를 퇴위시키고 광해군을 옹립한 후에는 군사를 해산하고 처벌을 기다리겠다는 심산이었으나[1] 이순신을 따르는 부하들은 역성혁명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성계 시즌 2

이순신이 이끄는 전라좌수군은 전라우수군, 충청수군과의 전투를 치르며 한양에 들어오게 되었고[2] 이에 호응해서 배설이 이끄는 육상 병력도 함께 한양을 공격했지만 이미 선조는 도성의 백성들을 내버려두고 경강 주변의 마을 일대를 불태운 채 왕족들과 몇몇 문관들을 데리고 도망친 후였다. 이에 분노한 경군 일부가 이순신에게 합세하여 취약했던 육상전력도 보강된다.[3] 게다가 선조 일행은 함흥에 도착하면서도 수적으로 열세인 선조측 관군을 내버려두고 왕자 정원군과 짜고 누르하치 세력하의 여진족들을 끌어들이는 바람에 백성들의 민심과 관군들의 충성심을 동시에 하락시켜 버리는 악수를 두고 말았고, 결국 정원군의 야심을 이용한 누르하치의 암수에 의해 정원군과 그의 자식들을 제외한 선조 일가는 멸족하고 만다.

선조 일가의 시신을 거두고 한양으로 돌아온 이순신 일행은 그를 아직까지 의심하던 윤두수 이하 문관 및 사대부들이 꾸민 암살 음모에 휘말리나, 이내 제압하고는 임금이 없는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 휘하 부하들과 이항복, 이원익, 곽재우 등 진정한 충신들, 그리고 백성들의 지지를 업고 새로운 국가를 열게 된다. 새로운 국가의 이름은 .

3. 등장인물

3.1. 이순신과 주변 인물

3.2. 왕실


흥안군, 원손, 정원군과 당은군의 아들들이 포함된 다른 직계 왕족들은 이름이나 칭호만 언급되며 정원군의 아들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살해당한다.

3.3. 문신

3.4. 무신

3.5. 명나라 측 인물


안타깝게도 진린이 없다. 나왔다면 이순신빠의 진가를 보여주었을 텐데(...). 진짜 아쉽다. 이순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지휘관들은 선조가 어떻게서든 명으로 귀국시켰기 때문이다

3.6. 건주여진 측 인물

3.7. 기타 인물

4. 기타


[1] 사실 보통은 역모를 꾀해도 "○○대군/군을 왕으로 세웁시다!" 이게 많았지 "걍 내가 왕 하겠음" 이건 드물었다.(기껏해야 이홍윤의 옥사 때 이홍윤(李洪胤)이나 최대관(崔大觀)이 거론되었던 것 정도) 하다못해 신임옥사 당시에 이이명을 추대하자는 의논이 있었는데 이이명은 세종대왕의 아주 먼 후손이었다. [2] 경상좌수군은 왜군의 재침략을 우려해 주둔지를 떠나지 못했고, 어차피 수사가 다른 사람도 아닌 이운룡이라 선조와 이순신 중 택하라면 이순신 쪽에 붙었을 것이다. 경상우수군은 어명에 따라 이순신 토벌 준비를 했으나 선조의 의심병이 도져 경상우수사 유형을 이순신 인맥이라는 이유로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자 분노한 유형이 함대를 이끌고 이순신에게 합세, 전라우수군은 수사 김억추 명량 해전 때처럼 조금 싸우다 도망치자 거의 모든 병력이 이순신에게 투항하고 전투다운 전투는 충청수군하고만 치렀다. 충청수군과의 전투로 전라우수군 함대가 거의 전멸했으나 충청수군도 돌파당했고, 경기수군도 이순신에게 투항했다. [3] 함경도 육군 파견대도 가담하는데, 이들의 선봉장이 소년 시절의 이괄. [4] 격류부터 시작해서 김경진 계열의 역밀덕들에게 안위는 보통 통상빠 감초캐의 이미지가 정립되어 있다. [5] 다행히 김억추가 우수영에 배를 버리고 튀어서 되찾기는 했다. [6] 사실 충청수군이 발견된 이후의 대처는 상식적인 수준이었다. 다만 귀선이 나타나면서 항왜병들이 대패닉에 빠진 게 문제. [7] 이순신과 접촉하려던 왕자 순화군을 모르고 살해한 데다 그 사이에 잠시 파주에 묵고 있던 왕족 중 정원군이 선조한테 순화군과 임해군이 서로 짜서 이순신과 접촉하려 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고, 왕자의 배신을 염두에 둔 선조가 황해도 방면 도주로가 이순신이 이끄는 군세에 막힌 줄 알고 함경도 방면으로 도주해 여진족과 연결되면서 내전이 장기화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래에서도 언급하지만 이 인간 잡았다고 반정군에게 딱히 호재는 아니었을 지도. [8] 소하로 보기는 애매하다. 전라도에 남아있으면서 계속해서 보급을 대주는 역할이었다면 소하라 해도 좋았겠지만 본작에서 정 참봉의 역할은 각지의 첩보망을 운영하여 뒷공작을 벌이고 정국의 흐름에 맞춘 조언을 내놓는 책사 그 자체다. [9] 그래서 이항복이 두 왕조 모두 정씨가 한 몫 한다며 묘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10] 독자들을 상대로 등장인물 신청을 받았었다. [11] 실제 역사의 준사 포지션인 셈이다. [12]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하야시 미치카츠의 일가붙이 중 하나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13] 근처에 조명 연합군이 다가오는 데도 일부러 이순신에게 항복했다. 그가 내로라 하는 주요 전국 다이묘들을 가둬놓고 뚜까 패는 모습에 감명받았기 때문. [14] 반정 이전엔 정말 이도저도 아닌 객식구 그 자체였다. 그나마 반정 이후에는 중요한 전력으로 취급되긴 하지만 역시 조선인 승조원들과 종종 마찰이 있었다. [15] 왜냐하면 항왜부대를 빼면 이순신의 수군이나, 진압군이나 다 조선인들이기 때문. 이 점이 크게 작용해서 많은 조선군 부대들이 항복하고 합류했다. [16] 어찌나 입장이 강경한지 이순신조차 자신들이 생각하던 이상적인 왕은 아니라고 평한다. 이러다 공화주의 주장할 기세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이순신 외에 대안이 없다는 데에는 동의. [17] 통제영측 인사들은 배 수사 군이라고 부르지만 이순신은 이 단어를 절대 쓰지 않고 의병이라고 부른다. 배설의 사병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 [18] 배설은 이순신이 수군에 넘쳐나는 포병과 궁병을 넉넉히 지원해줄 것을 기대하고 대부분 창검병을 데려왔지만, 수군도 한양에 도착하기까지 이래저래 인력과 물자 소모가 있었고 설마 배설이 궁병을 안 데리고 올 줄은 상상을 못 해(조선 땅에서 궁병 없이 싸운다는 생각을 누가 해) 원하는 만큼 지원병력을 배속해주기 어려웠다. 이후 성천강 전투에서도 배설은 포 40문의 추가 배치를 요구했지만 역시 반려되었다. [19] 이 유언이 이순신이 등극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20] 실제 역사에서도 이 이유 때문에 조선 수군 전체에서 경상우수영의 규모가 가장 컸고, 역대 삼도수군통제사도 대부분 경상우수사가 겸직했다. [21] 사실 이 때 안 왔으면 큰일날 뻔한 게, 신기전은 쏴야 되고 통제사가 탄 상선에서는 빨리 쏘라고 닦달하고, 배 안에 아무도 쏴 본 사람이 없어서 쩔쩔매고 있었는데 마침 민정붕이 돌아온 것. 그 험한 명량 바다를 어떻게 뚫고 온 건지는 별개고 그나마 책으로라도 쏘는 방법을 읽은 민정붕 덕분에 큰 활약을 하게 된다. 난중일기에서는 민정붕이 판옥선을 '위덕의'라는 피난민에게 내줘서 그걸로 곤장을 쳤다고 나온다. 그런데 이 위덕의라는 사람은 나중에 형조좌랑에 까지 이른 벼슬아치였고, 명나라 제독부참군 여응종으로부터 극찬까지 받은 바가 있을 정도로 대규모 군량미 거래를 했었던 것. [22] 종국에는 이순신이 즉위했으니, 아마도 세자로 책봉되었을 것이다. [23] 실제 역사에서는 능력은 있는데 찌질하다는 복합적인 평가를 받으나 여기서는 악역이므로 성격을 부정적인 부분만 극대화시켰다. [24] 다만 선조에게 은혜를 입은 김충선· 정충신이 여기서도 끝까지 선조에게 충성하는 걸 보면 선조의 인재 보는 능력은 간접적으로 암시된다. [25] 육지에 있으면서 이순신의 거병에 찬성하지도 않은 권준 입부 이순신은 초장부터 조지더니 정작 교동현감 홍가신은 이순신의 사돈인데도 건들지도 않았다가 반정군의 한양 습격을 허용한다. 여기에 권준과 입부 이순신의 추포로 경기방어사와 포도대장 자리도 공석인 채로 한양방어전 돌입. 이뭐병.... [26] 선조의 원래 묘호는 선종이었다. 후에 임진왜란 때의 공이 있다 해서 선조로 바뀌었을 뿐. [27] 이것도 사실 실제와 비슷하다. 포로로 잡혔던 것도 백성들을 위무해야 하는 처지에 이것저것 갑질만 벌이다가 일어난 일이기 때문. [28] 사실상 즉위를 못했기에 묘호를 올려야 하는지 논의가 있었으나 그가 왕으로써 이순신에게 선양을 해야 신왕조에 정당성과 명분이 생기므로 결국 공식적인 마지막 왕으로 인정되었다. 헌종으로 하자는 이들도 있었으나,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는 점을 가련히 여겨 애종으로 하였다. [29] 그 전에 정릉동행궁에서는 코를 고는 척하면서 순화군과 임해군의 대화를 엿듣고, 두 사람에 대한 의심을 선조에게 주입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30] 임금이 아니라 작위 요구자이다. 한마디로 무직인데 자기가 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일 뿐이다. [31] 하지만 누르하치 입장에서 함흥 전투 이후 이순신의 즉위까지 약 반년여 기간 동안 그를 괴뢰 왕으로 세우고 소식을 퍼뜨리면 곧바로 조선 내부를 뒤흔들 수 있음에도 그런 모습이 안 보이는 걸 봐서는 다른 결말에 이른 것일 지도. 여진애들도 데려와 놓고 보니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겠지 [32]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앞세우기엔 왕과 왕족을 몰살시킨 여진족에게 옹립된 처지라 부족한 게 많은 반면, 이순신은 광해군에게 선양받고 명나라의 책봉까지 받았다. 따라서 정원군은 조선 왕으로 사대부들이 충성을 바치기엔 명분이 앞선다고 할 수도 없다. 다만 윤두수 일파는 아직까지도 "나으 정원군 마마께서는 그러셨을 리 없다능 모두 이순신 역도들의 더러운 거짓말이라능 전하와 왕실은 이순신 역도들이 죽인 거라능!"이라며 정신승리 중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여진족들을 뚫고 가서 보필해 온다는 방법도 없다 [33] 그런데 작중에서 피난가는 곳이 혜산이랬다가 회령이랬다가 오락가락 한다. [34] 말이 왕족이지, 5촌 정도면 명예직 외에는 관직도 못 나가며 봉록이나 받아먹는 정도. [35] 사대부와 지주들에게 세금을 걷고 공납을 철폐해 수미법을 도입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는데, 하다 못해 온건하게 가겠다는 대답조차 못 했다. 대신들은 분명히 총명하다며 칭송했는데? 윤가놈 선구안 수준 봐라 [36] 조선에서도 고려를 멸망시킨 후 왕씨 학살을 벌이긴 했지만 공양군의 동생과 그 일가족은 살려두어 고려 왕조의 제사를 잇게 한 바가 있다. [37] 설령 초반에는 권신이 되어 정책을 추진한다 해도 언젠가 왕의 주변에 당여가 모여 충돌할 것이 뻔하기 때문. 이순신의 개혁안은 사대부와 지주에 대한 군역 및 조세 부과를 골자로 하고 있어서 어지간한 권력으로는 추진이 불가능했다. 실제로 왕이 개혁파를 밀어줄 때는 어느 정도 일이 되는 것 같다가 왕의 죽음이나 정계개편 등으로 지원이 끊기자 마자 중단을 넘어서서 아예 롤백되는 사례는 동서고금에 쌔고 쌨다. [38] 매일 한 마리씩 잡수셨다고 한다. 1인 1닭은 민족의 전통 그리고 예쁜 하녀들도 여럿 건드려서 이덕형이 '거 어머니께서 탐탁지 않게 여기시니 작작 좀 하시오.'라고 불평할 정도. [39] 이원익은 후임으로 윤두수가 취임해 '전 영의정' 자격으로 나섰지만 이항복은 후임 우의정이 없어서 현직 우의정 자격으로 복귀한다. [40] 해봐야 완전 아웃사이더였던 정 참봉이나, 곽재우·류성룡 등 재야 남인 정도. [41] 아버지 선조를 살해하고 왕이 된 것도 반역, 천자국인 명나라를 치자고 누르하치와 합심한 것도 반역이다. [42] 이건 윤두수입장에서는 억울할 일인데, 원균은 당시 조정 누구나 나름 용맹하고 잘 싸우는 인물로 착각하고 있었다. [43] 실제로 임란 초기 명군 청병에도 반대했다. 결국 평양성까지 피탈당하자 어쩔 수 없이 청병에 동의하긴 했지만. [44] 소근포 해전에서 전라우수군 전력을 거의 소진시키긴 했지만 그 뿐, 반정군 전체 전력으로 보면 진공을 멈출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다. [45] 김억추의 후손들이 작가를 사자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수백년 전의 인물이 대상인 경우 죄가 성립하기 어렵다. [46] 거북선의 방어력을 더욱 강화하는 개량을 한 데다, 전라우수군의 전력이었던 항왜 병력이 거북선 때문에 ' 모랄빵'을 일으켜 버렸다. [47] 실제 역사에서는 시전부락 전투에서 여진족을 기습해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수급 380급의 얻을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았고 광해군의 분조를 이끄는 등 공도 있었지만 상주 전투에서 나체로 도망, 탄금대 전투에서도 또 나체로 도망치는 등 임진왜란 당시의 행보에 걸맞게 묘사되었다. 여진족 상대로 한 행적에 비하면 폄하이지만, 왜군 상대로 한 행적에 비하면 이것조차 미화다. 적어도 여기서의 이일은 갑옷만은 끝까지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48] 실존인물 이일은 1601년에 부하 병졸을 무고하게 죽였다는 혐의로 국문을 받기 위해서 함거에 실려 의금부로 압송당하고 있었는데 가던 도중 함거 안에서 사망했다. [49] 실제로는 문신이었다. [50] 권율에게는 자식이 이항복과 결혼한 딸 하나가 전부였다. [51] 이 때 반정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목책을 세우는데 여기에 조선 여인들을 묶어두어 인간방패로 쓰는 만행을 저지른다. [52] 이 중 500기는 전향을 거부해 해산 및 귀가하게 하면서 총 1,500기가 전향한다. [53] 실제 역사에서 이괄의 난 때 이괄군에 가담한 장수. 난이 실패하자 이괄과 함께 살해되었고 아들인 한윤 후금으로 망명했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이순신과도 함께 작전을 벌인 적도 있는 베테랑 장수였다. [54] 본래는 이황의 제자로 문신이었다. [55] 당시에는 재취 자리에 대한 인식이 썩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계실도 엄연한 정실은 정실이니 첩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았지만. [56] 거부 답서라 해도 일단 반역도당과 연락을 했다는 물증인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엮어넣을 수 있다. 그런데 아예 거부 답서가 발각된 권준도 죽지는 않고 살아남는다. [57] 작중에서 광주목, 광주부가 혼동되는데 경기도 광주는 1577년에 부가 되어 부윤이 임명되었다. 유수부가 되는 것은 정조 시기인 1795년. [58] 계월향 전설에 등장하는 그 김응서, 웹툰 칼부림에 등장하는 그 김경서와 동일인물. 유능한 장군으로, 칼부림에 묘사된 것처럼 항왜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항왜들의 후원자가 된 공로가 있으나 본의 아니게 이순신을 모함하는 데 동참한 과오가 있다. 곽재우는 김응서가 이순신을 모함한 과오에 대해 꾸짖는 격문을 보냈다. 참고로 본작에서 김응서는 좌병사, 정기룡이 우병사로 나온다. [59] 함흥부윤은 조선초부터 오랫동안 함경감사가 겸직했기 때문에 그냥 문향식 없이 윤승훈이 모든 역할을 맡는 게 나았을 것이다. 함흥부의 최선임 상근직은 판관이었다. [60] 다행히 피에 절인 상태였기에 곧바로 펼쳐보지는 않았다. 이 밀서를 열어보는 것은 성천강 전투 이후. 정원군은 이걸 빌미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세자가 될 기쁨에 몸둘 바를 몰랐다. [61] 고증오류 중 하나. 이 당시 후창 지역은 무창군 폐군 이후 줄곧 갑산부 소속이었고, 그나마도 후주와 무창이 합쳐져서 후창이라는 지명이 탄생한 것은 1869년이다. 본작 시점에서 후주와 무창에는 진조차 없었으니 동행을 시키려면 당시 갑산부사 정항(鄭沆)을 보내야 한다. 아니면 어거지로 설치시기 불명인 혜산진첨사를 등장시키든가. [62] 사실 이순신이 이들의 신변 보호를 적극적으로 약속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같이 감금된 사람들이 죄다 신변도 안전하겠다 놀고 먹는 니트 라이프를 택한 와중에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사례는 김극제 뿐. [63] 군졸들은 물론이고 화포와 판옥선까지 포함해서다. 대신 조선에는 배값을 주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64] 만세덕이 '혹시라도 조선에서 일어난 반란을 징벌한다며 황제 폐하께서 대군을 보내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라고 말하자, 이순신은 살벌한 대답을 한다. "우리 조선의 전선 50척이 요동 해안을 지나 발해만으로 향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소?" 괜찮아 고려천자라서 봐주실 거야 [65] 끝내 도성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다가, 결국 이순신의 협박대로 수십 문의 화포와 1만여 명의 군사들이 포위한 상황에서 명나라로 보내버린다고는 했지만, 사실은 강화도에 보내버리는 것으로 끝. 배로 보낼려고 해도 여력이 없고, 육로로 보내려고 해도 무슨 짓을 벌이면서 갈 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66] 이로부터 약 13년 후, 추연은 실제 역사에서 이복동생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후계자가 되자 반발하였다가 누르하치에 의해 숙청된다. 본작 세계관에서는 조선 원정 실패를 구실로 삼을 지도? [67] 황제가 적의 포로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는 한국의 칠천량 해전 이상의 흑역사이다. [68] 이몽학의 난에서도 보이듯이 초반에 선전해도 지배층의 지지가 없으면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