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munistische Partei Österreichs (KPÖ) | |
영문 명칭 | Communist Party of Austria |
한글 명칭 | 오스트리아 공산당 |
상징색 |
빨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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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 귄터 호프가르트너 |
창당일 | 1918년 11월 3일 |
이념 | 공산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극좌 |
당사 |
Drechslergasse 42 A-1140 빈 |
국제 조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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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정당 | 유럽 좌파당 |
상원 의석 |
0석 / 61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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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 의석 |
0석 / 18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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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주의회 |
6석 / 440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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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회 |
0석 / 1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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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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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공산당.2. 상세
제1차 세계 대전 패전 이후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서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산당(KPDÖ) 이름으로 창당한다. 창당한 지 9일만에 쿠데타 시도를 가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의 강한 영향력으로 인해 오스트리아 내 영향력은 없었지만 소련의 지령에 따라서 투쟁을 가할 수는 있었다.1933년 엥겔베르트 돌푸스의 오스트리아 연방국 파시즘 정권이 세워지자 긴급 명령에 의해 금지되었지만 이에 반발해 지하 활동을 벌여 왔다. 안슐루스 이후 나치 독일 하에서도 나치에 대한 투쟁을 하였는데 이유가 이데올로기에 따른 건지, 애국심인지는 이견이 있다.
1945년에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자 연합군 점령하 오스트리아 하에서의 선거에서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았지만 득표율은 5%에 불과하였고 공산화 의지가 약했기 때문에 소련도 포기하고 오스트리아가 중립국으로 가는 데 본의 아니게 기여하였다. 1950년에는 오스트리아 전역에 총파업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1955년 연합군 점령 종료와 함께 1956년 총선에서 마지막으로 의석을 차지한 이래 긴 기간 동안 원외정당이었다. 하지만 2005년 슈타이어마르크 주의회 선거부터 다시 1 ~ 2석 정도는 차지하고 있다.[1]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을 비판하기도 하였으나 1971년에 다시 소련에 대한 지지선언을 하였다. 이처럼 당의 성향이 오락가락하던 중에 유럽공산주의, 민주사회주의 성향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핵심 지지자들이 당을 떠남에 따라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재정 악화, 동독으로부터의 자금 문제 등 큰 위기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는 청년 조직이 당과의 관계를 끊어 버리는 사태와 당 내 정책 간의 차이로 인해 당 내 갈등이 커졌다.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10년대 들어서까지 오스트리아에서 지방선거에서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 정도로 별 존재감이 없었지만 2020년대 들어서 지방선거에서 의석수를 늘리면서 뜬금없이 존재감이 상승하고 있다. 2021년 그라츠 지방선거에서는 시의회 제1당에 등극하면서 사상 최초로 공산당 소속 시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2023년 잘츠부르크주 주의회 선거에서 11.7%의 득표율[2]로 4석을 얻어 다시금 주요 정당으로 약진할 가능성이 생겨났다.[3] 2023년 5월부터는 전국 지지율 여론조사에도 포함되는 등 그 상승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러나 2024년 오스트리아 국민의회 선거에서는 기존 소수점대 득표율에서 2.9%로 약진했지만 봉쇄조항에 미달하여 원내진입에는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