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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연기대상/1987~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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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7년2. 1988년3. 1989년4. 1990년5. 1991년6. 1992년7. 1993년8. 1994년9. 1995년10. 1996년11. 1997년12. 1998년13. 1999년14. 2000년

1. 1987년

1987년
1972년 TV 개국 11주년을 맞아 KBS TV 소속 연예인을 대상으로 공로를 치하하는 KBS TV 연예대상이 제정됐는데, 라디오 성우부문까지 확대한 KBS 연예대상[1]은 KBS 소속 전 연예인이 참여하는 송년대잔치와 함께 몇년동안 개최하다가 연예대상은 79년 이후 폐지되었다.

그 뒤에는 KBS가 70년대부터 방송사 내부에서 해온 방송대상[2]을 변형, 분기별로 하는 우수프로그램 평가상을 마련해 자체적으로 선정한 우수프로그램과 우수한 몇몇 제작진 및 연기자 등의 능력을 인정하다가 연예대상 폐지 이후 약 10년 만인 1987년에 KBS TV 소속 탤런트를 대상으로 시상하는 'KBS 탤런트 연기대상'이 다시 제정됐다.[3]

87년의 화제작이었던 노다지의 주연인 한혜숙 김진태는 특별상을 수상했고 8.15 특집극으로 작품성을 인정[4]받은 '사랑의 시작'의 김영애 욕망의 문[5]으로 스타덤에 오른 정한용이 최우수상을 받았다.[6]

87년 한해 인기를 얻으며 오랫동안 방영된 일일연속사극 사모곡에선 박혜숙이 우수상, 길용우가 인기상, 정보석 김혜수가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편, 85년 특채 이래 노다지 등에 출연하고 MC, DJ 등 KBS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한 배종옥은 인기상을 수상했다.

이 해, 6.25 특집극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성공작으로 평가받은 '환멸을 찾아서'에서 정신적 갈등의 내면연기를 펼친 임동진이 최초의 대상을 수상했다[7].

2. 1988년

1988년

88년 연기대상은 1부는 송년대잔치, 2부는 시상식을 진행했는데 화제의 대하드라마 토지에서 많은 수상자를 배출했다. 임이네를 연기한 박원숙은 최우수상[8], 조준구 역의 연규진이 우수상, 주연인 최수지 윤승원이 신인상을 수상했다.

또 다른 인기극이었던 '하늘아하늘아'에선 영조 역의 김성겸이 최우수상, 홍씨 모친의 연운경이 우수상, 혜경궁 홍씨 역의 하희라가 인기상을 받았다.

지방에서 인기를 끌었던 주말연속극 순심이에서 화제인물인 칠득이 역을 맡은 손영춘 역시 인기상을 받았다.

토지에서 윤씨부인 역을 맡은 반효정이 1988년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전 해 대상 수상자였던 임동진이 대상 시상자로 나오면서 이 해부터 전해 대상 수상자가 대상 시상자로 나오는 전통이 생겼다.

3. 198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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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심이 사랑의 굴레로 커리어 첫 연기 대상을 받았다.[9] 이듬해에는 MBC 연기대상에서 춤추는 가얏고로 대상, 2000년 SBS 연기대상에서 덕이로 대상 받으면서 현재까지 유일한 그랜드슬램 보유자.[10]

89 연기대상은 방송작가 프로듀서 방송담당기자들의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했는데 고두심이 순종적인 맏며느리 이미지에서 벗어난 히스테릭한 중년의 부인 역을 완벽히 연기해 이전에 비해[11] 주말연속극 시청률 역시 높은 수치로 기록되면서 시청자와 방송업계 모두의 찬사를 받으며 KBS 드라마에 처음 출연한 것이었음에도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사랑의 굴레의 남주인 노주현은 최우수상을 탔고[12], 8부작임에도 작품성을 위해 장기제작하여 좌우갈등을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 화제를 모은 지리산에서는 박진성이 신인상을, 조민수가 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평균 시청률 50%로 엄청 인기리에 방영된 왕룽일가에선 왕룽 역 박인환은 우수연기상을, 쿠웨이트 박의 최주봉과 그와 케미를 이룬 은실네 역의 박혜숙이 인기상을 수상했다.

한편,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 출연해 CF 모델에 이어 청순가련현 이미지로 스타덤에 오른 이미연이 신인상을 수상했다.

4.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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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13]이 ‘야망의 세월’과 ‘역사는 흐른다’로 대상을 받았다. 1년내내 KBS에서 연이어 열연을 펼치며 활약했고 특히, 주말연속극 야망의 세월이 연말 흥행에 성공하면서 방송기여도도 커진 유인촌이 대상으로 선정됐다.

1990년은 KBS 사태가 일어났던 해로 드라마 역시 방영중단 사태를 겪었지만 이런 내부사정과는 달리 어느 때보다 흥행작들이 많았다.

연초까지 시청률 우위를 점하며 종영한 주말연속극 달빛가족의 부부 이휘향[14] 서인석은 8.15 특집극 왕조의 세월에서도 영친왕-이방자 부부로 같이 출연했고 최우수상도 둘이서 수상했다. 특히, 이휘향은 연말부터 야먕의 세월에서 술집작부 오윤희(젤소미나) 역을 화려한 분위기를 내며 훌륭히 소화해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또 다른 인기작이자 순천말을 활용해 극본의 작품성까지 인정받은[15] 일일연속극 울밑에선 봉선화의 어머니 역의 김윤경과 뒤이어 인기를 이어간 일일극 서울뚝배기의 신스틸러 주현이 우수상을 받았다. 서울뚝배기에선 최수종 서승현이 인기상을 받기도 했다.

한편 야망의 세월의 최민식, 오현경, 서울뚝배기의 도지원 등이 신인상을 수상했다.

5.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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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훈이 옛날의 금잔디로 대상을 받았다. 노인 문제를 다룬 이 드라마는 인기와 호평을 얻었으며, 칠순 노인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연기한 이낙훈이 당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16]

또, 인기리에 방영된 왕도에서 김영철과 작품 초반 인기를 끈[17] 여자의 시간의 김미숙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김미숙은 최수종과 함께 인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훗날 대배우로 성장하는 이병헌은 이 해에 배우로 데뷔해서, 처음으로 시상식이 열린다기에 구경하러 왔었지만 본인의 좌석이 없었기에, 계단에 쪼그려앉아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박수만 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도 언젠가 저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생각을 했었다는데, 그 다음년도인 92년도에 곧바로 신인상을, 18년 뒤인 2009년도에는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 내용은 그가 2009년도에 대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소감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91년에는 3일의 약속의 변영훈 야망의 세월, TV 손자병법 홍리나가 신인상을 수상했고[18], 인기극 서울뚝배기 양동근 등이 아역상을 받았다.

6.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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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배우 오현경 TV 손자병법으로 대상을 받았다. 당시 KBS의 최장수 프로그램인 TV 손자병법은 87년에 방영되기 시작해 92년까지 방영되고 있었고 히트작도 을 제외하곤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 주역인 만년과장 역을 잘 소화하던 오현경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사실상 공로상 격으로 대상을 수상한 셈이다.

인기극으로 장기방영됐던 에서 최우수연기상( 오지명), 우수연기상( 김현주), 인기상( 김애경), 아역상(김선우) 등을 배출했고, 역시 인기리에 종영됐던 주말연속극[19] 숲속의 바람의 조민수가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또, 당시 시청률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던 주말연속극 사랑을 위하여의 주연 옥소리, 강석우는 김애경과 함께 인기상을 받았고, 사랑을 위하여 팀은 특별상을 받았다. 인기와 별도로 선굵은 남성드라마로 화제를 모았던 삼국기에선 안대용이 우수상을 수상했다.

이병헌이 신인상을 수상한 해로, 해뜰날, 이별없는 아침의 이병헌과 이별없는 아침의 김혜리가 신인상을 수상했다.

한편,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전원주가 KBS 소속 탤런트들이 뽑는 우정상을 받았다.

7.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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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만 24세였던 하희라가 먼동으로 현재까지 최연소 KBS 연기대상 수상자가 되었다. 남편 최수종보다 5년 먼저.
당해 KBS 드라마가 MBC, SBS에 비해 시청률 면에서 열세였던지라, 선굵은 역사극으로 공영방송적 전개를 보이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대하드라마 먼동의 주연인 하희라가 기존 대상 수상자들보다 나이가 어린 편이었지만, 대상을 받았다.[20]

먼동에서 하희라의 아버지 역으르 맡은 김진태[21]와 박정란 극본의 일일연속극 들국화[22]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김영옥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23]

들국화의 이병헌과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오연수가 우수연기상을 수상했고, 호평과 함께 인기리에 방영돼 94년 말까지 연장된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에서 인기상( 박지영)과 신인상( 김규철)을 배출했다. 오연수와 부부로 출연한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손지창은 인기상을 받았다.

8.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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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상이 1TV에서 KBS 2TV로 방송된 첫번째 해.[24]

한명회의 타이틀롤이었던 이덕화가 대상을 수상하였다.

80년대부터 MBC 등에 비해 전체적으로 열세였던 KBS는 1993,4년부터 보도부문에서 시청률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당해에 드라마 성적도 예년보다 올라갔다. 우선, 한명회는 중년남성층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이며 매회 20~ 30%이상의 시청률 기록하는 인기를 누린 드라마로 1년 내내 고른 인기를 유지하면서 1년간 타이틀롤인 한명회 역을 잘 소화해 당나귀 귀의 이미지까지 심어넣은 이덕화가 연기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취업주부의 육아, 부부 간의 갈등, 자녀의 공부, 재혼 가정 등의 소재로 사회문제를 공감할 수 있게 다루며 93년부터 94년 말까지 인기리에 장기간 방영된 일일연속극 당신이 그리워질 때에서 지녀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새로운 노인상을 연기해 화제를 모은 김윤경이 최우수연기상을, 지난해에 이어 박지영과 김규철은 각각 우수연기상과 인기상을, 김호진은 신인상을 받았다.

달빛가족, 야망의 세월 이후 KBS 주말연속극이 확실한 우위를 점한 적은 없었는데 94년 주말연속극 딸부잣집이 히트하면서 현재까지 KBS2 주말연속극의 전성시대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 딸부잣집에서 최우수상( 김세윤), 인기상( 하유미), 신인상( 이아현, 이세창)이 수상했다.

한편, 추석특집극으로 방영돼 94년 유행한 x세대라는 말에 맞게 신세대 춘향의 모습으로 표현돼 화제를 모은 춘향전에서 이민우가 한명회의 박루시아와 아역상을 수상했다.[25]


자사 작품인 《일요일은 참으세요》팀에게 특별상이 수여되었다.

9.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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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리에 방영된 KBS 1TV 일일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지만 구수한 이북사투리를 구사하며 할 말은 다하고 사는 팔순의 할머니[26]로 등장하여 열연을 펼친 나문희가 대상을 차지했다. 조연이 연기대상을 수상한 첫번째 사례로 손꼽힌다. 참고로 당시 나문희의 나이는 겨우 54세였다. 2020년 기준으로 손자로 출연했던 현재의 최수종보다도 더 젊은 나이다.(...)[27] 즉, 자신을 내려놓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백발의 할머니를 잘 소화해낸 것이다.
최우수상은 월화사극드라마 장녹수에서 연산군으로 열연한 유동근 바람은 불어도 한진희, 최수종 그리고 바람의 아들 이병헌을 제치고 수상하였고[28], 여자부문은 젊은이의 양지 하희라가 수상하였다.

우수상은 바람의 아들 이병헌이 1993년 이후 2년만에 두번째 우수연기상을 받았고 여자부문은 바람은 불어도 윤유선이가 수상하였다.

신인상은 젊은이의 양지 배용준, 홍경인[29], 박상아, 그리고 바람의 아들 김희선이 수상하였다.

인기상은 당해에는 후보없이 수상자만 남녀배우 3명씩 호명되었는데 수상자는 바람은 불어도 한진희, 최수종, 유호정 젊은이의 양지 이종원, 전도연[30], 서궁 이영애가 수상하였다.

1995년부터는 KBS 드라마가 흥행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연초 주말연속극 딸부잣집에 이어 젊은이의 양지가 연속으로 대히트를 쳤고, 연말부터 방영된 목욕탕집 남자들도 MBC 아파트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상승세를 그리고 있었다. 일일연속극 바람은 불어도 역시 잔잔한 흐름 속 탄탄한 구성과 재치있는 대사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사극 장녹수 역시 25% 이상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김소연이 데뷔해서 아역상을 받은 시상식이기도 한데, 특유의 노안(...)이라기 보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31] 때문에 무슨 성인배우가 아역상을 타냐고 방송국으로 항의전화가 들어왔다고 한다.[32] 하지만 김소연은 1995년 당시 정확히 15세로 중학교 3학년이었다.

10.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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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집 남자들의 안주인 역할을 맡았던 강부자[33]가 대상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이 드라마의 후속작이었던 첫사랑에서 수상자가 다수 배출되었다. 최우수상의 최수종, 우수상의 배용준부터 인기상, 조연상, 신인상까지...

특히, 실시간 전화투표로 결정되었던 인기상 수상자가 '첫사랑'의 배용준, 송채환이었는데... 송채환의 경우 여주인공이었던 이승연을 제치고 받은 것이라 더욱 화제가 되었고, 배우 본인도 예상을 못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남자 최우수상 부분이 압권이었는데, 전년도 수상자인 유동근 하희라가 시상을 하면서, 각각 본인(...)의 이름과 남편의 이름을 호명하게 되었다. 유동근은 용의 눈물로 내년에 받겠다고 흘러넘겼는데, 그것은 1년 후 사실이 되었다.

11.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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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눈물에서 열연을 펼친 유동근[34]이 대상을 수상하였다. 피도 눈물도 없는 이방원 역을 잘 소화해내어 대상 수상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일. 뿐만 아니라 최우수 연기상, 우수연기상, 조연상, 작가상까지 다수의 부문에서 《용의 눈물》 팀이 수상하였다. 유동근의 KBS 연기대상 쿼드 크라운의 시작.

이 방송분부터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을 했다.

12.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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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수상자는 야망의 전설에서 호연을 펼친 최수종[35]이었다. 최수종의 KBS 연기대상 쿼드 크라운의 시작. 그리고 최수종의 대상 커리어 중 유일하게 시대극으로 대상을 탄 사례다.[36] 이로써 방송 3사 연기대상 최초로 연기대상 수상 부부가 탄생하게 됐다. 배우자인 하희라가 1993년 《먼동》으로 대상을 탄 전례가 있다. 그리고 최수종의 대상 수상 당시 하희라가 첫째를 임신 중이어서 수상의 기쁨이 더했는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관객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축하해주었다.

최수종의 대상 수상은 연기대상 개최 전에 이미 많은 이들이 예측할 정도로 확정적이었다. 전년도 대상 수상자 자격으로 시상을 맡은 유동근은 대놓고 "동생 정태가(드라마상 최수종의 배역명) 대상을 탔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37]

전년도 수상자 자격으로 인기상을 시상하러 나온 류시원이 "인기상은... 또 접니다..."라고 스스로를 쑥스럽게 호명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전년도에는 프로포즈[38] 그리고 이번 해에는 순수 종이학으로 2년 연속 인기상을 수상한 것.[39]

IMF의 여파로 수목 드라마 KBS 2TV의 심야 주말 드라마가 폐지되는 등[40] 전년도에 비해 드라마 방영 편수가 줄었고, 주말극과 일일극 그리고 월화극 중에서는 《순수》를 제외하고는 흥행작이 없어서인지 전년도에 비해 수상자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당해 가을에 당뇨병 합병증으로 별세했던 이낙훈이 고인을 기리는 뜻에서 공로상을 수상하였다.[41]

13.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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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비 채시라가 대상을 수상했다. 1999년에도 KBS에서 밤 10시대 수목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고, 《왕과 비》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게 흥행한 작품도 없었기 때문에 《왕과 비》 팀에서 무더기 수상이 나오지 않을까 예측되었으나, 의외로 주요 부문에서는 채시라의 대상 수상과 김성령의 우수상, 최종원의 조연상 수상이 전부였다.[42][43] 이로써 야망의 전설 주연 배우들이 3년 연속으로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연산군을 맡아 아직도 회자되는 명연기를 보여준 연산군 역의 안재모가 무관에 그쳤다는 것. 안재모의 경우 학교, 어사출두에도 출연했는데, 상 하나 챙겨주지 않은 것이 참 의아할 정도.[44][45]

그리고 기존 아역상이 전년도에 청소년상으로 바뀐데 이어 당해에는 청소년 연기상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아마도 학교 시리즈 출연자들에게 수상하려는 포석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실제로 학교 시리즈가 연이어 방영된 2001년까지 이 부문은 학교 시리즈 출연자들이 거의 독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나 학교 시리즈의 출연자 중 이제는 어엿한 어른의 신분인 20대가 된 연기자들도 적지 않았기에 2001년도 문단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2년 뒤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의외로 학교 시리즈인 《학교》와 학교 2에서 청소년 연기상부터 최우수상까지 모든 연기상 부문에 걸쳐 수상자가 골고루 그리고 가장 많이 배출됐는데, 학교 시리즈가 당대의 화제작이었음을 대변해주는 부분이다.

또한 비록 MBC 주말 드라마에 열세였지만, 고정 시청층을 확보한 주말연속극 유정에서 중년의 사랑에 빠진 택시기사 역으로 열연을 펼친 이휘향이 여자 최우수상을 받았다.

14.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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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에서 궁예로 열연한 김영철이 대상을 수상했다.[46][47]《바람은 불어도》를 통해 1995년 대상을 수상한 나문희에 이어 타이틀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 두번째 사례. 참고로 같은 날 열린 SBS 연기대상에서도 타이틀롤을 제치고 고두심이 대상을 수상했다. 이날 채시라는 스케줄상 불참했다.

이 해에 열린 방송 3사 연기대상에서 그동안 주로 조연으로 활약하던 중견배우들이 대상을 수상하여 관록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가을동화에서는 서브 주연이었던 원빈이 우수상 받고, 주연이었던 송승헌 송혜교는 인기상을 받았다.


[1] TV뿐 아니라 라디오(성우)부문 까지 확대했으니 TV를 제외시켰다. [2] 당시 KBS는 자사의 TV 및 라디오 프로그램을 평가하여 우수한 프로그램에 대한 시상을 했음 [3] 같은 해, KBS에서 코미디언을 대상으로 한 코미디 연기대상 역시 다시 제정됨. 즉, KBS는 87년 연예상을 다시 제정하면서 탤런트와 코미디언들을 따로 시상하기 시작함. [4] 연출인 이유황 PD는 이 드라마로 88년 백상예술대상에 TV부문 연출상을 수상함. [5] 정주영 현대그룹을 모티브로 만든 드라마 [6] 정한용은 이 드라마로 8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인기상을 수상했다. [7] 토지의 이용 역으로도 열연했지만, 대상을 받은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비중이 낮다. 토지는 1987년 10월 24일에 첫 방송되었기 때문. [8] 이듬해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도 임이네 역으로 김혜자(MBC)와 함께 TV부문 연기상을 수상함. [9] 이듬해인 1990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0] 2004년 KBS 꽃보다 아름다워와 MBC 한강수타령, 2015년 부탁해요 엄마로 현재까지 방송3사 통틀어 최다 연기대상 수상자. [11] MBC 내일 잊으리가 압도적으로 시청률에서 우위를 점함 [12] 원래 주인공인 김미숙은 이미 고착돼 온 청순한 역할이라 그닥 뇌리에 박히지 않아 후보에도 오르지 못함. [13] 이듬해인 199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4] 이듬해인 199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5] 작가 박정란은 이 드리마로 당시 한국의 극본상은 전부 석권함 [16] 이듬해인 1992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을 수상하였다. [17] MBC 사랑이 뭐길래가 당연히 치고 올라옴 [18] 하지만 그 중 변영훈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신인상 수상인데, 2년 후 한강 영화촬영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 [19] 작품 초반엔 MBC 사랑이 뭐길래에 밀렸지만 종영 이후 후속작을 따돌리며 30% 이상의 흥행을 기록함 [20] 하희라는 80년대 중반부터 KBS에서 활동하다가 KBS 사태 즈음 MBC로 옮긴 후 다시 먼동으로 KBS에 복귀했는데 대상을 받은 것이다. [21] 1986-87년 KBS 대하드라마 노다지로 스타덤에 올랐는데 다시 대하드라마 먼동에 출연해 이듬해 한국방송대상에서 남자 탤런트상까지 받았다. [22] 김영옥과 부부 역을 맡은 신구는 이듬해 1994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이 드라마로 오랜만에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참고로 당해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불발됐다. [23] MBC 성우 출신인 김영옥은 80년대부터 왕룽일가, 꽃피는 둥지, 옛날의 금잔디 등 KBS의 히트작들에 다수 출연했는데, 옛날의 금잔디에선 국내최초로 노인성 치매 증상을 리얼하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고 92년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인기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엔 KBS에서도 들국화에서의 연기로 시상을 한 것이다. [24] 2TV에서 방송된건 실질적으로 두번째다. 1989년 연기대상이 2TV에서 방송됐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 장면이 1TV에서 방송되어 2TV로 옮기게 되고 1994년 가을부터 1TV에서의 상업광고가 폐지가 되어 2TV로 완전 옮겼다. [25] 이민우는 당시 KBS 히트작인 당신이 그리워질 때, 한명회에서도 출연하는 연기파 아역배우로, 춘향전으로 이듬해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모래시계 이정재와 공동수상), 김희선은 무관임. [26] 극중 황산해( 최수종 분)의 할머니. [27] 물론 1990년대의 50대하고 2020년대의 50대를 단순 비교하기에는 시대상도 다르고 여러모로 무리가 크다. 극단적으로 비교하자면, 1991년 연기대상을 차지한 이낙훈의 당시 나이가 56세였는데도 호호백발에 가까운 외모였던 것에 비해 2023년 기준 런닝맨의 최고참 지석진이 57세에 접어들었음에도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동안이다. [28] 여담으로 남자 최우수연기상 후보에 오른 한진희, 최수종, 이병헌은 남자 우수연기상 후보에도 올랐다. [29] 당시 연극공연으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30] 당시 이듬해인 1996년 봄에 방영하는 드라마 프로젝트 해외촬영으로 시상식에 불참했다. [31] 물론 김소연의 나이를 감안하면 2021년 현재는 당연히 동안이다. [32] 이 이야기는 훗날 김소연이 게스트로 출연한 집사부일체(2021년 2월 21일 방송)에서 언급되었다. [33] 이듬해인 1997년 한국방송대상에서 탤런트상을 수상하였다. [34] 이듬해인 1998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을 수상하였다. [35] 이듬해인 1999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한국방송프로듀서상,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을 수상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36] 나머지 대상 3개는 모두 사극으로 탔다. 2001년 태조 왕건, 2007년 대조영, 그리고 2023년 고려 거란 전쟁. [37] 《야망의 전설》에서 극중 형제지간으로 출연했다. 유동근은 정태의 형인 정우 역할을 맡았다. [38] '프로포즈'는 잘못된 표기이다. '프러포즈'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제목은 '프로포즈'로 표기되어 공식적으로 방영되었다. [39] 지금이야 이미지가 골로 갔고 TV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사실 90년대 중후반 때까지만 하더라도 류시원은 최고의 톱스타 중 한 명이었다. 나오는 출연작마다 최고 시청률 30%는 기본으로 넘기는 흥행보증수표였고, 이 때의 인기로 음반도 발매했을 정도였다. [40] 아씨가 방영되고 있었으나, 시간대를 저녁 8시로 옮기고 원래 저녁 8시에 방영되던 웨딩드레스를 조기종영 시켰다. [41] 이낙훈은 이틀전인 SBS 연기대상에서 고인을 기리는 뜻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42] 물론 장장 3년에 걸쳐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였기 때문에 임동진이 전년도에 이미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정태우, 김민정도 전년도에 청소년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사실 채시라도 야망의 전설과 《왕과 비》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즉, 같은 작품으로 2년 연속 수상한 셈. 물론 최우수상 수상에는 《야망의 전설》이 더 결정적이었겠지만... [43] 그리고 채시라는 같은 해에 일일 드라마 사람의 집에도 출연했다. KBS에서 상을 안 주는게 더 이상한 상황이었다. [44] 사실 왕과 비에서 안재모는 1999년이 아닌 2000년 1월부터 3월까지 출연했기 때문에 어쩌면 왕과 비로 그 해 신인상을 못 탄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대신 같은 드라마에서 폐비 윤씨를 맡았던 김성령이 우수 연기상을 수상하였는데, 아무래도 1999년 왕과 비가 방영할 당시 김성령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직전 해인 1998년에는 세조를 맡은 임동진이 최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안재모는 그 다음해에 열린 연기대상에서도 노미네이트조차 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왕과 비 연산군 파트가 1월부터 3월까지 너무 연초에 방영되었기 때문인 듯 싶다. 게다가 2000년은 왕과 비가 끝나가는 시기이기도 했던데다가 무엇보다 이미 1998년 1999년에 대거 수상을 해버리기도 했고.. 요즘은 가끔 연초 드라마들도 챙겨주긴 하지만 이 당시만 하더라도 그 해 연초보다는 연중이나 연말에 방영한 드라마를 더 챙겨주는 경향이 컸다. 게다가 2000년 KBS의 경우 태조 왕건 가을동화 등 여러 히트작이 나와버렸기 때문에 왕과 비는 묻힐 수밖에 없었다. [45] 그 대신 다음 해에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TV 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46] 이듬해 200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한국방송프로듀서상,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을 수상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47] 당시 궁예 역을 맡아서 민머리 상태로 상을 받았다. 다음해에 전년도 수상자로서 시상자로 나왔을 때에는 머리가 많이 자란 상태였다. 함께 출연한 최수종이 MC로서 2000년에 김영철에게 대상을 전달해줬는데, 이듬해인 2001년에는 반대로 김영철이 전년도 수상자로서 최수종에게 대상을 전달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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