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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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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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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ermanuboat.jpg
전쟁 중 영국 해군에 노획된 U-570의 모습.
파일:U-boat.jpg
라보에(Laboe)의 독일 해군 기념관에 전시, 내부 공개중인 VIIC/41형 U-995
독일어 <colbgcolor=#ffffff,#1f2023> U-Boot[1]
영어 U-boat

1. 개요2. 국가별 활약상3. 종류
3.1. 노획 유보트
4. 현재 남아있는 U보트5. 말말말6. 유보트 격침 기록7. 관련 창작물

1. 개요

유보트(U-Boat) 독일어 U-boot를 영어로 직역한 것이다. 독일어 원어 U-Boot는 수중을 뜻하는 Untersee와 배 또는 보트를 뜻하는 Boot를 합성한 단어인 운터제보트(Unterseeboot)의 약어로,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잠수함을 뜻하는 일반명사이다. 때문에 현대 독일에서도 자국 및 세계 각국의 잠수함들을 지칭할 때 U-Boot라고 부른다.

다만 독일을 제외한 외국에서 U-Boat는 독일 해군이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사용한 잠수함을 지칭하는 용어로 고유명사화되었다. 그리고 독일 잠수함만 칭하는 것은 아니고, 1차 대전 당시 독일어를 공용어로 쓰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잠수함도 유보트라고 했다. 본 문서의 '유보트' 역시 일반적인 잠수함으로서의 '유보트'가 아닌, 대전기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잠수함대에 대해 한정하여 서술하고 있음을 밝힌다.

2. 국가별 활약상

2.1. 독일 해군

유보트 승조원 제군이여. 이제 6년에 걸친 전쟁이 끝났다. 그동안 누구한테도 부끄럽지 않을만큼 잘 싸워주었다. 이제, 앞서 떠나간 전우들에게 경의를 표하자.
카를 되니츠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을 통틀어 엄청난 양의 연합군 함선들을 격침시켜 한때는 영국을 거의 아사 직전까지 몰아갔던 독일 해군의 효자. 크릭스마리네 즉, 독일해군의 수상 함정들은 영국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는 대륙 국가인 프랑스 상대로도 보잘 것 없는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독일 해군은 자원과 인력이 적게 들어가는 비대칭 전력인 잠수함을 가지고 영국을 괴롭히는 작전 말고는 답이 없었다. 잠수함이 일부 전투함과 싸워서 이긴 전과는 있지만[2] 주 목적은 통상 파괴였고, 그게 바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 이리저리 통상함을 파괴하다 보니 중립국, 특히 영국 여객선 RMS 루시타니아가 재수없게 유보트의 사냥감에 걸리기도 하였다.

사건 이후 독일이 멕시코에 미국에 대한 공격 요청을 타전했다 중간에 감청당한 치머만 전보가 미국의 참전에 불을 지폈다...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멕시코에 잃어버린 영토를 찾기 위해 함께 미국과 전쟁을 벌이지 않겠느냐는 소리에 미국 내 참전 여론이 들끓었지만 여전히 미 정부는 전쟁을 꺼렸다. 도화선에 불을 지른 건 러시아에서의 2(3)월 혁명으로 유럽에서의 동부 전선이 붕괴되면 독일의 승리가 확실케 된다는 판단하에 미 정부는 이를 기점으로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도리어 상선의 경우 독일이 보상을 해 준데다 미국인 승객들이 여럿 사망했던 여객선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 때는 독일이 재발 방지를 약속하며 알아서 기는 바람에 참전 여론이 사그라들었다.[3]

크릭스마리네의 경우, U보트의 함번을 건조나 진수, 취역순으로 부여하지 않고 무작위로 부여해 적국이 척수를 가늠하기 어렵도록 보안 조치를 했다. 가령 U-100이라고 하면 백 번째 유보트가 아니라 그냥 함명이 U-100인 것. 물론 먼저 건조된 함정이 다소 낮은 번호를 가지고 유보트의 타입 별로 번호대가 달라지는 등의 특징은 있었지만 같은 시기에 100번대 유보트와 2~500번대 번호의 유보트가 같이 작전에 투입될 정도로 함번이 일관적인 건 아니었다.

가끔 중위 소령 함장도 있었으나 원칙적으로 대위가 지휘관이었다.[상세]

2.1.1. 독일 제국 해군

유보트는 영국 해군의 해상 봉쇄에 맞서 독일 해군이 전개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서 대활약한 비대칭 전력이었다. 10곳의 조선소에서 총 375척의 유보트를 건조해 투입했으며 이들은 연합국의 군함과 상선들을 무수히 수장시키며 대활약했다.

건조된 수는 375척인데 함종이 무려 33종이나 된다. 전투용 7종, 비전투용 2종으로 깔끔하게 분류되는 2차 대전 시기 유보트들과는 대조적. 이는 당시 잠수함 기술이 한참 개발 중이었기 때문에 유보트 한 척을 건조하면서 익힌 노하우로 그 다음 유보트를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이 만들어진 대양용 디젤 어뢰 공격정의 경우 한 함급이 3~4척밖에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U19급, U23급, U 63급 등). 최종형이라 할 수 있는 U93급이 22척으로 그나마 제일 많았다. 반면 신기술 투입이 더뎠던 다른 함급들은 종류가 이렇게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연안용 어뢰 공격정은 UB I, II, III 세 종류 뿐이며 가장 많이 만들어진 UB III는 89척이나 된다.

제1차대전의 잠수함 에이스 중에서도 다음 함들이 단연 으뜸이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 중 유보트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기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3배 많은 (1156척) 유보트를 건조해 연합군을 괴롭혔다. 아래 항목 참조.

2.1.2. 나치 독일 해군

유보트가 정말로 독일 해군의 약골 잠수함이었을까요? 뭐, 그것도 전쟁이 끝나갈 때의 이야기지만요. 하지만 전성기 때 유보트와 그 승조원들의 힘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죠.
밀리터리 Q&A, 히스토리 채널
대서양 전투 문서 참고.
2.1.2.1. 전쟁 초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U보트 함대를 지휘한 사람이 바로 유명한 카를 되니츠이다. 전쟁 초기 독일 해군 잠수함대는 많은 제약을 안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통상 파괴와 관련된 다양한 조약들이었다. 정선과 검수, 공격 전 경고 등을 명시한 이 조약은 기습, 즉 '쏘고 튀는' 게 전제조건인 잠수함에게는 그냥 싸우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지만, 히틀러 미국 등의 참전을 우려해서 잠수함대가 이 조약을 준수할 것을 명령해놓은 상태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되니츠는 정치적인 작전을 준비했다. 독일 제국 해군의 한이 서린 스캐퍼플로를 유보트로 기습하는 것이다.

U-47의 함장이었던 귄터 프린은 10월 8일 출항했다. 단 한 척이었고, 어뢰 탑재량도 시원치 않았기에 만약 영국의 대잠 구축함에게 맞닥뜨리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귄터는 잠수함을 몰고 스캐퍼플로로 향하다가 수평선 너머에 연기가 보이면 바로 잠항하는 방식으로 닷새 동안 항해하여 마침내 스캐퍼플로에 도달한다. 당시의 잠수함들은 평소에는 수상 항해를 하다가, 교전 시에만 잠항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선형부터가 수상항행에 적합하도록 디자인되었고, 배터리량이 적고, 수중에서의 항법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문제.

원래 10월 13일 ~ 15일 사이의 달밤은 그믐이라 바닷물에 달빛이 없어야 했고, 때문에 잠망경을 내놓고 항행해도 그 뒤로 생기는 물살이 보이지 않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잠망경을 올려 보니 오로라가 비추고 있었다. 이후 몇 차례나 더 위기를 맞았지만, 귄터와 승조원들은 이때만큼 하늘이 노랗게 보였던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귄터는 오로라가 훤히 비추는 바닷물을 가르고 항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영국군은 이를 발견하지 못했고, 귄터는 무사히 쿼크 해협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이 해협에는 영국군이 세 척의 폐선박을 가라앉혀 두어 잠항이 불가능했는데, 귄터는 대놓고 수상 항해로 쳐들어가는 식으로 파훼했다. 이어서 그는 스캐퍼플로 내부로 들어가 잠항한 채 영국군 전함 로열 오크 호에 어뢰를 4발 쐈지만 모조리 불발됐다.[6]

이제 어뢰가 터지는 소리를 영국군이 들었으니 곧 구축함들이 우르르 몰려와 폭뢰를 갈길 것이었기에 후퇴하려고 했는데, 불발되어서인지 소리가 크게 나지 않았고 영국 승조원들은 충돌음을 듣긴 했지만 보일러 배관 터지는 소리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 정도면 알면서도 무시한거다 그 결과 구축함들은 잠잠했고, 이에 귄터는 어뢰 5발로 2차 공격을 가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로열 오크가 격침되고 리펄스가 대파되자 스캐퍼플로는 난리가 났다. 그제서야 영국군 구축함들이 몰려가 폭뢰를 떨구기 시작했지만 설마 잠수함이 폐선박 방어선을 수상 항해로 뚫고 왔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남쪽 해협으로 가서 폭뢰를 떨궈댔다. 그렇게 날이 밝아오자 귄터는 영국군 해병들과 지역 주민들까지 똑똑히 보는 앞에서 수상 항해로 유유히 독일로 되돌아갔다.

안 그래도 거창한 걸 좋아하는 히틀러는 이 대전과에 크게 기뻐하면서 되니츠를 불러들였고, 프린 대위를 비롯한 U-47 승조원들은 국가적인 영웅이 되었다. 이 호기를 놓치지 않은 카를 되니츠 제독은 "제독이 바라는 대로 300척의 유보트를 띄워주겠소!"라는 히틀러의 약속을 받아냈고 그동안 잠수함대의 발목을 잡아오던 제약도 풀어버렸다. 이로써 늑대떼 전술이 가능해졌다.

파일:external/www.bildpostkarten.uni-osnabrueck.de/normal_17_3-007nf.jpg

▲독일 군가 영국 정벌가의 가사가 담긴 그림 엽서에 등장한 귄터 프린 대위. 엽서 하단에 "프린 대위는 '리펄스'를 뇌격했고 '로열 오크'를 격침시켰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전까지 잠수함의 전력은 특정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목표물이 나타나면 단독으로 공격하고 빠지는 식이었던 데 비해서 늑대떼 전술은 산개한 유보트(= 늑대)들이 무선 통신으로 서로 정보를 교환하다가 시야 안에 선단(= 사냥감)이 나타나면 통신을 통해서 집결지점을 선택해서 다같이 모여서 사냥(= 늑대 떼)하는 전술이었다. 기존의 단독 공격은 한 번 공격하고 나면 호위 대잠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잠항을 강요하고서 선단은 속력을 높여 도망쳐버리는 반면 늑대떼 전술로 포위망을 구축하면 공격 기회를 여러 번 가질 수 있으므로 훨씬 격침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되니츠는 "우리가 300척의 유보트만 있으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했는데, 100척은 작전에 투입하고 100척은 유지 보수 및 임무교대선상에서 대기 100척은 훈련을 받으면서 앞의 100척의 소모를 보충하는데 쓰는 것으로 계획했다고 한다.[7] U보트가 한참 공포와 엄청난 전과를 불러일으키던 시절인 1939~41년간 북대서양에서 가용가능한 U보트는 평균 7척으로, 단 1척밖에 없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히틀러가 약속한 숫자의 유보트가 도착하는 날은 상당히 늦어졌다. 1942년에 가서야 100척의 유보트가 동시에 작전에 나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독일의 역량 부족이 원인으로, 유보트는 척당 300만달러의 꽤 고급장비[8]였는데 1940년 기준 독일은 독소전 준비는 물론 수상함대도 아직 한창 건설하고 있는 중이여서 여기저기 돈과 물자가 많이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단기간에 300척 가량 건조하는 건 그 미국이라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2.1.2.2. 전쟁 후기와 몰락
하지만 1942년 말- 1943년부터는 영국이 계속해서 대잠전력을 변경하고 확충하면서 U보트의 전과도 이전에 비해서 줄어들었고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창과 방패의 전략대결로 한쪽이 전술을 바꾸면 상대가 대응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영국은 호송선단을 처음에는 함선 단독으로 운용하다가 선단을 구성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구축함이나 호위함과 같은 소수의 호송전력을 추가하는 전략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유보트 함장들 중 간이 큰 함장들은 아예 그 안에 파고들어서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당연히 호위함들은 팀킬할까봐 쉽사리 반격하지도 못했고 그 사이 연락을 받고 온 다른 유보트들이 어뢰를 발사하면서 간이 큰 함장들 중에서는 본인 잠수함이 들키면 호송선단의 공격을 유도하면서 다른 유보트들의 공격을 수월하게 만드는 함장들까지 있었다.

진주만 공습을 기점으로 미국이 참전하고 한달에 한 척씩 건조하는 리버티급 수송선이 투입됐지만 리버티선은 무장도 빈약한데다 유보트에 쉽게 따라잡혔기 때문에 대낮에 모습을 드러낸 유보트의 8.8cm 포의 먹잇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1942~1943년까지도 유보트의 성과는 무시무시했으며 리버티선의 개량형인 빅토리선(속도가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과 소나의 전신인 애즈딕, 항공기 등이 투입됐지만 북극해를 통해 랜드리스 물품을 옮기는 미국과 소련 선단이 유보트의 새로운 먹잇감이 되었으므로 악명은 여전했다. 처음 랜드리스 물품은 가장 가까운 북극항로를 통해 옮기기로 되어 있었는데 북극항로 특유의 계절적인 요소와 독일의 이 유보트들 때문에 북극항로는 위험성이 매우 컸고 실제로 운송중 상실한 화물이 매우 많았다. 그리하여 이 가장 짧은 루트는 유보트가 거의 전멸한 이후인 대전 후기에서나 주 운송로로 쓰일 수 있게 된다.

북극항로가 반쯤 막혀버리자 미국은 페르시아를 통해 육로로 소련에 넘겨주는 인도양 루트를 선택했고 이 루트는 매우 안전했지만 너무 심하게 멀었기 때문에 독일의 대대적인 공세가 한계에 도달한 42년이 중반이 지나서야 그럭저럭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반면 소련은 일본과 중립이었기에 비전투 물자에 한해서 태평양을 통해 자기들 배로 랜드리스 물품을 옮겼다. 여기에 공군이 못이겨 주는 편에 가까웠지만 대전 내내 '대서양의 악몽'이라고 불린 Fw 200 콘돌을 제공하면서 유보트의 효율은 더욱 커졌다. 콘돌이 수송선단의 위치를 알려주면 유보트들이 달려들어서 공격을 감행하기 때문에, 수송선단 선원들에게 콘돌이 보인다는 것은 곧 유보트의 공격이 시작된다는 전조였다.

대전 후반에는 7형에도 장비되었던 스노클을 도입하고 배터리 용량을 예전의 5~1.5배 이상으로 늘려(U보트 7형의 배터리는 7,000~9,200 Ah, 9형은 11,300~ 22,600 Ah 21형은 33,900 Ah) 작전반경을 늘리고 전기모터출력을 올리고 수중고속항행용의 디자인을 채용해서 수중속도를 늘린[9] 신형 U보트인 21형이 등장했다. 21형은 현대식 잠수함의 기본을 마련했으며 AIP가 등장하기 전까지 개념상 큰 발전이 없었다. 그런데 21형의 발상은 단순히 기존 잠수함에 배터리를 많이 넣고 수중항행을 수상항행보다 더 중요시 여긴다는 개념으로 1차대전 수준의 기술로도 가능한 것이였다. 다시 말하자면 발상의 전환이다.

그러나 이 전술을 위해서는 유보트와 사령부간의 통신이 필수적이었는데 연합군은 허프-더프라는 장치를 개발하여 이런 무전을 감청하고, 장거리 레이더로 잠수함들의 위치를 찾아내기 시작했다. 현대의 잠수함은 작전시간 내내 물속에서 돌아다니거나 선체일부만 드러내서 산소를 공급받고 다시 잠항한다. 하지만 제1, 2차 세계 대전 때의 잠수함은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잠수함들도) 평소에는 부상해서 돌아다니다가 필요한 경우에만 잠수하는 식으로 운용했다. 유보트의 최대 잠수 가능시간은 공기 정화 캐니스터를 동원하여 최장 72시간이다.

이런 방법이 효과적이었던 이유는 잠수함의 배터리 용량 한계로 잠항 시간이 짧고 모터의 출력 문제로 속도 역시 느렸기 때문이다. 이 탓에 적군의 항공기(특히 전쟁 중, 후반 무렵부터 등장하는 수상탐색 레이더를 탑재한 초계기)에 노출되면 손발도 쓸 수 없었다. 물론 잠수함들도 이런 해상초계기의 위협에서 벗어나려고 레이더 전파를 역으로 탐지해내는 안테나를 달고 다니곤 했으며 호위함이 붙는 호송선단에 대응하기 위해서 공격에 가담하는 유보트의 수도 늘리는 등 늑대떼 전술을 더욱 향상시켰으며 항공기의 항속거리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가며 호송단을 사냥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헤지호그 폭뢰[10], B-24 리버레이터 등의 장거리 폭격기가 등장하고 보그급으로 대표되는 호위항모가 호송선단 호위에 투입되자 에어갭(air gap) 이라고 불렸던 대서양의 사각지대[11]가 거의 사라졌고 호위항공모함에, 무장호송선에도 캐터펄트가 설치되어 전투기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Fw 200 역시 쫓겨나고 만다. 이렇게 대전 초기의 위용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U보트의 가장 큰 패인은 U보트를 지켜줄 크릭스마리네 수상함대가 형편없었던 것이다. 물론 독일이 아무리 노력해도 당대 최강 해군인 로얄 네이비를 따라잡을 없다고 해도 전후 군을 급격하게 늘린 독일군은 자연스럽게 돈이 많이 드는 해군보다 육군에 집중했다. 얼마 안되는 구축함은 노르웨이 침공에 날려먹고, 그라프 체펠린급 항공모함은 완공도 못하고 비스마르크도 첫 작전에서 격침되었으며, 1943년 바렌츠해 해전에서 독일 해군이 졸전을 펼치자[12] 이에 열폭한 히틀러가 독일 수상함대 출항을 금지하면서[13] 잠수함의 가장 큰 적인 구축함 호위함, 호위항공모함의 행동을 방해할 수상 현존함대는 사실상 사라졌고, 독일 잠수함은 얼마나 많던 모두 격침되었다.

게다가 독일군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있었는데 앨런 튜링을 필두로 한 영국의 암호 해독반이 독일군의 암호 해독 장치인 에니그마를 해독한 것이다. 이로 인해 모든 작전이 드러나고 U보트의 예상 위치, 진로, 현재 목적지가 다 드러나게 되며 모든 메리트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나마 중간에 크릭스마리네가 에니그마 구조를 더 복잡하게 고치자[14] 아예 유보트를 나포해서 신형 에니그마를 입수한 뒤 암호를 해독한다. 그 결과, 독일은 2차 대전에서 9백여 척의 유보트 중 777척(그 대부분이 1944~1945년)을 잃게 된다. 그나마 크릭스마리네는 개전 이전부터 뚫려버린 육군 루프트바페보다는 오래 버티고 있었다.[15] 하지만 초기 3로터 에니그마는 1941년 5월부터 해독당하고 있었고 1942년 2월 로터를 하나 더 늘려 암호를 더 복잡하게 하자 잠시는 따돌릴 수 있었으나 1942년 말부터 4로터 에니그마가 해독당하기 시작하더니 1943년 9월부터는 완전히 털리게 된다. 이로써 유보트 승조원 4만여명 중 3만 5천여명이 전사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무지막지한 생산력이 절정에 달하기 시작하면서 격침당하는 수보다 훨씬 많은 수송선들이 무사히 도착하게 되어 유보트가 아무리 애를 써도 더 이상 큰 효과를 볼 수 없게 된다. 유보트가 전쟁 기간에 격침시킨 선박의 총 톤수가 1,500만 톤이고 영국이 자체적으로 찍어낸 것이 600만 톤에 캐나다 등 영연방국가에서 받아온 게 600만 톤, 그리고 다른 연합국(프랑스 등)에서 얻어온 배들이 300만 톤으로 대략 현상을 유지하는데, 미국은 혼자서 2,500만 톤을 건조했다.

즉 요약하자면

이 여섯 가지가 주요 패인이라 할 수 있다.
2.1.2.3. 몬순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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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4. 지중해
1941년 9월부터 1944년 5월까지 총 62척의 유보트가 지중해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연합군의 살벌한 경계를 뚫고 지브롤터 해협을 돌파한다는 것부터가 매우 위험한 시도였다. (영화 특전 유보트에서 이 시도를 하다가 죽음 문턱까지 갔다.) 막상 들어간 지중해는 북대서양보다 환경이 평온하다 보니 악천후를 이용해 몸을 숨기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해류가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몰려들다 보니 마음대로 나갈수도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결국 작전에 투입된 모든 유보트가 지브롤터의 벽을 넘지 못하거나 지중해 내에서 격침 혹은 자침되었다.

특이한 케이스로 루마니아 콘스탄차를 모항으로 두고 흑해에서 활동하던 30전단이 있었다. 2형 유보트로 구성된 이 전단은 유보트 운송 경로가 매우 독특한데, 독일 본토에서 흑해까지는 해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브롤터 해협을 돌파해서 지중해를 항해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데다, 중립국인 터키가 장악하고 있는 다르다넬스 해협- 보스포루스 해협을 들키지 않고 통과한다는 건 무리였다. 때문에 다뉴브강과 운하, 심지어 육로를 거친 대장정 끝에 유럽 대륙을 횡단해 흑해에 도착했다.[17] 이들은 1944년 9월 루마니아 국왕 미하이 1세가 친위쿠데타 이후 연합국으로 돌아서자 전부 자침했다.

2.1.3. 유보트 함장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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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

파일:SM_U-14_(Austria-Hungary).jpg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 소령의 유보트인 U-14함. 프랑스 해군의 브뤼메르급 잠수함 '퀴리' 함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첫 잠수함인 U-1함은 미국의 기술 지원을 받아 1907년 풀라 항에 위치한 제국 해군공창에서 건조 시작되었다. 당시 해군최고사령관 루돌프 몬테쿠콜리 대장은 해군 전력 확충에 노력을 기울이면서 각종 신형 함선들의 도입을 추진했는데, 잠수함도 그 중 하나였다. 어뢰의 경우 오스트리아가 최초 개발국이었던 만큼 기술이 크게 뒤지지 않았으나 잠수함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고, 그랬기에 미국과 독일에 기술 지원 요청을 타전한 것이었다. U-1급과 U-5급은 미국의 설계를 바탕으로, U-3급은 독일의 설계를 따랐다. 대전 직전까지 오스트리아는 총 7척의 잠수함을 보유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드리아 해가 봉쇄당했다. 제국 해군의 최고사령관 안톤 하우스 대장은 수상함대는 현존함대전략으로 보전하되 유보트 전력으로 협상국을 타격하는 전술로 전환하였다. 오헝 제국 해군 유보트 함대와 지원 나온 독일 제국 해군 풀라 잠수함 전단은 오트란토 해협에 깔린 순찰선들과 대잠망들을 회피해 지중해로 나와 통상파괴전을 실시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 해군 전력이 갈리폴리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으로 향하자 해협의 경계도가 떨어졌고, 이는 동맹국 해군에 있어서는 좋은 기회였다. 동맹국 잠수함대는 에게 해와 이집트 앞바다 일대에서 활동하며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보급선을 방해했다.

미국 디자인을 바탕으로 헝가리의 피우메에서 건조된 U-5 함은 1915년 초 프랑스 해군 장갑순양함 레옹 강베타 함을 침몰시켰고, 동형함인 U-12함은 1914년 말에 쿠르베급 전함 3번함 장 바르를 대파시켰다. 일본 해군 카바급 구축함을 대파시키고 십수 척의 그리스 선박들을 뇌격한 독일제 U-27함과 그 동형함이자 영국 수송선단 수 척을 격침시킨 U-28함의 활약도 돋보였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보트 타격전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모델로 유명한 게오르크 루트비히 폰 트랍 소령이었다. 그는 노획되어 U-14란 이름으로 개칭된 프랑스 해군의 브뤼메르급 잠수함 '퀴리'의 함장이었는데, 1916년부터 그리스 연안과 동지중해에서 수 척의 협상국 수송선들과 민간 선박들을 침몰시켰다. 그의 함선인 U-14함이 본래 프랑스 선박이었던 고로 그는 프랑스 국기를 달아 협상국 함대를 속이고 유유히 봉쇄망을 넘어갔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대전기의 오스트리아 해군 유보트들은 독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전쟁 도중 도입된 잠수함들은 독일식 설계를 라이센스 생산하거나 독일에서 구입해 기차로 인도받은 것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오헝 제국 해군의 유보트들은 전쟁이 끝나자 협상국에 배상함으로 넘어가 편입되거나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헝가리가 내륙국으로 전락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유보트 역사는 끝난다.

3. 종류

파일:독일 국기.svg 독일 잠수함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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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주력 잠수함
훈련함 → 전투함

Type I 유보트


 
훈련함 / 전투함

Type II 유보트


 

 

 
기뢰부설 / 수송함

Type X 유보트


 

 

 

 

파일:독일 국기.svg 전후 독일의 잠수함 계보
전투함(조기퇴역)

Type 201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Type 207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Type 209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TR-1700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Type 210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돌핀급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Type 214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건조계획

Type 216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Type 218 잠수함


 
수출용 전투함

다카르급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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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전투형과 비전투형으로 나뉜다.

전투형 유보트
비전투용 유보트
그 외에도 실험용으로 1척만이 건조되거나 설계안으로만 끝난 유보트들도 다수 된다. 유보트들의 형식 번호가 이어지지 않는 것이 바로 이 때문으로, 해당 유보트들에 관한 사항은 유보트/기타 참조.

3.1. 노획 유보트

한편 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이 다른 국가들에게서 노획한 다음 운용한, 이름만 유보트인 잠수함들도 있었다. 이들은 계보상으로는 유보트들과 아무런 관계로 없으나 편의상 외국 유보트(foreign uboat) 혹은 노획 유보트라 지칭된다. 전쟁 중 독일 해군은 전력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척의 노획 유보트를 운용하였으나 성과는 그저 그랬는데, 이들이 대전 내내 격침시킨 선박 수는 도합 10척밖에 되지 않았다. 이들 중에서는 그나마 본래 터키로 인도되기로 했다가 독일이 인수한 UA가 무장상선 1척을 포함해 상선 8척을 격침시키며 가장 괜찮게 활약했다.
이름 원 이름 원 운용국 함급
UA 바티래이 터키 Ay급
UB HMS 실 영국 그램퍼스급 잠수함
UC-1 HNoMS B-5 노르웨이 홀랜드급 잠수함
UC-2 HNoMS B-6 노르웨이 홀랜드급 잠수함
UD-1 HNLMS O 8 네덜란드 H급 잠수함
UD-2 HNLMS O 12 네덜란드 O 12-15급 잠수함
UD-3 HNLMS O 25 네덜란드 O 21-27급 잠수함
UD-4 HNLMS O 26 네덜란드 O 21-27급 잠수함
UD-5 HNLMS O 27 네덜란드 O 21-27급 잠수함
UF-1 아프리칸느 프랑스 오로라급 잠수함
UF-2 파보리테 프랑스 오로라급 잠수함
UF-3 아스트라이아 프랑스 오로라급 잠수함
UIT-22 알피노 아틸리오 바그놀리니 이탈리아 왕국 리우치급 잠수함
UIT-23 레자날도 줄리아니 이탈리아 왕국 리우치급 잠수함
UIT-24 코만단트 카펠리니 이탈리아 왕국 마르코니급 잠수함
UIT-25 루이지 톨레리 이탈리아 왕국 마르코니급 잠수함

4. 현재 남아있는 U보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ilhelmbauer.jpg

사진속 유보트는 U-2540.

형식을 불문하고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보트는 총합 5척으로, 생산량에 비하면 의외로 몇 척 되지 않는다. 남아있는 유보트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전쟁 중 가장 많이 생산된 유보트인 2형, 7형, 9형은 모두 최소 한 척씩은 보존되어 있다. 게다가 유보트 기술의 정수인 21형 유보트도 한 척이 살아남아 있다.

5. 말말말

100척의 U보트로 수상함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고, 200척으로는 영국의 보급선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으며, 300척이 있다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카를 되니츠
전쟁 중 내가 유일하게 두려워한 존재는 U보트였다. 우리들의 생명선인 바다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독일은 U보트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편이 현명했을 것이다.[23]
윈스턴 처칠

6. 유보트 격침 기록

7. 관련 창작물

7.1. 소설

7.2. 영화

7.3. 게임

7.4. 음악


[1] 독일어로는 '우보트'다. U는 '우'라고 읽기 때문. [2] 이것 마저도 대부분 상대가 방심해서 성공한게 대부분이다. [3] 그리고 멕시코는 당시 멕시코 혁명의 시대였기 때문에 국가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워 외부 원정은 꿈도 못꾸고 있었고 당대 대통령이었던 베누스티아노 카란사 역시 독일의 제안을 현실성 없다고 판단하여 제안을 거부한 뒤 이를 미국에게 사실대로 알려줬다. [상세] 해군 대위를 독일어로 Kapitänleutnant(영어로 직역하면 Captain Lieutenant)라고 불렀는데, 영화 특전 U보트에서도 묘사되듯이 이것의 약자인 Kaleu(칼로이)는 U보트의 함장을 뜻하는 호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독일 해군에서 함(Schiff, ship)이 아닌 정(Boot, boat)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엄밀히 밀하면 잠수함이 아닌 잠수정이라 해야 하고 당연히 지휘관도 함장이 아니라 정장이었던 관계로 유보트 함장은 대위가 배정되었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잠수함이란 용어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그냥 잠수함이라고 많이 번역한다. 이는 독일 해군이 베르사유 조약에 명시한 함정 보유 수량 제한을 서류상 회피하려 일부러 타국 해군의 동급 함종보다 급수를 낮춘 탓도 있다. 조약으로 인해 전함과 순양함 각 6척, 구축함 12척만 보유 가능한 현실에서 가용 가능한 구축함을 늘리기 위해 타국의 호위구축함 수준인 천톤급 고속함 어뢰으로 분류하고 대위를 지휘관으로 삼은 것이 대표적, 조약 파기 이후에도 연합국에 대한 기만책 일환으로 종전시까지도 이런 체계를 유지했다. 독일 해군도 유보트를 잠수정(unterseeboot)이 아니라 잠수함(unterseeschiff)으로 취급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일등항해사(Wachoffizier, 1WO)의 존재가 있다. 당시 독일 해군 기준으로 일항사가 없는 배는 정, 일항사가 있는 배는 함이었는데 유보트에는 일항사(1WO)가 탑승해 정장(함장)을 보조했다. [5] U-35가 세운 잠수함 역사상 최대 톤수+최다 선박 격침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타이틀로 남아있다. [6] 전쟁 초기 독일과 영국, 미국 모두 어뢰의 신뢰성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었으며, 여담으로 이때 불발된 어뢰 중 하나는 2002년에 인근을 항해하던 노르웨이 유조선에 의해 발견되어 영국 해군 EOD 팀이 제거하였다. [7] 물론 대전 후반 들어서 독일이 건조한 유보트는 300척을 훨씬 넘어섰으나, 문제는 이 시기에는 이미 미국이 참전하고 연합군의 대잠전술도 엄청나게 강화되어서 별 효과가 없었다. 유보트 여러 척이 다같이 격침시킨 상선 총톤수가 전성기 유보트 1척이 1번의 임무에서 격침시킨 총톤수보다도 낮았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 [8] 지상 장비와 해상 장비의 차이를 고려해도 당시 4호 전차가 약 5만 달러, 판터가 6만 달러, 티거가 10만 달러였다는 걸 생각해보면 꽤나 비싸다. 한 척이면 티거 30대를 만들 수 있으니. [9] 21형은 수중속도가 수상속도보다 빠르다. [10] 대잠수함용 박격포이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를 MRLS처럼 다연장으로 넓은 범위에다 쏘는 178mm 접촉식 방식의 폭뢰로 유보트가 무슨 방법으로든 걸리면 당연히 유보트의 내구력으로는 절대로 직격으로 한발도 못 버티는 화력을 가지고 있었고 U보트도 물속에서는 속력이 매우 느려지고 잠항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잠항이고 뭐고 없이 물 속 끝까지 내려가서 접촉으로 폭발하고 거대한 지역에 떨어지기에 최대 7%밖에 파괴성공률이 안 되었던 일반 폭뢰와는 달리 헤지호그는 25%라는 경이적인 성공률로 독일 유보트의 씨를 말렸다. [11] 연합군 공군력(Air)이 도달할 수 없는 간극(Gap)이라 이렇게 불렸다. 유보트는 이런 지역에서 기습의 걱정 없이 편안하게 부상해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보급잠수함으로부터 재보급을 받았다. 공중 초계기가 없으니 호송선단 습격도 용이하다. [12] 중순양함 2척과 구축함 6척을 투입한 독일 해군이 경순양함 2척과 구축함 6척, 초계함 2척, 기뢰함 1척으로 이루어진 수송선단을 습격했지만 오히려 구축함 1척을 잃고 구축함 1척과 중순양함 1척이 손상을 입는 졸전을 펼쳤다. 반면 영국은 구축함 1척, 기뢰함 1척 총 2척만 침몰했고 수송선단은 피해가 없었다. 동원된 함대의 체급이나 영국 함대의 기만 전술에 일방적으로 휘둘렸던 해전 전개상 독일 해군의 처참한 패배였다. [13] 이때 히틀러는 레더에게 독일 수상함대가 적 병력의 우열을 가리고 싸우는 겁쟁이라고 비난했다. [14] 그런데 이것도 에니그마가 해독당한 걸 알아서 고친 게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다. 에니그마를 복잡하게 한 건 단순히 예방 차원에서의 일이었던 셈. 만약 독일이 에니그마가 털렸다는 걸 알았다면 아예 에니그마 사용을 전면적으로 중단시키거나 에니그마를 대대적으로 개량하는 식으로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15] 특히 암호 보안 상태가 제일 좋지 않았던 독일 공군은 다른 나라도 아니고 폴란드한테도 개전 전부터 암호가 전부 털려있었다. 폴란드는 암호 분야에 강국이기는 했지만 에니그마의 명성을 생각해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실태였다. [16] 사실 일본의 진주만 공습과 독일의 대미선전포고 이전에도 미국은 영국을 도와 유보트 수색작전을 벌이고 있었다. 다만 이 때는 어디까지나 미국도 중립국이있던 입장이라서 말 그대로 수색만 도왔고 적극적으로 수상/항공 대잠전력을 동원해 뭘 하지는 않았다. [17] 이 때문에 30전단 소속 유보트들은 위에서 서술한 대로 전부 2형 유보트였다. 독일 해군이 주력으로 사용한 7형이나 9형 유보트는 육상 수송이나 강으로의 이동이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했기 때문. 뭐 보내려면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사실 독일 해군 입장에서는 당장 대서양이 급한 마당에 보조 전선인 흑해까지 주력 유보트들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18] 여기에 더해 과산화수소 엔진도 같이 탑재할 예정이었으나 과산화수소의 보관 문제 및 물자 부족으로 인해 그냥 일반 엔진을 탑재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19] 모든 유보트들을 통틀어 혼자 수중배수량이 2,000톤을 넘어간다. [20] 본래 이러한 역할은 잠수함 보급함들이 맡았으나, 전쟁 후기로 갈수록 수상함이었던 이들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고, 따라서 잠수함을 이용해 다른 잠수함에게 물자를 전달시키게 된 것. 사실 이전에 비슷한 임무를 염두에 두고 제안된 4형 유보트가 있긴 했으나 이쪽은 초기 설계단계에서 취소되었다. [21] 독일 해군 협회로, 해군 예비역과 해군에 관심이 많은 민간인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단체이다. 우리나라의 전우회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으며, 독일에 있는 민간 해군 박물관, 해전 전몰장병 추모관 등을 운영하는 주체이기도 하다. 독일 해군 장성 출신 예비역들이 종종 협회장을 맡기도 하지만 박물관 운영비나 협회 운영에 국가적으로 큰 지원을 해주지는 않아, 해군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는 독특한 단체이기도 하다. [22] 엄밀히 말하자면 독일이 건조하지도 않았고 운용하지도 않았기에 "원조" 2형 유보트는 아니다. Vesikko 네덜란드 회사에서 건조해서 핀란드가 운용한, 2형 유보트의 프로토타입격쯤 되는 녀석이다. [23] 물론 독일이 독소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영국을 죽이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그리고 일본이 진주만 기습을 하지 않았다면 처칠의 말대로 U보트에 목숨 걸었을 경우 영국에 치명타를 날렸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히틀러는 그러지 않고 곧장 소련을 쳐버린다. [24] 아래에도 나오듯 RMS 타이타닉의 자매함 RMS 올림픽과 충돌했던 HMS 호크를 침몰시켰던 배다. [25] RMS 타이타닉의 자매함 RMS 올림픽과 충돌하여 손상된 그 방호순양함 호크 맞다. [26] 동시에 SS Athenia는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에게 격침된 첫 영국 국적 배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27] 연합군이 유보트 에니그마 해독에 실패하는 데에서 시작해 유보트 함대가 끝내 영국을 굶어죽인 뒤, 2차 대전의 승전국 독일이 유럽을 정복한 배경의 1964년을 다루는 대체역사물. 즉 설정상으로만 유보트가 관련 있다. [28] 여담이지만 크림슨 타이드에서도 이 영화가 짤막하게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