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유럽계 민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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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原始印歐人 / Proto-Indo-Europeans원시 인도유럽인 또는 인도유럽조인은 오늘날의 캅카스 산맥을 중심으로 거주하며 인도유럽조어를 사용하던 최초의 인도유럽민족으로, 오늘날 모든 인도유럽제족의 조상이다.
원시 인도유럽인은 유목민인 관계로 그 특성 상 현대인만큼 유전적으로 혼합되었을 수 있기 때문에,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언어 집단일 뿐 그 어떤 인종적 의미나 구분으로 보기에는 어렵다.[1]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유목민으로 추정되며 이들이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퍼지면서 말과 마차를 유라시아의 여러 민족들에게 소개한 것으로 보인다.
2. 역사
자세한 내용은 인도유럽어족 문서 참고하십시오.2.1. 기원
원시 인도유럽인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설이 존재한다. 본래 원시 인도유럽인의 존재에 대한 추정은 인도유럽어족의 조어인 인도유럽조어를 재구해내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므로 인도유럽어족의 원향이 어디냐에 따라 이들의 발원지가 어디인지도 자연스레 밝혀진다. 주류 언어학계에서는 쿠르간 가설과 아르메니아 가설, 히타이트 가설을 제시하며 이 중에서 쿠르간 가설이 인도유럽어족의 기원과 관련하여 가장 유력한 가설로 지목된다.고고학과 고인골 유전체 분석을 토대로 재구성하자면 캅카스와 이란의 코카소이드계 토착 수렵채집민인 동부 수렵채집민(Eastern Hunter-Gatherers, EHG)과 북부 시베리아의 기원을 두고 퍼진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혼혈이다.
기원전 4천 년대 북캅카스어족의 북서캅카스어족에 속한 체르케스인, 압하스인, 아바자인의 직계 선조로 여겨지는 캅카스 산맥의 마이코프(Maykop) 문화의 구성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며, 인도유럽어족의 아나톨리아어파는 서쪽으로 이주한 집단에서, 나머지 인도유럽어족 언어는 북쪽 캅카스 산맥을 넘어 초원 지역으로 이주한 집단에서 분화한 언어로 이해될 수 있다. 이후 서쪽으로 이주한 집단은 유럽에서 매듭무늬토기 문화(Corded-Ware Culture)[2]를 발달시킨다. 이 집단들에서 여러 유럽어가 파생되었다.
2.1.1. 쿠르간 가설
쿠르간 가설이란 러시아 남서부 지역과 중앙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있던 쿠르간 문화의 주민들이 원시 인도유럽인이라는 가설로, 1956년에 리투아니아 태생 미국의 고고학자인 마리야 김부타스가 유럽 러시아[3]에 위치한 스텝 지대에 무수히 존재하는 분묘들을 발굴하여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세워졌다. 이 분묘를 러시아어로 쿠르간이라고 하며 쿠르간 문화와 쿠르간 가설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했다.
김부타스의 연구에 의하면 쿠르간 문화와 연관된 유적들은 가장 오래된 것이 기원전 4천 년 무렵까지 그 역사가 소급되는데 이를 토대로 쿠르간 문화도 이때 처음 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쿠르간 문화 유적에서 발굴된 유골에 대해 이후에 형질인류학자들이 Y-염색체 하플로그룹을 조사했는데 하플로그룹 R1a가 높게 나타났다. 이 하플로그룹은 중앙아시아 제민족[4]과 동쪽의 슬라브족들, 페르시아계 민족들 및 스칸디나비아반도의 노르드족들에게서 높게 나타났기 때문에, 쿠르간 문화의 주민들은 인도유럽어족 계통 민족이었고 이곳이 원시 인도유럽인의 발원지였다는 게 가설의 핵심이다.
노르드족들에서는 모두 I1 그룹이 대다수를 차지했는데, 특히
독일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으므로 때문에
게르만족에 해당하는 표지로 보인다.
오스트리아에는 I1 그룹이 다른 동유럽 국가들보다 비교적 많긴 했지만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와 마찬가지로 슬라브족에 해당하는 표지인 R1a 그룹이 높게 나타나 슬라브족과 긴밀하게 얽혔던 역사가 유전자상으로도 드러났다. I2a1 그룹은 슬라브족 중에서도
남슬라브족의 표지인 듯하다.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와 같은 남유럽 혹은 그와 가까이 위치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자주 나타났고 동유럽인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에서도 비중이 컸다. I 계통이면서도 언어는 주로
슬라브어파인 것을 보면 이들은 슬라브화된 게르만족에서 유래된 모양이다. I2a2 그룹은 게르만족 중에서도 투링기족을 나타내는 표지인 모양인데, 어디든 비중이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중에서는 특히 독일의 튀링겐, 작센-안할트 지방, 스웨덴의 베스트베르보텐 지방, 스코틀랜드의 저지대 지역, 북아일랜드에 주로 분포하고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에서 어느 정도 나타났다. 잉글랜드에서는 동부를 중심으로 남서부로 갈 수록 점점 비율이 줄어들어 앵글로색슨족의 역사적 이동을 증명하였다. 근데 스웨덴이나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 분포하는 I2a2는 게르만족의 영향이 아니라 중석기 시대에 독일 중부에서 유럽 전역으로 퍼진 민족들의 영향인 듯하다. 핀란드에서는 절반을 넘게 차지하는 N 그룹과 큰 비중을 차지하는 I1 그룹의 혼혈로 나타났다. N 그룹은 발트 3국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걸로 나타났고 심지어 북서부 러시아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헝가리어가 핀란드어와 같은 우랄어족에 속하긴 하지만 정작 헝가리에서 N 그룹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R1b 그룹은 영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심지어 독일과 스위스에서도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고, 거기다 정통 게르만계 국가로 통하는 노르드족 국가들에서도 빈도가 높았으므로, 이쪽은 유럽의 선주민이었던 켈트족에 해당하는 표지인 모양이다. |
재구된 인도유럽조어에서 유목 생활과 관련된 어휘가 많이 있다는 점도 쿠르간 가설을 지지하는 유력한 근거가 되었다. 쿠르간 문화의 유적에서 말의 뼈와 마차의 부품들이 대거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이 문화를 세운 이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2.1.2. 아르메니아 가설
아르메니아 가설이란 아르메니아어가 현대 시기는 물론, 고대 시기에도 문법적 성의 개념이 없었다는 데서 기원한 가설이다. 이름대로 이 가설에서는 인도유럽어족의 원향을 아르메니아로 비정하며 아르메니아를 포함한 캅카스 지역에서 주변의 이란 고원 및 유럽, 아나톨리아반도 일대로 원시 인도유럽인에서 분화된 민족들이 분화했다고 여긴다.이 가설에 따른 구체적인 인도유럽어족의 분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원전 4천 년 무렵 캅카스 지역을 출발지로 인도유럽조어에서 맨 처음 아나톨리아어파[5]가 갈라져 나왔고 서쪽으로 이동해 대략 기원전 3천 년 무렵에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했다. 이후 헬라-아르메니아-인도이란 조어가 분리되었다가 기원전 3천 년쯤에 각각 헬라어파, 아르메니아어파, 인도이란어파로 분리된 뒤 헬라어파 사용자들은 서쪽으로 이동해 아나톨리아와 남유럽 방면으로 진출하였고 인도이란어파, 켈트-이탈리아-토하라 조어, 발트-슬라브-게르만 조어 사용자들은 카스피해 동안을 따라 캅카스 산맥을 넘어 북상했다.
기원전 2천 년 무렵에는 켈트-이탈리아-토하라 조어에서 토하라어파가 분리된 뒤 흑해 북안을 거쳐 중앙아시아 방면으로 이동했다. 기원전 2천 년에서 기원전 1천 년 사이 켈트-이탈리아 조어 및 발트-슬라브-게르만 조어 사용자들은 카스피해 북쪽의 동유럽 초원지대를 거쳐 서쪽으로 이동하여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원시 인도이란어파 사용자들의 유전자에서 유럽 토착 농경민의 혈통이 일부 섞인 걸로 나타났다. 일단 상기 집단들과 함께 초원지대를 거쳐 서쪽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동쪽으로 이동해 흑해 북안을 거쳐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남아시아 방면으로 이동했던 듯하다.[6]
아르메니아 가설은 쿠르간 가설과 마찬가지로 2022년 기준으로 고고학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주류 학계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 두 가설은 서로의 보완 가설로 인정받는다. 이에 따르면 원시 인도유럽인은 캅카스 일대에서 처음 발원한 수렵채집인 부족이 우크라이나 방면으로 이주한 후 기원전 3500년경 중앙아시아의 정주 목축민 문화인 보타이 문화[7]로부터 말을 도입하면서 유목민으로 변모하여 생겨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2.1.3. 히타이트 가설
히타이트 가설은 아나톨리아 가설이라고도 불리며 아나톨리아반도에서 발원한 문명인 히타이트의 언어인 히타이트어가 재구된 인도유럽조어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기원한 가설이다.위의 두 가설과의 차이가 있다면 쿠르간 가설과 아르메니아 가설에서는 원시 인도유럽인을 유목민으로 비정하고 있지만 이 가설에서는 원시 인도유럽인을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농경 생활을 하던 정주민으로 본다는 것과 원시 인도유럽인이 발생한 시기를 기원전 9500년 무렵에서 기원전 8천 년 즈음으로 잡는다는 것이 있다. 히타이트 가설에서는 농경생활을 하던 원시 인도유럽인이 모종의 이유로 오늘날의 캅카스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고자 농경 생활을 포기하고 유목민이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 가설은 2021년 기준으로 주류 언어학계에서 빠르게 지지를 잃었다. 쿠르간 문화의 후신으로 추정되는 얌나야 문화의 유적에서 출토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 히타이트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골과 형질인류학적으로 친연 관계가 그리 깊지 않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8] 그래서 히타이트인을 포함한 아나톨리아반도의 농경민들은 비(非)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선주민들이 원시 인도유럽인들에게 정복당한 뒤에 이들에게 동화되면서 형성된 민족이라고 추정한다.
2.2. 분화 과정
아르메니아 가설에 의하면 원시 인도유럽인과 인도유럽어족의 분화 과정은 다음과 같다.우선 기원전 3300년쯤 쿠르간 문화의 주민들이 오늘날의 우크라이나까지 남하하였고 이 과정에서 아나톨리아어파 계열 언어를 쓰는 집단들이 기원전 3천 년 무렵 아나톨리아반도로 진출하고 현지의 선주민들을 정복하여 히타이트를 포함한 아나톨리아어파 계열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 이들은 고대 이후 그리스인이나 아르메니아인에 동화되었다가 11세기 만치케르트 전투 이후 튀르크인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오늘날의 튀르키예인이 되었다.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던 이들이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어, 인도이란어파의 조어를 쓰는 집단과 발트어파, 슬라브어파, 게르만어파의 조어를 쓰는 집단, 켈트어파, 이탈리아어파[9], 토하라어의 조어를 쓰는 집단으로 분화되었는데 이 중에서 원시 그리스어를 쓰는 집단이 기원전 3천 년쯤으로부터 기원전 2500년 무렵에 그리스-아르메니아-인도이란어의 공통조상에서 분리된 뒤에 서진하여 오늘날의 그리스에 정착하여 현대 그리스인이 기원이 되었다. 나머지는 카스피해의 동쪽 연안 지역을 따라서 북상하다가 기원전 2천 년쯤 동일집단에서 인도이란어파 계열 민족들의 공통조상인 아리아인이 분화되어 아시아 방면으로 진출했는데, 캅카스 방면으로 진출한 이들이 아르메니아인의 기원이 되었다.
기원전 2천 년 무렵 켈트-이탈리아-토하라어의 공통조상에서 분리된 집단이 오늘날의 러시아의 시베리아 지역으로 진출하였는데[10][11] 이들이 뒷날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지역까지 진출하여 현지의 고대 북유라시아인계 선주민들을 동화시키면서 토하라인의 기원이 되었고 나머지가 유럽 방면으로 서진하여 중부유럽과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오늘날의 켈트계 민족들과 라틴계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12]
마지막으로 기원전 2천 년 즈음에서 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 발트-슬라브-게르만어의 공통조상이 오늘날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독일, 폴란드 일대 및 러시아의 유럽 지역으로 진출하면서 리투아니아인, 라트비아인 등의 발트계 민족들과 게르만계 민족들, 슬라브계 민족들의 기원이 되었다.
3. 문화
쿠르간 문화의 유적지와 재구된 인도유럽조어에 대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원시 인도유럽인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유목민으로 추정된다. 인도유럽조어의 어휘에는 말이나 마차 등 유목 생활과 관련된 어휘가 대거 확인되는데 쿠르간 문화와 그 후신 문화인 얌나야 문화, 아파나시에보 문화의 유적지에서도 말의 뼈와 마차의 부품 등이 대거 출토되어 이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사실이 확실하게 입증되었다. 말 사육 기술은 기원전 3500년쯤 선사 시대의 중앙아시아 선주민들이 세운 보타이 문화의 주민들로부터 습득한 것으로 보이며 식용에 그쳤던 말을 수송용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흔히 알려진 유목민들의 모습마냥 말 위에 직접 탑승하는 형식은 아니었는데 이 시기의 말은 사람의 체중을 버텨내기가 어려웠던 터라 사람이 직접 타는 대신에 말이 끄는 수레, 즉 마차를 만들어서 타고다니면서 유목 생활을 했다.[13]원시 인도유럽 신화를 믿었던 것으로 보이며 원시 인도유럽인들이 유라시아의 각지로 진출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나 베다 신화, 발트 신화 등의 인도유럽어족 계통 민족들의 신화가 파생되어 나왔다. 이 신화에서 주신은 천신인 디에우스였다.[14] 발음을 보면 알겠지만 이 신은 제우스, 유피테르의 기원이 되는 신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주거지 유적 연구에 따르면 주거지는 돔 형태다. 그래서 인도유럽조어로 집을 가리키는 단어가 영어로 돔을 뜻하는 dome의 어원이 된 *domo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도미토리(dormitory)다. 이 시기에는 돔=집이었다.
4. 특징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후손이다. 얌나야 문화와 아파나시에보 문화권 지역에서 발견된 유골들에서 약 25%의 ANE 유전 요소가 검출됐으며 현대 유럽인들에게선 다소 희석됐지만 10~20% 정도 검출되고 현대 유럽인들에게 ANE의 영향은 대체로 지중해 일대의 남유럽인들에게는 10% 이하로 낮게 나오지만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유럽인들에게는 최대 25%까지 나온다.머리칼은 갈색, 눈은 갈색이었다. 2022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얌나야 문화권 인종들의 전형적인 표현형은 금발벽안이 아니라 갈색 머리/ 갈색 눈이었다. 서유럽에 금발보다 갈색 머리가 훨씬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당연한 게 금발 형질이 열성이기 때문에 혼혈 민족인 아리아인들은 당연히 갈색머리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갈색머리가 금발로 혼동됨은 유럽에서 갈색 머리라고 칭하는 것을 미국에서는 blond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발 정보를 번역하는 한국에서 영상매체 없이 글로만 blond라고 적힌 걸 그냥 금발로 번역하다 보니 생기는 일이다.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밝으며 비인도유럽인보다 비교적 금발벽안이 많았다. 금발벽안은 구석기 시대엔 개체 별로 종종 발현되었지만 환경상 원인으로 대중화되지 못했다. 그러나 고위도에 거주했고 우크라이나 평원에 살았던 이들에게서 금발벽안이 다른 민족들과 달리 대중적으로 발현되었다. 그들보다 훨씬 고위도에 거주했던 우랄어족의 조상[15]보다 더 비타민D 부족에 시달려서 피부를 통한 햇빛 합성으로 비타민D를 합성하는 개체가 자연선택되었기 때문이다.
고위도 지방인 시베리아 서부에 거주하던 말타-뷰렛 지역의 고대 북유라시아인, 더 엄밀하게는 말타뷰렛 문화와 관련이 있는 러시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시 근교의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 사이의 구석기 시대 유적인 아폰토바 고라(Afontova Gora) 발굴지에서 출토된 3번 소녀 유골(일명 AG3)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했다고 추정한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1만 6천 년 전의 고대인으로 인류 사상 가장 오래된 금발 유전자를 보유한 호모 사피엔스이다. AG3의 어머니가 현존하는 유럽인 금발 보유자의 가장 최근의 공통 조상인 듯한데 동유럽 스텝의 목축민의 확산을 따라 전파되었다.[16]
게르만족이 남하하기 이전인 고대 로마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기의 그리스에도 금발이 존재했다. 심지어 시리아에도 존재했다. 사실 이는 당연하다. 5천 년 전 고대 북유라시아인의 자손인 이 원시 인도유럽인이 확산하면서 금발 유전자도 덩달아 유럽 전역뿐만 아니라 서아시아까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17]
이들은 청동기 시대에 유럽으로 확산되어 당시 원시적인 농경생활을 하던 유럽 원주민[18]들과 혼혈하여 다인자유전으로 갈발, 녹안, 회안 등 다양한 색을 지닌 자손들을 발현시켰고 농경민이 거의 없었던 스칸디나비아반도와 우크라이나, 러시아 평원에서만 금발벽안이 대중적으로 발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유전자는 서아시아, 남아시아에는 대중화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신석기 시대에도 당시 유럽보다 인구가 훨씬 많아서[19] 다인자유전에서 이들이 밀렸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이 청동기 시대부터 지배층 노릇을 했기 때문에 원주민 언어들을 박탈할 수 있었을 뿐이다.[20] 헬레니즘 시대부터 마그레브, 이집트, 레반트, 이라크에서도 라틴어, 그리스어, 페르시아어 등의 인도유럽어족 언어들이 대중화되어 셈어파 언어들이 멸종될 뻔했지만 7세기에 아랍인의 진출로 오히려 이들이 아랍화되어 아랍어를 모어로 쓰게 되었다. 남인도의 드라비다인은 열대 기후에 거주했기 때문에 이들이 적응하기 어려웠다. 캅카스 산맥은 험하고 농경 역사도 신석기 시대부터였기 때문에[21] 인도유럽어족이 북캅카스어족 등의 토착 언어를 대체할 수 없었다.
본래 우크라이나 동부의 평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유목민이다 보니 목축업만으로는 식량 조달이 어려웠다. 이를 벌충하기 위해 허구헌날 인근의 정주농경민이나 다른 유목민 부족들을 약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므로, 사회 전반에 군사적인 분위기가 강해서 철저한 가부장제를 유지했다.[22]
[1]
정주민이 아닌 이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생활하기 때문에,
근친혼의 폐해를 막고
결혼동맹을 통한 안보를 보장받고자 체류지의 토착민과 자주 통혼하는 것은 당연하다.
[2]
마리야 김부타스는 매듭무늬토기 문화를 원시 인도유럽인에 동화된 EEF 계통 민족이 세운 문화로 보고, 인도이란어파 계열 민족들의 공통조상인 인도아리아인의 직접적인 기원으로 추정했다.
[3]
당시에는
소련이었다.
[4]
이들은
튀르크계 국가인
카라한 칸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튀르크화되기 전까지는 본래
이란계 언어를 사용하였다.
[5]
히타이트 문명에서 쓰이던
히타이트어가 여기에 속한다.
[6]
Nash, Alexander (2015), The Proto-Indo-European Urheimat: The Armenian Hypothesis.
[7]
기원전 5천 년 무렵에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서부에서 발원한 문화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말을 가축화한 이들로 추정한다.
[8]
PDB Damgaard et al., 2018, Science
[9]
로망스어군이 속한 언어군이다.
[10]
이때
원시 우랄인,
원시 예니세이인 등의
시베리아 원주민들과 혼혈을 이루었기 때문에
코카소이드였던 원시 인도유럽인의 영향으로 인해 시베리아 원주민들의 적지 않은 수가
유라시안이다.
[11]
기원전 2천 년~기원전 1500년 무렵까지 오늘날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번성했던
선사 시대 문화권인 아파나시에보 문화가 이렇게 해서 분화된
토하라인들이 세운 문화권이다.
[12]
기원전 12세기부터
이집트 등의
지중해 연안 국가들의 기록에서 언급되는
우크라이나 지역의
유목민들인
킴메르족들이
켈트족과
라틴족의 공통조상 내지는 켈트족의 조상으로 추정된다.
[13]
원시 인도유럽 신화에서 신들인 신성한 쌍둥이 신이나 세훌, 헤우소스 등이
마차를 탄다는 묘사가 자주 나오는데 이는
유목 생활의 흔적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14]
정확히 말하면 '디에우스 피테'인데 '하늘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15]
신석기 시대에
우랄어족계 민족들의 조상은
냉대기후 일대에 거주하던 탓에 당시에도
순록을 이용하여
유목 생활을 하거나 수렵채집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날고기를 먹어서 비타민D를 보충했다.
[16]
^ Reich, David (2018). Who We are and How We Got Here: Ancient DNA and the New Science of the Human Past.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8821250|#
[17]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의
금발은 아폰토바 고라 유적의 유골과는 상관없는 별개의 돌연변이로 인해 생긴 것이라서
고대 북유라시아인이나 원시 인도유럽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18]
바스크족,
에트루리아인,
미노아인의 조상을 포함한
유럽 선주민들을 말한다.
[19]
현대의
서아시아는 건조기후지만
신석기 시대엔 지중해성 기후나 사바나 기후의 범위가 넓었다. 반면
유럽은 빙하기에서 막 벗어난 시기였기 때문에 여전히 한랭했고 토질도 좋지 않아 토지생산성이 서아시아보다 낮았다.
[20]
유목민의 특성 상 지배층조차도 현지인들과 혼혈이 잦아서 지배층이 현지 피지배층을 동화시키거나 역으로 동화되는 일이 많았다. 특히 고대에는
문명이 발달한 곳이 많지 않아서 정주 농경민조차도 유목민보다
소프트파워가 후달리는 경우가 꽤 되었던지라 유목민 출신 지배층들에게 농경민들이 동화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21]
북동캅카스어족 계통의 민족들은
비교언어학 및
형질인류학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늘날의 이라크 북부,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생긴 비옥한 초승달에서 기원한 농경민의 후손들이다.
[22]
후대에 등장한
유목민족인 튀르크족만 해도 오스만 제국 시기에 등장한
유럽인계 무슬림으로 구성된 군인계층인 예니체리를 법적으로 황제의 노예들이라고 규정해 놓거나, 조정 대신들과 지방의 유력 귀족(파나리오테스)들도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귀족 작위도 주지 않은 채 황실에 대한 절대 복종만을 강요하는 등, 정부 자체를 권위주의적으로 운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