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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2:25:51

오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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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8080><colcolor=#ffffff> 오지명
吳知明
파일:오지명.jpg
본명 오진홍(吳鎭洪)
출생 1939년 3월 5일 ([age(1939-03-05)]세)
충청북도 청주군[1]
(現 충청북도 청주시)
본관 해주 오씨 (海州 吳氏)
신체 A형
학력 대구상업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경제학 / 학사)
소속사 에스비 엔터미디어
종교 개신교
데뷔 1960년 국립극단 단원
1966년 KBS 특채 탤런트

1. 개요2. 생애 및 활동 내역3. 출연작
3.1. 드라마/시트콤3.2. 영화3.3. CF3.4. 수상
4. 근황5.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배우.

2. 생애 및 활동 내역

1967년 영화 "무남독녀"로 데뷔했다. 지금은 배우의 개그적인 면이 주로 회자되지만, 초기에는 하드보일드 영화에서 악역으로 자주 출연했다.

1939년 일제강점기 당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상경하여 서울에서 살던 중 중학교 3학년 때 6.25 전쟁을 피해 대구로 피난을 왔는데, 기존에 살던 사람들의 텃세로 고생했다.[2] 오지명은 서울에서 왔다고 많이 맞았으며 동남 방언을 익혔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짱까지 되었을 정도로 물리적 폭력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고 하며, 그런 관계로 2학년까지는 공부에 거리를 뒀으나 3학년 승급 후 공부에 몰두했다고 한다.

원래는 전기 모집대학 서울대학교 상과대학를 두 번이나 지망했으나, 모두 실패하고 후기 모집 대학인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했지만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던 중에 연극에 빠졌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우연히 명동에 붙은 국립극단 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응모하여 국립극단 연구생으로 입문했던 지성파 배우였다. # 젊은 시절에는 액션 영화와 반공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그 시절의 메이저급 영화는 팔도 사나이 암살자로 그는 여기서 조연으로 나왔다.[3] 1970년대 후반부터는 TV 드라마에 주력했다. MBC 113 수사본부 중앙정보부 요원 역할이 이 시절의 대표 배역. 또한 이 시기에 조선왕조 오백년 남한산성에서 강홍립 역을 맡기도 했으며 제3공화국에서는 이후락 역을 맡았다.

그 뒤 50대로 접어들면서 대한민국 최초의 시트콤인 오박사네 사람들에서 엽기적이고 웃긴 할아버지 캐릭터로 주연을 맡으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 성공에 고무된 SBS는 그를 간판으로 삼은 오경장, 오장군을 만들며 새로운 시도를 거듭한다. 그러다 60세가 다 된 나이에 순풍산부인과 오지명으로 대박을 터뜨려 시트콤과 코믹 연기의 정점을 찍었다.[4] 공교롭게도 둘 다 코스비 가족 만세를 많은 부분에서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순풍산부인과 촬영 기간 동안 SBS, 김병욱 PD와 갈등을 빚는 바람에 배우로서의 수명에 큰 타격을 입고 만다.

2004년에는 최불암, 노주현 등과 같이 영화 까불지마를 촬영하여 감독과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흥행과 평단 모두 안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래도 노장 배우들의 열연과 재미 등으로 숨은 팬들은 꽤 있었다. 2008년에는 OBS 경인TV의 시트콤 오포졸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을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임했다는 기사가 있었는데, 이 이후로 2024년 기준으로 작품 활동이 전혀 없다. 항간에는 감독으로서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있다.

정웅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오지명이 너무 코믹 연기만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자기 자신도 코믹 이미지가 각인되는 것에 꽤나 부담이었던 듯. 그리고 이런 오지명의 조언이 훗날 정웅인을 훌륭한 악역 배우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5] 오지명 본인도 이런 점을 두려워해서 순풍산부인과 출연 당시 타 방송사의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을 불사하기도 했다.

시트콤의 영향으로 코믹한 이미지로 굳어져서 대외적으로는 재미있는 할아버지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사실 과거의 액션 배우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주먹 실력도 대단했었다고 알려져 있다. 최불암조차도 오지명 앞에서는 꼼짝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최불암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유일한 연예인이다. # 참고로 오지명이 최불암보다 1살 많다.

2019년 케이블 방송에서 한창 재방송 중인 1990년대 대히트 KBS 드라마 서울뚝배기 별은 내 가슴에 만 보더라도 식당 사장 역으로 나오는 오지명의 무척 진지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볼 수 있다. 시트콤에서 보던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나사 빠진 듯한 모습만 기억하던 사람들에겐 꽤 색다른 모습일 것이지만, 원래 매우 진지한 정극 전문 액션 배우였다.

왕년에는 방송가에서 오지명의 "얘 무조건 출연시켜!"라는 한 마디면 감히 거역을 못하고 그 사람을 캐스팅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건방져 보이는 PD를 폭행했다는 얘기를 토크쇼에서 직접 말하기도 해서 물의를 빚었고, 그 외에도 꽤 많은 구설수[6]와 좋지 않은 소문이 있다. 이종환처럼 어두운 측면이 좀 보인 것이다. 다만 당시에 피디의 권한이 절대적이었던 시대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지명의 이러한 거침없는 행동은 당시의 방송국 문화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질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오지명이 까불지마를 찍을 당시 취재했던 기자에 의하면 오지명은 꼰대스러운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하여간 오지명 본인의 이야기로는 고등학생 시절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경찰들과 싸운 적도 있다고 한다. 친구들은 다 퇴학 당하고 본인만 무기정학을 당했다고 한다.

마초 같은 성격과 더불어 말을 굉장히 험하게 하는 편이다. 실제로 흑인을 깜둥이, 이발사를 깍새, 구두닦이를 딱새라고 하는 등, 직업이나 인종에 대해서 필터링 없이 막 말하는 편이다.

순풍산부인과 출연진 전원이 카렌스 CF를 찍었을 당시 박영규 미달이의 출연료를 갈취하자 오지명이 박영규를 구타했다는 루머도 있는데, 해당 루머는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7]에도 언급될 정도로 연예가에서 매우 유명했던 루머지만, 현실적으로 김성은의 부모도 있는데, 박영규가 김성은의 출연료를 갈취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다.

아들인 오승익은 '머저리오'라는 예명으로 래퍼와 배우 활동을 하고 있으며[8], 친동생인 오진우는 영화 음악감독이다.

2004년 11월 11일에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시절에 여탕을 훔쳐본 적이 있었다고 했다. 모 영화 촬영 중에 후배 탤런트가 여탕 훔쳐보기 좋은 장소가 있다고 그를 꼬셔서 같이 여탕을 훔쳐봤는데 그렇게 한참 여자들의 알몸을 감상하던 중 더 자세히 볼려고 앞으로 가다가 문을 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성난 여자들이 벌떼같이 달려와서 싸대기 몇 대 맞고 달아났다는 일화가 있다. 해피투게더 출연 방송

해피투게더 출연 당시 시험에서 컨닝을 한 이야기도 했었는데, 방영 며칠 전에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대규모의 부정행위 사태가 있었던지라 이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물론 프로그램의 녹화는 수능 전에 있었던지라 녹화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어도 PD가 알아서 편집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것이다. 후에 그도 필름2.0과 한 인터뷰에서 PD가 생각이 없었다면서 PD를 디스했다.

파일:/image/001/2004/11/19/052004111900500_1.jpg

리즈 시절의 사진이 권상우를 닮았다.

3. 출연작

3.1. 드라마/시트콤

3.2. 영화

3.3. CF

3.4. 수상

4. 근황

5. 여담



[1] 관련 기사 [2] 중앙일간지의 기자였던 아버지는 서울에서 살았다. [3] 두 작품 모두 1969년 작이다. [4] 90년대 초중반 SBS가 개국하면서 이런저런 코미디 콩트 프로그램을 많이 방영했는데 변신을 꾀하던 오지명이 이런 프로그램들 중 하나였던 천일야화에서 당당히 한 주역을 꿰차기도 했다. 내용은 당시 PC통신 유머 게시판 같은 데서 돌던 화장실 개그가 다수였다. 가령 어린 시절 똥침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던 오지명이 친구들의 합동 똥침 공격에 당해 괄약근이 고장 나 독한 방귀를 뀌게 된다. 나중에 짝사랑하던 여자와 택시를 합승하다가 그만 괄약근이 풀려 독가스로 택시기사가 혼절해 짝사랑하던 여인을 사고로 떠나보낸다. 어느 에피소드에서는 자전거용 쫄쫄이를 입고 다니며 늘 구박 받는 피자배달부를 맡았는데 배달하면서 오만 사람을 만나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그 중에서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이 친구는 어린 시절 서리하다가 넘어져 어린 오지명을 먼저 보내고 자신이 대신 붙잡혔다. 친구의 의리를 잊지 않던 오지명이 보험계약서에 사인을 하려던 찰나, 이 친구가 과수원 할아버지가 준 사탕에 넘어가 오지명한테 다 누명을 씌운 후일담을 기억해 내고 바로 앞에서 찢어버린다.) 마지막에 피자 배달을 완수. 그리고 사실 그 피자 안에는 폭탄이 들어 있어 오지명이 폭발음이 들리자 자연스럽게 옆으로 덤블링하면서 피하고 끝이 난다. [5] 시트콤 세친구로 스타덤에 오른 직후 MBC 드라마 홍국영에서 정후겸으로 악역을 맡았으나 코믹 이미지로 인해 집중이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았다. [6] 원래 싸움을 잘한다고 어릴 때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과거 야심만만에 출연[13]했을 때는 고등학생 때 아예 경찰하고 싸워서 경찰서에 끌려갔던 이야기도 했었다. 그냥 길에서 동네 순찰 돌던 순경들이 자신과 친구들을 기분 나쁘게 무시하는 눈초리[14]로 쳐다보길래, 오지명이 순경들에게 뭘 쳐다 보냐고 다가가서 시비를 걸다가 주먹다짐을 했다고 한다. 조폭이 검거 현장에서 안 잡히려고 경찰을 폭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좀 노는 것 뿐인 일반인, 그것도 고등학생이 경찰하고 패싸움을 한다는,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 [7] 참고로 황봉알 순풍 산부인과에 단역으로 몇 번 출연했었다. 미달이보다도 바우처 등급이 낮은 것에 한을 품고 SBS를 열심히 깠다. 미달이 역 김성은은 명실상부 주연이다. 미달이가 메인롤인 에피소드도 적지 않은 작품인데 단역배우가 600회 넘게 개근한 고정 주연 배우보다 높은 등급의 바우처를 기대했다는 게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아역이라고 성인인 자신이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니 누구의 문제인지는 굳이 말 안 해도 알 일. [8] <까불지마> 개봉 당시 오지명이 필름2.0과 했었던 인터뷰의 내용에 의하면 아들이 배우를 지망하는 게 싫어서 아들을 미국으로 조기 유학 보냈으나, 정작 그 아들은 흑인들과 싸우고 학교에서 잘려서 중도 귀국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그 인터뷰에서 오지명은 '깜둥이' 라는 표현을 대놓고 사용했는데, 오지명은 순풍 산부인과 등의 드라마 촬영 때부터 껌둥이라는 표현을 작중에서 간혹 썼었다. [9] 야인시대 조열승 역으로 유명하다. [10] 함께 선정된 감독들로 김기덕, 김기영, 배창호 등이 있다. [11] 사실 대구상고도 명문이었다. 현재의 교명은 대구상원고등학교. [12] 1992년 대선


[13] 최불암, 노주현과 영화를 찍었어서 홍보용으로 출연하였다. [14] 불량 학생으로 의심하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