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시라 관련 둘러보기 틀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채시라의 주요 수상 이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연기대상 대상 | |||||||||||||||||||||||||||||||||||||||||||||||||||||||||||||
최수종 (1998년) |
→ |
채시라 (1999년) |
→ |
김영철 (2000년) |
연기대상 대상 | ||||
김희애 (1993년) |
→ |
<colbgcolor=#FFFFA1,#5D5E00> 채시라 (1994년) |
→ |
채시라 (1995년) |
채시라 (1994년) |
→ |
채시라 (1995년) |
→ |
김혜수 (1996년) |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
제27회 ( 1991년) |
→ |
제28회 ( 1992년) |
→ |
제29회 ( 1993년) |
이휘향 ( 야망의 세월) 하희라 (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
→ |
채시라 ( 여명의 눈동자) |
→ |
고두심 ( 남편의 여자) 김희애 ( 아들과 딸) |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 |||||||||
2004년 | ||||||||||
※ 200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최불암 | 이영애 | 권상우 | 김혜자 | 고두심 | ||||||
6위 | 공동 7위 | 9위 | 10위 | |||||||
최수종 | 송혜교 | 장동건 | 채시라 | 이서진 | ||||||
2009년 | ||||||||||
※ 200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김혜자 | 최불암 | 김태희 | 이순재 | 소지섭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김남주 | 강부자 | 장동건 | 이민호 | 고두심 | ||||||
2014년 | ||||||||||
※ 201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김수현 | 최불암 | 조인성 | 김태희 | 고두심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6위 | 공동 7위 | 9위 | 공동 10위 | ||||||
이순재 | 김혜자 | 김희애 | 이유리 | 유동근 | 현빈 | }}} | ||||
12위 | 13위 | 14위 | ||||||||
송일국 | 전지현 | 이영애 | ||||||||
2019년 | ||||||||||
※ 2019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2위 | 3위 | 공동 4위 | |||||||
최불암 | 김혜자 | 박보검 | 공유 | 송혜교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이순재 | 고두심 | 최수종 | 송중기 | 전지현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11위 | 공동 12위 | ||||||||
현빈 | 차인표 | 한지민 | 김혜수 | 조인성 | 남궁민 | |||||
공동 17위 | ||||||||||
김해숙 | 소지섭 | 김태희 | 장동건 | 김수현 | 정우성 | }}} | ||||
공동 23위 | ||||||||||
박보영 | 이영애 | |||||||||
2024년 | ||||||||||
※ 2024년 한국갤럽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를 선정. | ||||||||||
1위 | 공동 2위 | 공동 4위 | ||||||||
김수현 | 남궁민 | 김지원 | 차은우 | 김남주 | ||||||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최수종 | 송중기 | 최불암 | 고두심 | 김고은 | ||||||
공동 11위 | 14위 | 15위 | ||||||||
한소희 | 김혜자 | 박은빈 | 박서준 | 손예진 | ||||||
공동 16위 | 공동 18위 | |||||||||
송혜교 | 김유정 | 전지현 | 김혜수 | |||||||
공동 20위 | ||||||||||
조정석 | 이보영 | 공유 | ||||||||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좋아하는 유튜버 |
}}} ||
}}} ||
<colbgcolor=#DC3535><colcolor=#fff> 채시라 蔡時那[1]|Che Sira[2] |
|
출생 | 1968년 6월 25일 ([age(1968-06-25)]세)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용두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본관 | 평강 채씨[3] |
신체 | 168cm, A형, 245mm |
가족 |
아버지 채영석(1940년생)[4], 어머니 가명순(1945년생) 여동생 채국희(1970년생)[5] |
배우자
김태욱(2000년 3월 27일 결혼 ~ 현재) 딸 김채니(2001년 7월 7일생)[6] 아들 김채민(2007년 11월 5일생) |
|
학력 |
서울용두초등학교 (졸업) 숭인여자중학교[7]] (졸업) 대원여자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 / 학사) |
종교 | 가톨릭 ( 세례명: 클로틸다) |
데뷔 |
1982년 학생중앙표지모델 1985년 배우 데뷔작 고교생 일기 |
소속사 | 씨제스 스튜디오 |
링크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조선 후기의 어진화가 채용신의 현손녀다.채씨 성의 여자 유명인 중 친동생 채국희와 더불어 본명이다.[8] 참고로 채시라의 이름은 출생 당시 아폴로 7호의 비행사였던 월리 시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9] 1984년 CF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했다.[10] 주로 롯데 계열의 CF에 출연. 롯데제과 가나초콜릿의 모델이 되어 청순한 모습으로 많은 남학생들을 설레게 하며 하이틴 스타로 인기를 모았다. 당시 별명이 '가나'였다.
연기 데뷔는 KBS의 청소년 드라마인 '고교생 일기'. 이후 '꼬치미', '파문' 같은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았다. 특히 MBC 베스트셀러극장 ' 샴푸의 요정'은 당시 갓 대학생이 된 채시라의 매력이 한껏 담긴 작품이다.
김희애, 최진실와 함께 1990년대 트로이카 배우였다.
2. 상세
깔끔하고 청순한 미모로 하이틴스타로서의 인기는 누렸으나 성인 배우로서의 필모가 다소 아쉬웠던 차에 1988~89년에 KBS에서 MBC로 자리를 옮기고 그녀의 연기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는 계기를 만난다. 바로 MBC 드라마 ' 여명의 눈동자'에서 한국 드라마 사상 역대급 캐릭터라는 비운의 여인 윤여옥 역할을 맡아 열연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녀는 길이 회자될 인생 캐릭터를 만나 몸을 아끼지 않는 연기로 얼굴만 예쁜 스타가 아니라 연기력까지 갖춘 당대의 특급 스타로 떠올랐다. 한가지 예를 들면, 채시라가 연기한 여옥이 하림의 도움을 받아 미군정에서 타자를 치는 근로자로 연기했는데, 남로당 간부이자 애인인 대치를 위해 수동식 타자기로 문서를 만들어 쓰레기통에 버리면 남로당원인 청소노동자가 가져가는 장면에서 타자를 자연스럽게 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채시라는 한 장면을 찍기 위해 타자를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 이후 채시라는 보기드문 연기파 미녀배우로서 훌륭한 필모를 쌓아갔다. 이후 채시라는 대치 역의 최재성과는 천추태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아들과 딸'[11]에서는 누구나 환상을 가질 법한 도시의 부잣집 아가씨 미현을 연기했고, 트렌디 드라마 ' 파일럿'에서는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하는 당당한 여성상을 연기해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12] ' 서울의 달'에서는 달동네 내의 속물이지만 사랑을 위해 자존심을 던지는 복합적 캐릭터 영숙을 연기해 호평을 받는다. 특히 94년 이 드라마를 통해 MBC 최고 간판스타는[13] 물론이고 최고 인기스타로 등극했고, 그해 연말 '귀곡산장' 등으로 당대 최고 인기를 누리던 코미디언 이홍렬을 제치고 MBC 방송대상을 수상했다.
이듬해 ' 아들의 여자'[14]에서는 기존의 반듯한 이미지를 탈피해 팜므 파탈로 변신한다. 여기서 나이트 클럽 댄서로 분한 채시라가 상당히 섹시한 춤을 춰 큰 화제[15]를 모으는데 관련 기사, 이것이 계기가 되어 몇달간의 레슨을 받고 MBC 광복절 2부작 특집극에서 실존인물인 무용가 최승희를 연기했다. 2부작 특집극을 위해서, 미니시리즈나 연속극을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몇달의 기간을 투자해 준비하는것부터가 채시라가 얼마나 완벽주의적이고 도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채시라 스스로가 춤을 상당히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어쨌든 <아들의 여자>에서 막춤이라도 능숙하게 추는 것이 예사로운 감각은 아니며 특집극에서도 실제 최승희의 유명한 춤을 재현하면서 채시라의 연기나 춤에는 호평이 잇따랐다. 외모 싱크료율도 좋은 편이었고. 95년 연말엔 ' 아파트'에서는 털털하고 수더분한 캐릭터 나홍두를 연기해 최진실과 투탑으로 극을 끌어가며 히트작 행진을 이어간다. 1년동안 MBC 드라마를 원톱주연으로 책임진 그녀는 최고 인기스타의 자리를 유지하며 2년 연속으로 연말에 연기대상을 수상했고 TV저널 선정 '우리들의 스타상'에서 탤런트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한편 TV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95년에 스크린에도 진출했지만 최고 인기 스타라는 이름값이 무색하게 부진한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그래서 영화 출연을 별로 안하게 돼 동년배의 톱스타이면서 CF•TV•영화 등 연예계 거의 전 분야에서 성공을 이룬 최진실과는 달리 영화 필모그래피가 부족하다. 1990년대엔 한국영화에서 여배우들의 노출신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당시 인터뷰에서 채시라는 영화 필모가 적다는 질문에 노출에 거부감이 있어서 영화출연에 쉽게 출연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녀만의 이색경력이 있는데 1991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5년간[16]산소 같은 여자라는 카피로 스타덤에 오른 마몽드의 CF모델 이영애가 9년 활동한 정도였다.] 코리아나화장품의 CF모델로 활동해 종료 당시 국내 최장수 기록을 보유했고, 처음 작품 때는 혹평을 얻었지만 96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꾭추에서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를 잘 소화해 연예인 더빙의 좋은 선례로 남았다.
MBC에서 꾸준히 인기를 유지하며 연기를 한 채시라는 98년, 약 10년 만에 KBS로 옮겼고 KBS 정통사극 ' 왕과 비'에서 인수대비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모습한다. 채시라는 젊은 시절부터 인수대비의 사망까지를 모두 연기하면서, 그 세대에서는 흔치 않은 다양한 장르를 이끌 수 있는 배우라는 강점을 가지게 된다. (이후 김희애가 복귀했지만 사극에는 나오지 않았다.) 채시라의 필모를 보면 현대극과 시대극은 물론 정통사극까지, 또 멜로와 트렌디 장르는 물론 묵직한 주제 의식을 가진 스케일이 큰 대작과 대중적 통속극도 커버하는 놀라운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다만 연기가 어렵다는 코미디에는 코믹드라마인 '아파트'를 제외하고 거의 출연하지 않았으며, 망가지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17]
왕과 비는 특히 99년에 폐비윤씨와의 갈등 내용이 전개되며 인기와 화제를 얻었고 1년간 드라마를 책임진 채시라는 그 해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연산군(안재모)과의 갈등을 서로 사실적으로 연기해 화제를 모으며 최고시청률로 44.3%을 기록해 유종의 미를 거둔다.
왕과비 종영 직후인 2000년 3월에 가수 김태욱과 결혼을 했다. 신혼생활을 하던 2000년 가을엔 결혼 이후 첫 복귀작으로 SBS 여자만세에 출연했는데 평균 29.4%, 최고 36.5%를 기록하는 등 데뷔 이래 SBS 드라마 첫 출연이었음에도 좋은 성적을 거뒀고 결혼 이후에도 여전한 톱스타로서의 인기를 드러냈다. 그러나 이듬해 출산 후 복귀한 2002년 MBC 맹가네 전성시대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자연스런 세대교체[18]에 따른 2000년대 초반의 최진실•하희라•김혜수 등 같은 기존 30대 톱스타들처럼 슬럼프를 겪는다. 그러나 2004년 KBS 주말극 애정의 조건으로 높은 시청률과 함께 신세대 스타들에겐 없는 성숙한 연기로 호평을 받으며 스타로서의 위상을 회복해[19] 2000년대에도 활발히 활동을 이어간다.
한편 왕과 비에서의 연기 이후 200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사극으로 주 무대를 옮겼다. 트렌디 사극의 시초로 여겨지는 ' 해신'의 자미부인 역할을 맡아 이후 등장할 사극 악역의 로드맵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연기력과 함께 변화무쌍한 패션을 선보이며 드라마 흥행에 일조했다. 그 뒤, 그녀의 연기력은 ' 투명인간 최장수'를 통해 캐릭터 변신과 연기의 깊이를 동시에 거머쥐며 다시 호평을 받게 된다. 이후 몇 년의 공백기를 가진 채시라가 선택한 복귀작이 하필 ' 천추태후'였던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트렌디 사극의 시작을 여는 데 기여했던 그녀가 KBS 대하사극의 맥을 끊을뻔한 괴작의 주인공이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 채시라의 연기 인생 최악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건 채시라의 연기력으로 살릴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 그나마 채시라의 연기력 자체도 막장 대본과 캐릭터와의 부조화로 인해 저평가 받았다.[20]
침체는 오래 가지 않았다. JTBC가 야심차게 런칭한 ' 인수대비'[21]에서 종편 채널의 기록을 깨면서 순항했고 그녀의 연기력에 문제가 없음을 입증했다. 이후 2012년 ' 다섯 손가락'에서는 갈수록 막장이 된 대본을 연기력으로 커버하며 젊은 배우들을 이끄는 원숙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2015년 '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는 김혜자, 이순재, 장미희같은 쟁쟁한 대배우들과 젊은 배우들 사이에서 균형있는 연기를 보여주면서 연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90년대 만큼의 포스는 없어졌지만 꾸준히 시청률을 평타 이상으로 내주는 신뢰감이 형성된 배우다. 이후 2018년 2002년 '맹가네 전성시대' 이후 16년 만에 MBC에 복귀하여 ' 이별이 떠났다'에서 드라마 자체는 크게 인기있는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여전한 연기력을 선보였다. 그리고 또 2019년 같은 방송사 수목극 ' 더 뱅커'에서는 커리어우먼 역할로 기존과는 색다른 연기를 또 한 번 선보였다.
3. 출연 작품
3.1. 영화
<rowcolor=#fff>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95년 |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 상민 | |
말미잘 | 특별출연 |
3.2. 드라마
<rowcolor=#fff> 연도 | 방송사 | 방송명 | 배역 | 비고 |
1985년~1986년[22] | 고교생 일기 | 연기 데뷔작[23] | ||
1987년 | 꼬치미 | |||
1988년 | 베스트셀러극장 샴푸의 요정 | 신애리 | 단막극 | |
1989년 | 조선왕조 5백년- 파문 | 윤보배 | ||
거인 | 서경주 | |||
아담의 초상 | 송재희 | |||
1990년 | 각시방에 사랑 열렸네 | 유지은 | ||
두 권의 일기 | 윤미희 | |||
1991년 | 여명의 눈동자 | 윤여옥 | ||
1992년 | 아들과 딸 | 안미현 | ||
1993년 | 파일럿 | 노혜란 | ||
1994년 | 서울의 달 | 차영숙 | ||
아들의 여자 | 김채원 | |||
1995년 | 최승희 | 최승희 | 2부작 특집극 | |
아파트 | 나홍두 | |||
1996년 | 위험한 사랑 | 장윤주 | ||
1996년~1997년 | 미망 | 전태임 | ||
1998년 | 야망의 전설 | 김인애 | ||
1998년~2000년 | 왕과 비 | 인수대비 | ||
1999년 | 사람의 집 | 심말희 | ||
2000년 | 여자만세 | 김다영 | ||
2002년~2003년 | 맹가네 전성시대 | 맹금자 | ||
2004년 | 애정의 조건 | 강금파 | ||
2004~2005년 | 해신 | 자미부인 | ||
2006년 | 투명인간 최장수 | 오소영 | ||
2009년 | 천추태후 | 천추태후 | ||
2011년~2012년 | 인수대비 | 인수대비 | 지상파 외 드라마로는 첫 출연작. | |
2012년 | 다섯 손가락 | 채영랑 | ||
2015년 | 착하지 않은 여자들 | 김현숙 | ||
2018년 | 이별이 떠났다 | 서영희 | ||
2019년 | 더 뱅커 | 한수지 |
3.3. 애니메이션
연도 | 제목 | 배역 |
1995년 | 돌아온 영웅 홍길동 | 곱단이 |
1996년 | 노틀담의 꼽추 | 에스메랄다(더빙) |
우리 친구 까치 | 최엄지 |
4. 수상 경력
<rowcolor=#fff> 연도 | 시상식명 | 수상 부문 | 작품 |
1990년 | 제26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여자 신인 연기상 | 거인 |
1991년 | MBC 방송대상 | 여자 최우수 연기상 | 여명의 눈동자 |
1992년 | 제28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
1993년 | MBC 방송대상 | 여자 최우수연기상 | 아들과 딸, 파일럿 |
1994년 | 대상 | 서울의 달 | |
1995년 | 제7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 탤런트 부문 출연자상 | |
제31회 백상예술대상 | TV 부문 인기상 | ||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 탤런트 부문 최우수상 | 아들의 여자, 아파트 | |
MBC 연기대상 | 대상[24] | ||
1998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최우수 연기상 | 야망의 전설 |
1999년 | 대상 | 왕과 비 | |
2000년 | SBS 연기대상 | 여자 최우수 연기상 | 여자만세 |
2004년 | KBS 연기대상 | 애정의 조건 | |
2009년 | 천추태후 | ||
2012년 | SBS 연기대상 | 방송 3사 PD가 뽑은 프로듀서상[25] | 다섯 손가락 |
10대 스타상 | |||
2015년 | KBS 연기대상 | 여자 최우수 연기상 | 착하지 않은 여자들 |
2018년 | MBC 연기대상 | 주말특별기획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 이별이 떠났다 |
5. 채시라 광고 모델료 소득세 소송
1998년 동작세무서장이 탤런트 채시라가 코리아나화장품 등 7개 업체로부터 받은 광고모델 전속계약금 14억2천5백만원에 대해 기타소득[26]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분류해 3억 8천만원의 종합소득세를 부과하자 소송을 냈으며, 3년간의 재판 끝에 최종 대법원 판결로 연예인들의 광고 모델료는 기타소득이 아닌 사업소득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 사건. #국세기본법 제18조 제3항에서 말하는 비과세관행이 성립하려면 상당한 기간에 걸쳐 과세를 하지 아니한 객관적 사실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과세관청 자신이 그 사항에 관하여 과세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어떤 특별한 사정 때문에 과세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있어야 하며 위와 같은 공적 견해나 의사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표시되어야 하지만, 묵시적 표시가 있다고 하기 위하여는 단순한 과세 누락과는 달리 과세관청이 상당기간 불과세 상태에 대하여 과세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상당한 사정이 있어야 하고, 이 경우 특히 과세관청의 의사표시가 일반론적인 견해표명에 불과한 경우에는 위 원칙의 적용을 부정하여야 한다는 이유였다.
6. 여담
- 채시라의 아버지 채영석 역시 배우를 꿈꿨을만큼 젊은시절 미남이었다. #, 2004년 65세의 나이로 남서울대학교 스포츠산업학부 신입생이 되어 학업을 도전해 기사가 나기도 했다.
- 청순함과 요염함이 공존하는 마스크와 늘씬한 몸매로 90년대 초중반을 대표하는 미녀배우로 통하면서 굵직한 광고들을 찍었으며 특히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코리아나화장품에서 15년간 활동한 최장수 화장품 전속모델이었다. 계약이 끝난 이후에도 코리아나화장품을 계속 사용중이며, 타 화장품 회사의 모델 제의를 거절할 정도로 현재까지도 애착이 깊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창립 30주년 기념 행사에서 모습을 비추기도 했다. # 이 브랜드는 채시라가 모델이 되면서 업계2위까지 기록하며 매출을 올린 바 있으나, 채시라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쇠락도 함께했다는 평가. 당시 채시라가 코에 크림을 찍어바르는 광고엔딩은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27]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광고카피의 베스띠벨리 의류광고 역시 채시라의 성실한 이미지와 맞물려 꽤나 히트를 쳤다.
- 1996년에 개봉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 노틀담의 꼽추' 한국어판에서 여주인공 에스메랄다 역을 맡았다.[28] 연예인 더빙임에도 불구하고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연기를 보여줘 연예인 더빙 최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샤론 스톤 전담 성우 강희선과 비슷한 톤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불과 1년 전에 맡았던 돌아온 영웅 홍길동에서 최악의 발연기로 욕을 먹은 것과 비교해보면 결국 더빙 감독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이 달리 나오는 걸 증명한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 이색 경력이 하나 있는데, 1993 대전 엑스포 당시 명예 도우미가 되어 1993 대전 엑스포 홍보대사로 활동한 것. 이 당시 1993 대전 엑스포 조직위원회에서는 도우미를 선발할 때 가리고 가려서 선발했으며 홍보대사 역시 당대 최고 레벨에 도달한 여자 연예인 중에서 선발했다.
- 채시라의 고조부는 고종황제의 어진을 그린 석지 채용신이다.
- 가수 신성우와 사귀었으나 결혼을 앞두고 1997년 파혼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29] 몇 년 후인 2000년 가수 김태욱과 결혼해 지금까지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연예인 부부이다. #
- 하희라, 이승연 등과 절친이며, 이 중 하희라는 대학 동창 사이다.[30] 하희라의 남편인 최수종과 6번이나 같은 작품에서 서로 호흡을 맞추었는데 같이 하는 작품마다 다 잘 됐었다고 한다.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할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배우라고 인정할 정도로 친하다.
- 평생 한 번도 받기 어렵다는 연기대상을 20대 시절에 2번이나 연달아서[31] 수상했다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당시 채시라는 역대급 스타성이라는 최진실을 능가하는 포스였다.
-
소녀시대의
권유리가 그녀의 젊었을 때 모습과 닮았다고
이경규가
절친노트에서 언급하였다.[32] 그 때문에 소녀시대의 멤버 중 제일 좋아하는 멤버인 듯. 소녀시대 멤버들과도 친분이 있다.
서현과 인증샷 그리고 실제로 2017년 5월에 채시라는 유리와 둘이서 같이 화보집을 촬영했다.
#
- 배역을 고를 때 바로 전작과는 다른 캐릭터를 고르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 최수종이나 유동근, 이덕화 등이 대한민국에서 사극을 대표하는 남배우라면, 여배우중에 사극하면 떠오르는 배우로는 채시라가 가장 많이 뽑히는 편이다. 실제로 스스로도 사극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하며, 사극 특유의 어려운 대사를 NG 없이 한번에 통과할 때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자녀들을 교육시킬 때도 사극말투로 혼내기도 했었다고 한다.
-
당시 여배우들에 비해 상당한 장신인데, 소두에 목이 긴 편이라 신체비율도 젊은 배우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히 좋은 편이다. 남편인 김태욱도 장신인 덕분에 그런 유전자를 이어받은 딸은 자신보다 키가 크다고 한다.
- 50대 여배우 치고는 몸매도 상당히 좋은 편인데, 2017년 10월 서울패션위크에 참석했을때 볼륨 있는 시스루 의상을 선보였다. # 그 외에도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나 인스타그램의 게시물 등을 보면 나올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잘빠진 몸매를 보여주어 몸매 관리를 평소에 잘 하는듯 하다.
[1]
那(어찌 나)는 원음이 '나'다. 원음이 '나'라는 것은 어두가 아닌 곳에 있어도 '나'로 발음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라산(漢拏山, 본음은 '한나산'이다)처럼
활음조 현상을 적용한 케이스인 듯.
아폴로 계획의 첫 미션인
아폴로 7호의 사령관이었던
월리 시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2]
소속사 홈페이지 표기
#
[3]
26세.
[4]
#
[5]
여담으로 언니 채시라가 나온 MBC <영웅신화>에서 채시라의 여동생 역으로 낙점되었으나 언니와 같이 연기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고사한 바 있다.
[6]
득녀 당시에 지상파 연예 프로그램에서 이름의 의미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 아내의 성을 함께 넣고 싶었던 것인지 김태욱과 채시라 사이에서 태어난 니라는 의미로 김태욱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7]
現 숭인중학
[8]
다른 유명인들은 예명인 경우가 많다.
[9]
한자는 施那라고 쓰므로 시나로 읽어야 맞는데, 본인이 시라라고 표기하니 그런가 보다 하자.
[10]
공식적 데뷔는 롯데의 가나초코렛 광고지만, 사실 중학생 때 이미 학생 잡지의 표지모델과 패션모델로 활동한 적이 있다. 또한 초콜릿 광고 직전엔 애경 유지의 광고에도 짤막하게 등장했다.
[11]
아들과 딸은
김희애,
최수종,
오연수 등 당대의 스타들과 나온 초호화 캐스팅의 드라마였는데 채시라가 맡은 미현이
최수종이 맡은 귀남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미혼모로 사는 설정이었으나, 인물 설정이 변경되어 채시라와 최수종이 상당히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결국 뒤로 갈수록 김희애와 조연으로 나온
한석규가 사랑을 이루어가는 사건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로 흘렀다.
[12]
프랑스어 대사까지 소화하는 등,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발음도 상당히 좋았다.
[13]
당시 김희애는 연말
까레이스키가 너무 저조했고, 최진실•고현정 등은 수도권에만 나오는 SBS로 스카우트됐다.
[14]
94년 연말부터 방영돼 인기를 끌었지만
모래시계 방영으로 도중에 10%대까지 추락하는 시청률의 타격을 입었으나 종영 후 결국 최고시청률 48%, 평균시청률 35%를 기록한 특이한 작품. 작품은 모래시계에 치이긴 했어도 채시라의 화제성은 대단했다.
[15]
드라마에서 모은 화제는 95년 3월에 열린 백상예술대상에까지 이어져 인기상을 수상했다.
[16]
당대의 CF스타 최진실은 많은 광고를 찍었지만 10년이상 동일 브랜드의 모델로 장기간 활동하지는 못했고
[17]
주연급으로만 활동했고, 사극으로 무대를 옮기던 때 이전까지는 조연, 단역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단막극 출연도 손꼽을 만큼 적다.
[18]
해당 드라마에선 90년대 시절 아역에서
학교 등으로 떠오르던 후배
최강희가 스타의 위치에 올라갔다.
[19]
이 드라마의 인기로 2004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탤런트에서 상위 9위를 기록했다.
[20]
이 점도 돌려 말하면 그나마 채시라가 연기를 해서 완전히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채시라의 전성기 시절과 사극 연기에 특히 유능했던 것을 고려하면 간만에 출연하는 사극이 생각 이하로 안 되었을 뿐이다.
[21]
배역도 작가도 왕과 비와 동일했다. 따지고 보면 재탕이다.
[22]
본인이 99 KBS 연기대상에서 85년 데뷔라고 언급함.
[23]
본인의 소감에 의하면 제작 당시 교복 자율화 시기였기 때문에, 청소년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교복을 입고 연기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한다.
#
[24]
2년 연속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
[25]
방송 3사 중 유일하게 공동수상자가 나와
논란이 되었다. 다른 공동수상자는
박근형. 방송 3사 PD가 직접 투표하여 선정하는 만큼 같은 득표수를 얻지 않은 이상 공동수상자가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 만약 표가 같았다면 이 사정을 투표에 참여한 PD들도 알았을텐데 오히려 PD들이 이 사태에 대해 반발을 했으니 같은 표수가 아니었다는 증거. 하지만 SBS 측은 끝내 득표 수를 공개하지 않았고, 이 일은 어물쩡 넘어가게 되었다.(...)
[26]
기타소득은 2018년 4월 이전까지는 소득의 80%까지(이후 70%였고 2019년 1월부터 60%) 필요경비로 공제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즉 기타소득으로 인정을 받으면 필요경비로 공제받은 차액에 한해서만 소득세를 내면 된다.
[27]
개그우먼
이영자가 예능프로에서 코끼리나(...) 라는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28]
2편에서는 전문 성우인
김옥경으로 교체되었다.
[29]
결별 원인을 두고 무수한 설이 돌았으나 정확한 사유는 둘 만 안다.
#
[30]
나이는 하희라가 한 살 어리고, 전공도 서로 다르다.
[31]
1994년 서울의 달, 1995년 아파트.
[32]
이경규도 동국대 연극영화학과 출신인데, 갓 입학했던 채시라의 모습과 닮았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