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a6279><colcolor=#fff> 손지창[1] Son Ji-ch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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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0년 2월 20일[입학유예] ([age(1970-02-20)]세) |
서울특별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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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친아버지
임택근[3] 양아버지 손재규[4], 양어머니[5] 이복형 임재범 |
배우자
오연수(1998년 결혼 ~ 현재) 장남 손성민(1999년생)[6] 차남 손경민(2003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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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0cm[7], 65kg[8], A형 |
종교 | 개신교 |
학력 |
서울여의도초등학교 (졸업) 여의도중학교 (졸업) 여의도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법경대학 (경제학 / 중퇴)[9] |
MBTI | ESFJ |
병역 | 면제[10] |
데뷔 | 1989년 CF 샤갈 엑스트라 |
소속 | 베니카 (창립자, 미국지사 대표) |
소속그룹 | The Blue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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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멀티 엔터테이너이며 1990년대 미남 톱스타였다.2. 연예계 활동
스포츠 캐스터로 과거 인기를 끌었던 임택근 아나운서의 사생아로, 임재범은 배다른 형제이다. 손지창은 미혼모인 홀어머니가 언니 집에 맡겼기에 외가에 의지해 자랐고,[11] 조카여도 자녀처럼[12] 길러준 이모부를 아버지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중학생 때 이모부와 이모가 정체를 밝히면서[13] 임택근 아나운서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도움을 일절 받지 못했고, 대학( 홍익대학교 경제학과)에 들어갈 때 등록금만 어떻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14] 싸늘하게 거절당했다고 한다. 학자금을 벌기 위해 1학년이었던 1990년 아르바이트로 CF모델을 시작하며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여담으로 그 당시 그는 먼저 CF로 1,000만원이란 당시 거금을 벌었던 자기 사촌누나의 남사친을 부러워했었는데, 그 남사친이 바로 리복 CF를 찍은 이종원이었다고 한다.드라마 단역으로도 출연을 하다가 1992년 MBC 드라마 ' 무동이네 집'에 단역이나 다름없는 조연으로 출연하게 됐는데, 비중이 없어도 성실한 손지창의 모습이 제작진의 눈에 띄어 주조연급으로 분량이 늘었고 드라마의 시청률이 급상승하면서 단번에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당시 손지창의 출연 선점권을 두고 KBS와 MBC가 다툼을 벌였을 정도. 이 무렵 다이제 CF를 너무 무리해서 찍다가 한동안 턱뼈가 나가는 불상사가 있었다고 한다.[15]
탤런트로 데뷔하기 전 1991년에 손지창의 모델 선배인 가수 심신의 소개로 만난 작곡가 유정연에게 발탁되어 보컬 트레이닝을 거쳐 1집 솔로 음반을 발표하였다. 1집 전곡의 작사를 하였고 대략 50만장의 음반 판매 그리고 각종 가요차트의 상위권에 오르며 소녀 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16], 오리온그룹 투유초콜릿 광고에 동반 출연하며 인연이 닿은 김민종과 함께 광고의 CF송을 부른 한편 이게 반응이 꽤나 좋다 보니 아예 둘이 같이 ' 더 블루'란 이름으로 듀엣 앨범을 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손지창은 1990년대 청춘 스타 아이콘이자 최고의 인기스타 중 한 명이었다. 더 블루로 같이 활동했던 김민종이 말하기를 같이 라디오 DJ를 했을 때 받았던 어마어마한 팬레터의 80퍼센트는 손지창의 팬레터였다고 말했듯 전성기 시절엔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했다. 걸어서 하늘까지 등의 인기작에 주요인물로 등장하며 인기가도를 달리다 마지막 승부로 대박을 냈고 연이어 당시 스타들이 총출동한 느낌으로 연타 대박을 쳤다. 김민종과 더 블루 1-2집을 내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가수로서의 인기가 어느 정도로 대단했냐 하면 당시 유명 만화가 김영하 화백의 작품 '펭킹 라이킹'에서 손지창을 패러디한 '발지창'이라는 연예인 캐릭터를 만들기까지 했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워낙 망가지는 만화라 주인공들과 시비붙어 싸우다가 발지창 역시 망가지긴 하지만[17], 거기서도 톱스타 역할이라 여자 팬들이 자꾸 귀찮게 따라다녀서 괴로워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배금택 화백의 '열네살 영심이'에도 손곱창이란 이름으로 나오기도 했다. 실제 손지창의 인기 역시 그 만화 속 설정에 못지 않았으니, 당시 이미 장동건이나 김민종도 인기스타로 활동하던 시기였으나 그들을 패러디한 인물은 없었다는 걸 보면 누가 우위였는지는 분명하다.
90년대 당시 톱스타 탤런트였던 그였지만 의외로 영화 출연은 하지 않았다. 유일한 출연작이 이경규의 복수혈전에 특별출연한 것이라고 한다.
199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며 청춘스타로서의 소비가 많이 되었던 상태에서 [18]에서 1998년 오연수와의 결혼으로 품절남이 된 후로는 점점 연예계에서의 활동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2000년 마지막으로 그 불꽃을 살려 MBC 드라마 <진실>의 주역 4인방 중 한 명[19]으로 출연해 악역[20]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인 류시원보다 임팩트있는 캐릭터와 강렬한 연기로 드라마 흥행에 일조한다. (류시원과 최지우는 이런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고구마 남주 여주 패턴이었기 때문에 개성있는 캐릭터를 잘 소화한 손지창-박선영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동반ㅈㅅ이라는 충격적 결말로 하드캐리했다.)
한편 연예계에서 재테크로 성공한 사람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인물 중 하나. 2000년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2022년 현재까지 사업가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참고로 손지창은 사업에서 망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돈을 함부로 쓰지 않으면서 돈을 놀리지도 않고, 재테크도 공부가 필수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게 비결이라고 한다. 친구인 신동엽이 미운우리새끼에서 말하길 사업적 수완과 머리가 좋다고 했다.
2004년 MBC 드라마 <영웅시대>에서 이건희 역할로 활약하다가 드라마가 정계의 압력으로 2005년에 조기 종영되면서 아쉬움을 토로했으며 이 때 드라마를 당분간 안 하겠다는 어조가 쎄게 나왔고 그 후로 활동이 뜸하다. <영웅시대>가 끝난 이후로 사업을 했다는 말이 있지만, 사업은 이미 2000년부터 시작했다.
2016년 5월 3일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배우 특집2에서 유재석 팀 슈가맨으로 출연하였다. 슈가송은 그가 마지막 승부에 출연할 당시 불렀던 OST '사랑하고 있다는 걸'이다. 역주행송은 배우 이이경이 불렀으며 나현희의 '사랑하지 않을거야'를 부른 이성경을 꺾고 압도적인 표차로 손지창을 소환한 유재석 팀이 승리했다.
그런데 20대 쪽에서 손지창은 알아도 노래를 전혀 몰라서 들어왔던 불이 모두 꺼졌다. 20대 여성 방청객은 “타 방송에서 약간 자료화면이나 특집을 할 때 봤다”고 손지창을 알지 못해 세대 차이를 실감하게 했다.[21]
2016년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언급하기를 자녀 양육을 위해 오연수와 자신 중에 한 명만 연예계 활동을 하기로 합의를 봤고, 오연수가 계속적인 활동을 보이면서 자신은 자연스레 활동이 뜸해졌다고 밝혔다. 그래도 '더 블루'를 다시 부활시켜 활동하거나 이장우와 더불어 피닉스라는 그룹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요즈음엔 홍보 대행사를 차려 괜찮은 실적을 올린다고 한다. 관련기사
2016년 9월 10일 본인의 테슬라 모델 X이 차고에서 거실로 돌진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건에 대해 손지창은 급발진을 주장하며 자동차 제작사인 테슬라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미국에서도 이슈가 되었는데 독립 검증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손지창이 악셀을 밟은 것으로 밝혀져서 2019년 소송을 취하했다.
2022년 현재 18년째 드라마에 출연을 안 하고 있는 상황에다 개인 사업에 전념하고 있어서 배우로서는 사실상 은퇴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다만 예능은 간간이 출연하고 있는 상황이라 연예계를 완전히 등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2023년 7월 아내 오연수와 함께 오랜만에 동상이몽2에 출연하여 근황을 알렸다. 그동안 연예계로 복귀하지 못한 것은 아이들을 돌봐야 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물론, 개인 사업이 순조롭게 잘 되고 있으니 너무 바빠서 연예계 복귀를 못한 것도 이유였을 듯 하다. #
3. 출연작
3.1. 영화
<rowcolor=#fff> 개봉 연도 | 제목 | 배역 | 비고 |
1992년 | 복수혈전 | 준혁 | 우정출연 |
3.2. 드라마
<rowcolor=#fff> 방영 연도 | 방송사 | 제목 | 배역 | 비고 |
1987년~1991년 | 사랑이 꽃피는 나무 | |||
1991년 | 하늬바람 | |||
1991년~1992년 | 무동이네 집 | |||
1992년 | 금잔화 | 차송주 | ||
4일 간의 사랑 | 김기정 | 여름 특집극 | ||
1992년~1993년 | 억새 바람 | 이진수 | ||
1993년 | 걸어서 하늘까지 | 구연수 | ||
1993년~1995년 | 일요일은 참으세요 | 백현우 | ||
1994년 | 마지막 승부 | 이동민 | ||
느낌 | 한빈 | |||
1994년~1995년 | 여울목 | 서지훈 | ||
1996년 | 1.5 | 임석현 | ||
행복의 시작 | 최명규 | |||
1997년 | 예감 | 최경민 | ||
끝의 시작 | ||||
1998년~2000년 | 사랑밖에 난 몰라 | 백봉구 | ||
1998년 | MBC 베스트극장 - 머피의 법칙 | |||
1999년 | 젊은 태양 | 박민 | ||
2000년 | 진실 | 박승재 | ||
2001년 | 소문난 여자 | 정병훈 | ||
2002년 | 선물 | 경식 | ||
2002년~2003년 | 삼총사 | 장범수 | ||
2003년 | 장미울타리 | 남건우 | ||
2004년~2005년 | 영웅시대 | 국철규 | 이건희 회장 모티브 |
3.3. 방송
<rowcolor=#fff> 출연 연도 | 방송사 | 프로그램 | 비고 |
2002년 9월 8일 |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 출발 드림팀 | 게스트 | |
2013년 1월 16일 |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 ||
2016년 5월 3일 |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 슈가맨 | |
2017년 7월 8일 | 불후의 명곡 | 전설 | |
2017년 9월 17일~24일 | 미운 우리 새끼 | 스페셜 MC | |
2020년 2월 29일 | 핸섬 타이거즈 | 게스트 | |
2021년 4월 18일 | 뭉쳐야 쏜다 | ||
2022년 5월 20일 | 유명가수전 2 | ||
2022년 9월 2일 | 히든싱어7 | 연예인 패널 | |
2023년 7월 3일 |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 | 게스트 출연 |
3.4. CF
- 1989년 보령 제약 겔포스
- 1990년 이랜드
- 1990년 롯데 제과 롯데껌
- 1990년 에리트 베이직 엘리트
- 1991년 오리온 투유 초콜릿
- 1991년 피죤
- 1992년 기아 자동차 캐피탈
- 1993년 LG전자 미니스타
- 1994년 뱅뱅 어패럴 에드윈
- 1994년 크라운 제과 초코하임
- 2003년~2005년 대웅 제약 복합 우루사
4. 음반
- 손지창 1집 - 내가 너를 느끼듯이, 혼자만의 비밀(1992.05.31)
- SBS 드라마 '금잔화' ost - 서랍속의 묵은 장미 향기
- 더 블루 1집 - 너만을 느끼며 (1992년)
- 손지창 2집 - 시련 (1993년 8월 31일)
- 손지창 싱글 - 사랑하고 있다는 걸 (1993년 11월 30일) (MBC 미니시리즈 "마지막 승부" 삽입곡)
- KBS 드라마 '느낌' OST (1994년)
- 더 블루 2집 The Blue (1995년)
- 손지창 3집 - Love Story (1996년 11월 30일)
- 한국영화 '선생김봉두' ost - 보물
- Phoenix Project Album (손지창&이장우 피닉스 프로젝트 앨범) (2004년)
- 더 블루 미니앨범 - The Blue, The First Memories (2009년)
4.1. 정규앨범
- 1집 (1992. 2. 1) 앨범리뷰
<rowcolor=#fff>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1 | 내가 너를 느끼듯이 | 손지창 | 유정연 |
2 | 지워버린 편지 | 박준배 | 유정연 |
3 | 너의 흔적속에 | 손지창 | 유정연 |
4 | 영원한 헤어짐이 되어 | 손지창 | 유정연 |
5 | 혼자만의 비밀 | 손지창 | 유정연 |
6 | 가을날의 회상 | 손지창 | 유정연 |
7 | 별을 닮은 그대 | 손지창 | 유정연 |
8 | 세상 모든이에게[22] | 박준배 | 유정연 |
- 2집 (1993. 9. 1) 앨범리뷰
<rowcolor=#fff>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1 | 시련 | 손지창 | 서영진 |
2 | 친구(I'll Be With You Forever) | 박준배 | 서영진 |
3 | 잃어버린 계절 | 손지창 | 오석준 |
4 | 사랑하는 그대에게 | 손지창 | 오석준 |
5 | 언제까지나 너를 | 손지창 | 유정연 |
6 | 내마음속에 숨겨둔 얘기 | 손지창 | 김형석 |
7 | 어제속의 오늘 | 손지창 | 남궁연 |
8 | 자화상 | 손지창 | 김형석 |
- Love Story (1997)
<rowcolor=#fff>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1 | 사랑했기 때문에 | 손지창 | 손지창 |
2 | Happy Birthday To You[23] | 손지창 | 서영진 |
3 | Good Bye | 손지창 | 김성면 |
4 | 첫사랑 | 손지창 | 유정연 |
5 | Via Dolorsa(고난의 길)[24] | ||
6 | 마지막 연인 | 손지창 | 손지창 |
7 | 이별 | 손지창 | 정재형 |
8 | 꿈 | 손지창 | 마경식 |
9 | 동명이인 | 손지창 | 마경식 |
10 | People Need The Lord(주가 필요해)[25] |
4.2. 싱글앨범
- 사랑하고 있다는 걸 (1994. 2. 21)
<rowcolor=#fff> 트랙 | 제목 | 작사 | 작곡 |
1 | 사랑하고 있다는 걸[26] | 손지창 | 김성면, 이태섭 |
2 | 우리 사랑이야기 | 김성면 | 안윤영 |
3 | 숙명[27] | 손지창 | 김성면, 이태섭 |
4 | 내 마지막 날까지 | 손지창 | 안윤영 |
5 | 사랑하고 있다는 걸(Instrumental) | 손지창 | 김성면, 이태섭 |
5. 가요 프로그램 1위
- 1993년 너만을 느끼며 1월 8일- 2월 5일 MBC 여러분의 인기 가요 (5주 연속)
- 1993년 너만을 느끼며 1월 10일- 2월 14일 SBS 인기 가요 (6주 연속)
- 1994년 사랑하고 있다는 걸 6월 12일- 6월 19일 SBS 《TV가요20》 (2주 연속)
- 1994년 그대와 함께 10월 19일- 11월 9일 KBS 가요 톱텐 (3주 연속)
- 1994년 그대와 함께 10월 23일- 11월 6일 SBS 《TV가요20》 (3주 연속)
- 1995년 친구를 위해 10월 1일- 10월 8일 SBS 《TV가요20》 (2주 연속)
- 1995년 친구를 위해 10월 13일 MBC 《인기가요베스트50》 1위
6. 수상 경력
7. 여담
시운이 맞아서라고 해야겠지만 성실함으로 스타가 된 예.[28] 그래서인지 인기가 떨어진 후[29]에도 딱히 안 좋은 구설수에 오른 일이 없다. 아내 오연수를 학창시절부터 만났고 그대로 결혼까지 성공한 케이스이며, 스캔들 역시 하나도 없었다. 1993년부터 약 2년간 방송했던 KBS 2TV의 일요 아침 드라마 일요일은 참으세요[30]에서 오연수와 부부로 나와 인기를 얻은 일이 있는데, 드라마 출연 전부터 이미 사귀는 사이였고, 1998년에 오연수와 결혼하여 진짜 부부가 된다. 오연수와는 초등학교 - 중학교 1년 선후배인데 오연수가 고3, 손지창이 대학교 1학년 때 CF 촬영장에서 재회[31]하고 이후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 오연수를 놓치면 더 좋은 여자를 만날 자신이 없어서 다음 날 결혼 발표를 했다"고 말했다.중년 이후 연기 활동과 방송 활동을 잘 안 하고 있어서 아내보다 인지도가 낮아졌지만, 사실 옛날 리즈 시절에는 남자 원탑급이였고 아내 오연수보다 인기가 훨씬 많았다[32]. 몇 년간은 가히 장동건이나 이병헌[33], 김민종, 이정재, 류시원 등 당대 최고 청춘스타들[34][35] 인기를 발 아래 두었을 정도로 압도적 청춘스타였다. 당시 인기 만화 펭킹 라이킹이라는 작품에서는 작중 유일한 연예인 스타 캐릭터 조연 이름을 일부러 "발지창"으로 지었다. 심지어 손지창 이미지와 무관한 록가수 비슷한 컨셉의 캐릭터였는데도, 손지창이 당대 최고 인기스타라서 그 이름을 갖다 쓴 것. 오히려 오연수는 20대에 손지창처럼 인기로 원톱 청춘스타였던 적이 없다. 당시 선배라인으로 최진실, 이승연, 오현경이 있었고, 동세대의 심은하, 이영애, 고소영, 이미연도 있었고, 후배로 김희선 등도 있었기에 그 자리는 노릴 수 없었다. 오히려 꾸준한 작품 활동과 히트작을 내놓고 발전한 연기와 노력이 따랐고, 열심히 관리한 미모와 더불어 꾸준한 활동으로 그들 위에 선 것이다[36].
다만 병역 문제로 인해 찌라시가 나돌아 억울했던 적이 있다. 딱 봐도 멀쩡하고 별다른 이상이 없다 보니 연예계의 병역비리 관련 혐의자 하면 손지창의 이름 석자가 빠지지 않고, 심지어 정신 이상으로 병역면제를 받았다는 헛소문도 나돌았을 정도.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호적상 아버지가 없다는 이유로 병역이 면제되었다. 즉 당시 손지창은 군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다. 일단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워낙 20대 인구가 많았기에 청력, 시력, 체중 등의 단순한 신체적 문제라든가 가벼운 질병, 가정사 등등 별의별 사유로 면제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호적상 아버지가 없는 혼외자였고 손지창이 하필 여기에 딱 걸려버렸다.
즉 쉽게 요약하자면 손지창은 그냥 군 복무에서 아예 배제된 것으로, 기술행정병 같은 지원병은 물론이거니와 장교나 부사관까지도 결격 사유로 무조건 불합격된다.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장교나 부사관을 지원하려면 당사자의 손위 친족 중에서[37] 적어도 2명 이상이 신원을 보증하도록 했는데 손지창처럼 홀어머니와 단둘이서만 살아온 경우에는 신원보증이 불가능해서 장교/부사관 지원 자체가 막혔던 것. 한마디로 ' 호적이 모호하고 신원을 보증할 사람이 없는데 니가 혹시 간첩일지 아닐지 어떻게 아느냐?'는 논리다.
즉 군대의 특수성이 지금보다 더 강했던 시기였던 것까지 겹치다보니 신원보증인이 없었던 손지창의 군 입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2020년대 현재까지도 부사관/장교 선발과정에서 신원조회를 반드시 한다. 물론 저렇게 가정 환경을 이유로 군 입대를 못하게 막는건 명백한 차별이기도 했던지라 지금은 국군방첩사령부 등의 신원검증만 통과하면[38] 고아도 장교/부사관에 합격 가능.
이렇듯 손지창은 남다른 가족사로 인한 아픔만으로도 서러운 와중에 어쩔 수 없이 군 복무를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허위 사실이 떠돌아서 크나큰 괴로움과 분노를 느꼈다는 고백을 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당시의 병역법상 사생아는 호적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를 들어 간첩으로 간주되었고, 이로 인해 병역을 면제시켜주는 수준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입대를 막았기 때문에 손지창은 군 복무에서 아예 배제된 것. 다시 말해 설령 자신의 일생을 대한민국 수호에 바치기 위해 장교/부사관에 지원했더라도, 신원 조회 결과 호적상 사생아로 판명되면 무조건 불합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장교/부사관이 될 만한 역량이 있는지 여부를 전혀 따지지 않은 채 그저 사생아로 살아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예 배제해버리는 것을 두고 신분제의 종속이라는 문제 제기도 있었는데, 실제로 출생은 스스로가 선택할 수도 없고 자신의 잘못도 아니었기에 1991년 말 개정된 병역법에서 사생아에 대한 병역 면제 처분을 폐지했다.
사실 이 모든 논란의 시작점은 민주당 강창성 의원의 1994년 10월 국정감사 발언이다. 당시 연예인과 정치인 자녀들의 면제율이 일반인 자녀들의 3배인 것을 문제 삼았는데 그 중에서 사생아 사유로 병역이 면제된 탤런트 손 모씨를 거론했고 이는 누가 봐도 손지창을 지칭한 것이었기 때문. 그런데 8년 뒤 정작 강 의원의 아들은 체중 사유로 면제를 받았다는게 밝혀졌다. (.....) 한 마디로 정치인의 내로남불 짓거리에 하필이면 손지창이 소환되어 억울하게 마음고생을 한거고, 당시 기사에 거론된 다른 연예인들도 대부분은 무혐의로 드러났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0대 청년 인구가 넘쳐 나서 큰 문제가 아닌 사유로도 병역이 면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하지만 그 당시 20대 청년들의 아버지뻘 세대는 인구수가 적다보니 병역 면제 비율이 높지 않았으며, 이를 육군 소장 출신인 강창성 의원이 모를 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정치적 주목을 끌기 위해 손지창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39][40]
MC 임성훈이 진행하던 한 토크쇼에서 임성훈처럼 연세대 응원단장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방송이 나간 후 홍익대생들에게 '그럼 홍대가 부끄러우냐'며 까이게 되었다. 나름 학교 홍보도 많이 하는 등 학교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했던 손지창은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고[41], 결국 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때 가정 환경으로 인한 컴플렉스로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고, 나가서 놀기보다 집 안에서 로봇들을 가지고 놀기를 좋아했다 하며, 지금도 집 안에 각종 로봇 완구와 건프라가 가득하다. 집 진열장에 초합금혼 시리즈가 전부 놓여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건담 관련 사업을 하고 싶어서 2000년경에 반다이코리아 도메인까지 등록해 놓고, 2002년경에 반다이 측에 대한민국 진출 여부를 문의하였다.
하지만 이미 반다이 측에서 반다이코리아 법인을 등록했기 때문에 손지창이 관련 사업을 할 수는 없었고 대신에 손지창이 등록한 도메인을 사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이에 손지창은 "어린 시절 내성적이어서 그레이트 마징가, 건담 같은 합금 로봇은 인생의 반쪽이나 다름없었다. 돈을 벌 목적으로 도메인을 산 게 아니니 무료로 주겠다."면서 자신이 선점한 도메인을 무상으로 넘긴다고 얘기한다. 이에 반다이 측은 공짜로 받을 수는 없다면서 현금 100만 원 및 프라모델을 비롯한 자사 제품 1,000만 원어치를 손지창과 평소 인연이 있던 병원의 어린이 환자들에게 선물로 기부하였다. 반다이는 이와 별도로 손지창에게 1m 30cm짜리 데카자쿠[42] #로 보답했다고 한다.
가족사가 매우 슬프다. 임택근의 사생아로, 임택근이 사고친 걸 숨겼기에 이모부의 성을 따랐으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임택근에게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미우새에서는 아무래도 수위가 높은지 같은 아픔이 있는 이상민이 후지타 사유리의 부모님한테 말했던 것처럼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이모부가 길렀다고 돌려 말했다. 이렇다 보니 임택근과는 사실상 남남이지만 이복형 임재범과는 사이가 매우 좋다. 비슷한 고통을 성장과정에서 받았기 때문에 더욱 애틋한 모양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이상민 덕택에 임재범을 처음 만났으며, 임재범이 손지창을 보고 싶다고 언급해 이상민이 연결했다고 한다. 더 블루를 재결성했을 때 임재범이 손지창의 보컬 트레이너를 맡기도 하였으며, 손지창은 임재범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만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임택근만큼은 절대 용납되지 않는 족속이라고 방송에서 말했다. 그런데 이 친아버지라는 작자는 '두 아들을 둬서 행복하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앉았으니 임재범과 손지창만 불쌍하다. # 정작 두 아들들은 각자의 2세를 위해 호적 정리를 할 예정이라고. 이미 호적상 손지창의 혈연 관계가 임택근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가장 황당한 건 임재범은 세컨드의 자식이고 손지창은 써드의 자식이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임재범의 가족사 부분을 참조.
성 김 前 주한 미국 대사는 고종사촌인데, 김대중 납치 사건 참조.
2016년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출연해서 오랜만에 근황을 밝혔는데, 미국 생활을 한지 오래됐다고 한다. 출연 섭외를 받고 12시간 반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고... 아울러 활동 중단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놨는데, 아내 오연수가 배우 활동을 계속하고 싶어했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대신 자신이 활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자신의 첫 번째 우선 순위는 가족이라고 밝혔는데, 그의 성장 배경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만감이 교차했다.
라스베이거스에 가족이 다함께 놀러 갔다가 거기서 잭팟을 터트려 화제가 된 일이 있다. # 정확히는 손지창의 장모, 그러니까 오연수의 어머니가 잭팟을 터뜨렸다. 엄밀히 따지면 한국인은 강원랜드 말고 다른 곳에서 도박을 하면 불법이므로 이것 역시 처벌받을 수 있는 사안이지만, 이 경우는 법적으로 처벌할 이유가 없는 상황일 뿐이다. 현행법에서 도박을 판단하는 기준은 1.금액, 2.습관성이다.[43] 일반 관광객들처럼 해외여행을 가서 한두 번 재미삼아 카지노에서 소액으로 베팅을 한 경우, 카지노 출입은 불법이지만 도박이 아닌 게임으로 봐서 예외를 인정하여 처벌하지 않는다. 당시 손지창 일가는 외화 반출 금액의 한도를 넘지 않았으며, 슬롯 머신으로 소액 베팅(6달러였다고 한다.)을 하였으며, 난생 처음으로 카지노에 가서 잭팟을 터뜨렸으므로 법적 처벌 기준에 해당하지 않았다. 미우새에서 언급하길 장모님이 "손서방 나 저거 터졌어."해서 가봤더니 잭팟이 터진 것이었다.
잭팟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고, 국세청과 검찰이 조사를 해서 세금을 알차게 받아갔는데, 법적 처벌대상이었으면 진작에 잡혀갔을 것이다. 정확히는 947만 달러(약 100억 원)를 땄는데, 온전히 다 받으려면 연금 형식으로 받아야 하지만, 관광객인지라 일시불로 받기로 해서 40%만 받았다. 여기서 외국인이라고 세금을 30% 떼서 200만 불(23억원)만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대한민국에도 세금을 내야 해서 실제 수령액은 20억 원 정도였다고 한다. 이는 미우새 출연 당시에도 언급했고, 2021년 9월 17일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해서도 언급했다. 아무튼 이 탓에 긴급조치 19호에서 그의 직업은 도박사로 분류했다. 실제로 손지창은 도박과 연루된 연예인 중 유일하게 피를 보지 않았다. 사실 본인이 도박에 연루되었다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마지막 승부를 촬영하기 위해 김병철에게 농구를 배웠고 이후 보면 더블클러치 등 김병철과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 이전부터 연예계 농구 팀을 조직해서 활동하고 있었고 마지막 승부에도 본인 농구팀 멤버들이 많이 출연했다. 그 후로도 농구팀 피닉스를 계속 유지하며 활동했고, KBL 올스타전에 참여한 일도 있다. 폼에 비해 의외로 슛이 좋다고 한다. 라디오 방송이나 예능에서 하는 발언을 들으면 연예인이 아니라 농구 구단주 마인드다. 언제나 농구 생각 밖에 없는 농빠. 전지훈련까지 사비 털어서 보낸다고... 농구 팀과 함께 기부 등 좋은 할동도 많이 했다.
드라마 달콤한 인생에 부인 오연수가 캐스팅될 때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연예계 복귀는 늘 생각하고 있다고는 하나 사업이 잘 돼서 너무 바쁜지라 들어온 시나리오 볼 새도 없다고 한다. 은퇴한 것은 아닌데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복귀할지 생각 중이라고 말했는데, 최근 인터뷰에서는 연예계에 복귀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유럽 언론들의 대한민국 기획사의 노예계약에 대한 의견을 말했다가 JYJ 팬들에게 트위터에서 맹폭을 당하고 결국 트위터를 닫았다. JYJ를 직접 비판한 것은 아니고, SM의 계약에 대한 객관적, 주관적 코멘트를 한 것인데 JYJ 팬들이 그를 공격한 것. 최근 다시 트위터를 하는 것 같은데, 업데이트는 자주 안 된다.
장남 손성민이 그림을 무지하게 잘 그리고 실제로 그림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2021년 현재 군입대하였다. 2019년 8월 12일자 무엇이든 물어보살에서 차남 손경민과 함께 잠깐 출연했다. 영상
2020년 1월 11일 사망한 생부 임택근의 빈소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실제로 상주 역할을 했는지는 기사가 나오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카레이서 박재성과 2018년부터 베니카의 공동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미국 쪽 업무도 그가 담당하고 있다.
트로트 가수 영탁과 평소 친분이 있는 편이다.
동상이몽2에서 밝히길 술을 못 마신다고 한다. 영상[44]
8. 관련 문서
[1]
친부의 성은 임씨지만 가정사로 인해 이모부의 호적에 입적되어 손씨로 살았다. 손지창 본인이 직접 '나에게 아버지는 이모부뿐이고 손씨가 좋으며, 성을 바꿀 생각이 없다'라고 밝혔으니 손지창이란 이름이 본명이다. 가정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아나운서를 참고.
[입학유예]
아내
오연수와
초등학교,
중학교 1년 선후배 관계인걸로 보아
입학유예로 보인다.
[3]
임택근 아나운서가 세번째 바람을 피우면서 나온 자식으로 그는 손지창의 생부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때문에 성을 임씨가 아닌 이모부의 성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4]
손지창의 이모부로 처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손지창을 자신의 친아들처럼 아꼈다.
[5]
손지창의 친어머니의 친언니로 손지창의 이모다.
[6]
영어 이름은 스콧(Scott)으로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 그래픽 전공을 하고 있다.
[7]
전성기 때는 180cm가 공식 프로필이었다. 네이버 프로필에서도 180cm이다. 실제로는 177cm 정도 된다. 키에 비해 체격은 왜소한 편이라 커 보이진 않는다. 키를 속인 것으로 장동건, 김민종하고 비슷하며 셋 다 프로필을 허위로 작성했다. 50을 넘겼으니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살짝 있긴 하다. 그 장동건도 프로필 상의 키가 182cm이다. 물론, 170cm 후반대의 키도 당시 일반인 기준에선 꽤 큰 축에 속하했다. 지금도 한국 성인 남성 평균보단 큰 편이다. 그의 이복형인 임재범도 182cm의 큰 키다. 이 쪽은 속인 키가 아니다. 친부인 임택근 아나운서도 괜찮은 체격이었다.
[8]
전성기때는 62kg가 공식 프로필이었다.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현재는 적당해져서 오히려 동안으로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9]
후술된 논란으로 자퇴
[10]
후술하듯이 사생아라 당시 병역법 기준으로 징병 대상도 아니었고 간부로 자원입대도 못하게 막혔다.
[11]
이모부가 손재규이다.
[12]
중학교 다니기 전까지 아예 친부모라고 속이고 길렀다. 사촌남매들도 다 친형, 친누나라고 알고 자랐다. 본인이 평범한 가정의 막내아들인 줄 알고 자랐던 그는, 사실 지금도 그냥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한다. 형과 누나들도 어린 나이지만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냥 손지창을 친동생으로 대했다고 한다.
[13]
손지창은 엄마아빠가 갑자기 자신에게 "지창아 그동안 말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사실 너에게는 친부모님이 따로 있단다."라고 말하는 순간 충격이 없지는 않았지만, 뭔가 그 전까지 본능적 직감이 있었는지 올 게 왔다는 느낌도 있었다고 한다. 일시적으로 본인이 고아원 같은 데서 입양된 것인가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한다.
[14]
당시 집안 사정이 어렵지는 않았으나, 돈 액수를 떠나서 아버지가 첫번째 등록금을 대어주는 걸로 자신에게 아버지 노릇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이와 유사한 사례로
허지웅이 있는데, 허지웅은 경제사정 자체가 어려워서 직업이 대학교수인 친아버지에게 부탁했던 것이었고 손지창이랑 똑같이 친아버지에게 차갑게 거절당했다. 다만, 허지웅의 친아버지는 단지 친어머니와 이혼한 사이었을뿐 손지창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15]
치아가 다 깨졌다는 이야기로도 알려져 있는데 해당 과자의 식감 자체는 부드러운 편이기 때문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크기가 큰 걸 한 입에 넣는 씬이 광고의 마지막에 있는데, 손지창 본인이 너무나도 열성적으로 임하다보니 턱뼈에 무리가 간 것이다. 요즘은 크기가 작아져서 한 입에 넣기 쉽지만 당시는 입 큰 사람이나 할 수 있었다. CF 촬영이다보니 여러 차례 반복해서 과자를 입에 넣는데다가 맛있게 보이려고 입을 더 크게 벌리다보니 불상사가 생긴 것.
[16]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만 봐도 대단하다. 당시 작곡가와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주가가 높던
유정연이 프로듀서와 전곡의 작곡과 편곡을 맡았다. 그 외의 참여 뮤지션들도
함춘호,
손무현,
김형석 등 지금은 죄다 거물급들이다. 마이너 발라드 '내가 너를 느끼듯이'와 뉴잭스윙 풍의 '혼자만의 비밀'이 인기를 끌었고, '혼자만의 비밀'을 무대에서 부를 때는 춤도 추었다. 자기 노래와 더 블루의 히트곡의 상당수는 손지창 작사이다.
[17]
손지창이 이 사실을 알았는지 모르지만 알았다 해도 좋아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18]
오연수와 사귄다는 썰이 이때부터 돈다.
[19]
다른 주역 배우가
박선영,
최지우,
류시원이었다. 박선영은 당시 데뷔한지는 꽤 됐으나 아직 이름을 확 알리지는 못한 상태, 나머지 두 명은 당시가 전성기였음을 고려하면 ㅎㄷㄷ한 라인업이었던 셈.
[20]
원래는 금수저 출신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노리던 캐릭터로, 국회의원 딸이 괴롭히던 여성(진 주인공)에게 집적대다 이 쪽으로 갈아탄 다음 하수인 노릇을 하던 중 국회의원 딸이 자신이 낸 자동차 사고를 다른 여성에게 덤탱이를 씌우는데 이 장면을 목격한 남자 주인공은 결정적인 약점을 잡아 국회의원 딸을 협박하고 결혼해 험악한 동거를 이어간다. 마지막에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 모든 진실이 폭로되고 국회의원과 그 가족 전부는 매장당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잃은 두 사람은 허탈해하면서 자살하는게 스토리의 결말이다.
[21]
그렇지만 20대 중후반 정도면 딱히 손지창 자체를 모를 리는 없다.
[22]
유정연과 듀엣으로 불렀다.
[23]
이장우,
홍종구,
김창열,
박상민과 함께 불렀다.
[24]
원곡 가사를 번역하여 불렀다. 또한, 이 곡은 혼자만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김태영이 번안하여 불렀으며, 드라마
종합병원의 O.S.T에 수록되기도 했다
[25]
원곡 가사를 번역하여 불렀다.
[26]
마지막 승부 삽입곡
[27]
폴리스 삽입곡
[28]
미운 우리 새끼에서 아내
오연수가 밝힌 내용에 의하면
술,
담배,
커피 세 가지를 전혀 안 한다고 한다.
[29]
정확히 말하면 본인이 연기나 방송 활동을 고의로 10년 넘게 중단해서(간헐적으로 몇 년에 한 번 인터뷰 등으로 나온 것 제외) 옛날에 비하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진 것이다. 사업에 몰입하고 싶었다고 한다.
[30]
일요일 아침 드라마 치고 굉장히 인기도 괜찮았고 엔딩곡도 손지창 본인이 불렀다. 이에 고무되어 MBC에서 한 발 늦게 제작한,
김혜수와
안재욱이 출연했던 스튜어디스를 다룬 드라마 '
짝'과 더불어 동시간대 처절한 2파전이 벌어졌을 정도였다. 상대적으로 짝이 좀 더 늦게 제작되었기에 좀 더 오래 방영했다.
[31]
손지창은
오연수를 몰랐지만
오연수는 중학교 때 선도부였던 손지창을 기억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고 한다.
[32]
손지창은 청춘스타의 대명사 원탑이었고, 오연수는 인기는 있지만 그 위로 쟁쟁한 배우가 10명 정도 있는 레벨이었다.
[33]
서로 젊을 때 만나 친분을 유지하고 있어 지금도 이병헌과 친구로 지내고 있다.
뭉쳐야 쏜다 출연 때도 운동선수
윤동식이 과거 이병헌과 매우 절친했었다고 말을 하는 바람에 전화 연결할 때도 윤동식의 전화를 이병헌이 안 받자, 손지창이 이병헌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윤동식이 방송 출연해서 그랬다고 설명하여 이병헌과 통화를 하게 해주었다. 알고보니 윤동식과 절친했던 시기는 9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정도였던 듯하다. 이병헌이 손지창에게 "(윤동식을) 본지는 너무 오래 됐다"고 말한 뒤, 전화를 넘겨 받은 윤동식에게 "야, 너 몇년 만에 전화한 거냐?"고 말했다. 미국 영화 지아이조 출연 당시까지는 절친했다고 한다. 대신 윤동식과 절친하던 시절에는 이병헌과 술을 자주 마셔서 이병헌의 집에서 일주일에 3일을 잔 적도 있을만큼 같이 살듯이 어울렸다고 한다. 이병헌 입장에서는 윤동식의 번호는 저장되었지만 몇년 만에 온 전화라 윤동식이 아닌 게 아닌지 의심해서 바로 받지 않았다고 한다.
[34]
21세기 사람들은 믿기 힘들겠으나, 1990년대 중반 장동건이나 김민종, 류시원 등은 손지창과 함께 드라마에서 연기할 때 예능에 같이 나오고 음반을 같이 내도 항상 손지창에게 메인 게스트 자리를 밀렸었다. 항상 인터뷰 메인은 손지창이고 그들은 서브였다. 예능에서 손지창을 잡기 위해 각 방송사에서 백지수표를 제안하기도 했다고 한다.
[35]
사실 김민종, 이정재, 류시원과 모두 같이 출연한 <느낌>이라는 드라마에서도 스토리의 남자 메인은 마지막 부분 전까지는 손지창이었다. 마지막에 반전급 마무리로 포커스가 흐려진 채 끝났다.
[36]
고소영과 김희선은 사실상 CF모델로 전업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희선은 필모가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특히 고소영은 영락없는 전업 CF모델이다.
[37]
조카, 사촌형제는 아예 대상이 아니다. 부모가 없더라도 큰아버지, 고모, 이모, 외삼촌 같은 친족이 신원보증을 서도록 한다.
[38]
이는 어디까지나 차후 간부가 되었을 시 비밀임무를 취급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하는 것이다. 실제로 학군단이나 학사장교 합격을 앞두고 신원조회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아주 가끔 있는데, 이는 곧 그 집안에 안보상 문제가 있는 사람이 존재하는 경우.
[39]
참고로
강창성 의원은
12.12 군사반란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른 피해자이며,
문민정부 당시엔
하나회 저격수로 활약했던지라 당시엔 개념인으로 통했다. 한편으로는 연예인 외에 정치인 아들도 저격했지만 구체적으로 신상이 거론된건 역시나 만만한 손지창 등의 연예인뿐이었고, 그 결과 정치인 아들의 병역 논란은 아예 묻혀버렸던 것. 이것이 재거론된 것은
2002년에
김대업이 일으킨
병풍 사건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김대업이 조작한 것으로 판명났지만 이 때문에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에 이어 또 다시 병역비리 정당이란 오명을 뒤집어 썼고 하필
강창성 의원의
소속 정당이 1997년 대선 직전에
신한국당과 합당해서
한나라당으로 바뀐지라 때마침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의 석연치 않은 병역 문제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강창성 의원의 아들도 병역면제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 물론
강창성 의원이 처음 병역 비리 문제를 거론할 때 저런 결과까지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거나 8년이 지나서 자신한테까지 부메랑 마냥 돌아왔고, 애초 군대에서 받아주지도 않는
사생아를 희생양으로 삼으로 했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가 사생아에게 얼마나 잔인했는지도 엿볼 수 있겠다. 다만 손지창의 고종사촌인
성 김의 아버지가
김대중과 악연이 있고, 친부
임택근은
민주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적이 있는 점을 생각하면, 다른 의미로 노렸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강창성이 손지창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한 추정이다.
[40]
한편으로 당시는 언론에서
X세대 때리기가 유행했다. 일례로 '전쟁이 나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는 설문조사에서 입대해 싸우겠다는 응답률이 낮았다는 이유로 단군 이래 애국심이 최악인 세대라고 매도당했던 게
X세대들이다. 현재의
기성세대들이
MZ세대를 때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변우민의
병역비리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데, 이 경우는 남의 진단서를 바꿔치기해서 문제가 되었고 이 때문에 교통사고 후유증이 있는 사람까지도 무리하게
방위로 강제로 소집하는 케이스가 나타났다. 여기에 해당하는게 바로 가수
신해철로, 분명
방위병은 현역에 비하면 편하게 복무했다지만 변우민처럼 환자 행세를 했다고 대놓고 모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지라 결국
홧김에 사고를 쳐바리게 된다. (...)
[41]
서운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청춘스타가 다니는 학교라는 것만으로도 학교 홍보 뿐만 아니라 경제학과 또한 홍보가 엄청났다. 대내외 홍보 활동도 많이 했던 모양이다. 또한 그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사회자가 출연자에게 학교 어디 다니냐고 많이 물어보는 상황이었는데, 손지창은 방송에서도 지체없이 홍익대학교를 다닌다고 많이 언급했다.
[42]
시기상 건담월드 2002에서 한정판매한 HY2M 자쿠II로 판단된다.
[43]
법조문에 금액과 횟수를 못박아둔 것은 아니다. 결국 그때그때 재판부가 판단하는 식이 된다.
[44]
반면 부인인
오연수는 와인을 좋아한다고 한다.