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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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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 초대 회장 김홍국 金弘國 | Kim Hong-g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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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f0010> 출생 | 1957년 6월 27일 ([age(1957-06-27)]세) |
전라북도 익산군 (現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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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기업인 |
종교 | 개신교( 예장통합)[1] |
현직 |
하림그룹 회장 하림지주 대표이사 회장 주식회사 하림 대표이사 회장 팬오션 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재단법인 하림재단 이사장 국민통합위원회 경제·계층분과위원 재단법인 한국기원 이사 |
학력 |
이리농림고등학교[2] (졸업) 호원대학교 (경영학 / 학사)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 석사) 원광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명예 박사) 전북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박사 수료) |
가족 |
아버지 김주환 어머니 이완경 형 김기만, 김재관 누나 김기옥, 김홍래 남동생 김홍재 배우자 오수정 장녀 김주영 장남 김준영 차녀 김헌영 삼녀 김지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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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하림그룹의 창업주.2. 생애
11살인 국민학교(現 초등학교) 4학년에 외할머니로부터 병아리 열 마리를 선물받았다. 그때 받은 병아리 열 마리는 18세에 스스로 농장을 세워서 닭 5,000마리, 돼지 700마리가 되었으며[3] 그렇게 고등학교[4] 재학 중인 어린 나이에 사업자 등록도 했고 양계 사업을 비롯한 축산 사업을 시작한다. 직원들이 고등학생인 그의 결재를 받으러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교실 밖에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병아리를 키우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한다.1978년 3월에는 고향인 전라북도 익산시 황등면에서 종계사육장 황등농장을 세웠는데, 이 농장이 하림의 모체가 된다. 그러나, 그 후 몇 년만에 1982년 전국을 강타한 전염병으로 닭 값이 폭락하는 바람에 위기를 맞았다.[5] 어느 날 슈퍼마켓에서 진열된 소세지를 보고, 돼지 가격은 폭락했는데, 소세지 가격은 그대로인 걸 보고 1차 산업의 한계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상품의 질과 이윤창출을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사육, 가공, 유통을 수직계열화한 통합경영이라고 알려져 있다.
1986년 3월에는 하림식품을 설립했다. 1988년 8월에는 회사가 육계 계열화업체로 지정되었고, 1990년 10월 (주)하림이 설립되었다. 1997년 축구장 8개 크기의 현대식 육가공 공장을 지었으나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부도위기까지 몰린 그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에 투자 유치를 신청했고, IFC 실사팀이 한국을 방문하여 두 달간 심사를 진행한 결과 결국 국내 기업 최초로 투자를 유치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IFC는 경영자로서 김홍국의 자질과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IFC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하며, 국제금융기관이 인정한 기업인과 기업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큰 자산이 되었다.
2003년 공장이 화재로 전소되고, 조류독감까지 유행하는 위기를 맞았다. 이때 "내 인생이 끝났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국 또 다시 위기를 극복했다. 2014년에는 그 동안 미국이 한국 양계농장의 비위생적인 환경을 문제삼아 수입을 금지했던 삼계탕을 미국의 엄격한 식품위생관리 기준을 통과하면서 안전성을 인정받아 삼계탕 미국 수출에 성공했다.
2015년 곡물유통분야로의 사업확장을 위해 해운선사이자 벌크선사 팬오션을 인수했다. 곡물유통분야는 카길과 같은 세계적인 곡물 메이저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으로 이들의 암묵적 동의없이는 사실상 진출이 불가능한 사업분야로서[6] 이들도 김홍국 개인에 대하여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그동안 사실상 100% 외국기업들에 의존하던 '식량안보'라고도 불리는 곡물유통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2020년에는 미국에서 곡물 수출터미널과 공급시설을 운영하는 미국 EGT사(社) 지분 36.25%를 인수해 2대 주주가 됐다.
2016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물류단지 조성을 위한 부지를 매입했다. 이곳에 화물차 전용도로는 전부 지하화하고, 물류시설, 업무시설, 공연장, 컨벤션센터, 백화점, 호텔 등이 결합된 복합물류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 동안 서울시와 용적률을 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2021년 감사원이 하림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환경영향평가, 교통영향평가, 물류단지계획 심의, 건축 인허가 등 행정절차가 남아 있어서 본격적인 사업 시작에는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가정간편식(HMR) 사업에 진출했다. 이를 위해 전용공장을 지었는데, 화장실에서 손 소독기를 사용 안하면 화장실 문이 안열리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2023년 컨테이너선사 HMM 인수전에서 하림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으나 본계약에서 입장 차이를 끝내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결렬됐다. 사실 벌크선사인 팬오션은 사료 운송에 이용되어 하림의 사업구조에 필요한 부분이나 컨테이너선사인 HMM은 하림이 굳이 무리해서 인수할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또한 HMM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해양진흥공사는 현재도 업무의 80% 이상이 HMM 관련 업무인 만큼 HMM 완전 매각 후에는 해체될 가능성이 있고, # 해양수산부도 산하 기관으로 수조 원의 예산을 운영하는 해양진흥공사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아서 물론 HMM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렇게 하림에서 인수한다고 해도 정부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만큼 하림 측도 더 이상 무리하지 않으면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그렇게 그가 병아리 열 마리로 시작했던 하림은 크게 성장하여, 2017년 자산 10조 원 이상의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고 2020년대 재계 서열 20위권에 이르는 대기업이 되었다.
3. 기타
- 이리농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및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경제학 공부를 하는 등 학문적 준비도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리농림고등학교의 전신은 1922년 개교한 이리농림학교이다. 이리농림학교는 2007년 전북대학교와 통합한 익산대학교의 모태가 된 학교이자 전북대의 모태가 된 이리농과대학 설립에도 큰 역할을 했으니 전북대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2022년 이리농림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식에서 전북대 경영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 형제들은 모두 공무원이였다고 한다.
- 익산 출신이기에 고등학생 때부터 황등비빔밥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
- 2005년에는 남북농업협력추진협의회 정책위원을 맡기도 하였다.
- 하림이라는 사명이 된 계기는 다음과 같다. 유튜브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 주에 있는 세계 19위 닭고기 전문업체 앨런패밀리푸드(현 앨런하림푸드)를 인수했는데, 이런 인연으로 2021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받았으나 코로나19로 인해 만나지 못했고, 2022년 바이든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만찬에 초청받아 만났다. 델라웨어 주지사도 방한했을 때 하림 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 201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각모가 모나코 왕실에서 경매로 나왔는데, 188만 4,000유로(당시 기준 약 26억원)에 낙찰받아 화제가 됐다. 나폴레옹이 패전 직전의 위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 마렝고 전투에서 썼던 이각모이다. 세계에서 나폴레옹 모자를 소유한 민간인은 단 2명 뿐인데, 그중 한 명이 됐다. 이에 대해 김 회장 측은 나폴레옹의 "불가능은 없다"는 도전 정신을 젊은이들이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구매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판교테크노밸리 하림그룹 계열사 NS홈쇼핑 별관 1층 나폴레옹 갤러리에 전시되어 언제든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 바둑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기원 이사도 맡고 있다.
- 김홍국의 아들은 올품이라는 닭고기 정육 기업을 운영하다가 한때 하림과 상관없는 사모펀드 운용사에 재직하였으나 현재는 NS홈쇼핑 사내이사로 경영에 복귀하였다. 다만 올품의 대주주 지위는 계속 유지하고 있다. 올품은 하림그룹 지주회사인 하림지주의 3대 주주이며, 하림지주의 2대 주주인 한국바이오텍(구 한국인베스트먼트)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하림지주의 개인 최대주주는 김홍국 회장이다.
- 2023년 11월 1일 식약처에 하림에서 시판 중인 생닭에서 벌레가 다량 발견 되었다는 신고가 접수 됐고 식품의약품안전처 확인 결과 딱정벌레의 유충으로 발표가 됐다. 이후 김홍국 하림 회장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는데 김홍국은 하림의 어린이식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생닭 벌레 논란에 대해 "친환경 농장은 소독약을 쓰지 못해 벌레가 많을 수 밖에 없다, 인체에 전혀 해가 없다. 앞으로 위생 관리 등을 잘하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친환경 농장에서 키워진 생닭의 특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식품에 나와서는 안될 이물질이 발견된 상황에서 "인체에 해가 없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적절치 않은 발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
[1]
이리신광교회 장로.
[2]
現
전북대학교. 1993년에 이리농림대학으로 개편되며 폐교되었다가 1998년 익산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했고 2008년에 전북대학교와 통합했다.
[3]
18살 당시에는 월 평균 300만 원을 벌었다고 한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20만 원이였다.
[4]
부모님은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을 원했으나, 본인은 농업계 고등학교 가기를 희망했고 반대가 심해서 허락을 받으려고 가출까지 했다. 결국 허락을 받고 농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졸업했다.
[5]
아마도 조류독감과 비슷한 것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닭은 한 마리라도 병에 걸리면 닭장이 전멸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6]
한국은 과거 곡물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정부가 삼성물산, 한진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형성하여 'aT그레인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어 곡물유통분야에 야심차게 도전했었으나 한 발짝도 못나가고 시작 2년만에 청산하였다. 곡물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곡물 메이저 기업들의 견제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