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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1:28:20

미쓰비시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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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 자동차
三菱自動車|Mitsubishi Motors
파일:Mitsubishi_Motors-Logo.wine.svg 파일:Mitsubishi_Motors-Logo-white.svg
<colbgcolor=#ED1C24><colcolor=#fff> 기업명 일본어: 三菱自動車工業株式会社
영어: Mitsubishi Motors Corporation
한국어: 미쓰비시자동차공업주식회사
창립일 1970년 4월 22일
시장 정보 도쿄증권거래소 1부 7211
시가총액 6조 237억원[1]
수뇌부 카토 타카오 (대표이사 CEO 겸 회장)
본사 소재지 도쿄도 미나토구 시바우라3초메 1-21
산업 분야 자동차 산업
최대주주 닛산 34.03%[2]
자본금 2,843억 8,200만엔 (2022년 3월 기준)
매출액 연결: 2조 389억엔 (2022년 3월 기준)
영업이익 연결: 873억엔 (2022년 3월 기준)
홈페이지 글로벌 일본

1. 개요2. 역사
2.1. 설립2.2. 전성기2.3. 하락세2.4. 구조선 찾기2.5. 급한 불은 껐지만2.6. 생존 모색
3. 대한민국의 인연
3.1. 현대자동차와의 관계3.2. 대한민국 시장 진출 및 철수
4. 랠리아트5. MIEV6. 성룡과의 관계7. 생산 공장8. 생산 차량
8.1. 승용8.2. 상용차8.3. SUV/RV8.4. 픽업트럭
9. 단종차량
9.1. 승용9.2. 스포츠카9.3. SUV/RV9.4. 픽업트럭
10. 컨셉트 카11. 합자회사

[clearfix]

1. 개요

정식 명칭은 미쓰비시 자동차 공업 주식회사 (三菱自動車工業, Mitsubishi Motors Corporation). 한국에는 '미쓰비시 모터스' 명칭으로 진출했다. 과거에는 이름처럼 미쓰비시 그룹의 계열 기업이었으나, 2016년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새로운 구성원이 되었다.[3] 이름은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으로 바뀌었다.

일본 내에서는 경차부터 대형차까지 다양한 차종을 생산하고 있으나 해외시장에서 주력으로 수출하고 있는 차종들은 대개 위에서 말한 C세그먼트급의 모델이 아닌 이상 SUV 모델로서, 그 라인업이 충실하지는 않은 편이다. 상용차 전문 제조 회사인 미쓰비시 후소의 경우 2000년대 초반까지 미쓰비시 자동차 소속이었으나, 2003년에 분사 되었고 2005년에 아예 다임러 트럭에 넘어갔다.

2. 역사

2.1. 설립

원래는 미쓰비시 중공업 산하 자동차 사업부였다. 1960년에 나온 '미쓰비시 500', 1962년 '미니카'라는 경차를 시작으로 승용차 업계에 뛰어들기 시작, 1963년 콜트1000, 1969년에는 갤랑을 내놓더니 1973년 랜서의 첫 모델을 내놓게 된다. 그리고 1974년에는 아프리카 사파리 랠리를 완파하여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1970년 2월, 미쓰비시 중공업이 미국 크라이슬러와 합작사업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고, 그 해 4월 22일 미쓰비시 자동차로 물적분할되었다. 1971년부터 제휴선인 크라이슬러를 통해 갤랑을 닷지 콜트로 수출하기 시작했으며[4] 이후로도 미라쥬 등의 다양한 모델을 내놓으며 그럭저럭 잘 나가고 있었다. 특히 1979년부터는 크라이슬러 호주 지부를 인수해 미쓰비시 차종의 현지 생산도 주도했고[5] 미국에서는 크라이슬러와 합자를 내서 1985년에 '다이아몬드 스타 모터스'라는 법인을 차린 뒤 차량을 공동으로 설계, 생산, 판매하기도 했다.[6]

1978년부터 2011년까지는 토요타 등 다른 일본 자동차 회사들처럼 차급에 따라 세분화된 딜러[7]를 갖추기도 했는데, 랜서, 미라쥬, 콜트 등은 '카 프라자점'(Car Plaza)에서 팔았고, 갤랑은 말 그대로 갤랑 전문점에서 팔았다. 2012년부터는 이런 형태를 폐지하고 다시 미쓰비시 대리점으로 단일화한 상황이다.

파일:external/blog-imgs-42.fc2.com/12725085354bd8f077d719b_import.jpg
태생이 미쓰비시 그룹인지라 예나 지금이나 쓰리 다이아몬드 로고를 사용하지만, 70년대 후반~1991년까지는 위 사진과 같이 일본 내수용 한정으로 사명의 영문 이니셜 'MMC'를 도안화한 로고와 병용하기도 했다.

2.2. 전성기


미쓰비시의 전성기를 요약한 영상.


미쓰비시 자동차 다카르 랠리 CM. 1980년대 CM송을 대부분 마츠토야 유미가 담당했다고 한다. 예시

1990년대 초부터 파제로 랜서 에볼루션으로 전 세계의 각종 랠리에서 연전 연승을 거두고, 말레이시아의 자동차 회사인 프로톤[8]에 차량 생산에 대한 각종 기술을 제공하고, 유럽의 PSA 그룹 볼보,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자신들의 휘발유 직접분사 엔진 기술을 제공하는 등 '기술의 미쓰비시'라는 이미지로 닛산을 압박하고 뒤이어 혼다와 경쟁하며 일본 내 2등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을 거의 거머쥐었다.

파제로, 샤리오, RVR 등을 내세워 1990년대에 "RV의 미쓰비시"라는 별명까지 붙을 정도의 호황을 기록한 바 있다.

2.3. 하락세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진들의 나태와 오만은 미쓰비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이보다 앞선 1980년대 말 당시 컨설턴트이자 전 회장 (상담역)이었던 구보 도미오(久保富夫)도 말년에 너희들 이러다가 10년 내로 현대차로 기술 배우러 갈 거다라며 당시 알파 엔진의 개발 성공에 사활을 걸던 현대차와 비교하면서 개발진을 타박할 정도었다. # 구보 도미오는 미쓰비시 중공업/자동차에서 전설적으로 통하던 사람이다. 1931년 도쿄제국대학[9] 공학부 항공학과를 졸업하고, 미쓰비시 중공업 비행사업부로 입사뒤에 바로 Ki-46 100식 사령정찰기 개발 주임을 맡았고. 전후에는 자동차 사업부로 이적해 공장장에서 회장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현대 포니 개발 당시 현대자동차에 엔진, 변속기 등 플랫폼을 공급하는 등 기술 협력을 실시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기초를 쌓게 해준 은인이다.[10]

닛산 못지않게 동일한 플랫폼으로 개성없는 여러 가지 모델을 만들어내서 팔았으며,[11][12] 즉, 쌍용처럼 사골이라고 욕을 처먹은 격이다. 1980년대부터 '달리는 실러캔스'[13]라는 치욕적인 별명과 함께 말아먹기 시작한 대형 고급차 시장은 현대자동차와 손을 잡은 뒤에도 마케팅 실패, 품질 문제 등으로 여전히 좋은 평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차량의 품질은 계속 하락했으며 이에 반해서 차량의 부품값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전에 승승장구했던 미쓰비시 자동차는 이미 1996년부터 경영진들의 나태와 오만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 나태와 오만은 1996년 4월 미국 일리노이 주에 있는 자회사에서 터진 성희롱 사건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인 여직원 약 300명이 직장 내에서 상습적 성희롱을 당해왔다며 집단 고소한 것이다. 미쓰비시는 3,400만달러(약 380억원)라는 성희롱 소송 사상 최대의 화해금을 물고 사건을 종결지었으나 회사 이미지는 치명적 타격[14]을 입었고 덩달아 미국 내 매상도 감소하고 만다.[15]

2000년대 초에는 자사에서 생산했고, 생산 중이었던 120만 대[16]의 차량들에 중대한 결점[17]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은폐해 오다가 운전자의 사망 사고 후 언론 보도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어 기업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판매량 및 매출에 엄청난 타격을 입었으며[18] 회장이 경찰에 체포되고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갔다.[19][20] 당연히 야심차게 내놓은 기함인 프라우디아도 얼마 팔지 못하고 그대로 단종이 되었다. 이후 대대적인 공개 사죄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신모델을 내놓으면서 어느 정도 회복은 한 상황이지만 현재 사정이 그렇게 좋지 못하며, 어려운 사정임에도 불구하고 모 회사인 미쓰비시에서는 방관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더더욱 난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지금의 몰락까지 왔다고 한다. 실제로 미쓰비시 그룹 내에서의 미쓰비시 자동차의 비중은 의외로 전성기 시절에도 굉장히 작았다.[21]
2008년에 크라이슬러로부터 인수 후 30년 간 현지 모델 개발과 함께 운영하던 호주 공장을 시작으로, 2012년에 DAF 공장으로 시작해 볼보와 합작한 네덜란드 네드카 현지공장, 2015년 9월 25일에 미국 일리노이 현지공장을 모조리 폐쇄 후 다른 기업에 매각함에 따라 구미권의 생산 거점을 모조리 잃었다. 각각 VDL[22] 리비안에 매각되어 활용되고 있다.

2.4. 구조선 찾기

원체 1990년대 중후반부터 기존의 지분 관계에 있어 제일 큰 대주주가 다임러- 크라이슬러였다. 물론 이 시기 전 1970년대 초부터 이미 크라이슬러와도 엔진이나 주요부품 등에서 협력관계를 맺어왔고, 크라이슬러도 미쓰비시 자동차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었다.[23]

1990년대 중후반 크라이슬러 다임러-벤츠가 인수하여 다임러-크라이슬러가 되자, 그룹의 주축인 다임러-벤츠 측에서는 크라이슬러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미쓰비시를 다임러의 아시아 기지로 쓰기 위해 승용과 상용 부문을 몽땅 인수했었고, 현대자동차와도 손을 잡았었다.[24][25] 하지만 결국 다임러 벤츠 측에서 크라이슬러를 털어내면서 2005년 주식을 모두 매각하고 미쓰비시에서 손을 떼었으며, 대신 수익을 그럭저럭 잘 낸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 계획대로 제대로 인수합병했다.

조금 더 말하자면, 미쓰비시 자동차는 다임러-벤츠가 주축인 다임러크라이슬러에서 전폭 지원해 주는 와중에서도 몰락을 거듭하는 중이었고, 그러던 중 크라이슬러와 지지고 볶던 다임러 벤츠가 크라이슬러와 결별하면서 다임러-크라이슬러 그룹이 와해되자, 벤츠는 미쓰비시 승용부문에서 손 떼버리고, 대신 대형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만 인수하여 다임러 그룹 내의 상용차 부문 아시아 기지로 재탄생시킨 것이다.[26]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쓰비시 그룹 측에선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의 경영까지 걷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자동차 부문이 악화일로를 걷게 되자 더더욱 난감한 상황이 되었다.

앞서 말했듯 자동차 부문 경영악화에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그룹 내 자회사들의 경영 악화로 지원이 힘들어지자, 기존의 대주주인 다임러 측은 주식을 증자했고, 이 주식을 푸조가 사들임으로서 대주주 명단에 푸조가 올라가게 되었다. 덕분에 미쓰비시는 푸조에 자사의 준중형 SUV 전기차를 공급하는 협력관계가 성립되었다. 당시 대주주인 푸조가 한때 얼라이언스를 제의했으나 미쓰비시 측에서 거절했다.[27] 그럼에도 SUV와 전기차 플랫폼 제공 등의 협력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푸조는 오히려 토요타, GM과 밀접히 협력했고 FCA와 합병해 스텔란티스가 된 지금은 일부 구형 차량만 공유하고 있어 계속 된 협력 이야기는 무산된 듯 하다.

2015년부터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와 협력을 하기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미쓰비시의 기함 프라우디아[28]/디그니티를 비롯한 중대형 세단들을 닛산 리뱃지 형식으로 내수 생산하고, 전기자동차와 신형 세단의 개발·생산에 있어서 파트너쉽을 맺기로 하였다.[29] 결국 이러한 이유로 르노삼성의 부산 신호동 공장 생산라인에서 미쓰비시의 일부 차종들이 새로 혼류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미쓰비시와 르노-닛산 간의 이견차로 중단되어 미쓰비시의 새 중형차 개발은 또다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업계에서는 환율로 인해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비용이 더 저렴한 것으로 나타나자 미쓰비시가 마음을 바꾼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렇게 르노-닛산 간의 협력도 잠깐 동안 불발되었다가, 연비조작 뻥카가 드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5월 12일이 되자 닛산이 허겁지겁 미쓰비시 자동차 지분 34%의 2,370억엔어치 주식을 사들이고, 덤으로 과징금도 전액 배상해 줌으로써 드디어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그리하여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재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4번째 새로운 일원[30]으로 편입된 상황이다.

2.5. 급한 불은 껐지만

2016년 닛산이 최대주주가 되고 한시름 놓았지만, 그럼에도 예전의 명성을 찾을 길이 없는 수렁에 빠진 상태이다. 차량의 경쟁력도 부족한 상태며, 신차는 뜸하고 차량의 완성도 또한 경쟁업체에 비하면 떨어지는 상태. 오죽하면 북미에서 근래 발전중인 현대자동차가 더 나아보인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플랫폼 노후화&부재로 중형급 이상에서 갤랑, 데보네어, 프라우디아를 단종시키거나, 여러 세계 시장에서 철수하며 매년 전년 대비 30%로 판매량이 감소하는 등으로 힘겨운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2011년 제네바 모터쇼에서는 사실상 소형 플랫폼으로의 집중을 선언하며 중형급 포기를 기정사실화했으나 2012년부터 일본 내수시장에 닛산의 일부 모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미드십 엔진 형식의 경차 i[31](전기차 버전은 i-MIEV) 등이 시장에서 선전하며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으나, 판매량은 일본 내수 시장 부동의 꼴찌 수준이다. 반대로 경차는 닛산과의 합작법인 NMKV를 통해 닛산 배지 모델을 OEM 납품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지라 전통의 모터스포츠 부분에서는 이미 2008년 일찌감치 철수했고, 자사가 직접 하던 렌터카 사업[32]도 축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서도 2014년 북미 시장에서 사라질 브랜드 리스트에서 볼보와 미쓰비시 자동차를 언급했다. 하지만 볼보는 포드와 결별 후 차이나 머니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고, 미쓰비시는 그야말로 철수는 안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2014년에는 자사의 간판 모델인 란에보의 단종을 발표했으며, 2015년에는 그 베이스 모델이 되었던 랜서 역시 단종 수순을 밟으면서 사실상 과거의 명성을 전부 잃어버렸다.

2016년에는 연비를 조작한 것이 발각되었다. 처음에는 현 판매 중인 경차 2종[33]이 발각된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추가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무려 1991년부터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즉, 1991년 이후 일본 국내에 출시한 거의 모든 차종의 '연비'를 불법적인 방법으로 측정해왔다는 뜻이다. "미쓰비시, 거의 전 차종 연비 불법 측정" 아사히 과징금이 1,000억엔이 넘을 것으로 전망되었고, 결국 2016년 5월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서 2,000억엔을 출자해 과징금 해결을 보면서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배상금이 조단위라 스케일이 다르다.

2019년 4월에는 파제로 일본 내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2.6. 생존 모색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아시아 주축인 닛산이 2016년 5월 미쓰비시 자동차의 최대주주가 되었다.

2020년 7월 27일, 미쓰비시 자동차가 공식적으로 유럽 시장 철수 선언을 했다. 미쓰비시는 2020년 1분기 동안 12억 9천만 파운드[34]의 손실을 입었고, 유럽시장 기준 미쓰비시의 점유율은 1%에 남짓해 상대적으로 점유율이 높은 동남아시아 시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미쓰비시의 유럽시장 전면 철수는 이미 예견되어 왔었는데 이미 2012년도 네덜란드에 위치한 연간 20만대의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수요 부진, 신차 라인업의 노후화 및 경영난으로 인해 폐쇄하였고, 미래 사업전략 재검토에 돌입하였지만 이후 7년만에 끝내 버티다 못해 유럽시장을 전면 철수하게 된 것이다. 미쓰비시 이사회에 의하면, 자사는 향후 3년동안 회사의 고정 비용을 최대 20% 줄일 계획이며, 유럽시장에서 철수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 인력 구조조정, R&D 비용 삭감, 2021년까지 파제로를 생산하고 있는 일본 사카호기 공장[35] 폐쇄 및 모든 생산 설비를 오카자키 공장으로 이전하는 계획을 수립한다고 밝혔다.

2021년 9월, 미쓰비시에서는 일본 시장을 대상으로 자동차 플랫폼 개발을 종료하고, 자동차 산업이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2026년경 부터는 미쓰비시 전 차종에 동맹사인 닛산자동차가 만든 차량 플랫폼을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이후 유럽 철수는 2021년에 번복되었다. #

2021년 미국에서는 그나마 간간히 보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취급은 그리 좋지 못하다. 긴 세월 미국에서 토요타 혼다는 고장 안나고 오래 달리는 차로 입지가 완전히 굳어졌고, 3인자인 닛산은 옵션과 가성비는 좋으면서 이전부터 JDM의 대표 주자로 빵빵했던 스포츠카 라인업과 스타일리쉬한 디자인과 성능의 자가용으로 3인자의 자존심은 지켰다. 그 뒤를 잇는 라인인 마쓰다 스바루는 계속 페이스리프트를 해오며 '좋은 일본차란 이런 것이다.'의 트렌드를 굳혀 왔다. 특히 마쓰다는 최근 럭셔리를 지향하면서 세로배치 플랫폼과 강한 엔진에 온갖 고급 내장재와 스티칭으로 도배한 신차들을 내놓으며 위상이 매우 높아졌고 스바루는 판매량만 토요타와 혼다의 압도적인 물량에 지는거지 높은 완성도와 내구성은 그들을 압도하기로 유명하며 비교적 흔히 보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36] 반면 마지막인 미쓰비시 자동차는 옛날 미국에 데뷔할 당시 현기차의 취급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유튜브 영상 등에서도 JDM 매니아들은 예전의 미쓰비시 자동차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댓글들이 많다.

거기다 요즘엔 신차 R&D 및 기술 개발 비용도 아끼고 있는지 유럽 시장에서는 르노 차량들을 가져와 배지 엔지니어링하는 차종들이 늘고 있다. 사실상의 단순한 딜러망 유지 및 환경규제 대응 차원에 가까울 정도로 캡처, 클리오, 트래픽 등의 르노 차들을 로고 정도만 바꿔 미쓰비시 명의로 공유하기 시작했다.[37]

2023년 10월, 미쓰비시는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2024년 5월, 미쓰비시가 D:X 컨셉트카를 양산화한 오프로드 미니밴을 차후 출시할 수 있다는 정보가 오토모티브 뉴스로 나왔다. 정보에 따르면 북미 딜러를 대상으로 공개한 미쓰비시의 중장기 신차계획 모멘텀 2030(Momentum 2030)에서 공개된 오프로드 특화형 신차 2종 중 하나로, 미쓰비시 북미 지사 회장 겸 CEO 마크 채핀(Mark Chaffin)이 딜러들에게 미쓰비시가 진출하지 않은 세그먼트로 완전신차 둘을 투입하며 2026년에서 2030년 사이에 완전신차 및 부분변경 모델을 매년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2024년 7월부터 소프트웨어 표준화를 위해 닛산- 혼다 간의 동맹에 참여한다.

2024년 11월, 닛산 보유 주식의 3분의 1 가량을 자사주매입의 형태로 인수 함을 발표했다. 인수 이후에는 닛산의 미쓰비시 주식 보유량은 총 발행주수의 24퍼센트 대로 낮아진다.

3. 대한민국의 인연

3.1. 현대자동차와의 관계

1973년 당시 미쓰비시 자동차는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 자금이 필요했고, 마침 이웃나라의 신생 기업이었던 현대자동차 포드와 결별한 후 자동차 기술 전수를 골자로 한 기술 제휴를 미쓰비시 측에 타진하게 되면서 두 회사의 인연이 시작된다.

본래 미쓰비시 자동차는 1965년에 대한민국 시장 진출을 희망하면서 신진자동차와 기술제휴를 하려고 했었으나 이 과정에서 신진자동차가 미쓰비시 콜트 1500 승용차 100대를 들여오면서 특혜 논란에 신진자동차의 폭리 논란도 일파 만파로 번지게 되었고[38], 이 와중에 토요타가 신진자동차를 꼬드겨서 1966년에 기술제휴 계약을 체결하는 바람에 미쓰비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8년 후 현대자동차와 기술제휴를 체결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었다.

기술제휴가 체결된 후 미쓰비시 자동차는 승용과 상용을 통틀어 현대자동차의 기술적인 스승 역할을 하였으며, 자연히 옛날, 즉 1970~90년대에 나온 현대자동차 모델의 가솔린/디젤 엔진, 변속기, 플랫폼 등은 미쓰비시제를 이용했다. 양사의 기술 종속 관계는 실질적으로 30년 가까이 유지되었다가, 마지막 합작 모델인 1세대 에쿠스 (프라우디아)가 단종된 2008년에서야 완전히 끝나게 된다. 당시 국내 자동차 제조사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들의 태도에 비하면,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대자동차에 꽤나 잘 해준 편에 속하였다. 덕분에 현대자동차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후반까지 미쓰비시 자동차가 설계한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을 베이스로 하여 상품성을 높인 모델들을 대거 출시하면서, 국내 및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서 자금 조달 문제로 미쓰비시 자동차에 부품 대금 결제를 주식으로 대신하게 되면서 미쓰비시 자동차가 현대자동차의 대주주로 올라서게 되고, 이 때문에 현대자동차에서 자체적으로 추진 중이던 엔진 독자개발을 중단시키기 위해 경영 일선에 개입하여 내부적으로 방해를 시도하였던 정황들도 있었다. 다만 세타 엔진을 개발하면서 세타의 블록을 양사가 같이 쓴 것은 있다.

결함 은폐 사건으로 미쓰비시 회사가 도산 직전까지 가자, 현대자동차의 미쓰비시 인수설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다. 실제로 미쓰비시와 현대자동차 양 측 모두 합병을 진지하게 고려했으나,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원체 미쓰비시 그룹 자체가 과거 전범기업인 데다 사죄에 대해서는 인색한지라, 만일 미쓰비시 자동차 부문만 현대가 인수한다 해도 "전범기업을 형제로 들이느냐"라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을 수 있는 일이다.[39] 애초에 이런 외부 반응을 차치하더라도 한참 미쓰비시가 오늘 내일 할 때인 2000년대 초반에는 1997년 외환 위기 형제의 난의 영향으로 현대자동차 역시 미쓰비시를 마음만 먹는다고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40]

그러나 미쓰비시가 몰락을 거듭한 지금은, 고급차 부문에서 닛산 푸가 OEM 방식으로 공급받아 기함인 프라우디아와 디그니티 신형을 만들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미쓰비시 자동차는 자본제휴 관계인 닛산의 모기업인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동참한다. 닛산이 최대주주이지만 과반에 못 미치기 때문에 일본 법에 정의되는 모회사는 아니며 지분법 적용 관련회사 관계로 취급된다. 미쓰비시의 지분은 미쓰비시 상사 20.02%를 포함해 22%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미쓰비시 그룹에도 계속 소속된다.

3.2. 대한민국 시장 진출 및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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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는 2008년 9월 대우자동차판매 계열 MMSK를 통해 진출하였다. 이후 같은해 10월부터 랜서 에볼루션 아웃랜더의 판매를 시작했고, 11월에는 이클립스 쿠페를 선보였으나 당시 엔고 환율까지 덮치면서 2008년 10월 53대, 11월 7대, 12월 5대라는 판매량의 위엄을 보여주며[41] 진출 첫 해에 철수 위기를 겪었다.

이후에는 매월 수십대 정도의 매출은 유지하고 있었으나 판매 부진으로 딜러가 이탈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등 매우 부진했다. 이 와중에도 SBS 드라마 천사의 유혹에 차량 PPL을 진행하는 등 어느 정도 마케팅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2010년 기준으로 랜서(갤랑 포르티스)의 가격은 3,000만원 전후(옵션에 따라 2,900만원대)의 가격을 책정했으나, 랜서 에볼루션은 6,000만원이 넘는 가격이 책정되어 원성을 많이 들었다. 국내 판매된 미국사양 랜서 에볼루션 TC-SST에 S-SWC까지 적용된 MSRP 45,000불의 풀옵션 사양이였고, 환율 영향도 있으나 시장의 기대수준이 4,000만원 중반이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베이스가 된 일반형 랜서도 판매하였으나 국산 준중형과 비교해도 나을 바 없는 품질로 시장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고[42] 영업사원들의 사정인지 나중에는 신차가 대량으로 중고차 시장에 대거 유입되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쯤되니까 갤로퍼의 원판 모델 파제로가 국내에 발매되었다는 건 아무도 신경조차 안썼다. 결국 철수 고려 중이라는 기사가 나왔고 미쓰비시만이 아니라 스바루 등의 일본차가 전반적으로 한국 시장에서는 맥을 못추는 편에 이정도일줄은 몰랐다는 평이 지배적.

2011년 4월 7일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국내 공식 수입사인 MMSK가 사업을 접고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극심한 판매 부진으로 2011년 1분기 실적이 34대에 불과할 정도로 영업 적자가 심각하며 이와는 별도로 대주주인 대우자동차판매가 워크아웃에 돌입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MMSK는 자본 잠식률이 93%에 달해 기업으로서의 생존력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MMSK가 청산되고 나서 새로운 업체가 그 자리를 메웠는데, 범 한진그룹 계열인 CXC 모터스가 그 자리를 잡았다. 참고로 CXC 모터스의 대표인 조현호는 한진그룹 창업주인 조중훈 회장의 조카다. 2012년 3월 16일 대한민국에 재진출하였으며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재진출 후 2012년 4월까지 등록 및 판매 0대로 단 1대도 팔지 못했다. 2012년 수입차 시장은 독일제 고급 디젤 세단이 급부상하면서 일본차들이 모두 부진하긴 했지만 그 중에서도 미쓰비시 자동차는 2012년 상반기 판매 대수는 22대, 그것도 상당수는 내부 직원 판매로, 일반 소비자 판매는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결국 2013년 CXC 모터스는 전시장을 폐쇄하여 한 곳만 남은 상태였고 이마저도 재고 처분 후 2013년 7월 한국 영업을 잠정 중단했다. CXC 측은 잠정 중단일 뿐 재철수가 아니라지만 명백한 사망플래그. 2013년 10월 CXC 모터스와 계약이 종료되면서 대한민국에서 다시 철수했고 때문에 대한민국 구매자들은 보증 수리같은 AS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버림받았다.[43] 그나마 가까운 옆나라 회사라 어찌저찌 부품을 구할 수 있기는 한게 다행일 정도였다.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 협찬하여 출연하기도 하였다.

4. 랠리아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랠리아트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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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MIEV

Mitsubishi In-wheel motor Electric Vehicle 또는 MiEV(Mitsubishi innovative Electric Vehicle)의 약자로, 미쓰비시 자동차의 리튬 이온 배터리, 인휠 모터 및 전기 자동차(EV), 하이브리드 전기 자동차 및 연료 전지 자동차와 관련된 기타 기술을 포함해 모든 전기 구동 시스템 작업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이다.
미쓰비시의 전기차 개발로 여러 컨셉트카들이 제작되고 공개되었으며 양산 차로 i-MiEV를 출시하였다.

6. 성룡과의 관계

1980년대 중반부터 홍콩의 영화배우 성룡과 제작협력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성룡의 해외진출과 함께 가히 전 세계적인 PPL 효과를 보았다. 미쓰비시 자동차 모델이 성룡의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84년 영화 쾌찬차부터이며, 이후 용형호제, 폴리스 스토리, CIA, 빅타임 등에 이르기까지 성룡이 출연하는 영화의 상당수에 자사의 자동차 모델이 등장하였다. 1995년작 영화 성룡의 썬더볼트 미쓰비시 자동차 홍보영화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PPL의 정점을 이루었다. 경쟁자용 레이싱카를 제외하고서는 영화에 투입되는 차량들을 거의 대부분을 지원했고, 오프닝에서처럼 주인공 설정이 미쓰비시 자동차의 드라이버 연수생으로 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성룡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정비공장의 견인차조차도 미쓰비시 모델일 정도였다. 실제 이 견인차는 미쓰비시 후소에서 만든 캔터라는 모델로, 현대자동차의 2톤~3.5톤급 중형트럭 모델인 마이티의 초기 모델은 캔터의 라이센스 버전이었기에 앞부분을 보면 익숙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룡의 버프로도 일어서기 힘든 상황이다보니, 차이니스 조디악에 잠깐 출연한 파제로 이래로 신차를 볼 수 없었지만, 2017년에 공개되는 신작에, 콘셉트 XM-PHEV를 기반으로 개발되는 소형 미니밴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7. 생산 공장

8. 생산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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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 트라이톤 레이더
군용 73식 소형트럭 J601
미쓰비시 랠리아트의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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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승용

8.2. 상용차

8.3. SUV/RV

8.4. 픽업트럭

9. 단종차량

9.1. 승용

9.2. 스포츠카

9.3. SUV/RV

9.4. 픽업트럭

10. 컨셉트 카

11. 합자회사



[1] 2024년 2월 [2] 닛산이 최대주주이지만 과반에 못미치기 때문에 일본법에 정의되는 모회사는 아니며 지분법 적용 관련회사 관계로 취급된다. 이외에 미쓰비시 그룹 계열 지분이 22% 수준. [3] 제3자 배정 증자를 통하여 닛산이 2,373억엔에 미쓰비시 지분의 34%를 확보하였으며, 미쓰비시 계열사는 우호 지분으로서 기존 지분을 10년간 유지하는 조건. 미쓰비시의 지분은 미쓰비시 상사 20.02%를 포함해 22% 수준이다. 자연스럽게 미쓰비시 그룹에도 계속 소속된다. [4] 크라이슬러 그룹의 소형차 라인을 보충해주면서 미쓰비시의 미국 진출로를 열어준 계기인 동시에, 미쓰비시에게는 한동안 미국에서 자체 브랜드 진출이 막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5] 이때 호주 지부를 통해 개발한 현지공략차종이 갤랑의 파생 모델인 마그나였다. 마그나가 세대교체를 하고 고급형 모델이 베라다로 독립하는데, 이 때 호주에서 생산한 베라다 왜건이 디아망떼 명의로 수출되었다. [6] 미쓰비시 이클립스가 다이아몬드 스타 모터스에서 만들어진 첫 차종 중 하나였다. [7] 1970년대부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은 모델 다양화에 맞춰 대리점을 다각화했다. 주로 기존의 '고급 모델'과 새로 출시되는 저가 모델을 따로 파는 데서 시작했다. [8] 1994년에 로터스를 인수한 회사다. [9] 현재의 도쿄대학 [10] 미쓰비시의 기술 협력이 성사된 배경에 당시 구보 도미오 미쓰비시 사장의 친한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는 설도 있다. 또한 '나는 백제의 후예'라고 말하며 처음 현대차 울산 공장을 방문했을 때 부여를 둘러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 [11] 갤랑 플랫폼으로 에테르나, 레그넘을 만들었으며, 랜서 플랫폼으로 미라지, 카리스마를 만들었다. 근데 갤랑과 에테르나, 레그넘이라던가 랜서와 미라지는 말이 좋아서 형제차지 실상은 그냥 같은 차에 이름만 바꿔서 파는 배지 엔지니어링 수준이었다. 특히 1996년 이후 모델들은 닛산 못지않게 어느 차가 오리지널이고 어떤 차가 변형 모델인지 구별도 못할 정도였다. 그 중 카리스마 볼보 S40 1세대와 동일한 모델이었고 네덜란드에서 생산됐다. [12] 단, 랜서와 미라쥬는 특정 딜러점 전용으로 가지치기된 모델들이며 당시 일본에서는 딜러점 다각화 정책으로 인해 같은 차종을 딜러점 채널별로 조금씩 손봐 판매하는 경우가 흔했다. 당시 혼다도 준중형 세단 하나를 도마니, 시빅 페리오, 인테그라 SJ로서, 중형 세단 하나를 아스코트와 라파가로서 일부만 조금씩 손질해 판매했으며 토요타 역시 1990년대 당시의 코롤라와 스프린터는 물론, 딜러점 다각화 정책을 갓 폐지한 2010년대까지만 해도 알파드와 벨파이어, 복시와 노아 및 에스콰이어 등의 차들은 전면부, 후면부와 인테리어 배합, 파워트레인만 다른 한 차종 돌려막기식 라인업이었다. [13] 1964년에 나와 1986년까지 22년 동안 판매된 1세대 데보네어를 말하며 이후 1986년에 들어서야 2세대 모델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현대 그랜저로 팔렸다. 다른 별명은 '미쓰비시 그룹 중역 전용차'다. [14] 2020년대 미국에서의 상황은 도대체 아직까지 어떻게 미쓰비시가 살아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판매량 뿐만 아니라 모델들의 퀄리티가 안 좋은 쪽으로 악명 높다. 어떤 사람들은 폰티악, 머큐리, 올즈모빌 등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수많은 브랜드가 과거에 청산당한 것 덕분에 미쓰비시가 아직도 살아있는 거라고 깔 정도였으며 미국에서 미쓰비시가 유일하게 내세우는 전략이 '그 누구보다 싼 가격'이다. [15] 스텔란티스 코리아의 실적이 요즘 안 좋아지는 것은 각종 상품성 및 서비스 품질 악화도 있지만 전직 지사장이었던 파블로 로쏘의 성추행 종용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며, 이 트라우마는 후임인 제이크 아우만, 방실 시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16] 승용차 갤랑, 파제로, 파제로 이오, 랜서(란에보 포함), 델리카 스페이스 기어 163,707대, 대형 상용차 더 그레이트, 슈퍼 그레이트, 에어로 에이스, 에어로 킹, 에어로 퀸, 에어로 에이스, 에어로 스타 100만대였다. [17] 휠을 고정하는 볼트가 깨져서 타이어가 튀어 나갔다. 그것도 대형 트럭이 결함으로 야채를 싣고 가던 트럭이 고속도로 요금소를 들이받아 운전자가 사망한 사고와 튀어나온 타이어에 아이 어머니가 맞아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죽고 아들은 크게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이케이도 준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18] 때마침 12개월 동안 0퍼센트 할인, 0% 이자, 0달러 선납금이라는 0-0-0 마케팅을 했었는데, 이 사태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0-0-0 마케팅으로 산 차를 중고로 다시 팔아버리는 바람에 미쓰비시는 심각한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19] 지금도 몇몇 언론에서 설문 조사나 의견 조사를 하면 일본인들 대부분은 미쓰비시의 결함 은폐에 대해 "회사 책임자가 그 상황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차라리 우리 전통대로 보면 책임자가 할복이라도 했어야 할 상황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는 실제로 모터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일본내 시민들에게 자동차 회사들에 대한 이미지 조사를 할 때 나온 말이다. # 게다가 2002년에는 25만대를 넘던 일본 내수 판매량도 2017년에는 70,000대 이하까지 떨어졌다. 출처 얼마나 막장이었으면 같은 일본 소비자들까지 등을 돌릴까? [20] 이 사건은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로 유명한 이케이도 준의 소설 '하늘을 나는 타이어(空飛ぶタイヤ)'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소설도 드라마화, 영화화가 진행되었다. [21] 다만 2차 대전 후 일본 대기업 집단에서 각 계열사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관례를 두고 보면, 오히려 2005년에 지분의 30%에 달하는 출자를 해 준 게 이례적이다. [22] 1953년 설립된 기업. 매각 이후 BMW X1 컨트리맨, 컨버터블 등의 미니를 위탁 생산중이다. [23] 이 시기 크라이슬러 차종 중에서는 미쓰비시에서 제작된 엔진을 크라이슬러가 자사 입맛에 맞게 튜닝하여 얹은 차들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긴밀한 관계였던 셈. 포드도 가끔 야마하 모터에서 엔진을 주문해 오긴 하지만 그보다 더했다 보면 되겠다. [24] 이 당시 다임러 크라이슬러 홈페이지에 벤츠, 크라이슬러, 미쓰비시 자동차가 한 그룹으로 속해있었고, 현대자동차는 합자회사 (Joint Venture)로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잠시동안이지만 사족으로 이 시기 현대가 상용차 부문에서 벤츠의 엔진을 가져다 쓰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현대 그린시티 문서 참조. [25] 또한 당시는 다임러 크라이슬러 그룹이 계속 굳건하다고 믿었기에 다임러 벤츠 측에서는 상용차부터 승용차 부문 전 라인업 기술 협력의 초석으로, 맨 먼저 현대의 상용차 부문과 협력을 야금야금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크라이슬러와 벤츠 간의 여러 문제로 다임러크라이슬러가 와해되고 나서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26]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은 계속 유지하기로 하여 앞으로도 다임러 벤츠가 계속 소유중이다. 본문에서도 서술했지만 미쓰비시 그룹 내에선 승용 부문이 갈수록 병크로 치닫고 있었고, 그나마 승용부문에 비해 수익을 더 잘 내는 쪽이 상용차 부문이었다. 승용차 부문에 비해 수익도 잘 내고 일도 잘 하던 미쓰비시 상용차 부문인 미쓰비시 후소를 당연히 벤츠는 포기할 수 없었고, 미쓰비시 후소를 메르세데스 벤츠 상용차의 아시아 기지로 키워내기 위해 지분인수를 늘려 자회사로 만들었다. [27] 아마도 푸조 측에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를 보고 대항하려는 계획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회사간 이해관계와 유로화 약세 등의 문제로 PSA 측과 미쓰비시는 자본제휴를 그만두게 되고, 경기회복 후에 다시 지분협력을 하겠다고 밝혔다. [28] 과거 현대 에쿠스/1세대와 공동 개발되었던 그 1세대 프라우디아로, 2세대는 닛산 푸가/ 닛산 시마를 로고만 미쓰비시로 바꿔서 프라우디아로 팔았다. 그렇다고 해도 정작 일본 내에서 판매량은 낮았다. [29] 우선 일본 언론에서도 " 토요타와 독일 폭스바겐, 미국 제네럴 모터스로 구성된 3강 체제에서 르노-닛산과 미쓰비시 연합이 더해진 4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라고 하며 "이전까지의 미쓰비시의 제휴들이 실패였다"고 까는 점을 봐서는 차라리 미쓰비시 측도 이번 협력만큼은 안정적인 자본제휴나 매각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속내인듯도 하다. 출처 [30] 알핀, 다치아, 라다에 이은 4번째 르노-닛산 계열 브랜드. [31] 스마트 포투에 들어가는 1.0L 가솔린 터보 엔진이 i에 장착되는 엔진이다. [32] 일본은 자동차 메이커가 직접 렌터카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33] 배지 엔지니어링으로 닛산의 이름으로 판매된 것까지 포함하면 4종이다. [34] 한화로 약 1조 9천여억원 [35] 파제로 제조라는 법인으로 따로 분류되어 있다. [36] 최근 들어 일본 자동차 시장이 차량 자체의 성능에서 편의성으로 포커스가 이동할 때, 스바루는 일본 내수 시장에서 잘 안 팔리므로 내수를 포기하더라도, 수출경쟁력을 위해 자동차 기술과 완성도, 성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그 결과 스바루의 자동차는 일본 메이커 중에서 유일하게 스바리스터라는 애칭이 붙은 팬덤을 양성할 정도로 호평이며, 해외에서는 토요타 혼다가 그저 넘사벽일 뿐 스바루도 항상 '자식들이 고등학교 졸업하면 부모가 물려주는 차'로 긴 세월 그 입지가 굳어졌다. [37] 이는 일본 자동차 메이커들 중에서 중소규모에 속하는 마쓰다, 스즈키 등에서도 취하고 있는 방식이다. [38] 당시 콜트 파동이라고 불렸는데, 한편으로는 제2의 새나라 자동차 파동이라고 하기도 했을 정도로 파장이 컸었다. [39] 물론 언론플레이로나마 "전범기업의 몰락" 내지 "과거 전범행위의 댓가" 비슷하게 분위기를 조성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인수 이후에 미쓰비시 자동차와 갈등을 빚을 여지가 생겼을 것이다. 삼성이 닛산을 아예 사오는 걸 고려하던 당시에도 같은 논지로 비판받았다. 삼성은 특히 IMF를 일으키는데 일조했다고까지 이미지가 악화되어서 도저히 그걸 견딜 상황이 아니라 당시에 인수를 포기했고 결국 닛산 차량을 베이스로 영업했던 인연으로 르노에게 명의를 대여해주고 사업을 접어버린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형제로 받아들이느냐는 질타 자체가 미쓰비시가 지닌 전범기업 이미지를 감안하면 오히려 후한 대접이다. 반일감정이 크게 관여한다고 가정하면 반대로 이번엔 미쓰비시가 이 되어 볼 차례라며 오히려 인수를 장려하는 방향도 가능하다. 기업의 인수가 노예무역인 건 아니지만 이후의 르노-닛산의 관계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은 일본 기업들이 해외에 팔려나가서 끌려다니는 걸 상당히 불쾌해하기 때문. 일본 국민들이 괜시리 좋아하는 프랑스의 회사가 이러는데도 반응이 좋지 못한 데 반한감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기업이, 특히 미쓰비시가 아니었으면 자동차는 꿈도 못 꿨을 하룻강아지 회사가 역으로 호랑이가 되어서 미쓰비시를 잠식한다면 패닉이 대단했을 것이다. 특히 2024년에 발생한 일본 정부의 라인야후 네이버 지분 매각 압박 논란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현대자동차가 미쓰비시자동차를 어찌어찌 인수했다고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현대자동차와 미쓰비시자동차 사이에 갈등이 생기거나, 일본 정부가 경영에 딴지를 걸거나 압박을 가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40] 비슷한 시기에 결국 현대는 기아를 인수한다. 이쪽이 훨씬 이득도 많았고 국내 기업이 같은 국내 업체를 살려서 데려가는 그림으로 보여져 국가나 국민들에게 호감을 산 점도 있다. [41] 2008년 11~12월 초기 선보였던 랜서 에볼루션과 아웃랜더는 월별로 고작 1대만 판매되었다. [42] 심지어 일본 영사관, 주한일본대사관 차량 중 일제차조차도 미쓰비시는 거의 없고 죄다 렉서스, 도요타, 혼다, 닛산, 인피니티뿐이었다. 그만큼 일본에서 온 외교관들 중에서도 미쓰비시 차는 없었다는 것. [43] 국내 관련법에 의하면 수입차 및 수입 제품 공식 딜러의 철수 이후 6년간은 의무적으로 A/S를 해줘야 한다. 현재 닛산과 올림푸스가 이 상태이지만 고작 1년간 영업해서 무슨 노하우가 있을까 싶고 2020년 기준 이미 6년의 기간도 끝나버려 진짜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다. 차는 제대로 고치지도 못하지, 그렇다고 중고로 팔자니 중고 가격도 너무 형편없고 팔릴 가능성도 저조하다. 하다못해 2000년대 이전에 직수입으로 들여온 차들은 현대자동차의 일부 차종과 부품이 호환되기 때문에(특히 시리우스 엔진) 현대자동차를 수리하는 곳에 가면 해결을 볼 수 있다 치지만, 이 때 당시 판매했던 차들은 기술적으로 차이가 많이 벌어져 현대자동차와 호환될 만한 부품이 거의 없다. 그나마 플랫폼을 공유한 크라이슬러 계열 차종들과 일부 부품 호환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쪽 역시 직구라도 하지 않는 이상 부품 수급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결정적으로 부품 가격 조차도 꽤나 비싼 편이다. [44] 본래는 미라쥬의 수출명 중 하나였지만, 2002년에 그 후속으로 유럽식 해치백이 등장하자 콜트로 통일되었다. 2012년에 단종되었고, # 최근에 르노 클리오 리뱃징으로 부활했다. [#] 크로스오버 SUV [#] [47] 영문 표기대로라면 파제로 스포'트'가 되겠지만, 외래어다보니 '트' 발음에 대해 ツ(츠) 또는 トゥ(토우=투) 또는 ト(토) 중에서 적당히 선택해서 쓴다. 그래서 미쓰비시 측의 표기는 パジェロスポーツ 로 표기되어 있다. [48] 당대 미쓰비시와 현대의 협업 관계에서, 미쓰비시 미라쥬의 플랫폼으로 개발된 현대 포니 액셀이, 아메리카에서 다시 미쓰비시 프레시스로 전개되었다. [49] 볼보 S40의 자매차. 현재의 미쓰비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지만, 미쓰비시 카리스마가 오리지널 모델이다. [50] 영문 철자도 같기는 하지만, 동명의 한국제 트럭과는 관계가 없다. 이쪽은 90년대 중반에 전개된 랜서의 스테이션 왜건 자매차. [51] Highly Sophisticated-transport Research의 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