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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14:19:47

금호아시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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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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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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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변동 집단명 동일인 계열사 수 자산총액 (조 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대기업)
1 (-) 파일:Samsung_Logo.svg
삼성
이재용 63 566.8
2 (-) 파일:SK 로고.svg
SK
최태원 219 334.3
3 (-) 파일:현대자동차그룹 로고.svg 파일:현대자동차그룹 로고 화이트.svg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70 281.3
4 (-) 파일:LG 로고.svg 파일:LG 로고 화이트(활용형).svg
LG
구광모 60 177.9
5 (▲1) 파일:포스코 CI.svg 파일:포스코 흰색 로고.svg
포스코그룹
포스코홀딩스(주) 47 136.9
6 (▼1) 파일:롯데 로고.svg
롯데
신동빈 96 129.8
7 (-) 파일:한화 로고.svg 파일:한화 로고 화이트.svg
한화
김승연 108 112.4
8 (▲1) 파일:HD현대 로고.svg 파일:HD현대 로고 화이트.svg
HD현대
정몽준 29 84.7
9 (▼1) 파일:GS그룹 로고.svg 파일:GS그룹 로고 화이트(활용형).svg
GS
허창수 99 80.8
10 (-) 파일:농협 로고.svg 파일:농협 로고.svg
농협
농업협동조합중앙회 73 78.4
11 (-) 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svg 파일:신세계 영문 CI_좌우 White(1).svg
신세계그룹
이명희 53 62.0
12 (-) 파일:KT 로고.svg 파일:KT 로고 화이트.svg
KT
(주)KT 48 46.8
13 (-) 파일:CJ 로고.svg 파일:CJ 로고 화이트.svg
CJ
이재현 55 39.8
14 (-) 파일:한진그룹 로고.svg 파일:한진그룹 로고 화이트.svg
한진그룹
조원태 34 39.0
15 (-) 파일:카카오(기업) 로고.svg
카카오
김범수 128 35.1
16 (-) 파일:LS그룹 로고.svg 파일:LS그룹 로고 화이트.svg
LS그룹
구자은 67 31.9
17 (-) 파일:두산 로고.svg
두산그룹
박정원 22 26.9
18 (-) 파일:DL그룹 로고.svg 파일:DL그룹 로고 화이트.svg
DL그룹
이해욱 45 26.7
19 (▲8) 파일:셀트리온 로고.svg 파일:셀트리온 로고 화이트.svg
셀트리온
서정진 8 25.6
20 (▼1) 파일:HMM CI.svg 파일:HMM CI.svg
HMM
HMM(주) 5 25.5
21 (▼1) 파일:중흥그룹 로고.svg 파일:중흥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흥그룹
정창선 53 24.9
22 (▲2) 파일:미래에셋 로고.svg 파일:미래에셋금융그룹 CI_White.svg
미래에셋금융그룹
박현주 30 23.2
23 (-) 파일:네이버 로고.svg
네이버
이해진 54 22.8
24 (▼3) 파일:현대백화점그룹 로고.svg
현대백화점그룹
정지선 27 22.1
25 (▲2) 파일:S-OIL 로고.svg
S-OIL
(주)S-OIL 2 21.6
26 (▼3) 파일:부영그룹 로고.svg
부영그룹
이중근 21 21.0
27 (▲18) 파일:쿠팡 로고.svg
쿠팡
쿠팡(주) 13 17.6
28 (▼1)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svg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 화이트.svg
금호아시아나
박삼구 24 17.3
29 (▼1) 파일:하림 로고.svg
하림그룹
김홍국 45 17.3
30 (▲1) 파일:SM그룹 CI.svg 파일:SM그룹 CI_화이트 폰트.svg
SM그룹
우오현 58 17.0
31 (▼1) 파일:HDC 로고.svg
HDC
정몽규 35 16.9
32 (▼3) 파일:영풍그룹 로고.svg
영풍그룹
장형진 28 16.8
33 (▼1) 파일:효성그룹 신로고.svg 파일:효성그룹 신로고 화이트.svg
효성그룹
조현준 57 16.5
34 (-) 파일:호반건설 CI.svg 파일:호반건설 CI_white.svg
호반그룹
김상열 39 16.0
35 (▲13) 파일:DB그룹 로고.svg
DB그룹
김준기 25 15.7
36 (▼1) 파일:KT&G 로고.svg
KT&G
(주)KT&G 14 14.9
37 (▼1) 파일:KCC 로고.svg
KCC그룹
정몽진 14 14.2
38 (▼1) 파일:장금상선 로고.svg
장금상선
정태순 27 14.2
39 (▲13) 파일:교보생명 로고.svg
교보생명
신창재 14 13.2
40 (▼1) 파일:코오롱그룹 로고.svg
코오롱
이웅열 48 13.0
41 (▼3) 파일:OCI 로고.svg
OCI그룹
이우현 24 12.7
42 (▼2) 파일:태영 심볼.svg
태영그룹
윤세영 82 12.3
43 (-) 파일:넥슨 로고.svg 파일:넥슨 로고 다크.svg
넥슨
유정현 19 11.9
44 (▼2) 파일:세아그룹 로고.svg
세아그룹
이순형 26 11.7
45 (▼1) 파일:LX그룹 로고.svg
LX그룹
구본준 17 11.3
46 (▼5) 파일:넷마블 로고.svg 파일:넷마블 로고 화이트.svg
넷마블
방준혁 35 11.3
47 (▲15) 파일:에코프로 로고.svg
에코프로
이동채 23 11.2
48 (▼3) 파일:이랜드그룹 로고.svg
이랜드그룹
박성수 31 10.9
공시대상 기업집단(준대기업)
49 (▼3) 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svg 파일:한국앤컴퍼니 로고 화이트.svg
한국앤컴퍼니
조양래 24 10.3
50 (▲1) 파일:태광산업 로고.svg
태광그룹
이호진 20 9.6
51 (▼2)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svg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 화이트.svg
금호석유화학그룹
박찬구 14 9.5
52 (▼2) 파일:다우키움그룹 로고.svg
다우키움그룹
김익래 48 9.5
53 (▲6) 파일:두나무 로고.svg
두나무
두나무(주) 12 9.4
54 (▼6) 파일:삼천리그룹 로고.svg
삼천리그룹
이만득 47 9.4
55 (▼2) 파일:동원그룹 로고.svg
동원그룹
김남정 26 9.3
56 (▼2) 파일:KG그룹 로고.svg 파일:KG그룹 로고 컬러 화이트.svg
KG그룹
곽재선 34 9.1
57 (▼2) 파일:HL그룹 CI.svg 파일:HL그룹 CI_white.svg
HL그룹
정몽원 13 8.8
58 (▼2) 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svg 파일:제너럴 모터스 로고.svg
한국GM
한국지엠(주) 3 8.8
59 (▼2)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svg 파일:아모레퍼시픽 로고 화이트.svg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13 8.3
60 (▼2) 파일:대방건설 CI.svg 파일:대방건설 CI 화이트.svg
대방건설
구교운 42 8.1
61 (-) 파일:한국항공우주산업 CI_가로.svg 파일:한국항공우주산업 CI_가로.svg
한국항공우주산업
(주)한국항공우주산업 42 8.1
62 (▲1) 파일:애경그룹 로고.svg
애경그룹
장영신 31 7.1
63 (▲2) 파일:엠디엠 CI.svg 파일:엠디엠 CI 화이트.svg
엠디엠
문주현 15 7.0
64 (▲3) 파일:크래프톤 로고.svg 파일:크래프톤 로고 화이트.svg
크래프톤
장병규 8 6.9
65 (▲1) 파일:삼양그룹 로고(2024).svg 파일:삼양그룹 로고 화이트(2024).svg
삼양그룹
김윤 13 6.9
66 (▲3) 파일:보성그룹 로고.svg
보성그룹
이기승 65 6.8
67 (▼4) 파일:동국제강그룹 CI.svg 파일:동국제강그룹 CI 화이트.svg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12 6.7
68 재지정 파일:현대해상 CI.svg 파일:현대해상 CI 화이트.svg
현대해상
정몽윤 13 6.7
69 (▼10) 파일:중앙그룹 로고.svg 파일:중앙그룹 로고 화이트.svg
중앙그룹
홍석현 54 6.6
70 (-) 파일:글로벌세아 CI.svg
글로벌세아그룹
김웅기 20 6.3
71 (▼3) 파일:아이에스동서 CI.svg
아이에스동서
권혁운 36 6.3
72 (▼5) 파일:유진그룹 로고.svg
유진그룹
유경선 60 6.2
73 신규 파일:영원무역 로고.svg
영원무역
성기학 50 6.0
74 (▼2) 파일:DN오토모티브 CI.svg
DN그룹
김상헌 8 5.8
75 (▼7) 파일:고려해운 로고.svg
고려해운
박정석 24 5.8
76 (▼3) 파일:OK금융그룹 로고.svg 파일:OK금융그룹 로고(화이트).svg
OK금융그룹
최윤 16 5.8
77 (▲4) 파일:BGF그룹 로고.svg
BGF그룹
홍석조 18 5.8
78 신규 파일:대신증권 로고.svg
대신증권
양홍석 117 5.7
79 (▼4) 파일:하이트진로 CI.svg
하이트진로그룹
박문덕 11 5.5
80 (▼2) 파일:농심그룹 로고.svg 파일:농심그룹 로고 화이트.svg
농심그룹
신동원 23 5.4
81 (▼10) 파일:신영그룹 CI.svg 파일:신영그룹 CI 화이트.svg
신영그룹
정춘보 33 5.3
82 (▼6) 파일:한솔그룹 로고.svg 파일:한솔그룹 로고 화이트.svg
한솔그룹
조동길 21 5.3
83 (▼3) 파일:반도건설 로고.svg 파일:반도건설 로고 화이트.svg
반도건설
권홍사 18 5.3
84 (▼5) 파일:삼표그룹 로고.svg
삼표그룹
정도원 33 5.2
85 신규 파일:HYBE 로고.svg 파일:HYBE 로고 화이트.svg
HYBE
방시혁 15 5.2
86 신규 파일:대명소노그룹 CI.svg 파일:대명소노그룹 CI 화이트.svg
대명소노그룹
박춘희 23 5.1
87 신규 파일:원익 로고.svg
원익
이용한 54 5.0
88 신규 파일:파라다이스 그룹 로고.svg
파라다이스 그룹
전필립 14 5.0
※ 2024년 기준
※ 동일인이 법인인 기업: (주)포스코홀딩스, 농업협동조합중앙회, (주)케이티, 에이치엠엠(주), (주)케이티앤지, 한국항공우주산업(주) 6개사
※ 동일인이 외국인인 기업: 에쓰-오일(주), 오씨아이(주), 쿠팡(주), 한국지엠(주) 4개사
※ 다음 업종의 기업 중에서 중소기업법에서 정하는 중소기업의 규모보다 더 큰 기업(가. 금융업, 나. 보험 및 연금업, 다. 금융 및 보험 관련 서비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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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금호아시아나
KUMHO ASIANA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svg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 화이트.svg
국문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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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로고
<colbgcolor=#454a51>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46년 4월 7일([age(1946-04-07)]주년)
해체일 2020년 12월 8일(사실상 해체)
2024년 12월 12일(완전 해체)
그룹 상태 해체[1]
창업주 박인천
회장 박삼구(2010~2019)
경영진 이원태(회장 직무 대행 겸 부회장)
박홍석[2](부회장)
규모 대기업[3]
주요 사업 운송업, 건설업 등
직원 수 24,000명(2019)
매출액 1조 5,972억 원(2019)
영업 이익 552억 4,000만 원(2019)
순이익 458억 7,000만 원(2019)
본사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26 센트로폴리스 A동 20층~26층 (공평동)
관련 링크
금호아시아나그룹 홈페이지(웹 아카이브) 파일:금호아시아나 윙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4]

1. 개요2. 역사
2.1. 부활 가능성
3. 본사
3.1. 구 사옥
4. 기업 정신5. 슬로건6. 사가7. 역대 임원8. 계열사 목록
8.1. 현존8.2. 분가/분리한 기업8.3. 해산/매각8.4. 무관한 회사
9. 오너 일가
9.1. 지역색
10. 여담
10.1. 문화 예술 영재 육성 지원
11. 관련 문헌12.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파일:Kumho Asiana Group.jpg
파일:129811_118072_5818.jpg
건재하던 시절 금호아시아나의 사업 포트폴리오[5]
금호고속을 모태로 한 1946년 4월 7일부터 2024년 12월 12일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대기업 집단이다. 금호고속 금호건설, 아시아나항공이 주요 계열사였으며, 이 중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인수되었다.

해체 직전 본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종로타워 옆에 있다. 2008년에 광화문 인근의 신문로1가에 사옥을 신축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나, 그룹이 위기에 빠진 2019년에 건물을 매각하고 종각역 인근 종로타워 옆의 오피스 빌딩인 센트로폴리스로 이전하여 고층부 7개층을 임차해서 사용 중이다. 기존 새문안로 사옥은 현재의 콘코디언 빌딩이다.

한진그룹처럼 운송업이 시초인 기업집단이었으며, 고속버스 운송사업으로 성장하여 민항사도 거느렸다는 점도 비슷하다. 금호그룹은 1946년에 일제 경찰 간부 출신인 박인천 광주택시를 창업하면서 시작되었고, 금호(錦湖)는 창업주 박인천의 호이다. 광주택시의 후신인 금호고속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2세 경영에 돌입하면서 건설기업인 금호건설, 석유화학기업인 금호석유화학, 그리고 금호타이어 등의 계열사를 추가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특히 제5공화국 시절에 제2민항사 사업자로 선정, 1988년에 아시아나항공을 설립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2002년 박인천의 3남이었던 박삼구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후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한데 이어 2008년 대한통운까지 시세보다 비싼 값에 인수하면서 한때 재계 7위의 자리까지 올라 재계 10위 안에 드는 재벌 그룹으로 성장했으나, 무리한 차입 등으로 끌어모은 자금을 포함하여 10조 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부은 후유증으로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되어 그룹이 부실화되었고,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박삼구 회장이 전문경영인 자격으로 복귀하였으나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무리하게 인수했던 대우건설, 대한통운은 물론이고 금호렌터카, 금호생명, 금호종합금융, 서울고속버스터미널,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들까지 제살깎기로 매각해야 했다. 또 경영 실패의 여파로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게 되어 불만을 표시한 박찬구는 석유화학 부문의 계열사들을 갖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을 박차고 나가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계열 분리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박삼구 회장은 무리한 그룹 재건을 추진했지만 금호타이어는 재인수에 실패하여 중국 더블스타에 넘어갔고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공급부족 사태가 초래되기도 했으며, 이후 회계보고서 파문으로 채권단에 의해 결국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되어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에는 사실상 금호고속과 금호건설만 남게 되었다.

2020년 12월 8일 그룹 내 컨트롤 타워인 전략경영실을 해체했다. 이 결정으로 그룹 경영을 끝내고 사실상 그룹을 해체한 셈이다.

국제그룹[6], 대우그룹, 쌍용그룹, 기아그룹, 한보그룹 등과 더불어 한때 재계 10위권 안에 들었다가 몰락한 몇 안되는 대기업 해체 사례, 즉 대마불사의 반례이다. 국제그룹과 대우그룹 해체에는 정치권의 결정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대우그룹, 쌍용그룹, 기아그룹은 IMF의 폭풍을 직격탄으로 맞은 사례인 반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오로지 순수하게 오너의 경영 실패만으로 그룹이 몰락하게 된 사례이다. 다만 대우그룹도 역시 오너 경영 실패도 해당되며, IMF 당시에 쌍용자동차를 인수하지 않고 쓸데없는 자회사를 매각 및 통폐합 했더라면 지금도 현존해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IMF때 해체된 재벌 대부분이 문어발식 기업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성용은 금호그룹 경영 당시(1984~1996년)에 "이 기업은 무너뜨릴려 해도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동양그룹, 동부그룹(현 DB그룹), 웅진그룹, 동원그룹 등 크지 않은 재벌도 위기를 거치며 중견기업으로 축소되거나 해체되기도 했다.

건재하던 시절엔 금호석유화학그룹, 대상그룹, 교보생명, 하림그룹, 부영그룹, SM그룹. 중흥그룹, 호반그룹 등과 더불어 호남 지역을 대표하는 재벌이다.

2.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금호아시아나/역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1. 부활 가능성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그렇기에 HDC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하다가 취소한 이후에도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금호건설 상태로 그룹을 유지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회사에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추진한 것이다.

애초에 사퇴했다가 전문경영인 신분으로 복귀한 박삼구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전성기 시절 주요 계열사인 금호타이어, 금호렌터카, 금호생명 등을 무리하게 되찾으려다가 오히려 논란만 키우고 회장직에서 물러나 구속까지 됐다는 점에서 박삼구 본인이나 아들 박세창 등이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과거 금호아시아나그룹 핵심 계열사였던 회사들을 되찾으려는 시도는 현재의 재무상황 상 불가능하고 설령 금호고속과 금호건설이 사업이 갑자기 잘 되서 그런 여력이 생겨 그걸 시도했다간 2010년대 박삼구의 선례 때문에 그룹 해체 이후 그나마 박삼구 일가에게 남은 금호고속, 금호건설의 경영권마저 채권단에게 뺏기고 박삼구 일가가 범금호가 회사 전체에 영원히 발도 못 들이게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훗날 박세창 체제에서 아버지가 그룹 전체를 박살냈을때와 다르게 내실을 다지면서 재정적으로 무리없는 선에서 신사업 진출이나 타 기업 인수는 문제없이 할 수 있겠지만 우선 남아있는 두 계열사 먼저 살려놓아야 하는 등 제 코가 석자인 상황이고, 박세창 부회장 또한 아버지가 저지른 실수를 곁에서 보았던 입장이며 또한 아버지의 경영 철학과는 완전히 반대인 인물이라 두 번의 실수는 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3. 본사

파일:센트로폴리스금호.jpg
센트로폴리스 A동

현재 종로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 A동 7개층(20층~26층)을 임차해서 본사로 사용하고 있다. 자금난에 빠진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자금 조성을 위해 기존 신문로 사옥 건물을 2018년 5월 도이치자산운용에 4,180억 원에 매각하였고 2019년 1월 종각역 부근의 센트로폴리스 A동으로 이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아시아나IDT 등 항공 계열사들은 현재 대한항공 본사가 있는 공항동으로 이전하는 계획이 되어있다. 더불어 그룹의 규모가 크게 축소되는만큼 금호건설의 본사도 이전할 가능성도 있다.

3.1. 구 사옥

파일:신문로 크레센도.png
금호아시아나 퍼스트타워
금호그룹은 1980년대에 처음 서울특별시로 상경해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 계기가 바로 1988년 아시아나항공 설립이다. 회현동 한국무역회관 건물을 사들여서 ‘아시아나빌딩’으로 사용한 것이 금호그룹의 첫 사옥으로, 금호그룹의 규모가 커지면서 광화문 인근 신문로에 사옥을 새로 지었고 1999년 입주했다. 회현동 사옥은 당시 그룹의 구조조정 일환으로 본사 이전 후 매각되었다.

그러다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사세가 더욱 커지게 되면서 2006년 바로 건너편에 신사옥을 짓게 된다.
파일:신문로 콘코디언.jpg
금호아시아나 메인타워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소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신사옥이자 본관이었다. ‘금호아시아나 메인타워’로 불렸지만 매각 이후 ‘ 콘코디언 빌딩’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기존 사옥(크레센도) 바로 건너편에 있으며 2008년 9월부터 2019년 1월까지 본사로 사용했다.[8] 특징으로 폭 23m, 높이 91.9m 규모의 LED 미디어파사드로 외벽을 장식하였다.[9]

여담으로 박삼구 회장이 전반적인 디자인, 설계에도 관여했을만큼 상당한 애착을 가졌던 건물이라고 한다. 준공식 당시에도 “500년 영속 기업의 터전이 됐으면 한다”며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현금 마련을 위해 입주한지 10년만인 2018년 5월 도이치자산운용에 4,180억 원에 매각되었다. 이후 금호그룹은 광화문과 종로 인근에서 새 본사 건물을 알아보았는데, 구 사옥인 당시 대우건설 빌딩(현 크레센도 빌딩)으로 들어가는 것을 고려하다가 2019년 1월, 신축된 센트로폴리스 A동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에 이어 대한통운까지 인수했던 최전성기에 입주했지만 이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모두 매각하였고 오랜 계열사였던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매각과 형제의 난으로 인한 금호석유화학 계열분리, 유동성 위기로 인한 금호타이어, 금호산업 워크아웃까지 겪게 되면서 결국 입주 10년만에 이 건물까지 매각하게 되었다.[10] 참고로 사옥 바로 옆에 흥국생명 본사가 있는데, 여기엔 그 유명한 조너선 브롭스키의 조각상 "망치질 하는 사람(Hammering Man)"이 있다. 옆에 있는 금호아시아나는 이것 때문에 풍수적 문제를 지적받았고 풍수적 이유 때문에 그룹에 위기가 닥쳤다는 의견이 있다.

4. 기업 정신

5. 슬로건

6. 사가

보라 눈부신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우리 젊음은 여기에 새로움을 만든다
고객을 들어라 저높은 곳으로 미지의 세계로
무한한 지혜와 끝없는 용기로 우리 꿈 만들자
나가자 금호 우리의 꿈 우리미래
나가자 금호 온 세상에 펼쳐가자

7. 역대 임원

8. 계열사 목록

8.1. 현존

8.2. 분가/분리한 기업

8.3. 해산/매각

8.4. 무관한 회사

하기 회사의 사명은 한글과 영문(KUMHO)은 동일하나 錦湖가 아닌 다른 한자를 쓰거나 애초 금호와 전혀 관련이 없다. 삼성과 현대처럼 금호 역시 생각보다 흔히 쓰이는 사명 중 하나다.

9. 오너 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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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지역색

금호그룹의 인식과는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호남을 연고로 하는 향토기업으로 인식되는데, 금호그룹이 전라도를 기반으로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불변의 사실이 맞다. 금호그룹의 모체인 광주여객을 세운 박인천 창업주는 전라남도 나주시 출신이었고 생전에 광주에서 살면서 광주를 지역 기반으로 삼아 사업을 벌였으며 훗날 금호의 사업을 이어받은 아들들인 박성용, 박정구, 박삼구, 박찬구, 박종구 등 아들들도 모두 광주에서 나고 자란[21] 인물들이었다.

더구나 1960년대까지 지방의 흔한 버스 회사였던 광주고속은 1971년 호남고속도로의 개통 후 전라도의 고속버스 노선을 1위로 과점하는데 성공하면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는 고향에 대한 애착과 결집력이 유난히 강했던 전라도 사람들의 절대적인 성원이 큰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거기에 전라도는 경상도에 비해 여객철도편이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버스를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환경도 겹쳤다. 전라도에서 어렵게 상경해서 근근히 서울살이를 이어가던 중 고향 전라도에서 올라온 광주고속의 버스를 보고 반가움과 그리움의 눈물을 훔친 뒤 기사들에게 "이 버스 전라도에서 온 것이 맞소?"라고 물어봤다는 이들의 일화가 존재할 정도. 그리고 그들은 고향으로 내려갈 때 무조건 광주고속을 이용했으며, 주변인들에게도 광주고속을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광주고속이 급성장하던 1970~1980년대 호남에 대한 주류 사회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소외와 핍박이 극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광주고속을 비롯한 금호그룹은 그야말로 해태 타이거즈와 함께 전라도 사람들의 한을 달래 주고 자존심을 지켜준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전라도 사람들은 본인들이 어려웠던 시절 금호라는 브랜드를 키워 줬지만 오히려 전라도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성장한 금호그룹은 전라도 지역 사회를 향해 미온적으로 지원했고, 호남지역 출신 인재 채용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금호를 사랑했던 전라도 사람들이 "다른 기업이 그러면 몰라도 금호가 우리한테 그러면 안된다"며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룹의 모태가 전라도에서 시작되어 성장한 연유로 전라도 기업으로 분류되지만, 정작 금호그룹 측에서는 전라도 기업만으로 인식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의 규모 자체가 대단히 커져서 향토기업이란 타이틀에 큰 의미를 두기 보다는 고르게 시선을 분배해야 할 필요성도 있기 때문이다.[22] 70년대까지만 해도 전체 임원중 80~90%가 전라도 출신이었으나 지금은 전라도 출신과 아닌 임원의 비율이 5대5 수준의 균형을 갖췄다. 또한 재계 서열 기준으로 보자면 전라도를 대표하는 기업집단은 이제 중흥그룹 혹은 하림그룹이다.
  1. 이제는 단순히 광주택시로 시작했다는 이유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전라도 기업으로 보기에는, 현재 그룹의 매출과 채용 규모가 지역에 큰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
  2. 무엇보다 지역 사회에서 기여할만한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전라도에서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하는 기업들은 광주광역시의 기아 AutoLand 광주, 완주 봉동의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군산의 타타대우상용차, 익산의 하림 공장 내지 여수국가산업단지 내에 있는 GS칼텍스, 금호석유화학, 여천NCC, DL이앤씨 등이다. 본사가 광주에 있는 금호타이어도 전라도 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지만, 금호타이어는 2018년도 이후로 금호아시아나의 품에서 떠나 중국의 더블스타로 경영권이 넘어가 버려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룹과의 연관성이 없는 남의 기업이 되었다. 또한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제5공화국 시절 서울항공으로 시작하여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했기 때문에 전라도와 연관이 적다. 그래도 그나마 첫 국내선 노선은 김포-광주로 시작하긴 했지만.
  3. 그리고 운수회사 시절, 사세를 확장할 때 9~12개월씩 임금을 체불하고 다시 그 돈과 융자금을 합해 신규계열사(예, 삼양타이어)[23]를 설립하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인심을 많이 잃었다.[24]

상기의 내용은 그룹이 살아 있었을 때 이야기이며, 현재는 사실상 그룹이 해체되고 이제 남은건 고속 건설뿐이니 한때 전국구를 넘어 타이어 항공을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진출한 이력이 있었던 재벌그룹이 다시 중견 규모로 쪼그라들게 되면서 전라도로 귀환하게 되어 향토기업 타이틀이 다시 자연스레 부여된 셈.

이때문에 전라도에서는 투자를 바라는 경우가 많지만, 금호그룹은 전라도의 스포츠 구단에 투자하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고 투자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우그룹이 야구장(무등경기장) 건설에 가장 많은 기금을 쾌척해 지역 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에는 소비재에 대한 광고 효과를 노리고 창단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금호에는 당시 그런 게 없었다. 우선 고속버스 여객기의 경우 시간대와 노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의 경우 입지 조건을 고려하기 때문에 소비재에 비해 고객의 충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소비재라 할 수 있는 타이어의 경우 1980년대에 자가용 보유량이 낮았음을 생각하면 썩 효과적이지 못하며, 금호전자의 경우 1980년에 사업을 이미 접었기 때문에 프로야구 논의가 있던 1981년 시점에서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그룹 시스템이 아직 탄탄하지 못한 여건으로 인해 박인천 - 박성용 부자는 프로 야구단 창단에 반대했다.[25]

결국 삼양사, 교보생명에도 거절당한 전라도의 프로야구단은 해태제과에 낙점되면서 해태 타이거즈가 창단한 것이다. 이후 해태 타이거즈를 매각할 당시에도 금호그룹에선 전혀 나서지 않았고, 대신 광주광역시에 제조 공장[26]을 둔 기아(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인수해서 2001년 7월부터 KIA 타이거즈가 되었다. 만에 하나 금호 타이거즈가 되었어도 금호의 재무 상황이 나빠지는 모습을 보면 주인이 또 바뀔 운명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3년에 서울 연고의 프로축구단을 창단하려했으나 광주, 전남의 반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창업주의 5남인 박종구가 지역색이 다른 이명박 정부 하에서 교육과학기술부(현재 대한민국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을 지내고, 자회사인 아시아나항공 에어부산을 만드는 등 그룹 차원에서는 적극적인 듯. 이 때문에 전라도 연고의 프로 스포츠 관련해 그룹 측의 지원은 지역민들의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다.

다만 스포츠 문제의 경우엔 다른 이유도 있긴 하다. 본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박인천 회장부터 현재까지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예술 분야에 대한 투자 및 인재 육성에 노력을 기울인 대신 상대적으로 프로 스포츠 분야에는 관심이 적은 편이었다. 한때 금호생명에서 WKBL 팀을 운영했던 게 거의 전부였고, 이마저도 한국산업은행에 인수되어 운영하다가 OK저축은행의 위탁 운영을 거쳐서 BNK금융지주로 매각되어 부산 BNK 썸이 되면서 이전 역사를 가져가지 않고 완전히 새로 출발했다. 그나마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금호타이어 KIA 타이거즈의 유니폼 스폰서로 참여한 바 있고, 1995년 광주비엔날레 설립 시 30억원을 후원함과 더불어 그 이후에도 광주비엔날레를 꾸준히 지원해 주었다. 2012 여수 엑스포,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의 공식 후원사로 참여한 바 있으며, 그 훨씬 이전인 1990년대 말에는 일본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 중이였던 투수 선동열에게 3년간 아시아나항공 일등석 무료 항공권을 제공해 준 바가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학교법인인 죽호학원에 소속된 광주 금호고등학교(운암동 소재)는 광주 FC의 U-18 유소년클럽이다.

10. 여담

10.1. 문화 예술 영재 육성 지원

문화 예술 분야 중에서도 특히 클래식 분야에 대한 후원은 상당한 수준이며 체계적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문호 박성용 회장이 상당한 수준의 클래식 애호가였던 것이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는 영재 육성에 관심이 많았기에,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 있는 한국인 신예 음악가 치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후원을 받지 않은 이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서울의 옛날 본사 건물[28]과 광주 서구 광천동 유스퀘어 안, 그리고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29] 금호아트홀이라는 실내악 홀을 만들어서 싼 값에 좋은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매년 영재들을 심사해서 이곳에서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그 외에 각종 지원을 한다. 광화문 금호아트홀에는 심지어 박성용 회장이 생전에 매번 앉던 좌석이 따로 있다. 치우쳐 있는 곳이라 이른바 VIP석도 아니고 오히려 싸게 팔 가능성이 높은 자리지만 연주자는 잘 볼 수 있어서 매니아들이 좋아할 만한 자리이다. 그러나 광화문 금호아트홀은 2019년 4월 30일부로 폐관 예정으로, 클래식 뮤지션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다만 연세대 금호아트홀 건립 때는 그룹이 부실로 휘청거리고 있는데, 개인의 명예를 위해 모교에 수십억을 투자하는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인식도 많았다.

또한 워낙 몸값이 비싸서 수지타산이 안 맞아 대한민국에는 못 데려오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켜 정기적으로 오게 만든 것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이었다. 티켓 값이 최고 45만 원이어서 올 때마다 욕도 많이 먹고 있지만 워낙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이니 그래도 표는 다 나간다. 문제는 개런티가 워낙 세서, 그래도 약간 적자가 나기에, 오죽했으면 박성용 회장 장례식에 재계보다 음악인들이 조문을 더 많이 왔을 정도였다.[30]

11. 관련 문헌

12. 둘러보기

범금호가
파일:금호석유화학그룹 로고.svg 파일:금호아시아나 로고.svg



[1] 2020년 12월 8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실이 해체되었다. 이로 인해 남은 회사인 금호고속 금호건설 모두 각자 독자적인 경영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룹으로 보기 힘들고, 아시아나항공이 대한항공에 인수되어 한진그룹에 편입됨에 따라 그룹은 해체되었다. [2] 현재 박삼구 전 회장의 계열사 부당 지원 사건으로 인해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 아시아나항공의 매각이 완료되면, 대기업의 척도로 불리는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서 제외되어 기업 규모가 변경될 예정이다. [4] 2018년 1월 이후로 업로드가 멈췄다. 이는 2018년 아시아나 기내식 공급부족 사건 + 박삼구 기쁨조 논란 발생 이후 그런 것이며 2020년 금호아시아나가 해체 수순을 밟게 되면서 더 이상 업로드할 이유가 없어진 것. [5] 사진 왼편부터 금호건설(사진은 대표작인 아부다비 국제공항 관제탑), 아시아나항공, 금호고속, 에어부산, 에어서울. [6] 외환 위기로 해체된 대우, 쌍용, 기아 등의 그룹과는 달리 당시 정권에 밉보여서 직접적으로 해체된 케이스이다. [7] 아시아나항공의 서울 분사무실이다. 일부 부서만 있을 뿐, 진짜 본사는 김포국제공항 인근 오쇠동 아시아나타운에 있다. [8] 참고로 금호그룹 계열사가 방을 뺀 구사옥은 서울역 대우센터빌딩 매각 후 사무실이 필요했던 대우건설이 들어와 사옥으로 사용하다가 2019년에 을지로4가 써밋타워로 이전했다. [9] 사진에 보이는 쪽이 아니라 뒤쪽이다. 그래서 해가 진 후 서울광장에서 광화문 방향을 바라보면 미디어파사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여담으로 잠깐이나마 금호그룹의 손에 있었던 서울스퀘어(구 대우센터빌딩)에도 리모델링 후 미디어파사드가 생겼다. [10] 저 건물은 금호건설이 지은 것으로 매각 당시 콜옵션을 행사해서 다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1] 금호고속관광이 그룹 내 3개 법인(서울, 경기, 전남)이 있던 시절, 편의상 각 법인을 금호고속관광(지역명)과 같이 표기했으나, 현재 그룹 내에는 경기 법인만 남아있어 기업공시 등의 문서에 지역명 표기 없이 금호고속관광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 [12] 출처: http://www.mediasr.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946 [13] 과거 금호타이어 통근버스로 운영되기도 하였다. [14] 그의 호를 딴 금파공업고등학교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다. 바로 옆에 금호고, 금호중앙여고, 금호중앙중이 있다. [15] 재벌 가문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엔지니어·발명가 출신 경영자이다.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전자공학과(1978학번)에 입학해 학사· 석사·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16] 과거 아시아나항공의 사업보고서 등에 기업집단 자료에 한국윤활유공업(주), 금호전자공업(주)과 함께 1973년에 설립된 것으로 명시되었다. [17] 관련 자료, 현 광우고속 기업정보 [18] 금호고속으로 합병됐기에 이 회사와 관련이 없다. 코오롱고속 또한 코오롱그룹이 아니라 이미 떨어져 나간 방계 회사였다. [19] 충분히 국내 대기업에 매각할 수 있었음에도 채권단과 산업은행은 대중국 수출과 외교 강화를 이유로 60여 년의 역사와 기술력을 갖춘 금호타이어를 중국에 바친 꼴이 되었다. [20] 2011년 인수전 막바지에는 친족간인 CJ그룹 삼성그룹마저 참여하면서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급의 치열한 인수전을 보여주었다. CJ에서 삼성증권에 인수 자문을 맡겼었는데, 갑자기 삼성SDS에서 포스코와 협력하여 인수전에 뛰어들더니 삼성증권은 급기야 인수자문을 철회해버렸다. 삼성증권이 가진 CJ의 정보는 어디로 갔을까? 때문에 CJ쪽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었고, 시장에서는 포스코+삼성의 승리를 기정사실화 했는데, CJ쪽이 분노파워로 가격을 무려 5,000억 원씩이나 높게 써내는 바람에 인수에 성공했다. [21] 특히 장남 박성용 전 회장부터 사남 박찬구 회장까지는 전부 광주의 최고 명문 중학교였던 광주서중학교를 졸업했다. [22] 사실 대표적인 전라도 기업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게 오늘날 전북특별자치도에선 금호의 영향력이 광주/전남에 비해 많이 약한 편이다. [23] 금호타이어의 전신. [24] 동종 업자였던 한진그룹의 조씨 일가 역시 자사 직원들을 그다지 후대하지 않았지만, 이쪽은 주로 미군들을 상대하며 성장했고 결정적으로 사세를 확장한 것도 월남전 때 현지 미군 및 파월한국군 사령부의 지원 하에 일을 맡았던 데에 힘입은 것이었다. 또한 전쟁 통에 중간중간 미군 물자를 전용하는 것도 가능했던만큼 굳이 직원들 월급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되었던 것. 당시는 군에서 귀국 box나 손망실 처리 등으로 미군이 지원해준 양질의 물자들을 국내에 비공식적으로 반입하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부분까지는 파월사령부에서 큰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였다. [25] 더구나 박성용 회장은 스포츠보다 음악에 관심이 더 많았다. 금호아트홀에 본인이 매번 고정적으로 앉는 자리가 있을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은 클덕이었다. [26] 본래 아시아자동차 공장이었다. [27] 이 폰트는 2000년부터 2009년까지(타는 문 옆의 도시형버스 (L)폰트는 2013년까지 적용) 현대 슈퍼 에어로시티의 후면에 사용되었던 폰트였다. [28] 위에서 설명한 인수합병시 하필 이 건물을 대우건설에 배정했고 그 결과 현재는 이미 남남이 되어버린 대우건설의 본사가 되었다. 음향에 신경써서 워낙 실내악 전용 공연장으로 제대로 만들어 놨기 때문에 대우건설 쪽에서도 방빼를 시전하기 어려웠고, 덕분에 대우건설 본사인데 3층만 금호아시아나가 쓰는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고 있다. 참고로 대우건설은 원래 서울역 앞 대우빌딩을 가지고 있었고, 금호그룹에 인수된 이후에도 가지고 있었으나, 금호그룹이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서 대우빌딩도 모건 스탠리에 팔아치웠고, 대신 금호그룹 사옥을 대우건설에서 받아왔다. 한국산업은행에 팔릴 때에도 사옥을 고스란히 가져왔다. 여튼 구 대우그룹의 자존심 같았던 대우빌딩을 모건 스텐리에 빼앗긴 것 때문에 대우건설 직원들이 금호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를 바득바득 간다고 한다. [29] 이쪽은 현재 그룹 회장인 박삼구가 연세대학교 동문회장이라 기부금을 출연해서 만들었다. 광화문에 있던 원래 금호아트홀과 구별을 위해 이쪽은 금호아트홀 연세라고 부른다. [30] 스포츠 캐스터로 유명한 임용수가 바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연이 있다. 성악과를 졸업한 후 1993년 금호그룹에 입사했다. 당시 맡은 직책은 금호그룹의 사회 공헌 사업 중 하나인 클래식 음악 후원 재단의 직원으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