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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06-07 16:59:03

정략결혼

政略結婚

1. 개요2. 역사적 정략결혼3. 금슬4. 대중매체5. 예시
5.1. 실존 인물5.2. 가공 인물
6.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6.1. 실존 인물6.2. 가공 인물
7. 혼동8.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9. 기타

1. 개요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시키는 결혼. 정략혼이라고도 한다. 스케일이 커지면 집안이 아닌 나라 사이에 왕실의 공주와 왕자가 결혼하여 나라 간의 동맹 등을 이루기도 한다. 나라간의 결혼으로 동맹을 강화한 역사적 사례로 나제동맹이 있다. 좋게 보면 가문 사이의 우애를 강화시켜 주는 풍습이지만, 나쁘게 보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족(자식)을 팔아먹는 악습이기도 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애정 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가 어떤 일[1] 때문에 법적 관계를 맺어서 사회적 위상과 보호를 얻기 위해 사무적으로 결혼하는 것 역시 서로의 자의로 했어도 정략결혼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정확히는 돈만 보고 한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혼테크라 불러야 하며, 사전적 의미로는 정말 사회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한 결혼만이 정략결혼이라는 말에 어울린다. 혼테크 문서 참조.

2. 역사적 정략결혼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행위며,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많이 해온 풍습이다. 특히 뼈대 있는 집안들에서 정략결혼은 꽤나 흔한 경우였고, 정략결혼을 통해서 서로간에 가족 관계를 맺어서 이득을 취하는 일도 역시 많았다. 왕족들은 이것으로 나라간에 평화를 이루는데 많이 써먹었다. 대개는 약소 국가에서 힘 있는 강대국에게 왕이 자신의 딸인 공주를 강대국의 왕족에게 시집 보냄으로써 사돈 관계도 맺고, 동맹국으로 만들어 전쟁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클리셰 중에서 사랑하던 연인 중 다른 1명이 정략결혼으로 곁을 떠나고 서로간에 그리워한다는 사랑 이야기는 정말로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이야기거리 중 하나다. 그러다 결국 다시 만난 비운의 연인은 사랑의 도피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재벌들은 지금도 정략결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략결혼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민왕 노국대장공주의 금슬은 굉장히 유명한데,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공민왕이 비탄에 빠져 고려 멸망을 앞당겼다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 다만 정략결혼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반원 정책의 완벽한 지지자였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와의 결혼은 원나라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해 버린 정략결혼이다. 서양에서는 이사벨라 1세 페르난도 2세의 금슬이 유명하다.

근세나 근대 이후로는 정략결혼이라도 무조건 가문에서 점찍은 후보와 시키는 게 아니라, 조건이 동등한 여러 명의 후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도록 선택권을 주기도 했다.

서양에서의 수많은 정략결혼 중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의 결혼이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통의 강국들인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정략결혼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강대국에서 다른 나라로 가서 결혼한 여성이 그 나라에서 좋지 못한 대접을 받거나 홀대를 당한다는 소식이 강대국에 전해졌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간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략혼인이 파탄나는 비극도 있었다. 529년 대가야 왕자가 신라 왕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드디어 아이를 가졌으나 신라가 결혼 동맹을 취소했다. 가야는 "부부가 되었고 자식이 있는데 어떻게 떨어질 수 있겠냐"며 신라에 사정사정했지만 신라는 이미 혼인 동맹을 깨기로 마음 먹은 상태였고, 부인은 결국 신라로 돌아갔다. 강제 이산가족행 또 다른 비극으로 정략결혼이 사실상 자식 하나를 희생해 상대 나라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한 함정이었던 경우가 있다. 553년 백제 성왕은 신라 진흥왕에게 딸 소비 부여씨를 시집 보내는 정략결혼을 맺었다. 그러나 일본 측 기록인 일본서기에 의하면 바로 이 때부터 성왕은 동맹국 일본과 함께 신라와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불과 1년 뒤 관산성 전투로 폭발하게 된다.[2] 진흥왕에게 시집 간 성왕의 딸 소비 부여씨가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허가 받지 않은 다이묘끼리의 정략결혼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명목상 히데요시의 가신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죽자마자 바로 자식과 손주를 정략결혼시켰고, 히데요시의 충신들에게 크게 비난 받았다. 하지만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에 대적할 다이묘가 없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히데요시 세력을 멸망시켜버렸기 때문에 유명무실해졌다.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 본인도 다이묘들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정략결혼을 금지시켰지만, 다이묘들 간에 정략결혼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3. 금슬

현대에는 '권력/재산/가문의 이익 등을 위해 본인의 의지나 사랑과는 무관한 결혼을 한다'는 점 때문에 비극적이거나 불행한 결혼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은 역사상 이루어진 정략결혼 중에 당사자들의 감정이 나빴던 경우가 의외로 더 드물다.

일단 정략결혼을 했다는 건 결혼 당사자들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란 건데, 동서를 막론하고 그런 사람들은 애시당초 이성을 만나고 로맨스를 찍을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따라서 '원치 않는 정략결혼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와 헤어지는' 경우 자체가 발생하기 힘들다.

그리고 결혼 자체에 작게는 가문끼리, 크게는 국가끼리의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으므로 상대의 첫인상이 안 좋았다고 해도 대놓고 파토낼 수 없어서 상대를 어느 정도 배려하며 살아야 했다. 부부라는 공적 관계로 얽혀서 서로 배려해 가며 붙어 살다 보니 뒤늦게 애정이 싹트기도 했고, 연인으로서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진 않는 대신 동반자로서 서로 존중하고 의지하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물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진 않다 보니 정말로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도저히 서로를 좋아할 수가 없던 경우도 있었다. 만약 한 쪽이 외모나 성격 등의 이유로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명색이 결혼한 사이이면서도 서로 얼굴조차 자주 마주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고, 배우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며 애도 낳고 잘 살지만 상대가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적어도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허구한 날 눈물로 베개를 적신다든지, 서로를 증오해서 물고 뜯고 싸운다든지 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흔하지 않았다.

정략결혼을 한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원만하게 지내더라도 상대를 연인으로서 원하지는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것 같지만, 역시 일반화할 수 없다. 웬만해선 양가 어른들이 먼저 만나서 원만한 결혼 생활이 가능하겠는지를 미리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고, 집안끼리 동질감도 커서, 부부 사이가 흔히들 상상하는 것만큼 극악했던 경우는 오히려 적었다. 그리고 한창 나이의 남녀를 한 집에 놔뒀으니 서로 마음이 끌리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물론 연인으로서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첩이나 정부를 따로 두는 경우도 많았다. 전근대에선 첩이나 정부를 두는 건 당연하게 여겼고, 정략결혼을 할 정도면 그럴 재력이나 권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4. 대중매체

대중매체에서는 재벌, 명문가 같은 높으신 분들 속성이 있는 집안 출신 캐릭터가 으레 안고 있는 클리셰 가운데 하나다. 즉 집안에서 정해준 미래의 배우자가 존재하고 상대방도 상당한 호의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략결혼에는 관심 없고 상대방에게 연애적인 감정이 일말도 들지 않는 상황에서 평범하디 평범한 주인공과 이런저런 일로 엮여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고... 이런 식. 막장 드라마에서도 꽤나 보이는 클리셰다.

반대도 자주 나오는 콘셉트이다. 주인공들이 어릴 적, 심지어는 뱃속에 있기도 전에 부모들끼리 당사자들 동의 없이 '니 딸과 내 아들 결혼시키자'라고 정략혼인 약속을 해서 평생 모르고 살다가, 철 들 때 쯤 주인공 앞에 갑툭튀해서 너희 부부 하는 시추에이션이 잦다. 물론 처음부터 정략혼을 맞아들이는 전개는 거의 없으며, 처음엔 거부하고 서로 싫어하다가 좋아하게 돼서 부부로 잘 사는 게 클리셰.

정략결혼과 관련되는 배신하는 딸이란 클리셰가 있다. 일단은 서로 정치적인 이익을 보고 결혼한 두 집안이 나중에 정치적인 이득 때문에 갈라설 때, 시집 간 딸이 본가와 시댁(남편) 가운데 어디를 선택하냐는 문제.

사랑의 불시착 7화에서 구승준이 서단에게 정략결혼의 폐해를 알려준다.

5. 예시

※ 금슬이 좋았던 경우(♡)
※ 금슬이 나빴던 경우(☓)
※ 남자 & 여자 식으로 기재한다.

5.1. 실존 인물

5.2. 가공 인물

6.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6.1. 실존 인물

6.2. 가공 인물

7. 혼동

영어의 marriage of convenience(편의결혼)과 정략결혼의 의미 차이로 혼동이 되기도 한다.

8.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9. 기타



[1] 주로 돈에 관계된 일. 돈을 서로 배분할 일이 생겼는데, 서로 배분을 못하는데 빨리 처리해야 하는 경우 등. [2] 이후 신라의 장군 도도가 성왕의 목을 벨 때 성왕의 죄로 '맹세를 어긴 것'을 드는데, 이것이 혼인 동맹을 뒤집고 기습 공격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되고 있다. [3] 그래도 사람으로서는 굉장히 존중했다. [4] 이 두 사람의 막내딸이 바로 아래에도 서술된 그 유명한 마리 앙투아네트. [5] 길베르트는 물론 그의 약혼자도 둘 다 서로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약혼자 쪽에서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위해 약혼을 파기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