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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18:25:36

김사율

김사율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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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김민규
( 북일고등학교)
김사율
(경남상업고등학교)
추신수
( 부산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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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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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조 김성관
김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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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rowcolor=#ed1c24> 1989~1991 1992 1993~1994 1995
김용철 ?? 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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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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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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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63번
박지환
(1992)
김사율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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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5번
이지환
(1993~1999)
김사율
(2000~2004)
결번
결번 김사율
(2007~2008)
김일엽
(2009)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4번
이용훈
(2005~2008)
김사율
(2009)
이용훈
(2010~201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55번
김일엽
(2009)
김사율
(2010~2014)
강승현
(2015)
kt wiz 등번호 55번
양형진
(2014)
김사율
(2015~2018)
고성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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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파주김사율감독.jpg
김사율
金思律|Kim Sa-yul
출생 1980년 4월 17일 ([age(1980-04-17)]세)
(정부 직할) 부산시
(現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감천초 - 부산대신중 - 경남상고
신체 181cm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9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9~2014)
kt wiz (2015~2018)
지도자 파주 챌린저스 감독 (2022)
프런트 수원 드림즈 총괄 단장 (2023~)
해설위원 스포카도 야구 해설위원 (2020)
병역 대한민국 육군 제7보병사단[1] (2004~2006)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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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촌 김사훈
등장곡 달파란, 장영규 - 〈 Don't Let Me Be Misunderstood[2] }}}}}}}}}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플레이 스타일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금지약물 소지 및 위증죄
6. 여담
6.1. 등번호에 얽힌 이야기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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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김사율/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아마추어 시절

3. 은퇴 이후

경기도 수원에 참베이스볼아카데미라는 야구레슨장을 열고, 아마추어 야구선수부터 일반 사회인 야구인들에게 자신의 노하우를 전달하는 ‘배움의 장’을 열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 전 롯데, KT위즈 투수 이상화와 같이 하고 있다.
그러다가 파주 챌린저스에 코치로 합류했다가 감독이 됐다.
이는 양승호 이후 두번째 롯데 자이언츠 관련 인물이 파주의 지휘봉을 잡은 것이다.

KBO 퓨처스리그의 스포카도 채널 중계방송 해설을 간간히 맡고 있기도 하다.

4. 플레이 스타일

패스트볼 구속은 140km/h 초반대 정도로 무난한 구위를 가지고 있으나 제구력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아 피안타율이 높은게 흠이다. 이 제구 문제는 11시즌에 많이 안정되었고, 여기에 정말로 엄청난 수의 변화구로 타자의 타이밍을 뺏으며 맞춰잡는 플레이 위주로 운영을 한다. 11시즌 초 송승준에게 배운 너클 커브의 덕을 많이 보고 있다고 한다.

롯데 불펜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을 못 받아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사실이 있는데, 김사율은 위에서 말한대로 정말로 엄청난 수의 변화구를 던질 수 있는 팔색조 투수다. 포심, 투심,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싱커, 스플리터, 너클커브를 모두 던질 수 있다.

다만 제구가 좋지 않아 결정구로 던질만한 구질은 없다. 김사율이 마무리로 한참 주가를 높이던 시절에도 어찌어찌 꾸역꾸역 막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결정구가 없기 때문. 패스트볼 구위는 괜찮지만 타자를 압도할 만한 스피드나 수직 무브먼트가 있는 게 아니고 변화구의 경우도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던져넣는다고 할 수는 없다.

5. 논란 및 사건 사고

5.1. 금지약물 소지 및 위증죄

한국도핑방지위원회 KADA에 금지약물 단순소지로 제재 대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후 전 팀 동료인 송승준과 함께 1심에서 위증죄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 현재 송승준과 김사율은 재판부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2024년 4월 12일, 항소심에서마저 1심 판결이 유지되었다.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하며 성장호르몬 주사를 구입하고도 그게 성장호르몬 주사인지 몰랐다는 식으로 위증을 하여 유죄 판결이 나온 건데, 운동선수가 성장호르몬 주사를 구입할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김사율과 송승준이 프로 선수 시절 기록한 기록 역시 신빙성에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6. 여담

6.1. 등번호에 얽힌 이야기

김사율의 경남상고 시절 등번호는 34번이었다. 롯데 입단 후 고교 시절 사용하던 34번을 원했으나, 공교롭게도 이 해 외국인 선수로 입단한 외야수 펠릭스 호세 또한 34번을 원하게 되면서 이를 양보하고 신인 시절 63번을 단 뒤 2000년부터 55번을 달았다.

이후 펠릭스 호세가 롯데를 떠났으나, 2003년에 김영수를 상대로 트레이드되어 고향팀에 이적하게 된 선배 투수 이용훈이 자신의 등번호인 34번을 그대로 쓰기를 원하면서 34번은 이용훈에게 넘어갔고 김사율은 55번을 유지했다. 그리고 김사율은 이듬해 현역으로 입대했다. 공교롭게도 군 제대 후 복귀했을 때 호세도 재입단을 하며 34번을 노리는 선수가 세명이나 되게 된다. 결국 승자는 이용훈.[5]

그 뒤 이용훈이 2008년 2월 22일 득남하면서 2009 시즌부터 등번호를 22번으로 바꾸게 된다. 드디어 김사율은 프로 데뷔 10년 만에 34번의 등번호를 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2009 시즌 후 34번은 다시 이용훈에게 넘어갔고... 김사율은 김일엽이 썼던 55번을 돌려받은 후 은퇴할 때까지 55번을 사용했다.

7. 관련 문서


[1] 포병부대에서 운전병으로 복무. [2]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OST. [3] 롯데기 부산·경남지역 초등학교 야구대회 우승교의 대표 선수 자격으로 했다. [4] 이후 손승락이 37세이브를 기록하며 이 기록은 깨졌다., [5] 호세는 이 당시 등번호로 99번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